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 use cookies to help make LingQ better. By visiting the site, you agree to our cookie policy.


image

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아랑의 정조 박종화 1/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아랑의 정조 박종화 1/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안녕하세요

피어노벨라의 노벨라 예요

마음과 몸을 리셋하는 시간이죠

오늘은 도미와 아랑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아랑의 정조를 골랐습니다

박종화의 아랑의 정조는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편의 러브스토리죠

2부 까지 다 들으시고

구독과 알림 꼭 챙겨주세요

다음 시간 기대해 주시구요

감사합니다

아랑

아랑은 백제의 부인이다

아랑이 아름답다는 소문은

백제의 서울 장안에 자자하게 퍼졌다

아랑의 남편인 도미는 솜씨 있는 목수로

그 이름이 백제 서울에 유명했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아내 아랑을 가진

복 많은 청년 도미로 이름이 더 높았다

저사람이 유명한 목수 도미야

할 때 보다도

저 사람의 아내 아랑은 보통 아름다운 게 아니야

왜 그 아내 잘 두었다는 목수 도미란 사람 있잖아

바로 그 도미야

듣는 데서나 안 듣는 데서나

사람들은 이렇게 도미를 소개했다

도미 역시 자기 천직인 목수 보다도

항상 아름다운 아내를 두었다는

그것을 먼저 입에 올렸다

자기 재주가 인정되어 세상에 이름이 나는 것보다

아내의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인정된다는 것은

장인으로선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닐텐데

도미는 여기 대해서 조금도 불만이 없었다

불만이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빙글 웃으며

입이 슬그머니 벌려지곤 했다

사람이 무척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라에서 제일 가는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는 행복한 느낌이

도미의 가슴에 뻐근히 찼기 때문일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아랑은 무척 잘 생긴 여자였다

예쁘다고 해도 그저 아기자기하게

예쁜 편만이 아니다

맑은 눈매 하며

빚어 붙인 듯

깨끗하고 야무져서 빈 틈 없어 보이면서

구멍이 드러나지 않는 폭 싸인 아름답고 고운 코는

백제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수한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움 이지만

비둘기 알을 오뚝이 세워 놓은 듯한

동글 갸름한 얼굴 판에

숱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알맞은 눈썹과

방긋이 웃을 때마다 반짝하고 드러나는

고르고 흰 이는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않은 하얀 귓불과 함께

오직 아랑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의 넋을 잃게 하는 매력이었다

여기다가 아랑의 옷맵시는 더욱 좋았다

외로 여민 저고리 위의 날아갈 듯한 어깨 판하며

거듬거듬 주름잡은 눈빛 같은 흰 치맛자락엔

여위지도 않고 살찌지도 않은

건강하고 젊음을 풍기는 탄력 있는 살결이

도마뱀처럼 물결쳐 흘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해서 아랑이 백제 서울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될 수는 없었다

아랑의 반듯한 이맛전 아래

고르게 벌여진 눈썹과

호수 같은 맑은 눈매 근처에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우면서도 서릿발 같은

사람이 감히 호락호락히

범하지 못할 맑고 맑은 기쁨이 떠돌았다

여자란 흔히 아름다우면 음기를 품기가 쉬운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처절하게 예쁘다면 독기를 품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부드러우면서도 기품이 드러나고

