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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새로운 일자리」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새로운 일자리」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

파친코. Book 1. 고향. 새로운 일자리. 1940년 4월

선자가 식당이라는 곳에 데려와 본 것은

살면서 이번이 두 번째였다.

김창호의 식당은 이삭과 함께 갔었던

부산의 우동 가게의 거의 다섯 배는 될 것 같았다.

전날 밤에 장사했던 흔적인 구운 고기 냄새와 퀴퀴한

담배 냄새가 아직 남아있어서 선자의 목이 컬컬해졌다.

다다미가 깔려 있는 마루에는 식탁이 두 줄로 놓여 있었고

마루 아래에는 손님들의 신발을 놓는 공간이 있었다.

개방된 부엌에서는 십 대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맥주잔을 한 번에 두 개씩 씻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와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에

남자아이는 선자가 식당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선자는 설거지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아이의 날카로운 옆모습을 응시하면서

그 아이가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기다렸다.

시장에서 만났던 남자는 김치를 정확하게 몇 시에 가지고 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선자도 아침에 와야 할지, 오후에 들러야 할지를 물어보지 못했다.

김창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김창호가 오늘 나오지 않았거나 오후나 저녁에 나온다면 어떻게 하지?

선자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그냥 나가버린다면

경희도 당황할 터였다.

선자는 항상 사소한 일에도 크게 걱정하는 경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부엌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멈췄다.

밤부터 아침까지 일하는 남자아이는 피곤했는지 목을 좌우로 돌리며 한숨 돌리려는 순간,

젊은 여자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여자는 일본식 바지에 낡아서 색이 바랜 파란색 누비옷을 입고 있었다.

"아가씨, 지금은 영업 안 합니다."

남자아이가 조선어로 말했다.

여자는 손님이 아니었지만 거지도 아닌 것 같았다.

"실레합니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지만

김창호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예?

김창호 씨가 김치를 갖다달라고 하셨거든예.

언제 와야 할지 몰라서 . . . "

"아하! 그 사람이 아가씨예요?"

남자아이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은 저 거리 아래쪽에 계세요.

오늘 김치가 도착하면 데리러 오라고 하셨죠.

좀 앉아서 기다리실래요? 김치 가져왔어요?

손님들이 몇 주 동안 내내 반찬이 부실하다고 불평했거든요.

아가씨도 여기서 일할 건가요?

아, 그건 그렇고 몇 살이에요?" 남자아이가 두 손을 닦고 부엌 뒷문을 열었다.

새로 온 여자가 귀여워 보인다고 그 남자아이는 생각했다.

지난번 김치 아주머니는 이가 다 빠진 할머니였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해고당했는데,

이번에 온 아가씨는 자기보다 더 어려 보였다.

선자는 어리둥절했다. "잠시만예.

김창호 씨가 여기 없다고예?"

"앉아 있어요. 곧 돌아올게요!" 남자아이가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선자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기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밖으로 나갔다.

경희가 속삭였다. "모자수가 잠들었어."

경희는 수레 옆에 걸어두는 나지막한 시장용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밝은 태양아래 가벼운 미풍이

모자수의 북슬북슬한 머리카락을 살포시 날렸다.

이른 아침이라서 지나가는 행인이 거의 없었다.

약국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언니, 사장님이 오고 있는 중이라 카네예.

아직도 밖에 있고 싶습니꺼?" 선자가 물었다.

"나는 여기 있는게 좋아. 동생이 들어가서 창가에 앉아 있어.

그럼 동생이 보이니까.

하지만 사장님이라는 그 남자가 도착하면 밖으로 나와, 알았지?"

선자는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자리에 앉기가 무서워서 문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김치는 시장에서도 오늘 하루에 다 팔 수 있었지만

김창호가 배추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거 하나만 확실하다면 여기에 서서 김창호를 기다릴 만했다.

배추를 구하지 못하면 장사를 하지 못하니까.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창호가 부엌문으로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김치 가져왔어요?"

"언니가 밖에서 수레를 지키고 있어예.

김치는 마이 가져왔고예."

"김치를 더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직 맛을 보지도 않으셨는데예."

선자는 남자의 열정적인 반응에 어리둥절해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건 걱정 안 합니다. 저도 숙제를 좀 했죠.

오사카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라고 하던데요."

김창호가 빠르게 선자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그럼 밖으로 나가죠."

