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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까막잡기 현진건 1/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ㅣ책읽어주는 여자

까막잡기 현진건 1/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ㅣ책읽어주는 여자

안녕하세요

피어 노벨라의 노벨라예요

오늘은 현진건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코믹한 이야기 까막잡기를 읽어 드릴게요

끝까지 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혹시 음악회 구경 안 갈래

저녁을 먹던 끝에 상춘은 학수를 꼬드겼다

상춘은 남자보다 여자에 가까운 얼굴의 남자였다

분을 따서 넣은 듯한 살결

핏물이 도는 듯한 붉은 입술

초승달처럼 가늘고 진한 눈썹

은행 속 꺼풀같은 눈시울

여자라고 해도 보통 미인이 아닐거다

그와 정반대로 학수의 얼굴은 차마 봐주기 어렵게 못생긴 얼굴이었다 살빛이 검기란 아프리카 흑인인가 의심할 만하다

조금 거짓말을 보태면 귀 밑까지 찢어졌다고 할 만한 입

망치 같은 걸로 퍽퍽 찍어서 내려앉힌 콧대

툭 불거진 광대뼈에 뺨은 후벼 파 놓은 듯 우툴두툴한 품이 마치 천병만마가 지나간 고전 전쟁터 같은 느낌이 있다 이 미남과 추남의 대표라고 할 만한 두 청년은

한고향 사람으로 같이 L 전문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어디 음악회가 있나

있구말구

종로 청년회관에서 학생 주최 춘계 대음악회가 있지

종로로 지나다니면서 그 광고도 못 봤단 말이야

참말이지 이번 음악회는 굉장하다고

그 학당의 자랑인 꽃 같은 여학생들 코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에서 음악깨나 한다는 사람은 총출동이라고

그리고 그 유명한 프오크양의 독창도 있고

또 요새 러시아에서 돌아온 리니 코라이 바이올린 독주도 있고 야 야 그만 늘어놔

그만해도 기막히게 훌륭한 음악회인 줄 알겠어

하지만 내가 어디 음악을 알어

내 귀에는 한다하는 성악가의 독창이나 돼지 멱 따는 소리나 다를 게 없어 바이올린으로 켜는 좋다는 곡조나

어린애의 앙알거리는 울음이나 마찬가지드만

그럼 음악회 가기 싫다고

너 혼자 다녀와

음악은 모른다고 해도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지그래

주최가 여학교측니까 그 학교 학생은 물론

서울 안의 하이칼라 여학생은 다 끌어올걸

하며 매우 초조한 듯

입장권은 내가 살게

음악이 싫거든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

왜라니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자는수 밖엔 없잖아

학수는 뱉듯이

여학생은 봐서 뭐에 써

상춘은 펄쩍 뛰며

쓸데라니 너처럼 쓸데 있는 것만 찾는다면 인생은 쓸쓸한 황야가될걸 캄캄한 그믐밤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여성을 보는 것이

얼마나 시적이야 그게 행복 아니야 시 행복 흥 나한테 어디 너같은 감각이 있어야지

빈정거리듯이 이런 말을 하지만

찡그린 그 얼굴엔

말할 수 없는 고뇌의 그림자가 떠돌았다

상춘은 친구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꿈꾸는 듯한 눈자위를 더욱 반들반들하게 적시며

시나 읊조리는 어조로

여자는 더구나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여학생은

인생이라는 거친들의 꽃이야

어두운 밤의 불이고

햇발이 왜 따스한 줄 알어

그들의 가슴을 덥히기 위함이라고

달빛이 왜 밝은줄 알어

그들의 얼굴을 바래기 위함이야

꽃이 피는 것도 그들의 눈을 기쁘게 하려는 까닭이고

새가 우는 것도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야

그런데 하고 잠깐 가쁜 숨을 돌렸다

학수의 얼굴엔 고뇌의 그림자가 더 더욱 짙어가며

단박 울음이 터져 나올 듯

온 안면 근육이 경련적으로 떨린다

듣기 싫다 듣기 싫어

그만해도 네가 시와 소설 많이 본 줄 알겠다고

그런데 말이지 그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백여 명이 모인단 말이야

생각을 해봐

백여명

그곳은 백화 난만한 꽃동산일 거라고

거기 종달새 격으로 꾀꼬리 격으로

피아노가 운다 바이올린이 껄떡인다 거기다 그뿐이야

그것이 노래를 부르니 이게 낙원이 아니고 어디가 낙원이란 말이야 그런델 가기 싫어하는 너는 사람이 아니야

남자가 아니야 목석이지

하고 상춘은 못 견디겠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방안을 왔다갔다 한다 그의 눈에는 쉴 새 없이 미소가 떠 올랐다

