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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의 책읽는 밤 (Another Audio Book Collection), [KOR/ENG SUB] 송가인이어라 / 곡선의 유려함으로 노래하는 가수_송가인 / 송가인 책_송가인 자서전 / 책읽어주는 남자 / 오디오북

[KOR/ENG SUB] 송가인이어라 / 곡선의 유려함으로 노래하는 가수_송가인 / 송가인 책_송가인 자서전 / 책읽어주는 남자 / 오디오북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한

그녀의 삶의 노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송가인의 노래는 이제 시작이다.

오늘 레오의 책읽는 밤

여러분에게 읽어드릴 책은 《송가인이어라》입니다.

저자 송가인, 스토리베리 구성 스튜디오 오드리에서 펴냈습니다.

저자 송가인은 “전라도에서 탑 찍어불고 서울에 탑 찍으러 온 송가인이어라“라고 인사한 2019년 3월 7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트로트사에 물줄기를 바꿨다는 평가를 넘어 한국 가요계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메인 스트림으로 올라선 송가인이

대중 앞에 등장한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트로트계를 넘어 방송계의 최고 블루칩으로 올라선 그녀지만

노력하는 송가인이 되겠노라는 다짐이

《송가인이어라》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첫 스승님과의 만남

“진도에서는 소리 자랑하지 말어.”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진도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흥 또한 넘친다. 노래를 잘하면 대접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푸대접을 받기까지 한다. 진도 사람들의 삶 굽이굽이마다 노래가 향기처럼 배어 있으니 이런 표현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듯싶다.

국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진도 태생'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혜와 같다. 그런 점에서 내가 진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어렸을 땐 내가 특별히 노래에 재주가 있는지 몰랐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도 거의 없었다. 누가 노래 잘한다는 얘기를 해준 적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 못하는 사람 찾기가 더 어려운 게 진도라는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잘해선 잘한다는 소리는커녕 그것도 노래냐고 타박하는 곳에서 살았으니 내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가수가 될 것이라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자연스레 노래가 좋아서 국악 쪽으로 진로를 정했고, 열심히 공부했고,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던 시간들이 지금의 길을 만들어온 것 같다.

중학교 때 ‘남도들노래'라는 민요를 배웠는데 그때 노래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엄마에게 “얘가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노래 공부를 시켜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하셨다. 엄마가 이미 국악을 하고 계셨고 오빠도 국악 쪽으로 진로를 정한 터라 큰 어려움 없이 나도 중학생이 된 후부터 노래를 배웠다. 본격적인 소리 공부는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소리 공부는 초등학생 때부터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중학생 때 시작한 나는 또래에 비해 많이 늦은 편이었다. 중학생 때는 주로 민요를 배웠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 34호 남도잡가 예능보유자이신 강송대 선생님이 나의 첫 스승이셨다. 어린 내가 들어도 선생님의 소리는 기가 막혔는데,

희로애락의 감정 중에서도 특히 슬프고 애절한 표현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셨다. 나이가 어렸는데도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면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처음 목을 만들어가던 시기에 선생님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고, 그만큼 귀한 인연이었다.

선생님께 노래를 배우며 남도 소리 창법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노래를 배우는 시간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학교 선생님 말고 다른 선생님에게 노래를 배운다는 것은 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이쁘다잉.”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시시상청'이라며

높은 고음이 꾀꼬리처럼 곱고 예쁘게 나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 소리는 고음으로 올라가는 단계를 평성, 상청, 중상청, 시시상청으로 구분한다. 시시상청은 고음 중에서도 고음, 최고조의 고음을 내는 소리다. 당시 나는 판소리를 배우기 전이라

성대에 아직 굳은살이 생기지 않아 목청이 얇았기에 높은 소리가 잘 나왔다. 선생님의 칭찬은 나를 하늘 높이 솟구치게 했다.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마다 마음의 키가 쑥쑥 자라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내 목청의 특성을 잘 알고 계셨고 이면에 맞게 부르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주셨다. 소리뿐만 아니라 어른에 대한 예절과 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하나둘씩 깨달은 것도 선생님 덕분이다.

곡선의 유려함으로

극단 생활을 하던 2010년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 진도에서 《전국 노래 자랑》 하는데 꼭 나가봐라.”

