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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 사랑의 고통 (오사카, 1949년) 」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 사랑의 고통 (오사카, 1949년) 」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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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사랑의 고통. 오사카, 1949년.

선자의 가족들이 오사카로 돌아간 후,

한수는 김창호에게 쓰루하시 시장의 가게 주인들에게서 세 걷는 일을 맡겼다.

한수의 회사는 세를 받는 대신에

가게에 주인들을 보호해주고 지원해주었다.

적지 않은 세를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지만

그 문제에 있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드물지만 돈이 없다고 하거나 어리석게도 세를 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한수는 김창호가 아니라 다른 부하들을 보내서 그 상황을 해결했다.

가게 주인들이 그런 세를 내는 것은 오랜 관행이었고,

그러한 세는 장사에 필요한 또 다른 비용에 불과했다.

한수를 위해 일하는 중매상은 더 큰 조직의 일원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했고,

한수의 부하들은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상관없이

모두 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

김창호는 두꺼운 안경을 써야 하는 근시만 아니라면

싹싹한 인상의 남자였다.

겸손하고 부지런하며 말을 잘했다.

한수는 김창호가 효율적이고 언제나 정중하기 때문에

그에게 수금을 맡겼다.

김창호는 더러운 행동을 포장해주는 깨끗한 포장지 같았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김창호는 막 그 주의 수금을 끝낸 참이었다.

60개가 넘는 현금 다발은 각각 깨끗한 종이에 싸인 채

그 위에는 가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게 주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세를 냈다.

김창호는 한수의 주차된 자동차로 다가가서

막 자동차 문을 열고 나오는 한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운전사가 나중에 그들을 데리러 올 것이었다.

"한잔하지." 한수가 김창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두 사람은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지나가는 남자들이 끊임없이 한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고,

한수는 그들을 알아보고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하지만 한 번도 멈춰 서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새로운 곳을 소개해 주지.

예쁜 여자들이 있는 곳이야.

오랫동안 헛간에서 살았으니 여자가 필요할 것 같은데."

김창호가 깜짝 놀라서 웃었다.

한수는 보통 그런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넌 결혼한 여자를 좋아하지. 나도 알아." 한수가 말했다.

김창호는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계속 걸었다.

"선자의 언니 말이야."

한수는 좁은 시장 거리를 걸어 내려가면서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 여자는 여전히 예쁘지. 남편은 더 이상 남편 노릇을 할 수 없는 상태고.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있지?"

김창호는 안경을 벗어서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았다.

그는 요셉을 좋아했기 때문에 뭐라고 변명을 해주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요셉은 술을 많이 마셨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동네 남자들은 여전히 그를 존경하는 게 분명했다.

요셉은 집에서 몸이 괜찮을 때는 아이들의 학교 숙제를 도와주고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가끔씩 아는 공장 주인들을 위해서 기계도 고쳐주었지만

그 몸 상태로는 정기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집은 어때?" 한수가 물었다.

"이렇게 잘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김창호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

"식사가 아주 맛있어요. 집도 굉장히 깨끗하고요."

"그 여자들한테는 보살펴줄 남자 일꾼이 필요해.

하지만 난 네가 유부녀한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

"사장님, 요즘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대구가 아니라 북한으로요."

"또? 그 이야기는 끝났어.

네가 사회주의자들 모임에 나가는 건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헛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민단의 우두머리들도 나을 게 없어.

게다가 너는 북한에 가면 살해 당할 거야. 남한에서는 굶어죽을 거고.

다들 일본에서 살았던 조선인들을 미워하거든.

네가 고국에 가는 건 절대 찬성할 수 없어. 절대 안 돼."

"김일성 지도자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 . . "

"나도 그 무리를 알아. 그 무리 중 몇몇은 실제로 그러한 대의를 믿고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매주 봉급 봉투를 걷으려는 자들에 불과해.

이곳에 사는 책임 있는 사람들은

절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아. 두고 보라고."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잘라놓고 있는데 . . . "

한수는 김창호의 양어께에 두 손을 올려놓고

김창호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넌 오랫동안 여자를 만나지 않아서 똑바로 생각할 수가 없는 거야."

한수가 미소를 짓고는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 잘 들어. 난 조령과 민단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다 알고 있어."

한수가 콧방귀를 꼈다. "아주 잘 알고 있지 . . . "

"하지만 민단은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 . . "

한수는 젊은이의 진지한 태도에 즐거운 기색으로 미소 지었다.

"내 밑에서 얼마나 일했지?"

"열두 살인가 열세 살쯤이었을 때 제게 일자리를 주셨죠."

"그동안 내가 너와 정치 얘기를 몇 번이나 했지?"

김창호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안 했어. 단 한 번도. 난 사업가야.

너도 사업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

나는 네가 그런 모임에 갈 때마다 너 자신을 생각했으면 좋겠어.

난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자신의 이익을 높일 생각을 하기를 바라.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단체만 생각하기 때문에 망하는 거야.

하지만 진실은 이렇지. 자애로운 지도자 같은 건 없어.

난 네가 날 위해 일하기 때문에 널 보호해줄 수 있지.

네가 바보처럼 행동하고 내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면

그때는 널 보호해줄 수 없어.

조선인 집단들 말인데 거기 책임자들은 단지 사람들일 뿐이야.

돼지보다도 똑똑하지 못한 인간들이지.