자기 얼굴에 지나치게 자신을 가진 그는

여성과 접촉을 안했기에 망정이지 접촉만 한다면

손끝 한번 까닥으로 눈 한번 깜짝으로

다 저에게 꿀 같은 사랑을 바치려니 생각한다

불행한 일은

아직 그는 여성과 흠씬 접촉해 본 일이 없었다

젊고 아름답고 지식있고 마음이 상냥한 여성은

언제든지 저의 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비난하거나 미워 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어디까지나 여성찬미자

더구나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여성의 찬미자였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 나오면 턱없이 흥분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래도 좋고 남자가 아니래도 좋아

목석이라도 상관 없어

음악회 구경도 싫고 여학생 구경도 딱 싫어

마침내 학수도 버럭 화를 냈다

참말이지 요새 여학생은 눈잔등이가 시어서 못 보겠어

기름을 바를 대로 바르고

왜 귀밑머리는 풀고 다니는지

살찐 종아리 자랑인진 모르지만

왜 정갱이까지 올라오는 잠방이를 입고 다니는지

또 발등뼈가 튕겨 나와야 맛인가

구두 뒷축은 왜 그리 높아

암만 해도 까닭 모를 일이야

옆에만 지나가도 그 퀴퀴한 향수 냄새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이름이 좋아서 한울타리로 사랑은 자유라야 한다

연애는 신성한 것이다 하면서

얼굴만 반드레해도 그냥 반하고

피아노 한 대만 봐도 마음이 솔깃하고

애꾸눈이라도 서양 갔다 온 사람이 면 추파를 건네지

그런 천박하고 경박하고 허영에 들뜬 년들에게

침을 질질 흘리는 놈도 흘리는 놈이지

그래 그런 것들이 우글우글 끓는 음악회에 간다고

차라리 요귀가 끓는 지옥엘 가는게 낫지

바로 지가 잰 체하고 단 위에 올라서서

몸짓 고갯짓 하면서

주리 난장을 맞는 듯 아가리를 딱딱 벌리는 꼴이란

장님으로 못태어난 것이 한이 될 지경이다

학수는 자신도 까닭 모를 흥분에 목소리를 떨며

그 험상궂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부르짖었다

제 스스로 자기 얼굴이

더는 못생길 수 없이 못생긴 것을 잘 아는 그는

여성을 대할 때마다

남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심각한 고통을 느꼈다

여성의 시선이 제 얼굴에 떨어지면

못생긴 제 얼굴이 열 곱 스무 곱 더 못생겨지는 듯 싶었다

조소와 멸시를 상상하지 않고는

여성의 눈길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러구러 그는 어느 결엔지 미소지니스트가 되고 말았다

미소지니스트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

구식 여자보다 자유연애를

자신은 일평생 가야 맛보지 못할 그 자유 연애를 한다는

신식 여자가 더욱이 밉고 싫고 침이라도 뱉고 싶을 만큼 더럽고 추해 보였다

상춘은 어이없이 학수를 바라보다가

웬 야단이야

여학생하고 무슨 불공대천지 원수나 진거 같이

왜 여학생은 사지를 못 쓰니

두 친구는 잠깐 마주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상춘은 또 방안을 거닐다가

화가 난 듯이 문을 열고 튀 하고 침을 뱉았다

봄 밤

생각에 젖은 처녀의 눈동자 같은 봄 밤이다

전등 빛의 세력 범위를 벗어난 어스름한 마당 구석에는

달빛조차 어른거린다

단성사인지 우미관인지

사람 모으는 저 소리가 바람결에 들린다

상춘에게는 한순간이 몇 세기나 되는 듯 싶었다

아름다운 음악회 광경이 무지개 같이 그의 머리에 비친다

그는 마치 애인과 밀회할 시간이 늦어가는 사람처럼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한다

저 혼자 같으면 좋으련만

같이 있는 처지에 학수를 버리고 가는 것이

실없는 말다툼으로 감정이나 상해 준 듯도 싶고

그보다 많은 여자에게 제 잘난 걸 돋보이게 하려면

못 생긴 동반자가 필요도 했다

그는 다시 학수를 달래고 꼬드기고 조르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이 봄밤인 것과

