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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26 - 폴 오스터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Part 1

Episode 26 - 폴 오스터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Part 1

🎵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진행하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요. 올 한해도 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2010년 SF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해였는데 어느새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자 이제 다음 주면은 성탄절이죠? 크리스마스입니다. 예수의 찬생을 기념하는 그런 축일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제가 있는 이 뉴욕에서는 요새 아무래도 다종교 사회이다 보이까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보다는 '해피 할러데이' 이런 인사를 많이 합니다. 종교적인 색채를 너무 강하게 들어내지 않으면서 오래동안 지속되어온 어떤 축하와 이런 선물의 풍습..이런 것을 이어가려는 그런 어떤 노력의 일환이겠죠? 오늘은 그래서 약간 시기 적절한 책을 골라봤습니다. 물론 이 팟캐스트를 라디오 처럼 발생되는 즉시 누가 듣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고르는 저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것에 영향을 좀 받게 되네요. 오늘 고른 책은 역시 뉴욕의 기반을 두고 있는 작가죠. 폴 오스터라는 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산문은 한 번 제가 이 팟캐스트에서 소개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짧지만 소설입니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라는 짧은 소설입니다. 이것은 1992 년인가.. 아마 그럴텐데요. 그때 뉴욕 타임즈에서 크리스마스에 맞는 어떤 이야기를 하나 좀 써달라는 청탁을 이 폴 오스터에게 하게됩니다. 근데 이 폴 오스터는 그 전까지는 단편을 써본적이 없었던 그런 작가죠. 우리나라 작가들이 대체로 단편에서 습작을 시작해서, 단편으로 상당히 커리어를 쌓아논 다음에 장편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인데 반해서, 미국에는 처음부터 장편으로 습작을 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등단도 장편으로 하고요. 단편을 어쩌면 평생 쓰지 않는 작가들도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폴 오스터도 그런 작가인데요, 그래서 쓸까 말까 하다가 쓰게 되었다.. 이런 얘깁니다. 네, 하지만 타고난 이야기 꾼 답게, 이 단편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이 폴 오스터는 브루클린 다운타운 근처에 살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브루클린이라는 곳은 맨하탄과는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맨하탄의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브루클린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좀 들고요. 아무래도 맨하탄 보다는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좀 더 토박이 뉴요커들이 많은 곳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종적 구성도 다양하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물론 이제 폴 오스터의 소설에 맨하탄도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만 그런 것을 가장 잘 그려내고 있는 작가 중에 한 명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 오늘 이 이야기 한번 읽고나서 계속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오기 렌으로부터 들었다. 오기는 이 이야기에서 자신이 한 일이 '올바른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고의로 그런 일을 한 건 아니었다'고생각한다며 자신의 본명을 쓰지 말아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익명을 쓴 것말고는, 잃어버린 지갑이라든가, 눈먼 할머니, 크리스마스 날의 저녁 식사에관한 이야기들은 그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 그대로이다.

오기와 내가 서로 잘 알고 지낸 지 벌써 11년째다. 그가 일하는 곳은 브루클린 다운타운에 있는 코트 거리의 시가가게 카운터 뒤다. 내가 좋아하는 네덜란드 제 시가를 파는 곳이 거기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꽤 자주 드나든다. 오랫동안, 나는 오기 렌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후드가 달린 푸른색 스웨터 셔츠를 입고 시가나 잡지를 파는 좀 수상쩍게 생긴 작은 남자였다. 개구쟁이처럼 생겼고 재치 있는 말을 제법 잘해서 날씨라든가 뉴욕 매츠 아니면 워싱턴의 정치인들 같은 이야기거리를 언제라도 풀어 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어느 날, 그는 가게에 있는 잡지를 훑어 보다가 그 잡지에실린 내 책에 대한 서평을 발견했다. 그는 그 책의 저자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서평에는 내 사진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우리 사이의 관계가 바뀌었다. 오기에게 있어서 나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뭔가 다른 손님이 돼버렸다. 보통 사람들은 책이라든가 작가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오기는 달랐다. 내가 누구라는 비밀을 그가 알아 버린 이상, 나는 그에게 동지요,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요, 전우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고 나서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가 자신의 사진을 봐달라고 한 것이다. 그의 열정과 선의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오기가 보여 준 것은전혀 예상 밖이었다. 가게 뒤에 달린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서 나를 데려간오기는 두꺼운 종이로 된 상자를 열고 똑같이 생긴 열두 권의 검은 사진 앨범을 꺼냈다. 그는 자신이 일생 동안 이것을 만들었지만 하루에 5분 이상 투자한 적이 없는 작품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2년 동안 매일 아침 정각 7시에 애틀랜틱 애브뉴와 클린턴 스트리트가 만나는 모퉁이에 서서 정확하게 같은 앵글로 딱 한 장씩 컬러 사진을 찍어 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이제는 4천 장이 넘었다. 앨범 한 권이 한 해 분량이었고, 사진들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순서대로 붙어 있었다. 사진들 밑에는 꼼꼼하게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앨범을 열고 오기의 작품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하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내 첫 느낌은 이건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사진들이 다 똑같았다. 똑같은 거리와 똑같은 빌딩들의 반복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고, 지나치게 많은 이미지들이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와서 착란 상태가 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감상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페이지를 넘겨 댔다. 오기는 침착해 보였다.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몇 분 동안 계속 그러고 있자 갑자기 나를 잡고 말했다.