경희는 김창호 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김창호라고 합니다."

김창호는 경희의 아름다운 외모에 살짝 놀라며 인사를 건넸다.

여자가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등에 업은 아이는 6개월쯤 된 것 같았다.

경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사랑스럽지만 초조해하는 말없는 여자 같아 보였다.

"당신 아기인가요?" 김창호가 물었다.

경희는 고개를 흔들며 선자를 힐끗거렸다.

집에 필요한 물건이나 야채를 사려고

일본인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요셉은 돈 문제와 사업은 남자들의 일이라고 수차례 말했다.

갑자기 경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여기 오기 전에는 선자가 거래하는 것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가 무슨 말이든 한마디라도 한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일이 잘못될 것만 같았다.

"김치가 얼마나 필요하신데예?

앞으로 꾸준히 필요하신 거 맞지예?

먼저 이 김치를 먹어보고 나서 주문을 하실라고예?" 선자가 물었다.

"당신들이 만들 수 있는 김치를 모두 구매하려고요.

당신들이 여기서 김치를 만들 수 있다면 더 좋고요.

냉장고와 아주 시원한 지하실이 있어서 김치를 만들기에도 좋을 거예요."

"부엌에세예? 제가 저기서 배추를 절여주면 좋겠다고예?"

선자가 식당 문을 가리켰다.

"네." 김창호가 미소를 지었다.

"아침마다 당신들 두 사람이 여기로 와서 김치와 반찬을 만들면 좋겠어요.

오후에는 고기를 자르고 고기 양념장을 만드는 요리사들이 오지만

그들은 김치와 반찬을 만들지는 못해요.

그런 음식을 만들려면 솜씨가 더 좋아야 하거든요.

손님들은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절임 반찬을 원해요.

양념장이랑 구운 고기는 바보라도 만들 수 있지만

손님들은 왕의 수라상을 받는 것처럼 푸짐하게 차려진 반찬을 원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김창호는 두 사람이 식당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아직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많은 배추와 야채 상자들을

당신들 집으로 갔다주는 것도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야말로 집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경희가 선자에게 속삭였다. "식당에서 일할 수는 없어.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서 여기로 가져올 수는 있어.

아니면 우리가 김치를 배달하지 못하면 저 남자가 김치를 가지러 오거나."

"아직 이해를 못하시는 군요.

그전에는 당신들이 김치를 얼마나 만들었는지 몰라도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김치가 필요합니다.

전 김치와 반찬이 필요한 식당을 두 개 더 운영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 식당이 본점이라서 부엌이 가장 커요.

재료는 모두 제공할게요. 필요한 것만 말씀해주세요.

봉급도 많이 줄게요.

경희와 선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급으로 35엔을 줄게요.

두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줄 테니까 합치면 70엔이 되죠!"

선자가 깜짝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요셉은 한 주에 40엔을 벌었다.

"가끔씩 고기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김창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여기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해줄게요.

곡식도 좀 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사용한 물건이 많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구입하는 비용으로 구해줄게요.

그 비용은 나중에 정산하면 되고요.

선자와 경희는 재료값을 빼고 나면 한 주에 대략 10에서 12엔을 벌었다.

한 주에 70엔을 벌 수 있다면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집안 식구들은 너무 비싸서 지난 6개월 동안 닭고기나 생선을 한번도 먹지 못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사 먹을 수 없었다.

아직도 매주 국거리용 뼈다귀를 사고

간혹 가다 남자들에게 줄 계란을 샀지만,

선자는 식구들에게 감자와 수수 외에 다른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렵게 생활하고 계실 시부모님에게도

돈을 더 많이 보낼 수 있었다.

"큰아들 노아가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예?

선자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이렇게 물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김창호는 그 문제도 생각해본 것처럼 말했다.

"일을 끝내면 돌아갈 수 있어요. 점심시간 전에는 일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아기는예?" 선자가 경희의 등에 업혀서 자고 있는 모자수를 가르켰다.

"아기를 데려올 수 있을까예? 저희랑 같이 부엌에 있으면 되는데예."

선자는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면서

일하는 여자들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동네 할머니에게 모자수를 맡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집에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거나

아이를 봐주는 할머니를 고용할 돈이 없는 몇몇 여자들은

어린아이들을 수레에 밧줄로 묶어서 시장에 데리고 나왔다.

