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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나의 어린시절, 열 한 번째-11

나의 어린시절, 열 한 번째-11

[...] 나의 어린시절, 열 한 번째

나는 원래 입이 까다로와 집을 떠나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더욱이 산골 마을로 촬영을 나가면 평양에서는 생전 보지 못하던 감자떡이 나오고 빗물을 그대로 받아 마시므로 입이 까다로운 나는 집에 돌아올 때 얼굴이 반쪽이 되여 왔다. 어머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속상해 했으며 아버지는 이때 부터 로골적으로 내가 배우로 나서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을 촬영하면서 나뿐 아니라 모두 고생이 많았다. 이 영화는 김정일이 예술 분야를 지도하는 중에 잘된 작품이라고 칭찬하면서 처음으로 천연색 광폭 영화로 만들라는 방침이 촬영 도중에 내려왔다. 방침이 내려오자 먼저 찍은 것은 모두 없애 버리고 광폭영화 필림으로 다시 촬영했기 때문에 이중으로 고생한 작품이였다.

촬영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니 같은 반 동무들은 나를 무슨 개선장군마냥 환영해 주었고 다른 학생들도 나를 다 알아 보았다. 아이들은 촬영하던 이야기를 들려 달라며 자꾸만 이것저것 물어댔다. 그러나 나는 오래동안 수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애들보다 성적이 떨어질까봐 안달이 났다. 나는 돌아온 날부터 그동안 못 배운 수업을 보충하기 위해 책과 씨름을 했다. 원래 남한테 지고는 못사는 악착같은 성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이 사회에서 상연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북조선에서 만든 최초의 천연색 광폭영화였기 때문에 평양에서 가장 큰 영화관인 ‘대동문 영화관'에서 첫 상연을 하였다.

영화가 상연되는 첫날, 어머니는 출연 배우에게 나오는 입장권을 가지고 현옥, 현수를 데리고 나와 함께 대동문 영화관으로 갔다. 우리는 첫 장면부터 관람하려 했으나 뻐스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영화관에 도착해 보니 이미 영화는 시작된 뒤였다. 영수가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떠나면서 영옥이와 헤어질 때 호주머니를 뒤져서 선물로 몽당연필을 주는 장면이 상연되고 있었다. 화면에는 내가 몽당연필을 받아들고 웃는 장면이 지나가려는 참이였다. 어머니는 내가 나오는 장면을 놓친 것을 서운해 하며 영화가 끝나자 영화관 지배인을 찾아가,

“내가 영옥이로 나오는 아이의 에미인데 늦어서 그 장면을 놓쳤으니까 다시 좀 보게 해 달라요.” 하고 간청하였다.

우리는 간신히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쑥쓰러웠는지 모른다. 우선 천연색 광폭 화면에 내 얼굴이 확대되여 화면 전체를 덮으면 얼굴의 땀구멍까지 다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고 장면장면마다 내 실수만이 눈에 들어와 나는 안절부절이였다. 특히 미국 군인이 어머니를 끌어갈 때 붙들고 늘어지는 영옥이를 총탁으로 쳐서 쓰러뜨리는 장면에서는 내가 쓰러지다가 치마가 들추어지면서 팬티가 순간적으로 잠깐 보이는 데에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못 보고 지나쳤는지 전혀 아무런 내색이 없었다. - 내가 출연한 영화이지만 영수와 영옥이가 남조선에서 어부로 온 외삼촌과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는 손수건을 적시면서 울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남북 분단과 무슨 인연이 많은 것 같아 서글퍼지진다.

영화가 일반인에게 공개되자 동네나 학교는 물론 시내에서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영옥이로 통했다.

“어머, 재가 영옥이 아냐? 영옥이 맞지?”

어디를 가도 현희라는 이름 대신 영옥이라고 불러 주었다. 아이들은 수군거리며 나를 에워싸고 구경하기도 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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