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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발췌문 (Literary Excerpts), 사랑을 믿다 -- 권여선 (1)

사랑을 믿다 -- 권여선 (1)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지난 2월 늦은 저녁이었다. 혼자 이 술집에 들른 것은 내 입장에서도 다소 의외였다. 나는 소주나 막걸리를 즐기지 않았고 이 집은 맥주나 와인 같은 것은 팔게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술을 시켰다. 주문한 안주가 나오기 전에 김치와 나물들이 나왔다. 제대로 들 어왔다는, 아니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느낌이었다. 밑반찬만으로 술을 반병 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후로 이 집은 내가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꼴로 들르는 단골 술집이 되었다.

빈대떡에 막걸리, 찌개에 소주, 몇 가지 나물들과 김치를 늘어놓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하는 생각 이란, 맞아 그때 그런 얘길 했었지라든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하는 식의 소소한 과거사이다. 이 집 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든가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곳은 내게 오로지 기억, 기억, 그렇게 속삭이는 장소가 되었다. 천천히 술을 마시다 보면 흡연, 낫 놓고 기역 자를 모르듯, 기억 속의 내가 뭣도 모르고 살아온 모양이 환등처럼 떠오른다. 현 실의 시간은 밤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기억의 한낮을 산다. 요즘 내가 그 땡볕 아래서 기다리는 인물 은, 숨겨둔 단ᄂ골 술집처럼 나는 남몰래 마음에 두고 좋아히지만, 그쪽은 이제 나를 한낱 친구로만 여기고 잊었을 한 여자이다. 기억이란 오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는 방식이며 포즈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배운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온 인류가 그런 일을 겪 지는 않을 것이다. 손쉽게 극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른 채 늙어버리는 경우 도 있을 것이다. 드물게는,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런 경험만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삼 년 전에 그런 일을 겪었다는 정도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비밀도 아니다. 난 사랑을 믿은 적이 있 고 믿은 만큼 당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는 고백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사랑과 믿음, 상당히 어려운 조합니다. 그나마 소망은 뺀다 쳐도, 사랑과 믿음 중 하나만도 제대로 감당하기 힘든 터에 감히 둘을 술목관계로 엮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니. 믿음이 사랑한 적이 있다 는 말만큼이나 뭐가 뭔지 모르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나처럼 겁과 의심이 많고 감정에 인색한 인간 이 뭘 믿은 적이 있다고? 티컵 강아지가 드래곤을 대적하겠다고 날뛰는 것만큼 안쓰럽고 우스꽝스러 운 경우가 아닌가.

인생을 살다 보면 까마득하여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 의외로 손쉽게 실현 가능 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순간에 들렸던 것뿐이다. 더 기막힌 건 앞으로 살다보면 그런 일이 또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산이나 상비약을 챙기듯 미 리 대비할 수도 없다. 사랑을 믿는다는 해괴한 경험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퇴치하거나 예방할 수 없 는, 문이 벌컥 열리듯 밖에서 열리는 종류의 체험이니까. 두 손 놓고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니까.

하지만 가장 기막힌 경우는 따로 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그런 고통을 안겨주고 유유히 빠져나온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렇다 고 해서 내가 저지른 죄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몰랐기 때문에, 몰랐다는 사실까지 나의 죄가 곱절 가중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의 사랑을 몰랐다는, 발등을 짓찧을 죄까지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그녀는 못생긴 편도, 매력이 없는 편도 아니었다. 내 어법이 이렇게 졸렬하 고 인색하다. 누군가가 아름답다든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일이 나로서는 쉽지가 않다. 대상이 아름답다거나 매력적이라고 긍정하는 순간, 불현듯 그 규정의 한 모서리가 대상과 어긋나는 듯한 불편함 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대상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라 든지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하는 조잡한 이중부정을 각주처럼 달아놓고서야 마음이 편안해 지는 식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첫인상은 평범했지만 콧날 끝에서 윗입술에 이르는 인중선이 깎은 듯 단정해 과녁처럼 시선의 포인트가 잡혔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의 윗 입술의 움직임에, 다시 말해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막연히 예쁜 얼굴보다 여러 모로 유리한 얼굴이라 할 수도 있었다. 키는 중간 정도로 날씬한 편이었다. 몸매처럼 성격도 기름기 가 없이 박하처럼 싸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녀는 머리가 나쁘지도 않았고 몸이 게으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재빠르다는 느낌을 줄 만큼은 아니었는데, 마치 암컷 영양처럼 우아하게 민첩하고 영리할 따름이었다.

