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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 모자수의 사랑 (1961년 10월)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 모자수의 사랑 (1961년 10월)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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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2. 조국. 모자수의 사랑. 1961년 10월.

모자수는 도토야마의 가게 맞은편에 있는

단풍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그의 옆모습이 단풍나무 몸통에 살짝 가려져 보였다.

이곳은 유미와 만나기로 한 장소였다.

일주일에 삼 일, 저녁마다 모자수는

일이 끝나고 나서 유미를 만났다.

거의 일 년 동안 유미와 함께 교회에서 영어 수업을 들었고,

그 후에는 유미의 셋방으로 가서

유미가 간단하게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종종 유미와 사랑을 나누기도 했고,

그 후에는 파라다이스 세븐으로 돌아가 영업이 끝날 때까지 일하다가 직원 공동 숙소의 자기 방에서 잠들었다.

벌써 10월이었다.

초저녁에 불어오는 미풍에는 아직 여름의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나뭇잎들은 금색으로 변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모자수 위쪽으로 우뚝 솟은 나무는

흐릿한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거리는 금빛 레이스 같았다.

노동자들과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마중하러 집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토야마의 새 작업실이 있는 도로는 지난해에 확장 공사를 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강가의 폐가들로 옮겨갔다.

한때는 황량했던 곳에서 야채를 팔았던 야채 장수는

장사를 아주 잘해서 이제는 근처의 부지를 빌려서

시동생에게 마른 식품들을 파는 가게를 열어줄 수 있었다.

포르투갈 스타일의 스펀지케이크를 파는 새로운 빵 가게는

유혹적인 냄새를 거리에 풍기면서

매일 아침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오사카에서 유명세를 누렸다.

도토야마 씨의 재봉사들이 평소보다 훨씬 늦게까지 일해서

모자수는 숙제로 외워야 하는 영어 단어가 적힌 구겨진 종이를 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따위에 관심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은 영어 단어와

숙어를 상당히 잘 외우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모자수의 이런 암기 능력은 유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현금과 옷, 장신구 같은 선물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여자들과 달리

모자수의 여자친구는 공부에만 관심이 있었다.

유미는 모자수가 그들의 선생님인 존 메리맨 목사의 질문에

옳은 대답을 할 때 제일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유미는 미국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언젠가 미국에서 살려면 영어를 잘 배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서 그럭저럭 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어떤 남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모자수는 더 이상 단어를 읽을 수가 없었다.

모자수는 몇 걸음 앞쪽에 나타난 남자의 구두를 보고 고개를 슬쩍 들었다.

"네가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모자수? 진짜로?"

"어, 하루키!"

모자수가 소리쳤다. "정말 하루키 맞아?"

야 대체 이게 얼마만이야!"

모자수가 친구의 손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잡고 흔들었다.

"항상 네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물어 봤어.

엄마는 널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던데.

으스대는 게 아니라 도토야마 아주머니답게

조용하고도 예의 바르게 말이야.

세상에, 얘 좀 봐! 하루키, 네가 경찰관이 됐어!"

모자수가 하루키의 제복을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진짜 그럴싸해 보이는데. 범죄 한 건 저질러보고 싶은걸.

설마 날 잡아넣지는 않을 거지, 그렇지?"

하루키가 미소를 짓고는 오랜 친구 앞이라서 쑥스러운지 주먹으로 가볍게 모자수의 어깨를 툭 쳤다.

하루키는 모자수가 학교를 그만둔 후

모자수와 떨어져 지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하루키는 모자수에게 느끼는 너무나 깊은 정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다.

지난 세월 동안 또 다른 열병에 빠지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찰학교에서 남자답고 재미있는 고지라는 친구를 만났다.

하루키는 모자수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지를 멀리하려고 애썼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은 분명하게 선을 그어 구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경찰학교 근처에 사는 거 아니었어?"

하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주 휴가를 냈어."

"그건 그렇고, 대체 언제 경찰이 된 거야? 형사 말이야."

모자수가 공식적인 인사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숙이며 싱긋 웃었다.

"2년 됐어." 하루키는 단풍나무 아래에 있는 모자수를 알아차렸지만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모자수의 그림자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소년 시절에는 고통스러운 학교생활에서

자신을 구해준 모자수를 동경했다.

모자수가 고로 사장 밑에서 일하려고 학교를 그만뒀을 때

하루키는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모자수가 파친코 세계로 떠나고 난 후,

학교의 악귀 같은 못된 놈들의 괴롭힘이 극에 달했다.

하루키는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자유 시간에는 상냥한 미술 선생님의 안전한 교실에서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집도 언제나 똑같았다.

