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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36 -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 Part 3

Episode 36 -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 Part 3

내가 아는 뛰어난 미술사가 한 명은 대단히 교양이 풍부한 사람인데, 그는 많은 책 중에서도 [피크위크 문서]를 특히 아끼는 책으로 꼽는다. 그는 항상 디킨스의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이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연관시키곤 했다. 그가 바라보는 우주며, 세계를 보는 철학은 조금씩 전체적인 동일화 과정을 거치더니 [피크위크 문서] 그 자체가 되어 갔다. 이로부터 우리는 고전에 대한 매우 고차원적이면서도 까다로운 개념에 이르게 된다.

10. 고전이란 고대 전통 사회의 부적처럼 우주 전체를 드러내는 모든 책에 붙이는 이름이다.

이러한 정의는 말라르메가 꿈꾸었던 것과 같은 ‘전체로서의 책'이라는 개념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고전은 또한 개인과 동일 관계뿐만 아니라 반대 혹은 반정립의 관계를 정립하기도 한다. 나는 장 자크 루소가 행하고 생각했던 것을 모두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을 반박하고 비판하며 맞붙어 논쟁하고픈 열망을 시시때때로 느낀다. 물론 이는 그와 나의 기질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춘다면 나는 단지 그의 작품을 읽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역시 ‘나의'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1.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는 그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내가 여기서 ‘고전'이라는 단어를 예스러운 것이나 어떠한 양식, 혹은 그것이 지닌 권위에 따라 구별하지 않고 있음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믿는다. 여기서 내가 고전을 구분하는 기준은 문화적 연속체 속에서 고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작품, 옛날 책이든 당대의 책이든 상관없이, 바로 그 작품이 우리에게 미치는 반향의 효과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2. 고전이란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련의 위계 속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른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이쯤 되면 근본적인 문제를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즉 고전을 읽은 체험을, 고전 아닌 책을 읽은 경험과 어떻게 관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동시대를 잘 이해하게 해 주는 다른 책들을 제쳐 두고 왜 굳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여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오늘날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는 고전을 읽을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와 시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물론 일상에서 자신만의 ‘독서 시간'을 루크레티우스, 루키아누스, 몽테뉴, 에라스무스, 케베도, 말로, [방법서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콜리지, 러스킨, 프루스트, 발레리에게 바치는, 그리고 때론 심심풀이로 무라사키 시키부의 작품과 아이슬란드 사가에 투자하는 행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간 서평을 쓰거나 논문 심사를 받기 위해, 급박한 마감에 맞춰 편집부에 원고를 넘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말이다. 이 축복받은 사람은 자신의 식단을 흩뜨리지 않으려고 신문을 읽는 것도 절제하고, 신간 소설이나 근래에 실시된 설문 조사 따위에도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이 같은 엄격주의가 얼마나 옳은 것이며 유용한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한 글들이 모두 진부하거나 골치 아픈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에겐 뒤를 돌아보거나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하나의 지점이 존재한다.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읽을지를 설정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도 독자도 무시간적인 구름 속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면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동시대에 쏟아지는 글들을 적절한 분량만큼 섭취해 가면서 읽어야 한다. 이것이 반드시 평화로운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신경이 예민하고 조급하며, 항상 불만족스러워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도 그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상적인 상황은 한 고전 작품에서 잘 구성된 음악처럼 울리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현재에 관한 모든 것들은 창 밖의 자동차 소음, 날씨의 변화와 같은 저 바깥의 잡음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행동하기 일쑤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전의 실체를 먼 메아리처럼 듣는다. 지금 발생하는 일들과 관련한 소식들은 쩌렁쩌렁 울리는 텔레비전 소리처럼 듣고, 고전은 그 바깥에서 들려오는 머나먼 메아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덧붙여야 한다.

13. 고전이란 현실을 다루는 모든 글을 배경 소음 처럼 물러나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이 이 소음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4. 고전이란 배경 소음처럼 존속해서 남는 작품이며, 이는 고전과 가장 거리가 먼 현재에 대한 글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고전을 읽는 일은 분명 장기적인 시간 단위나 인간적인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삶의 일상적 리듬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또한 우리 시대에 고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데 게을러 빠진 현 문화 특유의 절충주의와도 맞지 않는다.

한편 자코모 레오파르디는 이러한 불가능한 조건들을 충분히 실현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스 로마 고전에 심취해 있던 그는 아버지 모날도의 저택에 살면서, 아버지의 거대한 서가를 이용했다. 레오파르디는 그 서가가 당시까지 나온 이탈리아 책들이며 소설만 제외한 프랑스 책들을 모두 더했으며, 예외적으로 자신의 여동생이 여가 삼아 읽도록 신간 소설을 따로 채워 놓았다.

레오파르디는 과학과 역사에 대한 자신의 섬세한 열정을 ‘최근 유행하는 책'이 아닌 옛날 책들로 충족시켰다. 뷔퐁의 글에서 새의 행동 양식을 읽고, 퐁트넬의 글에서 시체를 연구한 프레데릭 로이스의 기록을 읽었으며, 로버트슨의 글에서 콜럼버스의 여행에 대한 기록을 읽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청년 레오파르디가 흡수했던 것과 같은 고전 교육은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가 소유했던 것과 같은 서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된 글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근대 문학 및 문화의 산물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고전으로 채운 서가를 만드는 것뿐이다. 이 서가의 반은 읽은 책들과 의미 있는 책들로, 그 나머지 반은 읽을 것과 의미 있을 책으로 채워질 것이다. 또한 우연한 발견과 경이를 선사할 책들을 위해 빈 책장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레오파르디는 내가 여기서 인용한 작가 중에 유일한 이탈리아 작가인 것 같다. 이 역시 레오파르디가 누렸던 것과 같은 고전으로 가득한 서가가 사라져 버린 오늘날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쓴 글을 다시 써야 할 듯하다. 고전이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이탈리아의 고전이 이탈리아인들이 자신의 문화 속 고전 작품들을 다른 외국의 고전들과 비교하는 데 필수적이며, 외국의 고전 또한 우리가 이탈리아 문학을 가늠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 또한 명확하게 지적하고 싶다.

그러고 나서 이 글을 진정으로 다시 써야만 할 것이다. 고전은 무언가에 ‘유용하기' 때문에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고전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혹여 누군가가 고전을 구태여 읽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에밀 시오랑의 다음 글을 인용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준비되고 있는 동안 피리로 음악 한 소절을 연습하고 있었다. ‘대체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오?' 누군가 이렇게 묻자,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음악 한 소절은 배우지 않겠는가. '” 네, 잘 들어셨습니까? 이 부분이 서문에 해당하는 이야기인데요.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죠? 먼저 정의 하나를 던지고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정의를 또 뽑아내고 그다음 정의를 뽑아내고 그다음 정의를 뽑아내면서 어떤 리스트를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잘 짜여진 한편의 에세이를 이탈로 칼비노가 쓰고있는 그런 형식입니다. 에세이를 쓰는 흥미로운 형식, 문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번 정의에 보면요 이거 재밌죠. 고전이란 사람들이 뭘 다시 읽고 있어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고 있다고 얘기하는 그런 어떤 뭐랄가요 허영같은 것이죠. 그런 부끄러움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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