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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파친코 ⎟ Book 1. 고향 ⎟ 운명의 남자. (1932년 6월)

파친코 ⎟ Book 1. 고향 ⎟ 운명의 남자. (1932년 6월)

파친코. Book 1. 고향.

운명의 남자. 1932년 6월.

젊은 목사가 하숙집에 도착하기 여섯 달쯤 전 초여름의 어느 날, 선자는 새로 온 생선 중매상 고한수를 만났다.

선자가 장을 보러 시장에 갔던 그날 아침은 유달리 서늘했다. 선자는 엄마 등에 업혀 다니던 갓난아기 때부터 남포동의 노천시장을 드나들었다. 좀 더 자라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녔다. 아버지는 불편한 발을 질질 끌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갈 때면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갈 때보다 아버지와 함께 심부름 가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가족과 하숙인들이 안부를 물을 때면 아버지의 흉한 입술과 어설픈 걸음걸이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선자는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말없는 승낙, 정직한 눈에 어리는 사려 깊은 눈빛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선자가 장보기를 도맡았다. 장보기 순서는 아버지와 엄마한테서 배운 그대로였다. 처음에 신선한 농산물을 사고, 그다음에 정육점에서 국거리용 뼈를 구입했다. 그러고는 바닥에 청록색과 빨간색 방수천을 깔고 그 위에 몇 시간 전에 잡은 반짝거리는 갈치나 통통한 도미를 늘어놓은 채 손님들의 시선을 끄는 노점상 아주머니한테서 생선 몇 마리를 샀다. 남포동 시장은 조선에서 제일가는 해산물 시장이었다. 시장은 자갈이며 부서진 돌조각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바위투성이 해변을 따라 쭉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서 노점상 아주머니들은 네모난 방수천을 하나씩 깔고 앉아 목청껏 소리 지르며 물건을 팔았다.

선자는 석탄 배달부의 아내를 찾아갔다. 시장에서 제일 좋은 미역을 파는 그 아주머니는 선자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새로 온 생선 중매상이 선자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찌푸려지고 말았다.

"아이고야, 부끄럽운 줄도 모르는갑네. 니를 저래 쳐다보 고 있노. 니 아부지뻘은 될 것 같은 인간이!" 아주머니가 두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돈 좀 많다고 좋은 집안의 번듯한 처자를 저래 뻔뻔하게 쳐다봐도 되는 건 아이제!"

선자가 고개를 들어 밝은 색 양복에 하얀 가죽 구두를 신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다른 미역 중매상들과 함께 골판지와 나무로 된 사무실 옆에 서 있었다.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배우처럼 황백색 파나마모자를 쓴 고한수는 짙은 색 옷을 입은 다른 남자들 속에서 우윳빛 하얀 깃털이 달린 우아한 새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남자는 말을 거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선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중매상들은 이곳을 거쳐 가는 모든 생선의 도매를 통제했다. 생선 가격을 결정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고, 선장과 어부들을 징계하기 위해 잡은 고기를 사들이지 않는 것도 그들의 마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매상들은 부두를 통제하는 일본인 관리들과도 거래를 했다. 모두가 중매상들에게 경의를 표했지만 그들을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매상들은 자기네 무리가 아닌 사람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선자의 하숙집 사람들은 중매상들을 생선 냄새 하나 나지 않는 곱고 하얀 손으로 고기잡이의 모든 이득을 다 챙겨 가는 오만한 침입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어부들은 그렇게 흉을 보면서도 중매상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중매상들은 언제든지 어부들이 잡아온 고기를 사들일 수 있었고, 고기잡이가 시원치 않을 때도 성금을 지불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니 같은 가시내는 근사한 남자들의 시선을 끌게 마련이데이. 그치만서도 저 사람은 너무 날카로워 보인다 아이가. 제주도 출신인데 오사카에 살고 있다 카데. 일본어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카더라. 우리 아저씨가 그카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똑똑한 사람이라 카더라꼬, 아이고야! 아직도 니 를 보고 있데이!" 아주머니가 목까지 빨개져서 말했다.

선자는 일부러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숙인들이 수작을 걸어올 때도 무시하고 할 일만 했는데 지금이라고 다르게 행동할 이유가 없었다. 미역 파는 아주머니는 원래 호들갑을 잘 떠는 성격이었다.

"저희 엄마가 좋아하는 미역 있어예?" 선자는 가격과 품질별로 차곡차곡 개어져 있는 마른 미역에 관심이 있는 척했다.

아주머니가 눈을 껌벅이더니 미역 한 뭉치를 싸주었다. 선자는 동전을 헤아려 건네주고 두 손으로 미역 뭉치를 받아들었다.

"지금은 하숙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노?"

"여섯 명이요." 선자는 다른 중매상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아직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힐끗거렸다. "엄마가 요즘 많이 바빠예."

"당연히 그렇겠지!" 선자야, 여자의 일생은 일이 끊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이데이. 고통스럽고 또 고통스러운 게 여자의 인생 아이겠나. 니도 각오하는 게 좋을 끼다. 인자 니도 여자가 되었으니까네 이 검 꼭 알아둬야 한데이. 여자의 인생은 남편한테 달려 있다, 이 말이라. 좋은 남자를 만나면 근사한 삶을 살게 되고, 나쁜 남자를 만나면 저주받은 인생이 시작되는 거레이. 그래도 우야든동 여자의 인생이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아이가. 항상 일을 해야 한데이. 가난한 여자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가. 기댈 건 우리 자신뿐이다 이기라."