아름다우면서 야무지고 빈틈 없기는 가장 드문 일이다

억지로 우리가 구해 본다면

성스러운 관음보살의 얼굴에서나

얼마간 이 고결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아랑을 한번 본 사람은

백제 서울의 제일가는 미인이라 떠들었고

아랑을 한번도 못 본 사람이라도

떠도는 소문만 듣고 도미의 아내 아랑은

나라의 첫손을 꼽을 미인이라고 덩달아서 칭찬했다

도미는 사실 행복했다

아내 아랑이 백제 서울 안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 된다는 것도

남자로써 즐거움의 하나지만

사실 아랑은 얼굴뿐만이 아니라

마음씨도 착하고 집안 일도 잘 보살폈다

도미가 솜씨있는 목수로 나날이

여기간다 저기간다 하고

으리으리한 대궐 짓는 일이나

대갓집 고래등 같은 기와집 짓기에

첫째로 뽑혀가는 동안

아랑은 길쌈을 짠다 빨래를 한다

온종일 부지런히 집안 일 보살피기에 분주했다

그러다가 해가 설핏해서 서산에 걸릴때가 되면

부엌으로 뛰어들어가서

저녁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다

해가 땅거미가 질 무렵

도미가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아랑이 혼자서 기다릴 생각을 하고는

걸음을 빨리해서 휘파람을 불면서 동구 앞으로 들어서면

아랑은 물묻은 손을 행주치마에 닦으면서

부리나케 삽짝문 밖까지 쫓아 나가서

생긋 흰 이를 드러내 웃는다

도미 어서 와요

아랑은 반갑게 도미의 팔뚝을 끌어안는다

그러면 도미는 온종일 그립던 아랑이 반가워서

아랑 많이 기다렸지

하고 마주 껴안으며 아랑의 그 맑은 눈을

정열이 타오르는 자신의 눈으로 쓰다듬어 위로해 준다

이럴 때마다 아랑의 길고 검은 속눈썹에는

반가움과 행복감에 넘치는

안개같은 눈물이 촉촉히 서리곤 한다

도미가 먼지를 털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뒤에

밥상을 받고 앉으면

아랑은 상머리 맡에서 배추김치를 찢어 주고

식어 가는 된장찌개를 다시 데워다 준다

밥 가져와 우리 같이 먹어

도미가 이렇게 말하면

아랑은 새색시 같이 부끄러워했다

이따가 당신 다 드시면

밤낮 왜 그러는 거야

아랑이 밥 안 가지구 오면 나두 안 먹어

도미는 어린애처럼 화를 내고 숟가락을 던졌다

흘기는 눈에는 담뿍 정열을 싣고

숟가락과 밥 한 사발을 들고 왔다

오기는 왔지만

밥사발을 도미의 소반 위에는 올려놓지 않는다

방바닥에 놓고 조심조심 숟가락을 옮긴다

아무리 남편의 앞이지만

행여 입안의 밥알이 보일까 하고

날마다 하루 한 때

이때부터가 도미와 아랑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때였다

밥상을 물리고 나서 도미와 아랑은 마주 앉아

온종일 지낸 일을 서로 이야기했다

도미 오늘도 대궐 일 했나요

그럼 대궐 짓기가 그렇게 쉬운줄 알아

오늘은 전각에 들보를 올렸지

차암 재목이 좋더라

바로 유주목인데 천년은 묵었을 거야

내 아람으로 네 아람이 되거든

아차산 꼭대기에서 벤 나문데

소 사람 합해서 오백 명 품이나 들여서 끌어왔어

나뭇결이 어떻게 좋은지

대패가 힘 안 들이고 잘 나가더라구

아무리 장인의 솜씨가 좋아도

재목이 나쁘면 신이 안 나거든

아유 천 년 묵은 나무

그 나무 구경 좀 했으면

대궐을 다 지어 놓으면

내 솜씨도 보일 겸 한번 구경시켜 줄게 아랑

이런 여염집 여자를 쉽사리 들어가게 해주겠어요

도편수 한테 말하면 우리 아랑이야 못 보여 주겠어

그럼 꼭 당신이 지은 대궐 구경시켜 주어요 도미

염려 말어 그까짓 거

아랑 오늘은 뭐 했어

맞춰 봐요

아랑은 생긋이 웃으며 도미를 쳐다본다

글쎄 오늘은 전부터 짜던 삼승무명 끝마쳤겠지

아니야 틀렸어

명주를 시작했어요

설날 입을 도미의 바지 저고리 만들려구

명주

명주 옷은 난생 처음인데

아랑 덕에 명주 옷을 다 입네

참 설날두 앞으로 서너 달밖에 안 남았지

도미는 사실 정말로 즐거웠다

도미는 아내의 손을 이끌어 쓰다듬는다

우리가 혼인을 한 지도 벌써 이 년째가 되지

아랑은 방싯 웃음을 머금고 소리 없이 고개만 까딱거린다

그런데 아랑

인제 어린애를 하나 낳아야지

아이 듣기 싫어요

아랑은 부끄러워 도미의 무릎을 주먹으로 탁 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손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서려 한다

못나긴

뭐가 부끄러워 누가 들어

그런데 아랑 가만 있어 내 얘기 한번 듣고 일어나

도미는 아랑의 뿌리치는 손을 꽉 쥐고 놓아 주지 않았다

아이 아파

아랑은 다시 도미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거 봐 아랑

나는 암만해도 아랑 때문에 큰일 났어

목수 도미보다도

아내 아랑을 잘 둔 도미로 이름이 더 났단 말야

누구든지 날 보기만 하면

오 그 백제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라는

아랑의 남편 도미로군

하고 이렇게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보곤 하거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어깨는 막 으쓱해지지

그런데 이거 봐요

아랑이 잘생겼다는 소문이 백제 서울에 얼마나 자자한지

하루는 대궐에서 전각 들보 대패를 메기고 있는데

건축공사 대신이 지나가다가 대패질하구 있는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네 이름이 도미냐

