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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눈물의 고백, 열 네 번째-182

눈물의 고백, 열 네 번째-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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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열 네 번째

이제부터 임무 수행이 시작되려는 마당에 김승일의 침통한 표정은 나의 공작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었다.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여 귀빈실에서 대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공항 접대원 처녀가 따끈한 홍차를 내왔다. 얼마 뒤 부부장이 우리를 전송하기 위해 나타났다. 부부장은 다시 한 번 부부장과 똑같은 당부를 하였다. 다른 승객이 다 비행기에 오른 뒤 우리 네 사람은 귀빈실을 나와 다른 통로를 이용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 조선 비행기는 평양- 모스크바- 동베를린으로 가는 첫 개통 비행기여서 항공권을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최 지도원이 말했다.

비행기에는 우리 조선인은 몇 명 되지 않고 도이췰란드인들로 붐볐다. 우리는 일반석에 앉았는데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은 앞에서 셋째 줄에 나란히 앉았고 두 칸 떨어져 김승일이 앉았으며 그 뒤에 내가 앉았다. 나는 김승일과 떨어져 앉은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그가 계속 짜증과 투정을 부리고 항상 시큰둥해 있으니 나도 그가 미워져서 가능한 한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는 이륙하려고 거친 소리를 내며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깊은 심호흡을 한 번 내 뱉었다. 평양을 떠나는 일에 제법 익숙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생전 처음 떠나 보는 사람처럼 가슴이 울렁울렁 거렸다. 신나는 설레임은 결코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 성장하고 부모형제, 그리고 같이 자란 동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땅, 평양. 그 땅을 떠나려는 순간 코끝이 찡한 감회가 어려왔다. 내가 다시 이 땅을 밟을 수 있을지......언제나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나는 날아오르기 시작한 비행기 밖의 평양을 향해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안녕, 평양. 비행기가 이륙하자 안내원들이 ‘진달래표' 껌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껌에 늘어 붙은 포장종이를 손톱으로 긁어 떼어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비행기 첫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탑승객들에게 트럼프, 열쇠고리, 지갑 등을 기념품으로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앞에서부터 선물차를 밀고 오는데 외국인들이 서로 많이 주워 가려고 난리였다. 뒤에 가만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나한테까지는 선물이 돌아오지 않았다. 최 지도원이 자신의 몫으로 받은 돈지갑을 나에게 주었다. 내 좌석 바로 앞에 김승일과 나란히 앉아 있던 중년의 조선남자가 김승일에게 나에 관해서 묻고 있었다.

“구라파에서 열리는 과학자 대회에 가는 중입니다. 이젠 늙어서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 막내딸을 데리고 갑니다.”

김승일은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그 남자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다른 북한 여성과는 전혀 딴판으로 차린 내 모습에 약간 위축이 됐는지 그 뒤부터는 김승일에게 공손히 대했다. 나는 그때 일본 여성으로 위장하기 위해 화장도 짙게 하였고 옷도 고급스러운 것을 입고 있었다. 거기다가 북에서는 딸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하는 신분 정도면 김일성의 친척 정도는 되어야 가능했다. 일반 인민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김승일과 나의 신분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눈치였다.

지난 1984년도 해외여행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비행 시간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임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잡지책을 뒤적거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해도 정신은 점점 말똥말똥 해졌다.

비행기는 캄캄한 밤에 ‘이르쯔크' 라는 소련 땅에 급유하기 위해 착륙했다. 착륙 직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이르쯔크 시내는 불빛만 반짝거릴 뿐 조용했다. 11월 중순인데도 이곳에는 벌써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눈물의 고백, 열 네 번째-182 Confessions of Tears, Fourteenth -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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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열 네 번째

이제부터 임무 수행이 시작되려는 마당에 김승일의 침통한 표정은 나의 공작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었다.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여 귀빈실에서 대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공항 접대원 처녀가 따끈한 홍차를 내왔다. 얼마 뒤 부부장이 우리를 전송하기 위해 나타났다. 부부장은 다시 한 번 부부장과 똑같은 당부를 하였다. 다른 승객이 다 비행기에 오른 뒤 우리 네 사람은 귀빈실을 나와 다른 통로를 이용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 조선 비행기는 평양- 모스크바- 동베를린으로 가는 첫 개통 비행기여서 항공권을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최 지도원이 말했다.

비행기에는 우리 조선인은 몇 명 되지 않고 도이췰란드인들로 붐볐다. 우리는 일반석에 앉았는데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은 앞에서 셋째 줄에 나란히 앉았고 두 칸 떨어져 김승일이 앉았으며 그 뒤에 내가 앉았다. 나는 김승일과 떨어져 앉은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그가 계속 짜증과 투정을 부리고 항상 시큰둥해 있으니 나도 그가 미워져서 가능한 한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는 이륙하려고 거친 소리를 내며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깊은 심호흡을 한 번 내 뱉었다. 평양을 떠나는 일에 제법 익숙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생전 처음 떠나 보는 사람처럼 가슴이 울렁울렁 거렸다. 신나는 설레임은 결코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 성장하고 부모형제, 그리고 같이 자란 동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땅, 평양. 그 땅을 떠나려는 순간 코끝이 찡한 감회가 어려왔다. 내가 다시 이 땅을 밟을 수 있을지......언제나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나는 날아오르기 시작한 비행기 밖의 평양을 향해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안녕, 평양. 비행기가 이륙하자 안내원들이 ‘진달래표' 껌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껌에 늘어 붙은 포장종이를 손톱으로 긁어 떼어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비행기 첫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탑승객들에게 트럼프, 열쇠고리, 지갑 등을 기념품으로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앞에서부터 선물차를 밀고 오는데 외국인들이 서로 많이 주워 가려고 난리였다. 뒤에 가만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나한테까지는 선물이 돌아오지 않았다. 최 지도원이 자신의 몫으로 받은 돈지갑을 나에게 주었다. 내 좌석 바로 앞에 김승일과 나란히 앉아 있던 중년의 조선남자가 김승일에게 나에 관해서 묻고 있었다.

“구라파에서 열리는 과학자 대회에 가는 중입니다. 이젠 늙어서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 막내딸을 데리고 갑니다.”

김승일은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그 남자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다른 북한 여성과는 전혀 딴판으로 차린 내 모습에 약간 위축이 됐는지 그 뒤부터는 김승일에게 공손히 대했다. 나는 그때 일본 여성으로 위장하기 위해 화장도 짙게 하였고 옷도 고급스러운 것을 입고 있었다. 거기다가 북에서는 딸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하는 신분 정도면 김일성의 친척 정도는 되어야 가능했다. 일반 인민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김승일과 나의 신분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눈치였다.

지난 1984년도 해외여행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비행 시간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임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잡지책을 뒤적거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해도 정신은 점점 말똥말똥 해졌다.

비행기는 캄캄한 밤에 ‘이르쯔크' 라는 소련 땅에 급유하기 위해 착륙했다. 착륙 직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이르쯔크 시내는 불빛만 반짝거릴 뿐 조용했다. 11월 중순인데도 이곳에는 벌써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