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4 - 김영하 “검은 꽃" - Part 4
바오로 신부는 자신을 더듬어오는 손길을 느끼고 눈을 떴다. 코앞에 웬 사내의 얼굴이 있었다.
"무슨 일이오?" 외치는 순간 사내가 신부의 멱살을 잡더니 이마로 얼굴을 듣이받았다. 이어 주먹으로 신부의 얼굴을 수차례 때였다. 바오로 신부는 짚단처럼 풀썩 끄러졌다. 사내는 신의 품에서 물건과 돈을 챙겨 유유히 달아났다.
"미친놈이 아닌가. 경칩도 안 지난 시절에 길바닥에 쓰러져 잠을 자다니." 사내는 훔쳐온 비단주머니를 풀었다. 쥐어보니 묵직했다. 근 ㄴ손을 집어넣어 하나씩 물건을 꺼내놓았다.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희한한 것은 은으로 만든 십자가였다. 알 수 없는 문자가 음각되어 있고 표면도 섬세한 문양으로 뒤덮혀 있었다. 조선의 솜씨는 아니였다. 청이나 양이들의 물건임에 분명했다. 은으로 무엇하러 이런 모양을 만들었을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리개도 아닌 것을. 십자가 고리에는 가죽으로 만든 줄이 연결되어 있어 목걸이로 쓰였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은붙이니 녹여서 팔면 되리라. 도둑은 십자가 목걸이를 챙겨넣었다. 시몬 블랑쉬 주교가 사제 서품의 기념으로 조선의 바오로 신부에게 준 십자가는 그렇게 한낱 거리의 좀도둑에게로 넘어갔다. 그밖에도 주머니 속에서는 몇 푼의 돈과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글자로 씌어진 몇 장의 문서, 그리고 책 한 권이 나왔다. 그는 돈만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길가의 도랑에 던져버렸다. 그는 얼얼해진 주먹을 슬슬 흔들며 거리고 나섰다. 며칠간의 밥과 잠자리는 이것으로 해결된 것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골목을 돌아나가는데 그만 누군가와 딱 마주쳐버렸다. 어깨를 부딪친 그는 습관처럼 상대를 노려보았다. 상대방은 딱히 자기 잘못도 아니면서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왔다. 둘의 눈빛이 잠깐 마주쳤으나 그것으로 전부였다. 신부는 도둑을 알아보지 못했고, 거리의 좀도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어디론가 터덜터덜 걸어가는 신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덜떨어진 양반이로군." 도둑은 멀찍이서 신부의 뒤를 따라갔다. 신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묻기도 하고 얻어 맞은 얼굴을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언덕을 올라가싿. 그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거류지를 지나 벗듯한 2 층 건물 앞에 섰다. 건물 정면엔 한자로 '대륙식민회사'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앞엔 수백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도둑은 근처의 장바닥에 가서 뜨거운 국과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대륙식민회사로 되돌아갔다. 그에게 모든 것을 털린 이상한 남자가 줄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그 사람, 한 때 바오로 신부라 불렸던 그 남자 뒤에 도둑은 자리를 잡았다.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지만 역시나 신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비로소 도둑은 신부에게 말을 걸었다. 신부는 충청도에서 글공부를 하던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어이쿠! 도둑은 제 무릎을 쳤다. 그리고 신부에게 제물포 같은 개항지엔 손버릇 나쁜 놈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신부는 그러나 잃어버린 물건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줄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렸다. 대륙식민회사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했다. 제국 정부와 일본 공사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사람들을 잔뜩 싣고 닻을 올려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이름과 가족의 수와 고향을 적었다.
"뱃삯과 식비, 옷값은 멕시코 농장주들이 지불하니 걱정 마시오."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였다. 당장은 한 품도 낼 필요가 없었다. 도둑, 훗날 최선길이라 불리게 될 그 인물은 그날 밤에만 두 사람의 재물을 털었다. 도시라고는 처음 나와본 사람들, 먼 곳으로 떠날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는 사람들은 물건을 잘 간수하지 못했다. 신이 난 최선길은 아예 이들과 함께 멕시코로 떠나버릴까 생각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한 번을 훔쳐도 여기보단 나으리라. 까짓, 안 되면 돌아오지 뭐.
최선길은 장물도 미처 처분하지 못한 채 신부와 함께 일포드 호에 오르게 되었다. 그가 몸을 실은 거대한 배는 여객선이라기보다는 말로만 듣던 군함 같았다. 이것이 일본에 나타났다는 그 검은 배, 도쿠가와 막부의 콧대를 꺾은 구로후네가 아니겠는가. 최선길은 입을 딱 벌렸다. 거대한 기선에서 풍겨나오는 서양의 힘과 권위, 위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일체의 악운과 위협으로 부터 보호해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맡아보는 콜타르 냄새마저 향기로웠다. 마치 벌써 서구의 일원이라도 된 것처럼 최선길은 당당하게 배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배에는 독일인과 일본인, 영국인 선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은 이미 하나의 세계였고 영국 공사 고든의 공언대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영국의 영토였다.
최는 가족 단위로 움직이느라 동작이 굼뜬 사람들을 제치고 일찌감치 좋은 자리를 잡아 몸을 뉘었다. 옆자리엔 아직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소년 하나가 퀭한 눈으로 어두운 선실을 구석구석 쏘아보며 누워 있었다. 얼굴에 피어 있는 버짐이 그의 가난을 대변하고 있었다. 동작 빠른 놈이 여기 또 있었군. 신화 속 괴물의 내장 같은 선실이 처음부터 집처럼 아늑했던 도둑은 독일인 선원들이 나누어준 담요를 눈썹까지 끌어올리고 잠을 청했다.