하구 묻기에

예 그렇습니다 했어

그랬더니

오 저 백제에서 제일 가는

미인 아내를 두었다는 그 도미로구나

그리고는 내 곁에 서서

대패질하는 걸 한동안 바라보다가

어 참 대패질 잘한다

너는 백제서 제일 가는 팔자 좋은 사람이다

하면서 한참 칭찬을 허구 가겠지

내 코가 막 세 발이나 더 솟았지

흐히히

아이 몰라 부끄럽게

아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푹 가렸다

도미와 아랑의 깨가 쏟아질 듯한 재미있는 살림은

나날이 더 깊어 갔다

이와 정비례해서

목수 도미의 아내 아랑의 아름답다는 소문도

날이 갈수록 서울에 더 자자해졌다

도미는 행복한 중에도

차츰차츰 형언하기 어려운

한 조각 엷은 불안을 가슴속에 느끼게 되었다

그건 아랑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너무도 지나치게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 사람 입에도 올랐다

고구려 사람 입에도 올랐다

도미는 오히려 조금씩 괴롭고 무서움을 느꼈다

도미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공포는

마치 소중한 구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 소문이 지나치게 자자하기 때문에

행여 모르는 사이에 구슬을 빼앗기지 않을까

도둑 맞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과 비슷했다

도미는 전과 같이 일터에서 돌아와서 저녁밥을 물린 뒤에

아랑과 함께 뜰을 거닐었다

달이 환하게 중천에 높이 솟았다

가을인데도 낙엽 구르는 소리조차 없었다

기왓골에는 싸늘한 서리가 유리같이 깔리기 시작한다

도미와 아랑은 손을 잡고 거닐다가

아랑 춥지 않어

하며 도미는 달빛 아래 아랑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니 당신 곁이면

당신 곁이면

도미가 되받아 물었다

언제든지 춥지 않어요

이 순간 달빛 아래 해죽이 웃는 아랑의 얼굴은

정말 보배로운 구슬보다도 더 곱고 귀여웠다

도미는 한 손으론 아랑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론 달빛 비치는 아랑의 웃는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도미는 이 고운 아내 아랑을

어떻게 주체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랑 당신은 너무 예뻐

도미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뚝 떨어뜨린다

아랑은 남편 도미의 심경을 알 리가 없다

잠깐 동안 말없는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또다시 천천히 뜰을 거닐었다

아랑

당신은 더 호강하구 싶지 않어

도미가 다시 말을 꺼낸다

당신 곁이면

아랑은 말을 마치고 고래를 살래살래 흔든다

이봐 이 목수 도미의 아내가 되기엔

당신이 너무 이쁘단 말야

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재상의 아내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큰 부잣집 맏며느리가 되든지 해야 할 감이란 말야

이 목수놈 도미의 아내가 되기엔 너무도 아깝단 말야

도미 별안간 그게 다 무슨 소리예요

나는 재상도 싫어

장잣집 며느리도 소원이 아니야

마음 편한 당신의 아내가 제일 좋아요

아랑의 얼굴엔 반듯한 기품이 서리었다

이거 봐 아랑

난 겁이 나

도미 뭐가 겁나요

아랑이 너무 이뻐서

세도 좋은 재상이나

장잣집 아들에게 뺏길까 봐서

말을 마친 도미의 고개는 기운 없이 수그러진다

뺏겠다고 하면 뺏겨요

내가 개돼진가 아랑은 싸늘하게 노했다

도미의 잡은 손을 뿌리친 채 마루를 향해 올라선다

달빛 속에 새침히 돌아서는 아랑의 뒷모습은 부어 내리는 서릿발보다도 더 차갑다

목수 도미의 아내 아랑의 아름다음에 대한 소문은

이 나라의 왕 개루의 귀까지 들어갔다

개루는 나라를 잘 다스리고 정사를 잘 베풀었다

백성의 세금을 가볍게 하고

성과 연못을 잘 가꿔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런 영특한 임금이면서도

그에겐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색을 좋아해서 예쁜 여자를 가까이 하는 일이었다

한 두 명으로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왕 자신은 조금도 이것을 뉘우치지 않는다