그녀에 대해 여기까지 생각한 후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취기 때문에 내가 그녀에 대해 너무 너그러워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서툴고 겁이 많은 인간이었다는 걸 나는 안다. 넘쳐흐르는 감정의 절실함보다 한 오라기의 자존심을 선택하는 인색한 성격이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이래로 내 머릿속의 그녀는 어디에 놓든, 무엇을 담든, 항상 아담하면서도 고독해 보이는 도자기의 윤곽선을 떠올리게 한다. 삼 년 전 내가 한 여자로부터 실연을 당했을 즈음의 얘기이며, 그녀를 한동안 못 보고 지내다 삼 년 만에 만났을 때의 얘기이다. 삼층짜리 건물에 얽힌 얘기기도 하니, 삼박자가 딱 들어맞는 얘기다.

그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예약해둔 술집까지 십오 분가량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괜찮지?” 나는 물론 괜찮다고 했다. 화장을 하지 않은 그녀는 얼굴빛이 어두웠고 볼이 약간 부어 동남아 여 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모자 달린 점퍼에 운동화 차림이었는데 그 차림에 맞게 걸음도 빨랐다. 횡단보도 앞에 잠시 멈춰 섰을 때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지난주에 큰고모님께서 돌아가셨어.”

내가 오, 그래? 하는데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나는 친척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면서 그녀가 왜 피식 웃는지 의아했다. 신호가 바뀌자 그녀는 횡단보도 쪽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혼잣말하듯 중얼거 렸다. 정확하진 않지만 희한하다든가 뭐라고 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희한한 것은 없었 다. 굳이 희한하다면 그녀 쪽이 약간 그랬다. 큰고모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왜 피식 웃느냐 말이다. 예 전부터 그녀는 내게 가끔 이런 의아함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는 편이긴 했다.

그녀가 안내한 술집은 몹시 좁고 기차처럼 길었다. 그런 후미지고 허름한 술집을 예약까지 해야 한 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단지 네 개의 테이블이 일렬종대로 놓여 있을 뿐이었고 오른쪽 벽을 따라 겨 우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통로가 있었다. 입구 맞은편 기차 머리 쪽이 주방이었다. 우리가 앉은 세 번째 자리의 왼쪽 벽에는 작은 유리창이 뚫려 있었는데, 말이 유리창이지 미닫이도 여닫이도 아닌, 벽에 박힌 직사각형의 유리에 불과했다. 바깥은 조그만 주차장이었다. 유리 너머로 캄캄한 주차장에 웅크린 몇 대의 차들과 희미한 주차관리소 불빛이 보였다.

“제육과 해물을 반반 주세요.” 그녀의 말에 어려 보이는 여종업원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반반? 무엇이, 반반을요?” 여종업원은 한국어가 서툰 것 같았다. “이것고 이것을 반반씩 달라고요.” 그녀가 벽에 붙은 메뉴판의 항목을 하나씩 가리켰다. 여종업원은 메뉴판 위쪽 얼룩진 천장 모서리 를 꼴똘히 쳐다보았다. 무슨 거창한 암산이라도 하는 듯 머릿속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마침내 주방에 서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뛰어나왔다. 그녀는 제육볶음과 해물볶음을 반반씩, 가격은 이만오천 원 에 하기로 주인 여자와 삼 초만에 결정을 보았다. “내 맘대로 시켰는데, 괜찮지?”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냉동 재료를 벌건 양념에 대충 볶아내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안주 같은 건 안중에도 없던 터라 달리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어 투덜거렸다.

