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 use cookies to help make LingQ better. By visiting the site, you agree to our cookie policy.


image

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까막잡기 현진건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ㅣ책읽어주는 여자

까막잡기 현진건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ㅣ책읽어주는 여자

그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수수께끼였다

눈을 감긴 이는 저의 애인과 함께

이 음악회에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든지

계단 밑에서 남몰래 만나기로 무슨 신호 같은 것 예를 들면

눈짓 같은 걸로 약속을 했을 것이다

남자가 그 신호를 몰랐거나

아니면 남자의 발길이 더디고 여자의 발길은 빨라서

계단 아래서 학수가 어름어름하는 걸 보고

꼭 제 애인인 줄로만 생각하고

아양피움으로 까막잡기를 한 것 일테지

이윽고 그계단을 다시 올라와서

음악회에 통한 문을 여는 학수는

제 얼굴이 여지없이 못생긴 것과

여성에 대한 미움을 씻은 듯이 잊어버렸다

전등불이 급작스럽게 밝아지며 모든 사람이

저에게 호의 있는 듯한 미소를 건네는 듯했다

바이올린은 이미 끝났다

한 서양 여인이 뽀얀 손가락을 북같이 쏘대이게 하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전 같으면 시덥지 않을 그 악기 소리가

가슴 속에 무슨 은실같은 것을 스쳐서

어느 결엔지 멋질린 발길이 춤추듯이 박자를 맞춘다

그는 바로 여자석의 옆 좌석 줄에 있는 자기 자리를

한 두어 걸음 남겨 놓고

좌석 줄 밖에 나온 어느 여학생의 구두코를

지척하고 밟아 버렸다

학수는 그 얼굴에 애교를 넘쳐 흘리며 잘못을 사과했다

그 여학생은 당황해서 발을 끌어 들이며 괜찮다 한다

발 밟힌 이의 얼굴이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새침하게 바루어진 뒤에도

발 밟은 이는 사과를 되풀이하며 빙글빙글 웃는다

그 여학생은 한번 힐끗 학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팍 숙이고는 제 옆 친구를 꾹 찌르며 웃는다

제 자리에 앉는 학수도 좀 전에 한 일이

가장 재미있고 우스운 것 같이 킬킬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는 가운데 언뜻 생각하길

그 여학생이 바로 자기 눈을 감기던 사람 같다

북받치는 웃음으로 하여 가늘게 떠는

그의 동그스름한 어깨

서너 올의 머리카락이 하늘 거리는 뽀얀 귀밑

그렇다

그렇다 분명히 그 여자다

내 눈을 감기고 달아난 그 여자다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여학생이 입을 비죽비죽하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또 한번 학수 쪽을 본다

그의 광대뼈가 조금 나온 것을 알아보자

학수는 아 아니로구나 하고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었다

찡그린 얼굴로 남자쪽 객석만 향하고 있었던 학수는

이젠 번쩍이는 얼굴을 여자 객석으로 돌려

저와 까막잡기하던 이를 찾기에 골몰했다

여러 번 그이인 듯한 여학생을 찾아 냈지만

눈썹이 엉성하고 입이 크거나 작거나

이마가 좁기도 하고 코가 높거나 낮거나 해서

정말 그이를 알아맞힐 도리가 없었다

잘못 알았든 옳게 알았든

비록 눈도 한번 못 깜짝일 짧은 동안이라 할지라도

저를 애인으로 생각해 준 그 여자는

여성으로서의 모든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을 듯 했기 때문이다

한편 상춘은 아까의 그 얼굴이 동그스름한 여학생과

눈을 맞추고 기뻐하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기가 벌써 네 번이나 된다

음악회는 그럭저럭 끝나고 말았다

상춘은 저와 네 번이나 눈이 마주친 그이를 기다리면서

학수는 혹 제 동무들과 휩쓸려 나올지 모르는

자신의 눈을 감기던 그이를 기다리면서

두 청년은 청년회관 문 앞에 서 있다

상춘의 그이는 나왔다

무슨 할말이나 있는 듯 상춘은 한 걸음 다가들었지만

그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갈데로 가 버렸다

나오는 이 족족 얼굴을 살펴 보았건만

학수의 그이는 없었다

사람들이 다 헤어진 뒤에도 잘난이와 못난이는

사라지려는 아름다운 꿈을 아끼는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까 음악당의 유리창을 삐걱거리던 바람은

