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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운수 좋은 날 현진건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운수 좋은 날 현진건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한박자 쉬어 가는 곳

피어 노벨라예요

노벨라가 읽어드리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들으시면서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눈은 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 인력거꾼 김첨지에겐

오랫만에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곳도 문 밖은 아니지만

문 안에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해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전

둘째 번에 오십전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은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짜리 백동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 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때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란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밥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는 아니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나 충실했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기는 커녕

옆으로 눕지 못하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싶다

병이 이토록 심해지기는

열흘전에 조밥을 먹고 체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랫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그의 아내가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만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까 처박질하더니

저녁부터 가슴이 땡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흡뜨고 괴로와했다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조랑복은 어쩔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질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흡뜬 눈은 조금 바로 돌아 왔건만

이슬이 맺혔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했다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조밥도 못 먹는 주제에

설렁탕은 또 처먹고 눈 돌아가게

라고 야단을 쳤지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세살먹이 개똥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 첨지의 마음은 푼푼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주머니가 다 된 목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지는

보자마자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학생이

겨울방학이라 귀향하려는 것이겠지

오늘 가기로 작정은 했으나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 첨지를 보고 뛰어나온 것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왜 구두를 채 신지 못해 질질 끌고

비록 낡은 양복일망정

비를 온통 맞으며 김첨지를 뒤쫓아 나왔겠는가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첨지는 잠깐 주저했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먼 곳을 철벅거리고 가기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그만 만족 했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때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겼다

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름을 받았을 때

환자는 뼈만 남은 얼굴에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집에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걸그렁했다

그때에 김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따 젠장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정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자는 말을 들은 순간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했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든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쇼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랐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일 제이의 행운이 겹친 것보다도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생각했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올시다 릿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가 넘는답니다

또 이렇게 진날은 좀 더 주셔야지요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이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거뿐했다

달음질을 한다기보단 거의 나는 듯했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구르는게 아니라

마치 얼음을 지쳐 나가는 스케이트 처럼

미끄러져 가는 듯했다

언 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했지만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가 무거워 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 자기를 노리는 듯했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 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러시우 기차 놓치겠구먼

인력거에 탄 학생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어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첨지는 인력거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김첨지는 또 다시 달음질했다

집이 차차 멀어 질수록 김첨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했다

다리를 빨리 놀려야만

쉴새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랄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손에 쥐어보니

말마따나 십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 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안 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쇼

라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밖이었다

노동으로 흐른 땀이 식자

굶주린 창자에서 또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시작하니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지

절절히 느껴졌다

정거장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

이 비를 맞으면서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가야 한담

에이 빌어먹을 비가 왜 남의 상판 을 팍팍때려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 게걸 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으니

그것은 이러고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차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쌀이 무서우니

정거장 바로 앞에 섰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에도 여러 번 해 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 앞 전차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지게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했다

얼마가 지나 기차가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는 김첨지의 눈엔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아니면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요

그 여학생인지 만지가

한참 동안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첨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김첨지는 거의 구걸하는 거지처럼

연해연방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가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손을 댔다

왜 이래 귀찮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김첨지는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전차가 왔다

김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전차가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미처 타지 못한 손님 하나가 있었다

굉장히 큰 가방을 들고 있는걸 보면

아마 붐비는 차 안에 짐이 크다고

차장에게 밀려 내려온 눈치였다

김첨지는 다가갔다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한동안 값으로 승강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면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면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건만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 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며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인 듯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방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가지고 이 진땅에 어찌 가노

라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할 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했다

흐리고 비 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하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 하다

창경원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은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췄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 갈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웠다

그런데 이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고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리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을 마주 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이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했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폈다

그 모습은 마치

자기 집

곧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 다고

구해 다고 하는 듯했다

그때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그의 친구 치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찐 얼굴은 주홍이 덧는 듯하고

온 턱과 뺨이 시커멓게 구레나룻으로 덮여서

노르탱탱한 얼굴에 바짝 말라 여기저기 고랑이 패고

수염도 턱밑에만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김첨지의 풍채와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김첨지

자네 문안에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돈 많이 벌었을테니 한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집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했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 준 은인이나 되는 듯 고맙기도 했다

자네는 벌써 한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오늘 재미가 좋아 보이

김첨지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아따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웬 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생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했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때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구

제육 간 콩팥 북어 빈대떡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한다면

거기 있는 모든 음식을

깡그리 집어 삼켜도 시원치 않겠지만

우선은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했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들이라 했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켜고 말았다

