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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각 평양생각 Seoul Thinking Pyongyang Thinking, [서울생각 평양생각] 숙박 검열

[서울생각 평양생각] 숙박 검열

우리 학생들에게 있어 제일 즐거운 시간은 1월 겨울 방학입니다. 하기에 학생들은 겨울 방학이 되면 시골 외갓집이나 친가를 찾기도 하고 부모님과 썰매장과 스키장을 찾기도 합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느끼는 게 저에게도 벌써 방학을 한 손녀가 있다는 겁니다. 병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6살짜리 손녀 딸애도 방학을 했습니다.

손녀와 1월 한 달을 보내고 있는 저는 조금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손자들과 영화 구경도 하고, 썰매장을 찾아 썰매도 타고, 눈이 오는 날이면 밖에 나와 눈사람도 만들거나 눈싸움도 하고, 심지어 눈에서 작은 손녀와 뒹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학습을 시키느라 손녀를 나무라면 할머니를 실망시켰다며 혼자 짜증을 내 웃기도 했으며 저녁이면 가끔 사위와 아산 쪽에 가서 피조개 구이에 소주 한 잔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번 손녀의 겨울 방학을 통해 더 깊이 알게 된 것은 이곳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이었습니다.

평소 자주 느꼈지만 이번 한 달 동안 손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때로는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분들이 제 손녀 시연이 할머니 오셨다고 인사를 하느라 분주하기도 합니다.

딸이 일을 하고 있는 가게 사장님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분들도 정말 반갑게 말을 건네주기도 하고 때로는 맛있는 과일과 음료수를 건네주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소주 한 잔을 함께 하자고 할 정도입니다만 누구 하나 이상한 말투로 ‘어디에서 왜 왔는지, 또 통행증을 해 가지고 왔으며 숙박 등록은 하고 있는지' 묻는 사람들도 없었고 또 저를 이상한 눈길로 감시하는 사람은 더더욱 볼 수가 없습니다. 대신 한국에서는 남의 사생활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저도 한 동네, 한 아파트 같은 집에서 십 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옆집에 어떤 분들이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저만이 아닌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생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딸집 동네 주민들의 친절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릅니다.

반면 북한의 지방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평양에 아무리 가까운 친인척이 살아도 죽기 전에 한 번 만나 보는 것이 항상 소원입니다. 부모님이 지방에 살고 있고, 자식들이 평양에 살고 있다면 그들이 죽기 전에 한 번 방문하게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평양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지방에 있는 부모님 집에 한 번 가려면 통행증을 발급받는데 여기 저기 거쳐야 하는 곳이 많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환갑이나 사망 전에는 발급받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부모님이 자식들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려고 해도 숙박 등록을 해야 합니다. 해마다 1월과 2월에는 평양시에서 자주 숙박 검열을 합니다. 특히 새해를 맞는 시점과 김정일 생일, 김일성 생일이면 특별 경비 주간을 만들어 놓고 불시에 숙박 검열을 진행합니다.

숙박 검열은 그냥 쉽게 집집마다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이 평양시내에 진입하지 않았는지 밤 12시 이후에 집집마다 인민 반장의 확인 하에 안전원들이 집집마다 뒤지고 길을 차단하고 단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집집마다 뒤진다는 것은 그야 말로 가택 수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북한에 살고 있을 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방으로 시집을 간 제 동생이 통행증 없이 평양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인민반장이다 보니 제일 안전한 곳은 저의 집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한창 달콤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담당 주재원이 신고를 받고 왔다면서 제 동생을 분주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조금은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주재원에게 얼마간의 돈을 찔러 주고는 사정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 동생과 함께 집으로 왔습니다. 동생은 그 때 일주일 만에 급히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갔지만 그때 일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고 지금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은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던 남동생이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집으로 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군복무를 하고 있던 남동생은 아직 가정이 없는 독신이었고 또 부모님 역시 평양에서 살고 있어 평양에서 군에 입대한 상태였습니다.