우리가 먹는 그 돼지 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점을 명심해둬.

전쟁 중에 고구마를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아서

일본인들을 굶주리게 했던 농부 다마구치와 살아봤지?

다마구치는 전시 규정을 어겼고,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고 싶어서 그를 도왔지.

다마구치는 아마 자기가 점잖고 존경받을 만한 일본인이라고 생각할 거야.

아니면 자랑스러운 애국주의자라고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전부 다일지도 모르고,

다마구치는 일본인으로서는 끔찍한 인간이지만 사업가로서는 영리한 사람이야.

나는 좋은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니야.

돈을 잘 버는 사람이지.

모든 사람이 사무라이 정신이니 어쩌니 하는 헛소리를 믿는다면 이 나라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걸.

천황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아.

그래서 난 너한테 그런 모임에 가지 말라거나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아.

하지만 이건 알아둬. 그 공산주의자들은 널 돌봐주지 않아.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지.

그들이 조선을 생각한다고 믿는다면 넌 정신이 나간 거야."

"가끔씩 고국이 그리워요." 김창호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고국이라는 게 없어."

한수가 담배 하나를 꺼내자

김창호가 불을 붙이려고 한수에게 다가갔다.

김창호는 20년이 넘도록 고국에 가보지 못했다.

그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소작농 아버지도 얼마 후 돌아가셨다.

누나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결국에는 결혼해서 사라져버렸고, 김창호는 혼자 남아서 구걸을 해야했다.

김창호는 북한으로 가서 국가 재통합을 돕고 싶었지만,

대구로 가서 부모님의 무덤을 돌보고

제사를 지내드리고 싶기도 했다.

한수가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았다.

"내가 여기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 난 여기가 싫어.

하지만 여기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지.

넌 가난해지고 싶지 않을 거야.

창호야, 넌 내 밑에서 일하면서 충분한 음식과 돈을 모았어.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거야. 그게 정상이지.

애국주의는 신념일 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신념의 빠지면 자신의 이익을 잊어버릴 수 있어.

책임자들은 신념에 지나치게 빠져든 사람들을 착취할 거고.

넌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어.

너 같은 사람이나 나 같은 사람은 백 명이 모여도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일본인들이 물러나고, 이제는 소련과 중국,

미국이 엉망진창인 작은 우리나라를 놓고 싸우고 있어.

그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선은 잊어버려.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그 유부녀를 원한다고.

좋아. 그럼 그 여자의 남편을 제거해버리거나

그 남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

그게 바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경희 씨는 남편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요셉은 실패자야."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김창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경희 씨는 그런 여자가 아니고 . . . "

김창호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요셉이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있었지만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김창호는 많은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도 들어 있었다.

경희가 그 망가진 남자를 떠난다면 경희를 흠모할 가치가 떨어질 것이었다.

길 끝에서 한수가 걸음을 멈추고 평범해 보이는 술집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여자를 품고 싶니?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서 그 유부녀 곁으로 가고 싶니?"

김창호는 문손잡이를 노려보다가 잡아당겨 열었다.

한수를 먼저 들여보내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오사카의 새집은 옛집보다 다다미 두 개가 더 들어갈 정도로 컸고

타일과 원목, 벽돌로 지어졌다.

한수가 예상했던 대로 옛날 집은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경희는 법적 서류를 코트 안감에 꿰매 넣어 놓았고,

한수의 변호사가 요셉의 재산권을 인정 받도록 도와주었다.

요셉과 경희는 농장을 떠날 때 다마구치한테서 받은 돈으로

옛날 집 근처의 빈 땅을 사들였다.

그러고는 한수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도움을 받아 집을 새로 지었다.

이번에도 요셉은 이웃사람들에게

자신이 집주인이라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

실제보다 더 가난한 척하는 것이 언제나 현명한 행동이었다.

집 외관은 이카이노의 다른 집들과 거의 똑같았다.

요셉의 가족들은 김창호와 함께 살기로 했고,

요셉이 같이 살자고 했을 때 김창호는 거절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질 좋은 벽지를 달랐고,

작은 창문으로 쓸 튼튼하고 두꺼운 유리를 샀다.

돈을 조금 더 써서 더 나은 천을 사들여 따뜻한 이불과 방석을 만들었고,

밥상 겸 공부상으로 쓸 나지막한 조선식 상도 샀다.

밖에서 봤을 때는 널찍한 판잣집에 불과해 보였지만, 집 안은 깨끗하고

조직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었다.

부엌도 널찍해서 식품 수레를 밤새 보관할 수 있었다.

부엌문으로 드나들 수 있는 별채도 붙어 있었다.

양진과 선자, 아이들은 낮에 안방으로 쓰는 중간 방에서 잠을 잤다.

요셉과 경희는 부엌 옆의 가장 큰 창고 방에서 잠을 잤고,

김창호는 장지문 두 개로 두 벽면을 막은 앞쪽 방에서 잠을 잤다.

어렵게 일곱 명이 이카이노에서 한 집에 살았다.

이웃집들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거주지는 사치스러운 정도였다.

저녁 늦게 김창호가 술집에서 돌아오자 다들 잠들어 있었다.

한수가 상당히 매력적인 조선인 여자를 사주었고,

김창호는 그 여자와 뒷방에 들어갔다.