남동생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는 그 모습 그대로였고, 엄마는 눈이 나빠질 때까지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남편과 형제들이 모두 형사였던

미술 선생님은 하루키에게 경찰학교에 가라며 권했다.

재미있게도 선생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하루키는 규칙과 위계질서가 있는 경찰학교를 좋아했다.

하루키는 경찰학교에서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잘했다.

게다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하루키는 너무 좋았다.

"왜 이렇게 바깥에 서 있어?"

하루키가 물었다.

태양이 나지막하게 떠 있었고, 주황빛에 물든 붉은 석양이 내려앉았다.

"유미를 기다리고 있어. 유미가 네 엄마 가게에서 일하거든.

아직은 아무도 우리 관계를 모르지만. 뭐, 알아도 너희 엄마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남자는 아니잖아."

"난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하루키는 모자수가 더욱 매력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하루키는 언제나 모자수의 부드러운 이마와

오뚝한 코, 단정하고 하얀 치아를 흠모했지만,

운영자 유니폼 차림의 모자수는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 같았다.

하루키는 모자수를 따라가고 싶었다.

작업실 창문들은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자 재봉사들은 검은 머리를

작업대 위로 푹 숙인 채 일하고 있을 것이다.

모자수는 유미의 가는 손가락들이

옷감 위로 날아갈 듯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유미는 일에 집중하면 한시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그럴 때 보면 유미는 몇 시간 동안이나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모자수는 그렇게 오랫동안 조용히 있는 자신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모자수는 파친코의 부산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는 소란스럽고 큰 파친코 사업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장로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하나님의 의도를 믿었지만,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유미 만나 봤어?" 모자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 번째 작업대에 . . . "

"유미 씨 말이지. 응, 만난 적 있어.

솜씨 좋은 재봉사지. 아주 우아한 사람이고.

그런 여자를 만나다니 너 운이 좋은 것 같다.

일은 어때? 돈 많이 벌었어? 하루키가 물었다.

"한번 들러라. 난 지금 파라다이스 세븐에서 일하고 있어.

내일 와.

유미를 만나서 영어 수업에 데려다줄 때를 제외하면

거의 밤낮 가리지 않고 세븐에 있거든."

"어찌될지 모르겠어. 집에 오면 동생을 돌봐야 하거든."

"네 동생이 좀 안 좋다는 이야기, 들었어."

"그래서 집에 온 거야. 엄마가 동생이 좀 이상해졌다고 해서.

말썽을 일으키거나 하는 건 아닌데

말수가 점점 적어진다고 엄마가 그러더라고.

의사들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의사들은 동생을 시설에 보내라고 해.

동생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그런 곳은 . . . "

하루키는 이를 앙다물고 씩씩거렸다.

"엄마가 동생을 그런 곳에 보낼 리는 절대 없지만 말이야.

다이스케는 아주 착한 아이야."

하루키는 엄마가 더 이상 동생을 돌보지 못할 때는

자신이 다이스케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하루키는 다이스케와 늙어가는 엄마를 잘 돌봐줄 사람인지

아닌지로 결혼할 상대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유미는 다이스케가 미국에 가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더라고.

다시 말하면, 누구나 미국에 가면 다 잘 될 거라는 얘기지.

미국은 일본과 다르다는 거야. 그곳에서는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모자수는 여자친구 유미가 짜증스러울 정도로

미국과 미국의 것을 편애한다고 생각했다.

형 노아 처럼 유미는 영어가 가장 중요한 언어이며,

미국이 가장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유미가 미국에는 더 훌륭한 의사들이 있대."

"그럴지도 모르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종종 생각했던 하루키는 미소를 지었다.

유미는 모자수와 만나기로 한 곳에 가다가 사장님의 장남을 알아봤다.

그 자리에서 되돌아가기가 어색해서 유미는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하루키, 알지?" 모자수가 유미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 고등학교 친구야. 지금은 범죄와 싸우고 있고!"

유미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학교에서 지금 집에 온 건가요, 하루키 씨?"

유미가 예의 바르고 얌전한 태도로 물었다.

하루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집에서 다이스게가 기다리고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모자수에게

내일 아침 파친코 게임장으로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영어 수업은 몇몇 부유한 숮불구이집이 낸 기부금으로

최근에 지어진 조선인 교회 사무실의 커다란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존 매리맨 선생님은 서양식 이름과는 달리

미국인 선교사들에게 갓난아기 때 입양된 조선인이었다.

존에게는 영어가 모국어였다.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좋은 음식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존은 다른 조선이나 일본인보다 키가 훨씬 컸다.

182센티미터가 넘는 키는 하늘에서 거인이라도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큰 키 때문에 존이 어디를 가나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존은 일본어와 조선어를 모두 유창하게 했지만 미국식 억양이 섞여 있었다.

