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9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 Part 1
헨리 키터리지는 오랫동안 이웃 마을에서 약사로 일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날 약국으로 이어지는 큰길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구간의 가시덤불에서 야생 라즈베리가 송알송알 알이 맺힐 때나,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약국으로 차를 몰았다. 은퇴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 예전에 그런 아침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떠올렸다. 마치 세상이 혼자만의 비밀인 듯이. 발밑에서 타이어가 부드럽게 구르고 햇살이 이른 아침 안개를 가르고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오른쪽으로는 만이, 그다음엔 키 크고 늘씬한 소나무들이 잠시 보였다. 코끝을 간질이던 솔숲 향기와 소금기 짙은 공기, 그리고 겨울이면 공기에서 묻어나는 냄새를 그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래서 그는 언제나 창문을 조금 열고 운전을 하곤 했다.
약국은 작은 2층 건물로, 철물점과 작은 슈퍼마켓이 입주해 있는 건물과 붙어 있었다. 아침이면 헨리는 건물 뒤쪽의 커다란 철제 쓰레기통 옆에 차를 대고, 약국 뒷문으로 들어가 불을 켠 다음 온조 조절 장치의 온도를 올리거나 여름인 경우에는 선풍기를 틀었다. 금고를 열고 금전등록기에 돈을 채워 넣은 다음, 약국 문을 열고 손을 씻은 후 흰 가운을 걸쳤다. 기분 좋은 아핌 의식이었다 붉은색 고무 온수통이나 관장 펌프는 물론 치약과 비타민, 화장품, 머리핀, 휴대용 반짇고리 따위와 각종 기념일 카드가 진열된 선반들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약국은 그 자체로 꾸준하고 믿음직한 사람같았다. 집에서 혹여 불쾌한 일이 있었다 해도, 자다 말고 일어나 늦은 밤에 서성대던 아내에 대한 불편한 마음마저도 약국이라는 안전문 안으로 발걸음을 들여 놓는 순간 썰물처럼 밀려나갔다. 약국 안쪽에서, 서랍과 줄줄이 늘어선 알약들 틈에서 헨리는 전화가 오면 쾌활하게 받았고, 메리먼 부인이 혈압약을 사러 오거나 나이 든 클리프 모트가 강심제 때문에 찾아와도 쾌활했으며, 아기가 태어나던 날 밤 남편이 도망가버린 레이첼 존스에게 발륨을 건네줄 때도 쾌활했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헨리의 천성이었고, 그는 일주일에도 여러번 "저런, 정말 안 됐군요' 라든가 "저런, 엄청난 일이네요"하고 말하곤 했다. 어린 시절 평소에는 지극히 엄격하던 어머니의 신경발작을 두번이나 직접 보아서 인지, 그는 내심 조용히 긴장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아주 가끔 손님이 가격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에이스'일회용 반창고나 아이팩의 품질에 대해 불평이라도 하면 헨리는 할 수 있는 한 성의를 다했다. 오랫동안 그를 도와 일한 그레인저 부인은 남편이 바닷가재를 잡는 어부였는데, 그녀는 찬 바닷바람을 품은 듯, 까다로운 곤님의 비위를 맞추는데 썩 적극적이지 ㅏㄶ았다. 헨리는 처방약을 변에 잠으면서도 귀를 반쯤 열어 놓고 그레인저 부인이 금전 등록기 앞에서 손님들의 불평을 무시하지는 않는지 살폈다. 크리스토퍼가 숙제나 다른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을 때 아내 올리브가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는 걸 지켜볼 때와 같은 기분이 든 적도 몇 번 있었다. 주의력이 허공을 래뵈하는 느낌,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그레인저 부인의 목소리에 쌀쌀맞은 느낌이 뭍어나면 헨리는 약국 안쪽의 자기 자리에서 중앙으로 나와 직접 손님을 응대했다. 그런 점만 빼면 그레인저 부인은 일을 잘 했다. 헨리는 그녀가 수다스럽지 않고 재고를 잘 맞춰놓으며 아프다고 결근하는 적이 거의 없어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레인저 부인이 자다가 갑자기 숨을 거두자 그는 경악했다. 늘 알약과 물약과 주사기를 끼고 사는 자신이 고쳐줄 수도 있었던 증상을 몇 년이나 같이 일하면서도 놓친 것만 같아 헨리는 일말의 책임을 느꼈다.
"생쥐 같아." 헨리가 새 여직원을 고용했을 때 아내가 말했다.
"생긴 게 꼭 생쥐야." 데니즈 시보도의 뺨은 통통했고, 갈색 테 안경 너머 두 눈은 작았다.
"하지만 착한 생쥐잖아." 헨리가 대꾸했다.