"너무 빨리 보고 있어. 천천히 봐야 이해가 된다고." 그가 옳았다. 당연했다. 차분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나는 다른 앨범을 집어 들고 좀 더 차분히 보려고 애썼다. 작은 변화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날씨의 변화들을 주목했고 계절이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각도를 주시했다. 마침내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거리의 흐름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활기찬 주 중의 날들 아침, 비교적 한산한 주말, 일요일과 토요일의 차이, 같은 요일에 따른 변화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나자 조금씩조금씩 배경에 있는 사람들, 즉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같은 사람이 같은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오기의 카메라에 잡힌 공간 안에서 그들 삶의 한 순간을 살고 있었다.

그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자, 나는 그들의 모습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그들이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그들의 기분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마치 그들이 가진 사연들을 상상하려는듯이, 마치 그들의 몸 안에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이. 나는 또 다른 앨범을 집어들었다. 이제는 처음 앨범을 보았을 때처럼 지루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오기는 시간을,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찍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세상의 어느작은 한 모퉁이에 자신을 심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만의 공간을 지킴으로써그 모퉁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 몰두해 있는 나를 보면서 오기는 행복한 듯이 내내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러더니 그는 마치 내 생각을 읽어 내기라도 한 듯이 셰익스피어 한 구절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중얼 말했다.

"시간은 하찮은 듯한 걸음걸이로 기어간다" 그때 나는 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정확히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도 사진 2천 장을 더 봤다.


Episode 26 - 폴 오스터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Part 1 Episode 26 - Paul Auster "The Christmas Story of Ogieren" - Part 1

🎵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Writer Kim Young-ha's'Book Reading Time' Podcast 🎵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진행하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요. 올 한해도 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This is the time to go. 2010년 SF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해였는데 어느새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자 이제 다음 주면은 성탄절이죠? Now next week is Christmas, right? 크리스마스입니다. 예수의 찬생을 기념하는 그런 축일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It can be said to be such a feast to commemorate the praise of Jesus. 제가 있는 이 뉴욕에서는 요새 아무래도 다종교 사회이다 보이까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보다는 '해피 할러데이' 이런 인사를 많이 합니다. In this New York where I am, it seems that it is a multi-religious society. Many people say'Happy Holiday' rather than'Merry Christmas'. 종교적인 색채를 너무 강하게 들어내지 않으면서 오래동안 지속되어온 어떤 축하와 이런 선물의 풍습..이런 것을 이어가려는 그런 어떤 노력의 일환이겠죠? Some kind of celebration and the custom of gifts like this, which has been around for a long time without revealing the religious color too strongly. 오늘은 그래서 약간 시기 적절한 책을 골라봤습니다. So today I picked a book that was a bit timely. 물론 이 팟캐스트를 라디오 처럼 발생되는 즉시 누가 듣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고르는 저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것에 영향을 좀 받게 되네요. 오늘 고른 책은 역시 뉴욕의 기반을 두고 있는 작가죠. The book I chose today is a writer based in New York. 폴 오스터라는 작가입니다. This is a writer named Paul Oster. 이 작가의 산문은 한 번 제가 이 팟캐스트에서 소개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This author's prose was once introduced in this podcast. 오늘은 짧지만 소설입니다. It's short today, but it's a novel.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라는 짧은 소설입니다. 이것은 1992 년인가.. 아마 그럴텐데요. 그때 뉴욕 타임즈에서 크리스마스에 맞는 어떤 이야기를 하나 좀 써달라는 청탁을 이 폴 오스터에게 하게됩니다. 근데 이 폴 오스터는 그 전까지는 단편을 써본적이 없었던 그런 작가죠. 우리나라 작가들이 대체로 단편에서 습작을 시작해서, 단편으로 상당히 커리어를 쌓아논 다음에 장편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인데 반해서, 미국에는 처음부터 장편으로 습작을 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등단도 장편으로 하고요. 단편을 어쩌면 평생 쓰지 않는 작가들도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I think there are some writers who do not write short stories in their lifetime. 이 폴 오스터도 그런 작가인데요, 그래서 쓸까 말까 하다가 쓰게 되었다.. 이런 얘깁니다. 네, 하지만 타고난 이야기 꾼 답게, 이 단편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이 폴 오스터는 브루클린 다운타운 근처에 살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브루클린이라는 곳은 맨하탄과는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맨하탄의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브루클린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좀 들고요. 아무래도 맨하탄 보다는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좀 더 토박이 뉴요커들이 많은 곳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종적 구성도 다양하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물론 이제 폴 오스터의 소설에 맨하탄도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만 그런 것을 가장 잘 그려내고 있는 작가 중에 한 명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 오늘 이 이야기 한번 읽고나서 계속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오기 렌으로부터 들었다. 오기는 이 이야기에서 자신이 한 일이 '올바른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고의로 그런 일을 한 건 아니었다'고생각한다며 자신의 본명을 쓰지 말아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익명을 쓴 것말고는, 잃어버린 지갑이라든가, 눈먼 할머니, 크리스마스 날의 저녁 식사에관한 이야기들은 그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 그대로이다.

