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시절, 세 번째-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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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세 번째
평양외국어대학은 다른 대학과 달리 학급이 아주 적은 인원수로 구성되여 있다. 영어, 프랑스어, 에스빠냐어, 일어, 중어 ,아랍어, 로어 등 7개 학과로 되여 있는데 영어, 프랑스어과의 경우는 20여명이 한 개 학급이지만 일어, 중어, 아랍어 등 학급은 10여명 또는 그 이하의 인원이였다. 내 전공인 일어과 입학생은 9명이였다.
이 대학 학생은 외국어를 전공하고 졸업하면 외교관 또는 외국문을 다루는 직장에 배치되므로 특수한 계층이 아니면 입학하기 힘들다. 그래서 북조선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간부의 자제는 다 모여있고, 또 사회에서도 쉽게 들어가기 힘든 특수대학으로 인식되여 있다.
평양외국어 대학도 다른 대학에서와 같이 김일성 혁명 력사, 로작, 김일성 철학, 사회주의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헌법 등 정치 사상학습이 40% 이상을 차지한다.
전공과목은 해당 외국어의 강독, 청취 , 독본, 회화, 문법, 어음론, 글짓기, 문학 등으로 나누어 강의를 한다. 즉, 일본어의 경우 ‘강독'은 학교에서 내준 교과서를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하며 단어 표현을 구체적으로 교원이 지도하고, ‘청취'는 록음 테이프를 틀어 놓고 학생들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복창시키거나 받아 쓰도록 하고, 또 동시 통역을 련습시키기도 한다. ‘회화'는 회화책에 나온 내용을 암송하게 하여 학생들끼리 대화를 나누도록 하고 ‘어음론', ‘독본', ‘글짓기', '문법‘ 등을 각각 방법에 따라 지도한다. 사회 과목을 강의할 때는 한 학급으로는 인원이 적으므로 몇 개 학급을 한 데 모아 강당에서 강의하고 전공 외국어는 학급 단위로 수업한다.
말했듯이 북조선에서의 대학 교육은 전공 과목보다도 사상 교육이 우선이다. 인간에게는 사상이 가장 중요하며 사상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래서 주체사상 교양을 기본으로 내세운다.
대학 기간 동안은 누구나 <항일 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60권, <인민들 속에서> 37권을 다 읽고 기록해야 하며, 김일성이 항일 무장투쟁을 시작했다는 1926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회의를 할 때마다 내놓는 방침을 기록한 <저작선집> 중 로작을 발취해야 한다.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김일성의 혁명 력사는 물론 항일 무장투쟁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일성의 위대성과 인민에 대해 베푼 은혜를 이야기 한 덕성 자료와 그 현명한 령도력을 칭송한 책이다. 이를 모두 다 일일이 발취하노라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일부 학생들은 아예 발취요지가 나온 교제를 보고 그대로 베껴 쓰기도 하고 남이 발취한 내용을 서로 옮겨 놓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공 과목에 대한 교육도 그 강도가 높았다. 더구나 한 학급 학생 수가 아주 적기 때문에 선생과 학생은 개인 교수마냥 마주 앉아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까지 신경 써서 발음도 직접 시정해 주고 학생들의 질문에도 일일이 답변해 주었다. 선생은 매 학생의 성적은 물론 성격, 가정생활, 건강 상태를 훤히 파악할 수 있었고 한 사람이라도 강의 내용을 리해하지 못하면 그가 리해 할 때까지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또 학과별로 한 달에 한번 이상 외국어 경연대회를 정기적으로 조직하기도 했다. ‘김일성 신년사를 일본어로 암송하기', ‘김일성이 중국 방문 중 연설한 내용을 일어로 청취하기', ‘알고 있는 단어를 제한된 시간 내에 많이 쓰기', ‘그림을 보고 5분 이상 일본어로 설명하기', ‘영어 대사를 외워 일본어로 말하기' 등 각종 경연대회를 열어 경쟁을 붙인다. 경연대회가 끝나면 모든 학생의 이름을 게시하고 그 옆에 등수, 점수, 나타난 결함 등을 구체적으로 써서 학교 복도 벽에 내건다.
1987년도 이전에는 외국어 교육이 번역 위주로 되여 있었으나 김일성이 외국어 학습을 회화 중심으로 교육하라는 교시를 내리고 부터는 모든 게 회화 중심으로 바뀌고 학생들끼리도 전공 외국어로만 말하도록 지도했다.
내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