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6 -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진행하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예 이제 2011 년 한해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뭘 하고 하고 또 뭘 하지 못 했는지 이런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를하고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새해가 되면 뭐 여러가지 결심들을 하지요. 뭐 운동을 하겠다던가 담배를 끊겠다던가.. 이런저런 자기만의 결심들이 있으실 텐데요. 뭐 새해에는 백권의 책을 읽겠다 이런 결심을 하는 분들도 계시겠고 드믈게는 책을 전혀 읽지 않겠다..이런 분도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요즘에 아주 어린아이들은 책을 보면 고장난 아이패드라고 생각을 한다고 그러죠? 손을 대도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뭐 아무 반응을 하지 않으니까 글자만 써있고요. 고장났다. 고장난 아이패드나 고장난 전자기기정도로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이 종이 책이라는 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죠. 오래된 것이고 글자가 쓰여있을 뿐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로 거기에 그냥 있습니다. 우리가 눈과 우리의 손, 뭐 이런 우리의 몸과 정신을 이용해서 읽어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아주 수동적인 그런 미디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동적인 미디어인 책이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우리의 정신과 상당히 역동적으로 작용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경험들 있으실 거예요. 소설을 읽어 나갈 때 중간 쯤 되면은 다른 세계에 살고있다는 생각이 들고, 등장인물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죠. 우리가, 예를 들면, 헬스 클럽에서 운동을 할 때 옆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 아주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매일 그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을 안다는 느낌이 들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백년 전 이 백년 전 또는 이천 년 전 책에 쓰여진 어떤 인물도 우리가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 인물을 깊이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죠. 또 작가가 써놓은 대로 읽기 보다는 우리의 정신이 역동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나름의 텍스트를 읽기 시작합니다. 헛점을 찾기도 하고요. 어떤 대목을 써나갈 때 작가의 그 심리상태를 추정하기도 합니다. 빈틈이 있으면 메꾸기도 하고요. 이런 어떤 신비로운 일들이 고장난 아이패드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죠. 네, 종이 책이라는 이 단순하고도 아주 오래된 미디어가 우리의 정신과 작용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책을 보는 마음이 조금 달라지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읽을까하는 책은요. 작가죠, 이탈로 칼비노입니다. 이분은 (오늘 제가 들고나온 책은 소설이 아닙니다만) 소설가로 유명한 분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번역이 돼있습니다. 대단히 좀 신비로운 그런 이야기들을 자기만의 독특한 이 문체로 그동안 써왔습니다. '환상과 알레고리' 이것이 이탈로 칼비노를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반쪼가리 자작], [나무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뭐 제목만 들어도 환상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런 작품들을 2차 대전 직후 1950 년대에 집중적으로 썼던 작가입니다. 작품은 별다른 수식이 없이 그 환상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들을 사용합니다. 여러면에서 그 호르헤 루이스 보르에스, 아르헨티나의 보르에스와 많이 비교되는 그런 작가인데요. 훌륭한 에세이도 많이 남긴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 책을 제외한 이탈로 칼비노의 어떤 에세이가 남아있는지, 출판이 되어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 책은 이탈로 칼비노가 여러 매체게 기고했던 글 중에서 주로 고전을 다룬 것들을 모아서 편집해서 낸 책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주제로 한권의 책을 써야지 하고 쓴것이 아니고요. 쓰다보니까 이렇게 됐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에 대해서 편소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독서 편력도 그쪽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것이야 말로 이탈로 칼비노가 환상성이 강한 작품들을 써내는데 중요한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볼 수 있게 합니다.
19 세기는 전세계 문학계에서 사실주의적 전통이 강했던 그런 시기입니다. 그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고 또 그런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인물들, 노동자라던가, 시민, 부르조아 이런 인물들이 소설에 등장하게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대단한 혁신이었지만 이십세기 중반에 이르게 되면 오랜 문학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의 작가인 이탈로 칼비노 같은 사람에게는 좀 답답하게 느껴지는 바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18세기나 19세기 이전으로 가면 문학은 실은 환상에 더 가까운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보다는 전혀 다른, 지금 여기가 아닌 어떤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일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이 세계문학 전집에 앞에 보면 늘 먼저 꽂혀있는 그런 것이 예를 들면 뭐 [오디세이아]라든가요. [일리아드], 또 [그리스 로마신화] 같은 것은 문학이 과거에 어땠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트로이 전쟁은 존재했던 실존했던 그런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18세기 19세기까지 올 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그냥 환상속의 사건정도로 치부가 됐었죠. 그런데 고고학발굴들이 이루어 지면서 '아 정말 트로이 전쟁이라는 게 있었구나'라고 사람들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만, 어쨌든 그 한 이천 년 가까이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이 두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라던가 [오디세이아]는 실제하지 않았다고 믿으면서도 그것에 사람들이 충분히 매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환상성을 추구하는 그런 부분이 문학의 주류였다 이런것들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독서경험들을 반출해 봐도 어렸을 때는 먼저 환상적인 것들을 읽으면서 이 독서경력을 시작하죠. 어렸을 때는 동화를 대부분 읽죠. 어릴 때 무슨 구일일 테러에 관한 르포 기사를 읽는다던가 이런 것은 상상하기가 힘들죠. 보통 [백설공주]라던가 그 다음에 뭐 안데르센 동화 이런 것들을 읽다가 [반지의 제왕] 같은 것도 읽겠죠. [해리포터]도 읽으면서 환상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우리는 현실을 보는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랬다가 환상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자 오늘 읽을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는요 민음사에서 나왔고요. 이소연 씨가 옮겼네요. 먼저 서문을 읽겠는데요. 이 서문에는 이탈로 칼비노가 그 고전을 읽어야할 이유들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일종의 태제들이 있습니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고전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어떤 독서의 경험에 작용하는가에 대해서 이탈로 칼비노가 정리를 해놓은 것입니다. 자칫하면 진부한 이야기 또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기 쉬운데요. 나름의 그 유머랄까요 이런 것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한번 그 부분을 읽고요 이야기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