그 후에 목욕탕에 가고 싶었지만 그날 밤에는 집 근처에 있는 목욕탕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김창호는 별채 옆의 세면대에서 되는대로 몸을 씻었지만

입에서는 여전히 여자의 분홍색 립스틱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여자는 어렸는데 기껏해야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뒷방에서 일하지 않을 땐 종업원으로 일하는 여자였다.

술집에서 일하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 여자도 전쟁과 미국의 점령군들을 겪으면서 강인해졌다.

상당히 예쁘장한 여자라서 많은 남자들을 만났을 것 같았다.

지나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여자였다.

뒷방은 돈을 지불한 고객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었다.

지나는 뒷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곧장 꽃무늬 옷을 벗었다.

그녀는 속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늘씬하고 가냘픈 몸매에 둥글게 솟아오른 가슴은 브래지어를 할 필요가 없었고,

두 다리는 굶주린 농부의 것처럼 깡말라 있었다.

지나가 김창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부드럽게 엉덩이를 돌리며 그를 흥분시켰다.

그러더니 김창호를 바닥에 깔린 짙은 빨간색 요 위로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지나는 김창호의 옷을 벗기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능숙하게 김창호를 닦아주더니

립스틱 바른 입으로 성병예방약을 김창호에게 먹여주었다.

김창호는 여자와 자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지금까지 창녀들만 상대했지만 이번 상대는 얼굴과 몸매가 창녀답지 않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이번에는 그가 돈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그는 지나의 화대가 왜 그렇게 비싼지 알 것 같았다.

지나는 김창호를 오빠라고 불렀고,

지금 자기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지 물었다.

김창호 매력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지나의 능숙한 솜씨에 놀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는 김창호를 부드럽게 밀어 눕히고는 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아

엉덩이를 꽉 조여서 한 번에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김창호의 이마와 머리카락에 키스하고,

관계를 갖는 내내 김창호의 머리를 자기 가슴에 파묻었다.

거짓인지는 몰라도 지나는 다른 창녀들과는 달리

김창호와의 관계를 즐기는 것 같았다.

지나가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김창호는 잔뜩 흥분했고 바로 가버렸다.

지나는 잠시 동안 김창호에게 안겨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수건을 가져왔다.

김창호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에는 김창호를 잘생긴 오빠라고 불렀고,

오빠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또 와달라고 했다.

김창호는 밤새 머물면서 한 번 더 하고 싶었지만,

한수가 술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또 오겠다고 지나에게 약속하고 뒷방에서 나왔다.

방에 들어가자 누군가가 벌써 잠자리를 펴놓은 것이 보였다.

김창호는 풀을 먹인 깨끗한 요에 누워서 경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지금 자신이 누워 있는 침구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경희와 사랑을 나누는 몽상에 젖어들었다.

유부녀가 성관계에 놀라지는 않겠지만

지나가 그랬던것처럼 경희도 성관계를 즐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경희가 그랬다면 그는 경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헛간에서 지낼 무렵 김창호는 항상 여자들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요셉이 경희의 몸을 올라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김창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 집에서도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요셉은 더 이상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김창호는 경희를 사랑하면서도

요셉을 미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 같았다.

그렇게 경희는 그의 것이기도 했다.

김창호의 마음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난 탓에 고한수는 그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김창호는 경희의 부드러운 얼굴, 우아하고도

조용한 몸짓을 보지 않고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경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경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식당에서 경희와 나란히 일했을 때, 농장에서 경희와 단둘이 있었을 때,

김창호는 경희의 몸을 끌어당겨 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거의 미칠 것만 같았다.

차마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경희가 자신에게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희는 남편을 사랑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다.

김창호가 절대 믿을 수 없고,

신도들에게 혼외정사를 허락하지 않는 그 신을 경희는 믿었다.

김창호는 경희가 얇은 장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두 눈을 감았다.

그 창녀가 그랬던 것처럼 경희가 옷을 벗고 그에게 입을 맞춘다.

김창호는 경희를 끌어당겨 자기 품 안에 가둔다.

경희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 그의 인생이 가장 완벽해지는 그 순간,

김창호는 죽어도 좋을 것 같다.

김창호는 경희의 아담한 가슴, 새하얀 배와 다리,

은밀한 그곳의 그림자를 그려볼 수 있었다.

다시 아랫도리가 딱딱해지자 김창호는 자신이 어린 소년 같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웃었다.

또 하고 또 해도 충분할 것 같지 않았다.

예쁜 창녀를 만나면 경희를 지워버릴 수 있을 거라는 한수의 생각은 틀렸다.

김창호는 오늘 밤 달콤하고 청량한 뭔가를 맛보았고,

지금은 그 청량한 기운을 커다란 욕조에 한 가득 끌어 모아 온 몸을 깊숙이 담그고 싶었다.

김창호는 성난 아랫도리를 문지르다가 안경을 쓴 채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김창호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도 먹지 않고 일하러 나갔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갈 때 김창호는 설탕과자 소리를 끌고가는 가녀린 어깨를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그녀를 뒤쫓아 달려갔다.

"제가 할게요."

"아, 왔네요." 경희가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아침에 창호 씨가 그냥 가버려서 다들 걱정했어요.

어젯밤에도 못 봤고요. 오늘은 뭘 좀 먹었어요?"

"전 괜찮아요. 제 걱정은 할 필요 없어요."

