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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satong, commentary on current events from Kim Jungpei, 김종배의 시사통 3월12일 PM

김종배의 시사통 3월12일 PM

03/13 PM 이 사람의 고국은 어디인가?

시사통 김종뱁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잘 보내셨습니까? 다시 김종뱁니다. 자, 오늘 나온 뉴스 중에 눈길을 확 잡아끄는 뉴스가 하나 있는데요, 김상권 전 경기교육감이 오늘 오전 10시에 수원에 있는 경기도의회에서 경기지사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이 이 선언장에 등장을 했다고 합니다. 붉은색 새누리당 점퍼를 입고 등장을 해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벌이던 김상권 전 교육감에게 나도 질문할 기회를 달라, 이렇게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자, 김영선 전 의원이 왜 이 자리에 등장을 했을까요? 바로 같은 곳에서 30분 간격으로, 그러니까 오전 10시 30분에 이, 자신의 공약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왔다가 김상권 전 교육감의 출마 선언장에 들이닥쳐서 질문권을 달라 이렇게 요구를 했다라는 건데요. 나중에 김상권 전 교육감이 퇴장한 다음에 이 김영선 전 의원이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는지 물었더니 기자들 앞에서 김영선 전 의원이 이야기하기를, 김상권 전 교육감이 무상 급식을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우는데, 이 무상 급식 때문에 특기 교육과 교육 기자재 등은 부실해졌다. 바로 이런 점을 한 번 지적하면서 입장을 물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뭐 정책에 대한 뭐 판단과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죠. 그래서 얼마든지 그거에 대해서 공격할 수도 있고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이제 상대 후보 아니겠습니까. 상대 후보의 출마 선언장에 등장을 한다. 그래서 질문을 행사하려고, 질문권을 행사하려고 했다. 이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요 여러분? 이게 상도의와 강호의 도에 맞는 걸까요? 판단은 한 번 여러분에게 맡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매주 수요일 저녁 방송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과 함께 하죠. 자, <폭력을 넘어서> 시간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김종배: 네, 매주 수요일에 찾아오시는 주인공이시죠. 이, <폭력을 넘어서>의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나오셨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오창익: 네, 안녕하세요.

김종배: 네. 또 일주일 만에 뵙습니다.

오창익: 세번째 시간입니다.

김종배: 그렇습니다. ( 네) 자, 오늘 어떤 얘기를 한 번 꺼내볼까요?

오창익: 어, 그 전에 지난주에 김훈 중위, ( 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JSA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 네 ) 방송을 하면서 오랜만에 김훈 중위 아버님, 김척 장군께 연락을 드렸고 ( 아하, 예 ) 그저께 월요일 점심에 오셨어요. ( 예 ) 점심을 함께 했는데. 아, 저도 뭐 김훈 중위 사건 때 뭐, 진상 규명을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했는데 ( 네 ) 그 다음에 많이 힘을 보태지 못했는데요. 또 오랜만에 아버님 뵀는데 어... 점심을 먹으면서 전혀 점심을 못 드시더라구요. 말씀하시느라고. ( 아, 예 ) 16년 동안 쌓아왔으니까 얼마나 할 말이 많겠습니까. ( 그럼요, 그럼요 )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할지도 몰라서 아버님 말씀을 좀 전해드리는 건데. ( 네 ) 지금 이제 국방부를 제외하고 다른 국가기관들, 방송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 예 )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회, 그 담에 국민권익위원회가 모두 다 자살은 아니다라고 결정을 내리고 있는 상태인데. ( 네. ) 국방부만 지금 계속 자살을 고집하고 있는 거죠. ( 네 ) 자살에 꿰맞출려고 하다보니까 뭐, 이상한 자세, ( 네 ) 화약흔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도 못하고 뭐 그런 상태인데. 아버님 말씀은 뭐, 순직 처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 ( 그렇죠. 그렇죠 ) 지금이라도 어, 국방부가 정말 진실을 원한다면 ( 네 ) 공개 토론이라도 하자. ( 예 ) 그래서 놓여진 상황을 그대로 일반 시민들, 상식을 가진 시민들, 또 전문가들에게 보여드리고 ( 예 ) 자, 이런 상황에서 자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 네 ) 네, 화약흔도 말씀드렸지만 화약흔이 열 번 쏘면 열 번 다 화약흔이 나오는 건데 ( 예 ) 그, 국민권익위원회에서의 했던 실험의 경우에는 사건 현장에 화약흔이 있었지만 뭐 헌병대에서 들어가고 미군수사관이 들어가고 이러니까 화약흔이 날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그랬대요 군당국에서. ( 예 ) 그렇지만 지하 벙커의 제한된 공간이기 때문에 많이 안 날라갔을 겁니다. ( 그렇죠 ) 그래도 날라갔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번 실험의 경우에 화약흔, 그 화약 총기 발사 실험을 하고 난 다음에 화약흔 체취를 언제 했느냐면 4시간 후에 했다는 거예요. ( 아, 일부러? ) 네.

좀 날라가라고. ( 예 ) 그래도 다 나왔다는 거예요. ( 예, 예 ) 그러니까 이건 뭐 틀림없는 사실이고 ( 예 ) 자살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거다. ( 예 ) 그래서 지금이라도 공개 토론을 하든지 해서 진상을 밝히고 넘어가자 ( 예 ) 대표적인 사건 김훈 중위 사건마저 어,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건은 정말 해결하기 난망한거고 ( 그렇죠 ) 국방부에서는 지금 두 가지 사건, 가장 대표적인 군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건과 ( 네 )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서만은 ( 네 ) 진상 규명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진상 규명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 그래요 ) 국민들에게 다 알려져 있는 사건 ( 예 ) 그래서 군의 명예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예전에 근무했던 군인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네 ) 진정한 명예는 진실을 위해서 용기를 내는 게 진정한 명예이고요 ( 아 그럼요 그럼요 ) 명예는 그럴 때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 예 ) 믿고 ( 예 ) 국민의 아들들을 보낼 수 있는 군대가 되기 위해서라도 ( 네 ) 김훈 중위 사건은 반드시 ( 네 ) 진상이 밝혀져야 합니다.

김종배: 그렇죠.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있니까요. ( 네. ) 예.

자, 그 정도로 가름을 하도록 하고 자, 오늘은 어떤 사례로 한 번 얘기를 해볼까요.

오창익: 오늘은 한 탈북자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예, 예, 예. ) 홍진희 씨라는 분이에요. ( 예. 아, 여, 남성이세요? ) 남성입니다. ( 아, 남성이세요? 예. )

1969년생 인데요. ( 네. ) 지금 마흔다섯. 이렇게 됐네요. ( 예. 그렇게 되네요. ) 96년 1월에 스물 일곱살의 나이로 중국을 거쳐서 한국에 왔습니다. ( 예. )

북한에 있을 때의 직함은 인민군 제 7군단 수산부업기지 지도원이에요. ( 예. )

이게 뭐, 군인은 아니고. 워낙 북한이 이제 군에 의한 산업, 뭐 이런게 많으니까. ( 그렇죠. 그렇죠. ) 하여튼 뭐, 수산 관련 업무를 했다라는 겁니다. ( 예, 예, 예. ) 어… 이 분이 이제 다른 탈북자들하고 똑같은 경로로 들어옵니다. 김포공항을 거쳐서 들어오면서 환영받고 ( 네. ) 그 다음에 곧바로 서울 신길동에 있는 그, 안기부의 안가 조사시설 대성공사라고 하는데요. ( 예. )

지금 이제 유우성 씨나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가 조사를 받은 곳은 경기도 시흥에 있는데요. ( 네. ) 대성공사가 경기도 시흥으로 이사한 겁니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고요. ( 지금 하나원이라고 불리던가요? ) 아니요. 하나원은 ( 예. )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온 사람들을 위한 정착 교육기관입니다. ( 아, 예. 예. )

그래서 뭐, 안성에도 있고 또 제 2 하나원 이렇게 있는데요. ( 예. )

아, 그 전에 소위 위장 귀순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 예. ) 뭐, 간첩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조사받는 곳이죠. ( 네, 네, 네. ) 유우성 씨 사건 국가정보원 검찰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 예. ) 또 그 사건의 피고인이기도 합니다만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가 이곳에서 6개월 동안 ( 네. )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변호사 접견도 못한 채 조사를 받았고 ( 예. ) 그래서 마침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 허위 진술을 했던 바로 그곳에서 조사를 받습니다. ( 네. ) 당시에는 이제 말씀드린 것처럼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었어요. 여기는 뭐, 시설은 국군 정보사 시설인데 ( 네. ) 실제로는 안기부 국정원이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 아, 예, 예. ) 안기부, 옛날에는 안기부였죠. 경찰청 국방...정보...국방부 정보 본부 ( 예. ) 그 다음에 정보사령부, 기무사령부, 다섯 개 기관으로 구성된 합동 신문제의 심문을 받습니다. ( 예. )

아주 짧은 사람도 2-3달 정도 받고 보통 6개월 정도씩 조사를 받았어요. ( 예, 예, 예, 예. ) 맨 처음에 한 달 동안은 신분 조사라는 걸 받고 ( 예. ) 다섯달 정도는 이제 정보 조사를 받습니다. ( 어, 예. ) 그걸 다 받고 나와야만 주민 등록증을 발급 받고 일반 사회로 나갈 수 있습니다. ( 예, 예. ) 근데 이 대성공사에서 합동 심문센터에서 문제가 많았는데요. 감금 상태에 놓여 있는 거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감시, 욕설, 구타, 고문, ( 네. )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인권 침해가 자행됐습니다. 홍진희 씨는 이 피해자였죠. ( 예. )

처음부터 맞았대요. ( 들어가자마자? ) 네.

대성공사 들어가서 취조실에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조사관들에 둘러싸여서 두들겨 맞았고요. ( 어, 허. ) 조사관들은 자기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 부르라고 그랬고. ( 예. )

때리는 사람들이 선생님입니다. ( 예. )

무슨 조폭들처럼 인사는 90도 각도로 해야 했다고 해요. ( 예. )

아, 두들겨 맞는 것도 어느정도 참을 수 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들었던 말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 네. ) 두 가지 얘깁니다. 하나는 인간쓰레기, 또 하나는 후레자식이라는 거예요. ( 예, 예. ) 왜 그러냐하면 아...이 홍진희 씨가 혼자서 탈북을 했습니다. ( 가족을 놔두고? ) 네.

북한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북한에 어머니가 있고 동생도 둘이 있었어요. ( 예, 예, 예. ) 가족을 놔두고 너 혼자 살려고 도망쳐 나왔다그래서 인간쓰레기 후레자식이다 라고. ( 아, 예. ) 협박도 많이 들었죠. ( 예. )

너는 아직 국적도 없고 넌 아무런 신분도 없으니까 여기서 죽여버려도 아무 상관도 없고 누구도 모른다. 찾을 수도 없다. 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예, 예. ) 그래서 처음부터 이게 기를 죽이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뭔가 정말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건지. 하여튼 구타, 모욕, 뭐 이런 것들이 계속 됐어요. 얼차례 이런 것도 계속 받고요. ( 예. )

아...인간쓰레기라는 얘기, 후레자식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정말 그런 상황이 있다면, 다시 말씀드리면 가족을 북한 지역에 냅두고 왔다면 그 말은 정말 가슴을 찔르는 비수가 됩니다. ( 대못이죠, 대못. ) 아, 그럼요.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나고 그렇겠어요. ( 그럼요. 예. )

20대 청년이. ( 예. )

그래서 매일 밤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그래요. ( 네. ) 근데 자기, 홍진희 씨의 담당 조사관이 참 특히 심했다고 그러는데 ( 네. ) 이 분이 교회 장로라고 그러는데. ( 예. )

교회 장로면 보통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 예. ) 어...어떨 때는 이제, 저기, 장로인 조사관이 때리는데 자기가 힘이 빠질 때까지 때리더래요. ( 허. ) 지칠 때까지. ( 네. ) 그, 홍진희 씨는 피범벅이 되어서 쓰러져 있고 자기는 때리다가 힘들어 가지고 지쳐있고. ( 예. )

홍진희 씨보고 일어나라고 해서 피곤하니까 자기를 안마하라고 그랬대요. ( 허, 참. ) 거짓말같죠. ( 네. ) 그 다음에 또 한참 때리고 어떨 때는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준대요. ( 하, 예. ) 너 사람되라고 때렸다. 미워서 때린 게 아니다. ( 예. )

아, 예.

하여튼 뭐 말을 듣지 않거나...뭐, 왜 때리냐고 이렇게 한 마디라도 하거나 이러면...뭐, 독방에 감금하기도 하고. ( 예. )

하여튼 취침 시간, 자는 시간 말고는 절대로 이렇게 눕거나 할수도 없고. ( 어... ) 거의 그, 일제 시대 때 군기 잡는 식으로 이제 군기 잡고 24시간 CCTV 카메라 감시 받고 ( 네. ) 또 매일 그 감상문, 일기, 회고록, 뭐, 회고록이라는게 조사 받을 때 보통 그렇게 하는데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회고록을 다 쓰게 합니다. ( 아...그래요? ) 백 번씩 쓰게하고. 그렇습니다 ( 예, 예. ) 이런 것들을 했어요. 그래서 홍진희 씨가 뭐, 당연히 맞고 그러니까 부상도 끊이지 않고 오른쪽 손도 제대로 못 쓰게 되고 이런,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 음. 네. ) 자기는 이제 자유를 찾아서 한국에 왔는데 ( 예. ) 한국에서 이런 일을 당하니까 북한에서도 당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까. ( 예. )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대요. 자기가 잘못와가지고 북한 간첩들이 운영하는 어떤 시설에 왔나보다. 여기가 북한일지 모른다. ( 오죽했으면. ) 네.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합니다. ( 예, 예, 예. ) 자, 이제 대성공사를 드디어 6개월 만에 나왔습니다. ( 예. )

대한민국 국민이 됐어요. ( 예. )

그렇지만 대성공사에서의 일은 잊을 수 없는 겁니다. ( 어떻게 잊어요. 이 일을. ) 특히 인간쓰레기라고 했던 그 모욕. 후레자식이라고 했던 모욕을 잊을 수 없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 양반이 생각한게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게 뭐냐를 궁리하다가 ( 네. ) 세신사라고 그러는데 목욕탕 때밀이를 시작해요. ( 아, 예. ) 열심히 법니다. ( 가족 데려오려고? ) 예.

탈북자금을 마련하려고... ( 예, 예, 예. ) 그리고 정말 한 푼의 돈도 허투로 쓰지 않고요. ( 네. ) 어...돈을 조금 조금씩 모아가면서 안기부 담당 직원이 있으니까 담당 직원한테 물어봐요. 가족을 데려와도 되느냐. 어, 데려와도 된다. ( 예. )

그러니까 이제 희망도 생깁니다. 그리고 공부도 열심히 해가지고요 그 사이에 고려대학교 중문학과에 입학하기도 해요. ( 어이고, 예. ) 그러니까 이를테면 좀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잘 정착한 케이스죠. ( 그렇죠. 그렇죠. ) 처음 6개월 동안은 지옥같은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뭐, 목욕탕 때밀이라도 하면서 이제 계속 돈을 모으고 있었고. ( 네. ) 대학도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 예. )

그러다가 98년 5월에 드디어 이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탈출시키는데 성공합니다. ( 예. )

지금도 사실은 돈만 있으면 탈북은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 예. )

당시에는 더더욱 그랬고요. 어...뭐, 어머니와 여동생, 남동생 이제 가족 세 명이 이제 쭉 홍콩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이것도 극적인게 홍콩 반환되기 직전이었어요. ( 아. ) 홍콩 반환이 98년 7월 1일이었는데 ( 네. ) 그 직전에 그러니까 홍콩을 통한 탈북 루트라는게 막히기 직전이 이렇게 들어옵니다. 운도 좋았고요. (어, 예, 예. ) 가족들이 이제 김포공항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 예. )

들어온 날. 김포공항에서 홍진희 씨 말에 의하면 코너를 이렇게 돌자마자 ( 네. ) 데리고 들어와도 좋다고 했던 그 안기부 조사관이 홍진희 씨를 마구잡이로 구타를 하더래요. ( 왜요? )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야 대한민국이 너 하나 먹여살리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 예. )

이 때가 또 IMF 직후잖아요. ( 아, 예 그렇죠. ) 국가 살림도 어려운데 가족까지 불러들여가지고 나도 귀찮게 하고 국가를 고생시키냐고.

김종배: 아니, 자기가 데려와도 된다고 했잖아요.

오창익: 그러니까요. 유우성 씨의 경우에도 그랬어요. ( 똑같아요. ) 유우성이 유가려를 데려와도 되냐고 계속 물어봤는데 아, 데려오라고. ( 그러니까요. ) 데려와도 된다고 그래서 데려오니까 간첩을 만드는 거로 쓴거 아니에요. ( 맞아요, 맞아요. 예. )

자, 이쯤되서 인간쓰레기라는 욕을 듣고 그것에 대해서 정말 인간쓰레기를 피하려고 불철주야 일해가지고 이제 탈북자금을 만들어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려왔는데. ( 예. )

다시 야단을 맞고 구타를 당하잖아요. ( 예. )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이 앙심이란게 안 생기면 그거 사람도 아닙니다. 감정이 생기는 거죠. 당연히. ( 그럼요. ) 하... 근데 탈북자들은 일상적으로 국정원, 안기부와 경찰의 감시를 받아요.

김종배: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뭐 합동 신문 센터에서 아, 이 사람은 간첩이 아니다라는 판정이 났어도. (네.) 그 뒤에도 계속?

