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 김동리,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CC) ㅣ책읽어주는 여자 (1)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 읽어 드릴 이야기는 1961년 사상계에 발표된
김동리의 등신불 입니다
등신불은 양자강 북쪽에 있는 정원사의
금불각 속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의 이름이다
등신금불 또는 그냥 금불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이 등신불
등신금불로 불리워지는 불상에 대해
보고 듣고 한 그대로를 여기다 적으려 하거니와
그보다 먼저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정원사라는
먼 이역의 고찰을 찾게 되었었는지
그것부터 이야기 해야겠다
내가 일본의 대정대학 재학 중에 학병으로 끌려 나간 것은
일구사삼년 이른 여름 내 나이 스물 세 살 나던 때였다
내가 소속된 부대는 북경에서 서주를 거쳐 남경에 도착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부대가 당도할 때까지 거기서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엔 주둔이라기보다 대기에 속하는 편이었으나
다음 부대의 도착이 예상보다 늦어지자
나중에는 교체부대가 당도할 때까지 주둔군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대체로
인도지나나 인도네시아 방면으로가게 된다는 것을 어림으로 짐작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오래 남경에 머물면 머물수록
그만치 우리의 목숨이 더 연장되는 거와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교체부대가 하루라도 더 늦게 와 주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빌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실상은 그냥 빌고 있는 심정만도 아니었다
더 나아가서 이 기회에 기어이 나는 나의 목숨을 건져 내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이런 기회를 위하여 미리 약간의 준비까지 해 두었던 것이다 그것은 중국의 불교 학자로서 일본에와 유학을 하고 돌아 간 특히 대정대학 출신으로 사람들의 명단을 조사해 둔 일이 있었다
나는 숨겨둔 작은 쪽지에서 남경 진기수란 이름을 발견했을 때
야릇한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며 머리 속까지 횡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낯선 이역의 도시에서
더구나 나 같은 일본군에 소속된 한국 출신 학병의 몸으로써 그를 찾고 못 찾고 하는 일이
곧 내가 죽고 사는 판가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들 그때의 그러한 용기와 지혜를 내 속에서 나는 자아내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부대가 앞으로 사흘 이내에 남경을 떠난다고 하는 그것도 확실한 정보가 아니고 누구의 입에선가 새어 나온 말이지만 조마조마한 고비에 정심원에 있는 포교사를 통하여 진기수씨가 남경 교외의 서공암이라는 작은암자에 독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내가 서공암에서 진기수씨를 찾게 된 것은 땅거미가 질 무렵 이었다 나는 그를 보자 합장을 올리며 무수히 머리를 수그림으로써 나의 절박한 사정과 그에 대한 경의를 먼저 표한 뒤 솔직하게 나의 처지와 용건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평생 처음 보는 타국 청년 그것도 적군의 군복을 입은 나에게
그러한 협조를 쉽사리 약속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의 두 눈이 약간 찡그러지며 입에서는 곧 거절의 선고가 내릴 듯한 순간 나는 미리 준비하고 갔던 흰 종이를 끄집어 내어 내 앞에 폈다 그리고는 바른편 손 식지 끝을 물어서 살을 떼어낸 다음 그 피로써 다음과 같이 썼다
원면살생 귀의불은
원컨대 살생을 면하게 하옵시며
부처님의 은혜 속에 귀의코자 하나이다
나는 이 여덟 글자의 혈서를 두손으로 받들어
그의 앞에 올린 뒤 다시 합장을했다
이것을 본 진기수씨는 분명히 얼굴 빛이 달라졌다 그것은 반드시 기쁜 빛이라 할 수는 없었으나 조금 전의 그 거절의 선고만은 가셔진 듯한 얼굴이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진기수씨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를 따라 오게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 갔다 깊숙한 골방이었다
진기수씨는 나를 그 컴컴한 골방 속에 들여 보내고 자기는 문을 닫고 도로 나가 버렸다