김창호는 설탕과자를 포장하는

봉지 더미가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봉지가 없네요. 오늘은 장사가 잘 됐어요?"

경희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다 팔았어요. 하지만 흑설탕 가격이 또 올랐어요.

어쩌면 젤리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젤리를 만들 때는 설탕이 좀 덜 들어가거든요.

새로운 제조법을 찾아야겠어요."

경희가 걷다가 멈춰서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김창호가 수레를 빼앗아 대신 끌었다. "선자 씨는 벌써 집에 갔어요?" 김창호가 물었다.

경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어요?"

"오늘 밤에는 소란이 좀 없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남편이 모두에게 너무 모질게 굴어요. 게다가 . . . " 경희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요셉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자신의 화상과 부상으로 인한 끔찍한 통증을 느낄 만큼은 회복되고 있었다.

요셉은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게 생기면 화를 냈고 예전처럼 그 화를 참지도 않았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소리도 자주 질렀다.

전쟁 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요." 김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셉은 선자에게 조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아이들을 동네 조선인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조선어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한수는 선자에게 그 반대 이야기를 했다.

선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 조선으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텅 비어 있었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부드러운 회색빛과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조용할 때가 좋아요." 경희가 말했다.

"네, 그래요." 김창호는 수레 손잡이를 좀 더 세게 움켜쥐었다.

경희가 느슨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긴 하루를 보냈음에도 경희의 표정은 여전히 맑고 밝았다.

그 누구도 절대 더럽힐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어젯밤에 요셉이 또 학교 문제 때문에 선자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남편은 좋은 뜻으로 그러는 거예요.

남편도 마음이 많이 아플 거예요.

노아는 일본인 학교에 가고 싶어 해요. 와세다대학에 가고 싶대요.

상상이 가세요? 그런 큰 학교에 가고 싶어 하다니!"

경희는 노아의 원대한 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뭐, 모자수는 전혀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지만요." 경희가 웃었다.

"우리가 지금 돌아갈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읽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경희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김창호가 코트 주머니에서 안경을 닦을 때 쓰는 손수건을 꺼내 경희에게 건넸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요." 김창호가 말했다.

경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경희는 김창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아직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꿈을 꿔요.

부모님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요. 너무 위험해요.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 . . "

'"상황이 곧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뭐, 누님도 우리들이 어떤지 알잖아요."

"무슨 말이죠?" 경희가 물었다.

"조선인들이요. 조선인들은 서로 싸우고 있죠.

모두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권력을 쥐든 그 권력을 유지하려고 아주 독하게 싸울 겁니다."

김창호는 한수한테 들었던 말을 되풀이했다.

한수의 말은 언제나 옳아쓰니까.

특히 인간의 추악한 면을 꿰뚫어볼 때는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럼 창호 씨는 공산주의자가 아닌가요?" 경희가 물었다.

"뭐라고요?"

"그런 정치 모임에 가잖아요."

창호 씨가 어울리는 사람들이라면 그들도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창호 씨는 일본 정부의 저항하고 우리나라를 통일하고 싶어 하잖아요.

맞죠? 시장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편은 공산주의자들이 나쁘다고 말했어요.

그들이 우리 부모님을 쏴 죽였다고요.

우리 아버지는 항상 모두에게 미소를 지었어요. 항상 좋은 일을 하셨죠."

경희는 왜 부모님이 살해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셋째 아들이라서 가진 땅도 많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지주들을 모두 다 죽였을까?

별 볼 일 없는 지주들도? 경희는 김창호의 생각이 궁금했다.

김창호는 좋은 사람이고 세상일을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

김창호는 수레에 기대서서 경희를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경희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경희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니,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이런 여자를 곁에 둔다면 정치의 신경이나 쓰게 될지 궁금했다.

"다른 종류의 공산주의자들도 있나요?" 경희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공산주의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전 일본이 조선을 다시 점령하는 걸 반대하고 있어요.

소련과 중국이 조선을 다스리는 것도 싫고요.

왜 조선을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조선인들이 서로 싸우고 있잖아요.

할머니 두 사람이 싸울 때와 똑같은 것 같아요.

그럴 때 보면 마을 사람들이 상대의 나쁜 점을 소곤소곤 일러주면서

두 사람을 이간질시키잖아요.

할머니들이 화해를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 말을 다 무시하고

서로 친구로 지냈을 때를 기억하면 돼요."

"아무래도 누님을 우리 지도자로 추대해야 할 것 같은데요."

김창호는 집 쪽으로 수레를 끌면서 말했다.

집까지 가는 길이 짧았지만 김창호는 경희와 함께해서 행복했다.

하지만 그 바람에 경희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김창호는 가끔씩 경희 곁에 머물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집 밖으로 나가 그런 모임에 참석했다.

경희를 매일 봐야 했기 때문에

경희의 집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김창호는 경희를 사랑했다.

그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김창호는 생각했다.

결국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집까지 몇 발자국을 남겨두고 두 사람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두 사람은 그날 하루 일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느긋해지고 좀 더 친숙해 졌다.

김창호는 경희를 사랑하는 고통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 사랑의 고통 (오사카, 1949년) 」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Der Schmerz der Liebe (Osaka, 1949) von Pachinko Pachinko [Buch 1. Heimatstadt] "The Pain of Love (Osaka, 1949) by Pachinko [Book 1. Hometown] Pachinko [Book 1. "El dolor del amor" (Osaka, 1949) de Pachinko [Libro 1. Ciudad natal] Pachinko [Libro 1. Ciudad natal]. "Боль любви" (Осака, 1949) Пачинко [Книга 1. Родной город] Пачинко [Книг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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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사랑의 고통. 오사카, 1949년.

