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7 - 김기택 [소] (Kim Gi-Taek) - Part 3
자 그러면 한 편 더 읽어볼까요?
명태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다.
모두가 머리보다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벌어진 입으로 쉬지 않고 공기가 들어가지만
명태들은 공기를 마시지 않고 입만 벌리고 있다.
모두가 악쓰고 있는 것 같은데 다만 입만 벌리고 있다.
그물에 걸려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입을 벌렸을 때
공기는 오히려 밧줄처럼 명태의 목을 졸랐을 것이다.
헐떡거리는 목구멍을 틀어막았을 것이다.
숨구멍 막는 공기를 마시려고 입은 더욱 벌어졌을 것이고
입이 벌어질수록 공기는 더 세게 목구멍을 막았을 것이다.
명태들은 필사적으로 벌렸다가 끝내 다물지 못한 입을
다시는 다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끝끝내 다물지 않기 위해
입들은 시멘트처럼 단단하고 단호하게 굳어져 있다.
억지로 다물게 하려면 입을 부숴 버리거나
아예 머리를 통째로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린 명태들은 간신히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물고기보다는 막대기에 더 가까운 몸이 되어 있다.
모두가 아직도 악쓰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입은 단지 그 막대기에 남아있는 커다란 옹이일 뿐이다.
그 옹이 주변에서 나이테는 유난히 심하게 뒤틀려 있다.
네, [명태]라는 시였습니다. 가끔 겨울 또는 봄에 보면은 동해안에 있는 황태덕장들을 보여주는 장면들 볼 수 있죠? 명태들이 그대로 쭉 걸려서 이 시인이 막대기에 라고 이제 표현했는데 막대기 처럼 걸려있어요. 물고기 같지가 않죠 정말 물고기의 시체죠? 막대기에 가까운 몸이 돼서 악을 쓰고있다. 그런데 소리는 전혀 나지 않고 있죠,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고 입만 벌리고 있다는 것이죠. 입이라는 것이 뭘까..이 명태의 입이라는 것..공기를 마시고 뭐 다른 먹이를 잡아먹고 이러던 입이 그대로 벌려져 있다는 것에 시인이 계속해서 주목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입이라는 것은 막대기에 남아있는 커다란 옹이라고 말합니다. 막대기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 나무죠, 막대기는 나무로 되어있는 것이니까요. 옹이라고 말하고 옹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이테가 나오는 거죠. 네 이런 식으로 볼 때, 명태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을하게 되는데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네… 이 시인이 우리를 대신해서 이 명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기 때문이죠. 네..그래서 저는 늘 우리나라의 이렇게 좋은 시인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그들이 본 것, 들은 것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가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지는 못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인들을 쓰고있죠. 보고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위안을 줄 때가 있어요. 자 그러면 다 읽으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한 두 편만 더 읽어 볼까요?
소가죽 구두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다
구두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끝내 구두 안으로 발을 집어넣고야 만다
발이 주둥이를 틀어막자
구두는 벌어진 구두주걱 자국을 천천히 오므린다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네, 이 시도 참 재밌죠? '소가죽 구두' [소]라는 시집에 들어있으니까 더 의미심장해 보이는데요, 이 시가 이 시집을 여는 첫 번 째 시입니다. 첫 시죠. 그런데 보면 그냥 그런 모습이 떠올라요. 그냥 비에 젖은 구두를 신으려고 이렇게 애쓰던 시인이 그 구두의 입장이 돼서 생각을 하는 어떤 장면. 구두가 고집을 부린다고 보는거죠. 비에 젖었으니까요. 비에 젖으면 누구나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구두 주걱으로 아가리를 벌려 갖고 겨우 신을 신다가..예 어디 뭐 음식점이었을 수도 있고요 (신발 벗고 들어가는) 그러다 문득 그 자리에 앉아가지고 이 시상을 메모하는 그런 시인의 모습. 실제로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모습이 떠올라서 저혼자 웃어 보았던 시입니다. 근데 이 김기택 시인의 시는 그냥 어떤 일상을 관찰하는 것 같은데 뒤에 꼭 어떤 한 방이 있어요.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네 이 장면 보고 저는 약간 섬칫했는데요 그러니까 소가죽은 소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소 같은 면이 있어요. 이 시인도 아마 그런 부분을 생각해서 이런 구절을 넣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네..소는 시키는 일은 그냥 다 하잖아요. 네.. 소가죽 구두도 그렇다는 것..꼭 그걸 명시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닌데 그렇기 때문에 더..어떤 의미에서는 섬칙한 부분이 있는 그런 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편만 더 읽어 드리겠습니다.
머리 깎는 시간
이발사는 희고 넓은 천 위에
내 머리를 꽃병처럼 올려놓는다.
스프레이로 촉촉하게 물을 뿌린다.
이 무성한 가지를
어떻게 전지하는 게 좋을까
빗과 가위를 들고 잠시 궁리하는 눈치다.
이발소는 시계 초침 소리보다 조용하다.
시계만 가고 시간은 멈춘 곳에서
재깍재깍 초침 같은 가위가
귓가에 맑은 소리를 낸다.
그 맑은 소리를 따라간다. 가위 소리에서
찰랑찰랑 물소리가 나도록 귀 기울여 듣는다.
싹둑, 머리카락이 가윗날에 잘릴 때
온몸으로 퍼지는 차가운 진동.
후두둑, 흰 천 위에 떨어지는 머리카락 덩어리들.
싹둑싹둑 재깍재깍 후드둑후드득…
가위 소리는 점점 많아지고 가늘어지더니
창밖에 가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흙에, 풀잎에, 도랑에, 돌에, 유리창에, 양철통에
저마다 다른 빗소리들이 서로 겹쳐지는 소리.
수많은 다른 소리들이 하나로 모이는 소리.
처마에서 새끼줄처럼 굵게 꼬이며 떨어지는 소리.
조리개로 찬물을 흠뻑 부으며
이발사는 어느새 내 머리를 감기고 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만져보니
머리가 더 동글동글하고 파릇파릇하다.
비온 뒤의 풀잎처럼 빳빳하다.
네, 이발소에 앉아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르시죠? 네.. 시인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직업입니다. 머리를 깎는 그런 순간 조차도 자기 머리를 대상화 해서 생각하는 것이죠? 낯선 모습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자리 머리가 아니라 이것을 뭐 식물로 생각할 수도 있고요. 이발사를 가지치기하는 정원사로 볼 수도 있고요. 이런 상상력들이 뻗어나가면 팀 버튼의 '가위 손' 같은 그런 영화가 되기도 하는 거겠죠? 자 오늘 이렇게 김기택 시인의 시집 [소]라는 시집과 함께 해봤습니다. 읽어보니까 저도 참 좋네요.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세상을 조금 더 새롭게 보게 됐다고 그럴까요? 좋은 시는 참 그런 것 같아요. 읽으면 읽을 수록 처음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도 발견하는 것 같고요. 덕분에 저도 좋은 시간 가졌습니다. 자 오늘 이렇게 해서 '책 읽는 시간' 열일곱 번 째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