오창익: 그럼요. 늘. 옛날에 들어온 탈북자들도 다 그, 경찰의 감시를 받습니다. ( 예. )

뭐, 이를테면 이런 식이에요. 그것도 군기잡기 식으로 아주 유치한데. 어떤 홍진희 씨 말고 다른 동료 탈북자 증언을 들어보면 어, 자기가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데요. ( 예. )

빨리 안 받았다. 그래서 경찰서로 들어오라고 그러고. ( 예. )

그래서 뭐 무릎을 꿇려놓고 왜 전화를 빨리 안 받았는지에 대한 진술서를 장황하게 쓰라고 그러고. ( 예 . )뭐 이런 일들. 군기 잡기를 한 번씩 하는 겁니다. ( 예. )

꼼짝 못하는 거예요. 탈북자는 뭐 없잖아요. 조직도 없고 주변에 뭐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고. ( 그렇죠. ) 자, 홍진희 씨가 이제 대성공사에서 나와서 가족들을 데려왔다는 이유 때문에 또 구타를 당한 다음에 주변을 살펴본거예요.

김종배: 아, 잠깐만요. 그런데 공항에서 코너를 돌자마자 구타를 당했다고 했잖아요. ( 네. ) 그때 어머니나 동생들이 보고 있는 상태에서 ( 안 보는 상태에서. 그 놈만 데리고 가서. ) 안 보는 상태에서. 아, 예.

오창익: 그건 좀 나은가요? ( 그래도 뭐... ) 근데 구타 당한건 알죠. 가족들이. ( 예. )

그러니까 동료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동료 탈북자들도 너나없이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 예예 ) 대성공사에서. ( 예, 예, 예. ) 정착 교육 하나도 없고. ( 예. )

위장 귀순 여부. 곧 간첩인지를 가려낸다고 했지만 결국은 사실 일상적인 일방적인 폭력뿐이었고. ( 예. )

그러니까 대성공사는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합동 심문 센터는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첫 관문이었지만. ( 예. )

탈북자들에게는 정말 기억하기 싫은 치욕의 장소고 ( 그렇죠. 예예. ) 지옥같은 곳이었죠. 그래서 탈북자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 아하, 예. ) 이건 최초로 탈북자들의 자주적인, 주체적인 조직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 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 예.

여때까지는 다 국정원 뭐, 경찰청 숭의동지회니 뭐 이런 것들이 저, 탈북자들의 조직들이 있었는데 ( 예. ) 소위 관변단체들이었어요. ( 음) 근데 관변단체가 아닌 순수 민간단체가 처음 생깁니다. ( 예. )

그 이름이 '자유를 찾아온 북한인 협회'예요. ( 아, 예. ) 자유 북한인 협회라고 ( 예. ) 1998년 12월에 생깁니다. ( 네. ) 아...의미가 있죠. ( 그러네요. ) 그런데 생기자마자 이 사람들은 홍진희 씨도 여기 가담해가지고 홍보부장이라는 직함으로 일하게 되는데 ( 예. ) 국가정보원의 조직 와해 공작, 협박에 시달립니다. ( 어...예. ) 뭐, 대표를 맡은 사람도 며칠만에 사표 내고 그만두고요. ( 네. ) 그러니까 이들이 조직을 만들어서 그렇게 가면 우리가 니들을 어떻게 대할지 아냐. 뭐 이런 협박들이 있는거죠. ( 네. ) 어...그런데 이 자유 북한인 협회를 만든 사람들은 만약 국정원이 원하는대로 조직을 그만두게 되면 여태까지 대성공사, 합동 심문 센터에서 받았던 그런 가혹한 일들이 중단되지 않을 거다. ( 아, 그렇죠. 그렇죠. ) 자기들도 문제지만. 이후에 들어올 자기 가족같은 정말, 동포들도 문제다. 해서 멈추지 않습니다. 천, 천만다행이었어요. ( 예. )

언론에 보도되진 않지만 성명도 이제 발표하고 그럽니다. ( 예. )

성명에서 이 자유 북한인 협회가 요구했던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인권유린행위를 중지해라. 그리고 재발 방지해라. ( 예. )

그 다음에 인간을 정보가치라는 상품으로만 대하지 마라. ( 예. )

인간적 차별을 중지하라는 거죠. ( 예. )

그 다음에 기초적인 생계를 위해서 제도를 정책적으로 보장해라. ( 네. ) 그 다음에 지금 자유 북한인 협회 만들었는데 와해 책동을 하니까 ( 네. ) 이 조직에 대한 국정원의 와해 책동을 중지해라. ( 네. ) 네.

이런 정도의 이제 요구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김종배: 잠깐만요. 이 성명이 근데 언론에 보도가 안됐다고요? (안 됐죠.) 왜요?

오창익: 아니, 어, 그러니까 두 가진데요. 하나는 탈북자들이 어떻게 해야 언론에 보도시키는지를 몰랐고요. 이 분들이. ( 예, 예, 예. ) 두 번째는 이제 국정원에서 막기도 했고. 두 가지가 이제 같이 진행이 되었는데요. ( 어...그래요. ) 국정원에서 막 적극적으로 막는다 하더라도 이, 대한민국 현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고 언론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 예. ) 보도자료를 쓴다든지 이런걸 잘 모르신 거예요. ( 응, 예. ) 어떻게 보내야될지.

김종배: 언론이 고의적으로 보도 누락한 건 아니고요?

오창익: 아 그렇죠. 그때 이미 98년이어도 한겨레도 있고. ( 네. ) 말지도 있고. ( 네. ) 그래서 이, 시사통은 없었지만. ( 예. )

그래도 숨통같은 역할을 해준 언론매체가 이, 존재할 때 였거든요. ( 아, 언론도 몰랐던 거군요? ) 그렇죠.

( 예, 예, 예. ) 그...그 분들이 저한테 찾아왔었어요. 98년에. ( 아...예, 예, 예. ) 12월. 에... 아이고 뭐 얘기 들어보니까 거짓말같더라고요. ( 네. ) 그런데 저희가 이제 인권 단체 활동을 하면서 이런 사연을 가진 분들이 많이 오는데 저희 나름대로도 검증을 합니다. ( 네. ) 이를테면 따로 따로 불러서 진술을 들어본다든지. ( 예. )

진술을 또 반복해서 들어본다든지 하면 ( 예. ) 뭐, 법정에서도 사실 그런식으로 가리는 건데요. 아, 뭐랄까 진술의 일관성이라든지 ( 그렇죠. ) 이런걸 통해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게 되요. ( 그렇죠. ) 거짓말 하는게 한계가 있어요. ( 그렇죠. ) 아침에 물어봤다 저녁에 물어보면 거짓말이 좀 들통나기도 하고 이렇습니다. ( 그렇죠. 예. )

이분들 진술이 되게 일관되고 믿음직했어요. 그래서 다른 몇 개의 인권 단체들에게 제안을 해가지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 예. )

이 문제를 거론했죠. ( 네. ) 99년 1월 15일의 일입니다. ( 네. ) 저는 그때 이제 명동에서 일했는데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 예. ) 어유, 뭐 난리도 아니었어요. 국정원 직원들이 명동 도처에 쫙 깔리고 뭐, 이곳저곳에서 탈북자들 못가게 하고 몸싸움하고 저는 나가서 뭐, 국정원 직원들 쫓아내고 ( 네. ) 이러고 기자회견 겨우 열었습니다. ( 네. )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그런 내용들을 그, 시민들에게 알린거예요. 충격적이었죠.

김종배: 이게 그러니까 최초로 공개가 된 사례잖아요.

오창익: 네. 최초였죠. 그래서 1월 15일에 기자회견했는데 15일 말고 16일자 신문에 보면 한겨레부터 조선일보까지 다 사설을 쓸 정도로 중요한 ( 아...) 네. 뉴스였습니다.

김종배: 어, 조선도 사설을 썼어요?

오창익: 저희가 한 일 중에서 한겨레부터 조선까지, 조선부터 한겨레까지가 아니라. ( 예. )

한겨레부터 조선까지 사설을 다 쓴 게 몇개 있습니다. 뭐, 예. ( 예. )

많진 않습니다. ( 하하하.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봐도 되게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한거죠.

김종배: 어…이건 인권유린이다. 이런 논조로 쓴거죠?

오창익: 인권문제라고 해서 한겨레가...아니 저, 저, 조선일보가 다 사설을 쓰진 않지만 ( 예. ) 자기들이 그래도 여태까지 해온 그 이야기의 뭐, 뭐랄까 나름의 일관성 ( 예. ) 뭐 이런거죠. 인권문제라고 해서 쓴겁니다. ( 음... ) 인권침해.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 예. ) 사실을 밝히고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라는 거예요. ( 예, 예. ) 그, 국정원의 반응도 뭐, 실시간으로 나왔습니다. ( 네. ) 이땐 이미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다음이에요. ( 99년이니까 그렇죠. 예, 예. ) 과거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 예. )

그렇지만 탈북자들에 대한 가혹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예. )

이거는 최근에 정착금 문제... 이런거로 불만을 가진 탈북자들이 사실을 과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 네. ) 이렇게 합니다. ( 예. )

하지만 파장, 파장은 컸고요. ( 예. )

또 정부의 화답도 컸습니다. ( 음... ) 이건 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어...조사과정에서 구타 등 가혹 행위가 거의 없어졌어요. ( 어...예. ) 그래서 황장엽 씨나 황장엽 씨랑 같이 들어온 김덕홍 씨나 이런 사람들이 자유 북한인 협회를 평가하는게. ( 예. )

탈북자들이 두들겨 맞지 않도록 해줬다. 저분들이. ( 아, 예, 예. ) 용사들이다. 뭐 이런 표현도 하고 그렇습니다. ( 예. )

욕설도 거의 사라졌어요. ( 예. )

나중에 다시 부활합니다만. ( 예. )

하여튼 김대중 정부 때 거의 사라졌어요.)

김종배: 나중에 부활할 때가 언제 부활한 거예요? (MB, 박근혜...뭐 아시면서 그러세요.) 이명박 대... (간첩도 만들어내고 그러잖아요.) 제가 그걸 여쭤보려고 했던게 유가려 씨가 언론에 인터뷰한거 보면 뭐, 폭언에 폭행에...뭐 이런게 있었다고 했거든요.

오창익: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부활하는 겁니다. 없어졌다가. ( 부활은 MB 정부 때? ) 없어졌다가 부활하게 되고 ( 네. ) 합동 신문 센터에서 조사받는 기간도 줄어들었다가 늘어나게 되고 이럽니다. ( 네. ) 또 주목할만한 것이 '하나원'이 생겨요. 탈북자 정착 교육기간이. ( 음, 네. ) 그동안은 대성공사 합동 심문 센터에서 조사하고 뭐, 교육 조금 했어요. 근데 교육 위주가 아니죠. 지금 이제 조사하고 두들겨 패는게 위주였고 ( 음. ) 그러다가 하나원이 생기고

김종배: 예. 여기서 한국 현실이 이렇고...예를 들어서, 예를 들어서 인제 뭐, 직능 이런거 파악해서 직업 교육 비슷한 것도 시켜주고 이러나요? 하나원에서?

오창익: 그럼요. 자본주의 교육 같은 거 ( 네. ) 하다못해 지하철 타는 법... ( 예. ) 뭐, 은행 가는 법... ( 네.) 뭐 이런 것들 알려줄게 되게 많습니다. (예, 예, 예, 예. ) 하나원에서 교육을 굉장히 많이 해요. ( 예, 예. ) 어...뭐, 국가 교육도 하고... ( 네. ) 하다못해 애국가도 1절부터 4절까지 배워야될 거 아닙니까. ( 그렇죠. ) 그렇죠?

김종배: 대한민국 국민이 됐으니까.

오창익: 뭐, 태극기 그리는 것도 배우고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그런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초등학교 1학년부터 천천히 스며들어서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태정태세문단세를 다 외울 정도로 이제 수준이 오르게 되지만 ( 네. ) 탈북자들은 초등학교 1학년 과정부터 하나하나씩 이렇게 배워야될 필요가 있는거예요. ( 아, 예, 예. ) 그러니까 정착 교육 기관은 반드시 필요한거죠. ( 그렇죠, 그렇죠. 예. )

그러니까 정착 교육 기관이 생기고 이제 이제 탈북자들에 대해서, 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이제 전환되게 되는 겁니다. ( 오, 좋은 일이네요. ) 네.

그리고 정착금도 당장 세 배 가까이 올라가요. ( 오, 예, 예. ) 그리고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가 될 수도 있게해주고. ( 예. )

또...취업을 막 촉진하면서 지금은 없어졌습니다만 기업이 취업을 시켜주면 탈북자를, 2년 동안은 정부가 월급을 대신 대주는 방식... ( 어... ) 이런 것도 하고요. ( 네. ) 당시 IMF 시절이어서 다 어려웠는데 생계형 창업자, 창업대, 창업을 하면 신용보증기금에서 생계형 창업 자금 대출을 해줬어요. ( 아, 예... ) 이거를 탈북자들에게도 확산합니다. 그래서 1억원까지. 99년에. ( 아... ) 큰 돈이었습니다. ( 그럼요. 예. )

예, 그...담보없이. 아주 저리로 이자를 적게 내가지고 이제 창업자금 대출해줘요. ( 예. )

그래서 탈북자들이 99년 말에 식당을 많이 엽니다. ( 아... ) 제가 99년 말에 정말 식당 개업식 많이 돌아다녔어요. 탈북자들 때문에. ( 하하하하 ) 홍진희 씨도 강남구 청담동에 라는 금강옥이라는 식당을 내고요. ( 어, 예.) 그 다음, 자유 북한인 협회 회장하던 한창권 씨라는 분도 계신데 그 분도 뭐, 강동구 길동에 식당을 내고 그럽니다. ( 예...) 아... 나중엔 다 망했습니다. 좀 문젠데 하여튼. ( 예. )

외국에도 다녀올 수 있게 됐습니다. ( 어, 예. ) 여권도 안 내줬는데 여권도 내주게 되고 ( 예. ) 하여튼 이런 일들이 다 한참 뒤에 벌어진 일이고요 ( 네. ) 기자회견 직후에 벌어졌던건 국가정보원, 국정원의 비열한 복수극입니다. ( 아...) 악랄했어요. ( 예. )

제가 악랄이란 단어를 쓰는데 정말 악랄했어요. ( 예. )

안녕하세요.

청년 논객 노정태입니다.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이 진보 논객들과 함께 살아온 우리의 한 시절. 우리가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그 시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보고자 책을 펴냈습니다. <논객시대> 인문 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반비에서 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폭력을 넘어서> 오창익입니다. 우리시대의 예언자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를 보내드립니다. 국가는 신성한 존재일까요? 국가의 정책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될까요? 국가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과 불의를 넘어서려는 뜻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답을 줍니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를 보십시오. <기억하라, 연대하라>와 함께 공권력의 의미, 사람다운 삶의 의미를 찾기 바랍니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 삼인출판사.

오창익: 기자 회견이 끝난 다음에요. 뭐, 이렇게 세상은 이 문제 때문에 정말 고민하게 되고 어, 이런 일이 있었어? 세상에. ( 네. ) 어,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대한민국이. 뭐 이런 사회적 여론이 형성됐는데, 희한하게 자유 북한인 협회 사람들이 안 찾아오는 거예요. 왜 그럴까? 근데 보통 인권 운동 하다보면 어떤 문제가 이렇게 터지면 또 잘 해결되는 방향이면 피해자나 당사자들이 안 오시는 경우도 있어요. ( 아, 예. ) 그래서 무소식이 희소식인 경우가 되게 많습니다. ( 음, 예. ) 그냥 대충 그러려니 했습니다. ( 예. )

두어 달쯤 지난 다음에 자유 북한인 협회 한창권 회장이 찾아왔어요. ( 예. )

어떻게 지냈냐고 그동안...물어봤더니 감옥에 갔다왔다는 거예요. 구치소에. ( 예? ) 무슨 얘기야? ( 예. )

그랬더니 회장, 부회장, 그 다음에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이 주인공 홍진희 씨 ( 예, 예. ) 홍보 부장이 전부 다 구속되어서 감옥에 갔다왔다는 거예요. ( 허허허...왜요? ) 어떻게 된 건가. ( 예. )

국정원의 보복이었습니다. ( 아... ) 자, 1차 표적은 홍진희 씨였어요. ( 예. )

왜 홍진희 씨가 표적이 됐냐하면 그 문제의 1월 15일 기자회견에서 그 가족들 얘기를 다 한겁니다. ( 아... )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거. ( 예, 예, 예... ) 인간쓰레기였고 그 쓰레기가 안 되기 위해서 어머니를 모셔왔는데 그날 두들겨 맞았다. ( 예. )

그러니까 언론이 굉장히 조명을 했어요. 이 양반에 대해서도. ( 예. )

한겨레 신문 따로 박스로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하고 그래요. ( 예, 예. ) 그러니까 이제 홍진희가 1차 표적이었는데 어떤 식으로 보복을 하냐면 이래요. 홍진희 씨가 사귀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연상의 여인인데. ( 예, 예. ) 이 여성에게 홍진희 씨를 고소하라고 합니다. 강간 혐의로. ( 강간 혐의로? ) 네.

고소를 유도해요. ( 예. )

그리고 3월 3일에 검찰이 이제 홍진희 씨를 강간 치상 뭐, 횡령 혐의로 구속한 거예요.

김종배: 이게 99년 1월에 기자회견했었고, (네.) 99년 3월 3일에? (네.) 예.

