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넷: 공손한 언어
공손한 언어
일본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상황에 따라 다른 어휘나 문장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일본어는 내가 지금까지 배운 언어 중 가장 표현이 다양한 언어였다. 대화 상대자가 친구인지, 아랫사람인지, 손윗사람인지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이 달랐다. “나”라는 단어만 해도 “와다쿠시,” “보꾸,” “오레”의 3 종류가 있었고, “너”라는 단어와 다른 인칭 대명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표현들이 쓰이는 실제상황 속에 들어가 보아야만 한다. 논리적인 설명만으로 바른 사용법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어와 평어를 상황에 맞게 자유자재로 바꾸어 쓸 수 있으려면 반은 일본인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들어야 하며 가능한 한 많이 그들의 실생활을 접해야 한다. 게다가 그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도 요구된다.
나는 경어와 평어의 사용법을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주로 중간 형태의 언어를 사용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편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지나치게 형식적이거나 또는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은 표현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표현들은 외국인에게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어를 완벽하게 습득하는 것이 의사소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도 아니다. 그런 공손한 표현들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문화에 대한 감각이 지극히 발달된 상태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강요되기 보다는 시간이 흘러야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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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의 문장구조는 북아시아 계통의 어족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와 비슷한 점이 많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많은 일본어 어휘가 은근히 폴리네시아어에 가까우며, 20,000 년 전 일본에 정착한 조몽족 언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냥민족이었던 조몽족은 BC 300 년경 일본에 쌀 문화를 들여오면서 언어에도 영향을 미친 북아시아 이주민인 야요이족 이전에 일본에 살던 민족이었다. 게다가 조 몽족은 지금으로부터 10,000여년전 세계에서 최초로 도자기술을 개발한 사람들이었을 확률도 높다.
중국어 쓰기 제도는 어휘, 과학기술, 불교와 함께 약1,500년 전 일본에 소개되었다. 나라와 교토 지방에 남아있는 뛰어난 목조 건물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목조 건축물이며, 고대 황하문명에 기원을 둔 중국 목조술의 우수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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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어는 영어를 비롯한 많은 외래어를 포함하고 있어 마치 언어 혼합물과 같다. 중국어에 대한 지식은 일본어를 배우는 데 크게도 움이 될 수 있으며 한국어의 구조는 일본어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웃나라 사람들이 일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습자의 자세가 지역적, 유전적 요소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바람직한 자세로 일본어를 유창하게 배운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내가 일본어에 꽤 유창해 졌을 때도 동양인인 내 아내는 일본어를 잘 하지 못했다.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종종 삼각관계 대화에 얽히곤 했다. 내가 일본어로 말을 걸면 상대 일본인은 내 아내에게 대답했다. 그는 동양인도 아닌 서양인이 일본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캐나다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일본인과 서양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아이가 말을 늦게 배우자 나이 든 한 일본인 여성이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늦는게 당연하지. 일본인들은 영어를 못한다니까.”
서양인들은 아시아계 캐나다인 2 세의 모국어는 영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어느 서양인이 아시아 언어를 배웠다고 하면 크게 놀란다. 나는 중국인들로부터 문화의 차이로 인해 영어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다. 언어학습에 또 다른 장애가 되는 이런 문화적 선입관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나는 누구든지, 문화나 배경 또는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일본을 방문하거나 일본에 거주하는 서양인이 고기와 감자만 먹고 생선초밥을 즐기지 않는다면 일본어 학습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을 여행하는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음식만 먹는다면 설사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외국어 학습에 성공하기는 힘들 것이다. 여행과 언어학습은 모두 모험의 일종이다. 집에 있을 때처럼 행동하려는 그런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