밧줄에 묶여 시장에 나온 아이들은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엄마 옆에 앉아서 싸구려 장난감을 갖고 놀았는데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많이 성가신 아이는 아닙니더." 선자가 말했다.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일만 잘 끝낸다면 상관없어요.

당신들이 일할 때는 손님들이 오지 않으니까 방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일이 늦게 끝나서 큰아들이 여기로 오고 싶어 한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저녁시간 전에는 손님들이 오지 않거든요." 선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추운 겨울 내내 노아와 모자수 걱정을 하면서

바깥에서 손님들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경희는 이런 일자리를 제의받아서 기뻐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게 분명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상당히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일단 물어봐야 합니더. 허락을 받아야 해서 . . . "

선자가 말했다.

저녁 식탁을 치우고 나서 경희는

남편에게 따뜻한 보리차 한 잔과 담배를 피울 수 있게 재떨이를 가져다주었다.

노아는 큰아버지 근처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큰아버지가 사주신

밝은 색상의 팽이가 얼마나 빨리 돌 수 있는지 지켜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무 팽이가 듣기 좋게 씽씽 소리를 내며 돌았다.

선자는 모자수를 두 팔로 안은 채 노아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삭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생각했다.

이삭이 체포된 이후로

요셉은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선자는 이런 요셉이 화를 내는 게 두려워서

집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요셉은 화가 나면 집을 나가버렸다.

때로는 아주 늦게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두 여자가 식당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면 요셉이 반대할 거라는 사실을 두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요셉이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경희가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희는 할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돈'이 아니라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신 지금 정신 나갔어?

처음에는 기차역 다리 아래에서 판답시고 음식을 만들더니

이제는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식당에서 일하고 싶다고?

어떤 여자들이 그런 곳에 일하러 가는지나 알아, 어?

이제 다음에는 술 따르는 일을 하겠다고 . . . "

아직도 붙이지 않은 요셉의 담배가 떨리는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거렸다.

요셉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식당에 들어갔어?"

요셉은 자신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요. 전 아이와 함께 바깥에 있었어요.

하지만 식당이 크고 깨끗했어요.

바깥에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거든요.

혹시라도 좋은 곳이 아닐까 봐 선자 혼자 보낼 수가 없어서

선자와 같이 갔던 거예요.

김창호라는 사장은 말을 잘하는 젊은 사람이었어요.

당신도 한 번 만나보세요. 당신이 허락을 안 해준다면

거기에 일하러 가지 않을 거예요.

여보 . . . " 경희는 남편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경희에게 요셉보다 더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들은 다들 남편 흉을 보지만 요셉한테는 흉을 볼 게 없었다.

요셉은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신뢰할 수 있는 남자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는 존경스러운 남자였다.

요셉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요셉이 담배를 껐다. 노아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팽이 돌리기를 그만뒀다.

"당신이 그 사람을 만나 본다면 . . . "

경희는 이 일자리 제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남편에게 치욕을 안겨줄 게 분명했다.

결혼 생활 내내 요셉은 돈을 버는 일을 제외하면

경희에게 못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다만 요셉은 열심히 일하는 남자는 혼자서 가족을 돌볼 수 있어야 하고,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우리 두 사람 봉급을 다 줄 수 있대요.

그럼 노아와 모자수를 위해 돈을 모으고,

당신 부모님께도 돈을 더 보낼 수 있어요.

이삭에게 더 좋은 음식과 옷을 사서 보내줄 수도 있고요.

이삭이 언제 . . . " 경희가 말을 하다가 말았다.

노아가 큰아버지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큰아버지 옆에 바싹 다가갔다.

그러고는 자기가 넘어지거나 학교 일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등을 두드려주었던

큰아버지처럼 큰아버지의 다리를 토닥거렸다.

요셉의 머릿속에는 할 말이 잔뜩 들어 있었지만

입 밖으로는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지금 요셉은 정기적으로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일본인 감독이 받는 봉급의 절반을 받으며

시마무라의 공장 두 개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근무 시간 이후에 조선인이 하는 공장의 부서진 금속 압연기를 고치는 일도 했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최근에 시작한 수리 일은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수리공이 아니라

관리자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은 매번 집에 들어가기 전에

뻣뻣한 솔로 양손을 빡빡 문질러 씻고,

마치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지폐와 동전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

마치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지폐와 동전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일본은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일본 정부는 패배했음을 알면서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전쟁이 쉼 없이 계속되었다.