"귀여운 생쥐."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서지도 못하는 게 뭐가 귀여워." 올리브가 투덜거렸다. 데니즈의 좁은 어깨가 뭔가 사과라도 하는 듯 앞으로 구부정한 건 사실이었다. 그녀는 스물두 살로, 버몬트 주입대학을 갓 졸업한 상태였다. 데니즈의 남편도 이름이 헨리였는데, 헨리 키터리지는 헨리 시보도를 처음 만났을 때 몸에 은근히 밴 그의 빼어난 됨됨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젊은이는 활력이 넘치고, 강렬한 눈빛이 점잖고 평범한 얼굴을 빛나 보이게 하는 단단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배관공으로, 숙부 가게에서 일했다. 그와 데니즈는 결혼한지 일 년 된 참이었다.
"별로 안 내켜." 헨리 키터리지가 젊은 시보도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하자고 제안하자 올리브가 말했다. 헨리도 저는 고집하지 않았다. 아직 사춘기의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아들이 별안간 눈에 띄게 퉁명스러워진 참이어서 아들의 기분이 독기운처럼 공기 중에 퍼지고, 올리브도 크리스토퍼 만큼이나 변하고 또 변덕스러워 보이던 때였다. 모자는 순식간에 격렬히 싸우다가도 그 분노는 이내 무언의 친밀감처럼 둘을 감싸버려 영문을 알 길 없는 헨리만 멍하니 따돌림을 받는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늦은 여름날 건물 뒤쪽 주차장에서 데니즈와 헨지 시보도와 같이 얘기하던 중 해가 전나무 뒤로 넘어가버리고, 오래전 대학 시절을 추억하던 자신을 수줍은 듯 하면서도 열심히 응시하는 두 사람을 보자 헨리 키터리지는 이 젊은 부부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 이들을 초대해 버렸다.
"그러니까 내 말은, 올리브라고 나하고 자네들을 곧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거야." 그는 키 큰 소나무를 지나 얼핏 보이는 만을 치나쳐 집으로 운전해 가면서, 마을 외곽에 있는 트레일러 홈을 향해 반대편으로 차를 몰고가는 시보도 부부에 대해 생각했다. 데니즈의 기질로 보아 아늑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을 트레일러에서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는 그들이 그려졌다. 데니즈가 "그분은 좋은 상사야"라고 말하면 헨리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도 그분이 참 좋아." 헨리 키터리지는 자기 집 진입로에 들어섰다. 사실 진입로라기보다는 언적 꼭대기의 손바닥만 한 잔디밭이었는데, 정원에 있는 올리브가 보였다.
"여보 나왔어." 그가 올리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려다 보니, 갑자기 찾아와서 돌아가지 않는 손님처럼 어두운 기색이 그녀를 휘감고 있었다. 헨리는 시보도 부부가 저녁을 먹으러 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올리브가 인중의 땀을 닦더니 잡초를 뽑으려 등을 돌렸다.
"그럼 결정 났네요, 나리." 그녀가 비꼬았다. "분부대로 합지요." 금요일 밤, 시보도 부부가 그를 따라 집에 왔고, 젊은 헨리는 올리브와 악수 했다.
"집이 근사하네요." 그가 말했다. "바다도 내다 보이고요. 키터리지 선생님께서 두 분이 직접 지은 집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럼, 그랬지." 크리스토퍼는 식탁에서 사춘기 특유의 버릇없는 태도로 비스듬히 눕듯이 앉아서, 학교에서 운동하는 거 있느냐는 헨리 시보도의 물음에 대꾸도 안 했다. 헨리 키터리지는 속에서 천불이 일 거라곤 예상치 못 했다. 아들 녀석에게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에는 키터리지 집안에서 볼 거라곤 예상치 못한 불쾌한 광경이 드러나 있는 것만 같았다.
"약국에서 일하하다 보면," 올리브가 오븐에 조리한 콩요리가 담긴 접시를 데니즈 앞에 놓으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 전부의 비밀을 알게 되지." 올리브는 데니즈의 맞은편에 자리잡고 앉은 다음 케첩병을 앞으로 밀었다.
"입조심할 줄 알아야 해. 뭐 벌써 아는 것 같긴 하지만." "데니즈는 벌써 다 알아." 헨리 키터리지가 말했다.
"아 그럼요. 데니즈보다 더 믿을 만한 사람은 못 찾으실 겁니다.." 데니즈의 남편이 거들었다. "난 그 말을 믿어." 헨리가 젊은 사내에게 롤빵이 담긴 바구니를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날 헨리하고 부르게.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이름도 없거든." 헨리가 조용히 덧 붙였다. 데니즈가 조용히 웃었다. 헨리는 데니즈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는 몸을 의자에 더 깊숙히 파묻었다. 헨리 시보도의 부모님을 내륙의 농장에서 살았고, 그래서 두 헨리는 농작물에 대해, 덩굴제비콩에 대해, 그리고 올 여름에는 비가 적게와서 옥수수가 별로 달지 않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아스파라거스 모종을 잘 알 수 있는 지에 대해 얘기했다.
"이런 세상에!" 올리브가 소리를 질렀다. 헨리 키터리지가 젊은 사내에게 케첩을 건네주려다 병을 넘어뜨려 케첩이 진하디 진한 피처럼 떡갈나무 식탁 위로 쏟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