말을 마친 아주머니가 한껏 불룩해진 배를 툭툭 두드리고 새로 온 손님을 향해 돌아섰다. 그제야 선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정 씨 형제들은 고한수에게 오늘 잡은 생선을 전부 팔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괜찮은 중매상이드라고잉. 나는 고한수 처럼 멍청이들을 못 봐주는 똑똑한 사람이 좋당께. 고한수는 흥정도 안 해부러. 가격을 딱 정해놓고 부르제. 그 정도면 공평허고, 고한수는 다른 인간들처럼 니를 뜯어먹으려고 들지 않을 거여. 하지만 그 인간한테 거역할 수는 없제이." 곰보가 말했다.

뚱보는 제주에서 온 그 생선 중매상이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이야기를 얼음 중매상한테서 들었다고 했다. 고한수는 일주일에 삼 일만 부산에 왔고, 평소에는 오사카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지냈다. 모두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렸다.

고한수는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것 같았다. 선자가 시장에 갈 때마다 고한수가 나타나 흑심을 한껏 드러냈다. 선자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평소처럼 심부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존재감은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 없을 만큼 강했고, 선자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오르곤 했다.

일주일 후, 선자가 막 장을 다 보고 영도로 들어가는 연락선을 타려고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고한수가 선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오늘 밤 하숙집 저녁은 뭡니까?"

두 사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부산스러운 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선자는 고개를 들긴 했지만 고한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두려움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선자는 남자가 따라오지 않기를 바랐다. 연락선에 타자마자 선자는 남자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강인한 남자가 애써 부드럽게 말하려는 목소리였다. 몇몇 모음을 길게 늘여 말하는 제주도 억양이 살짝 섞여 있었다. 부산 사람들 말씨와는 아주 달랐다. 남자가 '저녁' 이라는 말을 아주 웃기게 발음해서 선자는 그 말을 재깍 알아듣지 못했다.

다음 날도 고한수는 선자를 따라와서 말을 걸었다.

"시집은 왜 안 갔어요? 나이가 찬 것 같은데."

선자는 이번에도 종종 걸음으로 고한수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남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선자가 대답을 하지 않는데도 고한수는 매번 선자에게 말을 걸었다. 항상 질문을 하나만 던졌고 반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선자를 볼 때마다 자기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에서 뭐라고 말을 건넸고 선자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도망쳤다.

6월 둘째 주였다. 선자는 장을 다보고 한쪽 팔에 장본 물건으로 꽉 찬 바구니를 끼고 서 연락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교복을 입은 일본인 고등학생 세 명이 낚시를 하려는지 항구 쪽으로 가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게에도 더운 날씨를 핑계 삼아 학교를 빼먹은 모양이었다. 남학생들은 선자를 발견하자마자 낄낄거리면서 다가와 선자를 에워썼다. 얼굴이 허옇고 멀쑥하니 깡마른 남학생 하나가 선자의 바구니에서 길쭉하고 노란 참외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친구들을 향해 선자의 머리 위로 던졌다.

"돌리도." 선자는 조용히 조선말로 말하면서 남학생들이 연락선을 타지 않기를 바랐다. 부산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곤 했지 만 영도에는 일본인들이 많지 않았다. 선자는 이런 골치 아픈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인 학생들은 조선인 아이들을 괴롭혔고, 가끔씩 그 반대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린 조선인 아이들은 혼자 다니지 말라는 훈계를 들었지만, 선자는 열여섯 살의 강한 여자아이였다. 일본인 남학생들이 자기를 더 어린 아이로 착각한 것이 분명했다. 선자는 좀더 단호하게 말하려고 했다.

"뭐라고? 쟤 뭐라고 한 거야?" 일본인 남학생들이 낄낄거리며 일본 말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 구린내 나는 창녀야."

선자는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연락선 옆에 서있는 뱃사공은 다른 두 남자와 이야기하느라 바빴고, 시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는 자기를 일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장 돌리도." 선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오른손을 뻗었다. 팔꿈치에 바구니가 걸려 있어서 균형을 잡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선자는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깡마른 남자아이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남학생들은 웃으면서 계속 일본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선자는 그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남학생 두 명이 노란 참외를 주고받았고, 나머지 하면 선자 에 왼팔에 걸림 바구니를 뒤졌다. 선자는 너무 두려워서 주저앉고마 싶었다.

남학생들은 선자 또래거나 선자보다 어린 것 같았지만 체격이 좋았고 에너지가 넘쳤다.

키가 제일 작은 남학생이 선자의 바구니 바닥에 있던 소꼬리를 꺼냈다.

"요보 놈들은 개를 먹는다던데 이제는 개가 먹는 음식까지 훔치는 구나! 너 같은 계집애가 뼈를 먹어? 멍청한 년."

선자는 속꼬리를 되찾으려고 공중으로 손을 휘둘렀다. 요보라는 말 하나는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요보, 그러니까 여보는 원래 '당신'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비아할 때 쓰는 욕이기도 했다.

키 작은 남학생이 소꼬리를 들고 냄새를 킁킁 맡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역겨워! 요보 놈들은 어떻게 이런 걸 먹지?"