선자의 가족들이 오사카로 돌아간 후,

한수는 김창호에게 쓰루하시 시장의 가게 주인들에게서 세 걷는 일을 맡겼다.

한수의 회사는 세를 받는 대신에

가게에 주인들을 보호해주고 지원해주었다.

적지 않은 세를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지만

그 문제에 있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드물지만 돈이 없다고 하거나 어리석게도 세를 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한수는 김창호가 아니라 다른 부하들을 보내서 그 상황을 해결했다.

가게 주인들이 그런 세를 내는 것은 오랜 관행이었고,

그러한 세는 장사에 필요한 또 다른 비용에 불과했다.

한수를 위해 일하는 중매상은 더 큰 조직의 일원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했고, The middleman working for Hansoo had to act worthy of being a member of a larger organization

한수의 부하들은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상관없이

모두 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

김창호는 두꺼운 안경을 써야 하는 근시만 아니라면

싹싹한 인상의 남자였다.

겸손하고 부지런하며 말을 잘했다.

한수는 김창호가 효율적이고 언제나 정중하기 때문에

그에게 수금을 맡겼다.

김창호는 더러운 행동을 포장해주는 깨끗한 포장지 같았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김창호는 막 그 주의 수금을 끝낸 참이었다.

60개가 넘는 현금 다발은 각각 깨끗한 종이에 싸인 채

그 위에는 가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게 주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세를 냈다.

김창호는 한수의 주차된 자동차로 다가가서

막 자동차 문을 열고 나오는 한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운전사가 나중에 그들을 데리러 올 것이었다.

"한잔하지." 한수가 김창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두 사람은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지나가는 남자들이 끊임없이 한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고,

한수는 그들을 알아보고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하지만 한 번도 멈춰 서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새로운 곳을 소개해 주지.

예쁜 여자들이 있는 곳이야.

오랫동안 헛간에서 살았으니 여자가 필요할 것 같은데."

김창호가 깜짝 놀라서 웃었다.

한수는 보통 그런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넌 결혼한 여자를 좋아하지. 나도 알아." 한수가 말했다.

김창호는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계속 걸었다.

"선자의 언니 말이야."

한수는 좁은 시장 거리를 걸어 내려가면서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 여자는 여전히 예쁘지. 남편은 더 이상 남편 노릇을 할 수 없는 상태고.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있지?"

김창호는 안경을 벗어서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았다.

그는 요셉을 좋아했기 때문에 뭐라고 변명을 해주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요셉은 술을 많이 마셨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동네 남자들은 여전히 그를 존경하는 게 분명했다.

요셉은 집에서 몸이 괜찮을 때는 아이들의 학교 숙제를 도와주고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가끔씩 아는 공장 주인들을 위해서 기계도 고쳐주었지만

그 몸 상태로는 정기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집은 어때?" 한수가 물었다.

"이렇게 잘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김창호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

"식사가 아주 맛있어요. 집도 굉장히 깨끗하고요."

"그 여자들한테는 보살펴줄 남자 일꾼이 필요해.

하지만 난 네가 유부녀한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

"사장님, 요즘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대구가 아니라 북한으로요."

"또? 그 이야기는 끝났어.

네가 사회주의자들 모임에 나가는 건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헛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민단의 우두머리들도 나을 게 없어.

게다가 너는 북한에 가면 살해 당할 거야. 남한에서는 굶어죽을 거고.

다들 일본에서 살았던 조선인들을 미워하거든.

네가 고국에 가는 건 절대 찬성할 수 없어. 절대 안 돼."

"김일성 지도자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 . . "

"나도 그 무리를 알아. 그 무리 중 몇몇은 실제로 그러한 대의를 믿고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매주 봉급 봉투를 걷으려는 자들에 불과해.

이곳에 사는 책임 있는 사람들은

절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아. 두고 보라고."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잘라놓고 있는데 . . . "

한수는 김창호의 양어께에 두 손을 올려놓고

김창호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넌 오랫동안 여자를 만나지 않아서 똑바로 생각할 수가 없는 거야."

한수가 미소를 짓고는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 잘 들어. 난 조령과 민단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다 알고 있어."

한수가 콧방귀를 꼈다. "아주 잘 알고 있지 . . . "

"하지만 민단은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 . . "

한수는 젊은이의 진지한 태도에 즐거운 기색으로 미소 지었다.

"내 밑에서 얼마나 일했지?"

"열두 살인가 열세 살쯤이었을 때 제게 일자리를 주셨죠."

"그동안 내가 너와 정치 얘기를 몇 번이나 했지?"

김창호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안 했어. 단 한 번도. 난 사업가야.

너도 사업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

나는 네가 그런 모임에 갈 때마다 너 자신을 생각했으면 좋겠어.

난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자신의 이익을 높일 생각을 하기를 바라.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단체만 생각하기 때문에 망하는 거야.

하지만 진실은 이렇지. 자애로운 지도자 같은 건 없어.

난 네가 날 위해 일하기 때문에 널 보호해줄 수 있지.