영웅은 색을 좋아한다 는 옛말은

개루에게 있어서는 여간 아름다운 방패막이가 아니다

하나의 말막음 거리가 될 뿐만이 아니라

개루는 자기 자신이 색을 좋아함으로써

한 사람의 훌륭한 영웅이 되는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개루는 편전에서

신하와 더불어 정사를 의논하다가

일이 끝난 다음

이야기가 한가로운 일상의 소소한 일에 미쳤다 개루가 색을 좋아하는걸 익히 아는 신하는

백제 서울 미인의 이야기를 하다가

목수 도미의 아내 아랑이 대화에 오르게 됐다

백제의 첫 손가락을 꼽을 미인은

목수 도미의 아내 아랑일 겁니다

하고 아뢰었다

목순데 어떻게 백제의 제일 가는 미인을 얻었소

개루는 기괴하게 생각했다

그건 다 연분이지요

연분

아니야 우연이지

강한 성격을 가진 개루는 운명을 부정했다

내 후궁에 그래 아랑만한 미인이 없겠나

색을 좋아하는지라

개루는 한번 아랑의 말을 듣곤

좀처럼 생각을 끊을 수 없었다

어찌 대왕 후궁에 아랑만한 미인이 없사오리까마는

세상에서 이르기는 아랑은 신라에도 없고

고구려에도 짝을 구할 수 없는 미인이라 하옵니다

개루의 마음은 바짝 움직였다

한번 불러 보게 하라

우연한 이야기 한 마디로 일이 커지자

신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부르시기야 어려운 노릇이 아니오이다마는

아랑이 올는지 의심스럽소이다

내가 부르는 마당에

일개 목수의 계집이 안온다구

개루의 성미는 부풀어올랐다

세상이 전하는 말을 들으면

아랑의 고운 점은

관음 보살의 고운 것과 같다 하옵니다

고결하고 품위 있고

그러기에 사람들이 호락호락 넘보지 못한다 하옵니다

관음 보살

개루의 호색하는 마음이 더욱 부채질 쳐진 셈이 되었다

관음 보살은 왕의 신하가 아니던가

개루는 호기롭게 말을 뱉었다

잔말 말고 부르게 하라

급한 사자가 도미의 집으로 띄워졌다

도미는 전처럼 대궐에서 일을하고 있었다

혼자 아랑이 집에서 이 광경을 당했다

사자를 대한 아랑은 차가울 대로 차가웠다

단정하게 벼루에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 글월을 썼다

왕은 백성의 부모라

어찌 부르시는 명을 거역하오리까 마는

사나이 몸이 아니옵고 남편 있는 계집의 몸이라

남편의 허락 없이는

까닭 없이 왕명을 받을 수 없소이다

아랑은 쓰기를 마친 다음

편지를 봉하여 공손히 사자에게 전했다

사자를 보내고 초조하게 회답을 기다리고 있던 개루는

아랑의 정정당당한 구슬 같은 필적을 대하고 보니

보지 못한 아랑이 더욱 그립고 잊을 수 없었다

호화로운 왕의 위력으로

여태껏 수많은 여자를 다뤄 본 개루는

어디까지든 여자의 정조를 부인했다

아랑

관음 보살같이 결곡하고 아름답다는 도미의 처 아랑을

기어코 한번 손아귀에 넣고 싶었다

땅에 떨어진 뒤에 처음으로 개루는 고민의 맛을 느꼈다

위력으로 군사를 풀어

연약한 여자 아랑 하나를 잡아들이기에는

개루의 체면이 너무 깎여질 뿐 아니라

백성들의 웃음을 사기도 쉽다

어떻게 가만히 드러내 놓지 않고

아랑을 손에 넣을 지 궁리했다

정조

여자의 정조란 닥쳐 보면

다 결국 아무것도 아님을 개루는 잘 알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뒤

목수 도미는 개루의 편전 아래 불려졌다

네가 목수 도미냐

네 소인이 목수 도미옵니다

도미는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도미는 대궐 짓는 데 무슨 잘못이 있었나 하고

마음속으로 지난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네 아내가 백제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라지

도미의 가슴은 아뿔싸 하고 선뜻하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다

남들이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비로소 도미는 개루의 얼굴을 잠깐 쳐다봤다

범절이 있고 지조가 높다지

도미는 어떻게 대답해야 옳은지 몰랐다

멍하니 다시 힐끗 개루를 쳐다본다

여자 쳐놓고 지조가 있다는 계집을 내 여태 보지 못했다

네 아내도 그럴거다

더욱이 예쁜 계집일수록

말을 마치고 개루는 빙글빙글 웃으며 도미를 내려다본다

마치 아랑의 정조를 비웃는 듯이

도미의 진실하고 젊은 기운이 울쩍 일어났다

옥보다도 더 깨끗한 아랑의 몸에

애매한 누명을 얹는 것이 분했다

다른 여자는 모르겠소이다마는

소인의 계집은 죽을지언정 두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도미의 머리에는 지나간 달 밝은 가을밤에

아랑과 같이 뜰에 거닐던 생각이 번갯불같이 지나갔다

그럼 내 시험해 보랴

개루는 여전히 교활하고 능글맞게

소리 없는 웃음을 웃으며 도미를 내려다본다

시험해 보십시오

결연히 말을 마치고

도미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도미의 몸은 이제

처음처럼 떨리지도 않았다


아랑의 정조 박종화 1/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Arang's Jungjo Park Jong-hwa 1/2 (CC), Koreanische Kurzgeschichten-Hörbücher und Novellen zum Vorlesen Arang's Jungjo Park Jong-hwa 1/2 (CC), Korean Short Story Audiobooks and Novellas Read Aloud Arang's Jungjo Park Jong-hwa 1/2 (CC), Livres audio de nouvelles coréennes et Novellas lues à haute voix

안녕하세요 Hola

피어노벨라의 노벨라 예요 Es Novella de Pier Novella

마음과 몸을 리셋하는 시간이죠 Es hora de restablecer tu mente y tu cuerpo.

