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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벙어리 삼룡이 나도향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벙어리 삼룡이 나도향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노벨라와 함께 한국근대 단편 소설을 읽고 있어요

마음과 몸을 리셋하는 시간이죠

오늘은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를 읽겠습니다

휴식의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 한 때니까

지금으로 부터 십 사 오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곳을 청엽정이라 부르지만

그때는 연화봉이라고 했다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보면

오정포가 놓여 있는 산등성이가 있는데

산등성이 이쪽이 연화봉이고

그 사이에 있는 동네 역시 연화봉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곳에 지저분한 촌락이 생겨 버렸지만

그때는 자기네 딴에는

행세한다는 사람들이 살았다

집이라고는 십여 가구 뿐이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과수밭을 하거나

채소를 심거나

콩나물을 길러서 생활을 했다

그중에 큰 과수밭을 소유하고

제법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동네사람들이 그를 오생원이라고 불렀다

얼굴이 동탕하고

목소리가 마치 여름에 버드나무에 앉아

길게 목 늘여 우는 매미 소리같이

저르렁저르렁 했다

그는 몹시 부지런한 중년 늙은이로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안팎으로 집안 일을 보살폈는데

그 동네에선 그가 마치 시계인 듯이

그가 일어나는 때가

동네사람이 일어나는 때였다

만일 그가 아침에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동네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의 집으로 가본다

그러면 반드시 그는 몸이 불편하여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경우는

일년 삼백 육십 일에 한번 있기가 어려운 일이고

이 삼 년에 한번 있거나 말거나한 일이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가 언제든지 감투를 쓰고 다니므로

동네사람들은 그를 양반이라고 불렀고

또 그 사람도 동네사람들에게 그리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섣달이면 북어쾌 김톳을 나눠주고

농사 때에 쓰는 연장도 넉넉히 장만해서

아무 때고 동네사람들이 쓰게 하니

그 동네에서는 가장 인심이 후하고

존경을 받는 집인 동시에 세력 있는 집이었다

그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이 하나 있었다

키가 원래 크지 못해 땅딸보에

목이 짧아 몸뚱이에 머리를 갖다 붙인 것 같았다

게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은 컸다

머리는 전에는 새 꼬랑지 같았던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지만

불밤송이 처럼 언제든지 푸 하고 일어섰다

그래서 걸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옴두꺼비가 서서 다니는 것처럼

숨차고 더디어 보였다

동네사람들은 삼룡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고

언제든지 벙어리라고 하든지

아니면 앵모 라고 했다

하지만 삼룡이는 그 소리를 알지 못했다

그도 집 주인이 이사를 올 때에 데리고 왔으니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 하고 세차다

눈치로만 사는 벙어리지만

듣는 사람보다 슬기로울 때가 있고

평생 조심성이 있어 결코 실수한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쓸고

소와 돼지의 여물을 먹인다

여름이면 밭에 풀을 뽑고

나무를 실어들이고 장작을 팬다

겨울이면 눈을 쓸고

장 심부름이며 진 일 마른 일 할 것 없이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럴수록 집 주인은

벙어리를 위해주며 사랑했다

혹시 몸이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쉬게 하고

먹고 싶어하는 듯한 것은 먹이고

입을 때 입히고 잘 때 재웠다

그런데 이 집에는 삼대독자로 내려오는 아들이 있었다

나이는 열 일곱 살이지만

아직 열 네 살도 안 되어 보이고

너무 귀엽게 기르니 누구에게든 버릇이 없고

어리광을 부리며

사람에게나 짐승에게 잔인포악한 짓을 많이 했다

동네 사람들은 후레자식

아비 속상하게 할 자식

저런 자식은 없는 것만 못해 하고 욕들을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 할 때마다

영감을 보고 그 자식을 좀 때려 주구려

왜 그런 것을 보고 가만둬요

하면서 자기가 대신 때려주려고 나서면

아직 철이 없어 그렇지

저도 지각이 나면 그러지 않을 것이 아뇨

하고 너그럽게 타이른다

그러면 마누라는 왜가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철이 없긴 지금 나이가 몇이예요

내일 모레면 스무 살이 되는데

또 며칠 아니면 장가 들어서 자식까지 날 것이

그래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이예요

하고 들이대며

자식을 아버지가 버려놓았습니다

자식 귀여운 것만 알았지

버릇 가르칠 줄은 모르니까

이렇게 싸움을 시작 하려고만 하면

영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 아들은 더구나

벙어리를 사람으로 알지도 않았다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오고 가며 주먹으로 허구리를 지르기도 하고

발길로 엉덩이도 찼다

그러면 그 벙어리는

어린것이 철없이 그러는 것이 도리어 귀엽기도 하고

또는 그 힘없는 팔과 힘없는 다리로

자기의 무쇠 같은 몸을 건드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앙징하기도 해서

돌아서서 빙그레 웃으면서 툭툭 털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버리곤 했다

어떤 때는 자는 벙어리 두 팔 두 다리를 살며시 동여매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화승불을 붙여 놓아

질겁을 하고 일어나다가

발버둥질을 하고 죽으려는 사람 처럼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도 했다

이러할 때마다 벙어리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꽉 들어찼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아들을 원망하는 것보다

자기가 병신인 것을 원망하고

주인의 아들을 저주하기 보다는 이 세상을 저주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의 눈물은 나오려 할 때

아주 말라붙어버린 샘물과 같이

나오려 하나 나오지를 않았다

그는 주인의 집을 버릴 줄 모르는 개처럼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밖에 없고

자기가 믿을 것도 여기 있는 사람들 밖엔 없는 줄 알았다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는 것이

자기의 운명인 줄로만 알았다

주인 아들이 때리고 지르고 꼬집고 뜯고

모든 방법으로 학대할지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의례히 있어야 할 일인 줄 알았다