네가 바보처럼 행동하고 내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면

그때는 널 보호해줄 수 없어.

조선인 집단들 말인데 거기 책임자들은 단지 사람들일 뿐이야.

돼지보다도 똑똑하지 못한 인간들이지.

우리가 먹는 그 돼지 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점을 명심해둬.

전쟁 중에 고구마를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아서

일본인들을 굶주리게 했던 농부 다마구치와 살아봤지?

다마구치는 전시 규정을 어겼고,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고 싶어서 그를 도왔지.

다마구치는 아마 자기가 점잖고 존경받을 만한 일본인이라고 생각할 거야.

아니면 자랑스러운 애국주의자라고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전부 다일지도 모르고, Or maybe it's all

다마구치는 일본인으로서는 끔찍한 인간이지만 사업가로서는 영리한 사람이야.

나는 좋은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니야.

돈을 잘 버는 사람이지.

모든 사람이 사무라이 정신이니 어쩌니 하는 헛소리를 믿는다면 이 나라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걸.

천황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아.

그래서 난 너한테 그런 모임에 가지 말라거나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아.

하지만 이건 알아둬. 그 공산주의자들은 널 돌봐주지 않아.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지.

그들이 조선을 생각한다고 믿는다면 넌 정신이 나간 거야."

"가끔씩 고국이 그리워요." 김창호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고국이라는 게 없어."

한수가 담배 하나를 꺼내자

김창호가 불을 붙이려고 한수에게 다가갔다.

김창호는 20년이 넘도록 고국에 가보지 못했다.

그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소작농 아버지도 얼마 후 돌아가셨다.

누나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결국에는 결혼해서 사라져버렸고, 김창호는 혼자 남아서 구걸을 해야했다.

김창호는 북한으로 가서 국가 재통합을 돕고 싶었지만,

대구로 가서 부모님의 무덤을 돌보고

제사를 지내드리고 싶기도 했다.

한수가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았다.

"내가 여기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 난 여기가 싫어.

하지만 여기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지.

넌 가난해지고 싶지 않을 거야.

창호야, 넌 내 밑에서 일하면서 충분한 음식과 돈을 모았어.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거야. 그게 정상이지.

애국주의는 신념일 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신념의 빠지면 자신의 이익을 잊어버릴 수 있어.

책임자들은 신념에 지나치게 빠져든 사람들을 착취할 거고.

넌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어.

너 같은 사람이나 나 같은 사람은 백 명이 모여도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일본인들이 물러나고, 이제는 소련과 중국,

미국이 엉망진창인 작은 우리나라를 놓고 싸우고 있어.

그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선은 잊어버려.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그 유부녀를 원한다고.

좋아. 그럼 그 여자의 남편을 제거해버리거나

그 남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

그게 바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경희 씨는 남편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요셉은 실패자야." "Joseph is a loser."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김창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경희 씨는 그런 여자가 아니고 . . . "

김창호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요셉이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있었지만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김창호는 많은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도 들어 있었다.

경희가 그 망가진 남자를 떠난다면 경희를 흠모할 가치가 떨어질 것이었다.

길 끝에서 한수가 걸음을 멈추고 평범해 보이는 술집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여자를 품고 싶니?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서 그 유부녀 곁으로 가고 싶니?"

김창호는 문손잡이를 노려보다가 잡아당겨 열었다.

한수를 먼저 들여보내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오사카의 새집은 옛집보다 다다미 두 개가 더 들어갈 정도로 컸고

타일과 원목, 벽돌로 지어졌다.

한수가 예상했던 대로 옛날 집은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경희는 법적 서류를 코트 안감에 꿰매 넣어 놓았고,

한수의 변호사가 요셉의 재산권을 인정 받도록 도와주었다.

요셉과 경희는 농장을 떠날 때 다마구치한테서 받은 돈으로

옛날 집 근처의 빈 땅을 사들였다.

그러고는 한수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도움을 받아 집을 새로 지었다.

이번에도 요셉은 이웃사람들에게

자신이 집주인이라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

실제보다 더 가난한 척하는 것이 언제나 현명한 행동이었다.

집 외관은 이카이노의 다른 집들과 거의 똑같았다.

요셉의 가족들은 김창호와 함께 살기로 했고,

요셉이 같이 살자고 했을 때 김창호는 거절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질 좋은 벽지를 달랐고,

작은 창문으로 쓸 튼튼하고 두꺼운 유리를 샀다.

돈을 조금 더 써서 더 나은 천을 사들여 따뜻한 이불과 방석을 만들었고,

밥상 겸 공부상으로 쓸 나지막한 조선식 상도 샀다.

밖에서 봤을 때는 널찍한 판잣집에 불과해 보였지만, 집 안은 깨끗하고

조직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었다.

부엌도 널찍해서 식품 수레를 밤새 보관할 수 있었다.

부엌문으로 드나들 수 있는 별채도 붙어 있었다.

양진과 선자, 아이들은 낮에 안방으로 쓰는 중간 방에서 잠을 잤다.

요셉과 경희는 부엌 옆의 가장 큰 창고 방에서 잠을 잤고,

김창호는 장지문 두 개로 두 벽면을 막은 앞쪽 방에서 잠을 잤다.

어렵게 일곱 명이 이카이노에서 한 집에 살았다.

이웃집들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거주지는 사치스러운 정도였다. Considering the yards of their neighbors, their residence was luxurious.

