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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의 책읽는 밤 (Another Audio Book Collection), [KOR/ENG SUB]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사람마다 인품이 있듯 말에도 언품이 있다_이기주 / 책읽어주는 남자 / 오디오북 / 책읽어주는 asmr

[KOR/ENG SUB]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사람마다 인품이 있듯 말에도 언품이 있다_이기주 / 책읽어주는 남자 / 오디오북 / 책읽어주는 asmr

안녕하세요. 오늘 레오의 책읽는 밤 여러분께 읽어드릴 책은 《말의 품격》입니다.

부제로는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인데요.

저자 이기주, 황소북스 출판사에서 펴냈습니다.

이 책은 경청, 공감, 반응, 뒷말, 인향, 소음 등 24개의 키워드를 통해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냅니다. 저자 소개를 간단히 해드리면요,

저자 이기주는 자신을 소개할 때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쓴다고 말하는데요. 고민이 깃든 말과 글에 탐닉한다.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꽃을 올려놓는다.

지은 책으로는 《언어의 온도》 등이 있습니다.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협상, 극단 사이에서 절충점 찾기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겪었던 일이다. 겨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투명하고도 길었다. 바람은 날카로웠다. 창문을 조금만 열어도 칼바람이 달려들었다. 매서운 바람은 건물을 타고 오르면서 창문으로 진입하려는 햇살을 가로막았고 벽에 달라붙어 있던 눈덩이를 잘게 바스러뜨렸다.

부서진 눈송이는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그 흩날림이, 빛의 조각인지 눈의 조각인지 나는 쉽게 구분할 수 없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앞자리에 앉은 한 학생이 창문을 열어 젖혔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이 정면으로 들이닥쳐 얼굴을 때렸다. 누군가 청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 실례합니다. 창문 좀 닫으면 안 될까요?”

“추우세요? 공기가 탁한 것 같은데요. 환기를 좀 시키는 게 어때요?” “환기요? 여기 학생들 대부분이 오돌오돌 떨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찬 공기를 좀 불러들이는 게...”

소모적인 대화가 오갈 듯한 찰나였다.

냉기로 몸을 휘감으려는 청년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창가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괜한 감정 싸움에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그래서 모두가 이득을 보진 못하더라도, 누구 하나 손해를 보지 않을 제안을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 반대편 벽에 창문 하나가 보였다. 외부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아닌 출입구 근처 창문이었다.

찬바람이 우사인 볼트로 빙의해 얼굴을 향해 곧바로 질주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손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쪽 창문 말고 저쪽 창문을 여는 게 어떨까요?”

“네? 음, 그러죠. 어차피 바람만 들어오면 되니까요.”

오래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도서관에서 경험한 작은 협상은 여전히 내 기억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사실 삶 자체가 크고 작은 협상의 연속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직장과 가정에서 연봉과 메뉴 선택, 리모컨 쟁탈전 등을 놓고 누군가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둘러보면 협상을 겁쟁이의 선택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협의와 타협은 고사하고 대화 자체를 거부한 채 적의를 내뿜으며 날카로운 혀와 안광으로 상대의 약점, ‘위크 스폿 weak spot'을 찌르려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평생 전장을 누비며 책략을 쌓은 손무의 견해에 비추어보면, 이런 마음가짐은 상계上計가 아니다. 손무는 “전쟁은 죽음과 삶의 문제이므로 면밀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손자병법》 ‘모공' 편에서는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싸우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최상의 전략임을 강조한 것이다. 손무가 강조한 상책 가운데 하나가 협상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흠집과 맹점을 찾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공세의 대결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과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싸우지 않고 양측 모두가 이기는 방법을 찾는 합세合勢의 대결 말이다. ‘스위트 스폿 sweet spot'이라는 용어가 있다. 원래는 테니스 라켓이나 골프채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을 가리킨다. 골프채의 스위트 스폿으로 공을 쳐야 최대 비거리를 낼 수 있다.

협상학에도 스위트 스폿이 존재한다. 다만 비거리를 최대화하는 게 아니라 협상의 환경을 최적화하려는 역할을 한다. 양측의 이익이 하나로 포개지고 협상 참여자들이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심리 타점心理打點이라고도 한다.

극단 사이에서 절충의 지점을 찾는 일은, 중국 노나라 때 학자 자사子思가 주창한 중용中庸과 맥이 닿아 있다. 여기서 ‘중中'은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도리에 맞는 상태를 일컫는다. ‘용庸'은 보편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성질이다. 그러므로 중용은 한쪽으로 치우지지 아니하고 양극단 사이에서 절충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이를 서구적 시각으로 풀어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중용은 한쪽이 이득을 보면 반대편이 무조건 손해를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다. 이해 당사자 모두가 실리를 챙기는 포지티브섬 positive-sum 게임에 가깝다. 중용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할까.

바다를 떠다니는 배도 중용의 힘으로 파도를 밀쳐내고 물살 위에서 버티는 게 아닐까 싶다. 대개 선박은 출항 전 배 밑부분에 평형수를 집어 넣는다.

파도를 만나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가만히 있던 평형수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서 선박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평형수가 제 위치를 절충하는 덕분에 배가 뒤집히지 않고 순항할 수 있는 것이다. 절충과 협상 과정에서 나름의 전제 조건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무엇일까?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일까? 글쎄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宇宙의 충돌이다. 충돌은 두 주체가 서로 맞부딪치고 맞서는 것이다. 마찰을 일으킨다. 갈등을 낳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내가 당신을 이해할게요”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완벽히 뿌리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오히려 갈등과 다툼질 앞에서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 사실을 업신여기지 않을 때 오해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리고 그 순간,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의 싹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겸상, 함께 온기를 나누는 자리

국내 한 언론사 기자가 세계적 협상 전문가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교수님, 대한민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나라입니다.