오늘은 도미와 아랑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아랑의 정조를 골랐습니다

박종화의 아랑의 정조는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편의 러브스토리죠

2부 까지 다 들으시고

구독과 알림 꼭 챙겨주세요

다음 시간 기대해 주시구요

감사합니다

아랑

아랑은 백제의 부인이다

아랑이 아름답다는 소문은

백제의 서울 장안에 자자하게 퍼졌다

아랑의 남편인 도미는 솜씨 있는 목수로

그 이름이 백제 서울에 유명했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아내 아랑을 가진

복 많은 청년 도미로 이름이 더 높았다

저사람이 유명한 목수 도미야

할 때 보다도

저 사람의 아내 아랑은 보통 아름다운 게 아니야

왜 그 아내 잘 두었다는 목수 도미란 사람 있잖아

바로 그 도미야

듣는 데서나 안 듣는 데서나

사람들은 이렇게 도미를 소개했다

도미 역시 자기 천직인 목수 보다도

항상 아름다운 아내를 두었다는

그것을 먼저 입에 올렸다

자기 재주가 인정되어 세상에 이름이 나는 것보다

아내의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인정된다는 것은

장인으로선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닐텐데

도미는 여기 대해서 조금도 불만이 없었다

불만이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빙글 웃으며

입이 슬그머니 벌려지곤 했다

사람이 무척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라에서 제일 가는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는 행복한 느낌이

도미의 가슴에 뻐근히 찼기 때문일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아랑은 무척 잘 생긴 여자였다

예쁘다고 해도 그저 아기자기하게

예쁜 편만이 아니다

맑은 눈매 하며

빚어 붙인 듯

깨끗하고 야무져서 빈 틈 없어 보이면서

구멍이 드러나지 않는 폭 싸인 아름답고 고운 코는

백제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수한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움 이지만

비둘기 알을 오뚝이 세워 놓은 듯한

동글 갸름한 얼굴 판에

숱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알맞은 눈썹과

방긋이 웃을 때마다 반짝하고 드러나는

고르고 흰 이는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않은 하얀 귓불과 함께

오직 아랑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의 넋을 잃게 하는 매력이었다

여기다가 아랑의 옷맵시는 더욱 좋았다

외로 여민 저고리 위의 날아갈 듯한 어깨 판하며

거듬거듬 주름잡은 눈빛 같은 흰 치맛자락엔

여위지도 않고 살찌지도 않은

건강하고 젊음을 풍기는 탄력 있는 살결이

도마뱀처럼 물결쳐 흘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해서 아랑이 백제 서울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될 수는 없었다

아랑의 반듯한 이맛전 아래

고르게 벌여진 눈썹과

호수 같은 맑은 눈매 근처에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우면서도 서릿발 같은

사람이 감히 호락호락히

범하지 못할 맑고 맑은 기쁨이 떠돌았다

여자란 흔히 아름다우면 음기를 품기가 쉬운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처절하게 예쁘다면 독기를 품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부드러우면서도 기품이 드러나고