셋째 그릇을 받아 들었을 때

데우던 막걸리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워낙에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했다

계속해서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했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배기 두 잔을 부어라 했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는데

돈이 사십 전일세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다구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

괜찮다 괜찮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그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 치며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됨직한 빡빡머리에게

이놈아 왜 술을 안 부어

하고 야단을 쳤다

빡빡이는 희희 웃으며

치삼에게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보냈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 내며

이런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아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그는 허리춤을 훔칫훔칫하더니

일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그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바람에 은전 몇 푼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 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며 더욱 성을 낸다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이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 하고 울었다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 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갑자기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들의 눈은 모두 김첨지에게로 몰렸다

그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님을 태우고 정거장에 가질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마님인지 여학생 이신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 타 시랍시요

하고 손가방을 받으랴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홱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같은 소리를 냈다

모두들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 굴어

어이구 소리가 처신도 없지 허허허

웃음 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웃음 소리들이 사라도 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난리를 피우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계속 코를 들이마시면서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엣기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김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진 얼굴로

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치삼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때같이 살아만 있다구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자네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마냥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는데

치삼이도 불안을 느낀 듯

김첨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첨지는 화를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 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 어치를 채워서

곱배기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도착했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에다

또 집 전체를 세든 것도 아니고

안채에서 뚝 떨어진 행랑방 한 간을 빌려 든 것인데

물을 길어 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때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을 것이다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아니 깨뜨린다기 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 하는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른지 모른다

어쩌면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런 난장맞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느낌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떨어진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자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 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년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하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했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 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 했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 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봐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거 봐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이봐 죽은게야 왜 말이 없어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로 죽었나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알이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장만 보느냐구

하는 말 끝엔 목이 메였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셨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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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박자 쉬어 가는 곳 Where to take a break

피어 노벨라예요 I'm Peer Novella

노벨라가 읽어드리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들으시면서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The cloudy arms looked like they were going to snow.

눈은 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 인력거꾼 김첨지에겐 For Kim Chum-ji, an unknown rickshaw puller, it was a day to remember.

오랫만에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곳도 문 밖은 아니지만

문 안에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When you enter the door, the answer is to send the mana of the previous house to the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해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At the stop, you'll see the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I'm sending you a near-empty glance, and then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전

둘째 번에 오십전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It wasn't so ugly in the morning.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It's so bad luck that the

근 열흘 동안 돈은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짜리 백동화 서 푼 Dime

또는 다섯 푼이 찰깍 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때 Or when a penny lands in your palm with a snap.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란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수 있거니와 You can pour a glass of mojito down your curly neck.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His wife's coughing fit is already over a month old.

조밥도 굶기를 밥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Of course, I'm not a drug addict.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는 아니나 It's not a bad idea if you're going to use it.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He gives the bottle a pill and sends it on its way.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나 충실했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기는 커녕 Instead of lying down and getting up

옆으로 눕지 못하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싶다

병이 이토록 심해지기는

열흘전에 조밥을 먹고 체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랫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I bought a bushel of rice and a dozen cords of wood.

그의 아내가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Unripe

그만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까 처박질하더니 I was like, "Who's going to take this?

저녁부터 가슴이 땡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흡뜨고 괴로와했다 I squeezed my eyes shut in agony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At that point, Kim Chum-ji threw a temper tantrum and said

에이 조랑복은 어쩔 수가 없어 I can't help myself with this pony suit.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질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흡뜬 눈은 조금 바로 돌아 왔건만

이슬이 맺혔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했다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조밥도 못 먹는 주제에

설렁탕은 또 처먹고 눈 돌아가게

라고 야단을 쳤지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세살먹이 개똥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 첨지의 마음은 푼푼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주머니가 다 된 목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지는

보자마자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학생이

겨울방학이라 귀향하려는 것이겠지

오늘 가기로 작정은 했으나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 첨지를 보고 뛰어나온 것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왜 구두를 채 신지 못해 질질 끌고

비록 낡은 양복일망정

비를 온통 맞으며 김첨지를 뒤쫓아 나왔겠는가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첨지는 잠깐 주저했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먼 곳을 철벅거리고 가기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그만 만족 했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때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겼다

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름을 받았을 때

환자는 뼈만 남은 얼굴에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집에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걸그렁했다

그때에 김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따 젠장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정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자는 말을 들은 순간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했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든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쇼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랐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일 제이의 행운이 겹친 것보다도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생각했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올시다 릿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가 넘는답니다