남북의 당국자가 만나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답은, 기자가 예상한 답변의 범주를 벗어났다. “글쎄요. 협상 실무자들이 점심을 자주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기자가 되물었다. “네? 점심요?”

“그렇습니다. 서로의 의도를 어림짐작하고 납득할만한 제안을 건네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얘기를 먼저 주고 받는 게 도움이 됩니다. 월드컵이나 스포츠 관련 화젯거리가 좋겠군요. 스무 번쯤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또 서로 사적인 영역도 파악해야 해요. 그런 다음에 제대로 된 협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설명은 기자의 귓속에서 금방 사라지지 않고 한동안 머물렀다.

우리 사회의 온갖 이해와 욕망이 뒤얽힌 문제를 풀려면

당사자들이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밥 먹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기자는 생각했다. 석사와 박사 위에 ‘밥사'라는 학위가 존재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직이나 단체에서 동료를 위해 기꺼이 밥 한 끼 사는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때로는 상식과 지식보다 밥을 먹는 행위인 회식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회식은 비생산적이고 획일적인 단합 대회가 아니라 함께 밥을 먹으며 온기를 나누는 행위 자체를 의미할 것이다. 신문 정치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 중에 ‘식사 정치'라는 것이 있다. 정치인의 식사는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음식 섭취 행위가 아니다. 그들에게 식사는 나름의 정치적 목적과 의미를 겨냥해 힘껏 쏘아 올리는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모든 정치는 밥상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나도는 배경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정치적 고비마다 비장의 보검을 꺼내듯 ‘식사 정치' 카드를 뽑아 들었다. 2013년 3월, 공화당과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를 두고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예산안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의원 12명을 백악관 인근 호텔로 초대했다. 폭설로 인한 교통 체증을 뚫고 거물급 정치인들이 집결 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 비용은 오바마 대통령이 사비를 털어 계산했다.

오바마는 의원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계산서에 사인했다.

정국은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호텔을 나서는 의원들의 입가에는 봄 햇살을 닮은 웃음기가 돌았다. 식사 자리에서 건설적인 대화가 오갔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식사 정치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의 태도는 물론 장소와 방법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메신저가 곧 메시지”라는 말을 곧잘 한다. 상대방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더라도

메시지를 전하는 당사자의 태도와 방법이 적절하면 메시지로서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메시지 장소가 곧 메시지”라고 부연하고 싶다. 메시지와 그것을 전하는 장소는 밥과 밥공기의 관계와 유사하다. 밥맛을 결정하는 것은 밥을 구성하는 쌀과 물만이 아니다. 어떤 용기에 밥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빛을 튕겨낼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느냐, 은은한 백색 바탕에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진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진다. 그릇도 분명 맛을 낸다. 메시지도 이와 비슷하다. 메시지의 내용 못지않게 그것을 표현하는공간과 시간적 배경 또한 메시지의 전달력과 설득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더욱이 동아시아처럼 공동체 구성원처럼 공유하는 배경이 비교적 강한 문화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동일한 시간과 상황을 함께하고 있다는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 토양 위에서 대화의 꽃이 쉬이 피어난다.

특히 겸상은 관계의 문을 여는 중요한 관문이다.

식탁을 마주하고 반찬을 권하거나 집어 건네면서 우리는 일상의 고단함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온기를 느낀다. 식사 자리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혼재하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인생의 중대사 상당수가 식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앞둔 시점에는 한식집에서 상견례를 해야 하고,

기업과 개인은 밥 먹는 자리에서 화해를 모색하거나 갈등을 조정한다. 타인과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 복잡한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자리가 바로 식사인 것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 앞 좌석에서 중년 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엄마야! 밥은 먹었어?” “아니, 아직....”

“밥도 안 먹고 뭐 했어. 어서 챙겨 먹어라!”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이런 대화를 엿들으면,

그 의미가 너무나 맑고 소중해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까지 마음에 오롯이 새기고 싶다. ‘먹다'의 함의가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사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것을 입에 욱여 넣으며 살아간다. 밥만 먹는 게 아니다. 커피도 먹고 술도 먹고 욕도 먹고 어느새 나이도 먹는다. 그러므로 ‘먹다'라는 동사와 가장 가까운 말은 ‘살다'일 것이며, 자식이 밥을 먹었는지 궁금하다는 건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부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밥 먹었냐?”하고 물어보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언젠가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은 상대가 있다면 당장 전화기를 들어 다시 약속을 잡아 보는 건 어떨까.

혹시 아는가. 얼굴을 마주하고 반찬을 권하는 순간

세상살이에 지친 고단함이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지고 식사 자리가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관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

언어가 생명력을 지니려면 그 의미에 어울리는 크기와 무게를 가져야 하고 온당한 과정을 거쳐 상대방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말과 글이 상대방의 눈과 귀에 달라붙어 제구실을 한다. 다음은 지인의 연애담이다.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재미뿐 아니라 의미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친구 J는 어느 날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이상형에 가까운 여인과 마주쳤다. J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한때 장안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초콜릿 CF의 한 장면을 본인이 재연하는 것 같아서 겸연쩍었던 J는 앞이마를 긁적긁적하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어느 역에서 내리세요?”

