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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파친코 ⎟ Book 1. 고향 ⎟ 젊은 목사, 이삭 (1932년 11월)

파친코 ⎟ Book 1. 고향 ⎟ 젊은 목사, 이삭 (193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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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젊은 목사, 이삭.

동이 뜨자 정 씨 형제들이 돌아왔다.

뚱보는 방에 잠들어 있는 새로운 하숙인을 단번에 발견했다. 뚱보가 양진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아짐씨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이렇게 성공하니까 내가 다거시기하니 기쁘당께요. 아짐씨 요리 솜씨가 부자들 귀에까지 들어갔는갑소잉. 이렇게 일본인 손님도 다 받고잉! 저 사람한테는 우리 가난뱅이들 방세의 세 배는 받았지라?"

선자가 뚱보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뚱보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뚱보는 이삭의 양복 옆에 걸린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이건 양반네들이 대단한 사람 티 내려고 목에 두르는 거 아니당가?" 올가미 맹키로 생겼는디. 이걸를 이래 자세히 보는 거는 처음이여! 와, 허벌나게 부드럽네잉!" 막내 뚱보가 이삭의 넥타이를 수염에 대고 문질렀다. "실크인가 보드라고. 진짜 실크 올가미야!" 뚱보가 시끄럽게 웃었지만 이삭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뚱보야, 만지지 말드라고." 곰보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형의 얼굴에는 얽은 자국이 있었고, 화를 내자 군대군대 움푹 팬 얼굴이 붉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큰형이 두 동생을 보살펴 왔다.

뚱보가 넥타이를 내려놓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뚱보는 곰보 형의 화를 돋우고 쉽지 않았다. 정 씨 형제들은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한 후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그들 옆에서 계속 잠들어 있던 새로운 하숙인이 이제 잠에서 살짝 깼는지 숨죽인 기침 소리가 이어졌다.

양진은 부엌으로 가서 식모들에게 새 하숙인이 깨어나면 따뜻한 식사부터 챙겨주라고 말해두었다. 선자는 부엌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구마를 북북 문질러 씻고 있었다. 엄마가 들어오던 나가든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지난 한 주 동안 두 사람은 필요할 때만 이야기를 했다. 식모들은 선자가 왜 저렇게 조용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오후 늦게 정 씨 형제들이 일어나 다시 식사를 하고, 배 타기 전에 담배를 사러 간다고 나갔다. 저녁 교대 하숙인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한두 시간 동안 하숙집이 조용했다. 바닷바람이 숨구멍이 많은 벽과 창 가장자리를 뚫고 들어와 방과 방 사이의 짧은 복도가 꽤 쌀쌀했다.

양진은 여자들이 잠자는 아늑한 방의 따뜻한 아랫목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대여섯 벌은 되는 하숙인들의 낡은 바지 더미 가운데 한 벌을 수선하는 중이었다. 남자들 옷을 깨끗하게 빨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남자들은 돈을 아주 적게 내서 그런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뭐, 또 더러워질 텐데요잉." 뚱보는 이렇게 푸념했지만 형들은 깨끗한 옷을 더 좋아했다. 양진은 빨래를 하고 나서 할 수 있는 한 옷을 수선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더 이상 수선하거나 깨끗하게 빨수 없는 셔츠와 윗도리의 깃을 갈았다. 새로 온 하숙인이 기침을 할 때마다 옷더미에 파묻힌 양진의 고개가 올라갔다. 양진은 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 딸보다 바느질에 더 집중하려고 애썼다. 노란색 파라핀지를 깔아놓은 바닥은 짧은 빗자루로 하루에 두 번 쓸고 나서 깨끗한 걸레로 닦았다.

그때 현관문이 천천히 열려서 양진과 선자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석탄 배달부, 준이 돈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양진이 일어나서 나갔다. 선자는 고개를 까닥하고는 다시 청소를 했다.

"아지매는 좀 어떠십니꺼?" 양진이 물었다. 석탄 배달부의 아내는 위가 좋지 않아서 몸져눕는 경우가 잦았다.

"오늘 아침에는 일찍 일나드만 시장 나갔다 아입나꺼. 잠시도 돈을 안 벌고는 못 살겠는 모냥이지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잘 아시잖아예." 준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저씨는 참 운도 좋소." 양진이 지갑을 꺼내서 석탄 값을 치렀다.