이러고 틀어박혀 있을 때가 아닌 것

정 음악이 듣기 싫고 여학생이 보기 싫더라도

제 얼굴을 봐서 함께 가 달라고 싹싹 빌었다

친구따라 강남도 간다는데

이렇게 부탁하는데 안 가는게 어디 있냐고 화도 냈다

얼굴과는 달리 마음은 싹싹한 학수라

그렇게 조르는 친구의 청을 떨치기도 무엇하고

또 얼마큼 상춘의 들뜬 기분이 전염이 되어

혼자 빈방을 지키기는 을씨년스러웠다

마침내 학수는 싫으나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처럼

상춘을 따라서고 말았다

상춘과 학수가 음악회에 들어선 때에는

벌써 회를 여는 관현악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만일 상춘이 대분발을 해서

이 원을 내고 일등표 두장을 사지 않았던들

구경도 못하고 돌아설 뻔했다

그들은 일등표를 산 덕에

바로 여자석 옆 악단 멀지 않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상당히 모인 사람이 많았다

상춘의 짐작도 틀리지 않아서 객석의 반은 여자들 차지였다 띄엄띄엄 쪽진 이와 땋은 이가 없진 않았지만

대개는 푸수수한 트레머리의 꽃밭이었다

그래 탐스럽게 핀 검은 목단화 송이 동산이었다

머리를 꽃송이에 견주어 보면

뽀오얀 목덜미들이 그 흰 줄기이겠다

문에 쑥 들어서면서 이 송이와 줄기 만 봐도

젊은이의 가슴은 이상하게 뛰놀았다

그윽한 향수와 기름내 많은 젊은 몸에서 발산하는

훈훈한 살내

입내

옷내

그곳의 공기는 온실처럼 눅눅하고 향긋하고 따스했다

혹은 음악을 듣기 위해

혹은 이성을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은

우단을 감는 듯한 포근한 느낌과

아지랑이에 싸인듯한 황홀한 심사에 취해 있었다

이따금 파릇파릇 잎나는 포플러 가지를 흔들고 온 듯한

바람이 우~ 하고 유리문을 찌걱거리면

지금 이 봄철인 것과

꽃 구경이 한창인 것

그리고 오늘 저녁이야말로

음악 듣기에 꼭 좋은 밤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내며

공연히 마음이 들떠

이성의 눈결은 더 많이 이성에게로 쏠린다

상춘은 아까부터 보아 둔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그이는 모시 치마와 옥양목 저고리를 입은

얼굴이 갸름한 처녀인데

슬쩍 한번 눈길이 마주친 후 자꾸 저를 보는 듯했다

가장 음악을 잘 아는 체하며

얼굴에 미소를 띠고 발로 박자를 맞추는 사이에

그이의 눈길은 꼭 저만 쏘고 있는 듯 했다

고개만 돌리면 그와 나의 시선은 또 마주칠 것이다

그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남에게 무안을 주는 건 좋지 못한 일이지

얼마든지 나를 보게 해 두자

아마도 나한테 마음이 끌린 모양이야

얼마든지 보라고

가만히 내버려 둬

열기 있고 자릿자릿한 눈살의 쏘임을 견디다 못해서

상춘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이의 눈은 저 아닌 바이올린 타는 이를 똑바로 보고 있다 이제 이쪽에서 한동안 노리며 보아주기를 기다렸지만

그이는 매우 감동된 듯이 눈을 번쩍 이며

깽깽이 켜는 이의 손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하고 성난 듯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어째 저편의 고개가 얼른 자기 편으로 돈 듯했다

또 놓쳐서 될 말인가 하고

이번에는 날쌔게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편의 눈은 한결같이 바이올린에 박혔을 뿐

몇 번을 고개를 바로 했다 틀었다 해보지만

한결같이 그이의 눈은 저를 쏘지 않았다

나를 보지 않는군 안 보면 대순가

화난 듯 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다른 눈맞는 이를 찾아내려 했다

한참이나 헛되이 돌아다니던 눈이

얼마만에 저를 보고 웃는 듯한 눈을 잡아냈다

그이의 얼굴은 동그스름한데

아까 저를 보던 이보다 몇 곱절이나 아름다운 듯 싶다

옳다구나 할 새도 없이 염통이 파득파득 소리를 냈다

슬쩍 눈길을 피했다가 슬쩍 눈길을 던지니

그이는 여전히 웃고는 있건만

옆에 앉은 제 친구와 속살거리며 웃을 뿐

상춘을 쳐다보진 않았다

또 아까처럼으로 눈살을 놓았다 거두었다 하는 사이

용하게 두 번째로 눈을 맞출 수가 있었다

두 번이다 두번이야

이번엔 틀림없이 나한테 호의를 가진거야

상춘은 이렇게 확신 있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음악회가 끝나서 돌아갈 때 문앞에서 기다리면

