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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파친코 ⎟ Book 1. 고향 ⎟ 몰래한 사랑 (part 1 of 2)

파친코 ⎟ Book 1. 고향 ⎟ 몰래한 사랑 (part 1 of 2)

파친코. Book 1. 고향.

몰래한 사랑 (1/2).

고한수가 연락선에 태워줬을 때 선자는 그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에서 박하 향이 섞인 포마드 기름 냄새가 났다.

한수는 서른여섯 살 먹은 선자의 엄마와 나이가 같다고 했다. 두 다리는 길지 않았지만 키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한수는 어깨가 넓고 상체가 떡 벌어진 강인하고 건장한 남자였다. 황갈색 눈썹이 살짝 찌그러져 있었고 희미한 갈색 점과 주근깨가 날카로운 광대뼈 위로 흩뿌려져 있었다. 코가 좁고 높아서 일본인 처럼 보였고 콧구멍 주변을 터진 실핏줄이 감싸고 있었다. 갈색 이라기보다는 검은색에 더 가까운 짙은 눈동자는 긴 터널처럼 빛을 빨아들였다. 선자는 한수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배 속이 불편하게 간질거리는 것만 같았다. 한수의 서양식 정장은 우아하고 잘 손질되어 있었고, 옷에서는 하숙직 사람들한테서 나는 노동자들의 냄새나 바다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장이 섰을 때 선자는 중매상 사무실 앞에서 사업가들 무리와 함께 서 있는 한수를 발견했다. 선자는 아무 말 않고 그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다. 눈이 마주치자 한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선자가 장을 다 보고 연락선을 타러 가기 위해 걸어가는데 한수가 뒤따라왔다.

"시간 있어?" 한수가 물었다.

선자가 눈을 크게 떴다. 대체 무슨 말이지?

"이야기할 시간 말이야."

선자는 평생을 남자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남자를 두려워하거나 어색하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한수 앞에서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지어은 한수 옆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선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하숙집 남자들을 대할 때처럼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겁에 질린 아이가 아니라 열여섯 살이나 먹은 여자니까 말이다.

"저번에는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더."

"별일 아니었어."

"좀더 빨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더."

"너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여기서 말고."

"그럼 어디서예?" 선자는 왜냐고 먼저 물어볼걸, 하고 후회했다.

"너희 집 뒤쪽 해변으로 갈게. 조수가 낮아지는 쪽에 있는 커다란 검은 바위 근처로. 넌 거기에서 가끔 빨래를 하잖아." 한수는 자기가 선자의 일상에 관해서 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 "혼자 올 수 있어?"

선자는 장바구니를 내려다보았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 남자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내일 아침에 나올 수 있어? 이 시간쯤에?"

"모르게어예."

"오후가 더 나을까?"

"하숙하는 사람들이 일하러 나간 뒤가 좋을 것 같아예." 선자는 자신의 말끝이 흐려지는 걸 알아차렸다.

고한수는 검은 바위 옆에서 신문을 읽으면서 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는 평소보다 더 파랗게 보였고, 길쭉하고 가는 구름들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하얬다. 그와 함께 있으니 모든 것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고한수는 미풍에 날려 팔락거리는 신문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다가오는 선자를 발견하고는 신문을 접어서 팔 아래에 끼워 넣었다. 고한수는 선자에게 다가가지 않고 선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선자는 큼직한 빨래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균형을 잡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선생님." 선자는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고개를 숙일 수가 없어서 양손으로 빨래 뭉치를 잡아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한수가 먼저 재빠르게 손을 뻗어 선자의 머리 위에서 빨래 보따리를 들어 올렸다. 그가 빨래 보따리를 마른 바위에 올려놓았고 선자는 등을 곧게 폈다.

"감사합니더, 선생님."

"오빠라고 불러야지. 넌 오빠가 없고 난 여동생이 없으니까,

네가 내 여동생이 될 수 있는 거 아냐?"