또 이렇게 진날은 좀 더 주셔야지요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이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거뿐했다

달음질을 한다기보단 거의 나는 듯했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구르는게 아니라

마치 얼음을 지쳐 나가는 스케이트 처럼

미끄러져 가는 듯했다

언 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했지만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가 무거워 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 자기를 노리는 듯했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 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러시우 기차 놓치겠구먼

인력거에 탄 학생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어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첨지는 인력거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김첨지는 또 다시 달음질했다

집이 차차 멀어 질수록 김첨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했다

다리를 빨리 놀려야만

쉴새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랄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손에 쥐어보니

말마따나 십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 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안 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쇼

라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밖이었다

노동으로 흐른 땀이 식자

굶주린 창자에서 또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시작하니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지

절절히 느껴졌다

정거장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

이 비를 맞으면서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가야 한담

에이 빌어먹을 비가 왜 남의 상판 을 팍팍때려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 게걸 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으니

그것은 이러고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차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쌀이 무서우니

정거장 바로 앞에 섰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에도 여러 번 해 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 앞 전차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지게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했다

얼마가 지나 기차가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는 김첨지의 눈엔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아니면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요

그 여학생인지 만지가

한참 동안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첨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김첨지는 거의 구걸하는 거지처럼

연해연방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가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손을 댔다

왜 이래 귀찮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김첨지는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전차가 왔다

김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전차가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미처 타지 못한 손님 하나가 있었다

굉장히 큰 가방을 들고 있는걸 보면

아마 붐비는 차 안에 짐이 크다고

차장에게 밀려 내려온 눈치였다

김첨지는 다가갔다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한동안 값으로 승강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면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면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건만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 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며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인 듯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방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가지고 이 진땅에 어찌 가노

라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할 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했다

흐리고 비 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하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 하다

창경원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은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췄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 갈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웠다

그런데 이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고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리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을 마주 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이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했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폈다

그 모습은 마치

자기 집

곧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 다고

구해 다고 하는 듯했다

그때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그의 친구 치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찐 얼굴은 주홍이 덧는 듯하고

온 턱과 뺨이 시커멓게 구레나룻으로 덮여서

노르탱탱한 얼굴에 바짝 말라 여기저기 고랑이 패고

수염도 턱밑에만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김첨지의 풍채와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김첨지

자네 문안에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돈 많이 벌었을테니 한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집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했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 준 은인이나 되는 듯 고맙기도 했다

자네는 벌써 한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오늘 재미가 좋아 보이

김첨지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아따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웬 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생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했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때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구

제육 간 콩팥 북어 빈대떡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한다면

거기 있는 모든 음식을

깡그리 집어 삼켜도 시원치 않겠지만

우선은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했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들이라 했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켜고 말았다

셋째 그릇을 받아 들었을 때

데우던 막걸리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워낙에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했다

계속해서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했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배기 두 잔을 부어라 했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는데

돈이 사십 전일세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다구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

괜찮다 괜찮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그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 치며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됨직한 빡빡머리에게

이놈아 왜 술을 안 부어

하고 야단을 쳤다

빡빡이는 희희 웃으며

치삼에게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보냈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 내며

이런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아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그는 허리춤을 훔칫훔칫하더니

일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그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바람에 은전 몇 푼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 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며 더욱 성을 낸다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이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 하고 울었다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 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갑자기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들의 눈은 모두 김첨지에게로 몰렸다

그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님을 태우고 정거장에 가질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마님인지 여학생 이신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 타 시랍시요

하고 손가방을 받으랴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홱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같은 소리를 냈다

모두들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 굴어

어이구 소리가 처신도 없지 허허허

웃음 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웃음 소리들이 사라도 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난리를 피우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계속 코를 들이마시면서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엣기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김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진 얼굴로

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치삼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때같이 살아만 있다구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자네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마냥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는데

치삼이도 불안을 느낀 듯

김첨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첨지는 화를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 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 어치를 채워서

곱배기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도착했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에다

또 집 전체를 세든 것도 아니고

안채에서 뚝 떨어진 행랑방 한 간을 빌려 든 것인데

물을 길어 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때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을 것이다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아니 깨뜨린다기 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 하는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른지 모른다

어쩌면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런 난장맞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느낌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떨어진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자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 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년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하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했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 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 했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 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봐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거 봐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이봐 죽은게야 왜 말이 없어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로 죽었나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알이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장만 보느냐구

하는 말 끝엔 목이 메였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셨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