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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2 - 샐린저, 데이브브루백그리고금각사 (J. D. Salinger, Dave Brubeck) - Part 2

Episode 2 - 샐린저, 데이브브루백그리고금각사 (J. D. Salinger, Dave Brubeck) - Part 2

혼자 자기 방에서 누가 대신 써주지 않는 그런 글을 아무와도 협업하지 않은 채로 혼자 적어나가지 않으면 한 발 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그런 일이고요. 지구 상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대단히 외로운 직업 중에 하나입니다. 하여간, J. D. Salinger, 이 작가의 명복을 빌구요.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금각사” 얘기를 조금 더 할 까 합니다. “금각사”는 사실 대단히 재미있게 읽히는데요. 다 읽고나면, 무거운 주제인데 참 재밌게 읽혀요. 다 읽고나면 야한 것만 사실은 기억에 남습니다. 어려서 읽으면 더더욱 그렇겠죠? 특히, “금각사”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동양적 변태의 탄생'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도 후작이 '서구적 변태'의 어떤 극을 보여줬다면, 미시마 유키오의 변태는 ‘동양적 변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조, 관음. 지켜보는 것이죠? 아름다운것을 멀리서 훔쳐보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파괴하고 싶어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변태적인 욕망은 자연스럽게 ‘방화'로 연결되게 됩니다. 최근에 심리학 쪽에서는 방화와 어떤 그 성욕의 문제, 좌절된 성욕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가지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그런걸 알았을 것 같지는 않고요. (그런 연구결과 같은 것들을.) 그러면서도 포착한 것이죠. 방화와 이 변태. 이런 것에 대해서 날카롭게 포착을 했습니다. 이 “금각사”에는 세 명의 여자와 얽힌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첫 번 째는 숙부, 자기가 살고있는 숙부 댁에서 두 집 건너에 살고있는 아름다운 처녀 우이꼬입니다. 두 번 째는 우연히 다른 절에 놀러갔다 보게된 꽃꽂이 선생, (나중에 이제 알게됩니다만) 여자에 대한 얘기고, 또하나는 자기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입니다. 이 세 가지가 반복, 변주되면서 이 인물의 내면,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으로 부터 배신당하거나, 그것을 가까이 갈 수 없게된 인물의 내면들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저도 사실은 처음에 읽고나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화가, 조금 있다 읽어드리게 되는, 두 번 째, 절에서 마주치게 된 아름다운 선생, 꽃꽂이 선생에 대한 얘기인데요. 자 그러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숙부 집에서 두 집 건너 집에 아른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다. 우이코라는 이름이었다. 눈이 크고 맑았다. 잘 사는 딸이어서인지 몸가짐이 의젓했다. 누구에게나 떠받들림을 받고있건만, 늘 외톨박이로 놀면서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우이코는 틀림없이 아직 처녀련만, 공연히 시샘하는 여자들이 ‘우이코 같은 얼굴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성녀 상'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우이코는 여학교를 나오자 마자 마이즈루 해군 병원에 특별지원 간호원이 되었다. 병원까지는 자전거로 통근이 가능한 거리였다. 그러나 아침 출근은 아주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기 때문에 , 우리가 학교에 등교하는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빨랐다. 어느 날 밤, 나는 우이코의 몸을 생각하면서 암울한 공상에 빠져 잠을 설친 끝에, 아직 날이 새기도 전에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운동화를 찾아 신고 여름 날의 어둑 새벽길로 나섰다. 우이코의 몸을 그리워한 건, 그날 밤에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였다. 이따근 그런 생각이 들곤 하던 것이 점차로 굳어지면서, 어쩌면 그런 생각의 덩어리 처럼 우이코 몸은 희고, 탄력이 있고, 어둠침침한 그림자 속에 잠겨있는 향긋한 어떤 육회의 모양으로 응결되어갔던 것이다. 나는 거기 내 손가락이 닿는 따스함을 생각한다. 또 그 손가락에 거슬려오는 탄력이라던가, 꽃가루 같은 내음을 생각했다. 나는 어둑 새벽의 길을 똑바로 달려갔다. 돌 뿌리 하나 가로막아 걸리적 거리지 않았고, 어둠이 내 앞에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 근처에서 길이 끊어지면서 시라쿠 마을 아자이아스오카 부락의 변두리가 된다. 그곳에 한 그루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는 아침 이슬에 젖어있었다. 나는 나무에 기대어 몸을 숨기고 마을 쪽에서 우이코의 자전거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기다린다고 해서 뭘 어쩌자는 것도 아니였다. 숨이 끊어지게 달려오기는 했지만, 느티나무 그늘에서 가뿐 숨을 진정시키고 나니 비로소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허나 나는 바깥 세계와 별 인연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일단 바깐 세계에 뛰어들고나면, 모든게 쉬워지고 가능해 질 것 같은 환상이 있었다. 모기가 발을 찔러댔다. 여기저기서 새벽 닭이 울었다. 나는 길 쪽을 살펴보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건 먼 동이 트는 빛 같기도 했으나, 우이코였다. 우이코는 자전거를 탄 것 같았다. 앞 전지등이 켜져있었다. 자전거는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왔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나는 자전거 앞으로 뛰어나갔다. 자전거는 쓰러질 듯 황급히 급정거를 했다. 그때 나는 내가 돌이 되어버린 걸 알았다. 의지도, 욕망도 모두가 화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외계는, 나의 내면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또다시 내 둘레에 엄연히 존재해 있었던 것이다. 숙부님 댁을 몰래 빠져나와, 흰운동화를 신고, 이 느티나무 그늘까지 어둑 새벽 길을 달려온 나는 다만 나 자신의 내면을 일심전력으로 달려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둑 새벽 속에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던 마을 집집의 지붕에도, 시커멓게 서있던 가로수에도, 녹음진 산에 검은 산 봉우리에, 그리고 눈 앞에 우이코 까지도 무서우리만큼 완전히 의미가 결여되어 있었다. 나의 관여를 기다리지 않고 현실은 거기에 부여되어 있었으며, 더군다나 내가 지금 까지 본 적이 없는 중압감을 가지고, 이 무의미하고도 거대한 캄캄한 현실은 나에게 주어지고, 내게 육박해 왔다. 언제나 처럼, 나는 아마 이런 자리를 구제해 주는 건 오직 언어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특유의 오해였다. 행동이 필요할 땐 언제나 말에 신경이 쏠려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내 입에서 말이 매끄럽게 나와주지 않으니까, 거기에 정신이 빼았겨서 정작 행동은 잊고있기 마련이었다. 내 생각에 행동이라는 찬란한 빛깔을 지닌 것은 항상 찬란한 언어도 동반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보고있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이 들고보니 우이코는 처음에는 겁에 질렸다가 나라는 걸 알고나자 내 입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희뿌연 새벽 공간에서 무의미하게 오물거리고 있는 시시하고 조그마한 검은 구멍, 들에 있는 작은 동물의 집 처럼 지저분하고 아무렇게나 나있는 작은 구멍, 즉, 내 입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부터 외계로 연결되어질 힘이 무엇하나 나오고 있지 못함을 확인하고 안심을 했던 것이다.

