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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satong, commentary on current events from Kim Jungpei, 김종배의 시사통 3월13일 PM

김종배의 시사통 3월13일 PM

03/13 PM ‘용(用)의 역설'과 피로사회 시사통 김종뱁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시 김종뱁니다. 자 민주당과의 통합선언이후에, 안철수의원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 민주당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하면서 접촉면을넓히는한편 이 지지자들에게는 동영상메시지를 띄웟습니다. 새정치를위해서 당내투쟁도 마다하지않겠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는데요. 이런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른바 친안세력구축에 나선게아니냐 이런분석을 내놓고있습니다. 기존의 개파구도틀에서 이 안철수의원의 행보를 읽고있는것이죠. 자, 여러분 어떻게보십니까 이런시각은 타당한걸까요? 아니면 이런시각또한 구태일까요 애청자여러분의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 저희시사통홈페이지 오픈편집회의게시판에의견을 남겨주시기바랍니다 내일방송에서 여러분들의 의견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목요일 저녁방송은 김시천교수의 동양철학으로 세상을보다강의가 있는날이죠. 자여러분, 이강의잘들어주시구요 저는 내일아침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음악)

오늘, 세번째시간. 오늘은 주제가 자기계발 감정노동 피로사회, 그래놓고나서 노자의 신비한 처방전이라고 붙여놨는데 제목만 섹시합니다.아, 이세상에 삶의 문제에대해서 신비한 처방전은 있을수가없어요. 그런데 제가 신비하다라고했던것은 아, 우리가흔히 들어봤던 서구적인방식과는 조금 다른방식의 이야기가 있을수있기때문에 고부분을 인제조금 섹시하게보이기 위해서 했던거죠. 제가 좀 자주 이야기하는것가운데 하나가 왜 인문학적 문제라고하는 그 문제의식이라고하는게 개인들에게는 절실하고 상당히 어려운 물음들이지만 다 근본적이고 모호한 문제들이기때문에 답변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잖아요. 예를들면 어떻게 살것인가. 제가 예전에 읽었던 글 가운데서 가장 마음속에 와닿았던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한 철학자가 평생동안 어떻게 살아야되지 어떻게살아야되지에 관련된 사색끝에 두꺼운 책을 한권썼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딱 출간하고나서 할일이없어지니까 아인제 진짜 어떻게살아야되지? 자기가고민이되는거예요. 그래서 고민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목사님을 찾아갔어요. 목사님.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되는겁니까 했더니 목사님이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하더니만 서재를 갔다가 오시더니만 두터운 책을한권 주시는겁니다. 아, 그 질문을 제가 답변드리기는 뭐하고 이책이그래도 좋은책인데 이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어떻습니까라고 줬는데 그양반이 쓴 책을 주는겁니다. 이게 인문학이거든요. 그러니까 인문학이 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런것같아요. 왜냐면, 누구도 다른사람의 삶과 똑같을수가 없다고 하는, 어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것이 또 그렇게 다르지않다라고하는 이 두가지 딜레마 상황에 처해있는거죠. 그러니까 사실 인문학은 그 어떤 다른시대에 누구의 삶에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수있다라고하는것이 바로 그런데서 성립되는게 아닌가 싶어요.

자 오늘주제는 자기계발 감정노동 피로사회라고 내걸었지만 아마도 이 전체를 대표할수있는이야기는 피로사회라고하는 단어, 가 될 것 같애요. 자 한 2년전에 한병철이라고하는분이 피로사회라고하는 책을 냈죠. 아주 짧은책이지만 상당히 재미난 책이예요. 저는 이 얘기를 하기전에 먼저 좀 두가지, 글귀를 좀 전해드리고 이야기를 하고싶어요. 하나는 장자라고 하는 책의 인간사회편에 나오는 얘긴데, 거길보면 이런얘기가나옵니다. 산속에있는 나무는 스스로자신을 해치고 기름등잔불은 스스로를 태우며 계피는 먹을수있기때문에 사람들이 베어가고 옻나무는 쓸모가있기때문에 사람들이 잘라간다. 사람들은 모두이렇게 쓸모있음의 쓸모만을 알고 쓸모없음의 쓸모는 아무도 모른다. 자 이게 장자가말하는 그유명한 무용이라고하는 쓸모없음의 쓸모라고하는 말을 표현한것 가운데 하나에요이게. 이게 참 재밌는 표현입니다. 없을무자에 쓸용자에 쓸용, 즉 쓸모가없는것인데 그쓸모없다라고하는 그것으로 인해서 쓸모가 있다, 왜이런얘기를 하는걸까요? 이게오늘날 한국의 현대사회와 딱들어맞는 얘기입니다. 자 또 노자라고하는 책에서는 조금 이거는 우리들의 삶하고 바로 맞닿아떨어지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얘기를 하고있어요. 서른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머리에 모인다. 그 바퀴머리의 가운데가 비어있기때문에 수레가 쓰일수있다. 찰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든다. 그그릇의 비어있음에 그 그릇의쓰임이 있다. 또 무늬나 창을 만들때는 그것을 뚫어서 방을 만든다. 그런데 그 방이 비어있기때문에 방이 쓰일수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이롭게 되는 까닭은 없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자 이건 좀 약간 추상적인 얘기죠. 자 이 두가지 이야기는 같은 얘기는 아녜요. 맥락의 차이가 있고 근데 공통적으로 이 없을무자, 가 대단히 의미있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것이 강조가 되고있죠. 자 20세기에 이런 철학을 얘기를 하면서 역설의 논리라고하는 표현으로 많이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자 오늘이게 화둡니다. 장자가 던진 물음은 이거예요. 사람들은 쓸모있기를 추구하죠.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 진학하고 스펙을 쌓는 모든 행동들이 전부다 뭘 위한거죠?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위한거죠. 쓸모있는 사람. 그런데, 제가 처음에 썼던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이라고 하는 책에서 용의 역설이라고하는 표현을 만든적이 있어요. 장자가 얘기했던 이 무용지용에 관한 얘기는 용의 역설이다. 왜그러냐, 쓸모있는 사람이 된다라고하는것은 나의선택이고 나의 노력이에요. 그런데 내가 아무리 엄청난 재주와 능력을 갖고있어도 내가 실제로 쓰이는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다른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내가 엄청난 스펙을 쌓았더라도 기업체에 취업이 될때 저는 쓰일수가 있습니다. 이게 용이라고 하는것이 갖고있는 역설이라고 하는거죠. 이게 참 재미난 현실이에요. 아마도 한개인이 겪는 갈등가운데 이거보다 커다란 갈등은 없을겁니다. 공자도 그 덫에 걸린 사람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봤던것처럼 공자는 대단히 불우한 인생을 살았는데 왜 불우한 인생을 살았느냐, 엄청난 제자들이 그밑에 들끓어서 배워가겠다고 모였는데 정작 본인은 쓰이지를 못했어요. 그런거를 여러번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즉 내가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것은 나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될수가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쓰는자는 내가아니라 즉, 나의능력인데 나의실력인데 그걸쓰는사람은 내가아니다라고하는점. 이점을 우리가 생각해봐야되는게 아닌가 저는 인류역사상 이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게 장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 장자는 그걸 고민했느냐 장자가 똑같거든요. 장자는 공자처럼 그래도 이 대단한 제후들을 만나기라도했죠 공자는. 장자는 만나보지도못했습니다. 노나라애공을 만났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것도 어떻게 만났냐면은 길거리지나가다 애공이그럽니다 야 너왜그래 지쳐보이냐 그러니까 장자가 변명을 합니다 가난한거지, 지친게 아닙니다. 하면서 그러고 막 인제 이 제후를 욕해요. 그런데 그거는 장자의 제자들이지어낸 얘기겠죠. 그러니까 제대로만난게 아니에요. 보통군주가어떤사람을만나서 이사람을쓸지말지를 결정하는장소는 유세의장솝니다. 그러니까 내돈은어떻고 나는어떤능력을가졌고 혹은 당신에게 이런게 필요하다는썰을막풀고 군주가그얘길딱듣고나서 아, 하고쓸수도있고 버릴수도있는거예요. 근데지나가다가, 야, 너왜이렇게없어보이냐 라고 힐난을당했다고하는거는 격식을 갖춘 만남을 갖지않았다는거죠. 그러니까 장자는 뭘고민많이했느냐, 이런통찰을 할수 있는겁니다. 즉,내가 쓸모가 있는사람이 된다라고 노력하는것은 나의선택에의해서 가능한거지만, 내가 진짜로 쓰임이 된다, 취업을한다, 그러니까 내가 취업에 자격조건을 획득하는거는 내 노력으로 가능한거죠 하지만나를실제로합격자로만들어주는것은 그 사람들의손에달렸다, 이거참 내운명을 쥐고있는자는 그누군가입니다. 이부분을 엄청나게고민을 했습니다.

자그런데, 오늘날 이런문제와관련해가지고 한병철 선생이 이런얘기를합니다.물론독일을상대로해서냈던책입니다. 그피로사회라고하는책에 내용을한번 잠깐읽어드릴게요. 그책의12쪽에보면은 이런얘기가나옵니다. 지난 세기에는 면역학적시대였다. 즉 안과밖, 친구와적, 나와남사이의 뚜렷한경계선이 그어진시대였던것이다. 냉전역시 이러한 면역학적 도식에 따른다. 지난세계 면역학적패러다임자체가 철저하게 냉전의어휘와 본질적으로 군사적인장치의영향아래 놓여있었다. 제가이구절에 뿅갔었습니다. 왜그러냐면, 이 면역학, 이란 면역학적패러다임이라고하는건 뭐냐면 병균을 생각하시면 돼요. 병균. 이 19세기에도 실제로 인간이 질병에걸린다라고하는것에대해서학자들이논쟁이많았어요. 예컨대이럴수있죠. 감기가유행하지않습니까. 그런데 감기가 유행할때 감기 다걸리는거냐, 다걸리지않습니다. 어떤사람들은 안걸려요. 근데어떤사람들은 걸리죠. 근데역사의선택은 그걸리는사람들을중심으로 생각하는쪽으로기울어졌고 그걸리는사람들은왜걸리는거냐 바로그 질환을일으켰던세균바이러스 이런것들이내몸에침투했다라는거죠. 즉 내몸은 아군이에요. 적군이들어왔어요 그러니까백혈구가가서 잡아먹으면 승리를하는거고,이기는거고,질병이낫는거죠. 이게 인제 면역학적패러다임이다라고 이사람은설명을하고있어요, 자그런데, 세계화가일어나니까, 온세계의 문화가 혼종화하더라, 뒤섞이고 짬뽕이되가지고 전혀이질적인것자체가 사라지는 그런 희한한세상이오더라. 과연이런곳에서 적과 아군이라고하는구분이 정말명확하게 일어나는거냐. 패러다임을 바꿔야된다. 그런데 이런얘기를하면서 이분이 말하고자하는포인트는 여기에 있습니다.현대사회가 현대인들이 살아가는게 진짜 피곤하다. 피곤한데 그 피곤이어디로부터오느냐. 자 23쪽 4쪽에 보면은 이런얘기가있습니다.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즉 사람들에게 일정한 규칙, 명령, 이런것들을 제공해서 그들을 통제하고 일해야되는데 일안하는사람들은 감옥으로격리하고거기서다시훈육을거쳐가지고 노동하는사람들로바꿔야되고 이런방식으로해서 규율을통해서 사람들을다스려왔는데 21세기사회는 성과사회라고하는새로운양식의사회로 바뀌고있다 이사회를구성하는사람들은 과거처럼 규율에복종하거나 권력에지배당하거나 하는방식으로 사는게아니라 성과를 이루어내기위해서 노력하는 주체다, 그래서 성과주체라고하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면서 비유하기를 바로 자기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와같은 존재로 탈바꿈하게됐다.