존은 몸집뿐만아니라 태도도 의심할 여지없이 외국인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놀리기 좋아했고

뭔가 웃기는 일이라도 있으면 거리낌없이 크게 웃었다.

존의 인내심 많은 조선인 아내가 눈치가 빨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이 잘 몰라서 그런다고 변명을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존은 수많은 문화적 실수 때문에 훨씬 더 자주 곤경에 처했을 터였다.

존은 장로교회 목사치고는 너무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신념이나 지성으로 보자면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존의 어머니 신시아 메리맨은 자동차 타이어 회사의 상속녀였는데,

존을 프린스턴과 예일 신학대학에 보냈고,

존은 복음을 전하려고 아시아로 돌아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다.

그의 사랑스러운 피부색은 금색보다는 올리브섹에 가까웠고,

잉크처럼 검은 눈은 끊임없이 여인들의 혼을 빼앗아 그 곁에서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여자 유미는

모든 학생들이 존 목사라고 부르는 선생님을 존경했다.

유미에게 존은 창녀도, 술 주정뱅이도, 도둑도 아닌

더 나은 세상에서 온 조선인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유미의 엄마는 매춘부의 알코올 중독자로 돈이나 술을 얻으려고 남자들과 작고,

아버지는 기둥서방에 폭력적인 주정뱅이였는데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히기 일쑤였다.

유미는 자신의 이복 언니 세 명이 헛간의 가축들이나 다를 바 없는

성적으로 문란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남동생은 어렸을 때 죽었고,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유미는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 후로 직물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먹고살았지만 끝내 어린 여동생은 죽고 말았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후,

유미는 솜씨좋은 재봉사가 되었다.

오사카에서 최악인 곳에서 살았던

자신의 가족을 유미는 가족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엄마와 닮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돌아서서 다른 쪽으로 걸어가 벌였다.

미국 영화들을 보면서 유미는 언젠가 캘리포니아에서 살겠다고 결심했고,

할리우드의 재봉사가 될 계획을 세웠다.

유미는 북한과 남한으로 돌아간 조선인들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북한이든 남한이든 조선에는 그 어떤 애정도 느낄 수 없었다.

유미에게 조선인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끔찍한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벗어던질 수 없는 가난이나

수치스러운 가족에게 얽매이는 것과 같았다.

왜 그 곳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일본에 달라붙어 사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일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는 계모와 같았다.

그래서 유미는 로스앤젤레스에 가고 싶다는 꿈을 꿨다.

으스대며 원대한 꿈을 꾸는 모자수를 만나기 전까지

유미는 한 번도 남자와 자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자수에게 사로잡혀 버렸고

유미는 모자수와 함께 미국에 가고 싶었다.

멸시당하거나 무시당하지 않는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영어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 저녁에 있었고, 학생은 열다섯 명이었다.

모자수가 오기 전까지는 유미가 존 목사의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다.

모자수는 몇 년 동안 집에서 노아 형의 영어 퀴즈 상대가 되어 영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유리했지만 유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모자수가 자신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자신보다 돈을 더 잘 벌고,

자신에게 언제나 친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존 목사는 영어 수업을 시작할 때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모세." 존 목사가 선생님 같은 말투로 말했다.

"파친코는 어떠니?

오늘은 돈을 많이 벌었어?"

모자수가 웃었다. "네, 존 목사님.

오늘 돈을 많이 벌었어요. 내일은 더 많이 벌 거예요. 돈이 필요하세요?"

"아니, 돈은 필요 없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우리들 가운데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파친코의 돈은 제 돈이 아니에요.

목사님. 제 사장님은 부자이지만 전 아직 부자가 아니거든요.

언젠가는 부자가 될 거예요."

"넌 부자가 될 거야."

"네, 전 부자 남자가 될 거예요.

남자는 돈이 있어야 해요."

존은 모자수에게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그의 그런 맹목적인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싶었지만 유미를 향해 돌아섰다.

"유미, 오늘은 옷을 몇 벌이나 만들었니?"

"오늘은 조끼 두 개를 만들었어요."

존은 다른 학생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면서 내성적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썼다.

존은 조선인들이 말을 잘 하게 되기를 바랐다.

아무도 조선인들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조선인들이 가여워서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누렸던 아름답고 평온한 삶을 버리고 떠나왔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온기로 찬란했던 어린 시절부터

그는 항상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인들을 안타깝게 여겼다.

모세와 유미 같은 사람들은 조선의 가보지 못했다.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 간다는 이야기가 많이 떠돌지만

어찌 보면 조선인들은 모두 마음속에 고향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존의 부모님은 존 한 사람만 입양했고, 존은 형제자매를 모르고 살았다.