그이가 나와 저를 보고 반겨 웃을 것이며

저더러 같이 가자든가

그렇지 않으면 저를 따라올 것이고

어떻게든 꿀 같은 사랑을 맛볼 것으로 생각했다

악수

키스

달밤의 산책

꽃 사이의 헤매임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정경을 역력히 그리고 있을 때였다

곁에 앉아 있는 학수

신트림이라도 올라오는 사람처럼

보기 싫게 찡그린 얼굴을 주체 못하는 듯

숙였다 들었다 하며 여자편과 외면을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남자 편을 향하고 앉은 학수

맡지 않으려고 할수록 속을 뒤흔드는 이성의 냄새와

느끼지 않으려 할수록 몸에 서리는 이성의 훈기에

축축이 진땀이 흘렀다

어지러운 느낌이 든 학수는 한창 꿈결 같은 환상에 녹는

상춘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친구의 존재를 깜빡 잊어버렸던 상춘은

발부리에 메추라기가 날아간 듯 놀랐다

학수는 목 안에서 나는 듯한 그윽한 소리로

상춘아 여기 변소가 어디야

오줌이 마려워서 못 참겠어

하고 상춘은 못 알아듣겠다는 듯 물끄러미 학수를 보았다

학수는 여간 급하지 않은 듯이

변소가 어디냐고

오줌이 마려워서 죽을 지경이라고

뭐 오줌이 마려워

참아 좀

상춘은 내뱉듯 퉁을 주었다

저의 꽃다운 환상을 이따위 일에 부순 것이 속상했다

인제 더 못참아

여기 올 때 마려운 걸 이때까지 참았다고

인제 할 수 없어

아랫배가 뻑적지근하게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원 참 그럼 저 문으로 나가봐

상춘은 어처구니 없이 픽 웃고는

악단의 오른편에 있는 조그마한 문을 가리키며

나가면 오른편에 계단이 있어

글루 내려가면 거기 변소가 있고

했다

학수는 엉거주춤하고 겸연쩍은 듯 고개를 숙이고

가리키는 대로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밝은 데 있다가 나온 탓에 눈 앞이 캄캄했다

손으로 더듬어서 계단을 내려는 왔지만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공장 옆에 있는 변소를

대강당 밑에서 찾으니 찾아질 리가 없었다

헛되이 계단을 끼고 얼무적얼무적 하다가

하는 수 없이 계단 밑에라도 할 즈음이었다

괴상하고 야릇한 일이 일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문득 뒤에서 똑 찍 똑 찍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망이 같은 무엇이 훌쩍 어깨를 넘을 겨를도 없이

등 뒤에서 물씬한 뭔가가 닿으며

보드랍고 싸늘한 무엇이 눈을 꼭 감긴다

학수는 전신에 소름이 쭉 끼치며

하도 놀라 악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내가 누구게요

웃음과 함께 낮으나마 또렷또렷한 목성이 묻는다

왜 아무 말도 않으세요

하는 소리가 나면서 눈을 가렸던 물건이 떨어진다

일시에 등에 대었던 것도 떨어지며

가벼운 힘이 어깨를 흔들자

눈 앞에 보얀 얼굴이 얼른거렸다

이 불의에 나타난 괴물이 학수의 얼굴을 알아보자마자

그 편에서도 매우 놀란 듯

어머나

하는 부르짖음과 함께 그 괴물은 천방지축으로 달아난다

학수는 얼이 빠져 제 앞에 나는 듯이 떠나가는

괴물의 뒤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놀랬던 가슴이 가라앉은 뒤에야

방금 제 눈을 감기고 달아난 것이

결코 귀신도 아니요 괴물도 아니요

한갓 아름다운 여성임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그 여성의 닿았던 자리가

전기로 지진 듯이 욱신욱신하고 근질근질해 온다

무주룩하게 어깨를 누르는 팔뚝

말씬말씬하게 등때기를 비비는 젖가슴

위뺨과 눈언저리에 왕거미 처럼 붙었던 두 손을

참 보다도 더 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근처의 공기조차 따스하고 향긋하게

코 안으로 기어드는 듯했다

학수는 몽유병자 걸음걸이로

그 여자가 간 곳을 향해 몇 걸음 걸어가 보았다

그때에 찾고 찾아도 찾을 수 없던 뒷간인 듯한 집이 보였다 그는 늘어지게 소변을 보고 몸이 날 듯이 가쁜해 지자

이 이상한 일의 까닭을 캐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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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피어 노벨라의 노벨라예요

오늘은 현진건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코믹한 이야기 까막잡기를 읽어 드릴게요

끝까지 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혹시 음악회 구경 안 갈래

저녁을 먹던 끝에 상춘은 학수를 꼬드겼다 After dinner, Sangchun seduced Haksu.