선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 참 좋다!"

한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낮게 일렁거리는 파도를 훑어보다 지평선을 응시했다. "제주도 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느낌이 비슷한 곳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는 둘다 섬 출신이네. 언젠가는 너도 섬사람들이 좀 남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우리는 좀 더 자유로운 사람들이거든."

선자는 한수의 목소리가 좋았다. 남성적이면서도 슬픔이 어려 있는 목소리였다.

"넌 아마 여기서 평생을 보내겠지."

"네. 여기가 제 고향이니까예." 선자가 말했다.

"고향이라 . . . " 고한수가 생각에 잠겼다. "우리 아버지는 제주에서 귤 농장을 했어. 난 열두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오사카로 갔지. 난 제주도를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한수는 선자가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선자의 눈과 훤한 이마가 그랬다.

"빨랫감이 엄청 많구나. 나도 아버지와 내 옷을 빨곤 했는데. 정말 지긋지긋하게 싫었지. 부자가 돼서 제일 좋은 건 빨래와 요리를 대신 해줄 사람이 있다는 거야."

선자는 걷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빨래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빨래는 일도 아니었다. 다림질이 훨씬 더 어려웠다.

"빨래할 때 무슨 생각해?"

한수는 선자에 관해서 알아야 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선자의 생각을 아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한수는 누군가의 생각을 알고 싶을 때 질문을 많이 던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말로 하고 나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거짓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한수는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보다 그 사람도 다른 사람과 별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더 실망스러웠다. 한수는 멍청한 여자보다는 똑똑한 여자를 좋아했고, 뒤에서 거짓말만 일삼는 게으른 여자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여자를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도 나도 옷이 딱 한 벌밖에 없었어. 그래서 내가 매일 빨래를 해야 했지. 밤새 옷을 말려서 입으려고 했지만, 아침에도 아직 덜 말라서 축축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을 때가 많았어. 열 살인가 열한 살 때는 한 가지 꾀를 냈지. 젖은 옷을 빨리 말리려고 난로 근처에 두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간 거야. 당시에는 보리죽도 간신히 먹는 형편이 었거든. 난 싸구려 냄비에 든 보리죽을 저어야 했어. 안 그러면 바닥에 눌러 붙은이까. 그래서 한참 보리죽을 젓고 있는데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거야. 아버지 잠바 소매가 난로에 타버려더라고.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어. 그 일로 크게 혼이 났지." 한수는 아버지한테 호되게 맞은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머리가 무슨 속 빈 박이냐! 천하에 아무 쓸모도 없는 멍청한 놈!" 한수의 아버지는 번 돈은 모조리 술을 퍼마시는 데 쓰고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참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혼자 힘으로 숲에서 먹을 것을 캐거나 사냥을 하고 좀도둑질까지 하는 아들에게 모질게 굴었다.

선자는 고한수 같은 사람이 자기 빨래를 직접 한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수의 옷은 모두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선자는 한수가 지금껏 걸쳤던 각기 다른 정장들과 하얀 구두들을 이미 본 터였다. 영도에서 한수처럼 입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자도 뭐라고 말을 해야했다. "전 빨래를 할 때 어떻게 하면 잘 빨 수 있을까 생각해예. 빨래는 제가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라서예. 깨진 냄비는 그냥 던져서 버려야 되지만 빨래를 하면 옷이 깨끗해지잖아예."

한수가 선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난 오래전부터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

선자는 또다시 왜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넌 아주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 한수가 말했다. "아주 정직해 보여."

선자는 시장의 아주머니들한테서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선자는 한수의 말에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 선자는 엄마에게 고한수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혔던 일본인 학생들 얘기도 하지 않았다. 노상 같이 빨래를 하던 동희에게는 그저 자기가 대신 빨래를 하겠다고만 말했다. 동희는 빨래를 안 하게 되니 뛸 듯이 좋아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한수가 물었다.