자 그런데, 이성과사회는 그이전에 면역학적패러다임이 지배하던사회와 어떻게다르냐, 과거에는 뭔가를 부정하는것, 비판하는것, 이런것들이 핵심이었는데 성과사회가되니까여기를표현하는 가장대표적인말이 예스위캔, 할수있다 나는할수있다 우린할수있다. 그래서 이젠 금지하거나명령하거나 법률로 뭔가를 규율하는 방식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니셔티브를 주고, 모티베이션, 동기를 자꾸 유발하고 자극하는방식으로하면서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하게끔하는사회로 변모되었다. 결국은 가해자와피해자가 분리되지않고 자기스스로가 자기를 착취하는 즉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구분되지않는사회가 바로 현대사회, 21세기사회 피로사회의 특징이다. 자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지금 상당히복잡한고민에빠지게됩니다. 왜냐면은 자 내가 피로감을느끼고, 신체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내잠을줄여가면서까지 그리고내돈을들여가면서까지 뭔가열심히노력해서 대학을졸업하고 자격증을따고 어학연수를갔다오고 거의총력전을벌이지않습니까. 그러면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만큼의 능력에대한 댓가를 받아야된다라고생각을 하겠죠. 그찮아요. 근데그댓가를 내가 쟁취할수있느냐, 전혀나의의지와 무관하지 않습니까. 그거는 나의 생각, 나의판단, 나의권한바깥에 있는거잖아요. 희한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르니까, 떡줄사람은생각도안하는데 나는 먼저 이렇게하고 저렇게하면은 되겠지라고하는 생각을 갖고하는행동이랑 뭐가 다를까. 이렇게 생각을 해보세요. 그런데 장자는 거기에만 멈추고있질 않습니다. 뭐라고 얘길 하느냐, 처음에 제가 읽어드렸던 문장을 생각해보세요. 산속에 있는 나무는 스스로 자기자신을 해친다. 즉 무슨얘기냐 아름드리나무로 쭉쭉 가지뻗고 자라는 것자체가 자기를해친다는겁니다. 왜, 아 고놈참잘자랐군 하면서 나무꾼이 기특해하고뎅강 베어간다는거죠. 자이게굉장히 중요한 얘깁니다. 잘자란나무가 곧게 쭉쟁이도없이 곧게 쭉쭉자란나무가 나무꾼이 좋아하는 나무가 된다 하는 얘기가 뭔가, 이 한병철선생은 이 성과사회를 살아가게되는 주체가 걸리게되는 가장 중요한 질환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울증이라고 얘기를 하고있습니다. 정신질환, 신경증 질환, 이런쪽의 질환들이 많이일어나는까닭이바로이런 자기계발하는주체, 혹은 성과주체라고불리는 자기스스로가 자기를 착취하는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거죠. 자 그런데 이분이내놓은 해결책은 뒷부분에 제가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지만 그렇게 명료하게 드러나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자는 여기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방식의 이야기를 해줘요. 다른예화를 한번 들어볼게요. 한번은 장자가 제자들과 더불어서 산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가지고 더우니까 잠깐 쉬고있는데 거기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있어요. 근데 나무꾼들이 주변에서 나무를하고있었는데 제일커다란나무는 쳐다도안보고 주변의나무들만 열심히 패는거예요 그니까 장자가 궁금해가지고 그 나무꾼을 불러요. 어 나무꾼 양반 이렇게 큰나무는 버려두고 왜 작은나무들만 베어가슈. 이거하나면은 어우저렇게 안베도 될텐데 하니까 나무꾼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잘 보십시오. 이나무는 크기만 댑따컸지 가지도 삐뚤빼뚤하고 응, 몸통도 삐뚤빼뚤하고 가지도 복잡하고 쭉정이는 많고, 이거 기껏 잘라가지구 고생고생해서 갖고가봤자 쓸모가없습니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아 그렇구나. 제자들을 딱 모아놓고 얘들아, 쓸모가없어서 이 나무가 천수를 누리고있는것이다. 한마디또 가르침을 남깁니다. 자 그리고 산을 내려와가지고 장자가 친구집에 묵어요 그런데간만에친구를만나니까 장자의친구가얘길합니다거위를잡아서안주로만들어와라. 그랫더니그시동이 날이 거위가 두마린데요, 하나는잘울고 하나는 울지못합니다. 어느놈을 잡을까요?하니까울지못하는놈을 잡아라, 자 고걸 가만히듣고있던제자가운데 한명이 논리적인혼란에 빠졌습니다. 자 산속에있던 나무는쓸모가없기때문에 오래살았는데 이집에내려와보니까 어떤 거위가 울지못하기때문에 빨리죽게됐단말이죠. 즉일반화시키면그러니까 무용한거위는 죽었고, 유용한거위는 살아남았더라,이렇게일반화시킬수가있지않습니까. 이게내내고민이됐는지 그다음날아침에 장자가인제 혼자서산책을하면서 고민을하고있는데 제자가슬그머니다가옵니다. 선생님, 아니어제산위에서는 쓸모가없었기때문에 나무가오래살았다라고하셨지않습니까 그런데 이집에내려와보니까 울지못하기때문에그거위가 빨리죽지않았습니까 도대체 유용한것, 그리고 무용한것, 이둘가운데어느것이진짜중요한겁니까? 당신의입장을 좀 정해서 얘길해보시죠. 하니까장자가 그 평소에 구라로 막 돌려서얘기를하더니만 결국에이렇게얘기를 합니다. 나는 쓸모있는것과 쓸모없는것의 사이에 처하겠다. 무슨말인가요? 장자의 글이 대게 이런식입니다 그리고뒤에가면은 알수없는도가어쩌구저쩌구하는얘기가 많이 나와요 그런얘기는 안읽어도 돼요.

자, 이제 장자의 논법이 그렇습니다. 도가나오는얘기들이 핵심을찌르는얘기들이 나올때도 있지만, 요게 핵심이에요. 쓸모 없는, 쓸모있는것과 쓸모없는것의 사이에 처하겠다. 자이게무슨얘기냐하면 장자가 얘기하는 용이라고하는것의 의미를 이해해야지만 우리는 그얘기를 파악할수가 있습니다. 자우리는 쓸모있다고하는것쓸모있다라고하는것 이때쓸모있다라고하는것을 사회적인용어로표현하면은 노동의능력이고 업무수행의 능력입니다. 자 장자가살았던춘추전국시대 특히전국시대에 재주가많은사람 유용한사람이라고하는것은 장군이되거나문사가되거나그래서 행정서류를잘쓸수있는사람 사람들을 잘관리하는사람 타고난 무용이있고 지휘력이있어서 장군이 되가지고 적군과 싸워서 승리를이끌어낼수있는 그런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능력이탁월하다라고하는것은 고속으로 승진할수있는 걸로 이어지기도하죠. 그런데, 제가 주로 듣기에 90년대부터 우리사회에서 그런일들이 일어나기시작했는데 40대의 남편들이 갑자기 픽픽쓰러져서 죽는일들이 생겼습니다. 80년대까지는 제가과로사라고하는용어를 별로못들어본것같애요. 그런데 예컨대 80년대까지만하더라도 노동하시던분들이 뭐 기계에 휘말려가지고 손이잘리고발이잘리고하는 이런 산업재해는 많이들어봤어도 사무실에 앉아서일하던분들이 갑자기심장이멈춰가지고 죽는 이런돌연사얘긴 별로 못들어봤거든요. 자 고런얘기들가만생각해보시면 이게무슨얘기인지가 쉽게떠오르실거예요. 자. 장자에보면은 크게쓰는법이라고하는 이게인제아주그유명한 무하유지향이라고하는 마을이나오는부분인데 자거기에 자 장자는 텍스트에서 해시라고하는 사람과 주로많은대화를 나누죠, 자 예를들면은 요 대화가나오기 바로앞장면에는 무슨얘기가나오냐하면 어떤사람이 손안트게하는약을 만드는비법을갖고있어가지고 내내 세탁소를 하고있엇는데 지나가던나그네가 그약만드는비방을 사가지고 당시전쟁을치루고있던 오나라월나라 한나라로가가지구 겨울에전쟁을벌여서 그 손안트는약으로 군사들을손안트게끔해가지고 전쟁을 큰 승리로 이끌었다. 그래서 손 안트는약을만드는비법은 똑같은데 어떤사람은 겨우천금벌어가지고 떼돈한번은 약간벌었지만 계속세탁소일을하며 살은방면에 어떤사람은 장군이되고장관이되고 대부라고하는벼슬까지올라가서 떵떵거리며출세하는사람이됐다, 이게 크게쓰는법 어떻게 쓰느냐의 차이다 라고 얘길 합니다. 그리고나서 고다음번에이어지는얘기가 해시가 나에게 커다란나무가있는데 아까 장자가 산속에있던 그우람한나무와같은종륩니다 이게 도무지 쓸모가없는거예요. 해시가 한탄을 하니까 장자가 이렇게 얘길 합니다. 살쾡이를 본일이 있을거다.요놈은몸을바짝낮추고엎드려서 나와서노는작은짐승들을노리고 또먹이를찾아서 동쪽서쪽을 이리뛰고저리뛰면서 높고낮은데를 가리지않는다. 그러다가덫에걸리기도하고 그물에걸려죽기도한다. 뭐이런정도 저런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얘길 합니다. 그 나무의 쓸모없음이 걱정이 된다면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마을, 혹은 어디에도 없는 마을, 이 무하유지향이나 광막지하,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다 심어놓고선 그옆에서 자유롭게 거닐면서 아무하는 일 없이 지내고, 그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낮잠이라도 자는것이 좋지않겠는가. 자 여기나오는 표현이 바로 무위라고 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가흔히 알고있는무위개념은 실제노자나 장자라고하는책에서는 거의 안쓰여요. 쓰이지만 다른의미로 쓰입니다. 요기서 나오는, 자연과합일되어서 아주여유롭고 편한하고소박한어떤삶의방식을 뜻하는말로 요게 나와요. 몇번안되는실제용롑니다. 그런데, 고다음에나오는 문장이 재밌습니다. 이 큰나무는 도끼에 잘릴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칠자가 없을것이니 쓸모가없긴하지만 괴로울것도 없다. 요얘길 합니다.