“무슨 짓이야? 말 더듬이 주제에!”

우이코가 나무랐지만. 그 목소리에는 아침 바람 같은 산뜻함과 싱그러움이 있었다. 그녀는 벨을 울리면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돌이라도 비켜가듯이 나를 비켜서 빙 돌아갔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데 저 멀리 논두렁을 지나가서 까지 우이코가 가끔 비웃듯이 벨을 울리며 달려가는 소리를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우이코가 일러서 그녀의 어머니가 나의 숙부 댁에 찾아왔다. 나는 평소에 온화한 숙부에게서 그날만은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나는 우이코를 저주하고, 그녀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몇 달 안 가서 그 저주가 성취됐던 것이다. 그때 이래로 나는 남을 저주하면 뜻대로 된다는 확신을 갖게되었다. 자나깨나 나는 우이코가 죽기를 바랐다. 내 부끄러운 짓에 입회했던 사람이 지상에서 아주 사라져 버리기를 원했다. 증인만 없으면 내 수치도 지상에서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가 증인이었다. 그 타인이 없다면 수치도 생기지 않게 된다. 나는 우이코의 모습, 어둑 새벽에 희뿌연 길에서 흐르는 물처럼 빛나면서 내 입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눈에 배후에 타인의 세계, 즉 우리들은 결코 하나로 두어 두지도 않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공범이 되고 증인이 되는 타인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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