"야, 그건 비싼 기다!" 당장 돌리도!" 선자가 소리쳤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뭐라고? 야, 이 멍청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왜 일본어 를 못해? 황국 신민은 모두 일본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넌 황국 시민이 아닌 거냐?"

키 큰 남학생은 친구들을 무시한 채 선자의 가슴 크기를 재 보고 있었다.

"저 요보 년 가슴이 아주 큰데. 일본 여자애들은 섬세해서 저런 잡종들 같지 않단 말이야."

선자는 두려움에 질려 참외를 포기한 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학생들은 금세 선자를 둘러쌌고 선자는 그들 사이를 지나갈 수가 없어다.

"이년 참외를 한번 쥐어짜보자." 키 큰 남학생이 오른손으로 선자의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주 좋은데? 즙이 넘치겠어? 한입 먹어볼까?" 남학생이 입을 크게 벌려 선자의 가슴 가까이 가져다 됐다.

키 작은 남학생은 선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선자의 바구니를 꽉 움켜쥐더니 검지와 엄지로 선자의 오른쪽 젖꼭지를 비틀었다.

"얘 어디 끌고 가서 저 긴 치마 아래에 뭐가 있는지 한번 보자. 낚시는 집어 치우고 대신 예를 잡아가자고!" 나머지 남학생 한 명이 말했다.

키 큰 남학생이 선자에게 아랫도리를 들이됐다. "야, 너도 내 물건 맛보고 싶어 죽겠지?"

"놔줘. 소리 지를 끼다." 선자는 이렇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목구멍에 꽉 막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키 큰 남학생 뒤에 서있는 어떤 남자가 보였다. 고한수였다.

한수는 한 손으로 키 큰 남학생의 짧은 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다른 손으로 남학생의 입을 막았다.

"더 가까이 와." 낮게 깔린 목소리로 한수가 말했다.

다른 남학생들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크게 뜬 친구를 버리고 도망치지는 않았지만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너희 같은 개자식들은 뒈져버려야 해." 한수가 완벽한 일본어 속어로 말했다. "다시 한 번 이 아가씨를 건드리거나 못생긴 그 낯짝을 들고 이 근처를 어슬렁거렸다가는 다 죽여 버리겠어. 내가 아는 최고의 일본 암살자들을 시켜서 네놈들과 네놈 가족들을 죽여 버릴 거야. 네놈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네 녀석들 부모는 일본에서 실패한 인간들이야. 그래서 여기로 쫓겨낫겠지. 내 놈들이 여기 사람들보다 더 잘 났다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도 마." 한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네 녀석들을 죽일 수 있어.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겠지만, 사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지. 내가 마음 먹었다 하면 네놈들을 잡아서 고문해 죽여 버릴 수도 있어. 오늘은 경고만 하고 보내주지. 내가 좀 너그러운 사람이거든. 게다가 젊은 아가씨도 있는 자리고 말이야."

두 남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튀어나올 것 같은 친구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보리색 정장에 하얀 가죽 구두를 신는 한수가 기 큰 남학생의 머리카락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키 큰 남학생은 한수의 꺾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운에 짓눌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일본인처럼 정확하게 말했지만 남학생들은 남자의 행동으로 남자가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 이 남자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남자의 위협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당장 사과해,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아." 한수가 남학생들에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 죄송합니다." 남학생들이 허둥지둥 선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선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남학생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남학생들이 다시 고개를 숙였고, 한수는 남학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던 손아귀의 힘을 살짝 풀었다.

한수가 선자를 돌아보고 미소 지었다.

"얘들이 미안하다고 하네요. 물론 일본말로요. 조선말로도 죄송하다고 말하라고 시킬까요? 그렇게 할 수 있거든요. 아니면 사과 편지를 쓰라고 시킬까요?"

선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키 큰 남학생은 이제 울고 있었다.

"차라리 이 녀석들을 바다에 던져버릴까요?"

한수는 농담을 던졌지만 선자는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선자는 간신히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남학생들은 선자를 어디론가 끌고 갈 수 있었고, 설령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해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고한수는 어떻게 남학생들의 부모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일본인 학생은 조선인이라며 다 큰 어른이라도 충분히 곤경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고한수는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긴장이 풀린 선자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한수가 선자에게 나지막하게 말하고는 키 큰 남학생을 풀어주었다.

남학생들이 참회와 소꼬리를 선자의 바구니에 다시 넣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학생들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다시는 여기 오지 마라. 내 말 알아 들었냐, 이 돌대가리들아?" 한수가 일본어로 말하면서 선자에게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선자가 자신의 거친 말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남학생들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키 큰 남학생은 바지에 오줌을 약간 지린 것 같았다. 남학생들은 시내 방향으로 서둘러 도망쳤다.

선자는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한수가 선자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영도에 살고 있죠?"

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하숙집을 운영하고요?" "네."

"집까지 데려다줄게요."

선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벌써 폐를 많이 끼쳤습니더. 혼자 집에 갈 수 있어예." 선자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 말 잘 들어요. 혼자 다니거나 밤에 돌아다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중국이나 일본에 가면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떠들어대는 조선인들을 만날지도 몰라요. 당신이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런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저런 멍청한 남학생들과 달라요. 쟤들은 그냥 문제아들일 뿐이죠. 하지만 당신이 조심하지 않으면 저런 아이들한테도 해를 당할 수 있어요. 알겠어요 ?"