존은 부모님과 함께 있어서 언제나 행복했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느꼈다.

왜 그럴까? 존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입양아들도 당연히 있었지만

존은 자신의 운명이 모든 사람의 운명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선택'이라는 말은 항상 그의 어머니가 쓰던 말이었다.

"우리가 널 선택했어, 사랑하는 내 아들 존.

넌 어린 아이였을 때 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어.

고아원에 아가씨들은 네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라서

널 안아주는 걸 좋아했지."

영어 수업은 목사로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신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존은 학생들을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존은 영어 단어로 이야기하는 미국인들의 영어 말소리가 좋았다.

존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오사카의 가난한 조선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일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알려주고 싶었다.

존은 자기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처럼

일본에서 조선인 부모한테서 태어났다.

친부모는 집주인에게 존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존은 자기 나이도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양부모가 마틴 루터의 생일인 11월 10일을 존의 생일로 정해주었다.

존이 친부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그들이 이른 아침에 방세도 내지 않고

존만 남겨둔 채 떠났다는 것뿐이었다.

존의 양부모는 존에게, 집주인에게는 돈과 집이 있었지만

존의 친부모는 그런 게 없어서 존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떠난 게 틀림없다 고 말했다.

그렇게 존을 남기고 떠난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었다고

존의 양부모는 존이 친부모에 대해 물을 때마다 대답해줬다.

그럼에도 존은 친부모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나이 든 조선인 여자나 남자를 볼 때 마다 정말 그랬을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존은 이제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친부모에게 돈을 드리고 싶었다.

친부모를 만나서 배가 고플 때

먹을 음식과 몸을 따뜻하게 누일 집을 사드리고 싶었다.

존 목사가 뒤쪽에 앉은 두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탕을 너무 좋아한다고 놀리고 있을 때

모자수는 무릎으로 부드럽게 유미의 무릎을 건드렸다.

모자수는 허벅지가 길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유미의 예쁜 다리를 덮고 있는 치마에 닿을 수 있었다.

유미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살짝 성가시다는 듯 모자수의 등을 두드렸다.

존 목사가 두 자매 중 어린 쪽에게 비가 올 때 뭘 했는지 물어봤다.

모자수는 영어로 더듬거리며

'우산'이라는 영어 단어를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여학생의 이야기는 한 귀로 흘리며 유미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자수는 우수에 찬 유미의 검은 눈동자와

부드러운 옆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모세, 유미만 바라보면서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할 거야?"

존이 웃으면서 말했다. 유미가 얼굴을 붉혔다.

"딴짓하지 마." 유미가 모자수에게 일본어로 속삭였다.

"어쩔 수가 없어요. 존 목사님. 유미를 사랑하거든요."

모자수가 이렇게 말하자 존이 즐거워하며 박수를 쳤다.

유미는 공책만 내려다봤다.

"둘이 결혼할 거야?" 존 목사가 물었다.

유미는 그 질문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유미는 저와 결혼할 거예요. 자신 있어요." 모자수가 말했다.

"뭐?" 유미가 소리쳤다.

뒤쪽에 앉아 있는 여자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웃어댔다.

교실 중앙에 앉아 있던 남학생 두 명은 시끄럽게 환호하면서

책상을 두드렸다.

"이거 재미있구나. 모자수가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프러포즈는 결혼해달라고 하는 거야."

"유미, 넌 분명히 나와 결혼할 거야. 넌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아주 많이 사랑하니까.

우리는 결혼할 거야. 나한테 계획이 있어."

모자수가 영어로 차분하게 말했다.

유미가 눈동자를 굴렸다.

모자수는 유미가 미국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지만

자신은 오사카에 남아서

몇 년 내에 자신만의 파친코 게임장을 열고 싶었다.

부자가 돼서 엄마와 큰엄마, 큰아버지, 할머니에게

큰 집을 사드릴 작정이었다.

가족들이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면

성을 지어드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벌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족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고, 유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 그렇지, 유미야?"

모자수가 미소를 지으며 유미의 손을 잡았다.

학생들은 야구 경기라도 보는 것처럼 시끄럽게 박수를 치고 발을 굴렀다.

유미는 모자수의 행동에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였지만

화를 낼수는 없었다.

모자수에게는 절대 화를 낼 수 없었다.

모자수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그럼 결혼 계획을 세워야겠구나."

존이 말했다.

「 모자수의 사랑 (1961년 10월)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Die Liebe zwischen Mutter und Kind (Oktober 1961)" von Pachinko [Buch 2: Mutterland] "The Love of a Mother and Child (October 1961)" Pachinko [Book 2. Motherland] Pachinko [Book 2. "El amor de una madre y su hijo (octubre de 1961)", de Pachinko [Libro 2. Moth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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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2. 조국. 모자수의 사랑. 1961년 10월.