오창익: 어...뭐,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냐하면 이런겁니다. 홍진희 씨가 사귀던 여성이 있었어요. 조씨라는 분인데. ( 예. )

1월 15일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일주일 후인 1월 22일에 홍진희 씨를 강간 치상하고 횡령 혐의로 고소해요. ( 예. )

아...근데 고소하기 이틀 전에 자신을 통일부 사무관이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를 했어요. ( 예. )

어… 홍씨를 고소할 생각이 있냐. 이런거를 물어봐요. 어떻게 알죠? 이 사람이. 1월 초에 홍진희 씨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몇대 맞았대요. ( 예. )

뭐, 때리면 안 돼죠. ( 예. )

억울해가지고 이제 평소 잘 아는 이북오도민 간부에게, 오도민회 간부에게 이런 얘기를 하소연을 했는데. ( 예. )

그렇지만 이제 화도 풀렸고 ( 네. ) 또 홍진희 씨도 싹싹 빌고 그래서 ( 네. ) 99년 말에도 가정폭력이나 뭐 데이트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을 때니까 ( 예. ) 본인도 이제 없었던 일로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김종배: 아...이 여성도 탈북자였나요?

오창익: 아니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 예, 예, 예. ) 아...그런데 그, 통일부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집에 찾아온 거예요. ( 예. )

일행과 함께 찾아왔어요. ( 예, 예. ) 그 통일부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이 홍진희 씨의 여자 친구에게 들려준 얘기는 놀라웠습니다. ( 예. )

서준식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당시 인권 운동 사랑방 대표지요. ( 어우...예, 알죠. 예, 예. ) 서준식이 홍진희와 친하게 지낸다. ( 네. ) 아, 요번에 기자회견도 홍진희가 서준식의 코치를 받아서 한거다. ( 예. )

서준식은 북한의 영웅이다. 간첩이다. ( 예. )

실제로 서준식 관련 영화가 북한에서 만들어 지기도 해요. ( 아... ) 서준식 씨는 형인 서승 씨와 함께 재일 교포 유학생으로 서울대 유학하고 있을 때, ( 예. ) 71년이죠. ( 그렇죠. ) 박정희, 김대중, 김대중, 박정희 대통령 선거 때 직전에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을 터트리는 겁니다. ( 예. )

그래서 서승 씨는 19년, 서준식 씨는 17년 동안 감옥에 있어요. ( 그때 고문 당하고. ) 아, 그럼요. ( 예. )

네.

그, 뭐 이거 완전히 전형적인 조작 간첩사건이죠. ( 그렇죠. ) 그런데 북한에서 이걸 영화로 체제 선전용 영화로 만들었다고 그래요. ( 아... ) 이 영화에서는 서준식 씨가 죽는거로 나온다고 그러더라고요. ( 예. )

서준식 씨가 평소에 기분 되게 나빠했어요. 멀쩡히 살아 있는데... ( 예. ) 하여튼.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뭐냐면 북한에서 겨우 탈출해 왔는데 북한 간첩과 어울리니까 이렇게 되면 국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넣을 수밖에 없다. 반공법 이런거로. ( 네. )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된다. ( 네. ) 냅둘거냐. 이렇게 한 거예요. 그런데 조씨라는 이 애인이 굉장히 좀 선량한 분이에요. ( 네. ) 진짜 사랑하고. ( 예. )

겁이 덜컥 나잖아요. ( 그렇죠. ) 그러니까 이, 어떻게 해야되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이 사람들이 제안하는게 홍진희를 고소를 해놔라. 그러면 검찰에 잠깐 구속시키도록 하겠다.

김종배: 그러니까 서준식 씨와 떼어놓기 위해서?

오창익: 떼어놓기 위해서. 그러면 ( 네. ) 그게 훨씬 낫지 않냐. ( 예. )

이런 거예요. ( 예. )

몇달 감옥에 갔다 오면 되는거 아니냐. ( 예, 예. ) 그럼 자기들이 도와주겠다. 이런 거예요. ( 예. )

그리고 이 통일부 사무관은 뭐, 다 도와줘요. 이를테면 어...근처 병원으로 데려가서 진단서도 끊게 해주고. ( 네. ) 진단서 비용도 대신 내주고. ( 예. )

또 고소장 쓰러 가자고 해서 변호사 사무실에 간 거예요. 뭐, 북부지검 앞에. 그러니까 가니까 이제 이미 고소장이 다 써있는 거예요. ( 허...예. ) 그리고 거기 사인만 하면 되는 거죠. ( 예. )

그리고 뭐, 인지 때도 다, 저, 뭐야... 사무관이 다 내주고 이런 겁니다. ( 통일부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결국 국정원 직원이었죠? ) 그렇죠.

( 예. )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도 그 사람이 다 데리고 다니고. ( 예, 예, 예. ) 승용차로 모시러 다니고. ( 예. )

이래서 이제 고소한 다음에 수사를 거쳐서 이제 홍진희가 구속됩니다. ( 예. )

근데 상황이 좀 이상한 거예요. 성폭행이잖아요. 강간 치상. ( 그렇죠. ) 횡령까지 있어요.

김종배: 횡령은 또 뭐예요?

오창익: 아, 횡령은 뭐냐면 그...저, 뭐야 반지가 있었어요. 조씨의 비취반지가 있었는데. ( 예. )

그거를 홍진희가 이제 저, 전당포에 맡겨 놓고 어...100만원이 잡혔다는 거예요. ( 아... ) 그걸 횡령으로 한 거예요. ( 예. )

근데 뭐 하여튼 연인 관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래요. 본인들이 다 그렇게 얘길 해요. ( 예. )

그러니까 그거를 이제 범죄로 만들 수 있는 거죠. 내 허락 없이 자기가 가져가서 맡겼다. 이렇게. ( 예, 예, 예. ) 하여튼 그런, 그런 얘기입니다. ( 예. )

단순히 겁만 줘가지고 간첩과 떼어놓을려고 했는데 상황을 보니까 어, 홍진희 씨가 징역 15년 이상 살 수도 있고 무기도 된다는 이런 얘기를 들은 거예요. 이 양반이. ( 예. )

그러니까 큰일 난거지. 앗 뜨거워라. 이런 거예요. ( 예. )

그래서 고소를 취사하려고, 취하하려고 그랬어요. ( 예. )

그러니까 사무관 얘기가 만약 당신이 고소를 취하하면 당신 무고죄로 당신이 감옥간다. 이런 거예요. ( 예. )

하... 그런데 나중에 이 사무관이 국정원 직원이란걸 알게 된거죠. ( 아... ) 동료 탈북자를 통해서. ( 이 조씨가. 예. )

예, 조씨가 이제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 예. ) 국정원 직원이라는걸 알게된 거예요. ( 예, 예, 예. ) 아...어떻게 해야되나...그래서 저희하고 이제 연결이 됐고 ( 예. ) 또 저희가 한겨레에 이제 취재하도록 해가지고 이제 취재도 하고 그러는데요. ( 예. )

아, 다 확인합니다. 이를테면 그, 사무관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걸으니까 그게 국가정보원의 탈북자 담당 파트였다는걸 확인했고요. ( 예. )

뭐, 전화걸으니까 뭐, 부인하고 뭐, 이사갔다고 그러고 뭐, 이러고. ( 예. )

그 다음에 이제 그...홍씨의 애인인 조씨와 사무관이라고 하는 국정원 직원들이 만나는 장면도 한겨레 기자가 다 촬영합니다. ( 아, 예. ) 국정원 직원이 우리를 미행한게 아니라 거꾸로 우리가 국정원 직원을, 직원을 미행해서 증거를 다 확보해놔요.

김종배: 그거 김아영 씨 사건하고 비슷하네.

오창익: 네...그래서 아...또 조씨를 통해서 이게 꼬드겨가지고 저, 고소를 조작하고 ( 예. ) 고소하라고 압박했다. 이런거도 맞고. ( 예, 예, 예. ) 그 다음에 이제는 신문사 통해서 국정원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면담 요청을 합니다. 어떻게 된거냐. ( 예, 예. ) 이때는 이제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 때니까 국정원에서도 면담에 응해요. ( 네. ) 탈북자 담당 직원들이 나옵니다. 조씨 모른다고 그래요. 만난 적도 없다고 그러고. ( 예. )

그리고 홍진희 씨를 구속시키는 게 국정원에 무슨 이익이 있냐 이렇게 얘기해요. 또 멋있는 말을 하는데 피해자를 꼬드겨가지고 고소하게 했다는 발상 자체가 ( 예. ) 국가정보원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우린 이미 다 증거를 확보해놨고 ( 예. ) 그 말을 한 직원이 조씨를 만나고 같이 식당에서 뭐, 갈비도 먹고 이런 것도 다 확인했어요. ( 예. )

사진도 있고. 이게 이제 한겨레21에서 99년 4월 22일치에 커버스토리로 다뤘는데요 ( 예. ) 한겨레21 독자 중에서 혹시 이 커버스토리가 사람이 아니라 코브라가 이렇게 혀를 내밀고 있는 장면의 사진이 하나 있어요. 그거 희한한.

김종배: 그거, 코브라를, 국정원을 코브라에 비유한 겁니까?

오창익: 네, 네. 제목이 <국정원의 비열한 복수극>입니다. ( 예, 예. ) 하…

김종배: 그래서 홍진희 씨 어떻게 됐습니까?

나왔죠. 이제 소를 취하해가지고 나왔어요.

김종배: 예, 예, 예, 예.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러면 얼마나 있었어요. 구치소에는 그러면?

오창익: 아, 뭐, 한...달 조금 넘었나. ( 예, 예, 예. ) 한달 쯤 있었어요. ( 예, 예. ) 이것 뿐만이 아니라 그, 회장인 한창권 씨, 부회장인 뭐, 유재희 씨, 이런 양반들도 이제 구속이 되는데 폭행 사건에 연루되요. 탈북자들이 와가지고 시비 걸고 이제 ( 예, 예. ) 서로 그래서 약간 주먹다짐을 하는데 ( 예. ) 또 고소해가지고 들어가게 되고 이런거고요. ( 예, 예. )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양반들이 안보 전문 강사직 이런거 하잖아요? ( 예. )

여기에 다 제외됩니다. 박탈당하는거고요.

김종배: 일거리가 끊겨버리는 거잖아요.

오창익: 네, 그 다음에 이, 좋은 방법은 아닌데 대형 교회들이, 여의도 순복음교회같은 데들이 그렇게 많이 하는데, 탈북자들 보고 교회 예배에 출석하라고 그래요. ( 네. ) 그러면은 뭐, 매주에 나가면 한 달에 네 번 또는 다섯 번 나가잖아요? 그럼 한 달에 50만원씩 이렇게, 줍니다. ( 아, 진짜요? ) 어, 그럼요. ( 왜요? ) 아니 그러니까, 하나는 자기들이 탈북자 돕는다 이런 거도 있고 탈북자들도 우리 교회 나온다 이런 것도 있고. 두 가지죠.

김종배: 하...아, 돈을 준단 말이에요? 와서 예배봤다고? (지금도 줘요.) 십일조를 내는게 아니라?

오창익: 네, 그렇죠. ( 나, 참. ) 아, 모르, 모르세요? ( 예. )

하여튼 그런데 ( 예. ) 이런 것도 이를테면 취소하는겁니다. 치사하게.

김종배: 그것까지 끊어버렸다?

오창익: 예.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 예. ) 교회 나오면 50만원 주는 거, ( 네. ) 이, 뭐...뭐라고 그럴까요. 보조금이랄까요. ( 네. ) 이거도 취소됐고. ( 예. )

그 다음에 심지어 이, 생계 보조금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많지 않아요 근데. ( 예. )

이게 통일부에서 주는 건데 매달 25만원에서 30만원밖에 안되는데 정말 그, 생계비죠. ( 네. ) 이것도 이제 통일부에서 끊어버리게 되고...뭐, 이럼, 이럼, 이럽니다.

김종배: 완전히 다 끊어버렸네. (아, 그렇죠.) 예.

오창익: 그러니까 뭐, 보복이 아주 가혹한 거예요.

김종배: 완전히 손가락 빨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오창익: 네, 가혹한 보복이 있다고 이제 언론을 통해서 알리게 되면서 이런게 풀리긴 하지만. ( 예. )

그래도 가혹한 보복을 받습니다. ( 예. )

아...지금도 그렇다고 그러죠. 어제...저... 정청래 씨죠. ( 예. )

민주당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가 ( 간사죠. 예. )

국정원 2차장을 만났더니 ( 예. ) 국정원 2차장이 하는 얘기가 국가정보원 검찰 간첩조작사건에서 ( 네. ) 문서 위조는 없었다. ( 어제 그랬대요? ) 어제 그랬다는 소식이 오늘 아침 뉴스로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 네, 네. ) 국정원은 그런 일 하지 않는다.

김종배: 아, 또 그런 일 하지 않는다?

오창익: 그럼요. 그러니까 일관되요 이런 것들은... ( 예. ) 참 세월이 지나도 ( 예. ) 뭐, 역사는 비극으로 반복됩니다. ( 예. )

하여튼 나중에 이제 조금 잘 풀려서 식당도 냈는데 식당이 망했어요. ( 아... ) 에...그래서 또 홍진희 씨가 뭐, 카드깡도 하고 뭐 이러면서 좀 어렵게 산다는 얘기가 어디서 어렴풋이 들려왔습니다. ( 예. )

그러다가 홍진희 씨 소식을 다시 듣게 된거는요. 몇 년 있다가 2004년 11월이었어요. ( 예. )

2003년에도 많이 들었습니다. ( 예. )

고 즈음에 어떤 일들이 있었냐면,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데에 뭐, 캐나다 대사관, 일본 대사관, 또 뭐, 국제학교 이런데에, 그러니까 저, 치외법권 지역이죠. ( 네, 네, 네. ) 이런 데에 탈북자들 수십 명이 막 뛰어들어가고 ( 예, 예. ) 담 넘어 들어가고 그런 걸 화면으로 찍는 것들 보셨죠.

김종배: 네. TV에도 여러 번 뉴스에도 나오고.

오창익: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탈북자 문제로 국제적으로 관, 관, 관심이랄까 ( 예. ) 여론을 환기시키는 그, 효과도 있었지만 ( 예. ) 굉장히 위험한 작전이기도 했습니다. ( 예. )

왜냐면 애, 갓난애 들쳐 업은 엄마가 그 담을 넘어가고 막, 넘어가다 잡히기도 하고 막 그랬죠.

김종배: 그리고 막 뛰어 들어가다가 넘어져서 고꾸라지는 장면도 있었고 그랬죠.

오창익: 그렇죠, 그렇죠. 그리고 이제 중국 공안에 체포되기도 하고. ( 네, 맞아요. 예. )

이런 위험한 일들을 했는데 이런 일들을 홍진희 씨가 하게 된 거예요. ( 이른바 기획 탈북 일을 한거죠? ) 기획 탈북 브로커를 한 겁니다. ( 아, 예. ) 아이고. 그래서 중국에 살면서 기획 탈북 브로커를 하다가 들켜가지고 쫓겨나요. ( 예. )

추방을 당합니다. ( 예. )

그리고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이게 ( 네. ) 조치가 되죠. ( 예. )

그런데 또 일본을 통해서 다시 중국에 밀입국을 해요. ( 예. )

그래서 기획 탈북 일을 합니다. 기획 탈북 일이 왜 하냐하면 뭐, 홍진희 씨 마음 속에 이제 인도주의적인 어떤 것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두당 얼마씩 되거든요. ( 아... ) 들어오게 되면.

김종배: 아...이른바 수수료 받는다라는 그... (그럼요.) 예.

오창익: 그러니까 탈북자와 관련된 데에 정말 인도주의, 정말 사람에 대한 사랑, 또, 이, 난민 같은 분들 아닙니까. 쫓겨나고 디아스포라같은 분들에 대한 애정으로 하는 분도 약간, 조금 있어요. ( 예. )

근데 많은 분들은 사실은 돈 놓고 돈 먹기 방식을 많이 합니다.

김종배: 그렇게 탈북시켜서 국내에 들어오면 저 정착지원금이라는게 나오니까... (네, 네.) 거기서 얼마 떼서 나 다오. (그렇죠.) 그런식으로 이제 하는 거죠?

오창익: 근데 그게 말로 하면 안되니까 (네. ) 처음엔 내가 너를 탈북시켜준다고 할 때 벌써 이제 저, 지불 각서 같은거 씁니다. ( 예. )

그래서 기획 탈북자와 탈북자, 예비 탈북자, 탈북자죠. 탈북, 한국에 들어올 탈북자가 채권채무관계로 엮이는 거예요. ( 네. ) 뭐, 그, 돈 2천 만원을 꿨다, 꿔줬다 이런 식으로. ( 예, 예. ) 그런, 그런 식으로 합니다. 홍진희 씨가 참 이렇게, 이렇게까지 되요.

김종배: 그러면 결국은 돈 받고 기획 탈북 일을 하게 된건 (예.) 금강옥이라는 식당 망하고... (그렇죠.) 국내에서 돈 벌 수 있는 길은 거의 다 막히고.

오창익: 네, 네, 네. 좀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김종배: 그래서 결국은 거기까지 간 건가요.

오창익: 그렇게라도 먹고 살아야되니까 ( 예. ) 뭐...그런 일을 해요. 꼭 나쁜 일이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 네, 네, 네, 네. ) 뭐, 뭐, 뭐...땅파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 예. ) 어느정도 비용도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 예, 예. ) 그러다가 이 양반이 2004년 11월에 중국에서 체포되가지고요. 그, 한 번은 추방됐다가 다시 중국에 들어가서 그 일을 또 하니까 이번엔 체포되서 7년 형을 받습니다. ( 어이고, 예. ) 7년 형. 중국 감옥은요, 무서워요. ( 예, 그렇다면서요? ) 네.

대한민국 감옥보다 되게 열악합니다. ( 예. )

이게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수준을 보여주거든요. ( 그렇죠, 교도소가 원래...) 대한민국 감옥보다 유럽의 감옥이 훨씬 좋고, 유럽도 중유럽보단 북유럽의 감옥이 훨씬 좋습니다.)

김종배: 예, 근데 미국 교도소는 별로... (엉망진창이죠.) 그렇죠.