요셉의 사장인 시마무라의 아들들도 일본을 위해 전쟁터로 나갔다.

만주로 간 큰아들은 지난해에 다리 한쪽을 잃은 후 괴저로 사망했고,

작은아들이 난징으로 가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시마무라는 지나가는 말로 일본이 중국을 안정시키고

평화를 전파하기 위해 중국에 있다고 했지만,

말투로 봐서는 시마무라도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한층 더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머지않아 유럽의 전쟁에서 독일과 동맹을 맺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일들이 요셉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요셉은 일본인 사장이 전쟁 이야기를 할 때 시기적절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긍정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사장이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마땅한 행동이었으니까.

요셉이 아는 모든 조선인들은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본의 확장 전쟁을 무의미한 짓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중국은 조선이 아니었다. 중국은 백만 명을 잃어도 계속 버틸 수 있었다.

땅덩어리가 조금 떨어져 나가도 다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였다.

그 엄청난 머릿수와 의지만으로 도 버틸 수 있는 나라였다.

조선인들이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하지만 일본의 적이 이긴다면 조선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자는 것이 조선인들이 남몰래 품고 있는 속마음이었다.

가족을 구하고, 자기 배를 채우고, 관리자들을 경게 하자.

조선의 독립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 셋길을 열어주자.

적응해서 살자. 이만큼 간다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요셉은 매일 한시도 돈 걱정을 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대체 어떤 남자가 아내를 식당에 일하러 내보낸단 말인가?

요셉은 그 갈비 식당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갈비집은 기차역 옆에 있는 본점을 비롯해서 분점도 두 개나 되었다.

늦은 밤에는 폭력배들이 그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식당 주인은 일반 손님들과 일본인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가격을 높게 불렀다.

요셉은 이삭과 선자의 일본 입국 허가증을 사기 위한 돈을 빌려야 했을 때

그곳을 찾아갔었다.

아내가 고리대금업자들 밑에서 일하는 게 더 나쁠까?

아니면 요셉이 그들에게 빚을 지는 것이 더 나쁠까?

조선 남자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소리는 언제나 개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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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새로운 일자리. 1940년 4월

선자가 식당이라는 곳에 데려와 본 것은

살면서 이번이 두 번째였다.

김창호의 식당은 이삭과 함께 갔었던

부산의 우동 가게의 거의 다섯 배는 될 것 같았다.

전날 밤에 장사했던 흔적인 구운 고기 냄새와 퀴퀴한

담배 냄새가 아직 남아있어서 선자의 목이 컬컬해졌다.

다다미가 깔려 있는 마루에는 식탁이 두 줄로 놓여 있었고

마루 아래에는 손님들의 신발을 놓는 공간이 있었다.

개방된 부엌에서는 십 대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맥주잔을 한 번에 두 개씩 씻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와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에

남자아이는 선자가 식당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선자는 설거지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아이의 날카로운 옆모습을 응시하면서

그 아이가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기다렸다.

시장에서 만났던 남자는 김치를 정확하게 몇 시에 가지고 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선자도 아침에 와야 할지, 오후에 들러야 할지를 물어보지 못했다.

김창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김창호가 오늘 나오지 않았거나 오후나 저녁에 나온다면 어떻게 하지?

선자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그냥 나가버린다면

경희도 당황할 터였다.

선자는 항상 사소한 일에도 크게 걱정하는 경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부엌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멈췄다.

밤부터 아침까지 일하는 남자아이는 피곤했는지 목을 좌우로 돌리며 한숨 돌리려는 순간,

젊은 여자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여자는 일본식 바지에 낡아서 색이 바랜 파란색 누비옷을 입고 있었다.

"아가씨, 지금은 영업 안 합니다."

남자아이가 조선어로 말했다.

여자는 손님이 아니었지만 거지도 아닌 것 같았다.

"실레합니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지만

김창호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예? Do you know where Mr. Kim is?

김창호 씨가 김치를 갖다달라고 하셨거든예. Mr. Kim asked me to bring him kimchiYes.

언제 와야 할지 몰라서 . . . " I don't know when to come . . ."

"아하! 그 사람이 아가씨예요?" "Aha, is that you?"

남자아이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The boy smiles in relief.

"사장님은 저 거리 아래쪽에 계세요. "The boss is down the street.

오늘 김치가 도착하면 데리러 오라고 하셨죠.

좀 앉아서 기다리실래요? 김치 가져왔어요?