선자는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고한수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자에게 집을 떠나서 일하러 갈 생각이 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자는 엄마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한수의 말이 옳았다. 여자는 언제나 욕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고귀한 여성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저고리 인에 은장도를 품고 다니거나 욕을 당하면 자살을 했다.

한수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선자는 그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집에 가야죠. 어머니가 걱정하실 거예요."

한수가 선자를 연락선 타는 데까지 바래다주었다. 선자는 연락선 바닥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앉았다. 다른 승객은 두 명뿐이었다.

선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한수는 다시 선자를 바라보았지만 이번에는 얼굴 표정이 전과 달랐다. 그 얼굴에서는 선자에 대한 걱정이 느껴졌다. 배가 부두에서 멀어졌을 때야 비로서 선자는 한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파친코 ⎟ Book 1. 고향 ⎟ 운명의 남자. (1932년 6월) Pachinko ⎟ Buch 1. Heimatstadt ⎟ Mann des Schicksals. (Juni 1932) Pachinko ⎟ Book 1. Hometown ⎟ Man of Destiny. (June 1932) Pachinko ⎟ Libro 1. Ciudad natal ⎟ Hombre del destino. (Junio de 1932). Pachinko ⎟ Libro 1. La città natale ⎟ L'uomo del destino (giugno 1932). Пачинко ⎟ Книга 1. Родной город ⎟ Человек судьбы. (Июнь 1932)

파친코. Book 1. 고향.

운명의 남자. 1932년 6월.

젊은 목사가 하숙집에 도착하기 여섯 달쯤 전 초여름의 어느 날, One day in early summer, about six months before the young pastor arrived at the boarding house, 선자는 새로 온 생선 중매상 고한수를 만났다. The Zen master met a new fishmonger named Ko Hansu.

선자가 장을 보러 시장에 갔던 그날 아침은 유달리 서늘했다. It was unusually cool that morning when the Zen master went to the market to buy groceries. 선자는 엄마 등에 업혀 다니던 갓난아기 때부터 남포동의 노천시장을 드나들었다. Since he was a newborn baby being carried on his mother's back, he has been going in and out of the open-air market in Nampo-dong. 좀 더 자라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녔다. When he was older, he held his father's hand as he walked around. 아버지는 불편한 발을 질질 끌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갈 때면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It took my father over two hours to go to the market with me because he had to drag his uncomfortable feet. 하지만 엄마와 함께 갈 때보다 아버지와 함께 심부름 가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But running errands with my dad was much more fun than it was with my mom.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Everywhere he went, he was warmly welcomed by the people.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가족과 하숙인들이 안부를 물을 때면 아버지의 흉한 입술과 어설픈 걸음걸이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When people would ask him how his family and boarders were doing, his ugly lips and unsteady gait seemed unremarkable.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선자는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말없는 승낙, My father was a man of few words, but the Zen master knew that many people understood his unspoken approval, 정직한 눈에 어리는 사려 깊은 눈빛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He realized that his honest eyes were waiting for a thoughtful look.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선자가 장보기를 도맡았다. After his father died, Zen took over the grocery shopping. 장보기 순서는 아버지와 엄마한테서 배운 그대로였다. The order of grocery shopping was the same as I had learned from my father and mother. 처음에 신선한 농산물을 사고, 그다음에 정육점에서 국거리용 뼈를 구입했다. First I bought fresh produce, then I bought bones from the butcher. 그러고는 바닥에 청록색과 빨간색 방수천을 깔고 그 위에 몇 시간 전에 잡은  반짝거리는 갈치나 통통한 도미를 늘어놓은 채 손님들의 시선을 끄는 노점상 아주머니한테서 생선 몇 마리를 샀다. He bought a few fish from a street vendor who laid out a turquoise and red tarp on the ground and lined it with shiny red snapper or plump snapper he'd caught a few hours earlier. 남포동 시장은 조선에서 제일가는 해산물 시장이었다. Nampo-dong Market was the most expensive seafood market in Joseon. 시장은 자갈이며 부서진 돌조각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바위투성이 해변을 따라 쭉 늘어서 있었다. The market was pebbly and stretched along a rocky beach with a carpet of broken stones. 그곳에서 노점상 아주머니들은 네모난 방수천을 하나씩 깔고 앉아 목청껏  소리 지르며 물건을 팔았다. The order of shopping was exactly what I had learned from my father and mother.

선자는 석탄 배달부의 아내를 찾아갔다. The good man went to visit the coalman's wife. 시장에서 제일 좋은 미역을 파는 그 아주머니는 선자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The lady selling the best wakame seaweed in the market was delighted to see Zen and greeted him.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새로 온 생선 중매상이 선자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찌푸려지고 말았다. But her face frowned when she realized that the new fishmonger was staring at the Zen master.

"아이고야, 부끄럽운 줄도 모르는갑네. I also bought a few productions from the aunt of the store. 니를 저래 쳐다보 고 있노.  니 아부지뻘은 될 것 같은 인간이!" He's looking at you like that. A man who could be your father!" 아주머니가 두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The lady rolled her eyes. "돈 좀 많다고 좋은 집안의 번듯한 처자를 저래 뻔뻔하게 쳐다봐도 되는 건 아이제!" "Just because you have a lot of money doesn't mean you can stare at a well-to-do girl from a good family so shamelessly!"