오창익: 인권 수준이 낮으니까 그렇죠. ( 예. )

미국 교도소는요, 뭐, 한 50% 이상이 민영교도소예요. 교도소 회사가 운영해요. ( 네. ) 회사의 목적은 뭡니까. 영리잖아요. 영리. ( 그렇죠. ) 그러니까 더 많은 재소자가 들어와야 되고, 재소자가 더 오래있어야 되는거예요. ( 참, 아이고... ) 그, 미국 교도소 중에는 외신에서 한 번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체육관 같은 데. ( 예. )

진짜 체육관이에요. 큰 체육관에 침대가 쫙 있는거예요. 난민, 무슨, 임시 수용 시설처럼. 교도소 방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감방이 아니라. 그러니까 한 번에 5백명이 동시에 자는 그런 교도소도 있어요.

김종배: 아 무슨 이재민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

오창익: 그러니까요. 비용을 낮추잖아요. ( 야, 심하다. 진짜... ) 직원들 다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되고. 그쵸? ( 예, 예. ) 소장이나 과장만 월급 두 배로 주고 이런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 예. )

호주,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경우에 민영 교도소 한 10%, 영국도 이렇게 되는데. 어...하여튼 엉망진창입니다. ( 예. )

그런 나라들은. 하여튼. 이제 본론을 얘기해야지요. 중국 감옥에서 7년 동안 갇혀 있어야 된다는 건 굉장히 가혹한 일입니다. ( 그러게요. ) 그리고 이 분이 좋은 일도 많이 한 거예요. 사실 한국에 들어오기 어려운 분들을 탈북할 수 있도록 이렇게 돕는 일도 했으니까요. ( 예. )

7년 형을 받았지만 7년 다 살지는 않고 6년 만에 나옵니다. 가석방으로. ( 예. )

중국에서 이제 추방되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죠.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 예, 예, 예. ) 근데 이쯤 되니까요. 정말 한국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거예요.

김종배: 정나미가 다 떨어져 버린거예요.

오창익: 다 떨어졌죠. 한국에 들어와서 부터 이제 대성공사에서 고문 당해...어쩌구... ( 네. ) 그리고 이걸 문제제기 했으니까 또 다시 그것 때문에 감옥 가야 돼... ( 그렇죠. ) 애인의 고소 취하로 나오긴 했지만... ( 예. ) 식당도 열었지만 생활 어려워져... ( 네. ) 자본주의 경제 실태에 정착하고 적응하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식당 일 하는게 대한민국 국민도 대한민국에 살았던 사람들이 해도 열에 아홉이 망하는데...)

김종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지금 뭐 가게했다가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그럼요.) 예, 예. 그게 힘든 일이지요. 특히 식당 같은 경우는 자영업 중에서 폐업률이 가장 높은 거 아닙니까.

오창익: 그럼요. 뭐, 통계 여러가지가 있는데 2년 내의 폐업 비율이 92%까지 올라가고 그러는데요. ( 그러니까. 예. )

하여튼. 그러니까 뭐, 좀 답답하고 일단 정나미 떨어지고 이런 거예요. 만정이 떨어진 이런 상태입니다. ( 예. )

그렇지만 뭐, 돈도 없고 뭐, 이런 상태죠. 아...그래서 어디든 가고 싶어해요. 한국에 왔다가. 근데 밀입국을 한 적이 있잖아요. ( 그렇죠. ) 일본 통해서 중국으로 그냥 몰래 들어갔으니까. ( 아... ) 여권 발급이 제한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아하, 예, 예... ) 그래서 홍진희 씨가 2011년 3월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출해요. ( 예... ) 그러니까 내가 탈북자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억울한 고생을 했는데...그건 맞아요. 그런 측면이 굉장히 많죠. 그런데 여권마저 안 내주는 거는 인권 침해다. ( 네. )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요 문제를 가지고 외교통상부에다가 이제 권고를 합니다. 협조 공문 발송을 해주고 그래요. ( 아... ) 여권을 줘라. ( 네. ) 그래서 홍진희 씨 여권이 나옵니다. 단수여권으로. ( 아... ) 이걸 발급받고 곧바로 일본으로 출국했어요. ( 예. )

그때 이제 이유는 뭐 가족이 일본에 있는데 아프다. 이런거였는데. ( 예. )

아...지금 제가 다른 탈북자들한테 들으니까 홍진희 씨 일본에서 영국으로 갔다고 그러더라고요. ( 아... )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그래요.

김종배: 아, 그래요? 탈북자 중에 영국으로 간 분들이 꽤 된다면서요?

오창익: 뭐 한 3-400명 될 거 같아요. ( 예, 예, 예. ) 그러니까 이게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입니다.

김종배: 그러면 그 애인 조씨하고는 결국 안 맺어졌습니까?

오창익: 어, 그, 그...오래 사귀지 못했습니다. ( 아, 그래요? ) 아, 왜냐면 또 상처가 남잖아요. ( 그렇죠. ) 그리고 그 조씨 입장에서도 얼마나 미안합니까. 이 분들은, 그러니까 홍진희 씨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귄거예요. 중국 루트로 이렇게 탈북하다가 마지막에 홍콩에 있었는데 ( 예. ) 이 분이 항공사 여승무원이었어요. ( 어, 예... ) 그래서 홍콩에 있다가 만나게 된거예요. ( 아... ) 그러니까 좀 깊은 인연인거죠.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리고 홍콩에 이제 국적도 없고 탈북자이고 대한민국에 못 들어온 신세로 있는 홍진희 씨 입장에서는 정말 그, 고마운 사람이었고 이랬는데. 국정원이 개입하면서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도 ( 상처받은 거죠... ) 깨버린 겁니다.

김종배: 가족은 어떻게 됐어요?

오창익: 아, 가족들도 지금 하나는 뭐, 한국에 있고 하나는 영국에 있고 뭐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 예. )

이게 다 풍문으로 들은 얘깁니다. ( 확인이 안 된거네요. ) 네.

홍진희 씨가 영국에 있다는 건 여러 명이 동시에 얘기하니까 아마 사실인 것 같은데요. ( 예. )

확실한건 대한민국엔 없습니다. ( 예. )

그, 이, 파란만장한 삶이잖아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태어나서 중국을 떠돌다가 홍콩을 통해서 대한민국에 들어왔다가. 대한민국에서 인권 침해를 당할 만큼 당하고 교도소에, 구치소에도 갔다가 다시 나와서 ( 참... ) 일본갔다가 중국가서 또 중국에서 6년 동안 꼬박 6년이에요. ( 네. ) 교도소에, 감옥에 갇혀있다가 다시 한국에 왔다 일본 갔다가 이제 드디어 영국까지 간... ( 네. ) 파란만장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인데요. 홍진희 씨의 삶은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 ( 그렇죠. ) 이런게 사실 대한민국이, 이 대한민국에 들어오고 있는 탈북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탈북자 정책이라는 것이 정말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뭐, 이런 생각이 들고요. ( 어, 참... ) 뭐, 이, 홍진희 씨의 케이스를 생각한건. 최근에 이제 간첩조작사건의 유우성 씨의 경우에도. ( 그렇죠. ) 아...유우성 씨와 그 일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건지... ( 그러게요. ) 저는 그, 가장 답답한 것 중에 하나가요. 유우성 씨가 이제 무죄를 선고받을 거예요. 조작이니까 무죄지요. 당연히. 무죄를 선고받은 다음에 국가정보원이 또 비열한 보복을 해가지고 유우성 씨를 중국으로 추방할 가능성이 저는 있을 것 같아요.

김종배: 아니, 이미 언론 지면에 추방 얘기가 나오던데요.

오창익: 그러니까요. 슬슬 흘리잖아요. ( 예, 예. ) 이건 막아야 됩니다. ( 예. )

그렇죠?

막아야 되지 않습니까? ( 예. )

그렇게 고생했으면 ( 예. ) 우리가 잘 모셔야죠. ( 아... ) 그래서 유우성 씨의 삶은 또 앞으로 어떻게 될건지에 대한 고민이 있고요. 이 방송 마무리하면서 ( 예. )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 또 탈북자 간첩 사건이 터졌어요. ( 네. ) 오늘자 신문에 보도가 되는 겁니다. ( 예. )

40세 홍씨라는 분인데... ( 네. ) 뭐, 진작에 들어와가지고 2008년에 "일반탈북자", 이건 따옴표 써야되겠죠? ( 예. )

일반탈북자로 들어왔다, 들어왔다는 거예요. 위장해서. ( 네. ) 국내로 잠입한 북한보위부 요원이라는 거예요. ( 예. )

국가정보원이 수사했고 검찰이 기소했습니다. ( 예. )

그러니까 맞겠죠? ( 예. 아니. ) 아, 그러니까 대답하신 거예요?

김종배: 아…맞겠냐고요? 잘 모르겠죠. (모르죠, 모르죠. 바로 그거예요.) 어떻게 알아요 그거를.

오창익: 그러니까 국가정보원이 간첩 여부를 수사했고 검찰에서 기소를 한 거예요. 그래서 언론 보도가 된건데.

김종배: 아니 유우성 씨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는데...

오창익: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맞겠지. 간첩이겠지. 라는 생각이 안드는 거예요. ( 흐, 예. ) 야, 저것도 좀 살펴봐야 되는거 아니야? 민변 변호사들한테 좀 얘기해봐야 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예요.

김종배: 아니 저도 여기서 좀 한마디 좀 하고 싶은데. 우리가 대공, 정말 중요하죠. 방첩 중요하고. 그걸 누가, 대한민국 국민 중에 그걸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네.) 그런데 바로 그런 것들을 강화시키고 진작시키는게 뭐냐면 진짜 제대로 간첩 사건 수사하는 거예요. (네. 그렇죠.) 억울하게 조작해버리고 이게 지금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나라를 지금 뭐 들었다놨다 해버리면 ( 네. ) 진짜 간첩 사건을 밝혀낸다고 국민들이 아, 믿겠냐는 거죠. (안 믿죠. 제가 안 믿겨져요.) 거기서 방첩에 구멍이 뚫리는 거잖아요.

오창익: 그렇죠. 그게, 그러니까 중요한게 이제 신뢰잖아요. ( 그럼요, 그럼요. ) 그, 국가정보원 검찰 간첩조작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 개인을 파괴했다는 것도 주. 중요하지만 국가기관 전반의 신뢰가 정말 바닥에 떨어졌다라는 거예요. ( 예, 예. )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정권은 5년에 불과한데 ( 네. ) 검찰청 이런거는 한 60년 이상 쭉 가잖아요. ( 네. ) 국가가 훨씬 더 길잖아요. ( 네. ) 국가정보원을 개혁하든 어떻든 간에 국가에 정보기관이 있어야 되는거 아닙니까. ( 예, 예. ) 수명이 좀 더 길어요. 더더군다나 그 국가에 뿌리박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역사를 같이 하는거 아닙니까. ( 그럼요. ) 대한민국이라는 60 몇 년 밖에 안되는데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장구하잖아요. 국가의 수명과 비교도 안 될만큼 긴 시간이잖아요. ( 예. )

그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국가가 지금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 예. )

대한민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북한으로 가는 탈북자들이 최근 생기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이 아니라 영국이나 어디든 일본이든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하는 탈북자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어요.

김종배: 제가 좀 된거 같은데...탈북자가 다시 북으로... (네.) 역으로 돌아가서 (여러 명 있습니다.) 북한 TV에 인터뷰하는게 우리 국내 뉴스에 나오더군요. (네, 왕왕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제 남한 욕하고 이러는거.

오창익: 네. 남한 지옥이었다. ( 네. ) 뭐, 뭐...속아서 갔다. 이런 얘긴데. ( 예. )

뭐, 맞는 얘기도 있고 틀린 얘기도 있겠죠. 중요한 얘기는 뭐냐하면 지금 우리가 통일 대박 얘기까지 하시는데... ( 네. ) 통일 정말 대박일지 쪽박일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들어와 있는 3만 명도 안되는 탈북자들도 제대로 우리가 모시지 못하고 제대로 같이 함께 살지 못하고. 탈북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가 탈북자라고 얘기하지 않고 중국 동포요, 조선족이요. 라고 말하게 하는 이런 상황 속에서 ( 예. ) 무슨 통일 대박입니까. 우리 내부부터 들여다 봐야죠.

김종배: 그렇죠. 네.

알겠습니다. 자, 오늘 여기까지 진행을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오창익: 네. 고맙습니다.

시사통의 편집 위원이 되어주세요. 시사통은 애청자 여러분의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시사통 홈페이지 시사통.net에 들어오셔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네.

저희 시사통에서 월요일과 수요일 <인생 현장>과 <폭력을 넘어서> 이 두 코너를 통해서 같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로 기가막힌 사연을 갖고 있는 분들. 이런 분들을 소개를 해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또 한 분을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이런 방송이 나가고 나면 댓글에 이런 댓글들이 많이 달립니다. 정말 참 답답하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가 사는 곳이 이런 곳밖에 안되는 것이냐. 이런 댓글들이 참 많이 올라옵니다. 이런걸 보다 보면 한편으로는 참 죄송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 팍팍한 살림살이에 청량제가 될 수 있는 이런 정보, 내용, 컨텐츠를 공급을 해야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오히려 더, 아, 화를 키우고 스트레스를 키우는 그런 내용만 전해드리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좀 없지 않아 있기는 합니다만은 그래도 우리가 사는 땅이 어떤 땅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무엇부터 고쳐나갈 수 있을까. 이것을 또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으로 이 방송 내용을 꾸며드린다는 점을 좀 이해를 해주시기 바라고요. 뭐, 기회를 봐서 정말로 밝고 진취적인 그런 내용들, 승리한 경우 이런 것들도 한 번 저희가 꾸며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김종배의 시사통 3월12일 PM

03/13 PM 이 사람의 고국은 어디인가? 03/13 PM Where is this man's homeland?

시사통 김종뱁니다. Kim Jong-bap is suffering from current affairs.

여러분 오늘 하루 잘 보내셨습니까? Did you guys have a good day today? 다시 김종뱁니다. 자, 오늘 나온 뉴스 중에 눈길을 확 잡아끄는 뉴스가 하나 있는데요, 김상권 전 경기교육감이 오늘 오전 10시에 수원에 있는 경기도의회에서 경기지사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Now, among the news released today, there is one news that catches the eye. 그런데 이미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이 이 선언장에 등장을 했다고 합니다. However, it is said that former Saenuri party lawmaker Kim Young-sun, who has already declared a run for governor of Gyeonggi Province, appeared in this declaration. 붉은색 새누리당 점퍼를 입고 등장을 해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벌이던 김상권 전 교육감에게 나도 질문할 기회를 달라, 이렇게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It is said that I asked for an opportunity to ask a question to former Superintendent Kim Sang-kwon, who appeared in a red Saenuri-dang jumper and had a question and answer with reporters. 물론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Of course, this request was not accepted. 자, 김영선 전 의원이 왜 이 자리에 등장을 했을까요? Now, why did former Congressman Kim Young-sun appear here? 바로 같은 곳에서 30분 간격으로, 그러니까 오전 10시 30분에 이, 자신의 공약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왔다가 김상권 전 교육감의 출마 선언장에 들이닥쳐서 질문권을 달라 이렇게 요구를 했다라는 건데요. So he came and ran into the declaration of execution by former Superintendent Kim Sang-kwon and asked for the right to question. 나중에 김상권 전 교육감이 퇴장한 다음에 이 김영선 전 의원이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는지 물었더니 기자들 앞에서 김영선 전 의원이 이야기하기를, 김상권 전 교육감이 무상 급식을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우는데, 이 무상 급식 때문에 특기 교육과 교육 기자재 등은 부실해졌다. Later, after the former Superintendent of Superintendent Kim Sang-kwon left, I asked what former Congressman Kim Young-seon was trying to ask. Education and educational equipment have become stale. 바로 이런 점을 한 번 지적하면서 입장을 물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It is said that I wanted to point out this point and ask for a position. 뭐 정책에 대한 뭐 판단과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죠. Well, judgments and interpretations of policies can vary from person to person. 그래서 얼마든지 그거에 대해서 공격할 수도 있고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이제 상대 후보 아니겠습니까. So, I think I can attack or ask a question as much as I can, but for now, I'm not a candidate for the opponent anymore. 상대 후보의 출마 선언장에 등장을 한다. 그래서 질문을 행사하려고, 질문권을 행사하려고 했다. So I tried to exercise the question, and I tried to exercise the right to question. 이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요 여러분? 이게 상도의와 강호의 도에 맞는 걸까요? 판단은 한 번 여러분에게 맡겨보도록 하겠습니다. I will leave the judgment to you once.

자, 매주 수요일 저녁 방송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과 함께 하죠. Now, every Wednesday evening broadcast is with Oh Chang-ik, Secretary General of the Human Rights Solidarity. 자, <폭력을 넘어서> 시간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Now, let’s move on to time <Beyond Violence>. (음악)

김종배: 네, 매주 수요일에 찾아오시는 주인공이시죠. Jong-Bae Kim: Yes, you are the main character who comes every Wednesday. 이, <폭력을 넘어서>의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나오셨습니다. Lee, Oh Chang-ik, Secretary General of Human Rights Solidarity of <Beyond Violence> came out. 어서오십시오.

오창익: 네, 안녕하세요.

김종배: 네. 또 일주일 만에 뵙습니다. See you in another week.

오창익: 세번째 시간입니다.

김종배: 그렇습니다. ( 네) 자, 오늘 어떤 얘기를 한 번 꺼내볼까요?