손님들이 몇 주 동안 내내 반찬이 부실하다고 불평했거든요. It was inconvenient for customers to say that the side dishes were sparse for weeks.

아가씨도 여기서 일할 건가요?

아, 그건 그렇고 몇 살이에요?" 남자아이가 두 손을 닦고 부엌 뒷문을 열었다.

새로 온 여자가 귀여워 보인다고 그 남자아이는 생각했다.

지난번 김치 아주머니는 이가 다 빠진 할머니였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해고당했는데,

이번에 온 아가씨는 자기보다 더 어려 보였다.

선자는 어리둥절했다. "잠시만예.

김창호 씨가 여기 없다고예?"

"앉아 있어요. 곧 돌아올게요!" 남자아이가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선자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기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밖으로 나갔다.

경희가 속삭였다. "모자수가 잠들었어."

경희는 수레 옆에 걸어두는 나지막한 시장용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밝은 태양아래 가벼운 미풍이

모자수의 북슬북슬한 머리카락을 살포시 날렸다.

이른 아침이라서 지나가는 행인이 거의 없었다.

약국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언니, 사장님이 오고 있는 중이라 카네예.

아직도 밖에 있고 싶습니꺼?" 선자가 물었다.

"나는 여기 있는게 좋아. 동생이 들어가서 창가에 앉아 있어.

그럼 동생이 보이니까.

하지만 사장님이라는 그 남자가 도착하면 밖으로 나와, 알았지?"

선자는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자리에 앉기가 무서워서 문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김치는 시장에서도 오늘 하루에 다 팔 수 있었지만

김창호가 배추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거 하나만 확실하다면 여기에 서서 김창호를 기다릴 만했다.

배추를 구하지 못하면 장사를 하지 못하니까.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창호가 부엌문으로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김치 가져왔어요?"

"언니가 밖에서 수레를 지키고 있어예.

김치는 마이 가져왔고예."

"김치를 더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직 맛을 보지도 않으셨는데예."

선자는 남자의 열정적인 반응에 어리둥절해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건 걱정 안 합니다. 저도 숙제를 좀 했죠.

오사카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라고 하던데요."

김창호가 빠르게 선자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그럼 밖으로 나가죠."

경희는 김창호 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김창호라고 합니다."

김창호는 경희의 아름다운 외모에 살짝 놀라며 인사를 건넸다.

여자가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등에 업은 아이는 6개월쯤 된 것 같았다.

경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사랑스럽지만 초조해하는 말없는 여자 같아 보였다.

"당신 아기인가요?" 김창호가 물었다.

경희는 고개를 흔들며 선자를 힐끗거렸다.

집에 필요한 물건이나 야채를 사려고

일본인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요셉은 돈 문제와 사업은 남자들의 일이라고 수차례 말했다.

갑자기 경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여기 오기 전에는 선자가 거래하는 것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가 무슨 말이든 한마디라도 한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일이 잘못될 것만 같았다.

"김치가 얼마나 필요하신데예?

앞으로 꾸준히 필요하신 거 맞지예?

먼저 이 김치를 먹어보고 나서 주문을 하실라고예?" 선자가 물었다.

"당신들이 만들 수 있는 김치를 모두 구매하려고요.

당신들이 여기서 김치를 만들 수 있다면 더 좋고요.

냉장고와 아주 시원한 지하실이 있어서 김치를 만들기에도 좋을 거예요."

"부엌에세예? 제가 저기서 배추를 절여주면 좋겠다고예?"

선자가 식당 문을 가리켰다.

"네." 김창호가 미소를 지었다.

"아침마다 당신들 두 사람이 여기로 와서 김치와 반찬을 만들면 좋겠어요.

오후에는 고기를 자르고 고기 양념장을 만드는 요리사들이 오지만

그들은 김치와 반찬을 만들지는 못해요.

그런 음식을 만들려면 솜씨가 더 좋아야 하거든요.

손님들은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절임 반찬을 원해요.

양념장이랑 구운 고기는 바보라도 만들 수 있지만

손님들은 왕의 수라상을 받는 것처럼 푸짐하게 차려진 반찬을 원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김창호는 두 사람이 식당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아직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많은 배추와 야채 상자들을

당신들 집으로 갔다주는 것도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야말로 집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경희가 선자에게 속삭였다. "식당에서 일할 수는 없어.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서 여기로 가져올 수는 있어.

