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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의 책읽는 밤 (Another Audio Book Collection), [KOR/ENG SUB] 송가인이어라 / 곡선의 유려함으로 노래하는 가수_송가인 / 송가인 책_송가인 자서전 / 책읽어주는 남자 / 오디오북

[KOR/ENG SUB] 송가인이어라 / 곡선의 유려함으로 노래하는 가수_송가인 / 송가인 책_송가인 자서전 / 책읽어주는 남자 / 오디오북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한

그녀의 삶의 노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송가인의 노래는 이제 시작이다.

오늘 레오의 책읽는 밤

여러분에게 읽어드릴 책은 《송가인이어라》입니다.

저자 송가인, 스토리베리 구성 스튜디오 오드리에서 펴냈습니다.

저자 송가인은 “전라도에서 탑 찍어불고 서울에 탑 찍으러 온 송가인이어라“라고 인사한 2019년 3월 7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트로트사에 물줄기를 바꿨다는 평가를 넘어 한국 가요계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메인 스트림으로 올라선 송가인이

대중 앞에 등장한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트로트계를 넘어 방송계의 최고 블루칩으로 올라선 그녀지만

노력하는 송가인이 되겠노라는 다짐이

《송가인이어라》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첫 스승님과의 만남

“진도에서는 소리 자랑하지 말어.”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진도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흥 또한 넘친다. 노래를 잘하면 대접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푸대접을 받기까지 한다. 진도 사람들의 삶 굽이굽이마다 노래가 향기처럼 배어 있으니 이런 표현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듯싶다.

국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진도 태생'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혜와 같다. 그런 점에서 내가 진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어렸을 땐 내가 특별히 노래에 재주가 있는지 몰랐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도 거의 없었다. 누가 노래 잘한다는 얘기를 해준 적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 못하는 사람 찾기가 더 어려운 게 진도라는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잘해선 잘한다는 소리는커녕 그것도 노래냐고 타박하는 곳에서 살았으니 내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가수가 될 것이라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자연스레 노래가 좋아서 국악 쪽으로 진로를 정했고, 열심히 공부했고,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던 시간들이 지금의 길을 만들어온 것 같다.

중학교 때 ‘남도들노래'라는 민요를 배웠는데 그때 노래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엄마에게 “얘가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노래 공부를 시켜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하셨다. 엄마가 이미 국악을 하고 계셨고 오빠도 국악 쪽으로 진로를 정한 터라 큰 어려움 없이 나도 중학생이 된 후부터 노래를 배웠다. 본격적인 소리 공부는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소리 공부는 초등학생 때부터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중학생 때 시작한 나는 또래에 비해 많이 늦은 편이었다. 중학생 때는 주로 민요를 배웠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 34호 남도잡가 예능보유자이신 강송대 선생님이 나의 첫 스승이셨다. 어린 내가 들어도 선생님의 소리는 기가 막혔는데,

희로애락의 감정 중에서도 특히 슬프고 애절한 표현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셨다. 나이가 어렸는데도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면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처음 목을 만들어가던 시기에 선생님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고, 그만큼 귀한 인연이었다.

선생님께 노래를 배우며 남도 소리 창법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노래를 배우는 시간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학교 선생님 말고 다른 선생님에게 노래를 배운다는 것은 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이쁘다잉.”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시시상청'이라며

높은 고음이 꾀꼬리처럼 곱고 예쁘게 나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 소리는 고음으로 올라가는 단계를 평성, 상청, 중상청, 시시상청으로 구분한다. 시시상청은 고음 중에서도 고음, 최고조의 고음을 내는 소리다. 당시 나는 판소리를 배우기 전이라

성대에 아직 굳은살이 생기지 않아 목청이 얇았기에 높은 소리가 잘 나왔다. 선생님의 칭찬은 나를 하늘 높이 솟구치게 했다.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마다 마음의 키가 쑥쑥 자라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내 목청의 특성을 잘 알고 계셨고 이면에 맞게 부르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주셨다. 소리뿐만 아니라 어른에 대한 예절과 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하나둘씩 깨달은 것도 선생님 덕분이다.

곡선의 유려함으로

극단 생활을 하던 2010년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 진도에서 《전국 노래 자랑》 하는데 꼭 나가봐라.”

판소리 대회엔 나가라는 소리 한 번 안 하던 분이 《전국 노래 자랑》에 나가라고 전화를 다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빈말로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준비를 해서 출전했다. 어떤 곡을 부를까 고민하다가 아끼고 아끼던 노래를 골랐다. 주현미 선생님의 ‘정말 좋았네'였다.

그런데 덜컥 최우수상을 탔다.

게다가 무대에서 노래 세 곡을 연달아 부르고 말았다.

한 곡은 ‘정말 좋았네'였고, 또 한 곡은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이별가'였고, 마지막에는 송해 선생님이 시켜서 부른 ‘진도 아리랑'이었다.

초대가수도 아닌 일반 참가자가 무대에서 세 곡을 연달아 부른 것이다. 이런 일은 굉장히 드물다고 나중에 누군가 얘기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그때의 영상을 보면 너무나 앳된 모습이다.

목소리도 심지가 덜 박혀서 지금보다 소리가 가늘다. 그래도 무대 경험이 제법 쌓였던 때라 낯선 무대에 선다는 약간의 긴장감을 제외하고는 크게 떨리진 않았다.

《전국 노래 자랑》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진도 편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출전한 연말 결선에서 역시 같은 노래로 우수상을 받은 후 트로트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후 《전국 노래 자랑》에 초대가수로 무대에 서는 영광을 얻었다. 트로트 가수가 꿈꾸는 무대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전국 노래 자랑》이고 또 하나는 《가요무대》다.

지금까지 노래를 하면서 두 무대에 여러 번 서는 행운을 누렸으니 가수로서 참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내게는 세 번째 영광의 무대가 있었다. 바로 《불후의 명곡》이다. 《불후의 명곡》에서 주현미 선생님 편에 나갔는데 이때에도 ‘정말 좋았네'를 불렀다.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녹화전날부터 떨려서 잠도 안 올 만큼 좋았다.