군 복무하는 고장이 강원도라고는 하지만 부모님의 이력에 붙어 있어 출장 중에 잠깐 평양에 들른 것도 불법침입이 되어 단속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벌금을 내고 강제로 열차에 실려 부대로 갔습니다. 어쩌다가 집에 잠깐 들른 아들에게 밥상도 차려 주지 못한 것이 마음의 상처가 되어 어머니는 그 뒤로도 두고두고 얘기를 했습니다.

군 복무를 하는 와중에 제 고향 제집에 잠깐 들른 것이 왜 불법이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곳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숙박 검열이라는 말과 통행증, 여행증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면 세상에 그런 곳도 있느냐고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지만 지금도 북한주민들에게는 자유는 물론 인권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울생각 평양생각] 숙박 검열 [Seoul thinks Pyongyang thinks] Accommodation censorship

우리 학생들에게 있어 제일 즐거운 시간은 1월 겨울 방학입니다. The most enjoyable time for our students is January winter break. 私たちの学生にとって一番楽しい時間は1月冬休みです。 하기에 학생들은 겨울 방학이 되면 시골 외갓집이나 친가를 찾기도 하고 부모님과 썰매장과 스키장을 찾기도 합니다. In the summer, students go to a country house or a family home during the winter vacation, and to their parents, sledding and skiing. 以下に学生たちは冬休みになれば田舎の外屋や実家を探したり、両親とそりとスキー場を探したりもします。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느끼는 게 저에게도 벌써 방학을 한 손녀가 있다는 겁니다. I feel that the years are so fast that I have a granddaughter who already has a vacation. 歳月がとても速いということを感じるのが、私にもすでに休暇を取った孫娘がいるということです。 병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6살짜리 손녀 딸애도 방학을 했습니다. The daughter of a 6-year-old granddaughter attending a kindergarten was also on vacation. 併設幼稚園に通っている6歳の孫娘の娘も休みました。

손녀와 1월 한 달을 보내고 있는 저는 조금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Having a month with my granddaughter in January, I was a little bored, but it was also a good time. 孫娘と1月1ヶ月を過ごしている私は少し退屈することもありますが、楽しい時間でもありました。 손자들과 영화 구경도 하고, 썰매장을 찾아 썰매도 타고, 눈이 오는 날이면 밖에 나와 눈사람도 만들거나 눈싸움도 하고, 심지어 눈에서 작은 손녀와 뒹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I had a great time watching movies with my grandchildren, looking for a sledding place, riding a sleigh, going out on a snowy day, making a snowman or having a snowball fight, and even hanging out with a little granddaughter in the snow.

때로는 학습을 시키느라 손녀를 나무라면 할머니를 실망시켰다며 혼자 짜증을 내 웃기도 했으며 저녁이면 가끔 사위와 아산 쪽에 가서 피조개 구이에 소주 한 잔을 하기도 했습니다. Sometimes, while learning to teach her granddaughter to disappoint her grandmother, she was annoyed and laughed alone, and sometimes in the evening, she went to her son-in-law and Asan and had a cup of shochu for roasting shellfish. 제가 이번 손녀의 겨울 방학을 통해 더 깊이 알게 된 것은 이곳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이었습니다.

평소 자주 느꼈지만 이번 한 달 동안 손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때로는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분들이 제 손녀 시연이 할머니 오셨다고 인사를 하느라 분주하기도 합니다. Sometimes people living in an apartment are busy saying hello to my granddaughter's demonstration.