오창익: 어, 그 전에 지난주에 김훈 중위, ( 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JSA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 네 ) 방송을 하면서 오랜만에 김훈 중위 아버님, 김척 장군께 연락을 드렸고 ( 아하, 예 ) 그저께 월요일 점심에 오셨어요. (Yes) During the broadcast, I contacted Lieutenant Kim Hoon's father and General Kim Chuck after a long time. ( 예 ) 점심을 함께 했는데. 아, 저도 뭐 김훈 중위 사건 때 뭐, 진상 규명을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했는데 ( 네 ) 그 다음에 많이 힘을 보태지 못했는데요. 또 오랜만에 아버님 뵀는데 어... 점심을 먹으면서 전혀 점심을 못 드시더라구요. 말씀하시느라고. ( 아, 예 ) 16년 동안 쌓아왔으니까 얼마나 할 말이 많겠습니까. ( 그럼요, 그럼요 )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할지도 몰라서 아버님 말씀을 좀 전해드리는 건데. ( 네 ) 지금 이제 국방부를 제외하고 다른 국가기관들, 방송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 예 )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회, 그 담에 국민권익위원회가 모두 다 자살은 아니다라고 결정을 내리고 있는 상태인데. ( 네. ) 국방부만 지금 계속 자살을 고집하고 있는 거죠. Only the Ministry of Defense is insisting on suicide now. ( 네 ) 자살에 꿰맞출려고 하다보니까 뭐, 이상한 자세, ( 네 ) 화약흔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도 못하고 뭐 그런 상태인데. (Yes) I was trying to confront suicide, so I couldn't even explain about the weird posture, (Yes) gunpowder scars. 아버님 말씀은 뭐, 순직 처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 ( 그렇죠. 그렇죠 ) 지금이라도 어, 국방부가 정말 진실을 원한다면 ( 네 ) 공개 토론이라도 하자. Yes) Even now, uh, if the Pentagon really wants the truth, (yes) let's have a public debate. ( 예 ) 그래서 놓여진 상황을 그대로 일반 시민들, 상식을 가진 시민들, 또 전문가들에게 보여드리고 ( 예 ) 자, 이런 상황에서 자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 네 ) 네, 화약흔도 말씀드렸지만 화약흔이 열 번 쏘면 열 번 다 화약흔이 나오는 건데 ( 예 ) 그, 국민권익위원회에서의 했던 실험의 경우에는 사건 현장에 화약흔이 있었지만 뭐 헌병대에서 들어가고 미군수사관이 들어가고 이러니까 화약흔이 날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그랬대요 군당국에서. (Example) So, I will show the situation to ordinary citizens, citizens with common sense, and experts. (Example) Now, is there any possibility of suicide in this situation? If you shoot ten times, you will see gunpowder scars all ten times. The military authorities said there was this. ( 예 ) 그렇지만 지하 벙커의 제한된 공간이기 때문에 많이 안 날라갔을 겁니다. (Example) However, because it is a limited space in an underground bunker, it probably wouldn't have been blown away. ( 그렇죠 ) 그래도 날라갔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번 실험의 경우에 화약흔, 그 화약 총기 발사 실험을 하고 난 다음에 화약흔 체취를 언제 했느냐면 4시간 후에 했다는 거예요. (Yes) I thought it would have blown away, so in the case of this experiment, the gunpowder traces, the gunpowder firearms fire test, and then the gunpowder trace body odor was done after 4 hours. ( 아, 일부러? ) 네.

좀 날라가라고. ( 예 ) 그래도 다 나왔다는 거예요. (Yes) It means that it was all out though. ( 예, 예 ) 그러니까 이건 뭐 틀림없는 사실이고 ( 예 ) 자살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거다. (Yes, yeah) So this is certainly true and (Yes) there is no possibility of suicide. ( 예 ) 그래서 지금이라도 공개 토론을 하든지 해서 진상을 밝히고 넘어가자 ( 예 ) 대표적인 사건 김훈 중위 사건마저 어,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건은 정말 해결하기 난망한거고 ( 그렇죠 ) 국방부에서는 지금 두 가지 사건, 가장 대표적인 군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건과 ( 네 )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서만은 ( 네 ) 진상 규명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진상 규명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Example) So, let's have a public debate even now to reveal the truth. (Example) Even the representative case, Lieutenant Kim Hoon, uh, if the truth is not revealed, other cases are really difficult to solve. In the case of Lieutenant Kim Hoon (Yes) and Private Heo Won-geun (Yes), which are the most representative military medical affairs, I think I am not sure that I have to investigate the truth, but that I should not do so. ( 그래요 ) 국민들에게 다 알려져 있는 사건 ( 예 ) 그래서 군의 명예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예전에 근무했던 군인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네 ) 진정한 명예는 진실을 위해서 용기를 내는 게 진정한 명예이고요 ( 아 그럼요 그럼요 ) 명예는 그럴 때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 예 ) 믿고 ( 예 ) 국민의 아들들을 보낼 수 있는 군대가 되기 위해서라도 ( 네 ) 김훈 중위 사건은 반드시 ( 네 ) 진상이 밝혀져야 합니다.

김종배: 그렇죠.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있니까요. ( 네. ) 예.

자, 그 정도로 가름을 하도록 하고 자, 오늘은 어떤 사례로 한 번 얘기를 해볼까요. Now, let's make it that much. Now, let's talk about an example today.

오창익: 오늘은 한 탈북자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Oh Chang-ik: Today, I am going to talk about a North Korean defector. ( 예, 예, 예. ) 홍진희 씨라는 분이에요. This is Hong Jin-hee. ( 예. 아, 여, 남성이세요? ) 남성입니다. ( 아, 남성이세요? 예. )

1969년생 인데요. ( 네. ) 지금 마흔다섯. 이렇게 됐네요. ( 예. 그렇게 되네요. ) 96년 1월에 스물 일곱살의 나이로 중국을 거쳐서 한국에 왔습니다. In January 1996, I came to Korea after passing through China at the age of twenty-seven. ( 예. )

북한에 있을 때의 직함은 인민군 제 7군단 수산부업기지 지도원이에요. My title when I was in North Korea was an instructor at the Fisheries Sub-Industry Base of the 7th People's Army Corps. ( 예. )

이게 뭐, 군인은 아니고. 워낙 북한이 이제 군에 의한 산업, 뭐 이런게 많으니까. Because North Korea is now a military industry, there are a lot of things like this. ( 그렇죠. 그렇죠. ) 하여튼 뭐, 수산 관련 업무를 했다라는 겁니다. Anyway, it means that I was working on fisheries. ( 예, 예, 예. ) 어… 이 분이 이제 다른 탈북자들하고 똑같은 경로로 들어옵니다. 김포공항을 거쳐서 들어오면서 환영받고 ( 네. ) As I entered through Gimpo Airport, I was welcomed (Yes.) 그 다음에 곧바로 서울 신길동에 있는 그, 안기부의 안가 조사시설 대성공사라고 하는데요. ( 예. )

지금 이제 유우성 씨나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가 조사를 받은 곳은 경기도 시흥에 있는데요. Now, the place where Yu Woo-sung or Yoo Ga-ryo, Yoo’s younger brother, was investigated in Siheung, Gyeonggi-do. ( 네. ) 대성공사가 경기도 시흥으로 이사한 겁니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고요. ( 지금 하나원이라고 불리던가요?  ) 아니요. 하나원은 ( 예. )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온 사람들을 위한 정착 교육기관입니다. It is a settled educational institution for people from the Joint Newspaper Center. ( 아, 예. 예. )

그래서 뭐, 안성에도 있고 또 제 2 하나원 이렇게 있는데요. So, well, there is also in Anseong and there is also the 2nd Hanawon. ( 예. )

아, 그 전에 소위 위장 귀순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 예. ) 뭐, 간첩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조사받는 곳이죠. ( 네, 네, 네. ) 유우성 씨 사건 국가정보원 검찰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 예. ) The victim of the case of Yu Woo-sung's case, the prosecution of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eg.) 또 그 사건의 피고인이기도 합니다만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가 이곳에서 6개월 동안 ( 네. ) He is also the accused of the case, but Yu Garyeo, Yu's younger brother, stayed here for 6 months (Yes.)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변호사 접견도 못한 채 조사를 받았고 ( 예. ) I was investigated without anyone's help, without being interviewed by an attorney (eg.) 그래서 마침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 허위 진술을 했던 바로 그곳에서 조사를 받습니다. ( 네. ) 당시에는 이제 말씀드린 것처럼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었어요. At the time, as I mentioned now, it was in Singil-dong, Yeongdeungpo-gu. 여기는 뭐, 시설은 국군 정보사 시설인데 ( 네. ) Well, the facility is an ROK military intelligence agency facility (Yes.) 실제로는 안기부 국정원이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 아, 예, 예. ) 안기부, 옛날에는 안기부였죠. 경찰청 국방...정보...국방부 정보 본부 ( 예. ) National Police Agency Defense...Information...Ministry of Defense Information Headquarters (Ex.) 그 다음에 정보사령부, 기무사령부, 다섯 개 기관으로 구성된 합동 신문제의 심문을 받습니다. It is then interrogated by the Intelligence Command, the Kimu Command, and a joint newspaper system consisting of five agencies. ( 예. )

아주 짧은 사람도 2-3달 정도 받고 보통 6개월 정도씩 조사를 받았어요. Even very short people receive 2-3 months and usually have been surveyed for about 6 months. ( 예, 예, 예, 예. ) 맨 처음에 한 달 동안은 신분 조사라는 걸 받고 ( 예. ) 다섯달 정도는 이제 정보 조사를 받습니다. Five months or so is now being investigated. ( 어, 예. ) 그걸 다 받고 나와야만 주민 등록증을 발급 받고 일반 사회로 나갈 수 있습니다. Only after receiving all of them can you get a resident registration card and go to the general community. ( 예, 예. ) 근데 이 대성공사에서 합동 심문센터에서 문제가 많았는데요. However, there were a lot of problems at the joint interrogation center in this great success. 감금 상태에 놓여 있는 거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감시, 욕설, 구타, 고문, ( 네. ) In addition to being in custody, routine surveillance, swearing, beating, torture, (yes.)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인권 침해가 자행됐습니다. 홍진희 씨는 이 피해자였죠. ( 예. )

처음부터 맞았대요. ( 들어가자마자? ) 네.

대성공사 들어가서 취조실에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조사관들에 둘러싸여서 두들겨 맞았고요. As soon as I entered the great success and entered the interrogation room, I was surrounded and beaten by investigators. ( 어, 허. ) 조사관들은 자기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 부르라고 그랬고. The investigators called them teachers and told them to call them. ( 예. )

때리는 사람들이 선생님입니다. ( 예. )

무슨 조폭들처럼 인사는 90도 각도로 해야 했다고 해요. Like some gangsters, they said that they had to say hello at a 90-degree angle. ( 예. )

아, 두들겨 맞는 것도 어느정도 참을 수 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들었던 말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Oh, I was able to tolerate being beaten to some extent, but the words I heard during the investigation are said to be really unbearable. ( 네. ) 두 가지 얘깁니다. 하나는 인간쓰레기, 또 하나는 후레자식이라는 거예요. ( 예, 예. ) 왜 그러냐하면 아...이 홍진희 씨가 혼자서 탈북을 했습니다. ( 가족을 놔두고? ) 네.

북한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북한에 어머니가 있고 동생도 둘이 있었어요. My father died, but he had a mother in North Korea and two younger brothers. ( 예, 예, 예. ) 가족을 놔두고 너 혼자 살려고 도망쳐 나왔다그래서 인간쓰레기 후레자식이다 라고. You left your family and ran away to live alone. ( 아, 예. ) 협박도 많이 들었죠. ( 예. )

너는 아직 국적도 없고 넌 아무런 신분도 없으니까 여기서 죽여버려도 아무 상관도 없고 누구도 모른다. You don't have a nationality yet and you don't have any status, so if you kill them here, it doesn't matter and no one knows. 찾을 수도 없다. 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예, 예. ) 그래서 처음부터 이게 기를 죽이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뭔가 정말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건지. So, is it trying to kill Chi from the beginning, or is it because you really want something. 하여튼 구타, 모욕, 뭐 이런 것들이 계속 됐어요. Anyway, beatings, insults, something like this continued. 얼차례 이런 것도 계속 받고요. ( 예. )

아...인간쓰레기라는 얘기, 후레자식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정말 그런 상황이 있다면, 다시 말씀드리면 가족을 북한 지역에 냅두고 왔다면 그 말은 정말 가슴을 찔르는 비수가 됩니다. Ah...when you hear about human waste or ``fure child''...if there is really such a situation, again, if you leave your family behind in North Korea, those words will really be a stabbing sword in your heart. ( 대못이죠, 대못. ) 아, 그럼요.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나고 그렇겠어요. How do I think of my mom and I must be. ( 그럼요. 예. )

20대 청년이. ( 예. )

그래서 매일 밤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그래요. ( 네. ) ( Yeah. ) 근데 자기, 홍진희 씨의 담당 조사관이 참 특히 심했다고 그러는데 ( 네. ) But, honey, the investigator in charge of Hong Jin-hee said that it was particularly severe (Yes.) 이 분이 교회 장로라고 그러는데. They say this is the elder of the church. ( 예. )

교회 장로면 보통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 예. ) 어...어떨 때는 이제, 저기, 장로인 조사관이 때리는데 자기가 힘이 빠질 때까지 때리더래요. Uh...sometimes now, hey, an elder investigator hits him until he loses strength. ( 허. ) 지칠 때까지. ( 네. ) 그, 홍진희 씨는 피범벅이 되어서 쓰러져 있고 자기는 때리다가 힘들어 가지고 지쳐있고. ( 예. )

홍진희 씨보고 일어나라고 해서 피곤하니까 자기를 안마하라고 그랬대요. He told Jin-hee Hong and told him to get up because he was tired. ( 허, 참. ) 거짓말같죠. ( 네. ) 그 다음에 또 한참 때리고 어떨 때는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준대요. Then he beats him for a while and sometimes puts his hand on his head and prays on his hands. ( 하, 예. ) 너 사람되라고 때렸다. 미워서 때린 게 아니다. ( 예. )

아, 예.

하여튼 뭐 말을 듣지 않거나...뭐, 왜 때리냐고 이렇게 한 마디라도 하거나 이러면...뭐, 독방에 감금하기도 하고. ( 예. )

하여튼 취침 시간, 자는 시간 말고는 절대로 이렇게 눕거나 할수도 없고. ( 어... ) 거의 그, 일제 시대 때 군기 잡는 식으로 이제 군기 잡고 24시간 CCTV 카메라 감시 받고 ( 네. ) 또 매일 그 감상문, 일기, 회고록, 뭐, 회고록이라는게 조사 받을 때 보통 그렇게 하는데요. Also, I usually do that every day when I get a survey of those sentiments, diaries, memoirs, and memoirs.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회고록을 다 쓰게 합니다. ( 아...그래요? ) 백 번씩 쓰게하고. 그렇습니다 ( 예, 예. ) 이런 것들을 했어요. 그래서 홍진희 씨가 뭐, 당연히 맞고 그러니까 부상도 끊이지 않고 오른쪽 손도 제대로 못 쓰게 되고 이런,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So Hong Jin-hee is right, of course, so the injuries do not end and the right hand cannot be used properly, and this leads to a state like this. ( 음. 네. ) 자기는 이제 자유를 찾아서 한국에 왔는데 ( 예. ) You have come to Korea in search of freedom now. 한국에서 이런 일을 당하니까 북한에서도 당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까. ( 예. )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대요. 자기가 잘못와가지고 북한 간첩들이 운영하는 어떤 시설에 왔나보다. He must have come to a facility operated by North Korean spies because he was wrong. 여기가 북한일지 모른다. (  오죽했으면. ) 네.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합니다. ( 예, 예, 예. ) 자, 이제 대성공사를 드디어 6개월 만에 나왔습니다. Now, the great success has finally come out in six months. ( 예. )

대한민국 국민이 됐어요. I became a citizen of Korea. ( 예. )

그렇지만 대성공사에서의 일은 잊을 수 없는 겁니다. ( 어떻게 잊어요. 이 일을. ) 특히 인간쓰레기라고 했던 그 모욕. 후레자식이라고 했던 모욕을 잊을 수 없었다고 그래요. He said he couldn't forget the insult he called Fure child. 그래서 이 양반이 생각한게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게 뭐냐를 궁리하다가 ( 네. ) 세신사라고 그러는데 목욕탕 때밀이를 시작해요. They say it's Sejinsa, but they start cleaning the bathroom. ( 아, 예. ) 열심히 법니다. ( 가족 데려오려고? ) 예.

탈북자금을 마련하려고... ( 예, 예, 예. ) 그리고 정말 한 푼의 돈도 허투로 쓰지 않고요. ( 네. ) 어...돈을 조금 조금씩 모아가면서 안기부 담당 직원이 있으니까 담당 직원한테 물어봐요. Uh... I have a staff in charge of the security department while saving up a little bit of money, so I ask the staff in charge. 가족을 데려와도 되느냐. 어, 데려와도 된다. Uh, you can bring it. ( 예. )

그러니까 이제 희망도 생깁니다. So now there is also hope. 그리고 공부도 열심히 해가지고요 그 사이에 고려대학교 중문학과에 입학하기도 해요. Also, I studied hard, and in the meantime, I entered the Department of Chinese Literature at Korea University. ( 어이고, 예. ) 그러니까 이를테면 좀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잘 정착한 케이스죠. So, for example, it was a case of defecting from North Korea and settling well in Korea. ( 그렇죠. 그렇죠. ) 처음 6개월 동안은 지옥같은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뭐, 목욕탕 때밀이라도 하면서 이제 계속 돈을 모으고 있었고. For the first 6 months, I suffered hellishly, but I was still collecting money while working in the bathroom. ( 네. ) 대학도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Because I was able to enter college. ( 예. )

그러다가 98년 5월에 드디어 이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탈출시키는데 성공합니다. Then, in May 1998, he finally succeeded in escaping his family in North Korea. ( 예. )

지금도 사실은 돈만 있으면 탈북은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 예. )

당시에는 더더욱 그랬고요. 어...뭐, 어머니와 여동생, 남동생 이제 가족 세 명이 이제 쭉 홍콩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이것도 극적인게 홍콩 반환되기 직전이었어요. Uh... well, my mother, my younger sister, and my younger brother Now, my three family members are coming through Hong Kong all the time, and this is also on the verge of returning to Hong Kong. ( 아. ) 홍콩 반환이 98년 7월 1일이었는데 ( 네. ) 그 직전에 그러니까 홍콩을 통한 탈북 루트라는게 막히기 직전이 이렇게 들어옵니다. 운도 좋았고요. (어, 예, 예. ) 가족들이 이제 김포공항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Families now come in through Gimpo Airport. ( 예. )

들어온 날. 김포공항에서 홍진희 씨 말에 의하면 코너를 이렇게 돌자마자 ( 네. ) According to Mr. Hong Jin-hee at Gimpo Airport, as soon as he turned around the corner like this (Yes.) 데리고 들어와도 좋다고 했던 그 안기부 조사관이 홍진희 씨를 마구잡이로 구타를 하더래요. The security officer, who said it was okay to bring in, beat Jin-hee Hong at random. ( 왜요? )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야 대한민국이 너 하나 먹여살리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 예. )

이 때가 또 IMF 직후잖아요. ( 아, 예 그렇죠. ) 국가 살림도 어려운데 가족까지 불러들여가지고 나도 귀찮게 하고 국가를 고생시키냐고. It is difficult to save the country, but I also called in my family, so I asked if I would bother me and suffer the country.

