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 장 그르니에, 폴 발레리 - Part 3
개방성이 있죠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익명성을 유지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있을 수가 있죠. (저는)언젠가 제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친구는 이런 책을 읽진 않았지만 ‘시골에서 혼자 있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혼자있는 것을 실감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냥 힘들기만 하데요. 그래서 어디에 있어야 되느냐 그랬더니 재밌는 얘긴데, 이층의 문을, 베란다 문을 열어 젖히면 그 밑으로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와글와글 몰려다니는 거리에서 덧문을 닫으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고요한 방. 이런 것이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태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렇죠. 내려가면 사람들로 바글거려서 원한다면 그런 에너지들 사람들 사이의 활기 같은 걸 경험할 수 있으면서 또 문을 닫고 들어오면 모든 세계와 격절된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 찹 좋은데 그런 곳이 흔치는 않죠. 그래서 장 그르니에가 그런얘기를 합니다. 이 말을은 좀 수수께끼 같은데요. 마지막, 제가 읽어드린 부분의 마지막인데, (이 산문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그때 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밀을 예찬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 네, 한번 음미해 볼만한 그런 구절입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이 없다' 행복은 비밀과 함께 가능하다..이런 것인데요. 뭐 사랑의 행복, 또 그런 것일 수 있고요. 다른 것도 아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은 또 한 부분을 읽으려고 하는데요. 이번에도 어떤 의미에서는 여행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행운의 섬'들 이라는 제목인데요. 그 앞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케르켈렌 군도.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 뭍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있는 감정을 일깨우는데 필요한 활력소일것이다. 이런 경우, 여행은 한 달 동안에, 혹은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우리들 속에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갖지 못한다. 여러 날 동안 바르셀로나에 머물면서 교회와 공원과 전람회를 구경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로부터 남는 것이란 라람블라 산 호세의 풍성한 꽃향기뿐이다. 기껏 그 정도의 것을 위하여 구태여 여행을 할 가치가 있을까? 물론 있다. 바레스이 글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톨레도를 비극적인 모습으로 상상할 것이고, 대성당과 그레코의 그림들을 구경하면서 감동을 느끼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오히려 발길 가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분수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편이 더 좋다. 톨레도나 시에나 같은 도시에 가면 나는 철책들을 한 창문들이나 분수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안뜰. 그리고 요새의 성벽처럼 두껍고 높은 벽들을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밤에 창문 하나 없는 그 거창한 벽들을 따라 거니노라면 마치 그 벽돌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것만 같았다. 저 방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나 항상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기 마련인 저 방벽, 항상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을 것 같은 저 신비…그런 모든 것에 붙일 수 있는 이름이란 바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종류의 사랑 말이다. 조르조 상드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사랑 따위는 물론 아니고.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회 신자들이 육체적 단련을, 불교의종교인들이 아편을, 화가가 알콜을 사용하듯이, 그럴 경우,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일단 사용하고 나서 목표에 도달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데 썻던 사닥다리를 발로 밀어 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성공하고 나면 바다 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그 멀미나던 여러 날과 기차 속에서의 불면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 자기 자신의 인식이라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의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기인식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이미 끝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특별한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인식중에서도 가장 참된 것이다. 즉, 우리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이 마지막 부분…'우리가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라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다'라고 장 그르니에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죠. 자기(를)에게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고 있죠.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여행을 할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이 부분이 재밌는 것은 이 부분이 낯설지 않다는 거예요. 들었을 때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 같아요. 왜 그럴까 라고 생각해 보면 장그르니에가 이 글을 쓴 이래로 많은 여행서, 특히 한국의 여행서라던가 어떤 산문의 저자들이, 필자들이 이 장 그르니에의 “섬”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서, 자신도 모르게( 저도 아마 그랬을 수도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이런 풍의 산문을 썼단 말이죠. 그래서 장 그르니에의 원문을 읽었을 때 마치 우리가 멜론을 먹으면 메로나 맛이 나는 것 처럼, 어? 어디서 많이 들을 것 같은 얘긴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참 재미난 현상인데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이 부분 말을 이해하는 것을 떠나서 한 번 곱씹어 볼만한 그런 대목입니다. 과연 (좀 비판 적으로 곱씹을 필요도 있는데요) 정말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도피하는 것은 불가능 한가..그리고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만나는 것, 그런 무거운 것이 여행의 목적인가…이런 것을 약간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필요도 이제는 좀 있는 것 같아요. 어 잘못 하면 여행을 너무 무겁게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재밌게 노는 것도 사실은 좋은데 가서 몸을 좀 뉘이고 해변에서 좀 쉬고 이런것도 중요한데, 내가 과연 내 자신을 만나고 있는가? 이런생각을 자꾸 하다보면 글쎄요..그 자기 인식이라는게 아예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런생각도 하거든요. 한번 스스로에게 여행하면서 그러나 자문해보는 것은 필요할 것 같아요. 이 여행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자아라는 그 무거운 것으로 부터 잠시나마 달아날 수 있는 그런 순간을 얻기 위해 얻기위해서 인가 아니면 나 자신을 낯선 곳에서 발견하기 위해선가, 이런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근데 이 글을 좀 읽다 보면은 뒤에 (이 부분 제가 좋아하는 부분인데) 다 읽어드릴 수는 없고요. 그러나 한 부분은 더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어떤 광경들, 가령 나폴리의 해안, 카프리나 시디부 사이드의 꽃 핀 테라스들은 죽음에의 끊임없는 권유와 같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어야 마땅할 것들이 마음속에 무한한 공허를 만들어 놓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명승지와 아름다운 해변에는 무덤들이 있다. 그 무덤들이 그곳에 잇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곳에 서는 너무 젊은 나이에 자신들의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 엄청난 빛을 보고 그만 질려버린 사람들의 이름을 읽을 수 있다. 세빌리아에서는 궁전, 성당, 과달키비르 따위를 무시해버리고 나면 삶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유쾌해진다. 그러나 그 고장의 의미 심장한 매혹을 참으로 느끼려면, 지랄다의 정상에 올라가려다가 그곳의 수위에게 제지당해 보아야 한다. ”저기는 두 사람씩 올라가야 됩니다.”하고 그는 당신에게 말한다. ”아니 왜요?” ,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지요.” 위대한 풍경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만한 규모가아니다. 그리스의 사원들이 매우 자그마한 것은 그것이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 빛과 무한한 정경으로 인하여 정신이혼미해진 인간들을 위한 대피소로서 지어졌기 때문이다. 햇빛이 가득 내리쪼이는 풍경을 보고 사람들은 어찌하여 상쾌한 풍경이라 말하는가? 태양은 인간의 내면을 터 비워버리며 생명이 있는 존재는 저 자신의 모습과 아무런 의지도 없이 대면하게 된다. 다른 모든 곳에서는 구름과 안개와 바람과 비가 하늘을 가리고, 일거리니 걱정거리니 하는 따위를 구실로 인간의 부패을 은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