선자의 뺨이 붉어졌다. "아니예."

한수가 미소를 지었다. "넌 이제 열일곱이 다됐어. 난 서른네 살이라 너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아. 내가 네 오빠이자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 한수 오빠 말이야. 어떠니?"

선자는 한수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선자는 병에 걸린 아버지가 낫기를 바랐던 때를 제외하고 이보다 더 간절한 순간은 지금껏 없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거나 머릿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빨래는 언제 하러 오니?" "사흘에 한 번씩예."

"이 시간에?"

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순간, 폐와 심장이 기대와 경이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선자는 항상 이 해변을 사랑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옅은 청록색의 바다, 돌이 섞인 모래와 바다 사이에 놓인 검은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들을 둘러싼 하얀 자갈들을 사랑했다. 이 해변에 고요함은 선자에게 안전과 만족을 느끼게 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을 예전과 똑같이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수가 선자 옆에 놓여 있던 매끄럽고 납작한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회색 줄무늬가 있는 검정 돌이었다. 한수는 생선 도매용 컨테이너에 표시를 할 때 쓰는 하얀 분필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돌바닥에 x 표시를 했다. 그러고는 쪼그리고 앉아 주변에 깔린 어마어마하게 많은 바위들을 살펴보다가 중간 크그의 바위를 찾아냈다. 벤치 높이만한 그 바위에는 물기가 없는 틈이 있었다.

"내가 여기 왔는데 너를 만나지 못하고 일하러 돌아가야 하면 이 돌을 여기 바위틈에 넣어 둘게. 그럼 내가 왔다 갔다는 뜻이야. 네가 여기 왔다가 나를 못 만나면 너도 이 돌을 같은 곳에 놓아뒀으면 좋겠어. 그러면 네가 날 보러 왔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한수는 선자의 팔을 토닥여주고 선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선자야, 난 이만 가봐야 해. 나중에 또 보자. 알겟지?"

선자는 한수가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수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선자는 쪼그리고 앉아 빨래 보따리를 풀어서 빨래를 하려고 했다. 더러운 옷 하나를 꺼내 차가운 물에 담갔다.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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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몰래한 사랑 (1/2).

고한수가 연락선에 태워줬을 때 선자는 그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When Gohansoo gave him a ride on the liaison ship, the Zen master was able to get a closer look at him. 깔끔하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에서 박하 향이 섞인 포마드 기름 냄새가 났다. His neatly combed black hair smelled of pomade oil mixed with mint.

한수는 서른여섯 살 먹은 선자의 엄마와 나이가 같다고 했다. Hansoo said he was the same age as the thirty-six-year-old Zen master's mother. 두 다리는 길지 않았지만 키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한수는 어깨가 넓고 상체가 떡 벌어진 강인하고 건장한 남자였다. From neatly combed black hair 황갈색 눈썹이 살짝 찌그러져 있었고 희미한 갈색 점과 주근깨가 날카로운 광대뼈 위로 흩뿌려져 있었다. It smelled of mint-scented kid's oil 코가 좁고 높아서 일본인 처럼 보였고 콧구멍 주변을 터진 실핏줄이 감싸고 있었다. His nose was narrow and high, giving him a Japanese look, and he had a string of popped threads wrapped around his nostrils. 갈색 이라기보다는 검은색에 더 가까운 짙은 눈동자는 긴 터널처럼  빛을 빨아들였다. 선자는 한수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배 속이 불편하게 간질거리는 것만 같았다. Every time he met Han Shuo's gaze, he felt an uncomfortable tickle in the pit of his stomach. 한수의 서양식 정장은 우아하고 잘 손질되어 있었고, 옷에서는 하숙직 사람들한테서 나는 노동자들의 냄새나 바다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장이 섰을 때 선자는 중매상 사무실 앞에서 사업가들 무리와 함께 서 있는 한수를 발견했다. The next day, when Zhang stood up, he found Han Shu standing with a group of businessmen in front of the matchmaker's office. 선자는 아무 말 않고 그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다. 눈이 마주치자 한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선자가 장을 다 보고 연락선을 타러 가기 위해 걸어가는데 한수가 뒤따라왔다. Sun-ja finishes her groceries and walks to catch the ferry, followed by Han-soo.