선자가 고개를 들어 밝은 색 양복에 하얀 가죽 구두를 신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There, the street vendors were sitting on one square piece of tarp, and 남자는 다른 미역 중매상들과  함께 골판지와 나무로 된 사무실 옆에 서 있었다. The man stood next to a cardboard and wood office with other seaweed matchmakers.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배우처럼 황백색 파나마모자를 쓴  고한수는 짙은 색 옷을 입은 다른 남자들 속에서 우윳빛 하얀 깃털이 달린 우아한 새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Wearing a yellow-and-white panama hat like an actor on a movie poster, Gohansoo stood out like a graceful bird with milky white feathers among other men dressed in dark colors. 남자는 말을 거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선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The man was staring at the Zen master, oblivious to the people around him who were talking to him. 중매상들은 이곳을 거쳐 가는 모든 생선의 도매를 통제했다. The middlemen controlled the wholesale of all the fish that passed through here. 생선 가격을 결정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고, 선장과 어부들을 징계하기 위해 잡은 고기를 사들이지 않는  것도 그들의 마음이었다. It was up to them to set the price of the fish, and it was up to them to refuse to buy the catch in order to discipline the captains and fishermen. 뿐만 아니라 중매상들은 부두를 통제하는 일본인 관리들과도 거래를 했다. 모두가 중매상들에게 경의를 표했지만 그들을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Everyone paid homage to the matchmakers, but few felt comfortable with them.

중매상들은 자기네 무리가 아닌 사람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Matchmakers rarely socialized with people outside of their own clan. 선자의 하숙집 사람들은 중매상들을 생선 냄새 하나 나지 않는 곱고 하얀 손으로 고기잡이의 모든 이득을 다 챙겨 가는 오만한 침입자라고 불렀다. The old woman rolled her eyes. 하지만 어부들은  그렇게 흉을 보면서도 중매상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The fishermen, however, tried to maintain good relations with the matchmakers despite the ugliness. 중매상들은 언제든지 어부들이 잡아온 고기를 사들일 수 있었고, Matchmakers could always buy the fishermen's catch, 고기잡이가 시원치 않을 때도 성금을 지불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This was because they could pay the bills even when the fishing wasn't cool.

"니 같은 가시내는 근사한 남자들의 시선을 끌게 마련이데이. "Thorns like you are bound to attract the attention of gorgeous men. 그치만서도  저 사람은 너무 날카로워 보인다 아이가. But that guy looks so sharp, he's a kid. 제주도 출신인데 오사카에 살고 있다 카데. I'm from Jeju Island, but I live in Osaka. 일본어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카더라. 우리 아저씨가 그카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똑똑한 사람이라 카더라꼬, 아이고야! My uncle is smarter than all the people in this room combined, and he's got a car! 아직도 니 를 보고 있데이!" It stood out like a graceful three with milky lamb feathers. 아주머니가 목까지 빨개져서 말했다. The lady blushed up to her neck and said.

선자는 일부러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숙인들이 수작을 걸어올 때도 무시하고 할 일만 했는데 지금이라고 다르게 행동할 이유가 없었다. There was no reason to behave any differently now that I had ignored the boarders and done my job. 미역 파는 아주머니는 원래 호들갑을 잘 떠는 성격이었다. The wakame seller was always a loudmouth.

"저희 엄마가 좋아하는 미역 있어예?" refusal to buy fish caught for 선자는 가격과 품질별로 차곡차곡 개어져 있는 마른 미역에 관심이 있는 척했다.

아주머니가 눈을 껌벅이더니 미역 한 뭉치를 싸주었다. 선자는 동전을 헤아려 건네주고 두 손으로 미역 뭉치를 받아들었다.

"지금은 하숙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노?" "How many people are boarding right now?"

"여섯 명이요." 선자는 다른 중매상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아직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힐끗거렸다. "Six." The Zen master glanced at the man who was still looking at him, even as he spoke to another matchmaker. "엄마가 요즘 많이 바빠예."

"당연히 그렇겠지!" 선자야, 여자의 일생은 일이 끊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이데이. "Of course not!" said the Zen master, for a woman's life is a life of work and pain. 고통스럽고 또 고통스러운 게 여자의 인생 아이겠나. 니도  각오하는 게 좋을 끼다. You'd better be prepared. 인자 니도 여자가 되었으니까네 이 검 꼭 알아둬야 한데이. Now that you're a woman, you should know this sword. 여자의 인생은 남편한테 달려 있다, 이 말이라. 좋은 남자를 만나면 근사한 삶을 살게 되고, 나쁜 남자를 만나면 저주받은 인생이 시작되는 거레이. 그래도 우야든동 여자의 인생이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아이가. A stream like this is bound to attract the attention of the living men, but even that skirt 항상 일을  해야 한데이. 가난한 여자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가. 기댈 건 우리 자신뿐이다 이기라."

말을 마친 아주머니가 한껏 불룩해진 배를 툭툭 두드리고 새로 온 손님을 향해 돌아섰다. 그제야 선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정 씨 형제들은 고한수에게 오늘 잡은 생선을 전부 팔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When it was time for dinner, the Chung brothers told Gohansoo that they had sold all the fish they had caught today.