주현미 선생님은 예전부터 정말 사모하고 존경하는 분이어서 트로트를 배우며 연습할 때 선생님의 노래를 가장 많이 듣고 따라 불렀다.

《전국 노래 자랑》에서 ‘정말 좋았네'를 불러 최우수상을 탔고 이 노래로 연말 결선까지 나가 우수상을 받았으니 내겐 각별한 의미가 있는 노래였다. 다행히 이 노래로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을 했으니 내게는 평생 ‘정말 좋았네'라 말할 만한 노래가 되었다.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정말 좋았네'는 특히 편곡이 환상적이었다. 노래 후반부에 ‘사랑,사랑,사랑,사랑'이라는 노랫말을 4단 고음으로 뽑아내는 편곡이었는데 어떤 분이 판소리에서 말하는 ‘시시상청'이란 게 이런 건가 싶어 전율을 느꼈다고 하셨다. 고음을 시원하게 뽑아내는 순간에는 부르는 나도 들으시는 분들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얼마나 높은 음을 찍을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지르는 고음은 되도록 내지 않으려고 한다. 고음은 노래 안에서 그 노래가 지닌 그 노래만의 특별한 정서와 합쳐질 때 힘을 갖는 것이지 맥락도 없이 마구 지르면 노래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야 할 때 내는 소리여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직선처럼 내뻗기만 하는 소리는 매력이 없다.

시원하게 쭉 뻗다가도 굽이치고 휘돌아 감기는 곡선이 있어야 노래에 구성진 깊이와 활달한 넓이가 생긴다.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한 일이 의미가 큰 이유는 1등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롤모델로 삼고 우러러보며 따랐던 선생님 앞에서 부른 노래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며 일궈낸 우승이 아니라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묵묵히 인내하며 견디고 버텼던 시간은 내 삶에 곡선의 흔적을 남겼다. 언뜻 보면 곡선은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목표에 빨리 가닿는 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곡선은 우리 삶에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다.

터닝 포인트는 말 그대로 전환점이라는 뜻이다.

앞으로도 나는 서둘러 가려고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남들보다 빨리 어딘가에 도달하려고 아등바등거리며 살고 싶진 않다. 천천히 가더라도 곡선의 유려함을 지닐 때 크고 넓은 시선으로 삶을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전국 노래 자랑》에서 주현미 선생님의 노래를 부른 인연으로 박성훈 작곡가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트로트 가수로 앨범을 내보자는 제안이었는데 펄쩍 뛰어오를 만큼 기뻤다. 국악을 하다가 트로트로 장르를 바꾸려는 내게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깝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더 많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기에 최선을 다해 데뷔를 준비했다.

사실 트로트는 내게 완전히 낯선 장르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매주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서 《전국 노래 자랑》을 봤고 기타를 잘 치던 아빠가 자주 부르시던 노래 또한 트로트였다. 대학 때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트로트를 곧잘 부르곤 했다. 대학 때 친구들은 다들 소리 공부를 탄탄하게 해왔던 터라 트로트도 구성지게 잘 불렀다. 당시 내 십팔번은 ‘칠갑산'이었는데 요즘도 친구들이 “대학 때 네가 부르던 ‘칠갑산'은 잊을 수가 없다.

진짜 기가 막히게 불렀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신인 가수로 데뷔했지만 피부에 와닿을 만큼 큰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가수로 데뷔하기 전보다 마음은 더 힘들었다.

데뷔 준비를 할 때는 데뷔에 대한 희망으로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지만 막상 데뷔를 하고나자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냉혹했다. 서포트를 해줄 매니저가 없어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 행사를 갈 때도 짐을 한가득 챙겨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대기실이 없는 경우도 많았으며 심지어 의상을 갈아입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좁은 창고와 천막, 심지어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겨울에 지방 행사에 갔는데 대기실이 야외에 있는 천막이었다. 바람에 천막이 펄럭이는 곳에서 의상을 갈아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의상을 챙겨 들고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히 여자 화장실이 별도로 있었지만 옷을 갈아입고 목걸이와 귀고리 등 액세서리까지 챙겨서 걸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그 옆에 일반 화장실보다는 그나마 넓은 장애인 화장실이 있었다. 거기서 얼른 갈아입고 나와야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체됐다. 그러던 중에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안에 누구야? 빨리 나와요!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냐?” “아, 아니에요. 옷 좀 갈아입고 있어요.”

“옷을 왜 여기에서 갈아입고 있어? 당장 나오라니까!” “저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청소해야 하니까 잔말 말고 빨리 나와요!”

아마도 청소하시는 분이 장애인 화장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동안 들리니 수상쩍게 여기신 모양이었다.

옷을 갈아입다 말고 나갈 수도 없어서 문 너머로 목청을 높여 사정을 설명했다. “저 여기 행사에 온 초대가수인데요, 옷을 갈아입을 데가 없어서요. 금방 나갈게요. 죄송합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물건을 챙기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평소처럼 무대를 잘 끝내는 게 더 중요했다. 다른 초대 가수들은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순서가 오면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매니저가 옆에서 따뜻한 음료를 챙겨주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러나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기실 천막으로 돌아와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어서 빨리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추위도 추위였지만 서러움 때문에 울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천막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내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 한쪽에 서러움이 조금 남아 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하얀 눈송이가 제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을 동경해 부푼 꿈을 안고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는데,

자기 자리는 찾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후

차가운 응달에서 더럽고 딱딱한 얼음덩이가 되어가는 것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도 노래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고, 내 외모를 비하하는 말도 들었다. 심지어 트로트 가수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서 가수가 되었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티고 견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연습에 매진하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실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930년대부터 당대를 풍미했던 유행가를 공부했다. 수많은 명곡들을 그런 식으로 공부해나가면서 점점 내게 잘 맞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내 감성에는 세미 트로트보다 정통 트로트가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관객의 흥을 돋우는 노래도 가수에겐 필요하지만

그런 노래만 레퍼토리로 삼는 것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맛이 배어나는 정통 트로트를 부를 때 내가 가진 것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내게도 태양이 떠오를 날이 있을까?'