아름다우면서 야무지고 빈틈 없기는 가장 드문 일이다

억지로 우리가 구해 본다면

성스러운 관음보살의 얼굴에서나

얼마간 이 고결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아랑을 한번 본 사람은

백제 서울의 제일가는 미인이라 떠들었고

아랑을 한번도 못 본 사람이라도

떠도는 소문만 듣고 도미의 아내 아랑은

나라의 첫손을 꼽을 미인이라고 덩달아서 칭찬했다

도미는 사실 행복했다

아내 아랑이 백제 서울 안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 된다는 것도

남자로써 즐거움의 하나지만

사실 아랑은 얼굴뿐만이 아니라

마음씨도 착하고 집안 일도 잘 보살폈다

도미가 솜씨있는 목수로 나날이

여기간다 저기간다 하고

으리으리한 대궐 짓는 일이나

대갓집 고래등 같은 기와집 짓기에

첫째로 뽑혀가는 동안

아랑은 길쌈을 짠다 빨래를 한다

온종일 부지런히 집안 일 보살피기에 분주했다

그러다가 해가 설핏해서 서산에 걸릴때가 되면

부엌으로 뛰어들어가서

저녁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다

해가 땅거미가 질 무렵

도미가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아랑이 혼자서 기다릴 생각을 하고는

걸음을 빨리해서 휘파람을 불면서 동구 앞으로 들어서면

아랑은 물묻은 손을 행주치마에 닦으면서

부리나케 삽짝문 밖까지 쫓아 나가서

생긋 흰 이를 드러내 웃는다

도미 어서 와요

아랑은 반갑게 도미의 팔뚝을 끌어안는다

그러면 도미는 온종일 그립던 아랑이 반가워서

아랑 많이 기다렸지

하고 마주 껴안으며 아랑의 그 맑은 눈을

정열이 타오르는 자신의 눈으로 쓰다듬어 위로해 준다

이럴 때마다 아랑의 길고 검은 속눈썹에는

반가움과 행복감에 넘치는

안개같은 눈물이 촉촉히 서리곤 한다

도미가 먼지를 털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뒤에

밥상을 받고 앉으면

아랑은 상머리 맡에서 배추김치를 찢어 주고

식어 가는 된장찌개를 다시 데워다 준다

밥 가져와 우리 같이 먹어

도미가 이렇게 말하면

아랑은 새색시 같이 부끄러워했다

이따가 당신 다 드시면

밤낮 왜 그러는 거야

아랑이 밥 안 가지구 오면 나두 안 먹어

도미는 어린애처럼 화를 내고 숟가락을 던졌다

흘기는 눈에는 담뿍 정열을 싣고

숟가락과 밥 한 사발을 들고 왔다

오기는 왔지만

밥사발을 도미의 소반 위에는 올려놓지 않는다

방바닥에 놓고 조심조심 숟가락을 옮긴다

아무리 남편의 앞이지만

행여 입안의 밥알이 보일까 하고

날마다 하루 한 때

이때부터가 도미와 아랑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때였다

밥상을 물리고 나서 도미와 아랑은 마주 앉아

온종일 지낸 일을 서로 이야기했다

도미 오늘도 대궐 일 했나요

그럼 대궐 짓기가 그렇게 쉬운줄 알아

오늘은 전각에 들보를 올렸지

차암 재목이 좋더라

바로 유주목인데 천년은 묵었을 거야

내 아람으로 네 아람이 되거든

아차산 꼭대기에서 벤 나문데

소 사람 합해서 오백 명 품이나 들여서 끌어왔어

나뭇결이 어떻게 좋은지

대패가 힘 안 들이고 잘 나가더라구

아무리 장인의 솜씨가 좋아도

재목이 나쁘면 신이 안 나거든

아유 천 년 묵은 나무

그 나무 구경 좀 했으면

대궐을 다 지어 놓으면

내 솜씨도 보일 겸 한번 구경시켜 줄게 아랑

이런 여염집 여자를 쉽사리 들어가게 해주겠어요

도편수 한테 말하면 우리 아랑이야 못 보여 주겠어

그럼 꼭 당신이 지은 대궐 구경시켜 주어요 도미

염려 말어 그까짓 거

아랑 오늘은 뭐 했어

맞춰 봐요

아랑은 생긋이 웃으며 도미를 쳐다본다

글쎄 오늘은 전부터 짜던 삼승무명 끝마쳤겠지

아니야 틀렸어

명주를 시작했어요

설날 입을 도미의 바지 저고리 만들려구

명주

명주 옷은 난생 처음인데

아랑 덕에 명주 옷을 다 입네

참 설날두 앞으로 서너 달밖에 안 남았지

도미는 사실 정말로 즐거웠다

도미는 아내의 손을 이끌어 쓰다듬는다

우리가 혼인을 한 지도 벌써 이 년째가 되지

아랑은 방싯 웃음을 머금고 소리 없이 고개만 까딱거린다

그런데 아랑

인제 어린애를 하나 낳아야지

아이 듣기 싫어요

아랑은 부끄러워 도미의 무릎을 주먹으로 탁 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손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서려 한다

못나긴

뭐가 부끄러워 누가 들어

그런데 아랑 가만 있어 내 얘기 한번 듣고 일어나

도미는 아랑의 뿌리치는 손을 꽉 쥐고 놓아 주지 않았다

아이 아파

아랑은 다시 도미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거 봐 아랑

나는 암만해도 아랑 때문에 큰일 났어

목수 도미보다도

아내 아랑을 잘 둔 도미로 이름이 더 났단 말야

누구든지 날 보기만 하면

오 그 백제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라는

아랑의 남편 도미로군

하고 이렇게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보곤 하거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어깨는 막 으쓱해지지

그런데 이거 봐요

아랑이 잘생겼다는 소문이 백제 서울에 얼마나 자자한지

하루는 대궐에서 전각 들보 대패를 메기고 있는데

건축공사 대신이 지나가다가 대패질하구 있는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네 이름이 도미냐