휙휙 먼지를 날리며 포플러 가지를 우쭐거리게 한다

반 남아 서쪽에 기울어진 초승달은

새 아씨의 파리한 뺨 같은 모양을

구름자락 사이에 드러냈다

달이 있군

상춘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 지었다

지금 집에 가면 잠이 오겠어

우리 종로 한번 휘돌까

두 청년은 걷기 시작했다

광화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들이 묵고 있는 집은 사동에 있었다

음악회란 사실 아무 것도 보잘 게 없어

그 많은 여학생 가운데 하나나 그럴 듯한 게 있어야지

상춘은 탄식하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왜 그렇게 가자고 사람을 들볶더니

갈 때는 좋았지만 나와 보니

그런 싱거운 일이 없으니 말이야

돈 이 원만 날아갔어

나는 재미있던데

상춘은 턱없이 빙글빙글하는 학수를 바라보며

의아한 듯이

왜 음악회라면 대경 질색을 하더니

딴 음악회는 다 재미 없어도 오늘 건 매우 재미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사랑 맡은 귀신은 장님이라지

그건 왜

아니 그냥

그렇다고 하대

사랑을 하면 곧 이성의 눈이 감긴단 말이겠지

흥 그러면 나는 오늘 저녁에 사랑을 했어

사랑 맡은 귀신의 은총을 입었다고

사랑을 했다니

흥 세상엔 이상한 일도 있지

무슨 일이 그렇게 이상해

이야기 해줄까

하고 싶으면 해봐

상춘은 별로 흥미가 끌리지 않는듯했다

학수는 주춤 걸음을 멈추더니

다짜고짜 등 뒤에서 상춘의 눈을 감기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상춘은 놀라 부르짖었다

내가 사내가 아니고 여자라면 네 마음이 어떻겠냐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음악회에서 어느 여자가 내게 그렇게 했단 말이지

상춘은 어이없어 웃으며

이런 말도 안돼

말이 안되긴 뭐가 거짓말 같지

하고 학수는 입에 침도 없이

아까 계단 밑에서 일어난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호기심으로 눈을 번득이고 있던 상춘은 이야기가 끝나자 웬일인지 그 여자를 여지없이 타매했다

어디 밀회할 곳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하느냐는 둥

필연 여학생인 척하는 은근짜일거라는 둥

내가 당했으면 꼭 붙들어서

톡톡이 망신을 주었을거라는 둥

그렇게 못한 학수가 멍청하다는둥

왜 샘 나냐

생각을 해봐

보들보들한 손이 살짝 내 눈을 가렸단 말이지

내 등에 그 따뜻한 가슴이 닿았단 말이지

내가 누구게요하는 그 목소리

그야말로 꾀꼬리 소리란 말이지

하고 학수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몸을 비꼬며

상춘을 부둥켜 안았다

이 자식이 정말 미쳤냐

하고 상춘은 사정없이 뿌리쳤다

학수는 넘어질 듯 비틀비틀 하면서

아하하하고 소리쳐 웃었다

그들은 벌써 사동 입구에 다다랐다

상춘은 부인 상회로 무슨 살 것이나 있는 듯이 들어간다

어디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이 상회를 거치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전엔 상춘이 암만 졸라도

좀처럼 들어가지 않던 학수였지만

오늘밤엔 서슴지 않고 상춘을 따라 들어설 수 있었다

상회에 들어온 뒤에도

학수의 온 얼굴에 퍼진 웃음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꼴을 보고 상춘은 의미있게 웃고는

벙글거리는 학수를

슬며시 석경과 경대를 진열한 곳으로 끌고와서

귀에 소곤거렸다

야 이 거울 좀 봐봐

벙글거리던 이는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저놈이 웬 놈인가

지옥의 굴뚝 속에서 튀어나온 아귀 같은 얼굴로

빙그레 웃는 저 놈이 웬 놈인가

입은 찢어진 듯이 왜 저리 크며

잔등이 옴팍한 콧구멍은 왜 저리 넓은가

학수는 제 앞에 나타난 추하디 추한 괴물을

차마 제 자신으로 생각할수 없었다

바로 얼마 전에 사랑 맡은 여신의 은총을 입은

제 자신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더할 수 없이 못생긴 괴물이야말로

갈데 없는 저임을 어찌하랴

누구도 아닌 저 자신임을 어찌하랴

그의 눈 앞은 갑자기 그믐밤 같이 캄캄해졌다


까막잡기 현진건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ㅣ책읽어주는 여자 까막잡기 현진건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ischer Roman, Koreanisches Hörbuch, 및 액독주는 여자 까막잡기 현진건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및ㅐㄱ읽주는 여자 까막잡기 현진건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및 액독주는 여자