모자수는 도토야마의 가게 맞은편에 있는

단풍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그의 옆모습이 단풍나무 몸통에 살짝 가려져 보였다.

이곳은 유미와 만나기로 한 장소였다.

일주일에 삼 일, 저녁마다 모자수는

일이 끝나고 나서 유미를 만났다.

거의 일 년 동안 유미와 함께 교회에서 영어 수업을 들었고,

그 후에는 유미의 셋방으로 가서

유미가 간단하게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종종 유미와 사랑을 나누기도 했고,

그 후에는 파라다이스 세븐으로 돌아가 영업이 끝날 때까지 일하다가 직원 공동 숙소의 자기 방에서 잠들었다.

벌써 10월이었다.

초저녁에 불어오는 미풍에는 아직 여름의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나뭇잎들은 금색으로 변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모자수 위쪽으로 우뚝 솟은 나무는

흐릿한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거리는 금빛 레이스 같았다.

노동자들과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마중하러 집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토야마의 새 작업실이 있는 도로는 지난해에 확장 공사를 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강가의 폐가들로 옮겨갔다.

한때는 황량했던 곳에서 야채를 팔았던 야채 장수는

장사를 아주 잘해서 이제는 근처의 부지를 빌려서

시동생에게 마른 식품들을 파는 가게를 열어줄 수 있었다.

포르투갈 스타일의 스펀지케이크를 파는 새로운 빵 가게는

유혹적인 냄새를 거리에 풍기면서

매일 아침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오사카에서 유명세를 누렸다.

도토야마 씨의 재봉사들이 평소보다 훨씬 늦게까지 일해서

모자수는 숙제로 외워야 하는 영어 단어가 적힌 구겨진 종이를 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따위에 관심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은 영어 단어와

숙어를 상당히 잘 외우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모자수의 이런 암기 능력은 유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현금과 옷, 장신구 같은 선물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여자들과 달리

모자수의 여자친구는 공부에만 관심이 있었다.

유미는 모자수가 그들의 선생님인 존 메리맨 목사의 질문에

옳은 대답을 할 때 제일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유미는 미국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언젠가 미국에서 살려면 영어를 잘 배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서 그럭저럭 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어떤 남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모자수는 더 이상 단어를 읽을 수가 없었다.

모자수는 몇 걸음 앞쪽에 나타난 남자의 구두를 보고 고개를 슬쩍 들었다.

"네가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모자수? 진짜로?"

"어, 하루키!"

모자수가 소리쳤다. "정말 하루키 맞아?"

야 대체 이게 얼마만이야!"

모자수가 친구의 손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잡고 흔들었다.

"항상 네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물어 봤어.

엄마는 널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던데.

으스대는 게 아니라 도토야마 아주머니답게

조용하고도 예의 바르게 말이야.

세상에, 얘 좀 봐! 하루키, 네가 경찰관이 됐어!"

모자수가 하루키의 제복을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진짜 그럴싸해 보이는데. 범죄 한 건 저질러보고 싶은걸.

설마 날 잡아넣지는 않을 거지, 그렇지?"

하루키가 미소를 짓고는 오랜 친구 앞이라서 쑥스러운지 주먹으로 가볍게 모자수의 어깨를 툭 쳤다.

하루키는 모자수가 학교를 그만둔 후

모자수와 떨어져 지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하루키는 모자수에게 느끼는 너무나 깊은 정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다.

지난 세월 동안 또 다른 열병에 빠지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찰학교에서 남자답고 재미있는 고지라는 친구를 만났다.

하루키는 모자수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지를 멀리하려고 애썼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은 분명하게 선을 그어 구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경찰학교 근처에 사는 거 아니었어?"

하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주 휴가를 냈어."

"그건 그렇고, 대체 언제 경찰이 된 거야? 형사 말이야."

모자수가 공식적인 인사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숙이며 싱긋 웃었다.

"2년 됐어." 하루키는 단풍나무 아래에 있는 모자수를 알아차렸지만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모자수의 그림자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소년 시절에는 고통스러운 학교생활에서

자신을 구해준 모자수를 동경했다.

모자수가 고로 사장 밑에서 일하려고 학교를 그만뒀을 때

하루키는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모자수가 파친코 세계로 떠나고 난 후,

학교의 악귀 같은 못된 놈들의 괴롭힘이 극에 달했다.

하루키는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자유 시간에는 상냥한 미술 선생님의 안전한 교실에서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집도 언제나 똑같았다.