"시간 있어?"  한수가 물었다.

선자가 눈을 크게 떴다.  대체 무슨 말이지?

"이야기할 시간 말이야." "Time to talk."

선자는 평생을 남자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남자를 두려워하거나 어색하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There was no smell or sea smell. 하지만 한수 앞에서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The next day, when there was a market, the grandson came with a group of business people in front of the middle store office 심지어은 한수 옆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Found one number standing together 선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하숙집 남자들을 대할 때처럼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The grandson didn't say anything and waited until his eyes met. 겁에 질린 아이가 아니라 열여섯 살이나 먹은 여자니까 말이다. When our eyes met, Hansoo nodded slightly and concentrated on his work again.

"저번에는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더." Seon-ja is walking to go shopping and boarding the ferry, but Han-soo follows him.

"별일 아니었어." come

"좀더 빨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더." Hansoo asked if I have time.

"너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여기서 말고." The sage opened his eyes wide, it's time to talk about what the heck

"그럼 어디서예?"  선자는 왜냐고 먼저 물어볼걸, 하고 후회했다. The grandson lived his whole life with men.

"너희 집 뒤쪽 해변으로 갈게. There was never a time when I was afraid of men or thought awkwardly, but Hansoo 조수가 낮아지는 쪽에 있는 커다란 검은 바위 근처로. 넌 거기에서 가끔 빨래를 하잖아." 한수는 자기가 선자의 일상에  관해서 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 "혼자 올 수 있어?"

선자는 장바구니를 내려다보았다. The Zen master looked down at his shopping cart.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 남자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내일 아침에 나올 수 있어? 이 시간쯤에?"

"모르게어예."

"오후가 더 나을까?"

"하숙하는 사람들이 일하러 나간 뒤가 좋을 것 같아예." 선자는 자신의 말끝이 흐려지는 걸 알아차렸다.

고한수는 검은 바위 옆에서 신문을 읽으면서 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는 평소보다 더 파랗게 보였고, 길쭉하고 가는 구름들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하얬다. 그와 함께 있으니 모든 것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고한수는 미풍에 날려 팔락거리는 신문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다가오는 선자를 발견하고는 신문을 접어서 팔 아래에 끼워 넣었다. 고한수는 선자에게 다가가지 않고 선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선자는 큼직한 빨래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균형을 잡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Would it be better to use it without knowing it?

"선생님." 선자는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고개를 숙일 수가 없어서 양손으로 빨래 뭉치를 잡아 내리려고 했다. I couldn't get my head down, so I tried to grab the bundle of laundry with both hands. 하지만 한수가 먼저 재빠르게 손을 뻗어 선자의 머리 위에서 빨래 보따리를 들어 올렸다. But Hansoo reached out first, quickly, and lifted the bag of laundry from the top of the Zen master's head. 그가 빨래 보따리를 마른 바위에 올려놓았고 선자는 등을 곧게 폈다.

"감사합니더, 선생님." Had more haha than I remembered

"오빠라고 불러야지.  넌 오빠가 없고 난 여동생이 없으니까,

네가 내 여동생이 될 수 있는 거 아냐?" Isn't it possible that you could be my sister?"

선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 참 좋다!"

한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낮게 일렁거리는 파도를 훑어보다 지평선을 응시했다. Hansoo scanned the waves lapping low in the middle of the ocean, then stared at the horizon. "제주도 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느낌이 비슷한 곳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는 둘다 섬 출신이네. Come to think of it, we're both from islands. 언젠가는 너도 섬사람들이 좀 남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우리는 좀 더 자유로운 사람들이거든." We're a more liberal bunch."