김종배: 아니, 자기가 데려와도 된다고 했잖아요.

오창익: 그러니까요. 유우성 씨의 경우에도 그랬어요. ( 똑같아요. ) 유우성이 유가려를 데려와도 되냐고 계속 물어봤는데 아, 데려오라고. Yoo Woo-sung kept asking if I could bring Yu Gar-ryo. ( 그러니까요. ) 데려와도 된다고 그래서 데려오니까 간첩을 만드는 거로 쓴거 아니에요. ( 맞아요, 맞아요. 예. )

자, 이쯤되서 인간쓰레기라는 욕을 듣고 그것에 대해서 정말 인간쓰레기를 피하려고 불철주야 일해가지고 이제 탈북자금을 만들어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려왔는데. Now, at about this point, I heard the curse of human waste, and I worked every day and night to really avoid human waste, and now I made a refugee fund and brought my mother and younger siblings. ( 예. )

다시 야단을 맞고 구타를 당하잖아요. You get scolded again and beaten. ( 예. )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이 앙심이란게 안 생기면 그거 사람도 아닙니다. 감정이 생기는 거죠. 당연히. ( 그럼요. ) 하... 근데 탈북자들은 일상적으로 국정원, 안기부와 경찰의 감시를 받아요.

김종배: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뭐 합동 신문 센터에서 아, 이 사람은 간첩이 아니다라는 판정이 났어도. (네.) 그 뒤에도 계속?

오창익: 그럼요. 늘. 옛날에 들어온 탈북자들도 다 그, 경찰의 감시를 받습니다. All North Korean defectors who came into the past are also monitored by the police. ( 예. )

뭐, 이를테면 이런 식이에요. Well, for example, like this. 그것도 군기잡기 식으로 아주 유치한데. 어떤 홍진희 씨 말고 다른 동료 탈북자 증언을 들어보면 어, 자기가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데요. When I heard the testimony of a fellow defector other than Jin-hee Hong, uh, he called but didn't answer it. ( 예. )

빨리 안 받았다. 그래서 경찰서로 들어오라고 그러고. So I told him to come in to the police station. ( 예. )

그래서 뭐 무릎을 꿇려놓고 왜 전화를 빨리 안 받았는지에 대한 진술서를 장황하게 쓰라고 그러고. So I asked him to get on his knees and write a verbose statement about why he didn't answer the phone quickly. ( 예 . )뭐 이런 일들. 군기 잡기를 한 번씩 하는 겁니다. ( 예. )

꼼짝 못하는 거예요. 탈북자는 뭐 없잖아요. 조직도 없고 주변에 뭐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고. ( 그렇죠. ) 자, 홍진희 씨가 이제 대성공사에서 나와서 가족들을 데려왔다는 이유 때문에 또 구타를 당한 다음에 주변을 살펴본거예요.

김종배: 아, 잠깐만요. 그런데 공항에서 코너를 돌자마자 구타를 당했다고 했잖아요. But you said you were beaten as soon as you turned the corner at the airport. ( 네. ) 그때 어머니나 동생들이 보고 있는 상태에서 ( 안 보는 상태에서. 그 놈만 데리고 가서. ) 안 보는 상태에서. 아, 예.

오창익: 그건 좀 나은가요? ( 그래도 뭐... ) 근데 구타 당한건 알죠. 가족들이. ( 예. )

그러니까 동료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동료 탈북자들도 너나없이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So, while meeting fellow North Koreans, I learned that fellow North Koreans were treated likewise. ( 예예 ) 대성공사에서. ( 예, 예, 예. ) 정착 교육 하나도 없고. ( 예. )

위장 귀순 여부. Whether the stomach is defected. 곧 간첩인지를 가려낸다고 했지만 결국은 사실 일상적인 일방적인 폭력뿐이었고. It was said that they would soon find out if they were spies, but in the end, it was only ordinary one-sided violence. ( 예. )

그러니까 대성공사는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합동 심문 센터는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첫 관문이었지만. ( 예. )

탈북자들에게는 정말 기억하기 싫은 치욕의 장소고 ( 그렇죠. 예예. ) 지옥같은 곳이었죠. 그래서 탈북자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 아하, 예. ) 이건 최초로 탈북자들의 자주적인, 주체적인 조직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 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 예.

여때까지는 다 국정원 뭐, 경찰청 숭의동지회니 뭐 이런 것들이 저, 탈북자들의 조직들이 있었는데 ( 예. ) 소위 관변단체들이었어요. ( 음) 근데 관변단체가 아닌 순수 민간단체가 처음 생깁니다. ( 예. )

그 이름이 '자유를 찾아온 북한인 협회'예요. ( 아, 예. ) 자유 북한인 협회라고 ( 예. ) 1998년 12월에 생깁니다. ( 네. ) 아...의미가 있죠. ( 그러네요. ) 그런데 생기자마자 이 사람들은 홍진희 씨도 여기 가담해가지고 홍보부장이라는 직함으로 일하게 되는데 ( 예. ) However, as soon as it is formed, these people also join Jin-hee Hong here and work under the title of Director of Public Relations (Yes.) 국가정보원의 조직 와해 공작, 협박에 시달립니다. ( 어...예. ) 뭐, 대표를 맡은 사람도 며칠만에 사표 내고 그만두고요. ( 네. ) 그러니까 이들이 조직을 만들어서 그렇게 가면 우리가 니들을 어떻게 대할지 아냐. 뭐 이런 협박들이 있는거죠. ( 네. ) 어...그런데 이 자유 북한인 협회를 만든 사람들은 만약 국정원이 원하는대로 조직을 그만두게 되면 여태까지 대성공사, 합동 심문 센터에서 받았던 그런 가혹한 일들이 중단되지 않을 거다. Uh...but the people who made this Free North Korean Association won't stop the harsh things that have been received at the major successor and joint interrogation centers so far if the NIS quits the organization as desired. ( 아, 그렇죠. 그렇죠. ) 자기들도 문제지만. 이후에 들어올 자기 가족같은 정말, 동포들도 문제다. 해서 멈추지 않습니다. 천, 천만다행이었어요. ( 예. )

언론에 보도되진 않지만 성명도 이제 발표하고 그럽니다. It is not reported in the press, but the statement is now released. ( 예. )

성명에서 이 자유 북한인 협회가 요구했던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인권유린행위를 중지해라. Stop human rights abuses. 그리고 재발 방지해라. ( 예. )

그 다음에 인간을 정보가치라는 상품으로만 대하지 마라. After that, don't treat humans only as a product of information value. ( 예. )

인간적 차별을 중지하라는 거죠. ( 예. )

그 다음에 기초적인 생계를 위해서 제도를 정책적으로 보장해라. ( 네. ) 그 다음에 지금 자유 북한인 협회 만들었는데 와해 책동을 하니까 ( 네. ) 이 조직에 대한 국정원의 와해 책동을 중지해라. Stop the NIS' disintegration maneuver against this organization. ( 네. ) 네.

이런 정도의 이제 요구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김종배: 잠깐만요. 이 성명이 근데 언론에 보도가 안됐다고요? You said this statement wasn't reported in the media? (안 됐죠.) 왜요?

오창익: 아니, 어, 그러니까 두 가진데요. 하나는 탈북자들이 어떻게 해야 언론에 보도시키는지를 몰랐고요. 이 분들이. ( 예, 예, 예. ) 두 번째는 이제 국정원에서 막기도 했고. 두 가지가 이제 같이 진행이 되었는데요. ( 어...그래요. ) 국정원에서 막 적극적으로 막는다 하더라도 이, 대한민국 현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고 언론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 예. ) Even if the NIS is actively blocking it, it is because people who do not know much about the reality of Korea and do not know much about the media (ex.) 보도자료를 쓴다든지 이런걸 잘 모르신 거예요. ( 응, 예. ) (Yes, yes.) 어떻게 보내야될지.

김종배: 언론이 고의적으로 보도 누락한 건 아니고요? Kim Jong-bae: Isn't the media deliberately missing the report?

오창익: 아 그렇죠. 그때 이미 98년이어도 한겨레도 있고. ( 네. ) 말지도 있고. ( 네. ) 그래서 이, 시사통은 없었지만. ( 예. )

그래도 숨통같은 역할을 해준 언론매체가 이, 존재할 때 였거든요. Still, it was when the media that played a breathtaking role existed. ( 아, 언론도 몰랐던 거군요? ) 그렇죠.

( 예, 예, 예. ) 그...그 분들이 저한테 찾아왔었어요. Those... they came to me 98년에. ( 아...예, 예, 예. ) 12월. 에... 아이고 뭐 얘기 들어보니까 거짓말같더라고요. ( 네. ) 그런데 저희가 이제 인권 단체 활동을 하면서 이런 사연을 가진 분들이 많이 오는데 저희 나름대로도 검증을 합니다. ( 네. ) 이를테면 따로 따로 불러서 진술을 들어본다든지. ( 예. )

진술을 또 반복해서 들어본다든지 하면 ( 예. ) 뭐, 법정에서도 사실 그런식으로 가리는 건데요. 아, 뭐랄까 진술의 일관성이라든지 ( 그렇죠. ) 이런걸 통해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게 되요. ( 그렇죠. ) 거짓말 하는게 한계가 있어요. ( 그렇죠. ) 아침에 물어봤다 저녁에 물어보면 거짓말이 좀 들통나기도 하고 이렇습니다. ( 그렇죠. 예. )

이분들 진술이 되게 일관되고 믿음직했어요. 그래서 다른 몇 개의 인권 단체들에게 제안을 해가지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 예. )

이 문제를 거론했죠. ( 네. ) 99년 1월 15일의 일입니다. ( 네. ) 저는 그때 이제 명동에서 일했는데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 예. ) 어유, 뭐 난리도 아니었어요. 국정원 직원들이 명동 도처에 쫙 깔리고 뭐, 이곳저곳에서 탈북자들 못가게 하고 몸싸움하고 저는 나가서 뭐, 국정원 직원들 쫓아내고 ( 네. ) 이러고 기자회견 겨우 열었습니다. ( 네. )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그런 내용들을 그, 시민들에게 알린거예요. 충격적이었죠.

김종배: 이게 그러니까 최초로 공개가 된 사례잖아요.

오창익: 네. 최초였죠. 그래서 1월 15일에 기자회견했는데 15일 말고 16일자 신문에 보면 한겨레부터 조선일보까지 다 사설을 쓸 정도로 중요한 ( 아...) 네. 뉴스였습니다.

김종배: 어, 조선도 사설을 썼어요?

오창익: 저희가 한 일 중에서 한겨레부터 조선까지, 조선부터 한겨레까지가 아니라. ( 예. )

한겨레부터 조선까지 사설을 다 쓴 게 몇개 있습니다. 뭐, 예. ( 예. )

많진 않습니다. ( 하하하.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봐도 되게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한거죠.

김종배: 어…이건 인권유린이다. 이런 논조로 쓴거죠?

오창익: 인권문제라고 해서 한겨레가...아니 저, 저, 조선일보가 다 사설을 쓰진 않지만 ( 예. ) 자기들이 그래도 여태까지 해온 그 이야기의 뭐, 뭐랄까 나름의 일관성 ( 예. ) 뭐 이런거죠. 인권문제라고 해서 쓴겁니다. ( 음... ) 인권침해.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 예. ) 사실을 밝히고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라는 거예요. ( 예, 예. ) 그, 국정원의 반응도 뭐, 실시간으로 나왔습니다. ( 네. ) 이땐 이미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다음이에요. ( 99년이니까 그렇죠. 예, 예. ) 과거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 예. )

그렇지만 탈북자들에 대한 가혹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예. )

이거는 최근에 정착금 문제... 이런거로 불만을 가진 탈북자들이 사실을 과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 네. ) 이렇게 합니다. ( 예. )

하지만 파장, 파장은 컸고요. ( 예. )

또 정부의 화답도 컸습니다. ( 음... ) 이건 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어...조사과정에서 구타 등 가혹 행위가 거의 없어졌어요. ( 어...예. ) 그래서 황장엽 씨나 황장엽 씨랑 같이 들어온 김덕홍 씨나 이런 사람들이 자유 북한인 협회를 평가하는게. ( 예. )

탈북자들이 두들겨 맞지 않도록 해줬다. 저분들이. ( 아, 예, 예. ) 용사들이다. 뭐 이런 표현도 하고 그렇습니다. ( 예. )

욕설도 거의 사라졌어요. ( 예. )

나중에 다시 부활합니다만. ( 예. )

하여튼 김대중 정부 때 거의 사라졌어요.)

김종배: 나중에 부활할 때가 언제 부활한 거예요? (MB, 박근혜...뭐 아시면서 그러세요.) 이명박 대... (간첩도 만들어내고 그러잖아요.) 제가 그걸 여쭤보려고 했던게 유가려 씨가 언론에 인터뷰한거 보면 뭐, 폭언에 폭행에...뭐 이런게 있었다고 했거든요.

오창익: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부활하는 겁니다. 없어졌다가. ( 부활은 MB 정부 때? ) 없어졌다가 부활하게 되고 ( 네. ) 합동 신문 센터에서 조사받는 기간도 줄어들었다가 늘어나게 되고 이럽니다. ( 네. ) 또 주목할만한 것이 '하나원'이 생겨요. 탈북자 정착 교육기간이. ( 음, 네. ) 그동안은 대성공사 합동 심문 센터에서 조사하고 뭐, 교육 조금 했어요. 근데 교육 위주가 아니죠. 지금 이제 조사하고 두들겨 패는게 위주였고 ( 음. ) 그러다가 하나원이 생기고

김종배: 예. 여기서 한국 현실이 이렇고...예를 들어서, 예를 들어서 인제 뭐, 직능 이런거 파악해서 직업 교육 비슷한 것도 시켜주고 이러나요? 하나원에서?

오창익: 그럼요. 자본주의 교육 같은 거 (  네. ) 하다못해 지하철 타는 법... ( 예. ) 뭐, 은행 가는 법... ( 네.) 뭐 이런 것들 알려줄게 되게 많습니다. (예, 예, 예, 예. ) 하나원에서 교육을 굉장히 많이 해요. ( 예, 예. ) 어...뭐, 국가 교육도 하고... ( 네. ) 하다못해 애국가도 1절부터 4절까지 배워야될 거 아닙니까. ( 그렇죠. ) 그렇죠?

김종배: 대한민국 국민이 됐으니까.

오창익: 뭐, 태극기 그리는 것도 배우고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그런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초등학교 1학년부터 천천히 스며들어서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태정태세문단세를 다 외울 정도로 이제 수준이 오르게 되지만 ( 네. ) 탈북자들은 초등학교 1학년 과정부터 하나하나씩 이렇게 배워야될 필요가 있는거예요. ( 아, 예, 예. ) 그러니까 정착 교육 기관은 반드시 필요한거죠. ( 그렇죠, 그렇죠. 예. )

그러니까 정착 교육 기관이 생기고 이제 이제 탈북자들에 대해서, 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이제 전환되게 되는 겁니다. ( 오, 좋은 일이네요. ) 네.

그리고 정착금도 당장 세 배 가까이 올라가요. ( 오, 예, 예. ) 그리고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가 될 수도 있게해주고. ( 예. )

또...취업을 막 촉진하면서 지금은 없어졌습니다만 기업이 취업을 시켜주면 탈북자를, 2년 동안은 정부가 월급을 대신 대주는 방식... ( 어... ) 이런 것도 하고요. ( 네. ) 당시 IMF 시절이어서 다 어려웠는데 생계형 창업자, 창업대, 창업을 하면 신용보증기금에서 생계형 창업 자금 대출을 해줬어요. ( 아, 예... ) 이거를 탈북자들에게도 확산합니다. 그래서 1억원까지. 99년에. ( 아... ) 큰 돈이었습니다. ( 그럼요. 예. )

예, 그...담보없이. 아주 저리로 이자를 적게 내가지고 이제 창업자금 대출해줘요. ( 예. )

그래서 탈북자들이 99년 말에 식당을 많이 엽니다. ( 아... ) 제가 99년 말에 정말 식당 개업식 많이 돌아다녔어요. 탈북자들 때문에. ( 하하하하 ) 홍진희 씨도 강남구 청담동에 라는 금강옥이라는 식당을 내고요. ( 어, 예.) 그 다음, 자유 북한인 협회 회장하던 한창권 씨라는 분도 계신데 그 분도 뭐, 강동구 길동에 식당을 내고 그럽니다. ( 예...) 아... 나중엔 다 망했습니다. 좀 문젠데 하여튼. ( 예. )

외국에도 다녀올 수 있게 됐습니다. ( 어, 예. ) 여권도 안 내줬는데 여권도 내주게 되고 ( 예. ) 하여튼 이런 일들이 다 한참 뒤에 벌어진 일이고요 ( 네. ) 기자회견 직후에 벌어졌던건 국가정보원, 국정원의 비열한 복수극입니다. ( 아...) 악랄했어요. ( 예. )

제가 악랄이란 단어를 쓰는데 정말 악랄했어요. ( 예. )

안녕하세요.

