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8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 Part 3
나는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처럼 그 민박집한테 맹렬한 적의를 느꼈다. 동생의 아들네에 전화를 걸어 섬의 민박집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동생의 이름을 대고 바꿔달랬더니 심부름을 나갔다고 했다. 그 집에서 부려먹고 있다는 내 추측은 틀림이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환갑 노인에게 힘부름이라니. 설사 심부름을 나갔다 해도 잠깐 출타를 했다고 하면 듣기 좋을 것을...' 하고 나는 민박집의 본데 없음을 마음 껏 경멸했다. 그날 저녁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밝고 들튼 목소리로 그 섬이 얼마나 공기 좋고 서늘한지 자랑만 늘어놓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불편 했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괘씸했지만 젖은 옷을 입고 더위를 참아낼 때 모른 척한게 아직고 양심에 걸려있어서 참고 들어주었다. 그 섬이 그렇게 쾌적하다면 추석까지라도 기다려야지 별수 있겠는가. 금년엔 추석이 일찍들어 산들바람도 나기전에 명절준비를 해야할 생각을 하면서 나는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마냥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동생의 지상낙원 처럼 말하는 섬이 어디서 어떻게 가는 곳이며, 이름은 뭐냐고 물어보았다. 삼천포에서 여객선으로 두시간 가량 걸리는 섬으로, 이름은 사량도라고 했다. 나는 '사랑도? 이름 한번 요상하다'고 했더니 동생은 '랑'이 아니라 '량'이라고 고쳐주었다. 그러나 나는 외우기 쉽게 사랑도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거 아무리 거기가 좋아도 너무 추석 임박해서 오지말고 넉넉하게 남겨놓고 오도록 하라고만 당부하고 전화를 끝으려고 했다. 동생은 제 남편 차례를 분수에 넘치게 지내는 편이었다. 우리 집은 차례뿐 아니라 손님도 치러야 한다. 장보기까지 동생의 손길이 두 집에 고루 미치려면 적어도 닷새전에는 와야한다. 동생은 마지 못한듯 시들한 목소리로 '추석 전에는 가야지...'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말을 덧 붙였다. "언니 힘들어서 어떻게해? 나만 믿지 말고 사람을 구해봐." 사람을 구하라니 딴 파출부를 쓰라는 얘기고, 지가 고작 파출부 노릇이나 했다는 것 아닌가. 내가 쟤를 어떻게 대접했는데. 나는 치사하게도 내가 동생에게 베푼 갖가지 혜택을 일일이 떠올리면서 그 배은망덕에 이라도 갈고싶은 심정이었다. 제부가 죽은 후 하루 걸러 오도록하면서도, 수입이 줄지 않도록 일당을 올리고, 김장이나 명절 손님 초대 등 과외로 부를 때에는 후하게 웃돈을 얹어줬으며, 비싼 옷도 조금만 실증이 나면 저한테 아낌없이 물려 줬으며, 집에 고기나 갈비가 남아돈다 싶으면 제깍 저한테 넘겨 줬으며,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어린이 날엔 내 손자는 안 챙겨도 넷이나 되는 제 손자들은 꼬박꼬박 챙겨서 설빔이나 선물을 장만 했으며, 외국여행 갔다가도 제가 행여 며느리한테 얕보일까봐 며느리 주라고 비싼 영양크림 사오는 걸 한번도 잊은 적이 없는 것 등등, 열거하자면 한정이 없었다. 그게 어떻게 보통 파출부에게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그런걸 잊지 않고 꼽고 있는 자신이 문득 남처럼 역겨워 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과연 추석 미처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추석을 일주일이나 앞두고 동생은 돌아왔고, 돌아오던 마다 우리집 먼저 들이닥쳤다. 동생은 얼굴에서 푸석한 부기가 말끔히 가시고 보기좋게 탄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동생의 건강 뿐 아니라 내 생활의 평화와 질서까지 원상으로 돌아온 안도감에 나는 함박웃음을 띄고 동생을 맞아들였다. 그러면 그렇지. 반가운 김에 아유 못된 것, 나는 니가 사량도에서 사랑에 빠진 줄 알았지 뭐냐고, 농담까지 할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동생은 화들짝 놀라며,
"언니! 내가 사랑에 빠진 걸 어떻게 알았어?" 하며 신기해 하는게 아닌가. 농담을 진담으로 받을 때 당혹감이라니. 동생이 혼자됐을 때만 해도 비록 꼴깍 넘어가기 직전이었지만 쉰자가 들어가는 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환갑진갑 다 받아먹은 우리가 아닌가. 그 나이에, 더군다나 섬에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랑도인지 사량도인지가 갑자기 근해의 파도 속에서 비너스가 요상하고 변덕스러운 화냥기를 바람에 실어보내고 있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섬으로 변했다.