남동생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는 그 모습 그대로였고, 엄마는 눈이 나빠질 때까지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남편과 형제들이 모두 형사였던

미술 선생님은 하루키에게 경찰학교에 가라며 권했다.

재미있게도 선생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하루키는 규칙과 위계질서가 있는 경찰학교를 좋아했다.

하루키는 경찰학교에서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잘했다.

게다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하루키는 너무 좋았다.

"왜 이렇게 바깥에 서 있어?"

하루키가 물었다.

태양이 나지막하게 떠 있었고, 주황빛에 물든 붉은 석양이 내려앉았다.

"유미를 기다리고 있어. 유미가 네 엄마 가게에서 일하거든.

아직은 아무도 우리 관계를 모르지만. 뭐, 알아도 너희 엄마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남자는 아니잖아."

"난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하루키는 모자수가 더욱 매력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하루키는 언제나 모자수의 부드러운 이마와

오뚝한 코, 단정하고 하얀 치아를 흠모했지만,

운영자 유니폼 차림의 모자수는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 같았다.

하루키는 모자수를 따라가고 싶었다.

작업실 창문들은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자 재봉사들은 검은 머리를

작업대 위로 푹 숙인 채 일하고 있을 것이다.

모자수는 유미의 가는 손가락들이

옷감 위로 날아갈 듯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유미는 일에 집중하면 한시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그럴 때 보면 유미는 몇 시간 동안이나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모자수는 그렇게 오랫동안 조용히 있는 자신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모자수는 파친코의 부산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는 소란스럽고 큰 파친코 사업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장로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하나님의 의도를 믿었지만,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유미 만나 봤어?" 모자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 번째 작업대에 . . . "

"유미 씨 말이지. 응, 만난 적 있어.

솜씨 좋은 재봉사지. 아주 우아한 사람이고.

그런 여자를 만나다니 너 운이 좋은 것 같다.

일은 어때? 돈 많이 벌었어? 하루키가 물었다.

"한번 들러라. 난 지금 파라다이스 세븐에서 일하고 있어.

내일 와.

유미를 만나서 영어 수업에 데려다줄 때를 제외하면

거의 밤낮 가리지 않고 세븐에 있거든."

"어찌될지 모르겠어. 집에 오면 동생을 돌봐야 하거든."

"네 동생이 좀 안 좋다는 이야기, 들었어."

"그래서 집에 온 거야. 엄마가 동생이 좀 이상해졌다고 해서.

말썽을 일으키거나 하는 건 아닌데

말수가 점점 적어진다고 엄마가 그러더라고.

의사들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의사들은 동생을 시설에 보내라고 해.

동생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그런 곳은 . . . "

하루키는 이를 앙다물고 씩씩거렸다.

"엄마가 동생을 그런 곳에 보낼 리는 절대 없지만 말이야.

다이스케는 아주 착한 아이야."

하루키는 엄마가 더 이상 동생을 돌보지 못할 때는

자신이 다이스케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하루키는 다이스케와 늙어가는 엄마를 잘 돌봐줄 사람인지

아닌지로 결혼할 상대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유미는 다이스케가 미국에 가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더라고.

다시 말하면, 누구나 미국에 가면 다 잘 될 거라는 얘기지.

미국은 일본과 다르다는 거야. 그곳에서는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모자수는 여자친구 유미가 짜증스러울 정도로

미국과 미국의 것을 편애한다고 생각했다.

형 노아 처럼 유미는 영어가 가장 중요한 언어이며,

미국이 가장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유미가 미국에는 더 훌륭한 의사들이 있대."

"그럴지도 모르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종종 생각했던 하루키는 미소를 지었다.

유미는 모자수와 만나기로 한 곳에 가다가 사장님의 장남을 알아봤다.

그 자리에서 되돌아가기가 어색해서 유미는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하루키, 알지?" 모자수가 유미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 고등학교 친구야. 지금은 범죄와 싸우고 있고!"

유미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학교에서 지금 집에 온 건가요, 하루키 씨?"

유미가 예의 바르고 얌전한 태도로 물었다.

하루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집에서 다이스게가 기다리고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모자수에게

내일 아침 파친코 게임장으로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영어 수업은 몇몇 부유한 숮불구이집이 낸 기부금으로

최근에 지어진 조선인 교회 사무실의 커다란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존 매리맨 선생님은 서양식 이름과는 달리

미국인 선교사들에게 갓난아기 때 입양된 조선인이었다.

존에게는 영어가 모국어였다.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좋은 음식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존은 다른 조선이나 일본인보다 키가 훨씬 컸다.

182센티미터가 넘는 키는 하늘에서 거인이라도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큰 키 때문에 존이 어디를 가나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존은 일본어와 조선어를 모두 유창하게 했지만 미국식 억양이 섞여 있었다.