판소리 대회엔 나가라는 소리 한 번 안 하던 분이 《전국 노래 자랑》에 나가라고 전화를 다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빈말로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준비를 해서 출전했다. 어떤 곡을 부를까 고민하다가 아끼고 아끼던 노래를 골랐다. 주현미 선생님의 ‘정말 좋았네'였다.

그런데 덜컥 최우수상을 탔다.

게다가 무대에서 노래 세 곡을 연달아 부르고 말았다.

한 곡은 ‘정말 좋았네'였고, 또 한 곡은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이별가'였고, 마지막에는 송해 선생님이 시켜서 부른 ‘진도 아리랑'이었다.

초대가수도 아닌 일반 참가자가 무대에서 세 곡을 연달아 부른 것이다. 이런 일은 굉장히 드물다고 나중에 누군가 얘기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그때의 영상을 보면 너무나 앳된 모습이다.

목소리도 심지가 덜 박혀서 지금보다 소리가 가늘다. 그래도 무대 경험이 제법 쌓였던 때라 낯선 무대에 선다는 약간의 긴장감을 제외하고는 크게 떨리진 않았다.

《전국 노래 자랑》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진도 편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출전한 연말 결선에서 역시 같은 노래로 우수상을 받은 후 트로트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후 《전국 노래 자랑》에 초대가수로 무대에 서는 영광을 얻었다. 트로트 가수가 꿈꾸는 무대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전국 노래 자랑》이고 또 하나는 《가요무대》다.

지금까지 노래를 하면서 두 무대에 여러 번 서는 행운을 누렸으니 가수로서 참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내게는 세 번째 영광의 무대가 있었다. 바로 《불후의 명곡》이다. 《불후의 명곡》에서 주현미 선생님 편에 나갔는데 이때에도 ‘정말 좋았네'를 불렀다.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녹화전날부터 떨려서 잠도 안 올 만큼 좋았다.

주현미 선생님은 예전부터 정말 사모하고 존경하는 분이어서 트로트를 배우며 연습할 때 선생님의 노래를 가장 많이 듣고 따라 불렀다.

《전국 노래 자랑》에서 ‘정말 좋았네'를 불러 최우수상을 탔고 이 노래로 연말 결선까지 나가 우수상을 받았으니 내겐 각별한 의미가 있는 노래였다. 다행히 이 노래로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을 했으니 내게는 평생 ‘정말 좋았네'라 말할 만한 노래가 되었다.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정말 좋았네'는 특히 편곡이 환상적이었다. 노래 후반부에 ‘사랑,사랑,사랑,사랑'이라는 노랫말을 4단 고음으로 뽑아내는 편곡이었는데 어떤 분이 판소리에서 말하는 ‘시시상청'이란 게 이런 건가 싶어 전율을 느꼈다고 하셨다. 고음을 시원하게 뽑아내는 순간에는 부르는 나도 들으시는 분들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얼마나 높은 음을 찍을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지르는 고음은 되도록 내지 않으려고 한다. 고음은 노래 안에서 그 노래가 지닌 그 노래만의 특별한 정서와 합쳐질 때 힘을 갖는 것이지 맥락도 없이 마구 지르면 노래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야 할 때 내는 소리여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직선처럼 내뻗기만 하는 소리는 매력이 없다.

시원하게 쭉 뻗다가도 굽이치고 휘돌아 감기는 곡선이 있어야 노래에 구성진 깊이와 활달한 넓이가 생긴다.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한 일이 의미가 큰 이유는 1등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롤모델로 삼고 우러러보며 따랐던 선생님 앞에서 부른 노래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며 일궈낸 우승이 아니라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묵묵히 인내하며 견디고 버텼던 시간은 내 삶에 곡선의 흔적을 남겼다. 언뜻 보면 곡선은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목표에 빨리 가닿는 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곡선은 우리 삶에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다.

터닝 포인트는 말 그대로 전환점이라는 뜻이다.