조금 뒤 그는 법의 한 벌을 가져와 방안으로 디밀며 이걸로 갈아 입게
하고 또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사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나의 가슴 속을 후끈하게 적셔 주는 듯 했다 내가 옷을 갈아 입고 났을 때 이번에는 또 간소한 저녁상이 디밀어졌다
나는 말없이 디밀어진 저녁상을
또한 그렇게 말없이 받아서 지체없이 다 먹어 치웠다 내가 빈 그릇을 문밖으로 내어놓자 밖에서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이내 진기수씨가 어떤 늙은 중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 분을 따라가게
소개장은 이분에게 맡겼어
큰절의 내 법사 스님한테 가는
나는 무조건 네 네 하며 곧장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를 살려 주려는 사람에게 무조건 나를 맡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길은 일본 병정들이 알지도 못하는 산속 지름길이야
한 백 리 남짓 되지만 오늘이 스무 하루니까 밤중 되면 달빛도 좀 있을 게구
그럼 불연 깊기를 나무관세음보살
그는 나를 향해 합장을 하며 머리를 수그렸다 나는 목이 콱 메어옴을 깨달았다
눈물이 핑 돈 채 나도 그를 향해 잠자코 합장을 올렸다 어둡고 험한 산길을 늙은 중 경암은 거침없이 걸었다 아무리 발에 익은 길이라 하지만
군데군데 나뭇가지가 걸리고 바닥이 패이고 돌이 솟고 게다가 굽이굽이 골짜기 계곡물이 가로지르는 우거진 수풀속의 지름길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잘 뚫고 나가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믿는 것은 젊음 하나 뿐이련만 그는 이십 리나 삼십 리를 걸어도 힘에 부치어 쉬자고 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쉴새 없이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어 가며 그의 뒤를 따랐으나 한참씩 가다 보면 어느덧 그를 어둠 속에 잃어 버리곤 했다
나는 몇 번이나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우고 돌에 채여 무릎을 깨우고 하며 대사 대사 그를 불러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경암은 혼잣말로 낮게 중얼거리며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이나
내가 가까이 가면 또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휙 돌아서서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밤중도 훨씬 넘어 조각달이 수풀사이로 비쳐 들면서 나는 비로소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경암이 제 아무리 앞에서 달린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시 그를 놓치지는 않으리라 맘속으로 다짐했다 이렇게 정세가 바뀌어졌음을 그도 느끼는지 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자 그는 나를 흘낏 돌아다보더니 한 쪽 팔을 들어 먼데를 가리키며 반원을 그어 보이고는 이백 리 라고 했다 이렇게 지름길을 가지 않고 좋은길로 돌아가면 이백 리 길이라는 뜻인 듯했다 나는 한 마디 얻어들은 중국말로 쎄 쎄 하고 장단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했다 우리가 정원사 산문 앞에 닿았을 때는 이튿날 늦은 아침녘이었다
경암은 푸른 수풀 속에 거뭇거뭇 보이는 높은 기와집들을 손가락질로 가리키며 자랑스런 얼굴로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하오 하오 를 되풀이했다 산문을 지나 정문을 들어서니 산무데기 같은 큰 다락이 정면에 버티고 섰다 현판을 쳐다보니 태허루라고 씌어 있었다 태허루 곁을 돌아 안마당 어귀에 들어서니 정면 한 가운데 높직이 앉아 있는 가장 웅장한 건물이 법당이라고 짐작이 가나 그 양 옆으로 첩첩이 가로 세로 혹은 길쭉하게 눕고 혹은 높다랗게 서고 혹은 둥실하게 앉은 무수한 집들이 모두 무슨 이름에 어떠한 구실을 하는 것들인지 첫 눈엔 그저 황홀하고 얼떨떨할 뿐이었다 경암은 나를 데리고 그 첩첩이 둘러 앉은 집들 사이를 한참 돌더니
청정실이란 조그만 현판이 붙은 조용한 집 앞에 와서 기척을 했다
방문이 열리더니 한 스무 살이나 될락말락한 젊은 중이 얼굴을 내 밀며 알은 체를 한다 둘이서 한참동안 말을 주고 받고 한 끝에 경암이 나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키가 성큼하게 커 뵈는 노승이 미소 띤 얼굴로 경암과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노승 앞에 발을 모으고 서서 정중히 합장을 올렸다 어저께 진기수씨 앞에서 연거푸 머리를 수그리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한 번만 정중하게 머리를 수그려 절을 했던 것이다