자 지금 요얘기가 무슨얘긴지를 한번 가만히 생각해보셔야되는데 장자가 이 얘기를 했던 때를 생각하면서 보셔야 됩니다. 자 장자가 이런얘길 할때 자, 서양이나동양이나 마찬가지로어떤사상가가 원숙한 자기의 사상을 펼치는때는 40대에 해당합니다. 자, 조선시대에 과거에 시험을봤던사람들이 급제하는때가 30이후예요. 물론우리가알고있는율곡이라던가주희라던가이런탁월한사람들은 17세18세25세이렇게급제하지만 그거 달달외워야되고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되거든요. 30대후반에 보통 과거에급제를합니다. 게 싸잡아서 얘기할순 없어요. 그리고 로마에서는 집정관이라고하는 행정관에 오를수있는 나이의 자격조건이 40세였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30세에 호민관이되고, 그리고나서 집정관으로 건너갔죠. 그니까 야료를 부린거예요. 빨리 뭔가 되고싶어가지고. 자 그런데 여기 나와있는 묘사를그대로한번보세요. 제가 아무도없는들판에다가 나무를심어놓고 그밑을 유유자적하면서 어슬렁거리면서 낮잠을자면은 집사람이쫓아와가지고 여보!!!! 돈벌어와!! 하면서 부릅니다. 이게전국시대예요. 자, 이게 저는 머릿속에서 그려봤어요. 어떤한 40대된 남자가 처자식이있겠죠 그리고농사를짓고있을겁니다 그런데그가 자기논밭에서 열심히일하다가 한낮의 뙤약볕을 피해서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잔고 쉰다라고 하는것은 아주평범한 일상에 지나지않습니다. 이상적인모습이랑 전혀 상관이 없어요. 근데이게왜이상적인모습으로 묘사가 되느냐, 그런 인간이 드물었기때문이죠. 늘 전쟁이있던 시댑니다. 전쟁이 있던시대. 그러니까 40대의남자라고 하는것은 전쟁에서는 가장능력이 탁월한 경험많은 백전노장들을 가르켜요. 이렇게 생각하면은 지금 장자가 하고있는얘기는 아주 단순한겁니다. 그밑에 이 나무는쓸모가없긴하지만 괴로울것도없다, 무슨얘깁니까. 가만히 살고있는데 나를데려다가 전쟁터에 데려다가 가서싸우다가 죽게만드는 이런일이 없는 상태가 자기에게 중요한거예요. 즉 여기서, 진짜 크게 쓰는법 이라고하는것은 뭘의미하는거냐면 제가아까 용의역설이란걸 얘기했죠, 내가가지고있는능력이라고 하는거는 우리는 우리가기르는거지만 사실은내게 아니라고했습니다. 나의능력은 내가쓸수있는게아니에요. 다른사람이 쓰는겁니다. 그럼 내가 쓸수있는거는? 딱 하나죠. 나의 생명입니다. 나의 삶이죠. 근데, 40대의 누군가가 열심히 일을하다가 초고속 승진을 해가지고 40대중반에 이사가됐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심장이 멈춰서 죽었다, 라고하는것은 뭘의미하는겁니까. 유용하다라고하는것하고 무용하다라고하는것을 역치시켜보세요. 즉 내 생명은 여기에 속하는거 아닙니까. 그렇죠? 유용하다라고 하는것은 내게 아녜요. 상대방이 판단하는겁니다 사회가 요구하는거예요. 국가가 부르는거고. 그러니까 내가 늘으는 능력이라고 하는것은, 마치 그것이 나의 삶을 좋게 바꿀수있는 그무엇인것처럼 생각을 하지만 결국은 그 유용함때문에 무용하다라고 아무도 나의 생명을 돌봐주지 않습니다. 이거는 오로지 나만돌볼수잇는거에요. 그러니까 무용한것 자체가 쓸모가있다라고 하는말에는 너에게 가장 소중한것은 너의 생명이다라고하는 뜻이 들어가있는겁니다. 그거를 실제로 잘 기르고 잘 쓰는거야말로 진정으로 크게쓰는거다, 라고 장자는 얘기하는거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음악)

안녕하세요, 청년논객 노정태입니다. 강중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오종석. 이 진보 논객들과 함께 살아온 우리의 한 시절. 우리가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그 시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보고자 책을 펴냈습니다. ‘논객시대'. 인문, 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논객 총정리. 반비에서 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폭력을 넘어서' 오창익입니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를 권해드립니다. 국가는 신성한 존재일까요? 국가의 정책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될까요? 국가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과 불의를 넘어서려는 뜻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그 답을 줍니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를 보십시오. ‘기억하라 연대하라'와 함께 공권력의 의미, 사람다운 삶의 의미를 찾길 바랍니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 삼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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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요얘기는 저도 이따가 좀생각을 많이하게됐던 구절인데요 자 공문헌이란 사람이 우사라고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이렇게 말을합니다 이사람이도대체누군가 어찌하여 발이 하나뿐인가 하늘이그렇게한것인가 사람이 그렇게 한것인가. 자 장자에서는 얘기를 돌려치면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요기에 핵심이뭐냐면 우사라고하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오른쪽우자에다가 사, 군대란 뜻입니다. 좌사우사, 즉 우장군에해당되는뜻입니다 즉이는 고위군지휘관이었다는걸알수있습니다 그런데이사람이다리가하나가됐어요 왜, 형벌을 받았으니까. 그러니까군작전을수행하다가 졌겠죠 그래서벌받아쫒겨난거예요 그런데우사가이렇게얘길합니다 하늘이이렇게한거지사람이이렇게한것이아니다, 자이게재밌습니다이게 이중적인의미를 갖고있어요. 우리는이게천인하면 하늘자연과인간 이렇게해석을하지않습니까 그게아니라 하늘천차는 중의적인 뜻을갖고있습니다. 하늘이누굽니까?왕이거든요. 그렇죠? 이사람들에겐대단히자연스러운현상이고우리동양인들에겐익숙한표현방식입니다 하지만여기서는인간을대비시킴으로써마치그것이아닌것처럼 표현을가다듬어주고있습니다 왜, 직설적으로 이야기를하면 죽습니다. 자그런데, 사람의용모는 다 하늘이부여한거다 이로써 내가외발이된것은 하늘이그렇게한거지 사람이그렇게한것이아님을 알수있다 자 그런데이뒤에붙이는얘기가이사람이진짜하고싶은얘기에요 연못가에사는꿩은 열걸음걸어서한입모이를쪼아먹고백걸음걸어가서한번물한모금마신다 하지만 새장속에 갖혀서길러지기를바라지는 않는다. 왜냐, 정신은 비록 몸이왕성하다할지라도 그것을 좋아하지않기때문이다. 자지금자기가 장군으로써생활할때의이야기를빗대어얘기하고있습니다 내가꼬박꼬박주는모이꼬박꼬박주는물에 아무걱정없이 배부르게 깃털뽐내면서 잘살았지만 즉 영화를 부귀영화를 잘누리며살았지만뭡니까 즉 몸은 좋다는거죠 하지만 내정신은 몸이 그렇게 건장하고 튼튼하게 사는것도 별로달갑지 않았다, 이거쉽게말하면 오늘날로이야기하면은 스트레스상태에 있었다는겁니다. 지독할정도의 스트레스 상태, 자 이렇게본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장자의 자유, 이거는우리가근대를통해서배웠던 정치적인 자유 이런고단수의자유가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차원의 자기생명을보존하고 유지하고 부양할수있고 그것자체마저도 다행스럽게간섭받지않으면 다행이다라고하는 최소한에 관련된이야기를하고있습니다.

자그런데 장자는 아쉽게도 적극적인방식의 해결책을이야기하진 않습니다. 노자도마찬가지에요. 그런데제가노자를 왜하필이면 장자얘기를계속해놓고나서 노자의처방을얘기하느냐 제가얼마전에읽었던글가운데서 노자를참재미나게해석하는 한스게오르그멜러라고하는 학자의글을 봤기때문에 제가 이렇게 얘길 합니다. 자, 그래서 이사람은 뭐라고 얘길 하냐면 인간이 가지고, 결국은 남보다더잘살고싶고 남보다뭔가성취하고싶고 이 비교적인차원에서뭔가더라고하는생각때문에그런건데 이것을이게 욕망의문제지않습니까이욕망에대해서 해결하는방법, 서구에서도당얀 여러가지얘기들나오지만 기본적으로서양의사고방식과 동아시아의사고방식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이 멜러라는 학자가 이런얘길합니다 자 통상적으로그전에 서구사회에서는 욕망에 대해서 욕망은 신체로부터 오는것이고 기본적으로 악의요소를 갖고있는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욕망은 결코악이아닙니다. 그욕구라고하는것은 없앨수있는것이 전혀 아니고 금지되어서도 안되는것이고 자연스러운것이다라고 봅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는 금욕이라고하는표현자체가없습니다. 욕구는그자체로선도아니고 악도아녜요. 다만 절욕, 절제가 필요한 그 무엇이라고만 얘기를 합니다. 자이게그동안 노자를 설명했던 중요한 방식가운데 하나예요. 그런데, 이 한스게오르그멜러라고하는사람이 뭐라고얘길하느냐 그거는 노자의생각과조금다르다, 노자는 역설적이게도 욕망을 수행하는것에 근거를두고있다, 자 무슨얘기냐 욕망은 기본적이고일반적인 만족의 상태를야기하는것으로 오히려 막을수있다. 즉 욕망이라고하는것은 지연시키거나 절제되거나 할것이아니라 즉각적인 만족을줌으로써오히려 욕망자체가 사라지게만드는방식으로 해결을해야된다라고얘기를합니다. 그래서노자가제안하는방식은뭐냐 만족을극대화시키는방식의처방을주고있다라고얘길합니다.