J는 자신의 말이 그녀의 마음 한복판에 새겨지기를 바랐으나 지나친 욕심이었다. 고전적인 수법은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의 눈으로 J를 쏘아보며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네? 누구시죠? 왜 그러시죠?” J는 포기하지 않았다. 차창 아래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한겨울 추위가 풀리면서 투명한 햇살이 물 위에 한가득 퍼져 있었다. J는 날씨와 절기를 대화의 소재로 끌어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 저기 좀 보세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강의 절반이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녹았네요. 달력을 보니 오늘이 절기상 입춘이더군요.

참, 조선 시대 때는 겨울철에 한강의 얼음을 떠서 동빙고와 서빙고라는 곳에 보관했다고 해요.” “정말요?” “그럼요. 국가 제사용 얼음을 저장한 곳이 동빙고랍니다.

서빙고에는 주로 왕실과 고위 관료들이 쓸 얼음을 저장했죠.” “아, 그랬군요.”

“그나저나 오늘 날씨 참 좋죠? 지하철을 타고 잠실철교를 지날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맑은 날도, 흐린 날도 한강 주변은 늘 나름의 운치가 있는 것 같아요.” J가 죽 벌여놓은 문장과 문장의 이음새가 조악하거나 헐겁지 않았다. 여인의 경계심을 푸는 데도 적잖이 도움이 되는 듯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여인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J는 말을 이어갔다.

“참, 이 이야기만 하고 전 내릴게요. 사실 그동안 2호선을 타고 오가면서 당신을 아홉 번 봤어요. 아홉 번만 봤으면 말을 걸지 않으려 했는데요, 오늘까지 정확히 열 번째 만남이군요. 묘한 인연이 아닐까 싶어서요. 제게 1분만 시간을 내주시겠어요?” “정말인가요? 그럼 1분만...”

여기서 J가 그녀를 정말로 열 번 목격하고 말을 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고 있을 터다.

나는 J가 대화를 전개한 과정을 해부하려 한다.

그는 풍경과 날씨에 대한 감성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이야깃거리를 동원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스몰 토크에 해당한다. 스몰 토크는 “날씨가 정말 좋죠?”처럼 일상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화젯거리다. 낯선 사람과 말을 섞고 관계를 맺는 단계에서 우리는 매번 스몰 토크라는 징검다리를 놓아야 한다. 달리 말해, 스몰 토크는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화젯거리는 빅 토크로 분류된다. 말 그대로 큼직한 말이다. 상대에게 협조를 구하거나 구체적인 행동 변화를 요구할 때 우리는 빅 토크를 활용한다. 빅 토크는 듣는 이의 마음속에서 크고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대화 도중에 꼭 전달하고 싶어 하는 핵심 메시지와 의중이 그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위 이야기에서 만약 J가 날씨와 풍경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 채 무작정 “사실 제가 당신을 열 번 봤습니다. 시간 좀 내주세요”라고 말했다면, 즉 목적성이 다분한 빅 토크를 다짜고짜 휘둘렀다면 어떤 상황이 빚어졌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와 말을 주고받기는커녕 순식간에 치한으로 몰렸을 것이다.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단어 커뮤니케이션의 라틴어 어원은 ‘커뮤니카레'이다. ‘교환하다, 공유하다' 등의 뜻이 담겨 있다.

말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소통은 혼자 할 수 없다.

소통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며 화자와 청자가 공히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때 가능하다. 상대의 귀를 향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내던지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독백만 주고받는 일인지 모른다. 인생은 작은 오해와 인연을 맺거나 풀어가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다만 인생이라는 강은 단번에 건너뛸 수 없다. 사귐도 그렇다. 크고 작은 돌을 내려놓고 그것을 하나씩 밟아가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차근차근 건너가야 한다. 삶과 사람 앞에서 디딜 곳이 없다고 조급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인생과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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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레오의 책읽는 밤 여러분께 읽어드릴 책은 《말의 품격》입니다. Good morning. The book I'm going to read to all of you on Leo's Reading Night is “The Dignity of Words.

부제로는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인데요. The subtitle is'Thinks about words, people, and dignity'.

저자 이기주, 황소북스 출판사에서 펴냈습니다. Author Ki-joo Lee, published by Oxbooks Publishing House.

이 책은 경청, 공감, 반응, 뒷말, 인향, 소음 등 24개의 키워드를 통해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냅니다. This book unravels thoughts about speech, people, and dignity through 24 keywords such as listening, empathy, reaction, backstage, personality, and noise. 저자 소개를 간단히 해드리면요, To briefly introduce the author, the

저자 이기주는 자신을 소개할 때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author Ki- joo Lee introduces himself as a person who writes and creates books when introducing himself.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쓴다고 말하는데요. They say they write about things that have been thrown away or disappearing. 고민이 깃든 말과 글에 탐닉한다.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꽃을 올려놓는다. I indulge in the words and writings that are in my worries. Sometimes, they covertly put flowers on the mother's dressing table.

지은 책으로는 《언어의 온도》 등이 있습니다. He wrote books such as “The Temperature of Language”.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Then let's go into the book.

협상, 극단 사이에서 절충점 찾기 Negotiations, finding a compromise between extremes This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겪었던 일이다. 겨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투명하고도 길었다. is what I experienced in the school library when I was in college. It was winter. That winter was both transparent and long. 바람은 날카로웠다. 창문을 조금만 열어도 칼바람이 달려들었다. The wind was sharp. Even if I opened the window a little, the wind blew up. 매서운 바람은 건물을 타고 오르면서 창문으로 진입하려는 햇살을 가로막았고 The fierce breeze blocked the sunlight from entering the window as it climbed the building and 벽에 달라붙어 있던 눈덩이를 잘게 바스러뜨렸다. shattered the snowball that had stuck to the wall.

