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 장 그르니에, 폴 발레리 - Part 5
여기에 이르면, 미래는 나태이다
정결한 곤충은 건조함을 긁어대고
만상은 불타고 해체되어, 대기 속
그 어떤 알지 못할 엄숙한 정기에 흡수된다
삶은 부재에 취해 있어 가이 없고
고초는 감미로우며, 정신은 맑도다
감춰진 사자들은 바야흐로 이 대지 속에 있고
대지는 사자들을 덥혀주며 그들의 신비를 말리운다
저 하늘 높은 곳의 정오, 적연부동의 정오는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사유하고 스스로에 합치한다
완벽한 두뇌여, 완전한 왕관이여
나는 네 속의 은밀한 변화이다.
너의 공포를 저지하는 것은 오직 나뿐
이 내 뉘우침도, 내 의혹도, 속박도
모두가 네 거대한 금강석의 결함이어라
허나 대리석으로 무겁게 짓눌린 사자들의 밤에
나무뿌리에 감긴 몽롱한 사람들은
이미 서서히 네 편이 되어버렸다
사자들은 두터운 부재 속에 용해되었고
붉은 진흙은 하얀 종족을 삼켜버렸으며
살아가는 천부의 힘은 꽃 속으로 옮겨갔도다
어디 있는가 사자들의 그 친밀한 언어들은
고유한 기술은, 특이한 혼은
눈물이 솟아나던 곳에서 애벌레가 기어간다
간지린 소녀들의 날카로운 외침
눈, 이빨, 눈물 젖은 눈시울
불과 희롱하는 어여쁜 젖가슴
굴복하는 입술에 반짝이듯 빛나는 피
마지막 선물, 그것을 지키려는 손가락들
이 모두 땅 밑으로 들어가고 작용에 회귀한다
또한 그대, 위해한 영혼이여, 그대는 바라는가
육체의 눈에 파도와 황금이 만들어내는
이 거짓의 색채도 없을 덧없는 꿈을
그대 노래하려나 그대 한줄기 연기로 화할 때에도
가려므나 일체는 사라진다 내 존재는 구멍나고
성스런 초조도 역시 사라진다
깡마르고 금빛 도금한 검푸른 불멸이여
죽음을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만드는
끔찍하게 월계간 쓴 위안부여
아름다운 거짓말 겸 경건한 책략이여
뉘라서 모르리, 어느 누가 부인하지 않으리,
이 텅빈 두개골과 이 영원한 홍소를
땅밑에 누워 있는 조상들이여, 주민 없는 머리들이여
가래삽으로 퍼올린 하많은 흙의 무게 아래
흙이 되어 우리네 발걸음을 혼동하는구나
참으로 갉아먹는 자, 부인할 길 없는 구더기는
묘지의 석판 아래 잠자는 당신들을 위해 있지 않도다
생명을 먹고 살며, 나를 떠나지 않도다
자기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미움일까
구더기의 감춰진 이빨은 나에게 바짝 가까워서
그 무슨 이름이라도 어울릴 수 있으리
무슨 상관이랴! 구더기는 보고 원하고 꿈꾸고 만진다
내 육체가 그의 마음에 들어, 나는 침상에서까지
이 생물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제논, 잔인한 제논이여, 엘레아의 제논이여
그대는 나래 돋친 화살로 나를 꿰뚫었어라
진동하며 나르고 또 날지 않는 화살로
화살 소리는 나를 낳고 화살은 나를 죽이는도다
아! 태양이여...이 무슨 거북이의 그림자인가
영혼에게는, 큰 걸음으로 달리면서 꼼찍도 않는 아킬레스여
아니, 아니야! 일어서라! 이어지는 시대 속에
부셔버려라, 내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형태를
마셔라, 내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신선한 기운이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파도 속에 달려가 싱그럽게 용솟음치세
그래! 일렁이는 헛소리를 부여받은 대해여
아롱진 표범의 가죽이여, 태양이 비추이는
천만가지 환영으로 구멍 뚫린 외투여
짙푸른 너의 살에 취해
정적과 닮은 법석 속에서
너의 번뜩이는 꼬리를 물고 사납게 몰아치는 히드라여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셔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네… 아 읽고 있는 저도 숨가쁘네요. 아… 장시죠? 장시고, 상당히 격렬한 어떤 감정의 흐름인데, 이것은 정말 어떤 남국의 태양 아래 해변의 묘지라는 이미지를 머리속에 그리면서 조금 더 이해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시를 보다보면 이상하게 기형도 생각이 좀 나요. 