아픈 것도 그 아픈 것이 의례히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요

쓰린 것도 자기가 받지 않아서는 안될 것으로 알았다

그는 이 마땅히 자기가 받아야 할 것을

어떻게 해야 면할까 하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일이 없었다

그가 이 집에서 떠나려거나

또는 그의 생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는 할 지라도

주인아들이 자기를 학대하거나 못 살게 굴 때

그는 언제나 자기의 주먹과 자기의 힘을 생각해 봤다

주인 아들이 자기를 때릴 때

그는 주인 아들 하나쯤은

넉넉히 제지할 힘이 있는 것을 알았다

때로 아픔과 쓰림이 몸으로 스며 들 때면

그의 주먹은 떨리면서 어린 주인의 몸을 치려다가

그것을 무서운 고통과 함께 꽉 참았다

그는 속으로

아니다 그는 나의 주인의 아들이다

그는 나의 어린 주인이다

하면서 꾹 참았다

그리고는 얼핏 그일을 잊어버렸다

그러다가도 동네집 아이들과 혹시 장난을 하다가

주인아들이 울고 들어올 때에는

황소같이 날뛰면서 주인을 위해 싸웠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어린애들이나 장난꾼들이

벙어리를 무서워해서 감히 덤비지를 못했다

또한 주인 아들도 위급한 경우엔

언제든지 벙어리를 찾았다

벙어리는 얻어맞으면서도 기어드는 충견처럼

주인의 아들을 위해 싫어하지 않고 힘을 다했다

벙어리가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그는 물론 이성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동네 처녀들이 저를 벙어리 벙어리하며

괴상한 손짓과 몸짓으로 놀려먹음을 받을 때는

분하고 골나는 중에도

느긋한 즐거움을 느끼어본 일은 있었지만

그가 결코 사랑으로써

어떤 한 여자를 대해본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정욕을 가진 사람인 벙어리도

그의 피가 차디찰 리는 없었다

아니면 그의 피는 더욱 뜨거웠을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뜨겁다 뜨겁다 못해

엉기어버린 엿과 같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에게 볕을 쪼여 주거나

다시 뜨거운 열을 준다면

그의 피는 다시 녹을는지도

그가 깜박깜박하는 기름 등잔 아래

밤이 깊도록 짚신을 삼을 때면

남모르는 한숨을 쉬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그것을 곧 억제할 수 있을 만큼

정욕에 대해 벌써부터 단념을 하고 있었다

마치 언제 폭발 될지 알지 못하는 휴화산처럼

그의 가슴속에는

충분한 열정이 깊이 감추어져 있었지만

아직 폭발될 시기에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비록 폭발이 되려고 무섭게 격동함을

삼룡 자신도 느끼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폭발시킬 조건을 얻기는 어려웠고

아니면

여태까지 능동적으로 그것을 나타낼 수 없을 만큼

외부로 부터 압박을 받았기에

그것으로 인한 이지가

그에게 자제력을 강대하게 해주는 동시에

또한 너무 단념만 하게 해주었다

속으로 나는 벙어리다 스스로 생각할 때

그는 몹시 원통함을 느끼는 동시에

말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자유와 똑같은 권리가

자신에게는 없는 줄 알았다

그는 이와 같은 생각에서 언제든지

단념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단념이 쌓이고 쌓여

지금에는 다만 한 개의 기계와 같이

이 집의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이 자기의 천직이라 알고

달리는 자신이 살아갈 세상이 없는 것으로 만

알 뿐이었다

그해 가을이다

주인의 아들이 장가를 들었다

색시는 신랑보다 두 살 위인 열 아홉 살이다

주인이 원래 자기가 문벌이 얕은 것을 한탄해서

신부를 구할 때

첫째 조건이 문벌이 높아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문벌 있는 집에선

그리 쉽게 색시를 내놓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어떤 영락한 양반의 딸을

돈을 주고 사오다시피 했으니

무남독녀 딸을 둔 남촌의 어떤 과부를

꿀을 발라서 약혼을 하고

혹시나 무슨 딴소리가 있을까봐

부랴부랴 성례식을 시켜버렸다

혼인 때 비용도 그때 돈으로 삼만 냥을 썼다

그리고 아들의 처가집에

며느리 뒤를 보아주는 바느질삯 빨래삯 명목으로 한 달에 이천 오백 냥씩을 대어 주었다

신부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까지

상당히 견디기도 했고

또는 금지옥엽같이 기른 터라

구식 가정에서 배울 것 읽힐 것은 못한 것이 없고

본래 인물이라든지 행동거지에

조금도 구김이 없었다

신부가 오자 신랑의 흠절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부에게다 대면 두루미와 까마귀지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어

색시에게 쥐여 지내겠지

신랑에겐 과한 신부야

남의 말 좋아하는 여편네들이 모여 앉으면

이렇게 비평들을 한다

남의 걱정 잘하는 어떤 마누라는

간혹 신랑을 보면 그대로 세워놓고

글쎄 인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정신 좀 차리죠

저리구 어떻게 색시를 거느려가누

색시 방에 들어가기가 부끄럽지 않담

하고 들이대다시피 하는 일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신랑은

그런 말하는 이들이 미웠다

일부러 자기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후에 그런 이들을 만나면

말도 안하고 인사도 않는다

또 그의 고모는 찾아와서 자기 조카를 보고

인제는 어른이야

너도 그만하면 지각이 날 때가 되지 않았니

네 처가 부끄럽지 않니

이렇게 타이를 때마다

그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 보기가 부끄럽기 보다는

자기를 이렇게 되도록 한 자기 아내가 더욱 밉살스러웠다

여편네가 다 무어야

저 빌어먹을 년이 들어오더니

나를 이렇게 못 살게 굴지

혼인한 지 며칠이 안 돼서부터

그는 색시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마치 돼지나 말 새끼를 혼례시키는 것처럼

신랑을 색시 방으로 집어넣으려하나 막무가내였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때려서

자기의 외사촌 누이의 이마에 피까지 나게 한 일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은 하는 수 없어

마침내 아버지에게 밀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풍파를 더욱 일으키고 말았다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신부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마루 한복판에 태질을 쳤다