선자는 한수의 목소리가 좋았다. 남성적이면서도 슬픔이 어려 있는 목소리였다.

"넌 아마 여기서 평생을 보내겠지." "You'll probably spend the rest of your life here."

"네. 여기가 제 고향이니까예." 선자가 말했다.

"고향이라 . . . " 고한수가 생각에 잠겼다. "우리 아버지는 제주에서 귤 농장을 했어. 난 열두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오사카로 갔지. 난 제주도를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한수는 선자가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선자의 눈과 훤한 이마가 그랬다. Come to think of it, we're both from 3

"빨랫감이 엄청 많구나.  나도 아버지와 내 옷을 빨곤 했는데. One day you'll find that the islanders are a little different. 정말 지긋지긋하게 싫었지.  부자가 돼서 제일 좋은 건 빨래와 요리를 대신 해줄 사람이 있다는 거야."

선자는 걷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빨래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It'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Zen master did laundry from the time he started walking. 사실 빨래는 일도 아니었다. 다림질이 훨씬 더 어려웠다.

"빨래할 때 무슨 생각해?"

한수는 선자에 관해서 알아야 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선자의 생각을 아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한수는 누군가의 생각을 알고 싶을 때 질문을 많이 던졌다. Hansu asked a lot of questions when he wanted to know what someone was thinking.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말로 하고 나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Most people say what they think, and then they do it.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거짓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Only a few people knew how to tell a good lie. 한수는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보다 그 사람도 다른 사람과 별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더 실망스러웠다. For Hansu, it was more frustrating to realize that someone was lying than it was to realize that they were no different than anyone else. 한수는 멍청한 여자보다는 똑똑한 여자를 좋아했고, 뒤에서 거짓말만 일삼는 게으른 여자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여자를 좋아했다. Eyes and grudges were blocking the sun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도 나도 옷이 딱 한 벌밖에 없었어. 그래서 내가 매일 빨래를 해야 했지. 밤새 옷을 말려서 입으려고 했지만, 아침에도 아직 덜 말라서 축축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을 때가 많았어. 열 살인가 열한 살 때는 한 가지 꾀를 냈지. It would not be an exaggeration to say that Seon-ja has been doing laundry since he started walking. 젖은 옷을 빨리 말리려고 난로 근처에  두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간 거야. I left my wet clothes near the stove to dry quickly and went to prepare dinner. 당시에는 보리죽도 간신히 먹는 형편이 었거든. 난 싸구려 냄비에 든 보리죽을 저어야 했어. 안 그러면 바닥에 눌러 붙은이까. 그래서 한참 보리죽을 젓고 있는데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거야. 아버지 잠바 소매가 난로에 타버려더라고.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어.  그 일로 크게  혼이 났지." 한수는 아버지한테 호되게 맞은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Few people knew how to lie properly. "머리가 무슨 속 빈 박이냐! "What a hollow gourd your head is! 천하에 아무 쓸모도 없는 멍청한 놈!" It was even more disappointing when I found out that I was no different from anyone else. 한수의 아버지는 번 돈은 모조리 술을 퍼마시는 데 쓰고 Hansoo's father spends all the money he earns on drinking.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았다. I didn't provide for my family properly. 그러면서도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참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And yet, I was the only one who didn't feel guilty about it. 오히려 혼자 힘으로 숲에서 먹을 것을 캐거나 사냥을 하고 좀도둑질까지 하는 아들에게 모질게 굴었다. I've been hard on my son for stealing.

선자는 고한수 같은 사람이 자기 빨래를 직접 한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수의 옷은 모두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선자는 한수가 지금껏 걸쳤던 각기 다른 정장들과 하얀 구두들을 이미 본 터였다. I left it nearby and went to prepare dinner. 영도에서 한수처럼 입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At the time, I couldn't even afford to eat porridge.

