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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말하다 Knowledge Talk, [서울대 명강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 /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서울대 명강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 /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학 중 하나로 손꼽지만 유럽

문학의 침체기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작가들이 주목받기 전까지,

라틴아메리카는 문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서구가 곧 문학의 중심이었고,

그들을 통해 문학을 보다 보니

변방의 나라에서 걸출한 문학이

나와도 소외받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내로라하는 기형도, 황지우,

박남철 등의 많은 시인들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사랑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를 만나보자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김현균 교수는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를 통해 이러한 라틴아메리카문학의

흥행에 앞서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네 명의 시인을

소개한다.

시인들은 세기를 걸쳐 세계 여러 작가들에게 그러했듯

분명 당신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문학 변방의 땅에서 문학의 중심까지 나아온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이야기. 네루다는 칠레

대중에게 사랑받는 시인 중에서도 대표로 손꼽히는데

2010년 8월 칠레 산호세 광산이 무너지며

그 안에 서른세 명의 광부들이 매몰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광부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네루다의 시를 돌려 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초창기 사랑 시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네루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뿌리인 라틴아메리카에 주목한다.

극동으로 가는 길에 스페인 내전을 목격하게 되자

네루다의 문학은 정치 투쟁과 분리될 수 없기도 했다.

많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이 그러했듯, 총과 펜을 동시에 선택하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고향 땅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때문에 네루다는 민중을 대변하는 시인이며

동시에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칠레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했을 때

당선된 아옌데를 지원한 인물이기도 하며

3년 후 아옌데 정부가 쿠데타로 붕괴될 때

그 현장에 직접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인

동시에 정치와 밀착된 삶을 살았던 이유로

일부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네루다는 마추픽추를 다녀온 후

유적의 장엄함 보다 그것을 세우기 위해 노동자들이 흘렸던 피,

땀, 눈물에 몰두하며 작품세계를 점차 확대해나갔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역사와 현실에 눈 떴지만

유럽을 무대로 문학 생활을 펼쳐나간 터라

피부로 느낄 수 없었던

라틴아메리카의 진짜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그 이후 자신의 뿌리가 진정

그곳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의 현실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로도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라틴아메리카 시인 파블로

네루다. 그 역시 서구 중심 문학 세계의

소외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1971년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나는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진 한 나라의 이름 없는 변방에서 왔습니다.

그동안 시인들 가운데서 가장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지역의 한계의 갇힌 나의

시 안에는 늘 고통의 비가 내렸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으니 서구 중심의

문학 세계에서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소외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루벤 다리오, 1867년에 태어난 그는 열세 살

나이에 첫 시를 써 일간지에 발표할

만큼 천재성을 갖춘 시인이다.

지금까지도 최빈국 중 하나인 니카라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작품은 과테말라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그리고 파리까지 진출하며

문학의 중심부로 더욱 깊이

나아갔다. 다리오는 자신의 자아를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다리오들‘을 통해 작품세계를 이어 갔으며

‘모데르니스모'를 주창한다.

모데르니스모는 근대적 감수성과

혁신적인 미학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문학을 주도했으나

예술지상주의, 세계주의 지향적인 면모를 보이며

현실 도피적인 문학운동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 이 말씀은 꼭 드려야겠어요.

제 아내는 여기 사람이지만,

제 애인은 파리의 여인입니다.'

실제로 다리오는 한 작품의

서문에서 이러한 대목을 적은 바 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많은 작가의 귀감이 되기도 했지만,

항상 몸과 마음은 파리를 향해있었다.

문학 중심부에 대한 열망은 ‘만약 당신의 고향이 작다면, 크다고

꿈을 꾸면 된다.'라고 발언한 것을 뒷받침한다.

그렇지만 서구 세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니카라과에는 예술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저 본인들의 작품을 변형한 것에 불과하고,

철학적인 깊이가 없다는 폄훼적 시각을 내비친 것이다.

‘카프카는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자조적인 한탄은 이러한 서구 중심적 시각이 카프카를 동경하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많은 상처와 절망을 안겨 주었음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루벤 다리오와 파블로 네루다 외에도 저자

김현균 교수는 기형도 시인에게 영향을 끼친 세사르 바예호와 황지우

시인과 박남철 시인에게 영향을 미친 ‘반시

시인' 니카노르 파라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 우리나라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와

후대의 시인들에게 자신들의 문학세계를 전파했다.

라틴아메리카문학은 문학 중심부에서 빛을 내기까지

무수한 현실의 고난과 서구 중심적인 문학계의 소외를 받아왔다.

그러나 끊임없이 현실을

고하고, 자신의 뿌리와 문학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의 저자

김현균 교수는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그들이 작품으로 어떻게 현실에서 고군분투

해왔는지 설명해준다.

무관심과 무시로 이루어진 서구의 프리즘과 척박한 땅,

단단하고 절대적인 그 어둠을 뚫고

우리에게 온 라틴아메리카문학은 그저 단순한 문학적

아름다움만 선사하고 있는 걸까?