그리고는

이년 네 집으로 가거라 보기 싫다

내 눈앞에는 보이지도 말아 했다

밥상을 가져오면

그 밥상이 마당 한복판에서 재주를 넘고

옷을 가져오면 그 옷이 쓰레기통으로 나간다

이리하여 색시는 시집 오던 날부터 팔자 한탄을 하며

날마다 밤마다 우는 사람이 되었다

울면 또 요사스럽다고 때린다

말이 없으면 빙충맞다고 친다

이리하여 그 집에는 평화로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

이것을 날마다 보는 사람 가운데

알 수 없는 의혹을 품게 된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곧 벙어리 삼룡이었다

그렇게 예쁘고 유순하고 그렇게 얌전한

벙어리의 눈으로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할

선녀 같은 색시를 때리는 것이

삼룡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건드릴 수 없을 만큼 황홀하고 숭고한 여자를

그렇게 하대한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는 주인 새서방에게

개나 돼지같이 얻어맞는 것이

마땅한 이상으로 마땅하지만

선녀와 짐승의 차가 있는 색시와 자신이

똑같이 얻어맞는 것은 너무도 무서운 일이다

어린 주인이 천벌이나 받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했다

어떤 달밤 사면은 고요적막하고

별들은 드문드문 눈들만 깜박이며

반달은 공중에 뚜렷이 달려 있어

수은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닦아 낸 듯 청명한데

삼룡이는 검둥개 등을 쓰다듬으며

밖 마당 멍석 위에 비슷이 드러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해 보았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공중에 있는 달보다도 더 곱고

별들보다도 더 깨끗했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달이 보이고 별이 보였다

삼라만상을 씻어내는 은빛보다 도 더 흰 달이나

별의 광채보다도

색시 마음이 아름답고 부드러울 듯했다

마치 달이나 별이 땅에 떨어져

주인 새아씨가 된 것도 같고

주인 새아씨가 하늘에 올라가면

달이 되고 별이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어린 주인이 자신을 때리고 꼬집을 때

감히 입 벌려 말은 하지 못 하지만

측은하고 불쌍히 여기는 정이

아씨의 두 눈에 나타나는 것을 떠올리며

삼룡은 부들부들한 개 등을 어루 만지면서

감격을 느꼈다

개는 자기를 귀여워하는 줄 알고 꼬리를 치며

삼룡의 손을 핥았다

삼룡의 마음은

주인아씨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아씨를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분에 넘쳤다

그것은 마치 살구를 보면

입 속에 침이 도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새댁이 온 뒤

다른 사람들은 자유로운 안 출입을 금했지만

벙어리 삼룡은 마치

개가 마음대로 안에 출입할 수 있는 것처럼

아무 의심 없이 출입할 수가 있었다

하루는 어린 주인이 먹지 않던 술이 잔뜩 취해

무지한 놈에게 맞아 길에 자빠진 것을

삼룡이 업어다가 안으로 들여다 누인 일이 있었다

그때에 아무도 안에 있지 않았고

오직 새색시 혼자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가

이 꼴을 보고 벙어리의 충성된 마음이고마와서

그후에 쓰던 비단 헝겊조각으로

부지쌈지 하나를 해 준 일이 있었다

이것이 새서방님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색시는 어떤 날 밤

자던 몸으로 마당 복판에 머리를 푼 채

내동댕이 쳐졌다

그리고 온몸에 피가 맺히도록 얻어 맞았다

이것을 본 삼룡은

또다시 의분의 마음이 뻗쳐 올라 왔다

그래서 미친 사자처럼 뛰어들어가

새서방님을 내던지고 새색시를 둘러메었다

그리고 날아가는 수리처럼

바깥사랑 주인영감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그 앞에 색시를 내려놓고

손짓 몸짓을 열 번 스무 번 거푸 하며 하소연을 했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는 주인 새서방님에게

물푸레로 얼굴을 몹시 얻어맞아

한쪽 뺨이 눈을 얼러 피가 나고 주먹같이 부었다

그를 때릴 때 새서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 흉칙한 벙어리 같으니

내 여편네를 건드려

하며 부지쌈지를 빼앗아

갈갈이 찢어서 뒷간에 던졌다

그러고 이놈아

인제는 주인도 몰라보고 막 친다

이런 것은 죽어야 해

하고 채찍으로 그의 뒷덜미를 갈겨서

그 자리에 쓰러지게 했다

벙어리는 다만 두 손으로 빌 뿐 이었다

말도 못하고 고개를 몇 백 번 코가 땅에 닿도록

그저 용서해달라고 빌기만 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비로소 숨겨 있던 정의감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 아픈 것을 참아가면서도

북받치는 분노를 억제했다

그때부터 삼룡은 안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벙어리로 하여금 더욱 궁금증이 나게 했다

궁금증은 묘하게 빛이 연하여

주인 아씨를 뵈옵고 싶은 감정으로 변했다

뵈옵지 못하므로 가슴이 타올랐다

애상의 정서가 몹시 그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한번이라도 아씨를 뵐 수가 있으면 하는 마음이 나더니

그의 마음의 넋은 느끼기를 시작했다

센티멘털한 가운데에서 느끼는 그 무슨 정서는

그에게 생명 같은 희열을 주었다

그것과 자기의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땐 머리로 그냥 담을 뚫고 들어가고 싶도록

주인아씨를 뵙고 싶은 것을 꾹 참을 때도 있었다

그후부터는 밥을 잘 먹을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틈만 있으면 안으로만 들어가고 싶었다

주인이 전보다 밥과 음식을 많이 주고

더 편하게 해 주었지만

그것이 싫었다

그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집 주위를 돌아다녔다

하루는 주인 새서방님이 술이 취해 들어오더니

집안이 수선수선해지며

계집 하인이 약을 사러 갔다 들어오는것을 보고

삼룡은 그 계집 하인을 붙잡았다

그리고 무엇이냐고 물었다

계집 하인은 한 주먹을 뒤통수에 대고

얼굴을 젊다는 뜻으로 쓰다듬으며

둘째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것은 집 주인은 엄지손가락

둘째손가락은 새서방님

주먹을 뒤통수에 대는 것은 여편네라는 뜻

그리고 얼굴을 문지르는 것은

예쁘다는 뜻으로 벙어리에게 쓰는 암호다

그런 뒤에 다시 혀를 내밀고

눈을 뒤집어쓰는 형상을 하고

두 팔을 싹 벌리고 뒤로 자빠지는 꼴을 보이니

그것은 사람이 죽게 되었거나

앓을 때 하는 손짓이다

벙어리는 눈을 크게 뜨고

계집 하인에게 한 발작 가까이 들어서며

놀랜 듯 멀거니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그의 가슴은 무섭게 격동했다

자기의 그리운 주인아씨가 죽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는 두 주먹을 마주치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자기 방에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두어 시간이나 두 눈만 껌벅껌벅하고 앉았었다

