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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24 - 김영하 “검은 꽃" - Part 3

Episode 24 - 김영하 “검은 꽃" - Part 3

소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 소리가 멀어지자 남아 있는 사내들이 모두 한 곳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힘이 있었다. 행진이 계속되는 동안 행렬 속으로 농기구들, 이를테면 지게작대기나 쇠스랑 같은 것들이 전해졌다. 이윽고 남자들은 어딘가에서 멈추었다. 그 모급은 마치 농민 반란의 시작을 묘사한 한폭의 역사화처럼 보였다.

마을의 낮은 초가지붕들과는 정혀 어울리지 않는 흰벽과 종탑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종탑의 나무 십자가는 제 주위로 몰려든 날 선 쇠붙이들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 사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성당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검고 어두운 입구로 들어거려다 잠시 멈칫거린 사내는 오른손에 들도 있던 쇠스랑을 성당의 흰 젹에 기대어놓고는 빈손으로 주춤주춤 성당 안으로 사라졌다. 한 참 후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다 사내들은 앞다투어 성당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놈이 달아났다!" 누군가 외쳤다.

"아무도 없다!" 장정 셋이 빗자루를 든 절음발이를 성당 뒤 움막에서 잡아왔다. 이곳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불목하니였다. 그가 손을 들어 바다를 가리켰다. 패랭이를 쓴 자가 화풀이 삼아 지게 작대기로 그의 등을 후려쳤다. 수염이 길고갓을 쓴 사내가 헛기침으로 제지했다. 불목하니는 불에 던저진 송충이 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에겐 죄가 없다." 갓 쓴 사내가 힘없이 말했다.

"확 불을 질러버리자구!" 덩치 큰 사내가 성당을 가리켰다. 갓 쓴 남자는 자기 말에 위엄을 더 하려는 듯 한참을 망설이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만 됐다. 오랑캐의 도덕이 본래 그러하다. 조상의 제사도 지내지 아니하고 부모가 죽어도 울지 않는데 부인의 정조야 말해 무엇하겠느냐. 오랑캐의 교당엔 못을 쳐 뭇 사람들의 출입을 막으라" 성난 사내들이 달려들어 상당의 문에 막대를 가로지르고 목을 쳤다. 막대기가 모자라자 지불의 십자가를 끌어내려 주 조각을 낸 후 창문을 가로막는 데 썼다.

사내들은 밥을 먹고 동네 뒷산에 올라 얕은 구덩이를 파고 가마니에 싸인 여인의 시체를 던져넣었다. 흙으로 구덩이를 덮고 다들 말없이 산을 내려왔다. 마을과 뒷산 사이의 호박밭에선 바다가 보였다. 아지랑이 아슴거리는 희멀금한 바다를 향해 남자들은 카악, 진득한 침을 길게 뱉었다.

박광수 바오로 신부는 시몬 블랑쉬 주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자 하얀 로만칼라가 보였다. 주교는 소통스런 표정으로 젊은 신부의 눈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오로의 소명입니다. 가서 돌을 맏고 멍석에 말리는 한이 있어도 밝힐 것을 밝히고 교회의 입장을 알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우리 주님께서 끝내 모든 것을 가려주실 것입니다." 주교는 1880 중국 톈진을 떠나 백령도에 상륙, 선교 활동을 벌이다 황해도 백천에서 체포되었으나 민씨 정권의 개국책으로 석방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제 8 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되었다. 선배들이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된 것에 비하면 그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 소년 박광수를 말레이시아 페낭의 신학교로 보내 사제로 만든 것도 바로 시몬 블라쉬 주교였다. 그는 조선에서의 선교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오로 신부가 당면한 토착민들과의 갈등은 당연히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 그것도 모르면서 사제가 되었단 말인가?

젊은이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주교는 다시 한번 다짐을 두었다.

"어렵다는 것 압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말하십시오. 그곳은 우리 교회가 피고써 지켜낸 성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과 로마 총독 빌라도를 용서하셨습니다. 바오로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는 성호를 긋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늙은 주교가 그를 안아주었다. 바오로 신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교관을 나섰다. 태양이 눈부셨다. 그는 눈을 찡그렸다. 환영처럼 나무에 매달리 여자의 주검이 보였다. 바오로 신부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나는 죄가 없다. 우리 주님은 끝내 아시리라. 미친 여자의 자살의 죄까지 떠맡는 것이, 그래서 광포한 백성들이게 제 육신을 바치는 것까지 사제의 소임이란 말인가? 배교의 강압에 맞서 장렬히 순교한다면 모를까. 이것은 아니다." 그는 가렸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곳으로는 못 갑니다. 당신이 무어라 하셔도 주여, 저는 그 맹목의 땅으로는 가지 않겠나이다.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일 뿐입니다. 그런 데 쓰라고 주께서 저를 이리로 보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어쩔 셈이냐?' 그의 내면에서 물음이 들려왔다.