노승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자리를 가리킨 뒤 경암이 내어 드린 진기수씨의 편지를 펴 보았다 불은이로다
편지를 읽고 난 노승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그때는 알아듣지 못 했지만 나중에 가서 알고 보니 그랬다 그리고 이것도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이 노승이 두어해 전까지 이 절의 주지를 지낸 원혜대사로 진기수씨가 말한 자기의 법사 스님이란 곧 이분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원혜대사의 주선으로 그가 거처하고 있는 청정실 바로 곁의
조그만 방 한 칸을 혼자서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그 방으로 인도해 준 원혜대사의 젊은 시봉은 저와 이웃이죠
하며 희고 넓적한 이를 드러내 보이며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청운이라 부른다고 했다 나는 방 한 칸을 따로 쓰고 있었지만 결코 방안에 들어앉아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다 나를 죽을 고비에서 건져 준 진기수씨나 그의 법명은 혜운이었다 원혜대사의 은덕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결코 남의 입에 오르내릴 짓을 해서는 안되리라고 결심했다 나는 아침 일찌기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예불을 끝내면 청운과 함께 청정실 안팎과 앞뒤의 복도와 뜰을 먼지 티끌 하나 없이 쓸고 닦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스님들을 따라 산에 가 약도 캐고 식량 준비도 거들었다 이 절에서도 전쟁 관계로 식량이 딸렸으므로 산중의 스님들은 여름부터 식용이 될 만한 풀잎과 나무 뿌리 같은 것들을 캐러 산으로 가곤 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손발을 깨끗이 씻고 내 방에 끓어 앉아 불경을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청운에게 중국어를 배웠다 이것은 나의 열성에다 청운의 호의가 곁들어서 그런지 의외로 빨리 진척이 되어 사흘만에 이미 간단한 말로 물론몇 마디씩이지만 대화하는 흉내까지 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방에 혼자 있을 때라도 취침 시간 이외엔 방안에 번듯이 드러눕지 않도록 내 자신과 씨름을 했다 그렇게 버릇을 들이지 않으려고
나는 몇 번이나 내 자신에게 다짐을 놓았는지 모른다 졸음이 와서 정 견디기가 어려울 때는 밖으로 나와 어정대며 바람을 쐬곤 했다 처음엔 이렇게 막연히 어정대며 바람을 쐬던 것이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어정대지 않게 되었다 으레껀 가는 곳이 정해지게 되었다
그것은 저 금불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물론 나는 법당 구경을 먼저 했다 본존을 모셔 둔 곳이니 만큼
그 절의 풍도나 품격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라는 까닭으로서 보다도 절 구경은 으레껀 법당이 중심이라는 종래의 습관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옳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법당에서 얻은 감명은
우리 나라의 큰 절이나 일본의 그것에 견주어 그렇게 자별하다고 할 것이 없었다
기둥이 더 굵대야 그저 그렇고 불상이 더 크대야 놀랄 정도는 아니요 그 밖에 채색이나 조각에 있어서도
한국이나 일본의 그것에 비하여 더 정교한 편은 아닌 듯 했다 다만 정면 한가운데 높직이 모셔져 있는 세 위의 금불상을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힘겨룸을 시켜 본다면 한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다 더 놀라운 힘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힘 겨룸을 시켜 본다면 하는 가정에서 말한 것이지만 그네 들의 눈으로 보면 자기네의 부처님이 그만큼 더 거룩하게만 보일는지 모를 일이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위에서 말한 더 놀라운 힘이 체력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어떤 거룩한 법력이나 도력으로 비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특히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은 금불을 구경한 뒤였다 금불각 속에 모셔져 있는 등신금불을 보고 받은 깊은 감명이 그 절의 모든 것을