“여긴 다 좋은데 종업원이 자주 갈려. 올 때마다 늘 반반씩 시키는데도 말이 안 통하는 종업원이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축적의 보람이 없어.”

“그래도 주문하는 네 노하우는 상당히 축적된 것처럼 보이던데?” “글쎄. 설왕설래하는 시간이 좀 단축된 듯도 하고.” “여기 자주 오나 보지?” “비싸니까 자주는 못 와. 가끔 오지.”

그녀는 조금 변한 듯했고 나는 그녀가 조금 낯설어졌다. 그 집의 모든 안주는 일괄 이만 원이었다. 술집 외양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이만 원이었다. 그녀는 이만 원짜리 안 주 두가지를 반반씩, 오천 원만 추가하는 선에서 시켰고 이제껏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 이십대 후반을 함께 보냈다. 자주 만날 때는 일주일에 두어 번, 드물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나는 사이였다. 딱히 약속을 정해서 만난 기억은 없었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오다가다 부딪 치고 얽히게 되었고 취향이나 스타일이 비슷해 각별한 친밀감을 느꼈다. 우리의 만남이 끊어진 건 그 녀가 업무를 바꾸면서부터였다. 마침 그때 나도 막 연애에 돌입한 시점이라 그녀에게 따로 연락을 하 게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경제관념이 생긴 것, 자기 입맛 위주로 음식을 시키는 것, 이런 것이 그녀가 변한 부분이 라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차림새로 보아 그녀가 예전보다 수수해졌다는 건 분명했다. 예전엔 목걸이나 반지는 몰라도 귀걸이 하나는 독특한 걸로 달고 다니길 즐겼는데 그날은 아무 금붙이도 달 거나 걸고 있지 않았다. 나는 경제관념이 가난에서 온다는 편견을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 기 입맛 위주로 음식을 시키는 것, 이 대목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별안간 미식가가 되었다는 뜻 일 수도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든 탓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 만, 기회가 왔을 때 입맛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지낸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이럴 경우, 이것은 그녀에게 생긴 놀라운 경제관념과 더불어 무엇을 의미하겠는 가. 그녀가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대단히 가난해졌다는 뜻 아니겠는가. 우리가 못 보 고 지낸 삼 년 동안에.

“한 이 년쯤 됐나?”

그녀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내가 삼 년이라고 정정해주려는데 그녀가 유리 너머 주차장 쪽을 응시하며, 처음 이 집에 온게, 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저 오 그래? 하고 말았다. 그녀가 잠시 뒤 덧붙 였다.

“실연당한 친구 덕에 이 집을 알게 됐지.”

실연이라는 말에 나는 기습을 당한 듯 움찔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가 나를 떠났다는 단순한 사실이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독초처럼 쓰디쓴 고통의 싹이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실연당한 친구?” “응.”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 친구는 남자에게 심한 배신을 당하고 그녀에게 조언과 위로를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내가 적잖은 관심을 보이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통로를 지나 주방 앞으로 간 그녀는 여종업원에게 냉장고와 수납장 쪽을 가리키며 손짓을 해 보였다. 술을 시키는 것 같았다. 술이 필요한 얘기이긴 했다. 특히 내게는 더 그랬다.