[서울대 명강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 /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SNU My Lectures] Latin American Literature / Through the Darkness, Poetry Came to Me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학 중 하나로 손꼽지만 유럽

문학의 침체기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작가들이 주목받기 전까지,

라틴아메리카는 문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서구가 곧 문학의 중심이었고,

그들을 통해 문학을 보다 보니

변방의 나라에서 걸출한 문학이

나와도 소외받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내로라하는 기형도, 황지우,

박남철 등의 많은 시인들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사랑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를 만나보자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김현균 교수는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를 통해 이러한 라틴아메리카문학의

흥행에 앞서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네 명의 시인을

소개한다.

시인들은 세기를 걸쳐 세계 여러 작가들에게 그러했듯

분명 당신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문학 변방의 땅에서 문학의 중심까지 나아온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이야기. 네루다는 칠레

대중에게 사랑받는 시인 중에서도 대표로 손꼽히는데

2010년 8월 칠레 산호세 광산이 무너지며

그 안에 서른세 명의 광부들이 매몰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광부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네루다의 시를 돌려 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초창기 사랑 시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네루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뿌리인 라틴아메리카에 주목한다.

극동으로 가는 길에 스페인 내전을 목격하게 되자

네루다의 문학은 정치 투쟁과 분리될 수 없기도 했다.

많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이 그러했듯, 총과 펜을 동시에 선택하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고향 땅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때문에 네루다는 민중을 대변하는 시인이며

동시에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칠레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했을 때

당선된 아옌데를 지원한 인물이기도 하며

3년 후 아옌데 정부가 쿠데타로 붕괴될 때

그 현장에 직접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인

동시에 정치와 밀착된 삶을 살았던 이유로

일부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네루다는 마추픽추를 다녀온 후

유적의 장엄함 보다 그것을 세우기 위해 노동자들이 흘렸던 피,

땀, 눈물에 몰두하며 작품세계를 점차 확대해나갔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역사와 현실에 눈 떴지만

유럽을 무대로 문학 생활을 펼쳐나간 터라

피부로 느낄 수 없었던

라틴아메리카의 진짜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그 이후 자신의 뿌리가 진정

그곳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의 현실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로도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라틴아메리카 시인 파블로

네루다. 그 역시 서구 중심 문학 세계의

소외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1971년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나는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진 한 나라의 이름 없는 변방에서 왔습니다.

그동안 시인들 가운데서 가장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지역의 한계의 갇힌 나의

시 안에는 늘 고통의 비가 내렸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으니 서구 중심의

문학 세계에서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소외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루벤 다리오, 1867년에 태어난 그는 열세 살

나이에 첫 시를 써 일간지에 발표할

만큼 천재성을 갖춘 시인이다.

지금까지도 최빈국 중 하나인 니카라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작품은 과테말라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그리고 파리까지 진출하며

문학의 중심부로 더욱 깊이

나아갔다. 다리오는 자신의 자아를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다리오들‘을 통해 작품세계를 이어 갔으며

‘모데르니스모'를 주창한다.

모데르니스모는 근대적 감수성과

혁신적인 미학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문학을 주도했으나

예술지상주의, 세계주의 지향적인 면모를 보이며

현실 도피적인 문학운동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 이 말씀은 꼭 드려야겠어요.

제 아내는 여기 사람이지만,

제 애인은 파리의 여인입니다.'

실제로 다리오는 한 작품의

서문에서 이러한 대목을 적은 바 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많은 작가의 귀감이 되기도 했지만,

항상 몸과 마음은 파리를 향해있었다.

문학 중심부에 대한 열망은 ‘만약 당신의 고향이 작다면, 크다고

꿈을 꾸면 된다.'라고 발언한 것을 뒷받침한다.

그렇지만 서구 세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니카라과에는 예술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저 본인들의 작품을 변형한 것에 불과하고,

철학적인 깊이가 없다는 폄훼적 시각을 내비친 것이다.

‘카프카는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자조적인 한탄은 이러한 서구 중심적 시각이 카프카를 동경하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많은 상처와 절망을 안겨 주었음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루벤 다리오와 파블로 네루다 외에도 저자

김현균 교수는 기형도 시인에게 영향을 끼친 세사르 바예호와 황지우

시인과 박남철 시인에게 영향을 미친 ‘반시

시인' 니카노르 파라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 우리나라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와

후대의 시인들에게 자신들의 문학세계를 전파했다.

라틴아메리카문학은 문학 중심부에서 빛을 내기까지

무수한 현실의 고난과 서구 중심적인 문학계의 소외를 받아왔다.

그러나 끊임없이 현실을

고하고, 자신의 뿌리와 문학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의 저자

김현균 교수는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그들이 작품으로 어떻게 현실에서 고군분투

해왔는지 설명해준다.

무관심과 무시로 이루어진 서구의 프리즘과 척박한 땅,

단단하고 절대적인 그 어둠을 뚫고

우리에게 온 라틴아메리카문학은 그저 단순한 문학적

아름다움만 선사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