아침에 영원히 찾아오지 않고 깊은 밤만 계속될 것 같은 날들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목청밖에 없으니 매일매일 지독하게 연습했다. 소리 공부를 할 때보다 이때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올 거야!” 자신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미스트롯>이라는 기회를 만났다.

네, 가진 것은 목청밖에 없으니 매일매일 지독하게 연습할 수 밖에 없었던 날들, 그 깊은 밤의 날들이 왜이렇게 가슴을 울릴까요. 다음 읽어보겠습니다.

모두가 은인이고 귀인이어라

어느 해였나,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이 햇빛 좋은 봄날, 살며시 연둣빛 싹을 틔운 것을 보았다. 작은 식물도 이렇게 애쓰며 살고 있구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깃든 사랑을 본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랑을 생각하면 이토록 살뜰하고 애틋하다.

그 작은 새싹을 들여다보며 그 새싹을 지키고 보호해준 공기와 햇빛을 보았다. 또 그 작은 새싹에게 아낌없이 양분과 물을 보내준 흙을 보았다. 새싹은 혼자 힘으로 세상에 고개를 내민 것이 아니었다. 흙이 길을 열어주고 공기가 힘차게 붙잡아주고 햇빛이 보드랍게 감싸준 덕분이었다. 나도 혼자였다면 결코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탱하고 끌어주고 보듬어준 분들이 계셨다. 어느 시기엔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꼭 성공해보일 거라고 굳게 결심을 했던 데에는 그분들의 영향도 있었다. 작게 보면 원수지만 크게 보면 은인이다.

얼마 전 고향 진도에 가서 바다낚시를 했다.

어릴 땐 가족과 함께 낚시를 자주 다녔는데 크고 나서는 꽤 오랜만에 해본 바다낚시였다. 다행히 허탕은 치지 않고 돔을 잡으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손맛을 느꼈다. 아마 이 맛에 낚시를 하는 것이려니 싶다.

출렁이는 바다 앞에서 작디작은 나 자신을 느꼈다.

바다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이 거대한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 사라진다고 한들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물고기 한 마리는 의미도, 가치도 없고 그저 허무하게 느껴진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엔 엄청나게 많은 노래가 있고, 노래하는 사람들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일 뿐이다.

나도, 내 노래도 큰 바닷속,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고기 중 한 마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노래 한 곡, 한 곡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듯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가 바다를 살아 있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음악의 세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노래가 없듯, 바다에선 모든 물고기가 다 귀한 존재다. 땅이 자신의 몸을 열어 작은 씨앗을 품어주듯, 바다가 한 마리의 물고기도 버리지 않듯,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밤하늘의 별도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수많은 별과 무리 지어 있을 때 더 빛난다. 불안하거나 외로운 감정에 휩싸일 때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고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밥 한 그릇을 든든하게 먹은 것처럼 힘이 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힘으로 힘껏 노래하고, 사랑하고, 살아갈 것이다.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

송가인. 다시 내 이름을 불러본다. 성은 송이요, 이름은 가인이라.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뜻 외에 아름다운 사람(가인佳人)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외모가 뛰어나거나 재주가 출중한 사람도 아름다운 사람일 터다. 그러나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닐까.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꼽아보라면 사람마다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고로 꼽는다.

간절히 바랐으나 혼자 해내기 어려웠던 꿈을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이루게 되었다. 혼자 꾸는 꿈은 나 하나를 바꾸지만 함께 꾸는 꿈은 더 강력한 현실이 되어 우리 모두를 변화시킨다. 누구나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가장 정직한 방법은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었더니 좋은 사람들이 내 옆으로 와 주었다. 앞으로도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가수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이들과 동료애를 나누고, 내 노래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모든 것이 노래하는 일에 포함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쌀로 밥을 짓는 일에도 시간이 걸린다.

쌀을 씻고 밥물을 얹고 불을 켜고 뜸을 들여야 한다. 밥물이 많아도 안 되고 불이 너무 세서도 안 된다.

배가 고프다고 뜸이 들기도 전에 뚜껑을 열면 설익은 밥이 된다. 밥 한 그릇을 짓는 일에도 이렇게 과정마다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 노래를 성의 없이 부를 순 없다. 가사 하나하나에 감정을 싣고, 멜로디 한 줄 한 줄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비록 부족함이 많지만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오래오래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송가인 올림

여기까지 레오의 책읽는 밤

《송가인이어라》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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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한 The songs of her life いい人になっていい歌を歌うために

그녀의 삶의 노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to become a good person and sing good songs are still in progress. 彼女の人生の歌はまだ進行中です。

송가인의 노래는 이제 시작이다. Song Ga-in's song begins now.

오늘 레오의 책읽는 밤 The book

여러분에게 읽어드릴 책은 《송가인이어라》입니다. I'm going to read to all of you today is Leo's Reading Night .

저자 송가인, 스토리베리 구성 스튜디오 오드리에서 펴냈습니다. The author, Ga-in Song, published in Audrey, a studio for story berry composition.

저자 송가인은 “전라도에서 탑 찍어불고 서울에 탑 찍으러 온 송가인이어라“라고 인사한 Author Song Ga-in talks about March 7, 2019, when he said, “It's Song Ga-in, who came to Seoul to take a pagoda from Jeolla-do” 2019년 3월 7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We now know that this is a historical moment when Song Ga-

트로트사에 물줄기를 바꿨다는 평가를 넘어 한국 가요계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in appeared before the public beyond the evaluation of changing the water

메인 스트림으로 올라선 송가인이 stream in Trotsa, and as

대중 앞에 등장한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the main stream that formed a new trend in the Korean music industry . 명실상부 대한민국 트로트계를 넘어 방송계의 최고 블루칩으로 올라선 그녀지만 Although she has risen as the best blue chip in the broadcasting industry beyond the trot industry in Korea in name and reality, she

노력하는 송가인이 되겠노라는 다짐이 is

《송가인이어라》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said to have written a book titled “Song Ga-in” with the determination to become a Song Ga-in who works hard.

그럼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Then, let's go into the book for a moment.