이종도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일포드 호에 올라타자 언제나 그랬듯이 지체 높은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억센 서양말을 쓰는 선원들만 마주쳤을 뿐이다. 눈치 빠른 이들은 일찍부터 좋은 자리를 찾아 갑판 아래로 내려갔지만 그는 바닷바람이 불어보는 차가운 갑판에 꿋꿋이 서서 자기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존 마이어스와 통역 권용준이 나타났다. 권용준이 물었다.
"당신은 왜 내려가지 않는 거요?" 이종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는 자신이 무슨무슨 대군의 몇대손으로 현태 주상의 혈연임을 밝히려 했으나 통역의 곁에 대륙식민회사의 제물포 파견원인 일본인 오바 간이치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말을 삼켰다. 대신 말을 돌려 사대부의 신분에 걸맞는 선실을 요구하였다. " "저들과 같은 곳에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종도는 손가락으로 사람들이 내려간 곳을 가리켰다. 통역 권용준이 귓속말로 그의 의사를 전하는 동안 몇몇 조선인들이 그의 뒤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와 같은 황족은 아니였으나 입성이나 갓의 모양으로 보아 양반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그의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자신들도 비슷한 대우를 받으리라 기대하고 있는 듯 했다. 이종도의 아내와 다들이 상민, 심지어 걸인들과 같은 곳에서 기거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반면 딸인 연수만은 주변의 사람과 풍경을 남몰래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구경거리는 오히려 이종도의 가족 똑이었다. 장옷을 둘러쓴 두 여자와 허세를 부리는 갓 쓴 양반의 모습은 마스트에서 마부끼는 나부끼는 유니언잭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마침내 마이어스가 말했다.
"이 배는 본래 여객선이 아니라 화물선이다. 선원들도 좁디좁은 이층침대를 쓰고 있는 판에 이렇게 많은 조선인들에게 모두 선실을 배정할 수는 없다." 이종도는 자기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마이어스가 답답하였다.
"모두에게 방을 달라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지체와 신분에 따라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마이어스의 최종적인 의사가 권용준을 통해 전달되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만한 자리가 없다. 싫다면 하선하라. 떠나려는 사람은 많다." 그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종도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배워먹지 못한 놈 같으니라고." 그는 선교로 올라가는 마이어스를 향해 욕을 했다. 그러고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멕시코에는 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도 땅을 가진 지주와 권세를 누리는 귀족이 있다고 들었다. 사람을 부려본 자들이라면 인간이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인의 대표로서 가는 것이다. 이를 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왜놈들의 눈도 있으니 일단 참고 배가 닻을 올리면 선장을 만나 다시 말해보겠다." 연수가 말했다.
"그러시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일단 멕시코까지 가서 거기에서 지체 높은 사람을 만나 우리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순리일 듯 싶어요."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은 재빨리 그 말에 동의했다. 이종도의 고집이 가져올 결과를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종도는 못 이기는 척 선실로 쓰이는 화물칸으로 내려갔다. 선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종도가 헛기침을 해댔지만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담요를 뒤집어 쓰고 다리를 내뻗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명식이라도 데리고 올 것을 그랬다. 그는 두고온 하인을 아쉬워했다. 결국 이종도네는 체면 때문에 어디 비집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선실 구석에 엉거주춤 서 있어야만 했다. 윤씨 부인은 울상이 되어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이종도는 천장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서 있은 지 한 시간, 갑자기 선실 한쪽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아이고...
한 사내가 대륙식민회사의 직원이 가져다준 흰 종이를 들고 있었다. 그것을 앞에 두고 가족들이 일제히 엎드려 곡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친족 중의 누가, 그것도 윗사람이 죽은 것이었다. 눈물 없는 마른 곡이 의려처럼 진행되더니 일행은 짐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했다. 전갈을 받았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침통한 얼굴로 배를 떠났다. 가장 어린 진우가 재빨리 달려가 빈 자리를 차지했다. 이종도는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도 안 되는 그 거리를 이동하는 사이에 벌써 야금야금 면적이 줄어들었지만 다섯 명이 떠난 자리라 네 가족이 앉기에 부족하진 않았다. 물론 주자의 예절이 지켜지기에 충분한 공간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어쨌든 멕시코로 가야만 했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제가 쓴 거라 그런지 읽기가 좀 쉬운 면도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작가가 쓴 것을 읽을 때 보다..뭐랄까요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르고, 그 구절 하나하나를 쓰던 때의 기억도...저기에 필요하던 어떤 조사들을 하던 그런 생각..이런 것들이 막 들어와서요 읽는 동안 이렇게 여러 생각들이.. 그 뭐랄까 읽기를 방해한다고 그럴까요?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제 리듬에 맞춰서 쓴 글이어서 입에는 잘 붙는 면도 있고 그렇습니다. 어쨌든 여기에 '이정'이라는 남자 주인공... 사실 이 소설은 그렇게 주인공이 중요한 소설은 아닙니다. 인물들이 모자이크를 이루며 인물들이 하나의 어떤 직소퍼즐 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어쨌든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정'이라는 인물이 곧 '연수'라는 여자 주인공 격의 인물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이 그 뒤에 이어지게 됩니다. 네... 이걸 뭐 글쎄요.. 계속 읽어..다음에도 읽어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생각을 해봐야될 것 같고요. 어쨌든 오늘 저의 세 번째 장편소설 '검은 꽃'의 앞부분을 읽어봤는데 덕분에 저도.... 이 '책 읽는 시간'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이 소설을 소리내서 읽어보게 됐습니다. 오늘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