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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C, 최룡해를 철직시켜라

최룡해를 철직시켜라

지난 4월11일과 13일에 열린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보면서 우리 인민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최룡해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그리고 국방위원회 위원자리까지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또 최룡해는 지난 4월 초, 조선인민군 차수 칭호와 함께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감투까지 뒤집어썼습니다. 권력지반이 약한 김정은이 당을 통해 독재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는 지금, 최룡해가 최고 수뇌부 집단인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도 되고 군대의 핵심 요직까지 장악하게 됐습니다.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기둥으로 떠오른 최룡해를 보면서 정말 화가 치솟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최룡해가 누구입니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우리 인민들이 굶어죽어 가고 있을 때 부화방탕한 생활로 쫓겨난 아주 너절한 인간입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최룡해는 이전 인민무력부장이였던 최현의 막내아들입니다. 최현은 김정일이 삼촌 김영주와 권력암투를 벌릴 때 김정일을 지지해, 죽을 때까지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최룡해도 이런 아버지의 덕으로 제2의 로동당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청년동맹 제1비서가 됐고 10여 년간 온갖 전횡을 일삼아 왔습니다.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최룡해가 1998년 해임철직된 것은 그의 부화방탕한 생활 때문이었다는 것은 다들 잘 아는 사실입니다. 당시 청년동맹은 13차 세계 청년학생 축전을 계기로 ‘은별무역회사' 같은 독자적인 외화벌이기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모두 최룡해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최룡해는 이 돈을 가지고 김정일처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습니다. 특히 공화국 전 지역에서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인 1995년부터 1997년까지도 최룡해의 부화방탕한 생활은 계속됐습니다.

최룡해는 김정일이 전국에서 미녀들을 뽑아 기쁨조를 선발하는 것을 배워, 청년동맹예술단과 전국 청년들 중에서 곱다는 처녀를 뽑아 자신의 기쁨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들 녀성들을 끼고 다니면서 청년동맹 간부들과 집단적으로 부화를 했는가 하면, 자기의 만족을 위해서 미부리 중주단 처녀들의 이빨을 다 뽑고 틀이까지 해 넣으면서 온갖 란잡한 짓을 벌렸습니다. 최룡해가 이들 처녀들의 이빨 한 개를 뽑는 값으로 100딸라씩을 주었다고 하니 그의 부화방탕한 생활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최룡해의 이 같은 생활은 소문으로 퍼져나가서 결국 보위사령부의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최룡해의 집을 수색해보니 뢰물로 받은 수백만 딸라와 청소용 로봇까지 발견됐습니다. 조사를 했던 보위사령부 요원들조차 최룡해의 호화향락 생활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최룡해는 1998년에 해임 철직됐고, 청년동맹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습니다. 청년동맹 간부 수십 명이 처형되고, 최룡해의 기쁨조로 있던 예술단 처녀들은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수성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최룡해는 “백두산 줄기”라는 조상 덕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한때 자강도 어느 산골에 림산 사업소에 가서 혁명화 하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던 최룡해는 김정일이 다시 불러들여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초급당 비서로 일하다가 2003년에 드디어 중앙당 총무부 부부장, 2006년에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가 되면서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더니, 올해 당과 군대의 핵심 직책까지 거머쥐게 됐습니다.

김정일이 최룡해를 불러들인 것은 최룡해가 아버지 최현처럼 김정은의 권력을 뒷받침해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김정은도 그런 최룡해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룡해는 고난의 행군 시절 부화방탕한 생활로 혁명과 인민의 적으로 락인 찍힌 사람입니다. 이런 인간을 누가 믿고 따르겠으며, 그의 지도를 받는 당 조직과 군대 조직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이 최룡해를 철직시키지 않는다면 그 또한 너절한 인간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최룡해를 철직시켜라 Iron Choi Ryong-hae