첫 스승님과의 만남 Meeting with the first Master

“진도에서는 소리 자랑하지 말어.”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진도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흥 또한 넘친다. “Don't boast about the sound in Jindo.” To the extent that there is such a saying, the people of Jindo like songs and are full of excitement. 노래를 잘하면 대접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푸대접을 받기까지 한다. If you are good at singing, you will be treated well, if not, you will be treated well. 진도 사람들의 삶 굽이굽이마다 노래가 향기처럼 배어 있으니 Jindo people's lives are soaked like a scent at every turn, so it 이런 표현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듯싶다. seems natural that this expression occurs.

국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진도 태생'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혜와 같다. Among the people who practice Korean traditional music, being'born in Jindo' itself is like a special benefit. 그런 점에서 내가 진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In that respect, I am so grateful that I was born and raised in Jindo. 어렸을 땐 내가 특별히 노래에 재주가 있는지 몰랐다. When I was young, I didn't know if I was particularly talented in singing.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도 거의 없었다. He was very shy, so he rarely sang in front of others. 누가 노래 잘한다는 얘기를 해준 적도 없었다. No one ever told me that he was good at singing.

그도 그럴 것이 노래 못하는 사람 찾기가 더 어려운 게 진도라는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That's because Jindo was the more difficult thing to find someone who couldn't sing. 어지간히 잘해선 잘한다는 소리는커녕 그것도 노래냐고 타박하는 곳에서 살았으니 I lived in a place where I was confused about whether I was a song rather than saying that I was very good at doing very well, so 내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가수가 될 것이라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I would not have imagined even the closest family that I would become a singer who would shake Korea. 그냥 자연스레 노래가 좋아서 국악 쪽으로 진로를 정했고, I just naturally liked singing, so I decided to go to Korean traditional music, 열심히 공부했고,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던 시간들이 studied hard, and sang songs without a break 지금의 길을 만들어온 것 같다.

중학교 때 ‘남도들노래'라는 민요를 배웠는데 그때 노래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엄마에게 When I was in middle school, I learned a folk song called'Namdodeulsong', and the teacher who taught me the song at that time recommended to my mother, “얘가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노래 공부를 시켜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하셨다. " I think she has a natural talent, so why don't she study it?" My mother was already playing 엄마가 이미 국악을 하고 계셨고 오빠도 국악 쪽으로 진로를 정한 터라 Korean classical music, and my brother also decided on a course toward Korean music, so 큰 어려움 없이 나도 중학생이 된 후부터 노래를 배웠다. I learned to sing after becoming a middle school student without much difficulty. 본격적인 소리 공부는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I started studying sound in earnest when I was in the second year of middle school. 소리 공부는 초등학생 때부터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중학생 때 시작한 나는 또래에 비해 많이 늦은 편이었다. I started studying sound from elementary school, so I started when I was in middle school, and I was a lot late compared to my peers. 중학생 때는 주로 민요를 배웠다. When I was in middle school, I mainly learned folk songs.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 34호 남도잡가 예능보유자이신 강송대 선생님이 나의 첫 스승이셨다.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No. 34 in Jeollanam-do, Namdo Chopper's Artist Kang Song University teacher was my first teacher. 어린 내가 들어도 선생님의 소리는 기가 막혔는데, Even when I was younger, the teacher's voice was

희로애락의 감정 중에서도 특히 슬프고 애절한 표현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셨다. amazing, but especially sad and sad expressions were unmatched among the emotions of emotions and sorrows. 나이가 어렸는데도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면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Even though I was young, listening to the voice of the teacher conveyed my desperate feelings. 처음 목을 만들어가던 시기에 선생님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고, It was a tremendous fortune to meet the teacher at the time when I was first making the neck, and 그만큼 귀한 인연이었다. it was a precious relationship.

선생님께 노래를 배우며 남도 소리 창법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By learning songs from the teacher, I was able to lay the foundation for Namdo Sori singing. 노래를 배우는 시간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The time to learn to sing was really fun.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The fact that I was learning something new was exciting.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학교 선생님 말고 다른 선생님에게 노래를 배운다는 것은 Learning to sing from a teacher other than the school teacher in a place other than school was a 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special and thrilling experience for me.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이쁘다잉.” “Your voice is pretty like a squirrel.”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시시상청'이라며 The teacher said that my voice was'Shi-Sang Cheong' and

높은 고음이 꾀꼬리처럼 곱고 예쁘게 나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praised me for the high-pitched tone that came out beautifully and beautifully like a scallop. 우리 소리는 고음으로 올라가는 단계를 평성, 상청, 중상청, 시시상청으로 구분한다. Our sound is divided into high-pitched sounds: Pyeongseong, Sangcheong, Medium Sangcheong, and Sishisangcheong. 시시상청은 고음 중에서도 고음, 최고조의 고음을 내는 소리다. Sissangcheong is a sound that produces high tones and the highest tones among the high tones. 당시 나는 판소리를 배우기 전이라 At that time, I hadn't learned pansori, so I did

성대에 아직 굳은살이 생기지 않아 목청이 얇았기에 높은 소리가 잘 나왔다. n't have calluses in my vocal chords, so my throat was thin, so the high sound came out well. 선생님의 칭찬은 나를 하늘 높이 솟구치게 했다. The teacher's compliment made me soar high in the sky.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마다 마음의 키가 쑥쑥 자라나는 것 같았다. Every time I went to see the teacher, the height of my heart seemed to grow. 선생님은 내 목청의 특성을 잘 알고 계셨고 이면에 맞게 부르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주셨다. The teacher was familiar with the characteristics of my voice and taught me how to sing accordingly for the first time. 소리뿐만 아니라 어른에 대한 예절과 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It is thanks to the teacher that I realized 하나둘씩 깨달은 것도 선생님 덕분이다. that it is important to have not only sound but also manners and personality toward adults

곡선의 유려함으로 . One day in 2010, while living

극단 생활을 하던 2010년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in an extreme life with the curves of fluidity , my mother called. “이번에 진도에서 《전국 노래 자랑》 하는데 꼭 나가봐라.” “This time I'm going to in Jindo, so be sure to go out.”

판소리 대회엔 나가라는 소리 한 번 안 하던 분이 《전국 노래 자랑》에 나가라고 전화를 다 하니 The person who hadn't told me to go to the Pansori contest once called to go to , so I wondered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what was going on.