나는 종종 실연의 유대감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가 떠나든 그들이 떠나든 둘 중 한쪽은 어 느 별인가로 떠났으면 좋겠다 싶은, 참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인간형들이 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우 연히 그들 중 누군가가 얼마 전에 지독한 실연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나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기조차 싫었던 그 인간을 내 집에 데려와 술을 대접하고 같은 천 장 아래 재울 수도 있다. 심지어 술 냄새를 풍기는 그 인간의 입술에 부디 슬픈 꿈일랑 꾸지 말라고 굿나잇 키스까지 해줄 용의가 있다. 허기의 유대나 가난의 유대 같은 것이 있고, 시험강박의 유대, 채식주의의 유대, 실종 자녀를 둔 부모들의 유대 등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별난 인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실연의 유대만큼 대책 없이 축축하고 뒤끝 없이 아리따운 유대를 상상할 수 없다. 그래 서였을까. 그때 그 기차간 같은 술집에서 나는 그녀가 술을 시키는 걸 바라보면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녀의 친구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의 친구와 나 사이에 생겨날 실연의 유대에 대한 예 감만으로도 가슴이 설?다. 물론 그녀의 매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 가 물었다.

“차도 안 가지고 왔으니까 조금 마시는 것도 괜찮지?” 나는 역시 괜찮다고 대답했다. “맥주하고 소주 시켰는데 어때?” 오, 그래? 나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이런 기차간 같은 분위기에서 실연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소주 몇 잔 정도는 곁들이게도 될 테니까.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자. 괜찮지?”

맥주에 소주를 섞는다니 기겁을 할 일이었지만 나는 이미 엉겁결에 괜찮다고 말해버린 후였다. 그 녀는 뭔가를 미리 결정한 후 한발 늦게 내 의사를 타진해왔다. 이것도 그녀가 변한 부분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만난 후 줄곧 오, 그래? 아니면 괜찮아, 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그 친구한테는 뭔가 도움이 되는 얘길 해줬어?” “그 친구? 아아.”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내가 도움이 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

“왜?”

그녀의 친구는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인 와중에서도 하루 전에 미리 이 술집을 예약해놓았다고 했 다.

“그건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희망? 무슨 희망?” “사는 데 애착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거잖아. 나는 그 희망을 은근히 훼방 놓는 시늉만 하면 됐 고.” 희망을 훼방 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간단히 설명했다. “그래야 거기 희망이 있다는 걸 알지. 뭔가 잔뜩 어질러놓아야 거기 공간이 있다는 걸 알 듯이.”

설명을 듣고 나면 더 모를 듯한 느낌이 드는 것, 이 또한 그녀의 희한한 면 중 하나였다. 훼방을 놓 아야 거기 희망이 있다는 걸 안다니. 뭔가를 잔뜩 어질러놓아야 거기 공간이 있다는 걸 안다니. 무슨 설명이 이런가.

여종업원이 쟁반을 날라 왔다. 쟁반에 놓인 것들을 흘깃 훑어보던 내 시선이 술병에 고정되었다. 그제야 나는 비싸서 이 집에 자주 못온다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것은 안주에 대한 얘기가 아니 라 술에 대한 얘기였다. 국그릇과 반찬 접시들 옆에 맥주 두 병과, 목이 긴 도자기 병에 든 안동소주 한 병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맥주에 안동소주를 섞자는 거였다. 이 또한 희한했다.

이 집 반찬들은 확실히 납품받지 않은 것들이라고, 직접 아주머니가 장을 봐서 매일 만드는 것들이 라고, 그녀를 이곳에 처음 데려온 친구는 힘주어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묻지도 않고 그녀의 잔에 맥주를 따르고 안동소주를 섞었다.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친구는 술부터 들이 켰고 그녀는 국부터 떠먹었다. 들이닥쳐 냉수 한 잔 먹고 바로 본론에 돌입하는 빚쟁이처럼 친구는 술잔을 내려놓고 다그치듯 물었다.

“넌 그때 어땠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계속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 거야?”

내 어리둥절한 표정에 그녀가 술을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내가 그 친구보다 일년 먼저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 처음 듣는 얘기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사랑을 믿다 -- 권여선 (1) Believe in Love -- Yeoseon Kwon (1)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Having a regular bar in the neighborhood may be a disaster for everyday life, but it is an infinite blessing for memories.