'주교의 명을 어길 셈이냐? 너는 장상께 순종을 서약한 사제가 아니냐.' 바오로 신부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찌 이토록 나약한 것일까요. 애초에 사제가 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요?" 그는 허둥대며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누군가의 집 문턱에 조그려앉았다. 낮은 곳에서 보는 세상은 달랐다. 사람들의 발과 다리만 보였다. 그렇게 인격이 사라진 육체만을 바라보다 그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처음 보는 나무와 꽃, 새들로 가득한 곳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뭇잎이 너무도 무성하녀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곳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자 사방 수십 리가 동산 하나 없이 훤하게 트여있었다. 사람이라곤 없는 그 이상한 언던은 신과 인산이 곧바로 소통하는 곳 같았다. 기이한 문자와 조각으로 가득한 그곳으로 백마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를 삼켜버릴 듯 입을 쩍 벌렸다.

조선은 오백 년을 버틴 왕국이었다. 건국 초기엔 주변의 어느 민족도 북방에서 단련된 강력한 군사력과 성리학적 정치질서 아래 새롭게 등장한 이 나라를 함부로 여지기 못 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가 바다를 건너오자 왕국은 휘청거렸다. 사무라이들을 격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족의 군대가 들이작쳤고 왕은 머리를 땅에 찧으면 용서를 빌었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포석을 적셨다.

그 세월 동안 왕가가 생간한 것은 실록만이 아니었다. 왕족들이 태어나 자라나고 자손을 남겼다. 안동 김씨와 민씨의 세도에 눌려 과거의 영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여천히 그르은 왕족이었다. 들찬에서 모내기를 할 수 도, 시전에 나가 장가를 할 수도 없는 신분이었다. 광무 연간 이래 그들은 왕족에서 황족으로 격상되었으나 일부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황제의 후궁들도 옷을 기워입는 형편이었다. 주는 것은 없었으나 걸리는 것은 많은 혈통이었다. 고귀한 피는 영광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가고 이썽ㅆ다. 장차 대한제국을 집어삼킬 일본에에 황족들은 눈엣가시였다. 일본 공사는 사람을 풀어 황제의 근친들, 그중에서도 훗날 보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러시아와 중국이 세력을 잃고 패퇴하고 난 지금 일본이 고귀한 혈통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황제이 비마저 난자당하는 판이었다.

이종도는 가족들을 불러모아 짤게 자신의 결정을 전했다.

"일본의 승리가 임박했다. 황체폐하옵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 그가 존엄한 자의 호칭을 입에 올리자 가족들 모두가 엎드려 절했다.

"우리는 떠난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아직 성례를 치르지 않은 그의 아들과 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내 파평 윤씨만이 바짝 다가앉았다.

"어디로 가려 하시오?" 아내와 가족의 머릿속에 떠로른 것은 고작해야 호남의 몇몇 지명들이었다. 오백 년간 조선의 선비들이 그래왔듯이 정치적 위기가 오면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며 때를 기다리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면 중앙의 정치적 상향이 달라지고 한때의 역적이 충신이 되어 당당히 다시 돌아오는 것이 조선의 정치사 아니었던가. 그러나 황제의 육촌인 이종도의 입에서는 처음 듣는 세 음절의 지명이 튀어나왔다.

"묵서가라니? 그곳이 어디요?" 아내가 묻자 그는 미국의 아래에 있는 아주 먼 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비통한 어조로 덧붙였다.

"제국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가 생을 마칠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우리는 어서 서양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 거기서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날이 밝기 전에 종묘로 나아가 자식에 절하고 위패를 챙겨 제물포로 떠난다. 아비의 결정을 따라주길 바란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황제폐하 만세!" 가족들 모두가 외쳤다.

"만세, 만세, 만만세!" 하지만 그들의 만세는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 어린 아들은 눈물을 흘렸다. 소학과 논어를 읽던 열다섯의 어린 황족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혼기가 다 찬 그의 누이는 남동생과 달리 별 표정이 없었다. 그녀, 이연수는 이미 시대의 조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다른 가족들보다는 잘 알고 있었다. 영어와 지리, 수학과 법을 배워 남자들과 어때를 나란히 하는 시대가 오고 있었다. 물론 여염집 여자들 얘기는 아니었다. 선교사들은 사회적 연결고리가 끊어진 여자들부터 학교로 끌어들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백정과 기생의 딸, 사고무친의 고아들이 한 반이 되었다. 학교는 그들에게 옷과 책, 잠자리를 주었다. 천한 것들, 이라고 그녀의 어머니는 짧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학생들에게 욕했지만 장옷을 두른 연수는 그들이 부러웠다. 묵서가라는 나라는 몰랐지만 미국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미국의 이웃이라면 그곳도 어느 정도는 발전된 문명 아니겠는가. 여자도 남자처럼 배우고 일하고 제 의견을 편치는 곳일 테고, 무엇보다 여기서와 같이 황족이라는, 허울만 그럴듯한 굴레에 사람을 묶어 두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은 개명한 곳이 아닌가.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그녀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집을 버리고 조상의 위패를 짊어지고 제물포로 떠났다. 이틀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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