청년 논객 노정태입니다.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이 진보 논객들과 함께 살아온 우리의 한 시절. 우리가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그 시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보고자 책을 펴냈습니다. <논객시대> 인문 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반비에서 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폭력을 넘어서> 오창익입니다. 우리시대의 예언자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를 보내드립니다. 국가는 신성한 존재일까요? 국가의 정책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될까요? 국가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과 불의를 넘어서려는 뜻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답을 줍니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를 보십시오. <기억하라, 연대하라>와 함께 공권력의 의미, 사람다운 삶의 의미를 찾기 바랍니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 삼인출판사.

오창익: 기자 회견이 끝난 다음에요. 뭐, 이렇게 세상은 이 문제 때문에 정말 고민하게 되고 어, 이런 일이 있었어? 세상에. ( 네. ) 어,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대한민국이. 뭐 이런 사회적 여론이 형성됐는데, 희한하게 자유 북한인 협회 사람들이 안 찾아오는 거예요. 왜 그럴까? 근데 보통 인권 운동 하다보면 어떤 문제가 이렇게 터지면 또 잘 해결되는 방향이면 피해자나 당사자들이 안 오시는 경우도 있어요. ( 아, 예. ) 그래서 무소식이 희소식인 경우가 되게 많습니다. ( 음, 예. ) 그냥 대충 그러려니 했습니다. ( 예. )

두어 달쯤 지난 다음에 자유 북한인 협회 한창권 회장이 찾아왔어요. ( 예. )

어떻게 지냈냐고 그동안...물어봤더니 감옥에 갔다왔다는 거예요. 구치소에. ( 예? ) 무슨 얘기야? ( 예. )

그랬더니 회장, 부회장, 그 다음에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이 주인공 홍진희 씨 ( 예, 예. ) 홍보 부장이 전부 다 구속되어서 감옥에 갔다왔다는 거예요. ( 허허허...왜요? ) 어떻게 된 건가. ( 예. )

국정원의 보복이었습니다. ( 아... ) 자, 1차 표적은 홍진희 씨였어요. ( 예. )

왜 홍진희 씨가 표적이 됐냐하면 그 문제의 1월 15일 기자회견에서 그 가족들 얘기를 다 한겁니다. ( 아... )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거. ( 예, 예, 예... ) 인간쓰레기였고 그 쓰레기가 안 되기 위해서 어머니를 모셔왔는데 그날 두들겨 맞았다. ( 예. )

그러니까 언론이 굉장히 조명을 했어요. 이 양반에 대해서도. ( 예. )

한겨레 신문 따로 박스로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하고 그래요. ( 예, 예. ) 그러니까 이제 홍진희가 1차 표적이었는데 어떤 식으로 보복을 하냐면 이래요. 홍진희 씨가 사귀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연상의 여인인데. ( 예, 예. ) 이 여성에게 홍진희 씨를 고소하라고 합니다. 강간 혐의로. ( 강간 혐의로? ) 네.

고소를 유도해요. ( 예. )

그리고 3월 3일에 검찰이 이제 홍진희 씨를 강간 치상 뭐, 횡령 혐의로 구속한 거예요.

김종배: 이게 99년 1월에 기자회견했었고, (네.) 99년 3월 3일에? (네.) 예.

오창익: 어...뭐,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냐하면 이런겁니다. 홍진희 씨가 사귀던 여성이 있었어요. 조씨라는 분인데. ( 예. )

1월 15일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일주일 후인 1월 22일에 홍진희 씨를 강간 치상하고 횡령 혐의로 고소해요. ( 예. )

아...근데 고소하기 이틀 전에 자신을 통일부 사무관이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를 했어요. ( 예. )

어… 홍씨를 고소할 생각이 있냐. 이런거를 물어봐요. 어떻게 알죠? 이 사람이. 1월 초에 홍진희 씨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몇대 맞았대요. ( 예. )

뭐, 때리면 안 돼죠. ( 예. )

억울해가지고 이제 평소 잘 아는 이북오도민 간부에게, 오도민회 간부에게 이런 얘기를 하소연을 했는데. ( 예. )

그렇지만 이제 화도 풀렸고 ( 네. ) 또 홍진희 씨도 싹싹 빌고 그래서 ( 네. ) 99년 말에도 가정폭력이나 뭐 데이트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을 때니까 ( 예. ) 본인도 이제 없었던 일로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김종배: 아...이 여성도 탈북자였나요?

오창익: 아니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 예, 예, 예. ) 아...그런데 그, 통일부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집에 찾아온 거예요. ( 예. )

일행과 함께 찾아왔어요. ( 예, 예. ) 그 통일부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이 홍진희 씨의 여자 친구에게 들려준 얘기는 놀라웠습니다. ( 예. )

서준식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당시 인권 운동 사랑방 대표지요. ( 어우...예, 알죠. 예, 예. ) 서준식이 홍진희와 친하게 지낸다. ( 네. ) 아, 요번에 기자회견도 홍진희가 서준식의 코치를 받아서 한거다. ( 예. )

서준식은 북한의 영웅이다. 간첩이다. ( 예. )

실제로 서준식 관련 영화가 북한에서 만들어 지기도 해요. ( 아...  )  서준식 씨는 형인 서승 씨와 함께 재일 교포 유학생으로 서울대 유학하고 있을 때, ( 예. ) 71년이죠. ( 그렇죠. ) 박정희, 김대중, 김대중, 박정희 대통령 선거 때 직전에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을 터트리는 겁니다. ( 예. )

그래서 서승 씨는 19년, 서준식 씨는 17년 동안 감옥에 있어요. ( 그때 고문 당하고. ) 아, 그럼요. ( 예. )

네.

그, 뭐 이거 완전히 전형적인 조작 간첩사건이죠. ( 그렇죠. ) 그런데 북한에서 이걸 영화로 체제 선전용 영화로 만들었다고 그래요. ( 아... ) 이 영화에서는 서준식 씨가 죽는거로 나온다고 그러더라고요. ( 예. )

서준식 씨가 평소에 기분 되게 나빠했어요. 멀쩡히 살아 있는데... ( 예. ) 하여튼.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뭐냐면 북한에서 겨우 탈출해 왔는데 북한 간첩과 어울리니까 이렇게 되면 국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넣을 수밖에 없다. 반공법 이런거로. ( 네. )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된다. ( 네. ) 냅둘거냐. 이렇게 한 거예요. 그런데 조씨라는 이 애인이 굉장히 좀 선량한 분이에요. ( 네. ) 진짜 사랑하고. ( 예. )

겁이 덜컥 나잖아요. ( 그렇죠. ) 그러니까 이, 어떻게 해야되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이 사람들이 제안하는게 홍진희를 고소를 해놔라. 그러면 검찰에 잠깐 구속시키도록 하겠다.

김종배: 그러니까 서준식 씨와 떼어놓기 위해서?

오창익: 떼어놓기 위해서. 그러면 ( 네. ) 그게 훨씬 낫지 않냐. ( 예. )

이런 거예요. ( 예. )

몇달 감옥에 갔다 오면 되는거 아니냐. ( 예, 예. ) 그럼 자기들이 도와주겠다. 이런 거예요. ( 예. )

그리고 이 통일부 사무관은 뭐, 다 도와줘요. 이를테면 어...근처 병원으로 데려가서 진단서도 끊게 해주고. ( 네. ) 진단서 비용도 대신 내주고. ( 예. )

또 고소장 쓰러 가자고 해서 변호사 사무실에 간 거예요. 뭐, 북부지검 앞에. 그러니까 가니까 이제 이미 고소장이 다 써있는 거예요. ( 허...예. ) 그리고 거기 사인만 하면 되는 거죠. ( 예. )

그리고 뭐, 인지 때도 다, 저, 뭐야... 사무관이 다 내주고 이런 겁니다. ( 통일부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결국 국정원 직원이었죠? ) 그렇죠.

( 예. )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도 그 사람이 다 데리고 다니고. ( 예, 예, 예. ) 승용차로 모시러 다니고. ( 예. )

이래서 이제 고소한 다음에 수사를 거쳐서 이제 홍진희가 구속됩니다. ( 예. )

근데 상황이 좀 이상한 거예요. 성폭행이잖아요. 강간 치상. ( 그렇죠. ) 횡령까지 있어요.

김종배: 횡령은 또 뭐예요?

오창익: 아, 횡령은 뭐냐면 그...저, 뭐야 반지가 있었어요. 조씨의 비취반지가 있었는데. ( 예. )

그거를 홍진희가 이제 저, 전당포에 맡겨 놓고 어...100만원이 잡혔다는 거예요. ( 아... ) 그걸 횡령으로 한 거예요. ( 예. )

근데 뭐 하여튼 연인 관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래요. 본인들이 다 그렇게 얘길 해요. ( 예. )

그러니까 그거를 이제 범죄로 만들 수 있는 거죠. 내 허락 없이 자기가 가져가서 맡겼다. 이렇게. ( 예, 예, 예. ) 하여튼 그런, 그런 얘기입니다. ( 예. )

단순히 겁만 줘가지고 간첩과 떼어놓을려고 했는데 상황을 보니까 어, 홍진희 씨가 징역 15년 이상 살 수도 있고 무기도 된다는 이런 얘기를 들은 거예요. 이 양반이. ( 예. )

그러니까 큰일 난거지. 앗 뜨거워라. 이런 거예요. ( 예. )

그래서 고소를 취사하려고, 취하하려고 그랬어요. ( 예. )

그러니까 사무관 얘기가 만약 당신이 고소를 취하하면 당신 무고죄로 당신이 감옥간다. 이런 거예요. ( 예. )

하... 그런데 나중에 이 사무관이 국정원 직원이란걸 알게 된거죠. ( 아... ) 동료 탈북자를 통해서. ( 이 조씨가. 예. )

예, 조씨가 이제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 예. ) 국정원 직원이라는걸 알게된 거예요. ( 예, 예, 예. ) 아...어떻게 해야되나...그래서 저희하고 이제 연결이 됐고 ( 예. ) 또 저희가 한겨레에 이제 취재하도록 해가지고 이제 취재도 하고 그러는데요. ( 예. )

아, 다 확인합니다. 이를테면 그, 사무관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걸으니까 그게 국가정보원의 탈북자 담당 파트였다는걸 확인했고요. ( 예. )

뭐, 전화걸으니까 뭐, 부인하고 뭐, 이사갔다고 그러고 뭐, 이러고. ( 예. )

그 다음에 이제 그...홍씨의 애인인 조씨와 사무관이라고 하는 국정원 직원들이 만나는 장면도 한겨레 기자가 다 촬영합니다. ( 아, 예. ) 국정원 직원이 우리를 미행한게 아니라 거꾸로 우리가 국정원 직원을, 직원을 미행해서 증거를 다 확보해놔요.

김종배: 그거 김아영 씨 사건하고 비슷하네.

오창익: 네...그래서 아...또 조씨를 통해서 이게 꼬드겨가지고 저, 고소를 조작하고 ( 예. ) 고소하라고 압박했다. 이런거도 맞고. ( 예, 예, 예. ) 그 다음에 이제는 신문사 통해서 국정원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면담 요청을 합니다. 어떻게 된거냐. ( 예, 예. ) 이때는 이제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 때니까 국정원에서도 면담에 응해요. ( 네. ) 탈북자 담당 직원들이 나옵니다. 조씨 모른다고 그래요. 만난 적도 없다고 그러고. ( 예. )

그리고 홍진희 씨를 구속시키는 게 국정원에 무슨 이익이 있냐 이렇게 얘기해요. 또 멋있는 말을 하는데 피해자를 꼬드겨가지고 고소하게 했다는 발상 자체가 ( 예. ) 국가정보원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우린 이미 다 증거를 확보해놨고 ( 예. ) 그 말을 한 직원이 조씨를 만나고 같이 식당에서 뭐, 갈비도 먹고 이런 것도 다 확인했어요. ( 예. )

사진도 있고. 이게 이제 한겨레21에서 99년 4월 22일치에 커버스토리로 다뤘는데요 ( 예. ) 한겨레21 독자 중에서 혹시 이 커버스토리가 사람이 아니라 코브라가 이렇게 혀를 내밀고 있는 장면의 사진이 하나 있어요. 그거 희한한.

김종배: 그거, 코브라를, 국정원을 코브라에 비유한 겁니까?

오창익: 네, 네. 제목이 <국정원의 비열한 복수극>입니다. ( 예, 예. ) 하…

김종배: 그래서 홍진희 씨 어떻게 됐습니까?

나왔죠. 이제 소를 취하해가지고 나왔어요.

김종배: 예, 예, 예, 예.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러면 얼마나 있었어요. 구치소에는 그러면?

오창익: 아, 뭐, 한...달 조금 넘었나. ( 예, 예, 예. ) 한달 쯤 있었어요. ( 예, 예. ) 이것 뿐만이 아니라 그, 회장인 한창권 씨, 부회장인 뭐, 유재희 씨, 이런 양반들도 이제 구속이 되는데 폭행 사건에 연루되요. 탈북자들이 와가지고 시비 걸고 이제 ( 예, 예. ) 서로 그래서 약간 주먹다짐을 하는데 ( 예. ) 또 고소해가지고 들어가게 되고 이런거고요. ( 예, 예. )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양반들이 안보 전문 강사직 이런거 하잖아요? ( 예. )

여기에 다 제외됩니다. 박탈당하는거고요.

김종배: 일거리가 끊겨버리는 거잖아요.

오창익: 네, 그 다음에 이, 좋은 방법은 아닌데 대형 교회들이, 여의도 순복음교회같은 데들이 그렇게 많이 하는데, 탈북자들 보고 교회 예배에 출석하라고 그래요. ( 네. ) 그러면은 뭐, 매주에 나가면 한 달에 네 번 또는 다섯 번 나가잖아요? 그럼 한 달에 50만원씩 이렇게, 줍니다. ( 아, 진짜요? ) 어, 그럼요. ( 왜요? ) 아니 그러니까, 하나는 자기들이 탈북자 돕는다 이런 거도 있고 탈북자들도 우리 교회 나온다 이런 것도 있고. 두 가지죠.

김종배: 하...아, 돈을 준단 말이에요? 와서 예배봤다고? (지금도 줘요.) 십일조를 내는게 아니라?

오창익: 네, 그렇죠. ( 나, 참. ) 아, 모르, 모르세요? ( 예. )

하여튼 그런데 ( 예. ) 이런 것도 이를테면 취소하는겁니다. 치사하게.

김종배: 그것까지 끊어버렸다?

오창익: 예.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 예. ) 교회 나오면 50만원 주는 거, ( 네. ) 이, 뭐...뭐라고 그럴까요. 보조금이랄까요. ( 네. ) 이거도 취소됐고. ( 예. )

그 다음에 심지어 이, 생계 보조금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많지 않아요 근데. ( 예. )

이게 통일부에서 주는 건데 매달 25만원에서 30만원밖에 안되는데 정말 그, 생계비죠. ( 네. ) 이것도 이제 통일부에서 끊어버리게 되고...뭐, 이럼, 이럼, 이럽니다.

김종배: 완전히 다 끊어버렸네. (아, 그렇죠.) 예.

오창익: 그러니까 뭐, 보복이 아주 가혹한 거예요.

김종배: 완전히 손가락 빨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오창익: 네, 가혹한 보복이 있다고 이제 언론을 통해서 알리게 되면서 이런게 풀리긴 하지만. ( 예. )

그래도 가혹한 보복을 받습니다. ( 예. )

아...지금도 그렇다고 그러죠. 어제...저... 정청래 씨죠. ( 예. )

민주당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가 ( 간사죠. 예. )

국정원 2차장을 만났더니 ( 예. ) 국정원 2차장이 하는 얘기가 국가정보원 검찰 간첩조작사건에서 ( 네. ) 문서 위조는 없었다. ( 어제 그랬대요? ) 어제 그랬다는 소식이 오늘 아침 뉴스로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 네, 네. ) 국정원은 그런 일 하지 않는다.

김종배: 아, 또 그런 일 하지 않는다?

오창익: 그럼요. 그러니까 일관되요 이런 것들은... ( 예. ) 참 세월이 지나도 ( 예. ) 뭐, 역사는 비극으로 반복됩니다. ( 예. )

하여튼 나중에 이제 조금 잘 풀려서 식당도 냈는데 식당이 망했어요. ( 아... ) 에...그래서 또 홍진희 씨가 뭐, 카드깡도 하고 뭐 이러면서 좀 어렵게 산다는 얘기가 어디서 어렴풋이 들려왔습니다. ( 예. )

그러다가 홍진희 씨 소식을 다시 듣게 된거는요. 몇 년 있다가 2004년 11월이었어요. ( 예. )

2003년에도 많이 들었습니다. ( 예. )

고 즈음에 어떤 일들이 있었냐면,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데에 뭐, 캐나다 대사관, 일본 대사관, 또 뭐, 국제학교 이런데에, 그러니까 저, 치외법권 지역이죠. ( 네, 네, 네. ) 이런 데에 탈북자들 수십 명이 막 뛰어들어가고 ( 예, 예. ) 담 넘어 들어가고 그런 걸 화면으로 찍는 것들 보셨죠.