"괜찮은 중매상이드라고잉. "A good matchmaker. 나는 고한수 처럼 멍청이들을 못 봐주는 똑똑한 사람이 좋당께. I want a smart person who can't stand idiots like Hansoo Ko. 고한수는 흥정도 안 해부러. Ignoring the boarders when they come 가격을 딱 정해놓고 부르제. 그 정도면 공평허고, 고한수는 다른 인간들처럼 니를 뜯어먹으려고 들지 않을 거여. That's fair enough, and he's not going to try to rip you off like other humans. 하지만 그 인간한테 거역할 수는 없제이."  곰보가 말했다.

뚱보는 제주에서 온 그 생선 중매상이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이야기를 얼음 중매상한테서 들었다고 했다. The former is interested in the dried seaweed that is broken by the price and quality 고한수는 일주일에 삼 일만 부산에 왔고, 평소에는 오사카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지냈다. 모두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렸다. The aunt closed her eyes and wrapped a bundle of seaweed.

고한수는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것 같았다. Hansu Koh seemed to be everywhere. 선자가 시장에 갈 때마다 고한수가 나타나 흑심을 한껏 드러냈다. Every time Sun-ja went to the market, Gohan-soo would show up and show his black heart. 선자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평소처럼 심부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존재감은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 없을 만큼 강했고, But the man's presence was too strong to ignore, 선자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오르곤  했다. The sage's face would grow hot.

일주일 후, 선자가 막 장을 다 보고 영도로 들어가는 연락선을 타려고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A week later, Sun Tzu had just finished his groceries and was walking alone to catch the ferry to the island of Yeongdo. 고한수가 선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오늘 밤 하숙집 저녁은 뭡니까?" "Miss, what's for dinner at the boarding house tonight?"

두 사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부산스러운 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선자는 고개를 들긴 했지만 고한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Sun Tzu raised his head, but he didn't answer Han Shuo's question and continued walking quickly. 두려움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My heart pounded in my chest with fear. 선자는 남자가 따라오지 않기를  바랐다. 연락선에 타자마자 선자는 남자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What to expect is our own part. 강인한 남자가 애써 부드럽게 말하려는 목소리였다. It was the voice of a strong man trying to speak softly. 몇몇 모음을 길게 늘여 말하는 제주도 억양이 살짝 섞여 있었다. He spoke with a slight Jeju accent, lengthening some vowels. 부산 사람들 말씨와는 아주 달랐다. 남자가 '저녁' 이라는 말을 아주 웃기게 발음해서 선자는 그 말을 재깍 알아듣지 못했다. The man pronounced the word "evening" in such a funny way that the Zen master couldn't understand what he was saying.

다음 날도 고한수는 선자를 따라와서 말을 걸었다.

"시집은 왜 안 갔어요? 나이가 찬 것 같은데." "Why didn't you get a book of poetry, you look old."

선자는 이번에도 종종 걸음으로 고한수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Once again, the Zen master ignored Ko Hansu, often walking past him. 남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선자가 대답을 하지 않는데도 고한수는 매번 선자에게 말을 걸었다. 항상 질문을 하나만 던졌고 반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선자를 볼 때마다 자기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에서 뭐라고 말을 건넸고 선자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도망쳤다. Whenever he saw the Zen master, he would say something to him at a distance where his voice could be heard, and the Zen master would run away without saying a word.

6월 둘째 주였다. 선자는 장을 다보고 한쪽 팔에 장본 물건으로 꽉 찬 바구니를 끼고 서 연락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교복을 입은 일본인 고등학생 세 명이 낚시를 하려는지 항구 쪽으로 가고 있었다. Three Japanese high school students in school uniforms were walking toward the harbor to go fishing. 가만히 앉아 있게에도 더운 날씨를 핑계 삼아 학교를 빼먹은 모양이었다. Despite sitting still, he used the hot weather as an excuse to skip school. 남학생들은 선자를 발견하자마자 낄낄거리면서 다가와 선자를 에워썼다. 얼굴이 허옇고 멀쑥하니 깡마른 남학생 하나가 선자의 바구니에서 길쭉하고 노란 참외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친구들을 향해 선자의 머리 위로 던졌다. Then he turned to his friends and threw it over the Zen master's head.

"돌리도." 선자는 조용히 조선말로 말하면서 남학생들이 연락선을 타지 않기를 바랐다. Every time his grandson went to the market, the late Hansoo appeared and showed his black heart to the fullest. 부산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곤 했지 만 영도에는 일본인들이 많지 않았다. 선자는 이런 골치 아픈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인 학생들은 조선인 아이들을 괴롭혔고, 가끔씩 그 반대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Japanese students bullied Korean children, and sometimes the opposite happened. 어린 조선인 아이들은 혼자 다니지 말라는 훈계를 들었지만, 선자는 열여섯 살의 강한 여자아이였다. Young Korean children were admonished not to travel alone, but Seonja was a strong sixteen-year-old girl. 일본인 남학생들이 자기를 더 어린 아이로 착각한 것이 분명했다. A week later, Seonja just finished shopping 선자는 좀더 단호하게 말하려고 했다. Trying to get a liaison pair going to zero

"뭐라고? 쟤 뭐라고 한 거야?" "What? What did he say?" 일본인 남학생들이 낄낄거리며 일본 말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 구린내 나는 창녀야."