그래도 빈말로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준비를 해서 출전했다. Still, it didn't seem like it was empty words, so I prepared and participated. 어떤 곡을 부를까 고민하다가 아끼고 아끼던 노래를 골랐다. I was thinking about which song to sing, and then I chose a song I loved and cherished. 주현미 선생님의 ‘정말 좋았네'였다. It was Joo Hyun-mi's'It was really good'.

그런데 덜컥 최우수상을 탔다. However, he won the Grand Prize.

게다가 무대에서 노래 세 곡을 연달아 부르고 말았다. Besides, I sang three songs one after another on the stage.

한 곡은 ‘정말 좋았네'였고, 또 한 곡은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이별가'였고, One song was'It was really good', the other was'Parting Song ' in Pansori's , and the 마지막에는 송해 선생님이 시켜서 부른 ‘진도 아리랑'이었다. last song was'Jindo Arirang', which was ordered by Teacher Song Hae.

초대가수도 아닌 일반 참가자가 무대에서 세 곡을 연달아 부른 것이다. A regular participant, not even an invited singer, sang three songs in succession on the stage. 이런 일은 굉장히 드물다고 나중에 누군가 얘기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I remember that someone told me later that this is very rare. 지금 그때의 영상을 보면 너무나 앳된 모습이다. If you look at the video at that time, you are very young.

목소리도 심지가 덜 박혀서 지금보다 소리가 가늘다. The voice is also less wicked, so the sound is thinner than it is now. 그래도 무대 경험이 제법 쌓였던 때라 낯선 무대에 선다는 약간의 긴장감을 제외하고는 Still, it was a time when the stage experience had accumulated quite a bit, so I was n't trembling 크게 떨리진 않았다. except for the slight tension of being on an unfamiliar stage .

《전국 노래 자랑》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was a turning point in my life.

진도 편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출전한 연말 결선에서 In the year-end finals where Jindo won the grand prize and participated, he made 역시 같은 노래로 우수상을 받은 후 트로트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his debut as a trot singer after receiving the excellence award for the same song. 이후 《전국 노래 자랑》에 초대가수로 무대에 서는 영광을 얻었다. After that, he got the honor of standing on the stage as an invited singer for . 트로트 가수가 꿈꾸는 무대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전국 노래 자랑》이고 There are two stages that trot singers dream of, one of which is and the 또 하나는 《가요무대》다. other is .

지금까지 노래를 하면서 두 무대에 여러 번 서는 행운을 누렸으니 가수로서 참 행복한 일이다. It is a very happy thing as a singer because I have been lucky enough to stand on both stages while singing. 그리고 내게는 세 번째 영광의 무대가 있었다. 바로 《불후의 명곡》이다. And I had a third glorious stage. It is . 《불후의 명곡》에서 주현미 선생님 편에 나갔는데 이때에도 ‘정말 좋았네'를 불렀다. In , I was on the side of Hyeonmi Joo, but at this time I sang'It was really good'.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It was an honor to be able to sing a teacher's song in front of the teacher. 녹화전날부터 떨려서 잠도 안 올 만큼 좋았다. It was so good that I couldn't sleep because I was trembling from the day before recording.

주현미 선생님은 예전부터 정말 사모하고 존경하는 분이어서 트로트를 배우며 연습할 때 Hyeonmi Joo has been a person who has longed for and respected the teacher since long ago, so when he learned trot and practiced, he 선생님의 노래를 가장 많이 듣고 따라 불렀다. listened to the teacher's songs the most and sang along.

《전국 노래 자랑》에서 ‘정말 좋았네'를 불러 최우수상을 탔고 In , she sang'It was really good' and won the grand prize, and 이 노래로 연말 결선까지 나가 우수상을 받았으니 내겐 각별한 의미가 있는 노래였다. this song has a special meaning to me as I went to the end of the year and received the Excellence Award. 다행히 이 노래로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을 했으니 내게는 평생 ‘정말 좋았네'라 말할 만한 노래가 되었다. Fortunately, since I won the title of with this song, it became a song that could be said to me all my life, "It was really good."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정말 좋았네'는 특히 편곡이 환상적이었다. The arrangement of'It Was Really Good' sung in was especially fantastic. 노래 후반부에 ‘사랑,사랑,사랑,사랑'이라는 노랫말을 4단 고음으로 뽑아내는 편곡이었는데 In the latter part of the song, it was an arrangement that pulled out the song'love, love, love, love' in 4 high notes, but 어떤 분이 판소리에서 말하는 ‘시시상청'이란 게 이런 건가 싶어 전율을 느꼈다고 하셨다. somebody said that he felt thrilled to think that this is what the Pansori calls'Shishisangcheong'. 고음을 시원하게 뽑아내는 순간에는 부르는 나도 들으시는 분들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At the moment when the treble is pulled out coolly, both the singing me and the listeners seem to feel a cool catharsis. 그러나 나는 내가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But I try to avoid the high notes I scream to prove

얼마나 높은 음을 찍을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지르는 고음은 되도록 내지 않으려고 한다. how well I sing and how high I can take. 고음은 노래 안에서 그 노래가 지닌 그 노래만의 특별한 정서와 합쳐질 때 힘을 갖는 것이지 High notes have power when combined with the special emotion of the song that the song has in the song, and screaming 맥락도 없이 마구 지르면 노래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without context will not help any song. 내야 할 때 내는 소리여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It is only worth the sound you make when you have to make it.

직선처럼 내뻗기만 하는 소리는 매력이 없다. The sound that just stretches out like a straight line is not attractive.

시원하게 쭉 뻗다가도 굽이치고 휘돌아 감기는 곡선이 있어야 Even if it stretches coolly, it must have a curve that bends and winds 노래에 구성진 깊이와 활달한 넓이가 생긴다. to create the depth and breadth of the song.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한 일이 의미가 큰 이유는 1등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The reason why winning the was so meaningful was not because it was ranked first. 롤모델로 삼고 우러러보며 따랐던 선생님 앞에서 부른 노래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It was because it was recognized as a song sung in front of the teacher who followed him by looking up and looking up as a role model. 또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며 일궈낸 우승이 아니라 In addition , it was because it was recognized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not as a championship achieved through success and success, but as a skill honed through practice and practice. 묵묵히 인내하며 견디고 버텼던 시간은 내 삶에 곡선의 흔적을 남겼다. The time I endured and endured silently left a trace of curves in my life. 언뜻 보면 곡선은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목표에 빨리 가닿는 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At first glance, the curves seem to be moving farther away, and they seem to get in the way of getting to the goal quickly. 그러나 곡선은 우리 삶에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다. But curves make a turning point in our lives.