상춘은 남자보다 여자에 가까운 얼굴의 남자였다 Sangchun was a man with a face closer to a woman than a man.

분을 따서 넣은 듯한 살결 Skin texture that looks like powder

핏물이 도는 듯한 붉은 입술 blood-red lips

초승달처럼 가늘고 진한 눈썹 Thin and dark eyebrows like a crescent moon

은행 속 꺼풀같은 눈시울

여자라고 해도 보통 미인이 아닐거다

그와 정반대로 학수의 얼굴은 차마 봐주기 어렵게 못생긴 얼굴이었다 살빛이 검기란 아프리카 흑인인가 의심할 만하다

조금 거짓말을 보태면 귀 밑까지 찢어졌다고 할 만한 입

망치 같은 걸로 퍽퍽 찍어서 내려앉힌 콧대

툭 불거진 광대뼈에 뺨은 후벼 파 놓은 듯 우툴두툴한 품이 마치 천병만마가 지나간 고전 전쟁터 같은 느낌이 있다 이 미남과 추남의 대표라고 할 만한 두 청년은

한고향 사람으로 같이 L 전문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어디 음악회가 있나

있구말구

종로 청년회관에서 학생 주최 춘계 대음악회가 있지

종로로 지나다니면서 그 광고도 못 봤단 말이야

참말이지 이번 음악회는 굉장하다고

그 학당의 자랑인 꽃 같은 여학생들 코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에서 음악깨나 한다는 사람은 총출동이라고

그리고 그 유명한 프오크양의 독창도 있고

또 요새 러시아에서 돌아온 리니 코라이 바이올린 독주도 있고 야 야 그만 늘어놔

그만해도 기막히게 훌륭한 음악회인 줄 알겠어

하지만 내가 어디 음악을 알어

내 귀에는 한다하는 성악가의 독창이나 돼지 멱 따는 소리나 다를 게 없어 바이올린으로 켜는 좋다는 곡조나

어린애의 앙알거리는 울음이나 마찬가지드만

그럼 음악회 가기 싫다고

너 혼자 다녀와

음악은 모른다고 해도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지그래

주최가 여학교측니까 그 학교 학생은 물론

서울 안의 하이칼라 여학생은 다 끌어올걸

하며 매우 초조한 듯

입장권은 내가 살게

음악이 싫거든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

왜라니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자는수 밖엔 없잖아

학수는 뱉듯이

여학생은 봐서 뭐에 써

상춘은 펄쩍 뛰며

쓸데라니 너처럼 쓸데 있는 것만 찾는다면 인생은 쓸쓸한 황야가될걸 캄캄한 그믐밤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여성을 보는 것이

얼마나 시적이야 그게 행복 아니야 시 행복 흥 나한테 어디 너같은 감각이 있어야지

빈정거리듯이 이런 말을 하지만

찡그린 그 얼굴엔

말할 수 없는 고뇌의 그림자가 떠돌았다

상춘은 친구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꿈꾸는 듯한 눈자위를 더욱 반들반들하게 적시며

시나 읊조리는 어조로

여자는 더구나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여학생은

인생이라는 거친들의 꽃이야

어두운 밤의 불이고

햇발이 왜 따스한 줄 알어

그들의 가슴을 덥히기 위함이라고

달빛이 왜 밝은줄 알어

그들의 얼굴을 바래기 위함이야

꽃이 피는 것도 그들의 눈을 기쁘게 하려는 까닭이고

새가 우는 것도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야

그런데 하고 잠깐 가쁜 숨을 돌렸다

학수의 얼굴엔 고뇌의 그림자가 더 더욱 짙어가며

단박 울음이 터져 나올 듯

온 안면 근육이 경련적으로 떨린다

듣기 싫다 듣기 싫어

그만해도 네가 시와 소설 많이 본 줄 알겠다고

그런데 말이지 그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백여 명이 모인단 말이야

생각을 해봐

백여명

그곳은 백화 난만한 꽃동산일 거라고

거기 종달새 격으로 꾀꼬리 격으로

피아노가 운다 바이올린이 껄떡인다 거기다 그뿐이야

그것이 노래를 부르니 이게 낙원이 아니고 어디가 낙원이란 말이야 그런델 가기 싫어하는 너는 사람이 아니야

남자가 아니야 목석이지

하고 상춘은 못 견디겠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방안을 왔다갔다 한다 그의 눈에는 쉴 새 없이 미소가 떠 올랐다