하구 묻기에

예 그렇습니다 했어

그랬더니

오 저 백제에서 제일 가는

미인 아내를 두었다는 그 도미로구나

그리고는 내 곁에 서서

대패질하는 걸 한동안 바라보다가

어 참 대패질 잘한다

너는 백제서 제일 가는 팔자 좋은 사람이다

하면서 한참 칭찬을 허구 가겠지

내 코가 막 세 발이나 더 솟았지

흐히히

아이 몰라 부끄럽게

아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푹 가렸다

도미와 아랑의 깨가 쏟아질 듯한 재미있는 살림은

나날이 더 깊어 갔다

이와 정비례해서

목수 도미의 아내 아랑의 아름답다는 소문도

날이 갈수록 서울에 더 자자해졌다

도미는 행복한 중에도

차츰차츰 형언하기 어려운

한 조각 엷은 불안을 가슴속에 느끼게 되었다

그건 아랑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너무도 지나치게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 사람 입에도 올랐다

고구려 사람 입에도 올랐다

도미는 오히려 조금씩 괴롭고 무서움을 느꼈다

도미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공포는

마치 소중한 구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 소문이 지나치게 자자하기 때문에

행여 모르는 사이에 구슬을 빼앗기지 않을까

도둑 맞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과 비슷했다

도미는 전과 같이 일터에서 돌아와서 저녁밥을 물린 뒤에

아랑과 함께 뜰을 거닐었다

달이 환하게 중천에 높이 솟았다

가을인데도 낙엽 구르는 소리조차 없었다

기왓골에는 싸늘한 서리가 유리같이 깔리기 시작한다

도미와 아랑은 손을 잡고 거닐다가

아랑 춥지 않어

하며 도미는 달빛 아래 아랑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니 당신 곁이면

당신 곁이면

도미가 되받아 물었다

언제든지 춥지 않어요

이 순간 달빛 아래 해죽이 웃는 아랑의 얼굴은

정말 보배로운 구슬보다도 더 곱고 귀여웠다

도미는 한 손으론 아랑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론 달빛 비치는 아랑의 웃는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도미는 이 고운 아내 아랑을

어떻게 주체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랑 당신은 너무 예뻐

도미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뚝 떨어뜨린다

아랑은 남편 도미의 심경을 알 리가 없다

잠깐 동안 말없는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또다시 천천히 뜰을 거닐었다

아랑

당신은 더 호강하구 싶지 않어

도미가 다시 말을 꺼낸다

당신 곁이면

아랑은 말을 마치고 고래를 살래살래 흔든다

이봐 이 목수 도미의 아내가 되기엔

당신이 너무 이쁘단 말야

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재상의 아내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큰 부잣집 맏며느리가 되든지 해야 할 감이란 말야

이 목수놈 도미의 아내가 되기엔 너무도 아깝단 말야

도미 별안간 그게 다 무슨 소리예요

나는 재상도 싫어

장잣집 며느리도 소원이 아니야

마음 편한 당신의 아내가 제일 좋아요

아랑의 얼굴엔 반듯한 기품이 서리었다

이거 봐 아랑

난 겁이 나

도미 뭐가 겁나요

아랑이 너무 이뻐서

세도 좋은 재상이나

장잣집 아들에게 뺏길까 봐서

말을 마친 도미의 고개는 기운 없이 수그러진다

뺏겠다고 하면 뺏겨요

내가 개돼진가 아랑은 싸늘하게 노했다

도미의 잡은 손을 뿌리친 채 마루를 향해 올라선다

달빛 속에 새침히 돌아서는 아랑의 뒷모습은 부어 내리는 서릿발보다도 더 차갑다

목수 도미의 아내 아랑의 아름다음에 대한 소문은

이 나라의 왕 개루의 귀까지 들어갔다

개루는 나라를 잘 다스리고 정사를 잘 베풀었다

백성의 세금을 가볍게 하고

성과 연못을 잘 가꿔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런 영특한 임금이면서도

그에겐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색을 좋아해서 예쁜 여자를 가까이 하는 일이었다

한 두 명으로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왕 자신은 조금도 이것을 뉘우치지 않는다