터닝 포인트는 말 그대로 전환점이라는 뜻이다. Turning point literally means turning point.

앞으로도 나는 서둘러 가려고 하지 않을 생각이다. In the future, I will not try to hurry.

남들보다 빨리 어딘가에 도달하려고 아등바등거리며 살고 싶진 않다. I don't want to live in a hurry to get somewhere faster than others. 천천히 가더라도 곡선의 유려함을 지닐 때 크고 넓은 시선으로 삶을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This is because I believe that even if I go slowly, I can see life with a big and wide gaze when I have the smoothness of the curve.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The darkest before dawn,

《전국 노래 자랑》에서 주현미 선생님의 노래를 부른 인연으로 박성훈 작곡가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composer Park Seong-hoon contacted me because of the relationship that sang the song by Joo Hyun-mi in . 트로트 가수로 앨범을 내보자는 제안이었는데 펄쩍 뛰어오를 만큼 기뻤다. It was a proposal to release the album as a trot singer, but I was so happy to jump. 국악을 하다가 트로트로 장르를 바꾸려는 내게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깝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While playing Korean traditional music, all of my friends responded to me who wanted to change the genre to trot, but 나는 더 많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기에 최선을 다해 데뷔를 준비했다. I had the greatest desire to sing on more stages, so I did my best to prepare for my debut.

사실 트로트는 내게 완전히 낯선 장르는 아니었다. In fact, trot wasn't a completely foreign genre to me.

어릴 때부터 매주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서 《전국 노래 자랑》을 봤고 Every Sunday from childhood, the whole family gathered to watch , and the song 기타를 잘 치던 아빠가 자주 부르시던 노래 또한 트로트였다. that my dad, who played guitar well, often sang was also a trot. 대학 때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트로트를 곧잘 부르곤 했다. Even when I was in college, I used to sing trot well when I went to karaoke with my friends. 대학 때 친구들은 다들 소리 공부를 탄탄하게 해왔던 터라 트로트도 구성지게 잘 불렀다. When I was in college, all my friends had been studying sound, so they sang the trot well. 당시 내 십팔번은 ‘칠갑산'이었는데 요즘도 친구들이 “대학 때 네가 부르던 ‘칠갑산'은 잊을 수가 없다. At that time, my eighteenth was'Chilgapsan', but these days my friends said, “I can't forget the'Chilgapsan' that you called in college.

진짜 기가 막히게 불렀다”라고 말한다. It was really amazing,” he says.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신인 가수로 데뷔했지만 피부에 와닿을 만큼 큰 반응은 없었다. He made his debut as a new singer with such a bloated dream, but there was no reaction that was so big that it touched the skin. 오히려 가수로 데뷔하기 전보다 마음은 더 힘들었다. Rather, my heart was harder than before I debuted as a singer.

데뷔 준비를 할 때는 데뷔에 대한 희망으로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지만 When I was preparing for my debut, I was able to endure a difficult time with hope for my debut, but 막상 데뷔를 하고나자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냉혹했다. when I made my debut, the reality was much harder and harsher than I thought. 서포트를 해줄 매니저가 없어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Since there is no manager to support you, you have to take care of everything from clothes to makeup on your own, and you have to 지방 행사를 갈 때도 짐을 한가득 챙겨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pack a lot of luggage and use public transportation when going to local events. 대기실이 없는 경우도 많았으며 심지어 의상을 갈아입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There were many cases where there was no waiting room, and there was even a 좁은 창고와 천막, 심지어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있었다. small warehouse, tent, and even a toilet because there wasn't enough place to change clothes . 한번은 겨울에 지방 행사에 갔는데 대기실이 야외에 있는 천막이었다. One time, I went to a local event in winter, and the waiting room was an outdoor tent. 바람에 천막이 펄럭이는 곳에서 의상을 갈아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It was impossible to change clothes in the place where the tent fluttered in the wind. 할 수 없이 의상을 챙겨 들고 화장실을 찾았다. I couldn't do it and went to the bathroom with my clothes.

다행히 여자 화장실이 별도로 있었지만 옷을 갈아입고 목걸이와 귀고리 등 Fortunately, there was a separate women's toilet, but the space was too small to 액세서리까지 챙겨서 걸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wear because I changed clothes and packed accessories such as necklaces and earrings . 그 옆에 일반 화장실보다는 그나마 넓은 장애인 화장실이 있었다. Next to it, there was a handicapped toilet, which was wider than a normal toilet. 거기서 얼른 갈아입고 나와야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체됐다. I entered with the desire to change clothes and come out there, but it took quite a while. 그러던 중에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Then someone from the outside screamed, knocking on the door. “안에 누구야? 빨리 나와요!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냐?” “Who's inside? Come out quickly! Are you not doing anything weird?” “아, 아니에요. 옷 좀 갈아입고 있어요.” “Oh, no. I'm changing my clothes.”

“옷을 왜 여기에서 갈아입고 있어? 당장 나오라니까!” “Why are you changing clothes here? Come out now!” “저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I'm not really a weird person.”

“청소해야 하니까 잔말 말고 빨리 나와요!” “I have to clean it, so don't talk to me and come out quickly!”

아마도 청소하시는 분이 장애인 화장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동안 들리니 Perhaps the cleaner was suspicious after hearing the rustling sound in the disabled toilet for a long time 수상쩍게 여기신 모양이었다.