앞으로도 나는 서둘러 가려고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남들보다 빨리 어딘가에 도달하려고 아등바등거리며 살고 싶진 않다. 천천히 가더라도 곡선의 유려함을 지닐 때 크고 넓은 시선으로 삶을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전국 노래 자랑》에서 주현미 선생님의 노래를 부른 인연으로 박성훈 작곡가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트로트 가수로 앨범을 내보자는 제안이었는데 펄쩍 뛰어오를 만큼 기뻤다. 국악을 하다가 트로트로 장르를 바꾸려는 내게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깝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더 많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기에 최선을 다해 데뷔를 준비했다.

사실 트로트는 내게 완전히 낯선 장르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매주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서 《전국 노래 자랑》을 봤고 기타를 잘 치던 아빠가 자주 부르시던 노래 또한 트로트였다. 대학 때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트로트를 곧잘 부르곤 했다. 대학 때 친구들은 다들 소리 공부를 탄탄하게 해왔던 터라 트로트도 구성지게 잘 불렀다. 당시 내 십팔번은 ‘칠갑산'이었는데 요즘도 친구들이 “대학 때 네가 부르던 ‘칠갑산'은 잊을 수가 없다.

진짜 기가 막히게 불렀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신인 가수로 데뷔했지만 피부에 와닿을 만큼 큰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가수로 데뷔하기 전보다 마음은 더 힘들었다.

데뷔 준비를 할 때는 데뷔에 대한 희망으로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지만 막상 데뷔를 하고나자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냉혹했다. 서포트를 해줄 매니저가 없어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 행사를 갈 때도 짐을 한가득 챙겨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대기실이 없는 경우도 많았으며 심지어 의상을 갈아입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좁은 창고와 천막, 심지어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겨울에 지방 행사에 갔는데 대기실이 야외에 있는 천막이었다. 바람에 천막이 펄럭이는 곳에서 의상을 갈아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의상을 챙겨 들고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히 여자 화장실이 별도로 있었지만 옷을 갈아입고 목걸이와 귀고리 등 액세서리까지 챙겨서 걸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그 옆에 일반 화장실보다는 그나마 넓은 장애인 화장실이 있었다. 거기서 얼른 갈아입고 나와야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체됐다. 그러던 중에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안에 누구야? 빨리 나와요!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냐?” “아, 아니에요. 옷 좀 갈아입고 있어요.”

“옷을 왜 여기에서 갈아입고 있어? 당장 나오라니까!” “저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청소해야 하니까 잔말 말고 빨리 나와요!”

아마도 청소하시는 분이 장애인 화장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동안 들리니 수상쩍게 여기신 모양이었다.

옷을 갈아입다 말고 나갈 수도 없어서 문 너머로 목청을 높여 사정을 설명했다. “저 여기 행사에 온 초대가수인데요, 옷을 갈아입을 데가 없어서요. 금방 나갈게요. 죄송합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물건을 챙기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평소처럼 무대를 잘 끝내는 게 더 중요했다. 다른 초대 가수들은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순서가 오면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매니저가 옆에서 따뜻한 음료를 챙겨주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러나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기실 천막으로 돌아와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어서 빨리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추위도 추위였지만 서러움 때문에 울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천막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내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 한쪽에 서러움이 조금 남아 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하얀 눈송이가 제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을 동경해 부푼 꿈을 안고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는데,

자기 자리는 찾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후

차가운 응달에서 더럽고 딱딱한 얼음덩이가 되어가는 것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도 노래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고, 내 외모를 비하하는 말도 들었다. 심지어 트로트 가수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서 가수가 되었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티고 견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연습에 매진하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실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930년대부터 당대를 풍미했던 유행가를 공부했다. 수많은 명곡들을 그런 식으로 공부해나가면서 점점 내게 잘 맞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내 감성에는 세미 트로트보다 정통 트로트가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관객의 흥을 돋우는 노래도 가수에겐 필요하지만

그런 노래만 레퍼토리로 삼는 것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맛이 배어나는 정통 트로트를 부를 때 내가 가진 것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내게도 태양이 떠오를 날이 있을까?'

아침에 영원히 찾아오지 않고 깊은 밤만 계속될 것 같은 날들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목청밖에 없으니 매일매일 지독하게 연습했다. 소리 공부를 할 때보다 이때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올 거야!” 자신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미스트롯>이라는 기회를 만났다.