"언니, 난 처음부터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섬에 간건 아니야. 그렇지만 가보니까 민박집은 계획적이었더라고. 날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 싶었나봐. 내가 언니한테도 못할 소리를 그 여편네한테 털어놓았으니까. 올 여름이 좀 더웠수? 대식이 애비가 전세 집이나마 처음으로 구색을 갖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니까 기쁘고 대견하면서도, 인사성으로라고 같이 살잔 소리가 한마디쯤 있을 줄 알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암말이 없더라고. 게다가 처갓집에서 떡하니 새집에다 에어컨을 들여놔 줘서 내가 갈 때 마다 시원하게 켜주는 것 까지는 좋은데, 옥탑방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펄쩍펄쩍 뛰게 덥고, 게다가 서럽기까지 한거야. 그때 마다 젖은 옷을 입고 더위를 견디기가 너무 비참해. 전화통 붙들고 민박집에다 하소연을 보냈더랬어. 그동안 옷이 다 말라 다시 한번 적셔다가 입고는 통화를 계속 한 적도 있는걸. 물론 내가 지금 어떤 꼴을 하고 있다는 중계방송도 빠뜨리지 않았지. 내가 누구요. 그 친구가 그러다 병나겠다고 섬에와서 여름을 나고 가라고 하길래 생각하고 말것도 없이 떠났던 거야. 오라는 데가 있는게 그렇게 좋더라고. 피해가 될 걱정 같은 건 안 했어. 어디 가든 내 몸 하나만 안 아끼면 밥 값 할 자신은 있었으니까. 죽으면 썩을 놈의 손 뭣하러 아끼겠어. 언니, 언니도 여윳돈 있으면 그 섬에 별장 하나 사. 삼천포에서 배로다 두시간도 채 안 걸려. 얼마나 좋다구. 나는 사람들이 다 좋다는 제주도도 그닥 좋은 줄 몰랐는데 사량도는 첫박에 마음에 쏙들더라고. 여기가 바로 삼경이다 싶었으니까. 순 서울사람이 하필 거기다 노후설계를 하게 됐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얼마나 시원한지, 서울의 찜통 더위가 딴 나라 일 같더라고. 거기엔 복더위도 없지만 엄동설한도 없데. 겨울에도 얼음이 어는 법이 없다니까. 들이 사철 푸르데. 그래도 가을되면 나무들이 단풍은 든다나봐. 노란 나뭇잎이 파란 잔디위해 떨어질 생각을 해봐.내가 뭣에 홀렸다고? 아마도. 민박집이 얼마나 잘 해주는지 도와주고 싶어도 할 일도 없더라고. 심부름하는 아녀석도 하나 있고 민박 손님들은 잠만자기 밥은 안 해달라니까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언니, 난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퍼질러서 낮잠이나 자고..그러지는 못하는 거 언니도 알잖아. 한시 반시 안 놀리던 팔다리 너무 편하게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아침 저녁 섬을 한 바퀴 씩 돌면서 선창가 구경도 하고 들일하는 사람들하고 만수받이도 하니까, 서울서 부기 먹은 것도 빠지고 밥 맛도 좋아지더라고. 그런데 이상한게 내가 바람 쐬러 나갈 때 마다 나를 꼭 딸 미팅 내보낸 여대생 엄마처럼 나한테 잔소리를 하는거야. 화장하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라고. 