그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수수께끼였다

눈을 감긴 이는 저의 애인과 함께

이 음악회에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든지

계단 밑에서 남몰래 만나기로 무슨 신호 같은 것 예를 들면

눈짓 같은 걸로 약속을 했을 것이다

남자가 그 신호를 몰랐거나

아니면 남자의 발길이 더디고 여자의 발길은 빨라서

계단 아래서 학수가 어름어름하는 걸 보고

꼭 제 애인인 줄로만 생각하고

아양피움으로 까막잡기를 한 것 일테지

이윽고 그계단을 다시 올라와서

음악회에 통한 문을 여는 학수는

제 얼굴이 여지없이 못생긴 것과

여성에 대한 미움을 씻은 듯이 잊어버렸다

전등불이 급작스럽게 밝아지며 모든 사람이

저에게 호의 있는 듯한 미소를 건네는 듯했다

바이올린은 이미 끝났다

한 서양 여인이 뽀얀 손가락을 북같이 쏘대이게 하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전 같으면 시덥지 않을 그 악기 소리가

가슴 속에 무슨 은실같은 것을 스쳐서

어느 결엔지 멋질린 발길이 춤추듯이 박자를 맞춘다

그는 바로 여자석의 옆 좌석 줄에 있는 자기 자리를

한 두어 걸음 남겨 놓고

좌석 줄 밖에 나온 어느 여학생의 구두코를

지척하고 밟아 버렸다

학수는 그 얼굴에 애교를 넘쳐 흘리며 잘못을 사과했다

그 여학생은 당황해서 발을 끌어 들이며 괜찮다 한다

발 밟힌 이의 얼굴이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새침하게 바루어진 뒤에도

발 밟은 이는 사과를 되풀이하며 빙글빙글 웃는다

그 여학생은 한번 힐끗 학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팍 숙이고는 제 옆 친구를 꾹 찌르며 웃는다

제 자리에 앉는 학수도 좀 전에 한 일이

가장 재미있고 우스운 것 같이 킬킬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는 가운데 언뜻 생각하길

그 여학생이 바로 자기 눈을 감기던 사람 같다

북받치는 웃음으로 하여 가늘게 떠는

그의 동그스름한 어깨

서너 올의 머리카락이 하늘 거리는 뽀얀 귀밑

그렇다

그렇다 분명히 그 여자다

내 눈을 감기고 달아난 그 여자다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여학생이 입을 비죽비죽하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또 한번 학수 쪽을 본다

그의 광대뼈가 조금 나온 것을 알아보자

학수는 아 아니로구나 하고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었다

찡그린 얼굴로 남자쪽 객석만 향하고 있었던 학수는

이젠 번쩍이는 얼굴을 여자 객석으로 돌려

저와 까막잡기하던 이를 찾기에 골몰했다

여러 번 그이인 듯한 여학생을 찾아 냈지만

눈썹이 엉성하고 입이 크거나 작거나

이마가 좁기도 하고 코가 높거나 낮거나 해서

정말 그이를 알아맞힐 도리가 없었다

잘못 알았든 옳게 알았든

비록 눈도 한번 못 깜짝일 짧은 동안이라 할지라도

저를 애인으로 생각해 준 그 여자는

여성으로서의 모든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을 듯 했기 때문이다

한편 상춘은 아까의 그 얼굴이 동그스름한 여학생과

눈을 맞추고 기뻐하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기가 벌써 네 번이나 된다

음악회는 그럭저럭 끝나고 말았다

상춘은 저와 네 번이나 눈이 마주친 그이를 기다리면서

학수는 혹 제 동무들과 휩쓸려 나올지 모르는

자신의 눈을 감기던 그이를 기다리면서

두 청년은 청년회관 문 앞에 서 있다

상춘의 그이는 나왔다

무슨 할말이나 있는 듯 상춘은 한 걸음 다가들었지만

그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갈데로 가 버렸다

나오는 이 족족 얼굴을 살펴 보았건만

학수의 그이는 없었다

사람들이 다 헤어진 뒤에도 잘난이와 못난이는

사라지려는 아름다운 꿈을 아끼는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까 음악당의 유리창을 삐걱거리던 바람은