지난 2월 늦은 저녁이었다. 혼자 이 술집에 들른 것은 내 입장에서도 다소 의외였다. 나는 소주나 막걸리를 즐기지 않았고 이 집은 맥주나 와인 같은 것은 팔게 생기지 않았다. I didn't enjoy soju or makgeolli, and this place didn't seem to sell beer or wine. 그런데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술을 시켰다. Still, I opened the door, went in, took a seat, and ordered a drink. 주문한 안주가 나오기 전에 김치와 나물들이 나왔다. 제대로 들 어왔다는, 아니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느낌이었다. It felt like I was getting it right, or I was getting it right. 밑반찬만으로 술을 반병 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The side dishes were not enough to empty half the bottle of alcohol. 그 후로 이 집은 내가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꼴로 들르는 단골 술집이 되었다. Since then, this house has become a regular bar that I go to about once every two or three days.

빈대떡에 막걸리, 찌개에 소주, 몇 가지 나물들과 김치를 늘어놓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하는 생각 이란, 맞아 그때 그런 얘길 했었지라든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하는 식의 소소한 과거사이다. 이 집 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든가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곳은 내게 오로지 기억, 기억, 그렇게 속삭이는 장소가 되었다. 천천히 술을 마시다 보면 흡연, 낫 놓고 기역 자를 모르듯, 기억 속의 내가 뭣도 모르고 살아온 모양이 환등처럼 떠오른다. As I drink slowly and don't know anyone who smokes or puts on a sickle, it reminds me of my life without knowing anything in my memory. 현 실의 시간은 밤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기억의 한낮을 산다. 요즘 내가 그 땡볕 아래서 기다리는 인물 은, 숨겨둔 단ᄂ골 술집처럼 나는 남몰래 마음에 두고 좋아히지만, 그쪽은 이제 나를 한낱 친구로만 여기고 잊었을 한 여자이다. 기억이란 오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는 방식이며 포즈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배운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온 인류가 그런 일을 겪 지는 않을 것이다. 손쉽게 극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른 채 늙어버리는 경우 도 있을 것이다. 드물게는,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런 경험만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삼 년 전에 그런 일을 겪었다는 정도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비밀도 아니다. 난 사랑을 믿은 적이 있 고 믿은 만큼 당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는 고백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사랑과 믿음, 상당히 어려운 조합니다. 그나마 소망은 뺀다 쳐도, 사랑과 믿음 중 하나만도 제대로 감당하기 힘든 터에 감히 둘을 술목관계로 엮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니. 믿음이 사랑한 적이 있다 는 말만큼이나 뭐가 뭔지 모르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나처럼 겁과 의심이 많고 감정에 인색한 인간 이 뭘 믿은 적이 있다고? 티컵 강아지가 드래곤을 대적하겠다고 날뛰는 것만큼 안쓰럽고 우스꽝스러 운 경우가 아닌가.

인생을 살다 보면 까마득하여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 의외로 손쉽게 실현 가능 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순간에 들렸던 것뿐이다. 더 기막힌 건 앞으로 살다보면 그런 일이 또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산이나 상비약을 챙기듯 미 리 대비할 수도 없다. 사랑을 믿는다는 해괴한 경험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퇴치하거나 예방할 수 없 는, 문이 벌컥 열리듯 밖에서 열리는 종류의 체험이니까. 두 손 놓고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니까.