부서진 눈송이는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그 흩날림이, 빛의 조각인지 눈의 조각인지 나는 쉽게 구분할 수 없었다. The shattered snowflakes flew in the wind. I couldn't easily tell if the scatter was a piece of light or a piece of snow.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앞자리에 앉은 한 학생이 창문을 열어 젖혔다. Despite the chilly weather, a student sitting in the front seat opened the window and flipped it.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이 정면으로 들이닥쳐 얼굴을 때렸다. 누군가 청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A cold wind that penetrated the bones struck head-on and hit the face. Someone said, staring at the young man. “저, 실례합니다. 창문 좀 닫으면 안 될까요?” “Excuse me. Can I close the window?”

“추우세요? 공기가 탁한 것 같은데요. 환기를 좀 시키는 게 어때요?” “Are you cold? The air seems to be cloudy. How about some ventilation?” “환기요? 여기 학생들 대부분이 오돌오돌 떨고 있는 것 같은데요?” “Ventilation? It seems like most of the students here are trembling?”

“그래도 찬 공기를 좀 불러들이는 게...” “But bringing in some cold air…” It

소모적인 대화가 오갈 듯한 찰나였다. was a moment of exhausting conversation.

냉기로 몸을 휘감으려는 청년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There was a tense tension between the young man who tried to wrap himself in the cold and those who did not. 창가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괜한 감정 싸움에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As I was reading a book by the window, I didn't want to waste my time fighting the useless feelings. 그래서 모두가 이득을 보진 못하더라도, 누구 하나 손해를 보지 않을 제안을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So, even if not everyone could benefit, I thought I should give an offer that no one would lose.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 반대편 벽에 창문 하나가 보였다. I looked around. I saw a window on the wall opposite the table where I was sitting. 외부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아닌 출입구 근처 창문이었다. It was a window near the entrance, not the direction the wind was blowing from outside.

찬바람이 우사인 볼트로 빙의해 얼굴을 향해 곧바로 질주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손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It seemed that the cold wind wouldn't run straight toward the face, possessing Usain Bolt. He said, pointing his hand at the window. “그럼, 이쪽 창문 말고 저쪽 창문을 여는 게 어떨까요?” “Then, how about opening that window instead of this one?”

“네? 음, 그러죠. 어차피 바람만 들어오면 되니까요.” "Yeah? Well, it is. I just need the wind to come in anyway.”

오래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도서관에서 경험한 작은 협상은 여전히 내 기억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Even though it was a long time ago, the little negotiations I experienced at the library on this day still didn't run away from my memory. 사실 삶 자체가 크고 작은 협상의 연속이다. In fact, life itself is a series of big and small negotiations.

좋든 싫든 우리는 직장과 가정에서 연봉과 메뉴 선택, 리모컨 쟁탈전 등을 놓고 누군가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Whether we like it or not, we have to sit face to face with someone at the bargaining table at work and at home over salaries, menu choices, and remote control battles. 하지만 현실을 둘러보면 협상을 겁쟁이의 선택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However, looking at reality, there seem to be a lot of people who regard negotiations as a coward's choice. 협의와 타협은 고사하고 대화 자체를 거부한 채 적의를 내뿜으며 날카로운 혀와 안광으로 상대의 약점, ‘위크 스폿 weak spot'을 찌르려는 사람들 말이다. Those who refused to discuss and compromise, and tried to stab the opponent's weak spot, the'weak spot', with a sharp tongue and eye light while rejecting the dialogue itself. 그러나 평생 전장을 누비며 책략을 쌓은 손무의 견해에 비추어보면, 이런 마음가짐은 상계上計가 아니다. However, in the light of Son Mu's view, who spent his entire life on the battlefield and accumulated tactics, this mindset is not a countervailing attitude. 손무는 “전쟁은 죽음과 삶의 문제이므로 면밀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War is a matter of death and life, so we have to look closely. It is most important to know when to fight and when not to fight.” 또한 《손자병법》 ‘모공' 편에서는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싸우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최상의 전략임을 강조한 것이다. In addition, in the'Pore' section of 《Grandchild Byeongbeop》, he said, "Bujeon is a oyster disease, it is a seonji seonja." He emphasized that defeating opponents without fighting is the best strategy. 손무가 강조한 상책 가운데 하나가 협상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흠집과 맹점을 찾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공세의 대결이 아니라, I think one of the best strategies that Sonmu emphasized is negotiation. It is not an offensive confrontation in which each other's flaws and blind spots are found persistently, but a confrontation in which 서로의 장점과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싸우지 않고 양측 모두가 이기는 방법을 찾는 합세合勢의 대결 말이다. both sides find a way to win without fighting while maximizing each other's strengths and profits. ‘스위트 스폿 sweet spot'이라는 용어가 있다. 원래는 테니스 라켓이나 골프채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을 가리킨다. There is a term'sweet spot'. Originally, it refers to a key part of a tennis racket or golf club. 골프채의 스위트 스폿으로 공을 쳐야 최대 비거리를 낼 수 있다. You can get the maximum distance by hitting the ball with the sweet spot on the golf club.