그러잖아도 섬 여자들보다 얼굴이 하얗고 팽팽한게 미안해 죽겠는데. 언니, 섬 여편네들 말도 말아. 내 나이면 새까만 얼굴에 굵은 주름이 밭고랑 같다니까. 서울서도 아무도 나를 육십대라고 안 봤잖아. 다들 열살은 젊게 봤는데 거기에선 꺽어진 육십으로 보는 사람까지 있더라고. 눈들이 삔게 아니라 지내들하고 비교해서 그렇게 본거지. 그렇게 지내길 일주일도 안 돼서 청혼이 들어온거야. 삼천포까지 배 타고 나가서 다방에서 만났는데 낯익은 얼굴이더라고. 작은 섬이니까 빤하잖아. 내가 또 오죽 빨빨거리며 쏘다녔수. 홀아비인줄은 몰랐지만 점잖기가 꼭 교장선생님 같아서 길을 비켜드리며 인사를 꼭 했던 분이었어. 그게 다냐고? 물론 나를 맞선을 보이려고 삼천포까지 끌고 나가기 전에 민박집이 오죽 나를 꼬셨겠어? 언니도, 감언이설은 무슨! 그게 아니라 한 동네에서 겪어본 그 노인네 마음 씀씀이랑 집안 사정이랑 겪어본 대로의 그 노인 속내를 일러주면서 나한테는 과분한 혼처라는 거지. 교장선생님은 아니었지만 그 노인이 제일 되고 싶었던게 교장선생님이었데. 상처한지는 일년도 안 돼. 금년 이월이었다니까 금슬 좋지고 동네에서 소문이 난 부부였다나?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니, 난 그 소리가 젤로 맘에 들더라. 우리도 소문난 잉꼬부부였으니까. 그래서 서로 꿀릴게 없잖아. 다된 밥인데 새삼스럽게 맞선은 뭐하러 봤냐구? 그래 맞아. 우리끼리는 민박집이 바란 것 보다 더 쉽게 눈이 맞아버린거야. 그러니까 삼천포까지 나간건 맞선이 아니라 상견례였어. 영감님은 오남매를 두었는데 아들 셋을 다 대학까지 가르치고 딸 둘은 고등학교 까지만 가르친 대신 다 대학나온 사위를 맞았느데 그이들이 삼천포에서도 살고 부산, 마산에서도 사는데 그이들한테 먼저 나를 소개시키고 승낙을 받는 절차를 밟고 싶다는 거야. 자식들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야 앞으로도 내 입장이 떳떳하다는 거지. 오남매가 하나도 안 빠지고 본부인에서 나왔으니 그 식구만 해도 열명 아니우? 게다가 육지에 사는 아우, 누이을 까지 나왔으니 얼마나 근검해. 교장 선생님 보다 더 잘나 보이더라구. 대학 졸업생들이 다들 절절매는데 총장님이라면 누가 뭐랄거야. 영감님이 섬에서도 존경받고 있다는게 느껴졌는데 처신을 점잖게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섬에서 자식들을 모조리 그만큼 공부시킨 집은 그 집 하나 밖에 없다니까 그럴만도 하지 뭐. 다방에서 음식점으로 옮겨 앉아 회식을 하면서 영감님은 부득부득 나를 자기 옆에 앉히고 동지 섣달 꽃 본듯이 눈을 못 뗐지. 건장한 아들, 사위들이 차례로 절을 올리며 어머니, 어머니, 붙임 성 있게 굴지. 그래놓으니 내가 시쳇말로 뿅가지 않았겠수? 언니, 언니는 왜 또 도끼눈을 뜨고 그래. 그집 식구만 제일이고 우리 쪽 식구들은 뭘로 아냐구? 그런 아니지. 영감님이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니야. 부득부득 나하고 같이 상경해서 우리 식구들에게 자기르 선보이겠다는 거야. 내가 안 그래도 된다고, 나혼자 가서 승낙을 받고 온다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