특히 법당에 모셔져 있는 세 위의 큰 불상을 거룩하게 느끼게 하는 어떤 압력 같은 것이 되어 나타났다고나 할까 물론 나는 청운이나 원혜대사로부터 금불각에 대하여 미리 들은 바도 없으면서
금불각이 앉은 자리라든가 그 집 구조로 보아 약간 특이한 느낌이 그 안의 등신불을 구경하기 전에 이미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법당 뒤곁에서 길 반 가량 높이의 돌계단을 올라가서
거기서부터 약 오륙십 미터 거리의 석대가 구축되고 그 석대가 곧 금불각에 이르는 길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더구나 그 석대가 똑같은 크기의 넓적넓적한 네모잽이 돌로 쌓아져 있는데 돌 위엔 보기 좋게 거뭇거뭇한 돌 옷이 입혀져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법당 뒤곁의 동북쪽 언덕을 보기 좋은 돌로 평평하게 쌓아서 석대를 만들고 그 위에 금불각을 세워 놓은 것이다
게다가 추녀와 현판을 모두 돌아가며 도금을 입히고 네 벽에 새긴 조상과 그림에 도금을 많이 써서 그야말로 밖에서는 보는 건물 그 자체부터 금빛이 현란했다 나는 본디 비단이나 종이나 나무나 쇠붙이 따위에 올린 금물이나 금박 같은 것을 웬지 거북해하는 성미라 금불각에 입혀져 있는 금빛에도
그러한 경계심과 반감 같은 것을 품고 대했지만
하여간 이렇게 석대를 쌓고 금칠을 하고 할 때는 그들로서 무엇인가 아끼고 위하는 마음의 표시를 하느라고 한 짓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아끼고 위하는 것이 보나마나 대단한 것은 아니리라고 혼자 속으로 미리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나의 과거 경험으로 본다면
이런 것은 대개 어느 대왕이나 황제의 갸륵한 뜻으로 순금을 많이 넣어서 주조한 불상이라든가 또는 어느 천자가 어느 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친히 불사를 일으킨 연유의 불상이라든가 하는 따위 대왕이나 황제의 권리를 보여 주기 위한 금빛이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이 금불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좀처럼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을 보고 더욱 굳어졌다 적어도 은화 다섯 냥 이상의 새전이 아니면 문을 여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선남 선녀의 큰 불공이 있을 때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도 본사 승려 이외에 금불각을 참례하는 자는 또 따로 새전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구나 신도들의 새전을 긁어모으기 위한 술책으로 좁쌀 만한 언턱거리를 가지고 연극을 꾸미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으리라고 나는 아주 단정을 하고 도로 내 방으로 돌아왔다가 그때 마침 청운이 중국어를 가르쳐 주려고 왔기에 저 금불각이란 게 뭐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물어 보았다
왜요
청운이 빙긋이 웃으며 도로 물었다
구경 갔더니 문을 안 열어 주던데
지금 같이 가 볼까요
뭐 담에 보지
담에라도 그럴 거예요
이왕 맘 난 김에 가 보시구려
청운이 은근히 권하는 빛이기도해서 나는 그렇다면 하고 그를 따라 나갔다 이번에는 청운이 숫제 금불각을 담당한 노승에게서 쇳대를 빌려와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문앞에 선 채 그도 합장을 올렸다
나는 그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힌 채 그가 합장을 올릴 때도 그냥 멍하니 불상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선 내가 예상한 대로 좀 두텁게 도금을 입힌 불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내가 미리 예상했던 그러한 어떤 불상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 향로를 이고 두 손을 합장한 고개와 등이 앞으로 좀 수그러지고 입도 조금 헤벌어진 그것은 불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이 초라한 그러면서도 무언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등신대의 결가부좌상이었다 그렇게 정연하고 단아하게 석대를 쌓고
추녀와 현판에 금물을 입힌 금불각 속에 안치되어 있음직한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엄성 있는
그러한 불상과는 하늘과 땅 사이 라고나 할까 너무도 거리가 멀고 어이가 없는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