김종배: 네. TV에도 여러 번 뉴스에도 나오고.

오창익: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탈북자 문제로 국제적으로 관, 관, 관심이랄까 ( 예. ) 여론을 환기시키는 그, 효과도 있었지만 ( 예. ) 굉장히 위험한 작전이기도 했습니다. ( 예. )

왜냐면 애, 갓난애 들쳐 업은 엄마가 그 담을 넘어가고 막, 넘어가다 잡히기도 하고 막 그랬죠.

김종배: 그리고 막 뛰어 들어가다가 넘어져서 고꾸라지는 장면도 있었고 그랬죠.

오창익: 그렇죠, 그렇죠. 그리고 이제 중국 공안에 체포되기도 하고. ( 네, 맞아요. 예. )

이런 위험한 일들을 했는데 이런 일들을 홍진희 씨가 하게 된 거예요. ( 이른바 기획 탈북 일을 한거죠? ) 기획 탈북 브로커를 한 겁니다. ( 아, 예. ) 아이고. 그래서 중국에 살면서 기획 탈북 브로커를 하다가 들켜가지고 쫓겨나요. ( 예. )

추방을 당합니다. ( 예. )

그리고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이게 ( 네. ) 조치가 되죠. ( 예. )

그런데 또 일본을 통해서 다시 중국에 밀입국을 해요. ( 예. )

그래서 기획 탈북 일을 합니다. 기획 탈북 일이 왜 하냐하면 뭐, 홍진희 씨 마음 속에 이제 인도주의적인 어떤 것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두당 얼마씩 되거든요. ( 아... ) 들어오게 되면.

김종배: 아...이른바 수수료 받는다라는 그... (그럼요.) 예.

오창익: 그러니까 탈북자와 관련된 데에 정말 인도주의, 정말 사람에 대한 사랑, 또, 이, 난민 같은 분들 아닙니까. 쫓겨나고 디아스포라같은 분들에 대한 애정으로 하는 분도 약간, 조금 있어요. ( 예. )

근데 많은 분들은 사실은 돈 놓고 돈 먹기 방식을 많이 합니다.

김종배: 그렇게 탈북시켜서 국내에 들어오면 저 정착지원금이라는게 나오니까... (네, 네.) 거기서 얼마 떼서 나 다오. (그렇죠.) 그런식으로 이제 하는 거죠?

오창익: 근데 그게 말로 하면 안되니까  (네. ) 처음엔 내가 너를 탈북시켜준다고 할 때 벌써 이제 저, 지불 각서 같은거 씁니다. ( 예. )

그래서 기획 탈북자와 탈북자, 예비 탈북자, 탈북자죠. 탈북, 한국에 들어올 탈북자가 채권채무관계로 엮이는 거예요. ( 네. ) 뭐, 그, 돈 2천 만원을 꿨다, 꿔줬다 이런 식으로. ( 예, 예. ) 그런, 그런 식으로 합니다. 홍진희 씨가 참 이렇게, 이렇게까지 되요.

김종배: 그러면 결국은 돈 받고 기획 탈북 일을 하게 된건 (예.) 금강옥이라는 식당 망하고... (그렇죠.) 국내에서 돈 벌 수 있는 길은 거의 다 막히고.

오창익: 네, 네, 네. 좀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김종배: 그래서 결국은 거기까지 간 건가요.

오창익: 그렇게라도 먹고 살아야되니까 ( 예. ) 뭐...그런 일을 해요. 꼭 나쁜 일이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 네, 네, 네, 네. ) 뭐, 뭐, 뭐...땅파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 예. ) 어느정도 비용도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 예, 예. ) 그러다가 이 양반이 2004년 11월에 중국에서 체포되가지고요. 그, 한 번은 추방됐다가 다시 중국에 들어가서 그 일을 또 하니까 이번엔 체포되서 7년 형을 받습니다. ( 어이고, 예. ) 7년 형. 중국 감옥은요, 무서워요. ( 예, 그렇다면서요? ) 네.

대한민국 감옥보다 되게 열악합니다. ( 예. )

이게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수준을 보여주거든요. ( 그렇죠, 교도소가 원래...) 대한민국 감옥보다 유럽의 감옥이 훨씬 좋고, 유럽도 중유럽보단 북유럽의 감옥이 훨씬 좋습니다.)

김종배: 예, 근데 미국 교도소는 별로... (엉망진창이죠.) 그렇죠.

오창익: 인권 수준이 낮으니까 그렇죠. ( 예. )

미국 교도소는요, 뭐, 한 50% 이상이 민영교도소예요. 교도소 회사가 운영해요. ( 네. ) 회사의 목적은 뭡니까. 영리잖아요. 영리. ( 그렇죠. ) 그러니까 더 많은 재소자가 들어와야 되고, 재소자가 더 오래있어야 되는거예요. ( 참, 아이고... ) 그, 미국 교도소 중에는 외신에서 한 번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체육관 같은 데. ( 예. )

진짜 체육관이에요. 큰 체육관에 침대가 쫙 있는거예요. 난민, 무슨, 임시 수용 시설처럼. 교도소 방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감방이 아니라. 그러니까 한 번에 5백명이 동시에 자는 그런 교도소도 있어요.

김종배: 아 무슨 이재민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

오창익: 그러니까요. 비용을 낮추잖아요. ( 야, 심하다. 진짜... ) 직원들 다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되고. 그쵸? ( 예, 예. ) 소장이나 과장만 월급 두 배로 주고 이런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 예. )

호주,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경우에 민영 교도소 한 10%, 영국도 이렇게 되는데. 어...하여튼 엉망진창입니다. ( 예. )

그런 나라들은. 하여튼. 이제 본론을 얘기해야지요. 중국 감옥에서 7년 동안 갇혀 있어야 된다는 건 굉장히 가혹한 일입니다. ( 그러게요. ) 그리고 이 분이 좋은 일도 많이 한 거예요. 사실 한국에 들어오기 어려운 분들을 탈북할 수 있도록 이렇게 돕는 일도 했으니까요. ( 예. )

7년 형을 받았지만 7년 다 살지는 않고 6년 만에 나옵니다. 가석방으로. ( 예. )

중국에서 이제 추방되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죠.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 예, 예, 예. ) 근데 이쯤 되니까요. 정말 한국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거예요.

김종배: 정나미가 다 떨어져 버린거예요.

오창익: 다 떨어졌죠. 한국에 들어와서 부터 이제 대성공사에서 고문 당해...어쩌구... ( 네. ) 그리고 이걸 문제제기 했으니까 또 다시 그것 때문에 감옥 가야 돼... ( 그렇죠. ) 애인의 고소 취하로 나오긴 했지만... ( 예. ) 식당도 열었지만 생활 어려워져... ( 네. ) 자본주의 경제 실태에 정착하고 적응하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식당 일 하는게 대한민국 국민도 대한민국에 살았던 사람들이 해도 열에 아홉이 망하는데...)

김종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지금 뭐 가게했다가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그럼요.) 예, 예. 그게 힘든 일이지요. 특히 식당 같은 경우는 자영업 중에서 폐업률이 가장 높은 거 아닙니까.

오창익: 그럼요. 뭐, 통계 여러가지가 있는데 2년 내의 폐업 비율이 92%까지 올라가고 그러는데요. ( 그러니까. 예. )

하여튼. 그러니까 뭐, 좀 답답하고 일단 정나미 떨어지고 이런 거예요. 만정이 떨어진 이런 상태입니다. ( 예. )

그렇지만 뭐, 돈도 없고 뭐, 이런 상태죠. 아...그래서 어디든 가고 싶어해요. 한국에 왔다가. 근데 밀입국을 한 적이 있잖아요. ( 그렇죠. ) 일본 통해서 중국으로 그냥 몰래 들어갔으니까. ( 아... ) 여권 발급이 제한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아하, 예, 예... ) 그래서 홍진희 씨가 2011년 3월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출해요. ( 예... ) 그러니까 내가 탈북자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억울한 고생을 했는데...그건 맞아요. 그런 측면이 굉장히 많죠. 그런데 여권마저 안 내주는 거는 인권 침해다. ( 네. )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요 문제를 가지고 외교통상부에다가 이제 권고를 합니다. 협조 공문 발송을 해주고 그래요. ( 아... ) 여권을 줘라. ( 네. ) 그래서 홍진희 씨 여권이 나옵니다. 단수여권으로. ( 아... ) 이걸 발급받고 곧바로 일본으로 출국했어요. ( 예. )

그때 이제 이유는 뭐 가족이 일본에 있는데 아프다. 이런거였는데. ( 예. )

아...지금 제가 다른 탈북자들한테 들으니까 홍진희 씨 일본에서 영국으로 갔다고 그러더라고요. ( 아... )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그래요.

김종배: 아, 그래요? 탈북자 중에 영국으로 간 분들이 꽤 된다면서요?

오창익: 뭐 한 3-400명 될 거 같아요. ( 예, 예, 예. ) 그러니까 이게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입니다.

김종배: 그러면 그 애인 조씨하고는 결국 안 맺어졌습니까?

오창익: 어, 그, 그...오래 사귀지 못했습니다. ( 아, 그래요? ) 아, 왜냐면 또 상처가 남잖아요. ( 그렇죠. ) 그리고 그 조씨 입장에서도 얼마나 미안합니까. 이 분들은, 그러니까 홍진희 씨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귄거예요. 중국 루트로 이렇게 탈북하다가 마지막에 홍콩에 있었는데 ( 예. ) 이 분이 항공사 여승무원이었어요. ( 어, 예... ) 그래서 홍콩에 있다가 만나게 된거예요. ( 아... ) 그러니까 좀 깊은 인연인거죠.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리고 홍콩에 이제 국적도 없고 탈북자이고 대한민국에 못 들어온 신세로 있는 홍진희 씨 입장에서는 정말 그, 고마운 사람이었고 이랬는데. 국정원이 개입하면서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도 ( 상처받은 거죠... ) 깨버린 겁니다.

김종배: 가족은 어떻게 됐어요?

오창익: 아, 가족들도 지금 하나는 뭐, 한국에 있고 하나는 영국에 있고 뭐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 예. )

이게 다 풍문으로 들은 얘깁니다. ( 확인이 안 된거네요. ) 네.

홍진희 씨가 영국에 있다는 건 여러 명이 동시에 얘기하니까 아마 사실인 것 같은데요. ( 예. )

확실한건 대한민국엔 없습니다. ( 예. )

그, 이, 파란만장한 삶이잖아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태어나서 중국을 떠돌다가 홍콩을 통해서 대한민국에 들어왔다가. 대한민국에서 인권 침해를 당할 만큼 당하고 교도소에, 구치소에도 갔다가 다시 나와서 ( 참... ) 일본갔다가 중국가서 또 중국에서 6년 동안 꼬박 6년이에요. ( 네. ) 교도소에, 감옥에 갇혀있다가 다시 한국에 왔다 일본 갔다가 이제 드디어 영국까지 간... ( 네. ) 파란만장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인데요. 홍진희 씨의 삶은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 ( 그렇죠. ) 이런게 사실 대한민국이, 이 대한민국에 들어오고 있는 탈북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탈북자 정책이라는 것이 정말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뭐, 이런 생각이 들고요. ( 어, 참... ) 뭐, 이, 홍진희 씨의 케이스를 생각한건. 최근에 이제 간첩조작사건의 유우성 씨의 경우에도. ( 그렇죠. ) 아...유우성 씨와 그 일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건지... ( 그러게요. ) 저는 그, 가장 답답한 것 중에 하나가요. 유우성 씨가 이제 무죄를 선고받을 거예요. 조작이니까 무죄지요. 당연히. 무죄를 선고받은 다음에 국가정보원이 또 비열한 보복을 해가지고 유우성 씨를 중국으로 추방할 가능성이 저는 있을 것 같아요.

김종배: 아니, 이미 언론 지면에 추방 얘기가 나오던데요.

오창익: 그러니까요. 슬슬 흘리잖아요. ( 예, 예. ) 이건 막아야 됩니다. ( 예. )

그렇죠?

막아야 되지 않습니까? ( 예. )

그렇게 고생했으면 ( 예. ) 우리가 잘 모셔야죠. ( 아... ) 그래서 유우성 씨의 삶은 또 앞으로 어떻게 될건지에 대한 고민이 있고요. 이 방송 마무리하면서 ( 예. )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 또 탈북자 간첩 사건이 터졌어요. ( 네. ) 오늘자 신문에 보도가 되는 겁니다. ( 예. )

40세 홍씨라는 분인데... ( 네. ) 뭐, 진작에 들어와가지고 2008년에 "일반탈북자", 이건 따옴표 써야되겠죠? ( 예. )

일반탈북자로 들어왔다, 들어왔다는 거예요. 위장해서. ( 네. ) 국내로 잠입한 북한보위부 요원이라는 거예요. ( 예. )

국가정보원이 수사했고 검찰이 기소했습니다. ( 예. )

그러니까 맞겠죠? ( 예. 아니. ) 아, 그러니까 대답하신 거예요?

김종배: 아…맞겠냐고요? 잘 모르겠죠. (모르죠, 모르죠. 바로 그거예요.) 어떻게 알아요 그거를.

오창익: 그러니까 국가정보원이 간첩 여부를 수사했고 검찰에서 기소를 한 거예요. 그래서 언론 보도가 된건데.

김종배: 아니 유우성 씨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는데...

오창익: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맞겠지. 간첩이겠지. 라는 생각이 안드는 거예요. ( 흐, 예. ) 야, 저것도 좀 살펴봐야 되는거 아니야? 민변 변호사들한테 좀 얘기해봐야 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예요.

김종배: 아니 저도 여기서 좀 한마디 좀 하고 싶은데. 우리가 대공, 정말 중요하죠. 방첩 중요하고. 그걸 누가, 대한민국 국민 중에 그걸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네.) 그런데 바로 그런 것들을 강화시키고 진작시키는게 뭐냐면 진짜 제대로 간첩 사건 수사하는 거예요. (네. 그렇죠.) 억울하게 조작해버리고 이게 지금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나라를 지금 뭐 들었다놨다 해버리면 ( 네. ) 진짜 간첩 사건을 밝혀낸다고 국민들이 아, 믿겠냐는 거죠. (안 믿죠. 제가 안 믿겨져요.) 거기서 방첩에 구멍이 뚫리는 거잖아요.

오창익: 그렇죠. 그게, 그러니까 중요한게 이제 신뢰잖아요. ( 그럼요, 그럼요. ) 그, 국가정보원 검찰 간첩조작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 개인을 파괴했다는 것도 주. 중요하지만 국가기관 전반의 신뢰가 정말 바닥에 떨어졌다라는 거예요. ( 예, 예. )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정권은 5년에 불과한데 ( 네. ) 검찰청 이런거는 한 60년 이상 쭉 가잖아요. ( 네. ) 국가가 훨씬 더 길잖아요. ( 네. ) 국가정보원을 개혁하든 어떻든 간에 국가에 정보기관이 있어야 되는거 아닙니까. ( 예, 예. ) 수명이 좀 더 길어요. 더더군다나 그 국가에 뿌리박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역사를 같이 하는거 아닙니까. ( 그럼요. ) 대한민국이라는 60 몇 년 밖에 안되는데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장구하잖아요. 국가의 수명과 비교도 안 될만큼 긴 시간이잖아요. ( 예. )

그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국가가 지금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 예. )

대한민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북한으로 가는 탈북자들이 최근 생기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이 아니라 영국이나 어디든 일본이든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하는 탈북자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어요.

김종배: 제가 좀 된거 같은데...탈북자가 다시 북으로... (네.) 역으로 돌아가서 (여러 명 있습니다.) 북한 TV에 인터뷰하는게 우리 국내 뉴스에 나오더군요. (네, 왕왕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제 남한 욕하고 이러는거.

오창익: 네. 남한 지옥이었다. ( 네. ) 뭐, 뭐...속아서 갔다. 이런 얘긴데. ( 예. )

뭐, 맞는 얘기도 있고 틀린 얘기도 있겠죠. 중요한 얘기는 뭐냐하면 지금 우리가 통일 대박 얘기까지 하시는데... ( 네. ) 통일 정말 대박일지 쪽박일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들어와 있는 3만 명도 안되는 탈북자들도 제대로 우리가 모시지 못하고 제대로 같이 함께 살지 못하고. 탈북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가 탈북자라고 얘기하지 않고 중국 동포요, 조선족이요. 라고 말하게 하는 이런 상황 속에서 ( 예. ) 무슨 통일 대박입니까. 우리 내부부터 들여다 봐야죠.

김종배: 그렇죠. 네.

알겠습니다. 자, 오늘 여기까지 진행을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오창익: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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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희 시사통에서 월요일과 수요일 <인생 현장>과 <폭력을 넘어서> 이 두 코너를 통해서 같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로 기가막힌 사연을 갖고 있는 분들. 이런 분들을 소개를 해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또 한 분을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이런 방송이 나가고 나면 댓글에 이런 댓글들이 많이 달립니다. 정말 참 답답하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가 사는 곳이 이런 곳밖에 안되는 것이냐. 이런 댓글들이 참 많이 올라옵니다. 이런걸 보다 보면 한편으로는 참 죄송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 팍팍한 살림살이에 청량제가 될 수 있는 이런 정보, 내용, 컨텐츠를 공급을 해야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오히려 더, 아, 화를 키우고 스트레스를 키우는 그런 내용만 전해드리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좀 없지 않아 있기는 합니다만은 그래도 우리가 사는 땅이 어떤 땅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무엇부터 고쳐나갈 수 있을까. 이것을 또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으로 이 방송 내용을 꾸며드린다는 점을 좀 이해를 해주시기 바라고요. 뭐, 기회를 봐서 정말로 밝고 진취적인 그런 내용들, 승리한 경우 이런 것들도 한 번 저희가 꾸며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