존은 몸집뿐만아니라 태도도 의심할 여지없이 외국인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놀리기 좋아했고

뭔가 웃기는 일이라도 있으면 거리낌없이 크게 웃었다.

존의 인내심 많은 조선인 아내가 눈치가 빨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이 잘 몰라서 그런다고 변명을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존은 수많은 문화적 실수 때문에 훨씬 더 자주 곤경에 처했을 터였다.

존은 장로교회 목사치고는 너무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신념이나 지성으로 보자면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Judging from his beliefs and his intellect, he was a good person who was blameless.

존의 어머니 신시아 메리맨은 자동차 타이어 회사의 상속녀였는데,

존을 프린스턴과 예일 신학대학에 보냈고,

존은 복음을 전하려고 아시아로 돌아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다.

그의 사랑스러운 피부색은 금색보다는 올리브섹에 가까웠고,

잉크처럼 검은 눈은 끊임없이 여인들의 혼을 빼앗아 그 곁에서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여자 유미는

모든 학생들이 존 목사라고 부르는 선생님을 존경했다. All the students respected the teacher who they called Pastor John.

유미에게 존은 창녀도, 술 주정뱅이도, 도둑도 아닌

더 나은 세상에서 온 조선인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유미의 엄마는 매춘부의 알코올 중독자로 돈이나 술을 얻으려고 남자들과 작고,

아버지는 기둥서방에 폭력적인 주정뱅이였는데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히기 일쑤였다.

유미는 자신의 이복 언니 세 명이 헛간의 가축들이나 다를 바 없는

성적으로 문란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남동생은 어렸을 때 죽었고,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유미는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 후로 직물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먹고살았지만 끝내 어린 여동생은 죽고 말았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후,

유미는 솜씨좋은 재봉사가 되었다.

오사카에서 최악인 곳에서 살았던

자신의 가족을 유미는 가족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엄마와 닮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돌아서서 다른 쪽으로 걸어가 벌였다.

미국 영화들을 보면서 유미는 언젠가 캘리포니아에서 살겠다고 결심했고,

할리우드의 재봉사가 될 계획을 세웠다.

유미는 북한과 남한으로 돌아간 조선인들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북한이든 남한이든 조선에는 그 어떤 애정도 느낄 수 없었다.

유미에게 조선인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끔찍한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For Yumi, being a Korean was another terrible hell.

그것은 벗어던질 수 없는 가난이나

수치스러운 가족에게 얽매이는 것과 같았다.

왜 그 곳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일본에 달라붙어 사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일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는 계모와 같았다.

그래서 유미는 로스앤젤레스에 가고 싶다는 꿈을 꿨다.

으스대며 원대한 꿈을 꾸는 모자수를 만나기 전까지

유미는 한 번도 남자와 자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자수에게 사로잡혀 버렸고

유미는 모자수와 함께 미국에 가고 싶었다.

멸시당하거나 무시당하지 않는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영어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 저녁에 있었고, 학생은 열다섯 명이었다.

모자수가 오기 전까지는 유미가 존 목사의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다.

모자수는 몇 년 동안 집에서 노아 형의 영어 퀴즈 상대가 되어 영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유리했지만 유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모자수가 자신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자신보다 돈을 더 잘 벌고,

자신에게 언제나 친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존 목사는 영어 수업을 시작할 때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모세." 존 목사가 선생님 같은 말투로 말했다.

"파친코는 어떠니?

오늘은 돈을 많이 벌었어?"

모자수가 웃었다. "네, 존 목사님.

오늘 돈을 많이 벌었어요. 내일은 더 많이 벌 거예요. 돈이 필요하세요?"

"아니, 돈은 필요 없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우리들 가운데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파친코의 돈은 제 돈이 아니에요.

목사님. 제 사장님은 부자이지만 전 아직 부자가 아니거든요.

언젠가는 부자가 될 거예요."

"넌 부자가 될 거야."

"네, 전 부자 남자가 될 거예요.

남자는 돈이 있어야 해요."

존은 모자수에게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그의 그런 맹목적인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싶었지만 유미를 향해 돌아섰다.

"유미, 오늘은 옷을 몇 벌이나 만들었니?"

"오늘은 조끼 두 개를 만들었어요."

존은 다른 학생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면서 내성적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썼다.

존은 조선인들이 말을 잘 하게 되기를 바랐다.

아무도 조선인들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조선인들이 가여워서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누렸던 아름답고 평온한 삶을 버리고 떠나왔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온기로 찬란했던 어린 시절부터 From childhood, when I was radiant with the warmth of my loving parents

그는 항상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인들을 안타깝게 여겼다.