그는 밤이 깊어갈수록 궁금증 나는 사람처럼

일어섰다 앉았다 하더니

두시나 되어서 바깥으로 나가서 뒤로 돌아갔다

그는 도둑놈처럼 조심스럽게

바로 건넌방 뒤 미닫이 앞 담에서

주저주저 하더니 담을 넘었다

가까이 창 앞에 서서 문틈으로 안을 살피다가

그는 진저리를 치며 물러섰다

어두운 밤에

그의 손과 발이 마치

그 뒤에 서 있는 감나무 잎같이 떨리더니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갔을 때

그의 팔에는 주인 아씨가 한 손에

기다란 명주수건을 들고서

한 팔로 벙어리의 가슴을 밀치며 뻐팅기었다

벙어리는 다만 눈이 뚱그래서

에헤 소리만 지르고

그 수건을 뺏으려 애쓸 뿐이다

집안이 야단났다

집안이 망했군

어디 사내가 없어서 벙어리를

어떻든 알 수 없는 일이야

하는 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수군댄다

그 이튿날 아침 삼룡은 온몸이 짓이긴 것이 되어

마당에 거꾸러져 입에서 피를 토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곁에서는 새서방이 쇠줄 몽둥이를 들고서 문초를 한다

이놈

하고는 음란한 흉내는 모조리 하여가며

건넌방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는 손을 내저을 뿐이다

몽둥이에는 살점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피가 흘렀다

삼룡은 타들어가는 목으로 소리도 못 내며

고개만 내젓는다

그는 피를 토하며 거꾸러져서

이마를 땅에 비비고 고개를 내흔든다

땅에는 피가 스며든다

새서방은 채찍 끝에 납 뭉치를 달아서

가슴을 훔쳐갈겼다가 힘껏 잡아 뽑았다

삼룡은 그대로 거꾸러져 말이 없었다

새서방은 그래도 시원치 못했다

그는 어제 삼룡이 새로 갈아놓은 낫을 들고 달려왔다

그는 그 시퍼렇게 드는 날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벙어리를 찌르려 할 때

삼룡은 한 팔로 그것을 받았고

집안 사람이 달려들었다

삼룡은 낫을 뿌리쳐 저리로 내던졌다

주인은 집안이 망했다고 사랑에 누워서

모든 일을 들은 체 만 체

문을 닫고 나오지를 않고

집안에서는 색시를 쫓는다고 야단이다

그날 저녁에 벙어리 삼룡은 다시 끌려나왔다

그때에는 주인 새서방이

그가 입던 옷과 신짝을 주며

눈을 부릅뜨고 손으로 멀리 가리키며

가 인제는 우리 집에 있지 못한다

이 소리를 듣는 삼룡은 기가 막혔다

그에게는 이 집 외에 다른 집이 없다

살 곳이 없었다

자기는 언제든지 이 집에서 살고

이 집에서 죽을 줄로만 알았다

그는 새서방님의 다리를 껴안고 애걸했다

말도 못하는 것을

몸짓과 표정으로 간곡한 뜻을 표했다

그러나 새서방은 발길로 지르고 사람을 불렀다

이놈을 좀 내쫓아라

벙어리 삼룡은 죽은 개 처럼 끌려 나갔다

그리고 머리를 개천 구석에 들이 박히면서

나가 곤드라졌다가

일어서서 다시 들어오려고 했지만

벌써 문이 닫혀 있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그는 마음으로는 주인영감을 찾았지만

부를 수가 없었다

그가 날마다 열고 날마다 닫던 문이

지금은 열려고 해도 자신을 내쫓고 열리지를 않는다

자기가 건사하고 자기가 거두던 모든 것이

오늘에는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해

충성스럽게 일한 값이 오늘에는 이것이다

그는 비로소 믿고 바라던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란 것을 알았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자기도 또한 없어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 저녁

밤은 깊었는데

멀리서 닭 우는 소리와 함께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난데없는 화염이

벙어리 삼룡이 살던 오생원 집을 에워쌌다

그 불을 미리 놓으려고 준비해 놓은 듯

집 가장자리로 쪽 돌아가며

흩어놓은 풀에 모조리 돌라 붙어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집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듯이 타오른다

불은 마치 피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 먹는

요마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집 한 채를 삽시간에 먹어버렸다

이때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낮에 이 집을 쫓겨난 삼룡이다

그는 먼저 사랑에 가서 문을 깨뜨리고

주인을 업어다 밭 가운데 놓았다

그가 다시 들어가려 할 때

얼굴과 등과 다리가 불에 데어

쭈그러져드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건넌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색시는 없었다

다시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도 없고

새서방이 그의 팔에 매달려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뿌리쳤다

서까래가 불이 시뻘겋게 타면서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몰랐다

부엌으로 가보았다

나오다가 문설주가 떨어지며 왼 팔이 부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몰랐다

그는 다시 광으로 가보았다

거기에도 없었다

다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야 그는 색시가 타죽으려고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색시를 안았다

그리고는 길을 찾았다

하지만 나갈 곳이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는 비로소 자기의 몸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이

가슴에 느껴지는 것을 알았다

색시를 자기 가슴에 안았을 때

그는 이제 처음으로 살아난 듯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이 다한 줄 알고

색시를 내려놓을 때는

벌써 그의 목숨은 끊어진 뒤였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이

그의 입 가에 엷게 나타났을 뿐


벙어리 삼룡이 나도향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Der stümperhafte Samurai (CC), koreanische Kurzgeschichte, Romanlesung, Audiomeisterwerk, koreanischer Roman, koreanisches Hörbuch, Bumblebee Samryongi Nadahyanghan (CC), Korean short story, novel reading, audio masterpiece,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The Bumbling Samurai (CC), корейский рассказ, чтение романа, аудиошедевр, корейский роман, корейская аудиокнига,