저녁 늦게 김창호가 술집에서 돌아오자 다들 잠들어 있었다.

한수가 상당히 매력적인 조선인 여자를 사주었고,

김창호는 그 여자와 뒷방에 들어갔다.

그 후에 목욕탕에 가고 싶었지만 그날 밤에는 집 근처에 있는 목욕탕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김창호는 별채 옆의 세면대에서 되는대로 몸을 씻었지만

입에서는 여전히 여자의 분홍색 립스틱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여자는 어렸는데 기껏해야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뒷방에서 일하지 않을 땐 종업원으로 일하는 여자였다.

술집에서 일하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 여자도 전쟁과 미국의 점령군들을 겪으면서 강인해졌다.

상당히 예쁘장한 여자라서 많은 남자들을 만났을 것 같았다.

지나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여자였다.

뒷방은 돈을 지불한 고객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었다.

지나는 뒷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곧장 꽃무늬 옷을 벗었다.

그녀는 속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늘씬하고 가냘픈 몸매에 둥글게 솟아오른 가슴은 브래지어를 할 필요가 없었고,

두 다리는 굶주린 농부의 것처럼 깡말라 있었다.

지나가 김창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부드럽게 엉덩이를 돌리며 그를 흥분시켰다.

그러더니 김창호를 바닥에 깔린 짙은 빨간색 요 위로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지나는 김창호의 옷을 벗기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능숙하게 김창호를 닦아주더니

립스틱 바른 입으로 성병예방약을 김창호에게 먹여주었다.

김창호는 여자와 자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지금까지 창녀들만 상대했지만 이번 상대는 얼굴과 몸매가 창녀답지 않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이번에는 그가 돈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그는 지나의 화대가 왜 그렇게 비싼지 알 것 같았다.

지나는 김창호를 오빠라고 불렀고,

지금 자기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지 물었다.

김창호 매력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지나의 능숙한 솜씨에 놀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는 김창호를 부드럽게 밀어 눕히고는 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아

엉덩이를 꽉 조여서 한 번에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김창호의 이마와 머리카락에 키스하고,

관계를 갖는 내내 김창호의 머리를 자기 가슴에 파묻었다.

거짓인지는 몰라도 지나는 다른 창녀들과는 달리

김창호와의 관계를 즐기는 것 같았다.

지나가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김창호는 잔뜩 흥분했고 바로 가버렸다.

지나는 잠시 동안 김창호에게 안겨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수건을 가져왔다.

김창호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에는 김창호를 잘생긴 오빠라고 불렀고,

오빠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또 와달라고 했다.

김창호는 밤새 머물면서 한 번 더 하고 싶었지만,

한수가 술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또 오겠다고 지나에게 약속하고 뒷방에서 나왔다.

방에 들어가자 누군가가 벌써 잠자리를 펴놓은 것이 보였다.

김창호는 풀을 먹인 깨끗한 요에 누워서 경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지금 자신이 누워 있는 침구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경희와 사랑을 나누는 몽상에 젖어들었다.

유부녀가 성관계에 놀라지는 않겠지만

지나가 그랬던것처럼 경희도 성관계를 즐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경희가 그랬다면 그는 경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헛간에서 지낼 무렵 김창호는 항상 여자들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요셉이 경희의 몸을 올라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김창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 집에서도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요셉은 더 이상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김창호는 경희를 사랑하면서도

요셉을 미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 같았다.

그렇게 경희는 그의 것이기도 했다.

김창호의 마음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난 탓에 고한수는 그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김창호는 경희의 부드러운 얼굴, 우아하고도

조용한 몸짓을 보지 않고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경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경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식당에서 경희와 나란히 일했을 때, 농장에서 경희와 단둘이 있었을 때,

김창호는 경희의 몸을 끌어당겨 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거의 미칠 것만 같았다.

차마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경희가 자신에게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희는 남편을 사랑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다.

김창호가 절대 믿을 수 없고,

신도들에게 혼외정사를 허락하지 않는 그 신을 경희는 믿었다.

김창호는 경희가 얇은 장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두 눈을 감았다.

그 창녀가 그랬던 것처럼 경희가 옷을 벗고 그에게 입을 맞춘다.

김창호는 경희를 끌어당겨 자기 품 안에 가둔다.

경희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 그의 인생이 가장 완벽해지는 그 순간,

김창호는 죽어도 좋을 것 같다.

김창호는 경희의 아담한 가슴, 새하얀 배와 다리,

은밀한 그곳의 그림자를 그려볼 수 있었다.

다시 아랫도리가 딱딱해지자 김창호는 자신이 어린 소년 같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웃었다.

또 하고 또 해도 충분할 것 같지 않았다.

예쁜 창녀를 만나면 경희를 지워버릴 수 있을 거라는 한수의 생각은 틀렸다.

김창호는 오늘 밤 달콤하고 청량한 뭔가를 맛보았고,

지금은 그 청량한 기운을 커다란 욕조에 한 가득 끌어 모아 온 몸을 깊숙이 담그고 싶었다.

김창호는 성난 아랫도리를 문지르다가 안경을 쓴 채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김창호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도 먹지 않고 일하러 나갔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갈 때 김창호는 설탕과자 소리를 끌고가는 가녀린 어깨를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그녀를 뒤쫓아 달려갔다.

"제가 할게요."