그게제가묘하게도 엊그저께겪었어요. 저희애가 스테이크를그렇게좋아합니다. 그런데약간그렇게통통해져가지고 조금계속이렇게되면은 비만이만성화될가능성이있어가지고 운동도하고해서 좀 많이 좋아졌어요. 그러니까 본인도좀 들먹을라고 노력을 해요. 그런데 그날따라제집사람이 실수로 너먹고싶은거사줄께! 라고했는데아이가 스테이크?했는데 와이프가 응 하고 못듣고 응 해버린거예요. 그러니까우리애는스테이크를먹을수있다는 허락받았다라고하는 엄청난 이 기대에부풀어가지고 그런데 약속안지키면 안되잖아요. 그랬는데 그날은 인제우리애한테 뭘사줄려고갔다가 이게계속쇼핑이 제대로된 그게 없어요. 그래가지고 자꾸 늦어졌어요. 아, 스테이크먹으러가야되는데 가야되는데 해가지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야일단 네가 배가고프니까 간단한거를 조금만 먹고, 그리고 나중에 저녁에 스테이크를 먹으러가자. 그러니까 얘가 오케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걸 먹었는데 얘가 조금 많이먹었어요. 그러니까 야, 스테이크먹으러가야지, 했더니 그때 뭘먹었더라? 뭐김밥을먹었나 뭐 그런걸먹은것 같아요. 그랬더니 아빠, 별로배가안고파. 다음에먹자하고 넘어가더라구요. 노자는 오히려 즉각적인 만족을 통해서 욕망자체를 사라지게만든다, 근데이때그거를표현하는말이 재미나게도 또 무자가 나옵니다. 이게 노자에서 쓰는 말, 장자에서 쓰는말도그렇고 이게 있다없다라고하는 존재나 소재의문제가아니라아까 무용, 저게 니께내꺼냐하는문제랑도걸려서있지않습니까 그러니까무용이라고하는것은뭐냐하면 내가 다른사람이나를쓰느냐마느냐에따라서 결정될수있다라고하는 그논리에 벗어나있다, 그럴때 니가 진짜 스스로를쓸수있다라고하는 뜻으로 해석할수있습니다. 즉, 이무자는 없다의뜻이아니라 그 무엇무엇에의해서 내가 구속당해있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무욕이라고하는것은 내가욕망이없는상태가아니라 내가지니고있는욕망에의해서 내가 휘둘리지않는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게재미난 표현이에요. 그러니까무욕이라고하는것은인간의욕구는 없을수가없습니다. 생물체로써살아있는한 생명체로써 살아있는한 더군다나 사회적존재로써살아가는한 성취하고싶고 갖고싶고누리고싶고 다있습니다. 하지만어디까지냐, 이어디까지냐라고하는부분이 바로 그사회가 어떤 개인들에의해서만들어지는것이 아니라는거죠. 그사회적인차원에서만들어지는욕망의 층위들을 어떻게우리가 구현하고 합의해내고결정하느냐에따라서 개개인들이 노력하는 방향은 굉장히 달라질겁니다.

모든사람들이 하나의기업만바라보고 난 저회사를들어가야해 모든사람들이 난 저대학을가야돼 난쟤와같은아이돌스타가될거야.라고하는기준으로볼때 그욕구는 만족되기는 커녕 끊임없이지연됨으로써 결국은 과행결핍의 삶을 살고있는거죠. 전혀행복을 느낄수가 없습니다. 어찌본다면 우리는 그때그때 즉각적인 만족을통해서 욕구라고하는것이 불필요하게 확대되거나커지거나함으로써 오히려내가욕망에조종당하는 노예가되지않도록 나를만들어내는것도 필요하다. 바로노자라고하는책속에들어있는 논리를가만히보면은 바로만족의기술을 이야기하고있고 욕망은 만족시켜줌을통해서 문제를근원적으로해결할수있다. 물론이것은지속적인과정을 의미하는것이라고이야길하고있습니다. 제가봤던 노자에관한 해석가운데 상당히세련되면서 상당히재미나고도 현대인들에게도상당히 개개인들에게 적절하게의미를주는말인것같애요. 그래서이피로사회, 이피로사회 자기길을 개발한다, 너무피곤하게살지말고 어찌본다면우리는 성취를위해서 성과를위해서 능력개발을위해서 자기자신을피로하게만들것이아니라 이것이자발적이든타의에의한것이든간에 개개인들의행복을누리기위해 필요한거는진짜 내가어떤방식으로 어떻게만족을느끼느냐 자신의 만족감을 효율적으로 최대화시키는 그런방법들을 개발하는것이필요하지않은가 그래서그게 이렇게 멜러는 만족의 최적화를 노자가 말했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자 구조적인문제까지 다 해결할수있는것은 아니겠지만적어도 개개인들에게주는의미는 어느정도있을것같습니다. 자 최근 우리사회에서 안녕들하십니까라고하는 표현은우리사회가 만족하지못하다라고 하는거죠. 이제는 그런 부정적인것을넘어서서 이제는만족하십니까? 라고 물을수 있는사회가된다면 훨씬 우리사회가 더 한걸음 나아진삶을 살고있다라고 봐도되지않을까 하는생각이 듭니다. 자, 이 피로하여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건지, 아니면 진짜로제가 썰론은 신비한처방전이라고 얘기했지만 신비한건지는 모르겠어요 왜냐면 삶에는 신비가 없기때문에. 결국은 그 신비의 베일을 벗겨내고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나를 만족시키고 나의행복을 증진시킬수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것이 어떻게 본다면 개개인들에게필요한 삶의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김종배의 시사통 3월13일 PM

03/13 PM ‘용(用)의 역설'과 피로사회 03/13 PM'The paradox of dragon' and fatigue society 시사통 김종뱁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시 김종뱁니다. Lovers, Kim Jong-bap again 자 민주당과의 통합선언이후에, 안철수의원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Now, after the declaration of unity with the Democratic Party, Rep. Ahn Chul-soo is moving faster. 이 민주당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하면서 접촉면을넓히는한편 이 지지자들에게는 동영상메시지를 띄웟습니다. While meeting these Democrats individually or talking on the phone, they expanded their contact area, while also popping up a video message to these supporters. 새정치를위해서 당내투쟁도 마다하지않겠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는데요. It was a message stating that he would not refuse the party struggle for the new politics. 이런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른바 친안세력구축에 나선게아니냐 이런분석을 내놓고있습니다. In view of this move, some are making such an analysis whether or not they are trying to build a so-called pro-security force. 기존의 개파구도틀에서 이 안철수의원의 행보를 읽고있는것이죠. I am reading the steps of Clinic Ahn Cheol-soo in the existing open path. 자, 여러분 어떻게보십니까 이런시각은 타당한걸까요? Now, how do you see it, is this time reasonable? 아니면 이런시각또한 구태일까요 애청자여러분의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Or is this time also obsolete? Please send your opinions. 이 저희시사통홈페이지 오픈편집회의게시판에의견을 남겨주시기바랍니다 내일방송에서 여러분들의 의견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Please leave your opinion on the bulletin board of the open editorial meeting of our current affairs homepage. We will introduce your opinions in tomorrow's broadcast.

자, 목요일 저녁방송은 김시천교수의 동양철학으로 세상을보다강의가 있는날이죠. Now, Thursday evening broadcast is the day when Professor Si-Chun Kim’s Eastern Philosophy will give you a lecture to see the world. 자여러분, 이강의잘들어주시구요 저는 내일아침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veryone, please listen carefully to this lecture. I will see you again tomorrow morning. Thank you.

(음악)

오늘, 세번째시간. Today, the third time. 오늘은 주제가 자기계발 감정노동 피로사회, 그래놓고나서 노자의 신비한 처방전이라고 붙여놨는데 제목만 섹시합니다.아, 이세상에 삶의 문제에대해서 신비한 처방전은 있을수가없어요. Today, the theme is self-development, emotional labor fatigue society, and then Lao-tzu's mysterious prescription, but only the title is sexy. Oh, there can be no mysterious prescription for life problems in this world. 그런데 제가 신비하다라고했던것은 아, 우리가흔히 들어봤던 서구적인방식과는 조금 다른방식의 이야기가 있을수있기때문에 고부분을 인제조금 섹시하게보이기 위해서 했던거죠. But what I said is mysterious is because there may be a story in a way that is a little different from the Western way we often hear, so I did it to make the high part look a little sexy. 제가 좀 자주 이야기하는것가운데 하나가 왜 인문학적 문제라고하는 그 문제의식이라고하는게 개인들에게는 절실하고 상당히 어려운 물음들이지만 다 근본적이고 모호한 문제들이기때문에 답변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잖아요. One of the things I talk about a bit often is that the problem consciousness, which is called a humanities problem, is a desperate and very difficult question for individuals, but it is a problem that is difficult to answer because they are all fundamental and ambiguous problems. 예를들면 어떻게 살것인가. 제가 예전에 읽었던 글 가운데서 가장 마음속에 와닿았던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Among the articles I've read before, there is a story like this that touches my heart the most. 어떤 한 철학자가 평생동안 어떻게 살아야되지 어떻게살아야되지에 관련된 사색끝에 두꺼운 책을 한권썼습니다. A philosopher wrote a thick book after contemplating how to live and how to live for the rest of his life. 그런데 그때 그 딱 출간하고나서 할일이없어지니까 아인제 진짜 어떻게살아야되지? But then, after the publication, there is nothing to do, so how do I really live in Ainje? 자기가고민이되는거예요. 그래서 고민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목사님을 찾아갔어요. 목사님.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되는겁니까 했더니 목사님이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하더니만 서재를 갔다가 오시더니만 두터운 책을한권 주시는겁니다. I said how the hell should I live, and the pastor said, Oh wait a minute, and then I went to the library and came to the library, and he gave me a thick book. 아, 그 질문을 제가 답변드리기는 뭐하고 이책이그래도 좋은책인데 이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어떻습니까라고 줬는데 그양반이 쓴 책을 주는겁니다. 이게 인문학이거든요. 그러니까 인문학이 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런것같아요. 왜냐면, 누구도 다른사람의 삶과 똑같을수가 없다고 하는, 어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것이 또 그렇게 다르지않다라고하는 이 두가지 딜레마 상황에 처해있는거죠. 그러니까 사실 인문학은 그 어떤 다른시대에 누구의 삶에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수있다라고하는것이 바로 그런데서 성립되는게 아닌가 싶어요.