자기 얼굴에 지나치게 자신을 가진 그는

여성과 접촉을 안했기에 망정이지 접촉만 한다면

손끝 한번 까닥으로 눈 한번 깜짝으로

다 저에게 꿀 같은 사랑을 바치려니 생각한다

불행한 일은

아직 그는 여성과 흠씬 접촉해 본 일이 없었다

젊고 아름답고 지식있고 마음이 상냥한 여성은

언제든지 저의 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비난하거나 미워 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어디까지나 여성찬미자

더구나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여성의 찬미자였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 나오면 턱없이 흥분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래도 좋고 남자가 아니래도 좋아

목석이라도 상관 없어

음악회 구경도 싫고 여학생 구경도 딱 싫어

마침내 학수도 버럭 화를 냈다

참말이지 요새 여학생은 눈잔등이가 시어서 못 보겠어

기름을 바를 대로 바르고

왜 귀밑머리는 풀고 다니는지

살찐 종아리 자랑인진 모르지만

왜 정갱이까지 올라오는 잠방이를 입고 다니는지

또 발등뼈가 튕겨 나와야 맛인가

구두 뒷축은 왜 그리 높아

암만 해도 까닭 모를 일이야

옆에만 지나가도 그 퀴퀴한 향수 냄새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이름이 좋아서 한울타리로 사랑은 자유라야 한다

연애는 신성한 것이다 하면서

얼굴만 반드레해도 그냥 반하고

피아노 한 대만 봐도 마음이 솔깃하고

애꾸눈이라도 서양 갔다 온 사람이 면 추파를 건네지

그런 천박하고 경박하고 허영에 들뜬 년들에게

침을 질질 흘리는 놈도 흘리는 놈이지

그래 그런 것들이 우글우글 끓는 음악회에 간다고

차라리 요귀가 끓는 지옥엘 가는게 낫지

바로 지가 잰 체하고 단 위에 올라서서

몸짓 고갯짓 하면서

주리 난장을 맞는 듯 아가리를 딱딱 벌리는 꼴이란

장님으로 못태어난 것이 한이 될 지경이다

학수는 자신도 까닭 모를 흥분에 목소리를 떨며

그 험상궂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부르짖었다

제 스스로 자기 얼굴이

더는 못생길 수 없이 못생긴 것을 잘 아는 그는

여성을 대할 때마다

남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심각한 고통을 느꼈다

여성의 시선이 제 얼굴에 떨어지면

못생긴 제 얼굴이 열 곱 스무 곱 더 못생겨지는 듯 싶었다

조소와 멸시를 상상하지 않고는

여성의 눈길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러구러 그는 어느 결엔지 미소지니스트가 되고 말았다

미소지니스트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

구식 여자보다 자유연애를

자신은 일평생 가야 맛보지 못할 그 자유 연애를 한다는

신식 여자가 더욱이 밉고 싫고 침이라도 뱉고 싶을 만큼 더럽고 추해 보였다

상춘은 어이없이 학수를 바라보다가

웬 야단이야

여학생하고 무슨 불공대천지 원수나 진거 같이

왜 여학생은 사지를 못 쓰니

두 친구는 잠깐 마주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상춘은 또 방안을 거닐다가

화가 난 듯이 문을 열고 튀 하고 침을 뱉았다

봄 밤

생각에 젖은 처녀의 눈동자 같은 봄 밤이다

전등 빛의 세력 범위를 벗어난 어스름한 마당 구석에는

달빛조차 어른거린다

단성사인지 우미관인지

사람 모으는 저 소리가 바람결에 들린다

상춘에게는 한순간이 몇 세기나 되는 듯 싶었다

아름다운 음악회 광경이 무지개 같이 그의 머리에 비친다

그는 마치 애인과 밀회할 시간이 늦어가는 사람처럼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한다

저 혼자 같으면 좋으련만

같이 있는 처지에 학수를 버리고 가는 것이

실없는 말다툼으로 감정이나 상해 준 듯도 싶고

그보다 많은 여자에게 제 잘난 걸 돋보이게 하려면

못 생긴 동반자가 필요도 했다

그는 다시 학수를 달래고 꼬드기고 조르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이 봄밤인 것과