협상학에도 스위트 스폿이 존재한다. 다만 비거리를 최대화하는 게 아니라 협상의 환경을 최적화하려는 역할을 한다. Sweet spots also exist in bargaining science. However, it does not maximize the flying distance, but plays a role in optimizing the environment for negotiations. 양측의 이익이 하나로 포개지고 협상 참여자들이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심리 타점心理打點이라고도 한다. It is also referred to as a psychological rout point because it is the point where the interests of both sides are superimposed and the participants in the negotiations form a psychological consensus.

극단 사이에서 절충의 지점을 찾는 일은, 중국 노나라 때 학자 자사子思가 주창한 중용中庸과 맥이 닿아 있다. Finding the point of compromise between the extremes is in line with the middle ages advocated by the scholar Ja Ji-Chi during the Chinese Roh Dynasty. 여기서 ‘중中'은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도리에 맞는 상태를 일컫는다. ‘용庸'은 보편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성질이다. Here,'middle middle' refers to a state that fits the way without being too much or too short. 'Dragon' is a universal and unchanging quality. 그러므로 중용은 한쪽으로 치우지지 아니하고 양극단 사이에서 절충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Therefore, moderation refers to an attitude of compromise between the extremes, not to one side. 이를 서구적 시각으로 풀어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It is easier to understand if you try to solve this from a western perspective.

중용은 한쪽이 이득을 보면 반대편이 무조건 손해를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다. Mediation is not a zero-sum game in which one side gains and the other side unconditionally loses. 이해 당사자 모두가 실리를 챙기는 포지티브섬 positive-sum 게임에 가깝다. It is more of a positive-sum game in which all stakeholders take advantage of the money. 중용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Moderate does not imply mechanical neutrality.

중용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Moderate means not simply to sit down in the middle, but to be reasonably located according to the situation and conditions. 한마디로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할까. In a word, would it be a flexible shake?

바다를 떠다니는 배도 중용의 힘으로 파도를 밀쳐내고 물살 위에서 버티는 게 아닐까 싶다. It seems that even a ship floating in the sea pushes off the waves with the power of moderation and stands on the current. 대개 선박은 출항 전 배 밑부분에 평형수를 집어 넣는다. Usually ships put ballast water in the bottom of the ship before departure.

파도를 만나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가만히 있던 평형수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서 선박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When the ship is inclined to one side by encountering a wave, the ballast water that has been still moves in the opposite direction and takes the center of gravity of the ship. 평형수가 제 위치를 절충하는 덕분에 배가 뒤집히지 않고 순항할 수 있는 것이다. The ballast water compromises its position, allowing the ship to cruise without overturning. 절충과 협상 과정에서 나름의 전제 조건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무엇일까?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일까? I also think that there will be some prerequisites in the process of compromise and negotiation. What would it be? Is it a perfect understanding of the other person? 글쎄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宇宙의 충돌이다. I don't know. The meeting of two different people is a collision of different universes. 충돌은 두 주체가 서로 맞부딪치고 맞서는 것이다. 마찰을 일으킨다. 갈등을 낳는다. Conflict is when two subjects collide and confront each other. It causes friction. It creates conflict.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내가 당신을 이해할게요”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완벽히 뿌리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It's true that the words "I'll understand you", which are spoken towards someone with a different mind to me, are difficult to take root completely in the reality we live in. 오히려 갈등과 다툼질 앞에서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 사실을 업신여기지 않을 때 오해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Rather, the possibility of misunderstanding decreases when we acknowledge and accept the fact that we may not be able to understand each other in the face of conflict and quarrels, and when we do not disrespect that fact. 그리고 그 순간,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의 싹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And at that moment, maybe in the corner of your mind, a human understanding of each other may sprout. 겸상, 함께 온기를 나누는 자리 Sickle, a place to share warmth A

국내 한 언론사 기자가 세계적 협상 전문가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reporter from a domestic media company asked at a meeting with Professor Stewart Diamond, a world-renowned negotiation expert.

“교수님, 대한민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나라입니다. “Professor, Korea is a country divided into North and South.

남북의 당국자가 만나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What should we pay attention to in the process of meeting and negotiating with the officials of the two Koreas?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What can I do to achieve results?”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답은, 기자가 예상한 답변의 범주를 벗어났다. Professor Stuart Diamond's response was outside the scope of the reporter's expected response. “글쎄요. 협상 실무자들이 점심을 자주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I do not know. I want the negotiators to have lunch more often.”

눈이 휘둥그레진 기자가 되물었다. “네? 점심요?” Asked the reporter with wide eyes. "Yeah? Lunch?”

“그렇습니다. 서로의 의도를 어림짐작하고 납득할만한 제안을 건네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얘기를 먼저 주고 받는 게 도움이 됩니다. "That's right. In order to guess each other's intentions and give convincing suggestions, it is helpful to exchange everyday conversations first. 월드컵이나 스포츠 관련 화젯거리가 좋겠군요. 스무 번쯤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It would be nice to have a topic related to the World Cup or sports. After eating about 20 times, you should naturally approach 또 서로 사적인 영역도 파악해야 해요. 그런 다음에 제대로 된 협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each other and identify areas that are private to each other. Then you have to start the right negotiations.” 다이아몬드 교수의 설명은 기자의 귓속에서 금방 사라지지 않고 한동안 머물렀다. Professor Diamond's explanation did not disappear quickly in the reporter's ear, but stayed there for a while.