자 오늘주제는 자기계발 감정노동 피로사회라고 내걸었지만 아마도 이 전체를 대표할수있는이야기는 피로사회라고하는 단어, 가 될 것 같애요. 자 한 2년전에 한병철이라고하는분이 피로사회라고하는 책을 냈죠. Now, a couple of years ago, a person named Byung-cheol Han published a book called Fatigue Society. 아주 짧은책이지만 상당히 재미난 책이예요. It is a very short book, but it is a very interesting book. 저는 이 얘기를 하기전에 먼저 좀 두가지, 글귀를 좀 전해드리고 이야기를 하고싶어요. 하나는 장자라고 하는 책의 인간사회편에 나오는 얘긴데, 거길보면 이런얘기가나옵니다. 산속에있는 나무는 스스로자신을 해치고 기름등잔불은 스스로를 태우며 계피는 먹을수있기때문에 사람들이 베어가고 옻나무는 쓸모가있기때문에 사람들이 잘라간다. Trees in the mountains hurt themselves, oil lamps burn themselves, cinnamon is edible, so people cut them down, and lacquer trees are useful, so people cut them. 사람들은 모두이렇게 쓸모있음의 쓸모만을 알고 쓸모없음의 쓸모는 아무도 모른다. Everyone knows only the use of uselessness, and no one knows the uselessness of uselessness. 자 이게 장자가말하는 그유명한 무용이라고하는 쓸모없음의 쓸모라고하는 말을 표현한것 가운데 하나에요이게. Now, this is one of the expressions of the famous dance that the eldest son says is useless and useless. 이게 참 재밌는 표현입니다. This is a very interesting expression. 없을무자에 쓸용자에 쓸용, 즉 쓸모가없는것인데 그쓸모없다라고하는 그것으로 인해서 쓸모가 있다, 왜이런얘기를 하는걸까요? It is useless for the useless, that is, it is useless, but it is useless because of the uselessness. 이게오늘날 한국의 현대사회와 딱들어맞는 얘기입니다. This is a story that fits perfectly with the modern society of Korea today. 자 또 노자라고하는 책에서는 조금 이거는 우리들의 삶하고 바로 맞닿아떨어지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얘기를 하고있어요. Now, in a book called Lao-tzu, this is not a story that directly touches our lives, but it does this. 서른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머리에 모인다. Thirty spokes are gathered on one wheel head. 그 바퀴머리의 가운데가 비어있기때문에 수레가 쓰일수있다. Because the center of the wheel head is empty, a cart can be used. 찰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든다. Make a bowl by making clay. 그그릇의 비어있음에 그 그릇의쓰임이 있다. In the emptyness of the vessel, there is a use of the vessel. 또 무늬나 창을 만들때는 그것을 뚫어서 방을 만든다. Also, when making patterns or windows, make a room through it. 그런데 그 방이 비어있기때문에 방이 쓰일수있다. However, the room can be used because the room is empty. 그러므로 있음이 이롭게 되는 까닭은 없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Therefore, there is no reason to benefit from being because none is used. 자 이건 좀 약간 추상적인 얘기죠. Now this is a little bit abstract. 자 이 두가지 이야기는 같은 얘기는 아녜요. Now these two stories are not the same. 맥락의 차이가 있고 근데 공통적으로 이 없을무자, 가 대단히 의미있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것이 강조가 되고있죠. There is a difference in context, but in common, it is emphasized that there is a very meaningful role. 자 20세기에 이런 철학을 얘기를 하면서 역설의 논리라고하는 표현으로 많이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Now, while talking about such a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 many evaluated the ideas of Lao-tzu and Zhangzi as an expression called the logic of paradox.

자 오늘이게 화둡니다. Now, this is a hot topic. 장자가 던진 물음은 이거예요. 사람들은 쓸모있기를 추구하죠. People seek to be useful.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 진학하고 스펙을 쌓는 모든 행동들이 전부다 뭘 위한거죠?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위한거죠. 쓸모있는 사람. 그런데, 제가 처음에 썼던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이라고 하는 책에서 용의 역설이라고하는 표현을 만든적이 있어요. By the way, in my first book called Excuse for Egoism, I created an expression called the dragon paradox. 장자가 얘기했던 이 무용지용에 관한 얘기는 용의 역설이다. 왜그러냐, 쓸모있는 사람이 된다라고하는것은 나의선택이고 나의 노력이에요. Why, being a useful person is my choice and my effort. 그런데 내가 아무리 엄청난 재주와 능력을 갖고있어도 내가 실제로 쓰이는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다른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내가 엄청난 스펙을 쌓았더라도 기업체에 취업이 될때 저는 쓰일수가 있습니다. So, even if I have accumulated huge specs, I can be used when I get a job in a company. 이게 용이라고 하는것이 갖고있는 역설이라고 하는거죠. This is the paradox of the dragon. 이게 참 재미난 현실이에요. This is a very interesting reality. 아마도 한개인이 겪는 갈등가운데 이거보다 커다란 갈등은 없을겁니다. Probably, there is no conflict that is greater than this one among the conflicts experienced by one individual. 공자도 그 덫에 걸린 사람입니다. Confucius is also a person caught in that trap. 우리가 지난 시간에 봤던것처럼 공자는 대단히 불우한 인생을 살았는데 왜 불우한 인생을 살았느냐, 엄청난 제자들이 그밑에 들끓어서 배워가겠다고 모였는데 정작 본인은 쓰이지를 못했어요. As we saw last time, Confucius lived a very poor life. Why did he live an unfortunate life? A huge number of disciples gathered under him to learn, but he couldn't use it. 그런거를 여러번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I lamented that many times. 즉 내가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것은 나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될수가있습니다. In other words, that I can be a capable and wonderful person can be accomplished by my efforts. 그런데 그 능력을 쓰는자는 내가아니라 즉, 나의능력인데 나의실력인데 그걸쓰는사람은 내가아니다라고하는점. However, it is not me who uses the ability, that is, it is my ability, but it is my ability, but the person who uses it is not me. 이점을 우리가 생각해봐야되는게 아닌가 저는 인류역사상 이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게 장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Shouldn't we think about this? 왜 장자는 그걸 고민했느냐 장자가 똑같거든요. Why did the firstborn worry about that? Because the firstborn is the same. 장자는 공자처럼 그래도 이 대단한 제후들을 만나기라도했죠 공자는. Like Confucius, the Zhangjiagang even met these great princes. Confucius. 장자는 만나보지도못했습니다. 노나라애공을 만났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것도 어떻게 만났냐면은 길거리지나가다 애공이그럽니다 야 너왜그래 지쳐보이냐 그러니까 장자가 변명을 합니다 가난한거지, 지친게 아닙니다. There is a record of meeting Roh Nara Ae Gong, but the way I met it is that it is like a gong in the streets. Why do you look so exhausted? 하면서 그러고 막 인제 이 제후를 욕해요. And then I just swear at Inje Lee. 그런데 그거는 장자의 제자들이지어낸 얘기겠죠. But that must be the story of the firstborn's disciples. 그러니까 제대로만난게 아니에요. So, I didn't meet you right. 보통군주가어떤사람을만나서 이사람을쓸지말지를 결정하는장소는 유세의장솝니다. The place where the common monarch meets and decides whether or not to use this person is the venue of the campaign. 그러니까 내돈은어떻고 나는어떤능력을가졌고 혹은 당신에게 이런게 필요하다는썰을막풀고 군주가그얘길딱듣고나서 아, 하고쓸수도있고 버릴수도있는거예요. So, what is my money and what ability I have, or after the monarch listens to it and tells me that you need this, you can spend it and throw it away. 근데지나가다가, 야, 너왜이렇게없어보이냐 라고 힐난을당했다고하는거는 격식을 갖춘 만남을 갖지않았다는거죠. But to say that, after passing, hey, why do you look so absent? 그러니까 장자는 뭘고민많이했느냐, 이런통찰을 할수 있는겁니다. So, what did the firstborn worry a lot about, this insight can be obtained. 즉,내가 쓸모가 있는사람이 된다라고 노력하는것은 나의선택에의해서 가능한거지만, 내가 진짜로 쓰임이 된다, 취업을한다, 그러니까 내가 취업에 자격조건을 획득하는거는 내 노력으로 가능한거죠 하지만나를실제로합격자로만들어주는것은 그 사람들의손에달렸다, 이거참 내운명을 쥐고있는자는 그누군가입니다. In other words, it is possible for me to try to become a useful person, but it is possible by my choice, but I am really used, I am getting a job. It is up to the hands of the people to make it, who is the one who holds my destiny. 이부분을 엄청나게고민을 했습니다. I was really worried about this.