이러고 틀어박혀 있을 때가 아닌 것

정 음악이 듣기 싫고 여학생이 보기 싫더라도

제 얼굴을 봐서 함께 가 달라고 싹싹 빌었다

친구따라 강남도 간다는데

이렇게 부탁하는데 안 가는게 어디 있냐고 화도 냈다

얼굴과는 달리 마음은 싹싹한 학수라

그렇게 조르는 친구의 청을 떨치기도 무엇하고

또 얼마큼 상춘의 들뜬 기분이 전염이 되어

혼자 빈방을 지키기는 을씨년스러웠다

마침내 학수는 싫으나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처럼

상춘을 따라서고 말았다

상춘과 학수가 음악회에 들어선 때에는

벌써 회를 여는 관현악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만일 상춘이 대분발을 해서

이 원을 내고 일등표 두장을 사지 않았던들

구경도 못하고 돌아설 뻔했다

그들은 일등표를 산 덕에

바로 여자석 옆 악단 멀지 않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상당히 모인 사람이 많았다

상춘의 짐작도 틀리지 않아서 객석의 반은 여자들 차지였다 띄엄띄엄 쪽진 이와 땋은 이가 없진 않았지만

대개는 푸수수한 트레머리의 꽃밭이었다

그래 탐스럽게 핀 검은 목단화 송이 동산이었다

머리를 꽃송이에 견주어 보면

뽀오얀 목덜미들이 그 흰 줄기이겠다

문에 쑥 들어서면서 이 송이와 줄기 만 봐도

젊은이의 가슴은 이상하게 뛰놀았다

그윽한 향수와 기름내 많은 젊은 몸에서 발산하는

훈훈한 살내

입내

옷내

그곳의 공기는 온실처럼 눅눅하고 향긋하고 따스했다

혹은 음악을 듣기 위해

혹은 이성을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은

우단을 감는 듯한 포근한 느낌과

아지랑이에 싸인듯한 황홀한 심사에 취해 있었다

이따금 파릇파릇 잎나는 포플러 가지를 흔들고 온 듯한

바람이 우~ 하고 유리문을 찌걱거리면

지금 이 봄철인 것과

꽃 구경이 한창인 것

그리고 오늘 저녁이야말로

음악 듣기에 꼭 좋은 밤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내며

공연히 마음이 들떠

이성의 눈결은 더 많이 이성에게로 쏠린다

상춘은 아까부터 보아 둔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그이는 모시 치마와 옥양목 저고리를 입은

얼굴이 갸름한 처녀인데

슬쩍 한번 눈길이 마주친 후 자꾸 저를 보는 듯했다

가장 음악을 잘 아는 체하며

얼굴에 미소를 띠고 발로 박자를 맞추는 사이에

그이의 눈길은 꼭 저만 쏘고 있는 듯 했다

고개만 돌리면 그와 나의 시선은 또 마주칠 것이다

그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남에게 무안을 주는 건 좋지 못한 일이지

얼마든지 나를 보게 해 두자

아마도 나한테 마음이 끌린 모양이야

얼마든지 보라고

가만히 내버려 둬

열기 있고 자릿자릿한 눈살의 쏘임을 견디다 못해서

상춘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이의 눈은 저 아닌 바이올린 타는 이를 똑바로 보고 있다 이제 이쪽에서 한동안 노리며 보아주기를 기다렸지만

그이는 매우 감동된 듯이 눈을 번쩍 이며

깽깽이 켜는 이의 손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하고 성난 듯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어째 저편의 고개가 얼른 자기 편으로 돈 듯했다

또 놓쳐서 될 말인가 하고

이번에는 날쌔게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편의 눈은 한결같이 바이올린에 박혔을 뿐

몇 번을 고개를 바로 했다 틀었다 해보지만

한결같이 그이의 눈은 저를 쏘지 않았다

나를 보지 않는군 안 보면 대순가

화난 듯 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다른 눈맞는 이를 찾아내려 했다

한참이나 헛되이 돌아다니던 눈이

얼마만에 저를 보고 웃는 듯한 눈을 잡아냈다

그이의 얼굴은 동그스름한데

아까 저를 보던 이보다 몇 곱절이나 아름다운 듯 싶다

옳다구나 할 새도 없이 염통이 파득파득 소리를 냈다

슬쩍 눈길을 피했다가 슬쩍 눈길을 던지니

그이는 여전히 웃고는 있건만

옆에 앉은 제 친구와 속살거리며 웃을 뿐

상춘을 쳐다보진 않았다

또 아까처럼으로 눈살을 놓았다 거두었다 하는 사이

용하게 두 번째로 눈을 맞출 수가 있었다

두 번이다 두번이야

이번엔 틀림없이 나한테 호의를 가진거야

상춘은 이렇게 확신 있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음악회가 끝나서 돌아갈 때 문앞에서 기다리면