지난 4월11일과 13일에 열린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보면서 우리 인민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Watching the Party Representatives and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held on April 11th and 13th, our people doubted their ears. 최룡해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그리고 국방위원회 위원자리까지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또 최룡해는 지난 4월 초, 조선인민군 차수 칭호와 함께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감투까지 뒤집어썼습니다. In addition, in early April, Choe Ryong-hae wore the title of deputy commander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even the head of the General Political Bureau of the Korean People's Army. 권력지반이 약한 김정은이 당을 통해 독재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는 지금, 최룡해가 최고 수뇌부 집단인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도 되고 군대의 핵심 요직까지 장악하게 됐습니다.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기둥으로 떠오른 최룡해를 보면서 정말 화가 치솟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최룡해가 누구입니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우리 인민들이 굶어죽어 가고 있을 때 부화방탕한 생활로 쫓겨난 아주 너절한 인간입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최룡해는 이전 인민무력부장이였던 최현의 막내아들입니다. As everyone knows, Choe Ryong-hae is the youngest son of Choi Hyeon, the former head of the People's Armed Forces. 최현은 김정일이 삼촌 김영주와 권력암투를 벌릴 때 김정일을 지지해, 죽을 때까지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최룡해도 이런 아버지의 덕으로 제2의 로동당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청년동맹 제1비서가 됐고 10여 년간 온갖 전횡을 일삼아 왔습니다.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최룡해가 1998년 해임철직된 것은 그의 부화방탕한 생활 때문이었다는 것은 다들 잘 아는 사실입니다. 당시 청년동맹은 13차 세계 청년학생 축전을 계기로 ‘은별무역회사' 같은 독자적인 외화벌이기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모두 최룡해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At that time, the Youth League had its own foreign currency earning institution such as 'Eunbyeol Trading Company' on the occasion of the 13th World Youth Day Festival, and all the money it earned went into Choi Ryong-hae's pocket. 최룡해는 이 돈을 가지고 김정일처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습니다. 특히 공화국 전 지역에서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인 1995년부터 1997년까지도 최룡해의 부화방탕한 생활은 계속됐습니다.

최룡해는 김정일이 전국에서 미녀들을 뽑아 기쁨조를 선발하는 것을 배워, 청년동맹예술단과 전국 청년들 중에서 곱다는 처녀를 뽑아 자신의 기쁨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들 녀성들을 끼고 다니면서 청년동맹 간부들과 집단적으로 부화를 했는가 하면, 자기의 만족을 위해서 미부리 중주단 처녀들의 이빨을 다 뽑고 틀이까지 해 넣으면서 온갖 란잡한 짓을 벌렸습니다. 최룡해가 이들 처녀들의 이빨 한 개를 뽑는 값으로 100딸라씩을 주었다고 하니 그의 부화방탕한 생활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최룡해의 이 같은 생활은 소문으로 퍼져나가서 결국 보위사령부의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최룡해의 집을 수색해보니 뢰물로 받은 수백만 딸라와 청소용 로봇까지 발견됐습니다. 조사를 했던 보위사령부 요원들조차 최룡해의 호화향락 생활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최룡해는 1998년에 해임 철직됐고, 청년동맹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습니다. 청년동맹 간부 수십 명이 처형되고, 최룡해의 기쁨조로 있던 예술단 처녀들은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수성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최룡해는 “백두산 줄기”라는 조상 덕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However, Choe Ryong-hae was barely able to survive thanks to his ancestor, the “stem of Mt. Baekdu.”

한때 자강도 어느 산골에 림산 사업소에 가서 혁명화 하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던 최룡해는 김정일이 다시 불러들여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초급당 비서로 일하다가 2003년에 드디어 중앙당 총무부 부부장, 2006년에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가 되면서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더니, 올해 당과 군대의 핵심 직책까지 거머쥐게 됐습니다.

김정일이 최룡해를 불러들인 것은 최룡해가 아버지 최현처럼 김정은의 권력을 뒷받침해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김정은도 그런 최룡해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룡해는 고난의 행군 시절 부화방탕한 생활로 혁명과 인민의 적으로 락인 찍힌 사람입니다. 이런 인간을 누가 믿고 따르겠으며, 그의 지도를 받는 당 조직과 군대 조직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이 최룡해를 철직시키지 않는다면 그 또한 너절한 인간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