자그런데, 오늘날 이런문제와관련해가지고 한병철 선생이 이런얘기를합니다.물론독일을상대로해서냈던책입니다. Now, by the way, regarding this issue today, Mr. Han Byung-cheol talks about this. 그피로사회라고하는책에 내용을한번 잠깐읽어드릴게요. I will read the contents of the book called Fatigue Society for a moment. 그책의12쪽에보면은 이런얘기가나옵니다. On page 12 of the book, this is the story. 지난 세기에는 면역학적시대였다. 즉 안과밖, 친구와적, 나와남사이의 뚜렷한경계선이 그어진시대였던것이다. In other words, it was the era when a clear boundary line was drawn between inside and outside, between friends and enemies, and between me and the man. 냉전역시 이러한 면역학적 도식에 따른다. The Cold War also follows this immunological scheme. 지난세계 면역학적패러다임자체가 철저하게 냉전의어휘와 본질적으로 군사적인장치의영향아래 놓여있었다. The immunological paradigm of the past world itself was thoroughly under the influence of Cold War vocabulary and essentially military devices. 제가이구절에 뿅갔었습니다. I went to this verse. 왜그러냐면, 이 면역학, 이란 면역학적패러다임이라고하는건 뭐냐면 병균을 생각하시면 돼요. Because, what is called this immunology, Iranian immunological paradigm, you can think of germs. 병균. 이 19세기에도 실제로 인간이 질병에걸린다라고하는것에대해서학자들이논쟁이많았어요. Even in this 19th century, there was a lot of debate among scholars about the fact that humans actually get sick. 예컨대이럴수있죠. 감기가유행하지않습니까. Isn't a cold prevalent? 그런데 감기가 유행할때 감기 다걸리는거냐, 다걸리지않습니다. But when a cold is prevalent, do you catch all of your colds? 어떤사람들은 안걸려요. 근데어떤사람들은 걸리죠. 근데역사의선택은 그걸리는사람들을중심으로 생각하는쪽으로기울어졌고 그걸리는사람들은왜걸리는거냐 바로그 질환을일으켰던세균바이러스 이런것들이내몸에침투했다라는거죠. But the choice of history has been leaned toward thinking about the people who do it, and why do people who do it get sick? These bacteria, viruses that caused the disease, have invaded my body. 즉 내몸은 아군이에요. In other words, my body is a friend. 적군이들어왔어요 그러니까백혈구가가서 잡아먹으면 승리를하는거고,이기는거고,질병이낫는거죠. The enemy came in. So, if the white blood cells go and eat them, you win, you win, and your disease is healed. 이게 인제 면역학적패러다임이다라고 이사람은설명을하고있어요, 자그런데, 세계화가일어나니까, 온세계의 문화가 혼종화하더라, 뒤섞이고 짬뽕이되가지고 전혀이질적인것자체가 사라지는 그런 희한한세상이오더라. 과연이런곳에서 적과 아군이라고하는구분이 정말명확하게 일어나는거냐. Is the distinction between enemies and allies really clear in such a place? 패러다임을 바꿔야된다. 그런데 이런얘기를하면서 이분이 말하고자하는포인트는 여기에 있습니다.현대사회가 현대인들이 살아가는게 진짜 피곤하다. But here's the point he wants to say while talking about this: In modern society, it's really tired for modern people to live. 피곤한데 그 피곤이어디로부터오느냐. 자 23쪽 4쪽에 보면은 이런얘기가있습니다. Now, on page 23 and page 4, there is something like this.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즉 사람들에게 일정한 규칙, 명령, 이런것들을 제공해서 그들을 통제하고 일해야되는데 일안하는사람들은 감옥으로격리하고거기서다시훈육을거쳐가지고 노동하는사람들로바꿔야되고 이런방식으로해서 규율을통해서 사람들을다스려왔는데 21세기사회는 성과사회라고하는새로운양식의사회로 바뀌고있다 이사회를구성하는사람들은 과거처럼 규율에복종하거나 권력에지배당하거나 하는방식으로 사는게아니라 성과를 이루어내기위해서 노력하는 주체다, 그래서 성과주체라고하는 표현을 씁니다. In the 21st century society, in a disciplined society, that is, by providing people with certain rules, orders, and these things, they have to control and work, but those who work alone must be quarantined into prisons and replaced with those who work through discipline. The 21st century society is transforming into a new style of society called performance society. The people who make up the board of directors do not live in a way of obeying rules or dominated by power as in the past, but trying to achieve results. It is a subject, so we use the expression called a performance subject. 그러면서 비유하기를 바로 자기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와같은 존재로 탈바꿈하게됐다.

자 그런데, 이성과사회는 그이전에 면역학적패러다임이 지배하던사회와 어떻게다르냐, 과거에는 뭔가를 부정하는것, 비판하는것, 이런것들이 핵심이었는데 성과사회가되니까여기를표현하는 가장대표적인말이 예스위캔, 할수있다 나는할수있다 우린할수있다. Now, by the way, how does the rational society differ from the society that was dominated by the immunological paradigm before, to deny or criticize something in the past. Yes I can We can 그래서 이젠 금지하거나명령하거나 법률로 뭔가를 규율하는 방식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니셔티브를 주고, 모티베이션, 동기를 자꾸 유발하고 자극하는방식으로하면서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하게끔하는사회로 변모되었다. So now it is not a way of banning, ordering, or regulating something by law, but a society in which projects are created, initiatives are given, motivations and motivations are constantly motivated and stimulated, allowing themselves to do something spontaneously. 결국은 가해자와피해자가 분리되지않고 자기스스로가 자기를 착취하는 즉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구분되지않는사회가 바로 현대사회, 21세기사회 피로사회의 특징이다. In the end, a society in which the perpetrator and the victim are not separated and exploits themselves, that is, the exploiter and the exploitee are not distinguished, is a characteristic of a fatigue society in the modern society and the 21st century society. 자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지금 상당히복잡한고민에빠지게됩니다. Now, by the way, here we are in a very complex trouble. 왜냐면은 자 내가 피로감을느끼고, 신체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내잠을줄여가면서까지 그리고내돈을들여가면서까지 뭔가열심히노력해서 대학을졸업하고 자격증을따고 어학연수를갔다오고 거의총력전을벌이지않습니까. Because now, I feel tired, physically run into limitations, reduce my sleep, and spend my money, graduating from university, getting a certificate, studying language training, and having hardly any battles. 그러면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만큼의 능력에대한 댓가를 받아야된다라고생각을 하겠죠. Then, you will think that you must be paid for the ability you have earned through your efforts. 그찮아요. 근데그댓가를 내가 쟁취할수있느냐, 전혀나의의지와 무관하지 않습니까. 그거는 나의 생각, 나의판단, 나의권한바깥에 있는거잖아요. It's outside my thoughts, my judgments, and my powers. 희한한 일이 일어납니다. A strange thing happens. 그르니까, 떡줄사람은생각도안하는데 나는 먼저 이렇게하고 저렇게하면은 되겠지라고하는 생각을 갖고하는행동이랑 뭐가 다를까. So, I don't even think about the people who eat rice cakes, but what is the difference from the behavior I do with the thought that I should do this first and then do that. 이렇게 생각을 해보세요. 그런데 장자는 거기에만 멈추고있질 않습니다. 뭐라고 얘길 하느냐, 처음에 제가 읽어드렸던 문장을 생각해보세요. What are you talking about? Think of the sentence I read at first. 산속에 있는 나무는 스스로 자기자신을 해친다. 즉 무슨얘기냐 아름드리나무로 쭉쭉 가지뻗고 자라는 것자체가 자기를해친다는겁니다. 왜, 아 고놈참잘자랐군 하면서 나무꾼이 기특해하고뎅강 베어간다는거죠. 자이게굉장히 중요한 얘깁니다. Now this is a very important story. 잘자란나무가 곧게 쭉쟁이도없이 곧게 쭉쭉자란나무가 나무꾼이 좋아하는 나무가 된다 하는 얘기가 뭔가, 이 한병철선생은 이 성과사회를 살아가게되는 주체가 걸리게되는 가장 중요한 질환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울증이라고 얘기를 하고있습니다. What is the story that a well-grown tree becomes a tree that a treecutter likes without a straight tree, and this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diseases in which the subject of living in this sex society becomes depression. I'm talking. 정신질환, 신경증 질환, 이런쪽의 질환들이 많이일어나는까닭이바로이런 자기계발하는주체, 혹은 성과주체라고불리는 자기스스로가 자기를 착취하는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거죠. Mental diseases, neurotic diseases, and these types of diseases occur so much that we are talking about self-development subjects, or people who exploit them themselves, called sex subjects. 자 그런데 이분이내놓은 해결책은 뒷부분에 제가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지만 그렇게 명료하게 드러나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자는 여기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방식의 이야기를 해줘요. By the way, Zhang Zhi tells a slightly different way of talking about this. 다른예화를 한번 들어볼게요. Let’s listen to another episode. 한번은 장자가 제자들과 더불어서 산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At one time, the eldest son was crossing a mountain with his disciples. 산꼭대기에 올라가가지고 더우니까 잠깐 쉬고있는데 거기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있어요. I went up to the top of the mountain and took a break because it was hot, but there is a beautiful big tree there. 근데 나무꾼들이 주변에서 나무를하고있었는데 제일커다란나무는 쳐다도안보고 주변의나무들만 열심히 패는거예요 그니까 장자가 궁금해가지고 그 나무꾼을 불러요. But the woodcutters were doing wood around, but the tallest tree wasn't looking at them, and only the trees around them were eagerly cut. 어 나무꾼 양반 이렇게 큰나무는 버려두고 왜 작은나무들만 베어가슈. Uh, Mr. Woodcutter, why don't you leave these big trees and cut down only the small ones? 이거하나면은 어우저렇게 안베도 될텐데 하니까 나무꾼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One of these things would not be okay, so the woodcutter says this. 잘 보십시오. 이나무는 크기만 댑따컸지 가지도 삐뚤빼뚤하고 응, 몸통도 삐뚤빼뚤하고 가지도 복잡하고 쭉정이는 많고, 이거 기껏 잘라가지구 고생고생해서 갖고가봤자 쓸모가없습니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They say that this tree is big, but the branches are crooked. 아 그렇구나. 제자들을 딱 모아놓고 얘들아, 쓸모가없어서 이 나무가 천수를 누리고있는것이다. This tree is enjoying the heavenly waters because it is useless, kids, after gathering the disciples. 한마디또 가르침을 남깁니다. One more word is left to teach 자 그리고 산을 내려와가지고 장자가 친구집에 묵어요 그런데간만에친구를만나니까 장자의친구가얘길합니다거위를잡아서안주로만들어와라. 그랫더니그시동이 날이 거위가 두마린데요, 하나는잘울고 하나는 울지못합니다. 어느놈을 잡을까요?하니까울지못하는놈을 잡아라, 자 고걸 가만히듣고있던제자가운데 한명이 논리적인혼란에 빠졌습니다. 자 산속에있던 나무는쓸모가없기때문에 오래살았는데 이집에내려와보니까 어떤 거위가 울지못하기때문에 빨리죽게됐단말이죠. Now, because the trees in the mountains are useless, they lived a long time, but when they came down to this house, some goose couldn't cry, so they died quickly. 즉일반화시키면그러니까 무용한거위는 죽었고, 유용한거위는 살아남았더라,이렇게일반화시킬수가있지않습니까. In other words, if you generalize it, the useless goose died, and the useful goose survived. 이게내내고민이됐는지 그다음날아침에 장자가인제 혼자서산책을하면서 고민을하고있는데 제자가슬그머니다가옵니다. The next morning, the next morning, the eldest son is struggling while taking a walk alone, but the disciple slowly comes. 선생님, 아니어제산위에서는 쓸모가없었기때문에 나무가오래살았다라고하셨지않습니까 그런데 이집에내려와보니까 울지못하기때문에그거위가 빨리죽지않았습니까 도대체 유용한것, 그리고 무용한것, 이둘가운데어느것이진짜중요한겁니까? 당신의입장을 좀 정해서 얘길해보시죠. 하니까장자가 그 평소에 구라로 막 돌려서얘기를하더니만 결국에이렇게얘기를 합니다. 나는 쓸모있는것과 쓸모없는것의 사이에 처하겠다. 무슨말인가요? 장자의 글이 대게 이런식입니다 그리고뒤에가면은 알수없는도가어쩌구저쩌구하는얘기가 많이 나와요 그런얘기는 안읽어도 돼요.