우리 사회의 온갖 이해와 욕망이 뒤얽힌 문제를 풀려면 The reporter thought that in

당사자들이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밥 먹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기자는 생각했다. order to solve the problem of all kinds of interests and desires in our society, the parties concerned should start eating with their heads at the table. 석사와 박사 위에 ‘밥사'라는 학위가 존재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There is a joke that there is a degree called'Babsa' above the master's and doctor's. 그도 그럴 것이 조직이나 단체에서 동료를 위해 기꺼이 밥 한 끼 사는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He will be remembered as a person who is willing to buy a meal for a colleague in an organization or group. 그리고 때로는 상식과 지식보다 밥을 먹는 행위인 회식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And sometimes, a drinking party, the act of eating rice, exerts more power than common sense and knowledge. 물론 여기서 회식은 비생산적이고 획일적인 단합 대회가 아니라 함께 밥을 먹으며 온기를 나누는 행위 자체를 의미할 것이다. Of course, the drinking party here is not an unproductive and uniform competition, but rather an act of eating together and sharing warmth. 신문 정치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 중에 ‘식사 정치'라는 것이 있다. One of the expressions often seen in newspaper politics is'meal politics'. 정치인의 식사는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음식 섭취 행위가 아니다. A politician's diet is not simply an act of eating food to satisfy hunger. 그들에게 식사는 나름의 정치적 목적과 의미를 겨냥해 힘껏 쏘아 올리는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For them, meals are like sharp arrows aimed at their political purpose and meaning. “모든 정치는 밥상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나도는 배경이기도 하다. It is also the background of the saying that “all politics begins at the table”.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정치적 고비마다 비장의 보검을 꺼내듯 ‘식사 정치' 카드를 뽑아 들었다. U.S. President Barack Obama also drew a ``meal politics'' card as if drawing a treasure trove at every political turn. 2013년 3월, 공화당과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를 두고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In March 2013, the Republican Party and the Democratic Party roared over the budget, as if they were eating each other. 예산안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의원 12명을 백악관 인근 호텔로 초대했다. To reach a budget agreement, President Obama invited 12 Republican lawmakers to a hotel near the White House. 폭설로 인한 교통 체증을 뚫고 거물급 정치인들이 집결 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Big-level politicians gathered through the traffic jam caused by the heavy snow and ate dinner together. 식사 비용은 오바마 대통령이 사비를 털어 계산했다. The cost of meals was calculated by President Obama through private expenses.

오바마는 의원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계산서에 사인했다. Obama signed the bill directly in front of lawmakers.

정국은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호텔을 나서는 의원들의 입가에는 봄 햇살을 닮은 웃음기가 돌았다. Jungkook was frozen like the weather, but the lips of the lawmakers leaving the hotel had a smile resembling the spring sunlight. 식사 자리에서 건설적인 대화가 오갔기 때문이다. This is because constructive conversations come and go at the dining room.

오바마의 식사 정치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의 태도는 물론 장소와 방법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Obama's dietary politics gives us something to think about where and how, as well as the attitude of the person who conveys the message.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메신저가 곧 메시지”라는 말을 곧잘 한다. Communication experts are very good at saying, "The messenger is the message." 상대방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더라도 It means that even if you don't deliver a special message to the other party, if

메시지를 전하는 당사자의 태도와 방법이 적절하면 메시지로서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the attitude and method of the person who delivers the message are appropriate, it is valuable as a message.

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메시지 장소가 곧 메시지”라고 부연하고 싶다. I would like to go one step further and emphasize that “the place of the message is the message”. 메시지와 그것을 전하는 장소는 밥과 밥공기의 관계와 유사하다. The message and the place to convey it are similar to the relationship between rice and rice bowl. 밥맛을 결정하는 것은 밥을 구성하는 쌀과 물만이 아니다. It is not only rice and water that make up rice that determines the taste of rice. 어떤 용기에 밥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It is important what container you put the rice in.

빛을 튕겨낼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느냐, The taste of the rice varies depending on whether it is served in a 은은한 백색 바탕에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진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진다. stainless steel bowl that shines bright enough to bounce off light, or a bowl with colorful floral patterns on a subtle white background. 그릇도 분명 맛을 낸다. 메시지도 이와 비슷하다. The bowl also tastes good. The message is similar. 메시지의 내용 못지않게 그것을 표현하는공간과 시간적 배경 또한 메시지의 전달력과 설득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As with the content of the message, the space and temporal background to express it also act as important factors that influence the power of delivery and persuasion of the message. 더욱이 동아시아처럼 공동체 구성원처럼 공유하는 배경이 비교적 강한 문화에서는 Moreover, in a culture with a relatively strong background shared by members of a community, such as East Asia,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동일한 시간과 상황을 함께하고 있다는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when an emotional consensus is formed that the speaker and the listener share the same time and situation, 그 토양 위에서 대화의 꽃이 쉬이 피어난다. the flower of dialogue easily blooms on the soil.

특히 겸상은 관계의 문을 여는 중요한 관문이다. In particular, sickness is an important gateway that opens the door to relationships.

식탁을 마주하고 반찬을 권하거나 집어 건네면서 우리는 일상의 고단함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온기를 느낀다. As we face the table and offer or hand over side dishes, we share our daily hardships and feel the other's warmth. 식사 자리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혼재하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The dining room is a space and time where public and private areas are mixed. 인생의 중대사 상당수가 식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Many of life's major events are often done on the table. 결혼을 앞둔 시점에는 한식집에서 상견례를 해야 하고, At the time of marriage, a Korean restaurant is required to conduct a mutual meeting, and

기업과 개인은 밥 먹는 자리에서 화해를 모색하거나 갈등을 조정한다. companies and individuals seek reconciliation or reconcile conflict at the table. 타인과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 복잡한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자리가 바로 식사인 것이다. Meals are the time to secure sympathy with others and the place that serves as a lubricant for complex human relationships.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 앞 좌석에서 중년 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On the way to the bus, I heard a middle-aged woman's voice from the seat in front of her.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He seemed to be calling his son.