하지만 가장 기막힌 경우는 따로 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그런 고통을 안겨주고 유유히 빠져나온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렇다 고 해서 내가 저지른 죄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몰랐기 때문에, 몰랐다는 사실까지 나의 죄가 곱절 가중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의 사랑을 몰랐다는, 발등을 짓찧을 죄까지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그녀는 못생긴 편도, 매력이 없는 편도 아니었다. 내 어법이 이렇게 졸렬하 고 인색하다. 누군가가 아름답다든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일이 나로서는 쉽지가 않다. 대상이 아름답다거나 매력적이라고 긍정하는 순간, 불현듯 그 규정의 한 모서리가 대상과 어긋나는 듯한 불편함 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대상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라 든지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하는 조잡한 이중부정을 각주처럼 달아놓고서야 마음이 편안해 지는 식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첫인상은 평범했지만 콧날 끝에서 윗입술에 이르는 인중선이 깎은 듯 단정해 과녁처럼 시선의 포인트가 잡혔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의 윗 입술의 움직임에, 다시 말해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막연히 예쁜 얼굴보다 여러 모로 유리한 얼굴이라 할 수도 있었다. 키는 중간 정도로 날씬한 편이었다. 몸매처럼 성격도 기름기 가 없이 박하처럼 싸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녀는 머리가 나쁘지도 않았고 몸이 게으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재빠르다는 느낌을 줄 만큼은 아니었는데, 마치 암컷 영양처럼 우아하게 민첩하고 영리할 따름이었다.

그녀에 대해 여기까지 생각한 후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취기 때문에 내가 그녀에 대해 너무 너그러워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서툴고 겁이 많은 인간이었다는 걸 나는 안다. 넘쳐흐르는 감정의 절실함보다 한 오라기의 자존심을 선택하는 인색한 성격이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이래로 내 머릿속의 그녀는 어디에 놓든, 무엇을 담든, 항상 아담하면서도 고독해 보이는 도자기의 윤곽선을 떠올리게 한다. 삼 년 전 내가 한 여자로부터 실연을 당했을 즈음의 얘기이며, 그녀를 한동안 못 보고 지내다 삼 년 만에 만났을 때의 얘기이다. 삼층짜리 건물에 얽힌 얘기기도 하니, 삼박자가 딱 들어맞는 얘기다.

그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예약해둔 술집까지 십오 분가량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괜찮지?” 나는 물론 괜찮다고 했다. 화장을 하지 않은 그녀는 얼굴빛이 어두웠고 볼이 약간 부어 동남아 여 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모자 달린 점퍼에 운동화 차림이었는데 그 차림에 맞게 걸음도 빨랐다. 횡단보도 앞에 잠시 멈춰 섰을 때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지난주에 큰고모님께서 돌아가셨어.”

내가 오, 그래? 하는데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나는 친척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면서 그녀가 왜 피식 웃는지 의아했다. 신호가 바뀌자 그녀는 횡단보도 쪽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혼잣말하듯 중얼거 렸다. 정확하진 않지만 희한하다든가 뭐라고 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희한한 것은 없었 다. 굳이 희한하다면 그녀 쪽이 약간 그랬다. 큰고모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왜 피식 웃느냐 말이다. 예 전부터 그녀는 내게 가끔 이런 의아함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는 편이긴 했다.

그녀가 안내한 술집은 몹시 좁고 기차처럼 길었다. 그런 후미지고 허름한 술집을 예약까지 해야 한 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단지 네 개의 테이블이 일렬종대로 놓여 있을 뿐이었고 오른쪽 벽을 따라 겨 우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통로가 있었다. 입구 맞은편 기차 머리 쪽이 주방이었다. 우리가 앉은 세 번째 자리의 왼쪽 벽에는 작은 유리창이 뚫려 있었는데, 말이 유리창이지 미닫이도 여닫이도 아닌, 벽에 박힌 직사각형의 유리에 불과했다. 바깥은 조그만 주차장이었다. 유리 너머로 캄캄한 주차장에 웅크린 몇 대의 차들과 희미한 주차관리소 불빛이 보였다.