네, 가진 것은 목청밖에 없으니 매일매일 지독하게 연습할 수 밖에 없었던 날들, 그 깊은 밤의 날들이 왜이렇게 가슴을 울릴까요. 다음 읽어보겠습니다.

모두가 은인이고 귀인이어라

어느 해였나,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이 햇빛 좋은 봄날, 살며시 연둣빛 싹을 틔운 것을 보았다. 작은 식물도 이렇게 애쓰며 살고 있구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깃든 사랑을 본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랑을 생각하면 이토록 살뜰하고 애틋하다.

그 작은 새싹을 들여다보며 그 새싹을 지키고 보호해준 공기와 햇빛을 보았다. 또 그 작은 새싹에게 아낌없이 양분과 물을 보내준 흙을 보았다. 새싹은 혼자 힘으로 세상에 고개를 내민 것이 아니었다. 흙이 길을 열어주고 공기가 힘차게 붙잡아주고 햇빛이 보드랍게 감싸준 덕분이었다. 나도 혼자였다면 결코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탱하고 끌어주고 보듬어준 분들이 계셨다. 어느 시기엔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꼭 성공해보일 거라고 굳게 결심을 했던 데에는 그분들의 영향도 있었다. 작게 보면 원수지만 크게 보면 은인이다.

얼마 전 고향 진도에 가서 바다낚시를 했다.

어릴 땐 가족과 함께 낚시를 자주 다녔는데 크고 나서는 꽤 오랜만에 해본 바다낚시였다. 다행히 허탕은 치지 않고 돔을 잡으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손맛을 느꼈다. 아마 이 맛에 낚시를 하는 것이려니 싶다.

출렁이는 바다 앞에서 작디작은 나 자신을 느꼈다.

바다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이 거대한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 사라진다고 한들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물고기 한 마리는 의미도, 가치도 없고 그저 허무하게 느껴진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엔 엄청나게 많은 노래가 있고, 노래하는 사람들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일 뿐이다.

나도, 내 노래도 큰 바닷속,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고기 중 한 마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노래 한 곡, 한 곡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듯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가 바다를 살아 있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음악의 세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노래가 없듯, 바다에선 모든 물고기가 다 귀한 존재다. 땅이 자신의 몸을 열어 작은 씨앗을 품어주듯, 바다가 한 마리의 물고기도 버리지 않듯,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밤하늘의 별도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수많은 별과 무리 지어 있을 때 더 빛난다. 불안하거나 외로운 감정에 휩싸일 때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고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밥 한 그릇을 든든하게 먹은 것처럼 힘이 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힘으로 힘껏 노래하고, 사랑하고, 살아갈 것이다.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

송가인. 다시 내 이름을 불러본다. 성은 송이요, 이름은 가인이라.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뜻 외에 아름다운 사람(가인佳人)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외모가 뛰어나거나 재주가 출중한 사람도 아름다운 사람일 터다. 그러나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닐까.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꼽아보라면 사람마다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고로 꼽는다.

간절히 바랐으나 혼자 해내기 어려웠던 꿈을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이루게 되었다. 혼자 꾸는 꿈은 나 하나를 바꾸지만 함께 꾸는 꿈은 더 강력한 현실이 되어 우리 모두를 변화시킨다. 누구나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가장 정직한 방법은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었더니 좋은 사람들이 내 옆으로 와 주었다. 앞으로도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가수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이들과 동료애를 나누고, 내 노래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모든 것이 노래하는 일에 포함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쌀로 밥을 짓는 일에도 시간이 걸린다.

쌀을 씻고 밥물을 얹고 불을 켜고 뜸을 들여야 한다. 밥물이 많아도 안 되고 불이 너무 세서도 안 된다.

배가 고프다고 뜸이 들기도 전에 뚜껑을 열면 설익은 밥이 된다. 밥 한 그릇을 짓는 일에도 이렇게 과정마다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 노래를 성의 없이 부를 순 없다. 가사 하나하나에 감정을 싣고, 멜로디 한 줄 한 줄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비록 부족함이 많지만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오래오래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송가인 올림

여기까지 레오의 책읽는 밤

《송가인이어라》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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