휙휙 먼지를 날리며 포플러 가지를 우쭐거리게 한다

반 남아 서쪽에 기울어진 초승달은

새 아씨의 파리한 뺨 같은 모양을

구름자락 사이에 드러냈다

달이 있군

상춘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 지었다

지금 집에 가면 잠이 오겠어

우리 종로 한번 휘돌까

두 청년은 걷기 시작했다

광화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들이 묵고 있는 집은 사동에 있었다

음악회란 사실 아무 것도 보잘 게 없어

그 많은 여학생 가운데 하나나 그럴 듯한 게 있어야지

상춘은 탄식하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왜 그렇게 가자고 사람을 들볶더니

갈 때는 좋았지만 나와 보니

그런 싱거운 일이 없으니 말이야

돈 이 원만 날아갔어

나는 재미있던데

상춘은 턱없이 빙글빙글하는 학수를 바라보며

의아한 듯이

왜 음악회라면 대경 질색을 하더니

딴 음악회는 다 재미 없어도 오늘 건 매우 재미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사랑 맡은 귀신은 장님이라지

그건 왜

아니 그냥

그렇다고 하대

사랑을 하면 곧 이성의 눈이 감긴단 말이겠지

흥 그러면 나는 오늘 저녁에 사랑을 했어

사랑 맡은 귀신의 은총을 입었다고

사랑을 했다니

흥 세상엔 이상한 일도 있지

무슨 일이 그렇게 이상해

이야기 해줄까

하고 싶으면 해봐

상춘은 별로 흥미가 끌리지 않는듯했다

학수는 주춤 걸음을 멈추더니

다짜고짜 등 뒤에서 상춘의 눈을 감기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상춘은 놀라 부르짖었다

내가 사내가 아니고 여자라면 네 마음이 어떻겠냐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음악회에서 어느 여자가 내게 그렇게 했단 말이지

상춘은 어이없어 웃으며

이런 말도 안돼

말이 안되긴 뭐가 거짓말 같지

하고 학수는 입에 침도 없이

아까 계단 밑에서 일어난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호기심으로 눈을 번득이고 있던 상춘은 이야기가 끝나자 웬일인지 그 여자를 여지없이 타매했다

어디 밀회할 곳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하느냐는 둥

필연 여학생인 척하는 은근짜일거라는 둥

내가 당했으면 꼭 붙들어서

톡톡이 망신을 주었을거라는 둥

그렇게 못한 학수가 멍청하다는둥

왜 샘 나냐

생각을 해봐

보들보들한 손이 살짝 내 눈을 가렸단 말이지

내 등에 그 따뜻한 가슴이 닿았단 말이지

내가 누구게요하는 그 목소리

그야말로 꾀꼬리 소리란 말이지

하고 학수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몸을 비꼬며

상춘을 부둥켜 안았다

이 자식이 정말 미쳤냐

하고 상춘은 사정없이 뿌리쳤다

학수는 넘어질 듯 비틀비틀 하면서

아하하하고 소리쳐 웃었다

그들은 벌써 사동 입구에 다다랐다

상춘은 부인 상회로 무슨 살 것이나 있는 듯이 들어간다

어디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이 상회를 거치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전엔 상춘이 암만 졸라도

좀처럼 들어가지 않던 학수였지만

오늘밤엔 서슴지 않고 상춘을 따라 들어설 수 있었다

상회에 들어온 뒤에도

학수의 온 얼굴에 퍼진 웃음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꼴을 보고 상춘은 의미있게 웃고는

벙글거리는 학수를

슬며시 석경과 경대를 진열한 곳으로 끌고와서

귀에 소곤거렸다

야 이 거울 좀 봐봐

벙글거리던 이는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저놈이 웬 놈인가

지옥의 굴뚝 속에서 튀어나온 아귀 같은 얼굴로

빙그레 웃는 저 놈이 웬 놈인가

입은 찢어진 듯이 왜 저리 크며

잔등이 옴팍한 콧구멍은 왜 저리 넓은가

학수는 제 앞에 나타난 추하디 추한 괴물을

차마 제 자신으로 생각할수 없었다

바로 얼마 전에 사랑 맡은 여신의 은총을 입은

제 자신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더할 수 없이 못생긴 괴물이야말로

갈데 없는 저임을 어찌하랴

누구도 아닌 저 자신임을 어찌하랴

그의 눈 앞은 갑자기 그믐밤 같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