"아, 왔네요." 경희가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아침에 창호 씨가 그냥 가버려서 다들 걱정했어요.

어젯밤에도 못 봤고요. 오늘은 뭘 좀 먹었어요?"

"전 괜찮아요. 제 걱정은 할 필요 없어요."

김창호는 설탕과자를 포장하는

봉지 더미가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봉지가 없네요. 오늘은 장사가 잘 됐어요?"

경희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다 팔았어요. 하지만 흑설탕 가격이 또 올랐어요.

어쩌면 젤리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젤리를 만들 때는 설탕이 좀 덜 들어가거든요.

새로운 제조법을 찾아야겠어요."

경희가 걷다가 멈춰서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김창호가 수레를 빼앗아 대신 끌었다. "선자 씨는 벌써 집에 갔어요?" 김창호가 물었다.

경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어요?"

"오늘 밤에는 소란이 좀 없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남편이 모두에게 너무 모질게 굴어요. 게다가 . . . " 경희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요셉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자신의 화상과 부상으로 인한 끔찍한 통증을 느낄 만큼은 회복되고 있었다.

요셉은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게 생기면 화를 냈고 예전처럼 그 화를 참지도 않았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소리도 자주 질렀다.

전쟁 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요." 김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셉은 선자에게 조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아이들을 동네 조선인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조선어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한수는 선자에게 그 반대 이야기를 했다.

선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 조선으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텅 비어 있었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부드러운 회색빛과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조용할 때가 좋아요." 경희가 말했다.

"네, 그래요." 김창호는 수레 손잡이를 좀 더 세게 움켜쥐었다.

경희가 느슨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긴 하루를 보냈음에도 경희의 표정은 여전히 맑고 밝았다.

그 누구도 절대 더럽힐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어젯밤에 요셉이 또 학교 문제 때문에 선자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남편은 좋은 뜻으로 그러는 거예요.

남편도 마음이 많이 아플 거예요.

노아는 일본인 학교에 가고 싶어 해요. 와세다대학에 가고 싶대요.

상상이 가세요? 그런 큰 학교에 가고 싶어 하다니!"

경희는 노아의 원대한 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뭐, 모자수는 전혀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지만요." 경희가 웃었다.

"우리가 지금 돌아갈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읽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경희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김창호가 코트 주머니에서 안경을 닦을 때 쓰는 손수건을 꺼내 경희에게 건넸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요." 김창호가 말했다.

경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경희는 김창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아직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꿈을 꿔요.

부모님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요. 너무 위험해요.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 . . "

'"상황이 곧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뭐, 누님도 우리들이 어떤지 알잖아요."

"무슨 말이죠?" 경희가 물었다.

"조선인들이요. 조선인들은 서로 싸우고 있죠.

모두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권력을 쥐든 그 권력을 유지하려고 아주 독하게 싸울 겁니다."

김창호는 한수한테 들었던 말을 되풀이했다.

한수의 말은 언제나 옳아쓰니까.

특히 인간의 추악한 면을 꿰뚫어볼 때는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럼 창호 씨는 공산주의자가 아닌가요?" 경희가 물었다.

"뭐라고요?"

"그런 정치 모임에 가잖아요."

창호 씨가 어울리는 사람들이라면 그들도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창호 씨는 일본 정부의 저항하고 우리나라를 통일하고 싶어 하잖아요.

맞죠? 시장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편은 공산주의자들이 나쁘다고 말했어요.

그들이 우리 부모님을 쏴 죽였다고요.

우리 아버지는 항상 모두에게 미소를 지었어요. 항상 좋은 일을 하셨죠."

경희는 왜 부모님이 살해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셋째 아들이라서 가진 땅도 많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지주들을 모두 다 죽였을까?

별 볼 일 없는 지주들도? 경희는 김창호의 생각이 궁금했다.

김창호는 좋은 사람이고 세상일을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

김창호는 수레에 기대서서 경희를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경희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경희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니,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이런 여자를 곁에 둔다면 정치의 신경이나 쓰게 될지 궁금했다.

"다른 종류의 공산주의자들도 있나요?" 경희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공산주의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전 일본이 조선을 다시 점령하는 걸 반대하고 있어요.

소련과 중국이 조선을 다스리는 것도 싫고요.

왜 조선을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조선인들이 서로 싸우고 있잖아요.

할머니 두 사람이 싸울 때와 똑같은 것 같아요.

그럴 때 보면 마을 사람들이 상대의 나쁜 점을 소곤소곤 일러주면서

두 사람을 이간질시키잖아요.

할머니들이 화해를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 말을 다 무시하고

서로 친구로 지냈을 때를 기억하면 돼요."

"아무래도 누님을 우리 지도자로 추대해야 할 것 같은데요."

김창호는 집 쪽으로 수레를 끌면서 말했다.

집까지 가는 길이 짧았지만 김창호는 경희와 함께해서 행복했다.

하지만 그 바람에 경희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김창호는 가끔씩 경희 곁에 머물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집 밖으로 나가 그런 모임에 참석했다.

경희를 매일 봐야 했기 때문에

경희의 집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김창호는 경희를 사랑했다.

그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김창호는 생각했다.

결국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집까지 몇 발자국을 남겨두고 두 사람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두 사람은 그날 하루 일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느긋해지고 좀 더 친숙해 졌다.

김창호는 경희를 사랑하는 고통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