“엄마야! 밥은 먹었어?” “아니, 아직....” “Mom! Did you eat?" “No, not yet...”

“밥도 안 먹고 뭐 했어. 어서 챙겨 먹어라!” “I didn't even eat and did something. Hurry and eat!”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이런 대화를 엿들으면, When I overheard such a conversation while using public transportation,

그 의미가 너무나 맑고 소중해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까지 마음에 오롯이 새기고 싶다. the meaning is so clear and precious that I want to engrave the space between words and words in my heart. ‘먹다'의 함의가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This is because the implication of'to eat' is not so simple.

우리는 식사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것을 입에 욱여 넣으며 살아간다. We live with countless things in our mouths at the dining table. 밥만 먹는 게 아니다. 커피도 먹고 술도 먹고 욕도 먹고 어느새 나이도 먹는다. I am not just eating rice. I eat coffee, drink, swear, and get older. 그러므로 ‘먹다'라는 동사와 가장 가까운 말은 ‘살다'일 것이며, Therefore, the closest word to the verb'to eat' would be'to live', and 자식이 밥을 먹었는지 궁금하다는 건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wondering if a child ate food would mean wondering if he or she is living well. 우리 부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I think this is the background that

“밥 먹었냐?”하고 물어보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our parents call their children and ask, "Did you eat?" 언젠가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은 상대가 있다면 당장 전화기를 들어 다시 약속을 잡아 보는 건 어떨까. If there is someone who hung up on the phone while saying, "Let's eat once," why don't you pick up the phone and make an appointment again?

혹시 아는가. 얼굴을 마주하고 반찬을 권하는 순간 Do you know? The moment you face your face and recommend a side dish

세상살이에 지친 고단함이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지고 , the exhausted feelings of the world disappear like snow melting on a spring day, and the 식사 자리가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dining room may be a time to fill your heart, not just a meal. 관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 Relationships, not making, but building up For

언어가 생명력을 지니려면 그 의미에 어울리는 크기와 무게를 가져야 하고 온당한 과정을 거쳐 상대방에게 전해져야 한다. language to have vitality, it must have a size and weight suitable for its meaning, and must be passed on to the other party through a reasonable process. 그래야만 말과 글이 상대방의 눈과 귀에 달라붙어 제구실을 한다. Only then will the words and writings stick to the other's eyes and ears and make a difference. 다음은 지인의 연애담이다. The following is an acquaintance's love story.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재미뿐 아니라 의미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I hope I can find meaning as well as fun while looking at the story.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친구 J는 어느 날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이상형에 가까운 여인과 마주쳤다. My friend J, who had discharged the army and was preparing to return to school, encountered a woman who was close to her ideal type on subway line 2. J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J took courage and decided to talk to him.

한때 장안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초콜릿 CF의 한 장면을 본인이 재연하는 것 같아서 겸연쩍었던 J는 앞이마를 긁적긁적하며 말했다. J, who was humble because he seemed to replay a scene from a chocolate CF that once aroused a topic in the market, said, scratching his forehead. “실례합니다. 어느 역에서 내리세요?” "Excuse me. Which station do you get off at?”

J는 자신의 말이 그녀의 마음 한복판에 새겨지기를 바랐으나 지나친 욕심이었다. 고전적인 수법은 통하지 않았다. J wanted her words to be in the middle of her heart, but it was too much greed. The classic trick didn't work.

그녀는 매의 눈으로 J를 쏘아보며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네? 누구시죠? 왜 그러시죠?” She stared at J with the hawk's eye and frowned heavily on her eyebrows. "Yeah? Who are you? Why do you do that?” J는 포기하지 않았다. 차창 아래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J did not give up. I looked down at the river flowing under the car window.

한겨울 추위가 풀리면서 투명한 햇살이 물 위에 한가득 퍼져 있었다. As the midwinter cold had eased, transparent sunlight spread over the water. J는 날씨와 절기를 대화의 소재로 끌어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J brought the weather and seasons to the subject of the conversation and talked about it. “아, 저기 좀 보세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강의 절반이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녹았네요. “Oh, look over there. Not long ago, half of the Han River was covered with thick ice, but now it's almost completely melted. 달력을 보니 오늘이 절기상 입춘이더군요. Looking at the calendar, today is the season of Ipchun.

참, 조선 시대 때는 겨울철에 한강의 얼음을 떠서 동빙고와 서빙고라는 곳에 보관했다고 해요.” Oh, it is said that during the Joseon Dynasty, ice from the Han River was scooped and stored in Dongbinggo and Servinggo in winter.” “정말요?” “그럼요. 국가 제사용 얼음을 저장한 곳이 동빙고랍니다. "really?" "of course. Dongbingo is the place where ice used for national festivals is stored.

서빙고에는 주로 왕실과 고위 관료들이 쓸 얼음을 저장했죠.” “아, 그랬군요.” Servinggoes mainly stored ice for the royal family and for high-ranking officials.” “Oh, that's it.”