선자는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연락선 옆에 서있는 뱃사공은 다른 두 남자와 이야기하느라 바빴고, 시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는 자기를 일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장 돌리도." 선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오른손을 뻗었다. 팔꿈치에  바구니가 걸려 있어서 균형을 잡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The grandson didn't want the man to follow him 선자는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깡마른 남자아이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The Zen master glared at the skinny boy, a head taller than him.

남학생들은 웃으면서 계속 일본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The boys laughed and kept muttering something in Japanese. 선자는 그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남학생 두 명이 노란 참외를 주고받았고, 나머지 하면 선자 에 왼팔에 걸림 바구니를 뒤졌다. The rest of the time, the zen master gets stuck on his left arm and rummages through the basket. 선자는 너무 두려워서 주저앉고마 싶었다. The Zen master was so frightened that he wanted to cower.

남학생들은 선자 또래거나 선자보다 어린 것 같았지만 체격이 좋았고 에너지가 넘쳤다.

키가 제일 작은 남학생이 선자의 바구니 바닥에 있던 소꼬리를 꺼냈다.

"요보 놈들은 개를 먹는다던데 이제는 개가 먹는 음식까지 훔치는 구나! 너 같은 계집애가 뼈를 먹어? 멍청한 년."

선자는 속꼬리를 되찾으려고 공중으로 손을 휘둘렀다. 요보라는 말 하나는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요보, 그러니까 여보는 원래 '당신'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비아할 때 쓰는 욕이기도 했다. Yobo, or honey, originally meant "you," but it was also an insult used by the Japanese to refer to Koreans.

키 작은 남학생이 소꼬리를 들고 냄새를 킁킁 맡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The short schoolboy held up the oxtail, sniffed it, and frowned.

"역겨워! 요보 놈들은 어떻게 이런 걸 먹지?"

"야, 그건 비싼 기다!" 당장 돌리도!"  선자가 소리쳤다. Standing on one foot with a basket full of stuff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뭐라고? 야, 이 멍청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왜 일본어 를 못해?  황국 신민은 모두 일본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넌 황국 시민이 아닌 거냐?" Why can't you speak Japanese? All Imperial subjects must speak Japanese! Aren't you an Imperial citizen?"

키 큰 남학생은 친구들을 무시한 채 선자의 가슴 크기를 재 보고 있었다. The tall boy was ignoring his friends and measuring the Zen master's chest.

"저 요보 년 가슴이 아주 큰데.  일본 여자애들은 섬세해서 저런 잡종들 같지 않단  말이야." "That yobo bitch has big boobs. Japanese girls are delicate, not like those mongrels."

선자는 두려움에 질려 참외를 포기한 채 걸어가기 시작했다. I took one out of a long, yellow charm, and then turned to my friends to see the head of the sage. 하지만 남학생들은 금세 선자를 둘러쌌고 선자는 그들 사이를 지나갈 수가 없어다.

"이년 참외를  한번 쥐어짜보자." 키 큰 남학생이 오른손으로 선자의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Hope the boys don't take the ferry

"아주 좋은데?  즙이 넘치겠어?  한입 먹어볼까?" 남학생이 입을 크게 벌려 선자의 가슴 가까이 가져다 됐다.

키 작은 남학생은 선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선자의 바구니를 꽉 움켜쥐더니 검지와 엄지로 선자의 오른쪽 젖꼭지를 비틀었다.

"얘 어디 끌고 가서 저 긴 치마 아래에 뭐가 있는지 한번 보자. "Let's drag her out and see what's under that long skirt. 낚시는 집어 치우고 대신 예를 잡아가자고!" 나머지 남학생 한 명이 말했다. Let's stop fishing and start catching examples instead!" Said one of the other boys.

키 큰 남학생이 선자에게 아랫도리를 들이됐다. A tall boy slammed his lower body into a Zen master. "야, 너도 내 물건  맛보고 싶어 죽겠지?" "Hey, I bet you're dying to taste my dick too, huh?"

"놔줘. 소리 지를 끼다." "Let go. Scream." 선자는 이렇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목구멍에 꽉 막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키 큰 남학생 뒤에 서있는 어떤 남자가 보였다.  고한수였다.

한수는 한 손으로 키 큰 남학생의 짧은 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다른 손으로 남학생의 입을 막았다.

"더 가까이 와." 낮게 깔린 목소리로 한수가 말했다. "Come closer," Hansoo said in a low voice.

다른 남학생들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크게 뜬 친구를 버리고 도망치지는 않았지만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I don't even know what you're talking about, you fucking whore

"너희 같은 개자식들은 뒈져버려야 해." "Sons of bitches like you need to go." 한수가 완벽한 일본어 속어로 말했다. Hansu said in perfect Japanese slang. "다시 한 번 이 아가씨를 건드리거나 못생긴 그 낯짝을 들고 이 근처를 어슬렁거렸다가는 다 죽여 버리겠어. "If you ever touch her again, or wander around here with that ugly little face of yours, I will kill you all. 내가 아는 최고의 일본 암살자들을 시켜서  네놈들과 네놈 가족들을 죽여 버릴 거야. 네놈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No one will ever know how you died. 네 녀석들 부모는 일본에서 실패한 인간들이야. Your parents are failures in Japan. 그래서 여기로 쫓겨낫겠지. 내 놈들이 여기 사람들보다 더 잘 났다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도 마." 한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Hansu was smiling as he said this.