안녕하세요

노벨라와 함께 한국근대 단편 소설을 읽고 있어요

마음과 몸을 리셋하는 시간이죠

오늘은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를 읽겠습니다

휴식의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 한 때니까

지금으로 부터 십 사 오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곳을 청엽정이라 부르지만

그때는 연화봉이라고 했다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보면

오정포가 놓여 있는 산등성이가 있는데

산등성이 이쪽이 연화봉이고

그 사이에 있는 동네 역시 연화봉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곳에 지저분한 촌락이 생겨 버렸지만

그때는 자기네 딴에는

행세한다는 사람들이 살았다

집이라고는 십여 가구 뿐이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과수밭을 하거나

채소를 심거나

콩나물을 길러서 생활을 했다

그중에 큰 과수밭을 소유하고

제법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동네사람들이 그를 오생원이라고 불렀다

얼굴이 동탕하고

목소리가 마치 여름에 버드나무에 앉아

길게 목 늘여 우는 매미 소리같이

저르렁저르렁 했다

그는 몹시 부지런한 중년 늙은이로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안팎으로 집안 일을 보살폈는데

그 동네에선 그가 마치 시계인 듯이

그가 일어나는 때가

동네사람이 일어나는 때였다

만일 그가 아침에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동네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의 집으로 가본다

그러면 반드시 그는 몸이 불편하여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경우는

일년 삼백 육십 일에 한번 있기가 어려운 일이고

이 삼 년에 한번 있거나 말거나한 일이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가 언제든지 감투를 쓰고 다니므로

동네사람들은 그를 양반이라고 불렀고

또 그 사람도 동네사람들에게 그리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섣달이면 북어쾌 김톳을 나눠주고

농사 때에 쓰는 연장도 넉넉히 장만해서

아무 때고 동네사람들이 쓰게 하니

그 동네에서는 가장 인심이 후하고

존경을 받는 집인 동시에 세력 있는 집이었다

그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이 하나 있었다

키가 원래 크지 못해 땅딸보에

목이 짧아 몸뚱이에 머리를 갖다 붙인 것 같았다

게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은 컸다

머리는 전에는 새 꼬랑지 같았던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지만

불밤송이 처럼 언제든지 푸 하고 일어섰다

그래서 걸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옴두꺼비가 서서 다니는 것처럼

숨차고 더디어 보였다

동네사람들은 삼룡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고

언제든지 벙어리라고 하든지

아니면 앵모 라고 했다

하지만 삼룡이는 그 소리를 알지 못했다

그도 집 주인이 이사를 올 때에 데리고 왔으니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 하고 세차다

눈치로만 사는 벙어리지만

듣는 사람보다 슬기로울 때가 있고

평생 조심성이 있어 결코 실수한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쓸고

소와 돼지의 여물을 먹인다

여름이면 밭에 풀을 뽑고

나무를 실어들이고 장작을 팬다

겨울이면 눈을 쓸고

장 심부름이며 진 일 마른 일 할 것 없이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럴수록 집 주인은

벙어리를 위해주며 사랑했다

혹시 몸이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쉬게 하고

먹고 싶어하는 듯한 것은 먹이고

입을 때 입히고 잘 때 재웠다

그런데 이 집에는 삼대독자로 내려오는 아들이 있었다

나이는 열 일곱 살이지만

아직 열 네 살도 안 되어 보이고

너무 귀엽게 기르니 누구에게든 버릇이 없고

어리광을 부리며

사람에게나 짐승에게 잔인포악한 짓을 많이 했다

동네 사람들은 후레자식

아비 속상하게 할 자식

저런 자식은 없는 것만 못해 하고 욕들을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 할 때마다

영감을 보고 그 자식을 좀 때려 주구려

왜 그런 것을 보고 가만둬요

하면서 자기가 대신 때려주려고 나서면

아직 철이 없어 그렇지

저도 지각이 나면 그러지 않을 것이 아뇨

하고 너그럽게 타이른다

그러면 마누라는 왜가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철이 없긴 지금 나이가 몇이예요

내일 모레면 스무 살이 되는데

또 며칠 아니면 장가 들어서 자식까지 날 것이

그래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이예요

하고 들이대며

자식을 아버지가 버려놓았습니다

자식 귀여운 것만 알았지

버릇 가르칠 줄은 모르니까

이렇게 싸움을 시작 하려고만 하면

영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 아들은 더구나

벙어리를 사람으로 알지도 않았다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오고 가며 주먹으로 허구리를 지르기도 하고

발길로 엉덩이도 찼다

그러면 그 벙어리는

어린것이 철없이 그러는 것이 도리어 귀엽기도 하고

또는 그 힘없는 팔과 힘없는 다리로

자기의 무쇠 같은 몸을 건드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앙징하기도 해서

돌아서서 빙그레 웃으면서 툭툭 털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버리곤 했다

어떤 때는 자는 벙어리 두 팔 두 다리를 살며시 동여매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화승불을 붙여 놓아

질겁을 하고 일어나다가

발버둥질을 하고 죽으려는 사람 처럼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도 했다

이러할 때마다 벙어리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꽉 들어찼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아들을 원망하는 것보다

자기가 병신인 것을 원망하고

주인의 아들을 저주하기 보다는 이 세상을 저주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의 눈물은 나오려 할 때

아주 말라붙어버린 샘물과 같이

나오려 하나 나오지를 않았다

그는 주인의 집을 버릴 줄 모르는 개처럼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밖에 없고

자기가 믿을 것도 여기 있는 사람들 밖엔 없는 줄 알았다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는 것이

자기의 운명인 줄로만 알았다

주인 아들이 때리고 지르고 꼬집고 뜯고

모든 방법으로 학대할지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의례히 있어야 할 일인 줄 알았다