옷을 갈아입다 말고 나갈 수도 없어서 문 너머로 목청을 높여 사정을 설명했다. I couldn't go out without changing clothes, so I raised my voice over the door and explained the situation. “저 여기 행사에 온 초대가수인데요, 옷을 갈아입을 데가 없어서요. “I'm the invited singer who came to the event here, because I don't have a place to change clothes. 금방 나갈게요. 죄송합니다.” I'll be out soon. Sorry."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물건을 챙기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I hurriedly changed clothes and went out to pick up things.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She turned her head down several times, and suddenly tears struck.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 The sadness that I had endured so far rose up all at once.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I bit my lip tightly as I thought I couldn't control it if a drop of tears fell. 감정을 추스르고 평소처럼 무대를 잘 끝내는 게 더 중요했다. It was more important to clear up your emotions and finish the stage well as usual. 다른 초대 가수들은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순서가 오면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 The other invited singers were waiting in the car, but when the turn came, they went up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to the stage to sing and hurried back to the car.

매니저가 옆에서 따뜻한 음료를 챙겨주는 모습이 부러웠다. I was envious of the manager serving hot drinks next to me. 그러나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But there was no one beside me.

대기실 천막으로 돌아와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어서 빨리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Returning to the waiting room tent, I thought about the lyrics of the song and waited for my name to be called quickly. 추위도 추위였지만 서러움 때문에 울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The cold was also cold, but I wasn't sure how much I could endure without crying because of sadness. 천막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A cold wind penetrated through the tents.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내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The whole time I was trembling in the cold, I only thought about what I was doing here. 이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 한쪽에 서러움이 조금 남아 있다. At this time, when I think about work, a little bit of sadness remains in one side of my mind.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하얀 눈송이가 제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을 동경해 The scene comes to mind as if a white snowflake that knows nothing 부푼 꿈을 안고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는데, came down from the sky with a puffed dream

자기 자리는 찾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후 admiring the beautiful world in my eyes, but after

차가운 응달에서 더럽고 딱딱한 얼음덩이가 되어가는 것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falling to the ground without finding its place , it became a dirty and hard ice block in the cold shade.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Even after that, the situation did not improve.

그것도 노래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고, 내 외모를 비하하는 말도 들었다. I heard the screaming of whether it was a song or not, and I heard words that depreciate my appearance. 심지어 트로트 가수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He even heard that he would never succeed as a trot singer.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서 가수가 되었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티고 견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I became a singer because I liked to sing, but I couldn't figure out how much time I had to endure. 그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연습에 매진하는 일이었다. The more I did, the only thing I could do was to devote myself to practice.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실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I was stuck in the practice room from morning to night.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930년대부터 당대를 풍미했던 유행가를 공부했다. Going back to the times, he studied popular songs that had enjoyed the time since the 1930s. 수많은 명곡들을 그런 식으로 공부해나가면서 점점 내게 잘 맞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As I studied so many famous songs that way, I became increasingly aware of the songs that suited me well. 취향도 취향이지만 내 감성에는 세미 트로트보다 정통 트로트가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My taste is also my taste, but I realized that the traditional trot fits my sensibility rather than the semi-trot. 관객의 흥을 돋우는 노래도 가수에겐 필요하지만 Singers need songs that excite the audience, but

그런 노래만 레퍼토리로 삼는 것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I thought that using only those songs as a repertoire would not suit me. 깊은 맛이 배어나는 정통 트로트를 부를 때 내가 가진 것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This is because I was able to better show what I had when I sang the authentic trot that had a deep taste. ‘과연 내게도 태양이 떠오를 날이 있을까?' 'Is there any day when the sun will rise to me?'

아침에 영원히 찾아오지 않고 깊은 밤만 계속될 것 같은 날들이었다. It was the days that didn't come forever in the morning and only the deep night seemed to continue. 가진 것이라곤 목청밖에 없으니 매일매일 지독하게 연습했다. All I had was my voice, so I practiced hard every day. 소리 공부를 할 때보다 이때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It was not an exaggeration to say that I sang harder at this time than when I was studying sound.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올 거야!” 자신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If you work hard, chances will come!” I told myself and said again. 그러다가 마침내 <미스트롯>이라는 기회를 만났다. Then I finally met an opportunity called .

네, 가진 것은 목청밖에 없으니 매일매일 지독하게 연습할 수 밖에 없었던 날들, Yes, all I have is my throat, so why do the days when I 그 깊은 밤의 날들이 왜이렇게 가슴을 울릴까요. 다음 읽어보겠습니다. had to practice hard every day, the days of the deep night, make my heart sore. I'll read it next.

모두가 은인이고 귀인이어라 Since everyone is benefactor and noble

어느 해였나,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이 햇빛 좋은 봄날, 살며시 연둣빛 싹을 틔운 것을 보았다. , I saw a potted plant that I thought was dead, which I thought was dead, sprouts softly on a sunny spring day. 작은 식물도 이렇게 애쓰며 살고 있구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Even small plants are living in such an effort, and tears struck, wondering that they are not letting go of their love for themselves.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깃든 사랑을 본 기분이었다. It felt like seeing the love that dwells in everything that is alive.

세상 모든 사랑을 생각하면 이토록 살뜰하고 애틋하다. When I think of all the love in the world, I am so tender and loving.

그 작은 새싹을 들여다보며 그 새싹을 지키고 보호해준 공기와 햇빛을 보았다. As I looked into the little sprout, I saw the air and sunlight that protected and protected it. 또 그 작은 새싹에게 아낌없이 양분과 물을 보내준 흙을 보았다. I also saw the soil that generously sent nutrients and water to the little sprout. 새싹은 혼자 힘으로 세상에 고개를 내민 것이 아니었다. The sprout did not stand alone in the world. 흙이 길을 열어주고 공기가 힘차게 붙잡아주고 햇빛이 보드랍게 감싸준 덕분이었다. It was thanks to the soil opening the road, the air holding it strong, and the sunlight softly enveloping it. 나도 혼자였다면 결코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If I had been alone, I would never have been able to come to this place.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탱하고 끌어주고 보듬어준 분들이 계셨다. There were people who supported, dragged, and supported me in the visible and invisible places. 어느 시기엔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At some point, there were people who made me difficult.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However, when I look back,

꼭 성공해보일 거라고 굳게 결심을 했던 데에는 그분들의 영향도 있었다. they also influenced me in making a firm determination that I would see and see, and I would surely look successful. 작게 보면 원수지만 크게 보면 은인이다. If you look at it small, it is an enemy, but if you look at it large, it is a benefactor.