자, 이제 장자의 논법이 그렇습니다. 도가나오는얘기들이 핵심을찌르는얘기들이 나올때도 있지만, 요게 핵심이에요. 쓸모 없는, 쓸모있는것과 쓸모없는것의 사이에 처하겠다. 자이게무슨얘기냐하면 장자가 얘기하는 용이라고하는것의 의미를 이해해야지만 우리는 그얘기를 파악할수가 있습니다. 자우리는 쓸모있다고하는것쓸모있다라고하는것 이때쓸모있다라고하는것을 사회적인용어로표현하면은 노동의능력이고 업무수행의 능력입니다. 자 장자가살았던춘추전국시대 특히전국시대에 재주가많은사람 유용한사람이라고하는것은 장군이되거나문사가되거나그래서 행정서류를잘쓸수있는사람 사람들을 잘관리하는사람 타고난 무용이있고 지휘력이있어서 장군이 되가지고 적군과 싸워서 승리를이끌어낼수있는 그런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능력이탁월하다라고하는것은 고속으로 승진할수있는 걸로 이어지기도하죠. 그런데, 제가 주로 듣기에 90년대부터 우리사회에서 그런일들이 일어나기시작했는데 40대의 남편들이 갑자기 픽픽쓰러져서 죽는일들이 생겼습니다. 80년대까지는 제가과로사라고하는용어를 별로못들어본것같애요. 그런데 예컨대 80년대까지만하더라도 노동하시던분들이 뭐 기계에 휘말려가지고 손이잘리고발이잘리고하는 이런 산업재해는 많이들어봤어도 사무실에 앉아서일하던분들이 갑자기심장이멈춰가지고 죽는 이런돌연사얘긴 별로 못들어봤거든요. 자 고런얘기들가만생각해보시면 이게무슨얘기인지가 쉽게떠오르실거예요. 자. 장자에보면은 크게쓰는법이라고하는 이게인제아주그유명한 무하유지향이라고하는 마을이나오는부분인데 자거기에 자 장자는 텍스트에서 해시라고하는 사람과 주로많은대화를 나누죠, 자 예를들면은 요 대화가나오기 바로앞장면에는 무슨얘기가나오냐하면 어떤사람이 손안트게하는약을 만드는비법을갖고있어가지고 내내 세탁소를 하고있엇는데 지나가던나그네가 그약만드는비방을 사가지고 당시전쟁을치루고있던 오나라월나라 한나라로가가지구 겨울에전쟁을벌여서 그 손안트는약으로 군사들을손안트게끔해가지고 전쟁을 큰 승리로 이끌었다. 그래서 손 안트는약을만드는비법은 똑같은데 어떤사람은 겨우천금벌어가지고 떼돈한번은 약간벌었지만 계속세탁소일을하며 살은방면에 어떤사람은 장군이되고장관이되고 대부라고하는벼슬까지올라가서 떵떵거리며출세하는사람이됐다, 이게 크게쓰는법 어떻게 쓰느냐의 차이다 라고 얘길 합니다. 그리고나서 고다음번에이어지는얘기가 해시가 나에게 커다란나무가있는데 아까 장자가 산속에있던 그우람한나무와같은종륩니다 이게 도무지 쓸모가없는거예요. 해시가 한탄을 하니까 장자가 이렇게 얘길 합니다. 살쾡이를 본일이 있을거다.요놈은몸을바짝낮추고엎드려서 나와서노는작은짐승들을노리고 또먹이를찾아서 동쪽서쪽을 이리뛰고저리뛰면서 높고낮은데를 가리지않는다. 그러다가덫에걸리기도하고 그물에걸려죽기도한다. 뭐이런정도 저런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얘길 합니다. 그 나무의 쓸모없음이 걱정이 된다면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마을, 혹은 어디에도 없는 마을, 이 무하유지향이나 광막지하,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다 심어놓고선 그옆에서 자유롭게 거닐면서 아무하는 일 없이 지내고, 그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낮잠이라도 자는것이 좋지않겠는가. 자 여기나오는 표현이 바로 무위라고 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가흔히 알고있는무위개념은 실제노자나 장자라고하는책에서는 거의 안쓰여요. 쓰이지만 다른의미로 쓰입니다. 요기서 나오는, 자연과합일되어서 아주여유롭고 편한하고소박한어떤삶의방식을 뜻하는말로 요게 나와요. 몇번안되는실제용롑니다. 그런데, 고다음에나오는 문장이 재밌습니다. 이 큰나무는 도끼에 잘릴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칠자가 없을것이니 쓸모가없긴하지만 괴로울것도 없다. 요얘길 합니다.

자 지금 요얘기가 무슨얘긴지를 한번 가만히 생각해보셔야되는데 장자가 이 얘기를 했던 때를 생각하면서 보셔야 됩니다. 자 장자가 이런얘길 할때 자, 서양이나동양이나 마찬가지로어떤사상가가 원숙한 자기의 사상을 펼치는때는 40대에 해당합니다. 자, 조선시대에 과거에 시험을봤던사람들이 급제하는때가 30이후예요. 물론우리가알고있는율곡이라던가주희라던가이런탁월한사람들은 17세18세25세이렇게급제하지만 그거 달달외워야되고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되거든요. 30대후반에 보통 과거에급제를합니다. 게 싸잡아서 얘기할순 없어요. 그리고 로마에서는 집정관이라고하는 행정관에 오를수있는 나이의 자격조건이 40세였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30세에 호민관이되고, 그리고나서 집정관으로 건너갔죠. 그니까 야료를 부린거예요. 빨리 뭔가 되고싶어가지고. 자 그런데 여기 나와있는 묘사를그대로한번보세요. 제가 아무도없는들판에다가 나무를심어놓고 그밑을 유유자적하면서 어슬렁거리면서 낮잠을자면은 집사람이쫓아와가지고 여보!!!! 돈벌어와!! 하면서 부릅니다. 이게전국시대예요. 자, 이게 저는 머릿속에서 그려봤어요. 어떤한 40대된 남자가 처자식이있겠죠 그리고농사를짓고있을겁니다 그런데그가 자기논밭에서 열심히일하다가 한낮의 뙤약볕을 피해서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잔고 쉰다라고 하는것은 아주평범한 일상에 지나지않습니다. 이상적인모습이랑 전혀 상관이 없어요. 근데이게왜이상적인모습으로 묘사가 되느냐, 그런 인간이 드물었기때문이죠. 늘 전쟁이있던 시댑니다. 전쟁이 있던시대. 그러니까 40대의남자라고 하는것은 전쟁에서는 가장능력이 탁월한 경험많은 백전노장들을 가르켜요. 이렇게 생각하면은 지금 장자가 하고있는얘기는 아주 단순한겁니다. 그밑에 이 나무는쓸모가없긴하지만 괴로울것도없다, 무슨얘깁니까. 가만히 살고있는데 나를데려다가 전쟁터에 데려다가 가서싸우다가 죽게만드는 이런일이 없는 상태가 자기에게 중요한거예요. 즉 여기서, 진짜 크게 쓰는법 이라고하는것은 뭘의미하는거냐면 제가아까 용의역설이란걸 얘기했죠, 내가가지고있는능력이라고 하는거는 우리는 우리가기르는거지만 사실은내게 아니라고했습니다. 나의능력은 내가쓸수있는게아니에요. 다른사람이 쓰는겁니다. 그럼 내가 쓸수있는거는? 딱 하나죠. 나의 생명입니다. 나의 삶이죠. 근데, 40대의 누군가가 열심히 일을하다가 초고속 승진을 해가지고 40대중반에 이사가됐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심장이 멈춰서 죽었다, 라고하는것은 뭘의미하는겁니까. 유용하다라고하는것하고 무용하다라고하는것을 역치시켜보세요. 즉 내 생명은 여기에 속하는거 아닙니까. 그렇죠? 유용하다라고 하는것은 내게 아녜요. 상대방이 판단하는겁니다 사회가 요구하는거예요. 국가가 부르는거고. 그러니까 내가 늘으는 능력이라고 하는것은, 마치 그것이 나의 삶을 좋게 바꿀수있는 그무엇인것처럼 생각을 하지만 결국은 그 유용함때문에 무용하다라고 아무도 나의 생명을 돌봐주지 않습니다. 이거는 오로지 나만돌볼수잇는거에요. 그러니까 무용한것 자체가 쓸모가있다라고 하는말에는 너에게 가장 소중한것은 너의 생명이다라고하는 뜻이 들어가있는겁니다. 그거를 실제로 잘 기르고 잘 쓰는거야말로 진정으로 크게쓰는거다, 라고 장자는 얘기하는거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음악)

안녕하세요, 청년논객 노정태입니다. 강중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오종석. 이 진보 논객들과 함께 살아온 우리의 한 시절. 우리가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그 시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보고자 책을 펴냈습니다. ‘논객시대'. 인문, 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논객 총정리. 반비에서 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폭력을 넘어서' 오창익입니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를 권해드립니다. 국가는 신성한 존재일까요? 국가의 정책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될까요? 국가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과 불의를 넘어서려는 뜻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그 답을 줍니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를 보십시오. ‘기억하라 연대하라'와 함께 공권력의 의미, 사람다운 삶의 의미를 찾길 바랍니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 삼인 출판사.