아픈 것도 그 아픈 것이 의례히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요

쓰린 것도 자기가 받지 않아서는 안될 것으로 알았다

그는 이 마땅히 자기가 받아야 할 것을

어떻게 해야 면할까 하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일이 없었다

그가 이 집에서 떠나려거나

또는 그의 생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는 할 지라도

주인아들이 자기를 학대하거나 못 살게 굴 때

그는 언제나 자기의 주먹과 자기의 힘을 생각해 봤다

주인 아들이 자기를 때릴 때

그는 주인 아들 하나쯤은

넉넉히 제지할 힘이 있는 것을 알았다

때로 아픔과 쓰림이 몸으로 스며 들 때면

그의 주먹은 떨리면서 어린 주인의 몸을 치려다가

그것을 무서운 고통과 함께 꽉 참았다

그는 속으로

아니다 그는 나의 주인의 아들이다

그는 나의 어린 주인이다

하면서 꾹 참았다

그리고는 얼핏 그일을 잊어버렸다

그러다가도 동네집 아이들과 혹시 장난을 하다가

주인아들이 울고 들어올 때에는

황소같이 날뛰면서 주인을 위해 싸웠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어린애들이나 장난꾼들이

벙어리를 무서워해서 감히 덤비지를 못했다

또한 주인 아들도 위급한 경우엔

언제든지 벙어리를 찾았다

벙어리는 얻어맞으면서도 기어드는 충견처럼

주인의 아들을 위해 싫어하지 않고 힘을 다했다

벙어리가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그는 물론 이성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동네 처녀들이 저를 벙어리 벙어리하며

괴상한 손짓과 몸짓으로 놀려먹음을 받을 때는

분하고 골나는 중에도

느긋한 즐거움을 느끼어본 일은 있었지만

그가 결코 사랑으로써

어떤 한 여자를 대해본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정욕을 가진 사람인 벙어리도

그의 피가 차디찰 리는 없었다

아니면 그의 피는 더욱 뜨거웠을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뜨겁다 뜨겁다 못해

엉기어버린 엿과 같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에게 볕을 쪼여 주거나

다시 뜨거운 열을 준다면

그의 피는 다시 녹을는지도

그가 깜박깜박하는 기름 등잔 아래

밤이 깊도록 짚신을 삼을 때면

남모르는 한숨을 쉬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그것을 곧 억제할 수 있을 만큼

정욕에 대해 벌써부터 단념을 하고 있었다

마치 언제 폭발 될지 알지 못하는 휴화산처럼

그의 가슴속에는

충분한 열정이 깊이 감추어져 있었지만

아직 폭발될 시기에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비록 폭발이 되려고 무섭게 격동함을

삼룡 자신도 느끼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폭발시킬 조건을 얻기는 어려웠고

아니면

여태까지 능동적으로 그것을 나타낼 수 없을 만큼

외부로 부터 압박을 받았기에

그것으로 인한 이지가

그에게 자제력을 강대하게 해주는 동시에

또한 너무 단념만 하게 해주었다

속으로 나는 벙어리다 스스로 생각할 때

그는 몹시 원통함을 느끼는 동시에

말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자유와 똑같은 권리가

자신에게는 없는 줄 알았다

그는 이와 같은 생각에서 언제든지

단념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단념이 쌓이고 쌓여

지금에는 다만 한 개의 기계와 같이

이 집의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이 자기의 천직이라 알고

달리는 자신이 살아갈 세상이 없는 것으로 만

알 뿐이었다

그해 가을이다

주인의 아들이 장가를 들었다

색시는 신랑보다 두 살 위인 열 아홉 살이다

주인이 원래 자기가 문벌이 얕은 것을 한탄해서

신부를 구할 때

첫째 조건이 문벌이 높아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문벌 있는 집에선

그리 쉽게 색시를 내놓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어떤 영락한 양반의 딸을

돈을 주고 사오다시피 했으니

무남독녀 딸을 둔 남촌의 어떤 과부를

꿀을 발라서 약혼을 하고

혹시나 무슨 딴소리가 있을까봐

부랴부랴 성례식을 시켜버렸다

혼인 때 비용도 그때 돈으로 삼만 냥을 썼다

그리고 아들의 처가집에

며느리 뒤를 보아주는 바느질삯 빨래삯 명목으로 한 달에 이천 오백 냥씩을 대어 주었다

신부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까지

상당히 견디기도 했고

또는 금지옥엽같이 기른 터라

구식 가정에서 배울 것 읽힐 것은 못한 것이 없고

본래 인물이라든지 행동거지에

조금도 구김이 없었다

신부가 오자 신랑의 흠절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부에게다 대면 두루미와 까마귀지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어

색시에게 쥐여 지내겠지

신랑에겐 과한 신부야

남의 말 좋아하는 여편네들이 모여 앉으면

이렇게 비평들을 한다

남의 걱정 잘하는 어떤 마누라는

간혹 신랑을 보면 그대로 세워놓고

글쎄 인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정신 좀 차리죠

저리구 어떻게 색시를 거느려가누

색시 방에 들어가기가 부끄럽지 않담

하고 들이대다시피 하는 일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신랑은

그런 말하는 이들이 미웠다

일부러 자기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후에 그런 이들을 만나면

말도 안하고 인사도 않는다

또 그의 고모는 찾아와서 자기 조카를 보고

인제는 어른이야

너도 그만하면 지각이 날 때가 되지 않았니

네 처가 부끄럽지 않니

이렇게 타이를 때마다

그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 보기가 부끄럽기 보다는

자기를 이렇게 되도록 한 자기 아내가 더욱 밉살스러웠다

여편네가 다 무어야

저 빌어먹을 년이 들어오더니

나를 이렇게 못 살게 굴지

혼인한 지 며칠이 안 돼서부터

그는 색시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마치 돼지나 말 새끼를 혼례시키는 것처럼

신랑을 색시 방으로 집어넣으려하나 막무가내였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때려서

자기의 외사촌 누이의 이마에 피까지 나게 한 일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은 하는 수 없어

마침내 아버지에게 밀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풍파를 더욱 일으키고 말았다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신부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마루 한복판에 태질을 쳤다