아니면 우리가 김치를 배달하지 못하면 저 남자가 김치를 가지러 오거나."

"아직 이해를 못하시는 군요.

그전에는 당신들이 김치를 얼마나 만들었는지 몰라도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김치가 필요합니다.

전 김치와 반찬이 필요한 식당을 두 개 더 운영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 식당이 본점이라서 부엌이 가장 커요.

재료는 모두 제공할게요. 필요한 것만 말씀해주세요.

봉급도 많이 줄게요.

경희와 선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급으로 35엔을 줄게요.

두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줄 테니까 합치면 70엔이 되죠!"

선자가 깜짝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요셉은 한 주에 40엔을 벌었다.

"가끔씩 고기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김창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여기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해줄게요.

곡식도 좀 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사용한 물건이 많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구입하는 비용으로 구해줄게요.

그 비용은 나중에 정산하면 되고요.

선자와 경희는 재료값을 빼고 나면 한 주에 대략 10에서 12엔을 벌었다.

한 주에 70엔을 벌 수 있다면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집안 식구들은 너무 비싸서 지난 6개월 동안 닭고기나 생선을 한번도 먹지 못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사 먹을 수 없었다.

아직도 매주 국거리용 뼈다귀를 사고

간혹 가다 남자들에게 줄 계란을 샀지만,

선자는 식구들에게 감자와 수수 외에 다른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렵게 생활하고 계실 시부모님에게도

돈을 더 많이 보낼 수 있었다.

"큰아들 노아가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예?

선자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이렇게 물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김창호는 그 문제도 생각해본 것처럼 말했다.

"일을 끝내면 돌아갈 수 있어요. 점심시간 전에는 일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아기는예?" 선자가 경희의 등에 업혀서 자고 있는 모자수를 가르켰다.

"아기를 데려올 수 있을까예? 저희랑 같이 부엌에 있으면 되는데예."

선자는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면서

일하는 여자들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동네 할머니에게 모자수를 맡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집에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거나

아이를 봐주는 할머니를 고용할 돈이 없는 몇몇 여자들은

어린아이들을 수레에 밧줄로 묶어서 시장에 데리고 나왔다.

밧줄에 묶여 시장에 나온 아이들은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엄마 옆에 앉아서 싸구려 장난감을 갖고 놀았는데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많이 성가신 아이는 아닙니더." 선자가 말했다.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일만 잘 끝낸다면 상관없어요.

당신들이 일할 때는 손님들이 오지 않으니까 방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일이 늦게 끝나서 큰아들이 여기로 오고 싶어 한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저녁시간 전에는 손님들이 오지 않거든요." 선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추운 겨울 내내 노아와 모자수 걱정을 하면서

바깥에서 손님들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경희는 이런 일자리를 제의받아서 기뻐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게 분명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상당히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일단 물어봐야 합니더. 허락을 받아야 해서 . . . "

선자가 말했다.

저녁 식탁을 치우고 나서 경희는

남편에게 따뜻한 보리차 한 잔과 담배를 피울 수 있게 재떨이를 가져다주었다.

노아는 큰아버지 근처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큰아버지가 사주신

밝은 색상의 팽이가 얼마나 빨리 돌 수 있는지 지켜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무 팽이가 듣기 좋게 씽씽 소리를 내며 돌았다.

선자는 모자수를 두 팔로 안은 채 노아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삭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생각했다.

이삭이 체포된 이후로

요셉은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선자는 이런 요셉이 화를 내는 게 두려워서

집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요셉은 화가 나면 집을 나가버렸다.

때로는 아주 늦게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두 여자가 식당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면 요셉이 반대할 거라는 사실을 두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요셉이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경희가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희는 할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돈'이 아니라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신 지금 정신 나갔어?

처음에는 기차역 다리 아래에서 판답시고 음식을 만들더니

이제는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식당에서 일하고 싶다고?

어떤 여자들이 그런 곳에 일하러 가는지나 알아, 어?

이제 다음에는 술 따르는 일을 하겠다고 . . . "

아직도 붙이지 않은 요셉의 담배가 떨리는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거렸다.

요셉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식당에 들어갔어?"

요셉은 자신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Joseph couldn't believe he was having this conversation

"아니요. 전 아이와 함께 바깥에 있었어요.

하지만 식당이 크고 깨끗했어요.

바깥에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거든요.