모세와 유미 같은 사람들은 조선의 가보지 못했다.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 간다는 이야기가 많이 떠돌지만

어찌 보면 조선인들은 모두 마음속에 고향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존의 부모님은 존 한 사람만 입양했고, 존은 형제자매를 모르고 살았다.

존은 부모님과 함께 있어서 언제나 행복했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느꼈다.

왜 그럴까? 존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입양아들도 당연히 있었지만

존은 자신의 운명이 모든 사람의 운명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선택'이라는 말은 항상 그의 어머니가 쓰던 말이었다.

"우리가 널 선택했어, 사랑하는 내 아들 존.

넌 어린 아이였을 때 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어.

고아원에 아가씨들은 네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라서

널 안아주는 걸 좋아했지."

영어 수업은 목사로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신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존은 학생들을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존은 영어 단어로 이야기하는 미국인들의 영어 말소리가 좋았다.

존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오사카의 가난한 조선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일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알려주고 싶었다.

존은 자기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처럼

일본에서 조선인 부모한테서 태어났다.

친부모는 집주인에게 존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존은 자기 나이도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양부모가 마틴 루터의 생일인 11월 10일을 존의 생일로 정해주었다.

존이 친부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그들이 이른 아침에 방세도 내지 않고

존만 남겨둔 채 떠났다는 것뿐이었다.

존의 양부모는 존에게, 집주인에게는 돈과 집이 있었지만

존의 친부모는 그런 게 없어서 존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떠난 게 틀림없다 고 말했다.

그렇게 존을 남기고 떠난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었다고

존의 양부모는 존이 친부모에 대해 물을 때마다 대답해줬다.

그럼에도 존은 친부모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나이 든 조선인 여자나 남자를 볼 때 마다 정말 그랬을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존은 이제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친부모에게 돈을 드리고 싶었다.

친부모를 만나서 배가 고플 때

먹을 음식과 몸을 따뜻하게 누일 집을 사드리고 싶었다.

존 목사가 뒤쪽에 앉은 두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탕을 너무 좋아한다고 놀리고 있을 때

모자수는 무릎으로 부드럽게 유미의 무릎을 건드렸다.

모자수는 허벅지가 길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유미의 예쁜 다리를 덮고 있는 치마에 닿을 수 있었다.

유미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살짝 성가시다는 듯 모자수의 등을 두드렸다.

존 목사가 두 자매 중 어린 쪽에게 비가 올 때 뭘 했는지 물어봤다.

모자수는 영어로 더듬거리며

'우산'이라는 영어 단어를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여학생의 이야기는 한 귀로 흘리며 유미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자수는 우수에 찬 유미의 검은 눈동자와

부드러운 옆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모세, 유미만 바라보면서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할 거야?"

존이 웃으면서 말했다. 유미가 얼굴을 붉혔다.

"딴짓하지 마." 유미가 모자수에게 일본어로 속삭였다. "Don't do anything else." Yumi whispered to the Mozasu in Japanese.

"어쩔 수가 없어요. 존 목사님. 유미를 사랑하거든요."

모자수가 이렇게 말하자 존이 즐거워하며 박수를 쳤다.

유미는 공책만 내려다봤다.

"둘이 결혼할 거야?" 존 목사가 물었다.

유미는 그 질문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유미는 저와 결혼할 거예요. 자신 있어요." 모자수가 말했다.

"뭐?" 유미가 소리쳤다.

뒤쪽에 앉아 있는 여자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웃어댔다.

교실 중앙에 앉아 있던 남학생 두 명은 시끄럽게 환호하면서

책상을 두드렸다.

"이거 재미있구나. 모자수가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프러포즈는 결혼해달라고 하는 거야."

"유미, 넌 분명히 나와 결혼할 거야. 넌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아주 많이 사랑하니까.

우리는 결혼할 거야. 나한테 계획이 있어."

모자수가 영어로 차분하게 말했다.

유미가 눈동자를 굴렸다.

모자수는 유미가 미국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지만

자신은 오사카에 남아서

몇 년 내에 자신만의 파친코 게임장을 열고 싶었다.

부자가 돼서 엄마와 큰엄마, 큰아버지, 할머니에게

큰 집을 사드릴 작정이었다.

가족들이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면

성을 지어드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벌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족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고, 유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 그렇지, 유미야?"

모자수가 미소를 지으며 유미의 손을 잡았다.

학생들은 야구 경기라도 보는 것처럼 시끄럽게 박수를 치고 발을 굴렀다.

유미는 모자수의 행동에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였지만

화를 낼수는 없었다.

모자수에게는 절대 화를 낼 수 없었다.

모자수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그럼 결혼 계획을 세워야겠구나."

존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