“제육과 해물을 반반 주세요.” 그녀의 말에 어려 보이는 여종업원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반반? 무엇이, 반반을요?” 여종업원은 한국어가 서툰 것 같았다. “이것고 이것을 반반씩 달라고요.” 그녀가 벽에 붙은 메뉴판의 항목을 하나씩 가리켰다. 여종업원은 메뉴판 위쪽 얼룩진 천장 모서리 를 꼴똘히 쳐다보았다. 무슨 거창한 암산이라도 하는 듯 머릿속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마침내 주방에 서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뛰어나왔다. 그녀는 제육볶음과 해물볶음을 반반씩, 가격은 이만오천 원 에 하기로 주인 여자와 삼 초만에 결정을 보았다. “내 맘대로 시켰는데, 괜찮지?”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냉동 재료를 벌건 양념에 대충 볶아내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안주 같은 건 안중에도 없던 터라 달리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어 투덜거렸다.

“여긴 다 좋은데 종업원이 자주 갈려. 올 때마다 늘 반반씩 시키는데도 말이 안 통하는 종업원이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축적의 보람이 없어.”

“그래도 주문하는 네 노하우는 상당히 축적된 것처럼 보이던데?” “글쎄. 설왕설래하는 시간이 좀 단축된 듯도 하고.” “여기 자주 오나 보지?” “비싸니까 자주는 못 와. 가끔 오지.”

그녀는 조금 변한 듯했고 나는 그녀가 조금 낯설어졌다. 그 집의 모든 안주는 일괄 이만 원이었다. 술집 외양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이만 원이었다. 그녀는 이만 원짜리 안 주 두가지를 반반씩, 오천 원만 추가하는 선에서 시켰고 이제껏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 이십대 후반을 함께 보냈다. 자주 만날 때는 일주일에 두어 번, 드물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나는 사이였다. 딱히 약속을 정해서 만난 기억은 없었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오다가다 부딪 치고 얽히게 되었고 취향이나 스타일이 비슷해 각별한 친밀감을 느꼈다. 우리의 만남이 끊어진 건 그 녀가 업무를 바꾸면서부터였다. 마침 그때 나도 막 연애에 돌입한 시점이라 그녀에게 따로 연락을 하 게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경제관념이 생긴 것, 자기 입맛 위주로 음식을 시키는 것, 이런 것이 그녀가 변한 부분이 라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차림새로 보아 그녀가 예전보다 수수해졌다는 건 분명했다. 예전엔 목걸이나 반지는 몰라도 귀걸이 하나는 독특한 걸로 달고 다니길 즐겼는데 그날은 아무 금붙이도 달 거나 걸고 있지 않았다. 나는 경제관념이 가난에서 온다는 편견을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 기 입맛 위주로 음식을 시키는 것, 이 대목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별안간 미식가가 되었다는 뜻 일 수도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든 탓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 만, 기회가 왔을 때 입맛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지낸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이럴 경우, 이것은 그녀에게 생긴 놀라운 경제관념과 더불어 무엇을 의미하겠는 가. 그녀가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대단히 가난해졌다는 뜻 아니겠는가. 우리가 못 보 고 지낸 삼 년 동안에.

“한 이 년쯤 됐나?”

그녀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내가 삼 년이라고 정정해주려는데 그녀가 유리 너머 주차장 쪽을 응시하며, 처음 이 집에 온게, 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저 오 그래? 하고 말았다. 그녀가 잠시 뒤 덧붙 였다.

“실연당한 친구 덕에 이 집을 알게 됐지.”

실연이라는 말에 나는 기습을 당한 듯 움찔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가 나를 떠났다는 단순한 사실이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독초처럼 쓰디쓴 고통의 싹이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실연당한 친구?” “응.”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 친구는 남자에게 심한 배신을 당하고 그녀에게 조언과 위로를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내가 적잖은 관심을 보이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통로를 지나 주방 앞으로 간 그녀는 여종업원에게 냉장고와 수납장 쪽을 가리키며 손짓을 해 보였다. 술을 시키는 것 같았다. 술이 필요한 얘기이긴 했다. 특히 내게는 더 그랬다.