혹시라도 좋은 곳이 아닐까 봐 선자 혼자 보낼 수가 없어서

선자와 같이 갔던 거예요.

김창호라는 사장은 말을 잘하는 젊은 사람이었어요.

당신도 한 번 만나보세요. 당신이 허락을 안 해준다면

거기에 일하러 가지 않을 거예요.

여보 . . . " 경희는 남편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경희에게 요셉보다 더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들은 다들 남편 흉을 보지만 요셉한테는 흉을 볼 게 없었다.

요셉은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신뢰할 수 있는 남자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는 존경스러운 남자였다.

요셉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요셉이 담배를 껐다. 노아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팽이 돌리기를 그만뒀다.

"당신이 그 사람을 만나 본다면 . . . "

경희는 이 일자리 제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남편에게 치욕을 안겨줄 게 분명했다.

결혼 생활 내내 요셉은 돈을 버는 일을 제외하면

경희에게 못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다만 요셉은 열심히 일하는 남자는 혼자서 가족을 돌볼 수 있어야 하고,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우리 두 사람 봉급을 다 줄 수 있대요.

그럼 노아와 모자수를 위해 돈을 모으고,

당신 부모님께도 돈을 더 보낼 수 있어요.

이삭에게 더 좋은 음식과 옷을 사서 보내줄 수도 있고요.

이삭이 언제 . . . " 경희가 말을 하다가 말았다.

노아가 큰아버지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큰아버지 옆에 바싹 다가갔다.

그러고는 자기가 넘어지거나 학교 일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등을 두드려주었던

큰아버지처럼 큰아버지의 다리를 토닥거렸다.

요셉의 머릿속에는 할 말이 잔뜩 들어 있었지만

입 밖으로는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지금 요셉은 정기적으로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일본인 감독이 받는 봉급의 절반을 받으며

시마무라의 공장 두 개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근무 시간 이후에 조선인이 하는 공장의 부서진 금속 압연기를 고치는 일도 했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최근에 시작한 수리 일은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수리공이 아니라

관리자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은 매번 집에 들어가기 전에

뻣뻣한 솔로 양손을 빡빡 문질러 씻고,

마치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지폐와 동전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

마치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지폐와 동전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일본은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일본 정부는 패배했음을 알면서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전쟁이 쉼 없이 계속되었다.

요셉의 사장인 시마무라의 아들들도 일본을 위해 전쟁터로 나갔다.

만주로 간 큰아들은 지난해에 다리 한쪽을 잃은 후 괴저로 사망했고,

작은아들이 난징으로 가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시마무라는 지나가는 말로 일본이 중국을 안정시키고

평화를 전파하기 위해 중국에 있다고 했지만,

말투로 봐서는 시마무라도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한층 더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머지않아 유럽의 전쟁에서 독일과 동맹을 맺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일들이 요셉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요셉은 일본인 사장이 전쟁 이야기를 할 때 시기적절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긍정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사장이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마땅한 행동이었으니까.

요셉이 아는 모든 조선인들은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본의 확장 전쟁을 무의미한 짓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중국은 조선이 아니었다. 중국은 백만 명을 잃어도 계속 버틸 수 있었다.

땅덩어리가 조금 떨어져 나가도 다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였다.

그 엄청난 머릿수와 의지만으로 도 버틸 수 있는 나라였다.

조선인들이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하지만 일본의 적이 이긴다면 조선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자는 것이 조선인들이 남몰래 품고 있는 속마음이었다.

가족을 구하고, 자기 배를 채우고, 관리자들을 경게 하자.

조선의 독립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 셋길을 열어주자.

적응해서 살자. 이만큼 간다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요셉은 매일 한시도 돈 걱정을 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대체 어떤 남자가 아내를 식당에 일하러 내보낸단 말인가?

요셉은 그 갈비 식당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갈비집은 기차역 옆에 있는 본점을 비롯해서 분점도 두 개나 되었다.

늦은 밤에는 폭력배들이 그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식당 주인은 일반 손님들과 일본인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가격을 높게 불렀다.

요셉은 이삭과 선자의 일본 입국 허가증을 사기 위한 돈을 빌려야 했을 때

그곳을 찾아갔었다.

아내가 고리대금업자들 밑에서 일하는 게 더 나쁠까?

아니면 요셉이 그들에게 빚을 지는 것이 더 나쁠까?

조선 남자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소리는 언제나 개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