"아지매요, 손님들이 다 아지매 같으면 저는 배를 곯을 일이 없을 낍니더. 항상 이래 제날짜에 값을 치러주시니." 준이 이 즐겁게 껄껄 웃었다.

양진도 미소를 지었다. 매주 준은 석탄 값을 제때 치르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을 것을 줄여 가며 석탄 값을 마련했다. 올겨울은 너무 추워서 석탄 없이는 지낼 수 없었다. 약간 뚱뚱한 석탄 배달부는 수금을 하러 다니면서 물 한 사발과 간식을 얻어먹었다. 그러니 이렇게 식량이 귀할 때에도 절대 굶을 일이 없었다. 그의 아내는 시장에서 미역을 잘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저짝에 아래쪽에 사는 못되처먹은 이가 놈이 돈을 토해 내지를 않아가지고 . . . ."

"어째 만사가 다 쉽게 풀리겠십니꺼. 다들 어려운 일은 있다 아입니꺼."

"마, 그렇기는 해도. 그래도 아지매는 갱상도 최고의 요리사라서 하숙집에 손님들을 가득하다 아입니꺼. 목사님도 지금 여 계시지예? 목사님이 잘 곳은 있든가예? 아지매 도미 요리가 부산에서 최고라고 제가 목사님한테 말씀드렸거든예." 준은 다음 집으로 가기 전에 뭔가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싶어 코를 킁킁거렸지만 맛있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양진은 딸을 흘낏 돌아보았다. 선자는 바닥 청소를 그만두고 석탄 배달부에게 먹을 것을 챙겨 주려고 부엌으로 갔다.

"근데 그 젊은 목사님이 10년 전에 여기 묵었던 자기 형님한테서 아지매 요리 솜씨를 들었다 카든데 알고 계셨십니꺼? 역시 가슴보다는 배를 채워 줘야 한다니까요!"

"목사님?" 양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젊은 목사님은 북쪽에서 왔다가 카데요. 어젯밤에 아지매 집을 찾아서 거리를 헤매고 계시드라꼬예. 백이삭이라꼬. 훤칠하이 잘생깄데예. 제가 아지매 집 보여주고 들릴라꼬 그캤는데 조가 놈한테 가야 했거든예. 조가 놈이 한 달을 요리조리 피하드마는 드디어 돈을 준다 캐가지고 . . . ."

"아 . . . . "

어쨌든 제가 그 목사님한테 집사람 위가 안 좋은데 너무 열심히 일한다 카니까 그 목사님이 당장 기도를 해주겠다 카면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데예. 그 쭝얼거리는 소리를 믿는 건 아니지만 뭐 해가 되는 것 같진는 않더라고예. 그 목사님 윽시로 잘생깄지예? 오늘 간 다 컵디까? 인사해야 하는데."

선자가 따뜻한 보리차 한 잔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그릇에 담아 가져왔다. 석탄 배달부 는 바닥의 방석에 털썩 주저앉아 따뜻한 고구마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조심스럽게 고구마를 씹어 먹으면서 그는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집사람한테 몸이 좀 어떤가 물었는데 집사람이 그래 나쁘지 않다 카면서 일하러 갔다 아입니꺼! 그 목사님 기도 덕분인지도 모르겠네예. 하!"

"가톨릭 신자라 캅디꺼?" 양진은 준의 말을 그렇게 자주 끊고 싶지 않았지만 몇 시간이나 쉬지 않고 떠들어댈 수 있는 중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편은 항상 준이 남자치고는 말이 너무 많다고 말하곤 했다. "신부라예?"

"아니라예. 그거랑은 좀 다릅니더. 백 목사님은 개신교라예. 결혼할 수 있는 성직자. 행님이 사는 오사카로 간다고 카던데예. 그 행님 이라는 사람은 만난 기억이 없네예." 준은 또 고구마를 먹고 보리차를 홀짝거렸다.