나는 종종 실연의 유대감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가 떠나든 그들이 떠나든 둘 중 한쪽은 어 느 별인가로 떠났으면 좋겠다 싶은, 참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인간형들이 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우 연히 그들 중 누군가가 얼마 전에 지독한 실연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나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기조차 싫었던 그 인간을 내 집에 데려와 술을 대접하고 같은 천 장 아래 재울 수도 있다. 심지어 술 냄새를 풍기는 그 인간의 입술에 부디 슬픈 꿈일랑 꾸지 말라고 굿나잇 키스까지 해줄 용의가 있다. 허기의 유대나 가난의 유대 같은 것이 있고, 시험강박의 유대, 채식주의의 유대, 실종 자녀를 둔 부모들의 유대 등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별난 인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실연의 유대만큼 대책 없이 축축하고 뒤끝 없이 아리따운 유대를 상상할 수 없다. 그래 서였을까. 그때 그 기차간 같은 술집에서 나는 그녀가 술을 시키는 걸 바라보면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녀의 친구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의 친구와 나 사이에 생겨날 실연의 유대에 대한 예 감만으로도 가슴이 설?다. 물론 그녀의 매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 가 물었다.

“차도 안 가지고 왔으니까 조금 마시는 것도 괜찮지?” 나는 역시 괜찮다고 대답했다. “맥주하고 소주 시켰는데 어때?” 오, 그래? 나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이런 기차간 같은 분위기에서 실연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소주 몇 잔 정도는 곁들이게도 될 테니까.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자. 괜찮지?”

맥주에 소주를 섞는다니 기겁을 할 일이었지만 나는 이미 엉겁결에 괜찮다고 말해버린 후였다. 그 녀는 뭔가를 미리 결정한 후 한발 늦게 내 의사를 타진해왔다. 이것도 그녀가 변한 부분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만난 후 줄곧 오, 그래? 아니면 괜찮아, 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그 친구한테는 뭔가 도움이 되는 얘길 해줬어?” “그 친구? 아아.”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내가 도움이 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

“왜?”

그녀의 친구는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인 와중에서도 하루 전에 미리 이 술집을 예약해놓았다고 했 다.

“그건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희망? 무슨 희망?” “사는 데 애착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거잖아. 나는 그 희망을 은근히 훼방 놓는 시늉만 하면 됐 고.” 희망을 훼방 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간단히 설명했다. “그래야 거기 희망이 있다는 걸 알지. 뭔가 잔뜩 어질러놓아야 거기 공간이 있다는 걸 알 듯이.”

설명을 듣고 나면 더 모를 듯한 느낌이 드는 것, 이 또한 그녀의 희한한 면 중 하나였다. 훼방을 놓 아야 거기 희망이 있다는 걸 안다니. 뭔가를 잔뜩 어질러놓아야 거기 공간이 있다는 걸 안다니. 무슨 설명이 이런가.

여종업원이 쟁반을 날라 왔다. 쟁반에 놓인 것들을 흘깃 훑어보던 내 시선이 술병에 고정되었다. 그제야 나는 비싸서 이 집에 자주 못온다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것은 안주에 대한 얘기가 아니 라 술에 대한 얘기였다. 국그릇과 반찬 접시들 옆에 맥주 두 병과, 목이 긴 도자기 병에 든 안동소주 한 병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맥주에 안동소주를 섞자는 거였다. 이 또한 희한했다.

이 집 반찬들은 확실히 납품받지 않은 것들이라고, 직접 아주머니가 장을 봐서 매일 만드는 것들이 라고, 그녀를 이곳에 처음 데려온 친구는 힘주어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묻지도 않고 그녀의 잔에 맥주를 따르고 안동소주를 섞었다.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친구는 술부터 들이 켰고 그녀는 국부터 떠먹었다. 들이닥쳐 냉수 한 잔 먹고 바로 본론에 돌입하는 빚쟁이처럼 친구는 술잔을 내려놓고 다그치듯 물었다.

“넌 그때 어땠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계속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 거야?”

내 어리둥절한 표정에 그녀가 술을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내가 그 친구보다 일년 먼저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 처음 듣는 얘기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