"지금 당장이라도 네 녀석들을 죽일 수 있어.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겠지만, 사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지. "I could kill you right now," he says, "and no one would do that, but it's too easy. 내가 마음 먹었다 하면 네놈들을 잡아서 고문해 죽여 버릴 수도 있어. I could capture you and torture you to death if I wanted to. 오늘은 경고만 하고 보내주지. 내가 좀 너그러운 사람이거든. I'm a generous guy. 게다가 젊은 아가씨도 있는 자리고 말이야." And a seat with a young lady."

두 남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튀어나올 것 같은 친구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The two boys were speechless, staring into their friend's eyes as if they were about to burst. 아이보리색 정장에 하얀 가죽 구두를 신는 한수가 기 큰 남학생의 머리카락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키 큰 남학생은 한수의 꺾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운에 짓눌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The taller boy couldn't even scream as he was crushed by Han Shuo's unbreakable aura.

일본인처럼 정확하게 말했지만 남학생들은 남자의 행동으로 남자가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 Even though he spoke correctly like a Japanese, the boys thought the man was Korean by his behavior. 이 남자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남자의 위협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I didn't know who this man was, but I couldn't ignore his threat.

"당장 사과해,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아." "Apologize right now, you bastards." 한수가 남학생들에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 죄송합니다." 남학생들이 허둥지둥 선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선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남학생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남학생들이 다시 고개를 숙였고, 한수는 남학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던 손아귀의 힘을 살짝 풀었다.

한수가 선자를 돌아보고 미소 지었다.

"얘들이 미안하다고 하네요.  물론 일본말로요. 조선말로도 죄송하다고 말하라고 시킬까요? 그렇게 할 수 있거든요. Deep schoolboy was measuring his breast size in the sun, ignoring his friends 아니면 사과  편지를 쓰라고 시킬까요?"

선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키 큰 남학생은 이제 울고 있었다.

"차라리 이 녀석들을 바다에 던져버릴까요?"

한수는 농담을 던졌지만 선자는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선자는 간신히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The Zen master shook his head again, barely. 그 남학생들은 선자를 어디론가 끌고 갈 수 있었고, 설령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해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The boys could have dragged him anywhere, and no one would have known it had happened. 고한수는 어떻게 남학생들의 부모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일본인 학생은 조선인이라며 다 큰 어른이라도 충분히 곤경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A Japanese student could get a grown man in trouble for being Korean. 그런데 왜 고한수는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긴장이 풀린 선자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Once the tension was released, the Zen master could not hold back the tears that were bubbling up.

"괜찮아요." 한수가 선자에게 나지막하게 말하고는 키 큰 남학생을 풀어주었다.

남학생들이 참회와 소꼬리를 선자의 바구니에 다시 넣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학생들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A tall male student put his pants on a person standing

"다시는 여기 오지 마라. 내 말 알아 들었냐, 이 돌대가리들아?" 한수가 일본어로 말하면서 선자에게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선자가 자신의 거친 말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He didn't want the Zen master to notice his harsh words.

남학생들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키 큰 남학생은 바지에 오줌을 약간 지린 것 같았다. 남학생들은 시내 방향으로 서둘러 도망쳤다.

선자는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The other boys are terrified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It hurt like my arm was going to fall off. 한수가 선자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영도에 살고 있죠?"

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하숙집을 운영하고요?" "네."

"집까지 데려다줄게요."

선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벌써 폐를 많이 끼쳤습니더. 혼자 집에 갈 수 있어예." "You've already caused me a lot of trouble. I can go home alone." 선자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 말 잘 들어요. 혼자 다니거나 밤에 돌아다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중국이나 일본에 가면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떠들어대는 조선인들을  만날지도 몰라요. You might meet some Koreans, female or male, who will tell you that there are good jobs in China or Japan. 당신이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런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It could be someone you know, and you need to watch out for them. 그들은 저런 멍청한 남학생들과 달라요. They're not like those stupid schoolboys. 쟤들은 그냥 문제아들일 뿐이죠. 하지만 당신이 조심하지 않으면 저런 아이들한테도 해를 당할 수 있어요. 알겠어요 ?"

선자는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고한수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자에게 집을 떠나서 일하러 갈 생각이 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자는 엄마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Besides, it's a place with a young lady. 하지만 고한수의 말이 옳았다. The two boys looked at their friend's eyes that seemed to pop out without saying anything. 여자는 언제나 욕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Women were always at risk of being called names. 고귀한 여성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저고리 인에 은장도를 품고 다니거나 욕을 당하면 자살을 했다. If he carried a silver knife in his jerkin or was insulted, he would kill himself.

한수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선자는 그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I couldn't even scream

"집에 가야죠. 어머니가 걱정하실 거예요."

한수가 선자를 연락선 타는 데까지 바래다주었다. 선자는 연락선 바닥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앉았다. 다른 승객은 두 명뿐이었다.

선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한수는 다시 선자를 바라보았지만 이번에는 얼굴 표정이 전과 달랐다. 그 얼굴에서는 선자에 대한 걱정이 느껴졌다. 배가 부두에서 멀어졌을 때야 비로서 선자는 한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