딸이 일을 하고 있는 가게 사장님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분들도 정말 반갑게 말을 건네주기도 하고 때로는 맛있는 과일과 음료수를 건네주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소주 한 잔을 함께 하자고 할 정도입니다만 누구 하나 이상한 말투로 ‘어디에서 왜 왔는지, 또 통행증을 해 가지고 왔으며 숙박 등록은 하고 있는지' 묻는 사람들도 없었고 또 저를 이상한 눈길로 감시하는 사람은 더더욱 볼 수가 없습니다. 대신 한국에서는 남의 사생활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Instead, in Korea, there is not much interest in other people's privacy. 저도 한 동네, 한 아파트 같은 집에서 십 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옆집에 어떤 분들이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저만이 아닌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생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딸집 동네 주민들의 친절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릅니다.

반면 북한의 지방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평양에 아무리 가까운 친인척이 살아도 죽기 전에 한 번 만나 보는 것이 항상 소원입니다. 부모님이 지방에 살고 있고, 자식들이 평양에 살고 있다면 그들이 죽기 전에 한 번 방문하게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평양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지방에 있는 부모님 집에 한 번 가려면 통행증을 발급받는데 여기 저기 거쳐야 하는 곳이 많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환갑이나 사망 전에는 발급받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부모님이 자식들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려고 해도 숙박 등록을 해야 합니다. 해마다 1월과 2월에는 평양시에서 자주 숙박 검열을 합니다. 특히 새해를 맞는 시점과 김정일 생일, 김일성 생일이면 특별 경비 주간을 만들어 놓고 불시에 숙박 검열을 진행합니다. In particular, when the new year is celebrated, and on Kim Jong-il's birthday and Kim Il-sung's birthday, a special guard week is set up and the accommodation is inspected unexpectedly.

숙박 검열은 그냥 쉽게 집집마다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이 평양시내에 진입하지 않았는지 밤 12시 이후에 집집마다 인민 반장의 확인 하에 안전원들이 집집마다 뒤지고 길을 차단하고 단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Lodging censorship is not just an easy census for each house, but after 12 p.m., at night after 12pm, security officers scrutinize, intercept and crack down the streets. It says 집집마다 뒤진다는 것은 그야 말로 가택 수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북한에 살고 있을 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방으로 시집을 간 제 동생이 통행증 없이 평양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인민반장이다 보니 제일 안전한 곳은 저의 집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한창 달콤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담당 주재원이 신고를 받고 왔다면서 제 동생을 분주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The representative in charge said that he had received the report and took my brother to the address. 너무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조금은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주재원에게 얼마간의 돈을 찔러 주고는 사정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 동생과 함께 집으로 왔습니다. 동생은 그 때 일주일 만에 급히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갔지만 그때 일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고 지금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습니다. My younger brother went home after seeing work in a week after that time, but he still keeps in mind that he can't forget about work.

또 한 번은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던 남동생이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집으로 온 적이 있었습니다. Another time, my younger brother, who served in the military in Gangwon-do, came home to jump off a running train. 당시 군복무를 하고 있던 남동생은 아직 가정이 없는 독신이었고 또 부모님 역시 평양에서 살고 있어 평양에서 군에 입대한 상태였습니다.

군 복무하는 고장이 강원도라고는 하지만 부모님의 이력에 붙어 있어 출장 중에 잠깐 평양에 들른 것도 불법침입이 되어 단속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벌금을 내고 강제로 열차에 실려 부대로 갔습니다. So he paid a fine and was forcibly carried on the train to the troops. 어쩌다가 집에 잠깐 들른 아들에게 밥상도 차려 주지 못한 것이 마음의 상처가 되어 어머니는 그 뒤로도 두고두고 얘기를 했습니다. Somehow it was a heartbreak that I couldn't even have a table for my son who stopped by at home, so my mother left behind and talked.

군 복무를 하는 와중에 제 고향 제집에 잠깐 들른 것이 왜 불법이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곳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숙박 검열이라는 말과 통행증, 여행증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면 세상에 그런 곳도 있느냐고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If I tell people here in South Korea that they can't move a step without the word censorship, a pass, or a travel pass, I don't understand if there is such a place in the world.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지만 지금도 북한주민들에게는 자유는 물론 인권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