“그나저나 오늘 날씨 참 좋죠? 지하철을 타고 잠실철교를 지날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By the way, is the weather so nice today? I feel it every time I take the subway and pass Jamsil Railway Bridge, and even on 맑은 날도, 흐린 날도 한강 주변은 늘 나름의 운치가 있는 것 같아요.” sunny and cloudy days, the surrounding Han River always seems to have its own taste.” J가 죽 벌여놓은 문장과 문장의 이음새가 조악하거나 헐겁지 않았다. J's sentence and the seam of the sentence were not coarse or loose. 여인의 경계심을 푸는 데도 적잖이 도움이 되는 듯했다. There seemed to be a lot of help in releasing the woman's alertness.

잠자코 듣고 있던 여인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A faint flower of laughter bloomed on the face of the woman who was listening silently. J는 말을 이어갔다. J continued.

“참, 이 이야기만 하고 전 내릴게요. 사실 그동안 2호선을 타고 오가면서 당신을 아홉 번 봤어요. “Well, just tell this story and I'll get off. In fact, I've seen you nine times while riding on Line 2. 아홉 번만 봤으면 말을 걸지 않으려 했는데요, 오늘까지 정확히 열 번째 만남이군요. If I only saw it nine times, I tried not to talk, but this is exactly the tenth meeting until today. 묘한 인연이 아닐까 싶어서요. 제게 1분만 시간을 내주시겠어요?” I wonder if it's a strange relationship. Could you please give me a minute?” “정말인가요? 그럼 1분만...” “Really? Then just one minute...” It

여기서 J가 그녀를 정말로 열 번 목격하고 말을 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doesn't matter if J really witnessed and spoke to her ten times here. 사실인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고 있을 터다. Only you will know if it is true or not.

나는 J가 대화를 전개한 과정을 해부하려 한다. I try to dissect the process by which J unfolds the conversation.

그는 풍경과 날씨에 대한 감성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이야깃거리를 동원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He started the conversation by mobilizing stories that are naturally exchanged and exchanged in everyday life, like the sensibility of the landscape and weather. 이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스몰 토크에 해당한다. This is the small talk that communication experts often talk about. 스몰 토크는 “날씨가 정말 좋죠?”처럼 일상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화젯거리다. Small Talk is a topic that naturally appears in everyday conversations, such as "Isn't the weather really good?" 낯선 사람과 말을 섞고 관계를 맺는 단계에서 우리는 매번 스몰 토크라는 징검다리를 놓아야 한다. At the stage of mixing and establishing relationships with strangers, we have to put on the stepping stone of Small Talk every time. 달리 말해, 스몰 토크는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In other words, Small Talk is the beginning of all human relationships.

목적의식이 뚜렷한 화젯거리는 빅 토크로 분류된다. 말 그대로 큼직한 말이다. The topic with a clear sense of purpose is classified as Big Talk. It's literally a big word. 상대에게 협조를 구하거나 구체적인 행동 변화를 요구할 때 우리는 빅 토크를 활용한다. When we ask for cooperation or specific behavior changes, we use Big Talk. 빅 토크는 듣는 이의 마음속에서 크고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Big Talk is accepted loudly and heavily in the mind of the listener. 우리가 대화 도중에 꼭 전달하고 싶어 하는 핵심 메시지와 의중이 그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It is because the core message and intention that we want to convey in the middle of the conversation are melted in it. 여기서 잠깐, 위 이야기에서 만약 J가 날씨와 풍경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 채 무작정 Wait a minute here, in the above story, if J skipped mentions of the weather and landscape, he said, “사실 제가 당신을 열 번 봤습니다. 시간 좀 내주세요”라고 말했다면, “In fact, I've seen you ten times. Please take some time.” In 즉 목적성이 다분한 빅 토크를 다짜고짜 휘둘렀다면 어떤 상황이 빚어졌을까? other words, what would have happened if the purposeful Big Talk was swung over? 모르긴 몰라도, 그녀와 말을 주고받기는커녕 순식간에 치한으로 몰렸을 것이다. I don't know, but instead of talking to her, she would have been driven by molestation in an instant.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단어 커뮤니케이션의 라틴어 어원은 ‘커뮤니카레'이다. The Latin etymology of the word communication, meaning'communication' is'communicure'. ‘교환하다, 공유하다' 등의 뜻이 담겨 있다. It contains meanings such as'to exchange, to share'.

말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소통은 혼자 할 수 없다. You can speak alone, but you cannot communicate alone.

소통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며 화자와 청자가 공히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때 가능하다. Communication is with someone, and it is possible when the speaker and listener find a point where they can communicate with each other. 상대의 귀를 향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내던지는 대화는, It is not known that a conversation in which you unilaterally throw out what you want to say to the other person's ears 대화가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독백만 주고받는 일인지 모른다. is not a conversation, but a mutual exchange of monologues. 인생은 작은 오해와 인연을 맺거나 풀어가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There is a saying that life is a matter of establishing or solving small misunderstandings and ties. 다만 인생이라는 강은 단번에 건너뛸 수 없다. 사귐도 그렇다. However, the river of life cannot be skipped at once. So is the relationship. 크고 작은 돌을 내려놓고 그것을 하나씩 밟아가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차근차근 건너가야 한다. You have to put down the big and small stones, step on them one by one, and cross them step by step from one side to another. 삶과 사람 앞에서 디딜 곳이 없다고 조급할 이유가 없다. There is no reason to be impatient that there is no place to step in front of life and people.

어차피 인생과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After all, life and relationships are not making, but buil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