시사통의 편집 위원이 되어주세요. 시사통은 애청자 여러분의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시사통 홈페이지 sisatong.net에 들어오셔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자 요얘기는 저도 이따가 좀생각을 많이하게됐던 구절인데요 자 공문헌이란 사람이 우사라고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이렇게 말을합니다 이사람이도대체누군가 어찌하여 발이 하나뿐인가 하늘이그렇게한것인가 사람이 그렇게 한것인가. 자 장자에서는 얘기를 돌려치면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요기에 핵심이뭐냐면 우사라고하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오른쪽우자에다가 사, 군대란 뜻입니다. 좌사우사, 즉 우장군에해당되는뜻입니다 즉이는 고위군지휘관이었다는걸알수있습니다 그런데이사람이다리가하나가됐어요 왜, 형벌을 받았으니까. 그러니까군작전을수행하다가 졌겠죠 그래서벌받아쫒겨난거예요 그런데우사가이렇게얘길합니다 하늘이이렇게한거지사람이이렇게한것이아니다, 자이게재밌습니다이게 이중적인의미를 갖고있어요. 우리는이게천인하면 하늘자연과인간 이렇게해석을하지않습니까 그게아니라 하늘천차는 중의적인 뜻을갖고있습니다. 하늘이누굽니까?왕이거든요. 그렇죠? 이사람들에겐대단히자연스러운현상이고우리동양인들에겐익숙한표현방식입니다 하지만여기서는인간을대비시킴으로써마치그것이아닌것처럼 표현을가다듬어주고있습니다 왜, 직설적으로 이야기를하면 죽습니다. 자그런데, 사람의용모는 다 하늘이부여한거다 이로써 내가외발이된것은 하늘이그렇게한거지 사람이그렇게한것이아님을 알수있다 자 그런데이뒤에붙이는얘기가이사람이진짜하고싶은얘기에요 연못가에사는꿩은 열걸음걸어서한입모이를쪼아먹고백걸음걸어가서한번물한모금마신다 하지만 새장속에 갖혀서길러지기를바라지는 않는다. 왜냐, 정신은 비록 몸이왕성하다할지라도 그것을 좋아하지않기때문이다. 자지금자기가 장군으로써생활할때의이야기를빗대어얘기하고있습니다 내가꼬박꼬박주는모이꼬박꼬박주는물에 아무걱정없이 배부르게 깃털뽐내면서 잘살았지만 즉 영화를 부귀영화를 잘누리며살았지만뭡니까 즉 몸은 좋다는거죠 하지만 내정신은 몸이 그렇게 건장하고 튼튼하게 사는것도 별로달갑지 않았다, 이거쉽게말하면 오늘날로이야기하면은 스트레스상태에 있었다는겁니다. 지독할정도의 스트레스 상태, 자 이렇게본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장자의 자유, 이거는우리가근대를통해서배웠던 정치적인 자유 이런고단수의자유가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차원의 자기생명을보존하고 유지하고 부양할수있고 그것자체마저도 다행스럽게간섭받지않으면 다행이다라고하는 최소한에 관련된이야기를하고있습니다.

자그런데 장자는 아쉽게도 적극적인방식의 해결책을이야기하진 않습니다. 노자도마찬가지에요. 그런데제가노자를 왜하필이면 장자얘기를계속해놓고나서 노자의처방을얘기하느냐 제가얼마전에읽었던글가운데서 노자를참재미나게해석하는 한스게오르그멜러라고하는 학자의글을 봤기때문에 제가 이렇게 얘길 합니다. 자, 그래서 이사람은 뭐라고 얘길 하냐면 인간이 가지고, 결국은 남보다더잘살고싶고 남보다뭔가성취하고싶고 이 비교적인차원에서뭔가더라고하는생각때문에그런건데 이것을이게 욕망의문제지않습니까이욕망에대해서 해결하는방법, 서구에서도당얀 여러가지얘기들나오지만 기본적으로서양의사고방식과 동아시아의사고방식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이 멜러라는 학자가 이런얘길합니다 자 통상적으로그전에 서구사회에서는 욕망에 대해서 욕망은 신체로부터 오는것이고 기본적으로 악의요소를 갖고있는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욕망은 결코악이아닙니다. 그욕구라고하는것은 없앨수있는것이 전혀 아니고 금지되어서도 안되는것이고 자연스러운것이다라고 봅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는 금욕이라고하는표현자체가없습니다. 욕구는그자체로선도아니고 악도아녜요. 다만 절욕, 절제가 필요한 그 무엇이라고만 얘기를 합니다. 자이게그동안 노자를 설명했던 중요한 방식가운데 하나예요. 그런데, 이 한스게오르그멜러라고하는사람이 뭐라고얘길하느냐 그거는 노자의생각과조금다르다, 노자는 역설적이게도 욕망을 수행하는것에 근거를두고있다, 자 무슨얘기냐 욕망은 기본적이고일반적인 만족의 상태를야기하는것으로 오히려 막을수있다. 즉 욕망이라고하는것은 지연시키거나 절제되거나 할것이아니라 즉각적인 만족을줌으로써오히려 욕망자체가 사라지게만드는방식으로 해결을해야된다라고얘기를합니다. 그래서노자가제안하는방식은뭐냐 만족을극대화시키는방식의처방을주고있다라고얘길합니다.

그게제가묘하게도 엊그저께겪었어요. 저희애가 스테이크를그렇게좋아합니다. 그런데약간그렇게통통해져가지고 조금계속이렇게되면은 비만이만성화될가능성이있어가지고 운동도하고해서 좀 많이 좋아졌어요. 그러니까 본인도좀 들먹을라고 노력을 해요. 그런데 그날따라제집사람이 실수로 너먹고싶은거사줄께! 라고했는데아이가 스테이크?했는데 와이프가 응 하고 못듣고 응 해버린거예요. 그러니까우리애는스테이크를먹을수있다는 허락받았다라고하는 엄청난 이 기대에부풀어가지고 그런데 약속안지키면 안되잖아요. 그랬는데 그날은 인제우리애한테 뭘사줄려고갔다가 이게계속쇼핑이 제대로된 그게 없어요. 그래가지고 자꾸 늦어졌어요. 아, 스테이크먹으러가야되는데 가야되는데 해가지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야일단 네가 배가고프니까 간단한거를 조금만 먹고, 그리고 나중에 저녁에 스테이크를 먹으러가자. 그러니까 얘가 오케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걸 먹었는데 얘가 조금 많이먹었어요. 그러니까 야, 스테이크먹으러가야지, 했더니 그때 뭘먹었더라? 뭐김밥을먹었나 뭐 그런걸먹은것 같아요. 그랬더니 아빠, 별로배가안고파. 다음에먹자하고 넘어가더라구요. 노자는 오히려 즉각적인 만족을 통해서 욕망자체를 사라지게만든다, 근데이때그거를표현하는말이 재미나게도 또 무자가 나옵니다. 이게 노자에서 쓰는 말, 장자에서 쓰는말도그렇고 이게 있다없다라고하는 존재나 소재의문제가아니라아까 무용, 저게 니께내꺼냐하는문제랑도걸려서있지않습니까 그러니까무용이라고하는것은뭐냐하면 내가 다른사람이나를쓰느냐마느냐에따라서 결정될수있다라고하는 그논리에 벗어나있다, 그럴때 니가 진짜 스스로를쓸수있다라고하는 뜻으로 해석할수있습니다. 즉, 이무자는 없다의뜻이아니라 그 무엇무엇에의해서 내가 구속당해있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무욕이라고하는것은 내가욕망이없는상태가아니라 내가지니고있는욕망에의해서 내가 휘둘리지않는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게재미난 표현이에요. 그러니까무욕이라고하는것은인간의욕구는 없을수가없습니다. 생물체로써살아있는한 생명체로써 살아있는한 더군다나 사회적존재로써살아가는한 성취하고싶고 갖고싶고누리고싶고 다있습니다. 하지만어디까지냐, 이어디까지냐라고하는부분이 바로 그사회가 어떤 개인들에의해서만들어지는것이 아니라는거죠. 그사회적인차원에서만들어지는욕망의 층위들을 어떻게우리가 구현하고 합의해내고결정하느냐에따라서 개개인들이 노력하는 방향은 굉장히 달라질겁니다.

모든사람들이 하나의기업만바라보고 난 저회사를들어가야해 모든사람들이 난 저대학을가야돼 난쟤와같은아이돌스타가될거야.라고하는기준으로볼때 그욕구는 만족되기는 커녕 끊임없이지연됨으로써 결국은 과행결핍의 삶을 살고있는거죠. 전혀행복을 느낄수가 없습니다. 어찌본다면 우리는 그때그때 즉각적인 만족을통해서 욕구라고하는것이 불필요하게 확대되거나커지거나함으로써 오히려내가욕망에조종당하는 노예가되지않도록 나를만들어내는것도 필요하다. 바로노자라고하는책속에들어있는 논리를가만히보면은 바로만족의기술을 이야기하고있고 욕망은 만족시켜줌을통해서 문제를근원적으로해결할수있다. 물론이것은지속적인과정을 의미하는것이라고이야길하고있습니다. 제가봤던 노자에관한 해석가운데 상당히세련되면서 상당히재미나고도 현대인들에게도상당히 개개인들에게 적절하게의미를주는말인것같애요. 그래서이피로사회, 이피로사회 자기길을 개발한다, 너무피곤하게살지말고 어찌본다면우리는 성취를위해서 성과를위해서 능력개발을위해서 자기자신을피로하게만들것이아니라 이것이자발적이든타의에의한것이든간에 개개인들의행복을누리기위해 필요한거는진짜 내가어떤방식으로 어떻게만족을느끼느냐 자신의 만족감을 효율적으로 최대화시키는 그런방법들을 개발하는것이필요하지않은가 그래서그게 이렇게 멜러는 만족의 최적화를 노자가 말했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자 구조적인문제까지 다 해결할수있는것은 아니겠지만적어도 개개인들에게주는의미는 어느정도있을것같습니다. 자 최근 우리사회에서 안녕들하십니까라고하는 표현은우리사회가 만족하지못하다라고 하는거죠. 이제는 그런 부정적인것을넘어서서 이제는만족하십니까? 라고 물을수 있는사회가된다면 훨씬 우리사회가 더 한걸음 나아진삶을 살고있다라고 봐도되지않을까 하는생각이 듭니다. 자, 이 피로하여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건지, 아니면 진짜로제가 썰론은 신비한처방전이라고 얘기했지만 신비한건지는 모르겠어요 왜냐면 삶에는 신비가 없기때문에. 결국은 그 신비의 베일을 벗겨내고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나를 만족시키고 나의행복을 증진시킬수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것이 어떻게 본다면 개개인들에게필요한 삶의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