선자도 뭐라고 말을 해야했다. "전 빨래를 할 때 어떻게 하면 잘 빨 수 있을까 생각해예. Otherwise, the teeth stuck to the floor 빨래는 제가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라서예. 깨진 냄비는 그냥 던져서 버려야 되지만 빨래를 하면 옷이 깨끗해지잖아예."

한수가 선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난 오래전부터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 "I've wanted to be with you for a long time."

선자는 또다시 왜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넌 아주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  한수가 말했다.  "아주 정직해 보여." useless fool in the world

선자는 시장의 아주머니들한테서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At 1 o'clock, my father spent all the money he earned on drinking water. 하지만 선자는 한수의 말에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 선자는 엄마에게 고한수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혔던 일본인 학생들 얘기도 하지 않았다. 노상 같이 빨래를 하던 동희에게는 그저 자기가 대신 빨래를 하겠다고만 말했다. To Dong-hee, who was doing laundry with him on the street, he simply said he would do it for her. 동희는 빨래를 안 하게 되니 뛸 듯이 좋아했다. Donghee was thrilled to not have to do laundry.

"좋아하는 사람 있어?"  한수가 물었다.

선자의 뺨이 붉어졌다. "아니예."

한수가 미소를 지었다.  "넌 이제 열일곱이 다됐어. 난 서른네 살이라 너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아. 내가 네 오빠이자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 한수 오빠 말이야.  어떠니?"

선자는 한수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선자는 병에 걸린 아버지가 낫기를 바랐던 때를 제외하고 이보다 더 간절한 순간은 지금껏 없었다고 생각했다. I don't think I've ever been more eager to do so. 지금까지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거나 머릿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빨래는 언제 하러 오니?" "When are you going to do the laundry?" "사흘에 한 번씩예."

"이 시간에?"

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순간, 폐와 심장이 기대와 경이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선자는 항상 이 해변을 사랑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옅은 청록색의 바다, 돌이 섞인 모래와 바다 사이에 놓인 검은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들을 둘러싼 하얀 자갈들을 사랑했다. 이 해변에 고요함은 선자에게 안전과 만족을 느끼게 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Dong-eun said he liked it so much that he didn't do laundry. 하지만 이제는 이곳을 예전과 똑같이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수가 선자 옆에 놓여 있던 매끄럽고 납작한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회색 줄무늬가 있는 검정 돌이었다. 한수는 생선 도매용 컨테이너에 표시를 할 때 쓰는 하얀 분필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돌바닥에 x 표시를 했다. Hansu took the white chalk used to mark wholesale fish containers out of his pocket and made an X on the stone floor. 그러고는 쪼그리고 앉아 주변에 깔린 어마어마하게 많은 바위들을 살펴보다가 중간 크그의 바위를 찾아냈다. He squatted down and sifted through the mass of rocks around him until he found a medium-sized rock. 벤치 높이만한 그 바위에는 물기가 없는 틈이 있었다. The boulder, about the height of a bench, had a waterless crevice in it.

"내가 여기 왔는데 너를 만나지 못하고 일하러 돌아가야 하면 이 돌을 여기 바위틈에 넣어 둘게. Except when the grandson wanted his sick father to get better. 그럼 내가 왔다 갔다는 뜻이야. I don't think there's ever been a more desperate moment than this. 네가 여기 왔다가 나를 못 만나면 너도 이 돌을 같은 곳에 놓아뒀으면   좋겠어. 그러면 네가 날 보러 왔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한수는 선자의 팔을 토닥여주고 선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선자야, 난 이만 가봐야 해. 나중에 또 보자. 알겟지?"

선자는 한수가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수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선자는 쪼그리고 앉아 빨래 보따리를 풀어서 빨래를 하려고 했다. 더러운 옷 하나를 꺼내 차가운 물에 담갔다.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말았다. I took a dirty piece of clothing and soaked it in cold water. Everything chang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