오기와 내가 서로 잘 알고 지낸 지 벌써 11년째다. 그가 일하는 곳은 브루클린 다운타운에 있는 코트 거리의 시가가게 카운터 뒤다. He works behind a cigar counter on Court Street in downtown Brooklyn. 내가 좋아하는 네덜란드 제 시가를 파는 곳이 거기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꽤 자주 드나든다. I come and go quite often because the only place that sells my favorite Dutch cigars. 오랫동안, 나는 오기 렌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후드가 달린 푸른색 스웨터 셔츠를 입고 시가나 잡지를 파는 좀 수상쩍게 생긴 작은 남자였다. 개구쟁이처럼 생겼고 재치 있는 말을 제법 잘해서 날씨라든가 뉴욕 매츠 아니면 워싱턴의 정치인들 같은 이야기거리를 언제라도 풀어 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어느 날, 그는 가게에 있는 잡지를 훑어 보다가 그 잡지에실린 내 책에 대한 서평을 발견했다. 그는 그 책의 저자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서평에는 내 사진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우리 사이의 관계가 바뀌었다. 오기에게 있어서 나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뭔가 다른 손님이 돼버렸다. 보통 사람들은 책이라든가 작가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오기는 달랐다. 내가 누구라는 비밀을 그가 알아 버린 이상, 나는 그에게 동지요,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요, 전우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To be honest, I was a little embarrassed. 그러고 나서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가 자신의 사진을 봐달라고 한 것이다. 그의 열정과 선의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I didn't expect much. 하지만 그 다음날 오기가 보여 준 것은전혀 예상 밖이었다. But what Ogi showed the next day was completely unexpected. 가게 뒤에 달린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서 나를 데려간오기는 두꺼운 종이로 된 상자를 열고 똑같이 생긴 열두 권의 검은 사진 앨범을 꺼냈다. 그는 자신이 일생 동안 이것을 만들었지만 하루에 5분 이상 투자한 적이 없는 작품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2년 동안 매일 아침 정각 7시에 애틀랜틱 애브뉴와 클린턴 스트리트가 만나는 모퉁이에 서서 정확하게 같은 앵글로 딱 한 장씩 컬러 사진을 찍어 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이제는 4천 장이 넘었다. There are now more than 4,000 pictures taken like that. 앨범 한 권이 한 해 분량이었고, 사진들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순서대로 붙어 있었다. 사진들 밑에는 꼼꼼하게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앨범을 열고 오기의 작품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하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내 첫 느낌은 이건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사진들이 다 똑같았다. 똑같은 거리와 똑같은 빌딩들의 반복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고, 지나치게 많은 이미지들이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와서 착란 상태가 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감상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페이지를 넘겨 댔다. 오기는 침착해 보였다. Ogi looked calm.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몇 분 동안 계속 그러고 있자 갑자기 나를 잡고 말했다.

"너무 빨리 보고 있어. 천천히 봐야 이해가 된다고." 그가 옳았다. He was right. 당연했다. 차분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나는 다른 앨범을 집어 들고 좀 더 차분히 보려고 애썼다. 작은 변화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날씨의 변화들을 주목했고 계절이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각도를 주시했다. 마침내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거리의 흐름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Finally, I was able to see that there were subtle changes in the streets that change little by little every day. 활기찬 주 중의 날들 아침, 비교적 한산한 주말, 일요일과 토요일의 차이, 같은 요일에 따른 변화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나자 조금씩조금씩 배경에 있는 사람들, 즉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같은 사람이 같은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오기의 카메라에 잡힌 공간 안에서 그들 삶의 한 순간을 살고 있었다.

그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자, 나는 그들의 모습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그들이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그들의 기분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마치 그들이 가진 사연들을 상상하려는듯이, 마치 그들의 몸 안에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이. 나는 또 다른 앨범을 집어들었다. 이제는 처음 앨범을 보았을 때처럼 지루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오기는 시간을,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찍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세상의 어느작은 한 모퉁이에 자신을 심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만의 공간을 지킴으로써그 모퉁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 몰두해 있는 나를 보면서 오기는 행복한 듯이 내내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러더니 그는 마치 내 생각을 읽어 내기라도 한 듯이 셰익스피어 한 구절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중얼 말했다. He muttered in a small voice.

"시간은 하찮은 듯한 걸음걸이로 기어간다" 그때 나는 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정확히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도 사진 2천 장을 더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