기형도 시인 생각이 좀 나는데, 특히 앞부분에 언어를 사용하는 정조랄까요? 이런거 보면 생각이 나요. 비슷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 “포도밭 묘지”인가요? 기형도 시인의 그 시가 연상되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어떤면은 좀 기형도적이다 이런 생각도 좀 들고요. 뒤로 좀..(하도 여러가지) 떠오르는 시들이 좀 있어요. 하여간 한국의 시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그런 시죠. 그 제가 아는 어떤 분이 계신데 (제가 여기서는 성함을 밝히진 않겠습니다.)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인데, 그 분하고 옛날에 북한산에, 제가 가끔 등산을 갔는데 북한산에 갔다가 내려오면 저 구기동 쪽에 목욕탕이 하나있어요. 목욕탕이 오래된 목욕탕인데 물이 좀 좋습니다. 지하수를 퍼서 하는, 그 뽑아 올려서 쓰는 목욕탕인데, 거기가서 목욕을 하는데 그분이 아주 뜨거운 탕에 들어가요. 혼자 들어가십니다. 들어가서 중얼중얼중얼 하세요. 하시는데 뭘 그렇게 혼자 중얼중얼 하시나.. 그래서 제가 여쭤봤어요. “탕에 들어가서 뭘 그렇게 중얼중얼 하세요?”그랬더니, 아 이시간을 재기위해서 어떤 방법을 하나 고안하셨는데 이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시는거예요. 너무 많이 하셔서 이젠잘 외우시죠. 그것도 불어로 하십니다. 불문학을 하신분이라서 그런데, 불어로 이 시를 촥 외워요. (다) 외우면 이제 나갈 때가 된거죠. 그 목욕탕에…...”해변의 묘지”의 그 찬란한 이미지와 구기동의 목욕탕… 뭐 잘 안 어울리지만, 뭐 아무도 모르니까요. 불어로 혼자 계속 외우시는데, 그분 말씀이 불어로 들으면 그렇게 좋데요. 불어의, 정말 아름다운 불어로 된 시고, 프랑스에서도 많은 시인들이 여전히 경탄하고 있는 그런 언어다!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시어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입에도 착착 붙고, 뭐 당신에겐 그렇겠죠. 입에도 착착 붙고, 뜨거운 이 열탕을 견디는데 (남국의 태양 대신에) 뜨거운 열탕 벗삼아서 폴 발레리의 시를 외우시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지금은 약간 웃음이 나오려고 합니다. 하여튼 시의 좀 색다른 효용이죠? 음그렇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다닐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는 소설가가 되려는 생각도 없었고 (물론 당연히 시인이 되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집이 잠실이었거든요. 잠실에서 신촌까지 오는 동안에 매일 아침 시를 하나씩 외웠어요. 지하철 타고 오면 한.. 50 분 정도면 시 한 편을 외우기에 족해요. 시작할 때 그 시를 보고 한 줄, 한 줄 외워가면서 내릴 때 쯤 되면 다 외우는 거죠. 나중에 제가 작가가 된게 그나마 저에게 문장력이라는게 있었다면, 있다면 그건 아마 그때 외운 시들 덕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자 오늘 이렇게 지중해를 중심으로 돌아봤습니다. 장 그르니에의 “섬” 알제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알베르 카뮈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던,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시작해서, 프로방스의 해변의 묘지를 보고 시를 썼겠죠? 폴 발레리가… 폴 발레리와 그리스 신전들에 대한 얘기, 또 구기동의 목욕탕에 대한 얘기 까지 나왔는데요. 자 벌써 시간이.. 와 벌써 50 분이 지나고 있네요! 제가 너무 많이 떠드는 군요. 자 그럼 오늘 여기서 팟캐스트를 마치기로 하고요.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소설쓰는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