양진이 틈을 타서 끼어들기 전에 준이 또 말을 이어나갔다. "히로히또 그 새끼가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드만 이 땅하고 쌀, 생선을 다 훔쳐 갔지예. 인자는 젊은이들까지 빼앗아가고 있으니." 준이 한숨을 쉬고 고구마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일본으로 가는 젊은 놈들을 탓 하는 건 아입니더. 이 땅에서는 돈을 벌 수가 없으니까 별 수가 없지 예. 저는 너무 늦었지만 머스마가 있었으면 . . . ." 준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말을 멈추고 슬픔에 잠겼다. "하와이로 보냈을 낍니더. 거기서 집사람네 똑똑한 조카가 설탕 농장을 하고 있거든예. 일이야 힘들다 카지만 뭐 어떻십니꺼? 저 후레자식들 밑에서 일 안 해도 되니까 된 거 아입니꺼. 요전날 항구에 갔더니마는 그 개자식들이 저한테 뭐라 캤는가 아십니꺼? 제가 . . . . "

양진은 준의 욕설에 얼굴을 찌푸렸다. 집이 좁아서 부엌에 있는 여자들과 지금은 방을 닦고 있는 선자도 준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다들 준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터였다.

"보리차 좀 더 주실랍니꺼?"

준이 미소를 짓고는 두 손으로 빈 컵을 내밀었다.

"나라를 잃아 묵은 거는 젠장맞을 우리 잘못이지예. "저도 알아예." 준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빌어먹을 양반 나리들이 우리를 팔아버렸으이. 배짱 있는 양반이 한 놈도 없지예."

양진과 선자는 부엌에 있는 식모들이 석탄 배달부의 매주 똑같은 열변에 낄낄거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저야 무식쟁이지만 부지런히 일하는 일꾼입니더. 저는 일본 놈들한테 뺏기지 않을 낍니더." 준이 석탄 가루로 뒤덮인 잠바에서 깨끗하고 하얀 손수건을 꺼내 콧물을 닦았다. "개노무 새끼들. 아이고, 저는 그만 다음 집으로 가볼게예."

양진이 부엌으로 가면서 준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양진은 준에게 감자 한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감자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다. 준이 바닥에 떨어진 감자를 집어서 잠바 주머니에 넣었다. "귀한 거는 잃어버리면 안 되지예."

"아지매한테 안부 전해주이소." 양진이 말했다.

"감사합니데이." 준이 급하게 신발을 신고 떠났다.

양진은 문간에 서서 준이 다음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었다.

줄기차게 이어지던 석탄 배달부의 고귀한 연설이 사라지자 집 안이 훨씬 썰렁하게 느껴졌다. 선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앞 쪽 방에서 집 안 전체로 이어지는 복도를 닦고 있었다. 선자의 나무토막처럼 핼쑥하고 탄탄한 몸은 엄마를 쏙 빼닮았다. 손이 빠르고 힘이 센 선자는 두 팔의 근육과 다리가 탄탄했다. 작달만하고 떡 벌어진 체격에다 몸이 튼튼해서 힘든 일도 잘 할 수 있었다.

얼굴이나 사지에서 섬세함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상당히 매혹적인 몸이었다. 예쁘다기보다는 잘 생긴 편이었다. 선자는 재빠르고 활기찬 몸짓과 밝은 태도로 어디서나 사람들 눈에 띄었다. 하숙인들은 쉬지 않고 선자에게 구애를 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선자의 검은 눈동자는 매끈거리는 강가의 하얀 돌처럼 반짝거렸다. 선자가 웃을 때면 같이 웃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선자의 아버지 훈이는 선자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딸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선자는 어린아이였을 때도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걷는 법을 배우자마자 충성스러운 애완견처럼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다. 물론 엄마도 존경햇지만, 지극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선자는 쾌활한 소녀에서 사려 깊은 젊은 여인으로 변했다.

정 씨 형제 가운데 누구도 결혼할 처지가 아니었지만, 맏형 곰보는 선자가 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는 남자에게 좋은 아내가 될 거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뚱보는 선자를 흠모하면서도 형수로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자가 자기랑 똑같은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정 씨 삼 형제 중 누군가가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첫째 인 곰보가 제일 먼저 아내를 맞아들일 것이었다.

하지만 선자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요즘,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선자는 임신을 한 상태였고 아이 아버지는 선자와 결혼할 수 없었다. 일주일 전에 선자가 엄마에게 그 사실을 밝혔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아지매, 아지매." 두 식모 중 나이가 많은 식모가 소리를 질렀다. 하숙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양진이 방으로 달려갔고 선자도 걸레를 던지고 그 뒤를 따라갔다. "피예! 베개에! 흠뻑 젖었어예!"