그리고는

이년 네 집으로 가거라 보기 싫다

내 눈앞에는 보이지도 말아 했다

밥상을 가져오면

그 밥상이 마당 한복판에서 재주를 넘고

옷을 가져오면 그 옷이 쓰레기통으로 나간다

이리하여 색시는 시집 오던 날부터 팔자 한탄을 하며

날마다 밤마다 우는 사람이 되었다

울면 또 요사스럽다고 때린다

말이 없으면 빙충맞다고 친다

이리하여 그 집에는 평화로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

이것을 날마다 보는 사람 가운데

알 수 없는 의혹을 품게 된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곧 벙어리 삼룡이었다

그렇게 예쁘고 유순하고 그렇게 얌전한

벙어리의 눈으로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할

선녀 같은 색시를 때리는 것이

삼룡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건드릴 수 없을 만큼 황홀하고 숭고한 여자를

그렇게 하대한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는 주인 새서방에게

개나 돼지같이 얻어맞는 것이

마땅한 이상으로 마땅하지만

선녀와 짐승의 차가 있는 색시와 자신이

똑같이 얻어맞는 것은 너무도 무서운 일이다

어린 주인이 천벌이나 받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했다

어떤 달밤 사면은 고요적막하고

별들은 드문드문 눈들만 깜박이며

반달은 공중에 뚜렷이 달려 있어

수은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닦아 낸 듯 청명한데

삼룡이는 검둥개 등을 쓰다듬으며

밖 마당 멍석 위에 비슷이 드러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해 보았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공중에 있는 달보다도 더 곱고

별들보다도 더 깨끗했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달이 보이고 별이 보였다

삼라만상을 씻어내는 은빛보다 도 더 흰 달이나

별의 광채보다도

색시 마음이 아름답고 부드러울 듯했다

마치 달이나 별이 땅에 떨어져

주인 새아씨가 된 것도 같고

주인 새아씨가 하늘에 올라가면

달이 되고 별이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어린 주인이 자신을 때리고 꼬집을 때

감히 입 벌려 말은 하지 못 하지만

측은하고 불쌍히 여기는 정이

아씨의 두 눈에 나타나는 것을 떠올리며

삼룡은 부들부들한 개 등을 어루 만지면서

감격을 느꼈다

개는 자기를 귀여워하는 줄 알고 꼬리를 치며

삼룡의 손을 핥았다

삼룡의 마음은

주인아씨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아씨를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분에 넘쳤다

그것은 마치 살구를 보면

입 속에 침이 도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새댁이 온 뒤

다른 사람들은 자유로운 안 출입을 금했지만

벙어리 삼룡은 마치

개가 마음대로 안에 출입할 수 있는 것처럼

아무 의심 없이 출입할 수가 있었다

하루는 어린 주인이 먹지 않던 술이 잔뜩 취해

무지한 놈에게 맞아 길에 자빠진 것을

삼룡이 업어다가 안으로 들여다 누인 일이 있었다

그때에 아무도 안에 있지 않았고

오직 새색시 혼자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가

이 꼴을 보고 벙어리의 충성된 마음이고마와서

그후에 쓰던 비단 헝겊조각으로

부지쌈지 하나를 해 준 일이 있었다

이것이 새서방님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색시는 어떤 날 밤

자던 몸으로 마당 복판에 머리를 푼 채

내동댕이 쳐졌다

그리고 온몸에 피가 맺히도록 얻어 맞았다

이것을 본 삼룡은

또다시 의분의 마음이 뻗쳐 올라 왔다

그래서 미친 사자처럼 뛰어들어가

새서방님을 내던지고 새색시를 둘러메었다

그리고 날아가는 수리처럼

바깥사랑 주인영감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그 앞에 색시를 내려놓고

손짓 몸짓을 열 번 스무 번 거푸 하며 하소연을 했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는 주인 새서방님에게

물푸레로 얼굴을 몹시 얻어맞아

한쪽 뺨이 눈을 얼러 피가 나고 주먹같이 부었다

그를 때릴 때 새서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 흉칙한 벙어리 같으니

내 여편네를 건드려

하며 부지쌈지를 빼앗아

갈갈이 찢어서 뒷간에 던졌다

그러고 이놈아

인제는 주인도 몰라보고 막 친다

이런 것은 죽어야 해

하고 채찍으로 그의 뒷덜미를 갈겨서

그 자리에 쓰러지게 했다

벙어리는 다만 두 손으로 빌 뿐 이었다

말도 못하고 고개를 몇 백 번 코가 땅에 닿도록

그저 용서해달라고 빌기만 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비로소 숨겨 있던 정의감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 아픈 것을 참아가면서도

북받치는 분노를 억제했다

그때부터 삼룡은 안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벙어리로 하여금 더욱 궁금증이 나게 했다

궁금증은 묘하게 빛이 연하여

주인 아씨를 뵈옵고 싶은 감정으로 변했다

뵈옵지 못하므로 가슴이 타올랐다

애상의 정서가 몹시 그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한번이라도 아씨를 뵐 수가 있으면 하는 마음이 나더니

그의 마음의 넋은 느끼기를 시작했다

센티멘털한 가운데에서 느끼는 그 무슨 정서는

그에게 생명 같은 희열을 주었다

그것과 자기의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땐 머리로 그냥 담을 뚫고 들어가고 싶도록

주인아씨를 뵙고 싶은 것을 꾹 참을 때도 있었다

그후부터는 밥을 잘 먹을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틈만 있으면 안으로만 들어가고 싶었다