영웅은 색을 좋아한다 는 옛말은

개루에게 있어서는 여간 아름다운 방패막이가 아니다

하나의 말막음 거리가 될 뿐만이 아니라

개루는 자기 자신이 색을 좋아함으로써

한 사람의 훌륭한 영웅이 되는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개루는 편전에서

신하와 더불어 정사를 의논하다가

일이 끝난 다음

이야기가 한가로운 일상의 소소한 일에 미쳤다 개루가 색을 좋아하는걸 익히 아는 신하는

백제 서울 미인의 이야기를 하다가

목수 도미의 아내 아랑이 대화에 오르게 됐다

백제의 첫 손가락을 꼽을 미인은

목수 도미의 아내 아랑일 겁니다

하고 아뢰었다

목순데 어떻게 백제의 제일 가는 미인을 얻었소

개루는 기괴하게 생각했다

그건 다 연분이지요

연분

아니야 우연이지

강한 성격을 가진 개루는 운명을 부정했다

내 후궁에 그래 아랑만한 미인이 없겠나

색을 좋아하는지라

개루는 한번 아랑의 말을 듣곤

좀처럼 생각을 끊을 수 없었다

어찌 대왕 후궁에 아랑만한 미인이 없사오리까마는

세상에서 이르기는 아랑은 신라에도 없고

고구려에도 짝을 구할 수 없는 미인이라 하옵니다

개루의 마음은 바짝 움직였다

한번 불러 보게 하라

우연한 이야기 한 마디로 일이 커지자

신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부르시기야 어려운 노릇이 아니오이다마는

아랑이 올는지 의심스럽소이다

내가 부르는 마당에

일개 목수의 계집이 안온다구

개루의 성미는 부풀어올랐다

세상이 전하는 말을 들으면

아랑의 고운 점은

관음 보살의 고운 것과 같다 하옵니다

고결하고 품위 있고

그러기에 사람들이 호락호락 넘보지 못한다 하옵니다

관음 보살

개루의 호색하는 마음이 더욱 부채질 쳐진 셈이 되었다

관음 보살은 왕의 신하가 아니던가

개루는 호기롭게 말을 뱉었다

잔말 말고 부르게 하라

급한 사자가 도미의 집으로 띄워졌다

도미는 전처럼 대궐에서 일을하고 있었다

혼자 아랑이 집에서 이 광경을 당했다

사자를 대한 아랑은 차가울 대로 차가웠다

단정하게 벼루에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 글월을 썼다

왕은 백성의 부모라

어찌 부르시는 명을 거역하오리까 마는

사나이 몸이 아니옵고 남편 있는 계집의 몸이라

남편의 허락 없이는

까닭 없이 왕명을 받을 수 없소이다

아랑은 쓰기를 마친 다음

편지를 봉하여 공손히 사자에게 전했다

사자를 보내고 초조하게 회답을 기다리고 있던 개루는

아랑의 정정당당한 구슬 같은 필적을 대하고 보니

보지 못한 아랑이 더욱 그립고 잊을 수 없었다

호화로운 왕의 위력으로

여태껏 수많은 여자를 다뤄 본 개루는

어디까지든 여자의 정조를 부인했다

아랑

관음 보살같이 결곡하고 아름답다는 도미의 처 아랑을

기어코 한번 손아귀에 넣고 싶었다

땅에 떨어진 뒤에 처음으로 개루는 고민의 맛을 느꼈다

위력으로 군사를 풀어

연약한 여자 아랑 하나를 잡아들이기에는

개루의 체면이 너무 깎여질 뿐 아니라

백성들의 웃음을 사기도 쉽다

어떻게 가만히 드러내 놓지 않고

아랑을 손에 넣을 지 궁리했다

정조

여자의 정조란 닥쳐 보면

다 결국 아무것도 아님을 개루는 잘 알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뒤

목수 도미는 개루의 편전 아래 불려졌다

네가 목수 도미냐

네 소인이 목수 도미옵니다

도미는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도미는 대궐 짓는 데 무슨 잘못이 있었나 하고

마음속으로 지난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네 아내가 백제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라지

도미의 가슴은 아뿔싸 하고 선뜻하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다

남들이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비로소 도미는 개루의 얼굴을 잠깐 쳐다봤다

범절이 있고 지조가 높다지

도미는 어떻게 대답해야 옳은지 몰랐다

멍하니 다시 힐끗 개루를 쳐다본다

여자 쳐놓고 지조가 있다는 계집을 내 여태 보지 못했다

네 아내도 그럴거다

더욱이 예쁜 계집일수록

말을 마치고 개루는 빙글빙글 웃으며 도미를 내려다본다

마치 아랑의 정조를 비웃는 듯이

도미의 진실하고 젊은 기운이 울쩍 일어났다

옥보다도 더 깨끗한 아랑의 몸에

애매한 누명을 얹는 것이 분했다

다른 여자는 모르겠소이다마는

소인의 계집은 죽을지언정 두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도미의 머리에는 지나간 달 밝은 가을밤에

아랑과 같이 뜰에 거닐던 생각이 번갯불같이 지나갔다

그럼 내 시험해 보랴

개루는 여전히 교활하고 능글맞게

소리 없는 웃음을 웃으며 도미를 내려다본다

시험해 보십시오

결연히 말을 마치고

도미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도미의 몸은 이제

처음처럼 떨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