얼마 전 고향 진도에 가서 바다낚시를 했다. Not long ago, I went to my hometown Jindo and fished for the sea.

어릴 땐 가족과 함께 낚시를 자주 다녔는데 크고 나서는 꽤 오랜만에 해본 바다낚시였다. When I was young, I often went fishing with my family, but after I was big, it was sea fishing that I hadn't done for quite a while. 다행히 허탕은 치지 않고 돔을 잡으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손맛을 느꼈다. Fortunately, while holding the dome, I felt the taste I had forgotten for a while. 아마 이 맛에 낚시를 하는 것이려니 싶다. Probably, I would like to fish for this taste.

출렁이는 바다 앞에서 작디작은 나 자신을 느꼈다. I felt myself small in front of the rocking sea.

바다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There are many fish in the sea.

이 거대한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 사라진다고 한들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It won't be clear if a fish disappears from this huge sea. 이렇게 생각하면 물고기 한 마리는 의미도, 가치도 없고 그저 허무하게 느껴진다. When you think about it this way, a fish has no meaning or value, and it feels just empty. 노래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The same goes for singing a song.

세상엔 엄청나게 많은 노래가 있고, 노래하는 사람들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There are tons of songs in the world, and there are countless number of people who sing. 나도 그들 중 한 명일 뿐이다. I am just one of them.

나도, 내 노래도 큰 바닷속,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고기 중 한 마리에 불과한 것이다. Neither me nor my song is just one of countless fish in the big sea. 그러나 노래 한 곡, 한 곡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듯 However, just as one song, one song makes us sad and pleases, so one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가 바다를 살아 있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fish, one fish keeps the sea alive and enriches it. 음악의 세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노래가 없듯, 바다에선 모든 물고기가 다 귀한 존재다. As there are no songs that are not valuable in the world of music, all fish are precious in the sea. 땅이 자신의 몸을 열어 작은 씨앗을 품어주듯, 바다가 한 마리의 물고기도 버리지 않듯, Just as the earth opens its body and cultivates a small seed, the sea does not throw away a single fish,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so we live with someone's help.

밤하늘의 별도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수많은 별과 무리 지어 있을 때 더 빛난다. It shines more when it is not alone in the night sky, but when it is in a group with numerous stars. 불안하거나 외로운 감정에 휩싸일 때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고 When you are overwhelmed by anxious or lonely feelings,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밥 한 그릇을 든든하게 먹은 것처럼 힘이 난다. thinking that you are not alone in this world, but with people who love singing, feels like eating a bowl of rice. 그리고 앞으로도 이 힘으로 힘껏 노래하고, 사랑하고, 살아갈 것이다. And in the future, I will continue to sing, love, and live with this power.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 Song Ga-in, a good person next to a good person

송가인. 다시 내 이름을 불러본다. 성은 송이요, 이름은 가인이라. . I call my name again. My last name is Songi, and my first name is Cain.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뜻 외에 아름다운 사람(가인佳人)이라는 의미도 있다. In addition to the meaning of a person who sings, there is also a meaning of a beautiful person (Kain佳人). 아름다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What kind of person is a beautiful person?

외모가 뛰어나거나 재주가 출중한 사람도 아름다운 사람일 터다. People who are excellent in appearance or talented in talent must be beautiful people. 그러나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닐까. But isn't a really beautiful person a'good person'?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꼽아보라면 사람마다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If you count the things you need to live a happy life, each person will make different choices. 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고로 꼽는다. I rank'Meeting with good people' as the best.

간절히 바랐으나 혼자 해내기 어려웠던 꿈을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이루게 되었다. I earnestly hoped for it, but the dream that was difficult to achieve by myself was achieved thanks to meeting good people. 혼자 꾸는 꿈은 나 하나를 바꾸지만 함께 꾸는 꿈은 더 강력한 현실이 되어 우리 모두를 변화시킨다. Dreams that we dream alone change ourselves, but dreams that we dream together become a stronger reality and change us all. 누구나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Everyone wants to meet good people in their lives. How can I meet good people? 가장 정직한 방법은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The most honest way is to be a good person first. 내가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었더니 좋은 사람들이 내 옆으로 와 주었다. Little by little I became a good person, and good people came by my side. 앞으로도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In the future, I want to live as a good person and sing good songs. 가수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Singers are not alone.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You must have skills, but above all, you must have a good relationship.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Singing involves feeling grateful for the people who help me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이들과 동료애를 나누고, sing, sharing fellowship with the people who sing along on the stage, and expressing 내 노래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모든 것이 노래하는 일에 포함된다. gratitude to those who listen to me and listen to my songs.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And there must be sincerity and time.

쌀로 밥을 짓는 일에도 시간이 걸린다. Cooking rice with rice also takes time.

쌀을 씻고 밥물을 얹고 불을 켜고 뜸을 들여야 한다. Wash the rice, put on rice, turn on the heat and cook. 밥물이 많아도 안 되고 불이 너무 세서도 안 된다. There shouldn't be too much rice, and it shouldn't be because the fire is too strong.

배가 고프다고 뜸이 들기도 전에 뚜껑을 열면 설익은 밥이 된다. If you open the lid before you feel hungry, the rice becomes unripe. 밥 한 그릇을 짓는 일에도 이렇게 과정마다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Even if you are making a bowl of rice, you have to pay special attention to each process, but 하물며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 노래를 성의 없이 부를 순 없다. moreover, you cannot sing songs that touch people's hearts without sincerity. 가사 하나하나에 감정을 싣고, 멜로디 한 줄 한 줄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It is natural to put emotions in each lyrics and devote to each line of melody. 지금은 비록 부족함이 많지만 Although there are many shortcomings now, I will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become a better person and sing better songs in the future. 그 길을 가는 데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We will spare no time and effort to go that way.

오래오래 지켜봐주세요. Please watch for a long time.

감사합니다. Thank you.

사랑합니다. Love it.

송가인 올림 Song Ga-in Ollim

여기까지 레오의 책읽는 밤 This is Leo's book reading night

《송가인이어라》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