주인이 전보다 밥과 음식을 많이 주고

더 편하게 해 주었지만

그것이 싫었다

그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집 주위를 돌아다녔다

하루는 주인 새서방님이 술이 취해 들어오더니

집안이 수선수선해지며

계집 하인이 약을 사러 갔다 들어오는것을 보고

삼룡은 그 계집 하인을 붙잡았다

그리고 무엇이냐고 물었다

계집 하인은 한 주먹을 뒤통수에 대고

얼굴을 젊다는 뜻으로 쓰다듬으며

둘째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것은 집 주인은 엄지손가락

둘째손가락은 새서방님

주먹을 뒤통수에 대는 것은 여편네라는 뜻

그리고 얼굴을 문지르는 것은

예쁘다는 뜻으로 벙어리에게 쓰는 암호다

그런 뒤에 다시 혀를 내밀고

눈을 뒤집어쓰는 형상을 하고

두 팔을 싹 벌리고 뒤로 자빠지는 꼴을 보이니

그것은 사람이 죽게 되었거나

앓을 때 하는 손짓이다

벙어리는 눈을 크게 뜨고

계집 하인에게 한 발작 가까이 들어서며

놀랜 듯 멀거니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그의 가슴은 무섭게 격동했다

자기의 그리운 주인아씨가 죽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는 두 주먹을 마주치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자기 방에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두어 시간이나 두 눈만 껌벅껌벅하고 앉았었다

그는 밤이 깊어갈수록 궁금증 나는 사람처럼

일어섰다 앉았다 하더니

두시나 되어서 바깥으로 나가서 뒤로 돌아갔다

그는 도둑놈처럼 조심스럽게

바로 건넌방 뒤 미닫이 앞 담에서

주저주저 하더니 담을 넘었다

가까이 창 앞에 서서 문틈으로 안을 살피다가

그는 진저리를 치며 물러섰다

어두운 밤에

그의 손과 발이 마치

그 뒤에 서 있는 감나무 잎같이 떨리더니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갔을 때

그의 팔에는 주인 아씨가 한 손에

기다란 명주수건을 들고서

한 팔로 벙어리의 가슴을 밀치며 뻐팅기었다

벙어리는 다만 눈이 뚱그래서

에헤 소리만 지르고

그 수건을 뺏으려 애쓸 뿐이다

집안이 야단났다

집안이 망했군

어디 사내가 없어서 벙어리를

어떻든 알 수 없는 일이야

하는 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수군댄다

그 이튿날 아침 삼룡은 온몸이 짓이긴 것이 되어

마당에 거꾸러져 입에서 피를 토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곁에서는 새서방이 쇠줄 몽둥이를 들고서 문초를 한다

이놈

하고는 음란한 흉내는 모조리 하여가며

건넌방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는 손을 내저을 뿐이다

몽둥이에는 살점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피가 흘렀다

삼룡은 타들어가는 목으로 소리도 못 내며

고개만 내젓는다

그는 피를 토하며 거꾸러져서

이마를 땅에 비비고 고개를 내흔든다

땅에는 피가 스며든다

새서방은 채찍 끝에 납 뭉치를 달아서

가슴을 훔쳐갈겼다가 힘껏 잡아 뽑았다

삼룡은 그대로 거꾸러져 말이 없었다

새서방은 그래도 시원치 못했다

그는 어제 삼룡이 새로 갈아놓은 낫을 들고 달려왔다

그는 그 시퍼렇게 드는 날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벙어리를 찌르려 할 때

삼룡은 한 팔로 그것을 받았고

집안 사람이 달려들었다

삼룡은 낫을 뿌리쳐 저리로 내던졌다

주인은 집안이 망했다고 사랑에 누워서

모든 일을 들은 체 만 체

문을 닫고 나오지를 않고

집안에서는 색시를 쫓는다고 야단이다

그날 저녁에 벙어리 삼룡은 다시 끌려나왔다

그때에는 주인 새서방이

그가 입던 옷과 신짝을 주며

눈을 부릅뜨고 손으로 멀리 가리키며

가 인제는 우리 집에 있지 못한다

이 소리를 듣는 삼룡은 기가 막혔다

그에게는 이 집 외에 다른 집이 없다

살 곳이 없었다

자기는 언제든지 이 집에서 살고

이 집에서 죽을 줄로만 알았다

그는 새서방님의 다리를 껴안고 애걸했다

말도 못하는 것을

몸짓과 표정으로 간곡한 뜻을 표했다

그러나 새서방은 발길로 지르고 사람을 불렀다

이놈을 좀 내쫓아라

벙어리 삼룡은 죽은 개 처럼 끌려 나갔다

그리고 머리를 개천 구석에 들이 박히면서

나가 곤드라졌다가

일어서서 다시 들어오려고 했지만

벌써 문이 닫혀 있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그는 마음으로는 주인영감을 찾았지만

부를 수가 없었다

그가 날마다 열고 날마다 닫던 문이

지금은 열려고 해도 자신을 내쫓고 열리지를 않는다

자기가 건사하고 자기가 거두던 모든 것이

오늘에는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해

충성스럽게 일한 값이 오늘에는 이것이다

그는 비로소 믿고 바라던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란 것을 알았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자기도 또한 없어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 저녁

밤은 깊었는데

멀리서 닭 우는 소리와 함께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난데없는 화염이

벙어리 삼룡이 살던 오생원 집을 에워쌌다

그 불을 미리 놓으려고 준비해 놓은 듯

집 가장자리로 쪽 돌아가며

흩어놓은 풀에 모조리 돌라 붙어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집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듯이 타오른다

불은 마치 피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 먹는

요마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집 한 채를 삽시간에 먹어버렸다

이때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낮에 이 집을 쫓겨난 삼룡이다

그는 먼저 사랑에 가서 문을 깨뜨리고

주인을 업어다 밭 가운데 놓았다

그가 다시 들어가려 할 때

얼굴과 등과 다리가 불에 데어

쭈그러져드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건넌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색시는 없었다

다시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도 없고

새서방이 그의 팔에 매달려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뿌리쳤다

서까래가 불이 시뻘겋게 타면서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몰랐다

부엌으로 가보았다

나오다가 문설주가 떨어지며 왼 팔이 부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몰랐다

그는 다시 광으로 가보았다

거기에도 없었다

다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야 그는 색시가 타죽으려고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색시를 안았다

그리고는 길을 찾았다

하지만 나갈 곳이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는 비로소 자기의 몸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이

가슴에 느껴지는 것을 알았다

색시를 자기 가슴에 안았을 때

그는 이제 처음으로 살아난 듯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이 다한 줄 알고

색시를 내려놓을 때는

벌써 그의 목숨은 끊어진 뒤였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이

그의 입 가에 엷게 나타났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