그이가 나와 저를 보고 반겨 웃을 것이며

저더러 같이 가자든가

그렇지 않으면 저를 따라올 것이고

어떻게든 꿀 같은 사랑을 맛볼 것으로 생각했다

악수

키스

달밤의 산책

꽃 사이의 헤매임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정경을 역력히 그리고 있을 때였다

곁에 앉아 있는 학수

신트림이라도 올라오는 사람처럼

보기 싫게 찡그린 얼굴을 주체 못하는 듯

숙였다 들었다 하며 여자편과 외면을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남자 편을 향하고 앉은 학수

맡지 않으려고 할수록 속을 뒤흔드는 이성의 냄새와

느끼지 않으려 할수록 몸에 서리는 이성의 훈기에

축축이 진땀이 흘렀다

어지러운 느낌이 든 학수는 한창 꿈결 같은 환상에 녹는

상춘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친구의 존재를 깜빡 잊어버렸던 상춘은

발부리에 메추라기가 날아간 듯 놀랐다

학수는 목 안에서 나는 듯한 그윽한 소리로

상춘아 여기 변소가 어디야

오줌이 마려워서 못 참겠어

하고 상춘은 못 알아듣겠다는 듯 물끄러미 학수를 보았다

학수는 여간 급하지 않은 듯이

변소가 어디냐고

오줌이 마려워서 죽을 지경이라고

뭐 오줌이 마려워

참아 좀

상춘은 내뱉듯 퉁을 주었다

저의 꽃다운 환상을 이따위 일에 부순 것이 속상했다

인제 더 못참아

여기 올 때 마려운 걸 이때까지 참았다고

인제 할 수 없어

아랫배가 뻑적지근하게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원 참 그럼 저 문으로 나가봐

상춘은 어처구니 없이 픽 웃고는

악단의 오른편에 있는 조그마한 문을 가리키며

나가면 오른편에 계단이 있어

글루 내려가면 거기 변소가 있고

했다

학수는 엉거주춤하고 겸연쩍은 듯 고개를 숙이고

가리키는 대로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밝은 데 있다가 나온 탓에 눈 앞이 캄캄했다

손으로 더듬어서 계단을 내려는 왔지만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공장 옆에 있는 변소를

대강당 밑에서 찾으니 찾아질 리가 없었다

헛되이 계단을 끼고 얼무적얼무적 하다가

하는 수 없이 계단 밑에라도 할 즈음이었다

괴상하고 야릇한 일이 일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문득 뒤에서 똑 찍 똑 찍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망이 같은 무엇이 훌쩍 어깨를 넘을 겨를도 없이

등 뒤에서 물씬한 뭔가가 닿으며

보드랍고 싸늘한 무엇이 눈을 꼭 감긴다

학수는 전신에 소름이 쭉 끼치며

하도 놀라 악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내가 누구게요

웃음과 함께 낮으나마 또렷또렷한 목성이 묻는다

왜 아무 말도 않으세요

하는 소리가 나면서 눈을 가렸던 물건이 떨어진다

일시에 등에 대었던 것도 떨어지며

가벼운 힘이 어깨를 흔들자

눈 앞에 보얀 얼굴이 얼른거렸다

이 불의에 나타난 괴물이 학수의 얼굴을 알아보자마자

그 편에서도 매우 놀란 듯

어머나

하는 부르짖음과 함께 그 괴물은 천방지축으로 달아난다

학수는 얼이 빠져 제 앞에 나는 듯이 떠나가는

괴물의 뒤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놀랬던 가슴이 가라앉은 뒤에야

방금 제 눈을 감기고 달아난 것이

결코 귀신도 아니요 괴물도 아니요

한갓 아름다운 여성임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그 여성의 닿았던 자리가

전기로 지진 듯이 욱신욱신하고 근질근질해 온다

무주룩하게 어깨를 누르는 팔뚝

말씬말씬하게 등때기를 비비는 젖가슴

위뺨과 눈언저리에 왕거미 처럼 붙었던 두 손을

참 보다도 더 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근처의 공기조차 따스하고 향긋하게

코 안으로 기어드는 듯했다

학수는 몽유병자 걸음걸이로

그 여자가 간 곳을 향해 몇 걸음 걸어가 보았다

그때에 찾고 찾아도 찾을 수 없던 뒷간인 듯한 집이 보였다 그는 늘어지게 소변을 보고 몸이 날 듯이 가쁜해 지자

이 이상한 일의 까닭을 캐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