복희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 복희답지 않았다. 복희는 다른 사람들을 겁주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숙인이 이미 죽은 것인지 혹은 죽어가고 있는 중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양진은 식모에게 방을 나가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결핵인 것 같아예." 선자가 말했다.

양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숙인의 상태가 훈이의 마지막 몇 주 동안의 상태와 비슷했다.

"약사를 불러온나." 양진이 복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아이다, 기다리 봐라. 니는 여 있는 게 낫겠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이삭은 붉어진 얼굴로 땀을 흘렸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자들을 의식하지 못했다. 어린 식모 동희가 막 부엌에서 나오다가 헉하고 숨을 들어쉬었지만 곧장 언니의 주의에 입을 다물었다. 이삭은 어젯밤에 도착했을 때부터 얼굴이 창백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밝은 빛 아래에서 보니 잘생긴 얼굴이 웅덩이에 고인 더러운 빗물처럼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베개는 기침할 때마다 튀어나온 붉은 피로 젖어 있었다.

"으음 . . . ." 양진은 깜짝 놀라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 사람을 당장 옮기야겠다. 다른 사람들까지 아플 수 있데이. 동희야, 당장 곡간에 있는 것들 전부 다 꺼내라. 언능." 양진은 남편이 아플 때 사용했던 곡간으로 이삭을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를 들어서 옮기기보다는 남자가 일어나서 움직여주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었다.

양진은 이삭을 흔들어 깨우려고 이불 귀퉁이를 잡아당겼다.

"백 목사님, 목사님!" 양진이 목사의 팔뚝을 건드렸다. "목사님!"

마침내 이삭이 눈을 떴다. 이삭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꿈속에서 이삭은 집 옆에 있는 과수원에서 사과나무에 핀 하얀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차츰 돌아오자 이삭은 하숙집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무슨 일 있나요?"

"결핵입니까?" 양진이 물어다. 분명히 목사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으리라.

목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2년 전에 앓았지만 다 나았어요."

이삭은 자기 이마를 만져 보고는 열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들자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아, 알겠어요." 목사가 자기 베개에 묻은 붉은 핏자국을 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해가 될 줄 알았으면 이렇게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떠나야겠어요. 여기 계신 분들을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이삭은 눈을 뜨고 있지 못할 만큼 피로를 느꼈다. 이삭은 평생동안 아파서 골골거렸다. 결핵은 그가 앓는 많은 병 중에서 최근에 앓았던 하나의 병에 불과했다. 이삭의 부모와 의사는 이삭에게 오사카에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형 요셉만이 이삭에게 오사카로 오라고 말했고 이삭은 형의 말을 따랐다. 오사카는 평양보다 훨씬 더 따뜻했고, 이삭이 평생 동안 허약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것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형 요셉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이삭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랬다가는 기차 안에서 죽을 낍니더. 낫기도 전에 악화될 거라꼬예. 일어나실 수 있겠십니꺼?" 양진이 물었다.

이삭이 몸을 일으켜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여행 중에도 피곤을 느끼기는 했지만 지금은 곰한테 떠밀리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삭은 숨을 참았다가 벽에 대고 기침을 했다. 핏자국이 벽에 튀었다.

"다 나을 때까지는 여기 계시이소." 양진이 말했다.

양진과 선자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훈이가 결핵에 걸렸을 때 두 사람은 전염되지 않았다. 하지만 식모들은 그때 이곳에 없었고 다른 하숙인들도 보호해야 했다.

양진이 이삭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뒷방 까지 걸어갈 수 있갰어예?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계시면 안 됩니더."

이삭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양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진은 동희에게 약사를 데려오라고 하고 복희에게 부엌으로 가서 하숙인들 식사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양진은 이삭을 요 위에 눕히고 요를 천천히 끌어서 곡간으로 향했다. 3년 전에도 남편 훈이를 이렇게 옮겼었다.

이삭이 중얼거렸다. "해를 끼치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단지 바깥세상이 보고 싶었을 뿐인 젊은이는 자신이 평생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오사카까지는 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젊은이는 오만했던 스스로를 저주했다. 자신과 접촉했던 사람이 감염 되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죽음은 자기 탓이리라. 이삭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빨리 죽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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