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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경희의 꿈」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경희의 꿈」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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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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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경희의 꿈

여름이 빨리 찾아왔다.

오사카의 태양은 고향에서보다 훨씬 더 뜨거웠고, 습도는 지독하게 높았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둔해진 선자의

움직임이 날씨로 인해 더욱 느려졌다.

하지만 선자의 일상은 편안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선자와 경희는

그들 자신과 밤늦게야 들어오는 가장들을 돌보기만 하면 되었다.

이삭은 점점 늘어나는 신도들을 보살피느라 교회에서

밤낮으로 오랜 시간을 일했다.

요셉은 낮에는 비스킷 공장을 관리하고,

밤에는 이카이노의 공장에서 기계를 수리해 돈을 더 벌었다.

네 사람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는 것은

하숙집을 관리하는 일보다 훨씬 덜 힘들었다.

선자는 부산에서 살던 때보다 훨씬 사치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느꼈다.

선자는 경희를 언니라고 부르며 그녀와 하루를 보내는 게 좋았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두 사람은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런 관계는 그토록 과한 행복을 기대하지 않았던

두 사람에게는 얘기치 못한 선물이었다.

경희는 더 이상 집에서 하루 종일 외롭게 지내지 않아도 되었고, 요셉은

이삭이 하숙직 딸을 아내로 데려와서 고마워했다.

요셉과 경희는 선자가 임신한 이유를 자기들 나름대로 합리화해서

오래전에 결론을 내렸다.

선자는 아무 잘못도 없이 해코지를 당했고, 이삭은 천성적으로 희생을

자처하는 성격이라 그런 선자를 구해 주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선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선자도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경희와 요셉은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경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성경 속 아브라함의 아내 살아도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경희는 하나님이 자신을 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독실한 경희는 교회에서 가난한 어머니들을 도우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꾸려 남편이 주는 돈을 아껴 저축도 했다.

요셉의 아버지가 준 돈을 가지고 이카이노에 집을 사자고 한 사람도 경희였다.

요셉은 그게 좋은 생각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왜 집주인에게 방세를 지불해야 하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때 경희는 요셉을 설득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희가 예산을 신중하게 짜서 관리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경지를 모두 잃어가던 양가 부모님에게 돈을 보낼 수 있었다.

경희는 쓰루하시 역 근처의 시장에 김치와 장아찌를 파는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었다.

선자가 오면서 경희에게 자기 계획을 들어줄 사람이 생긴 것이었다.

요셉은 경희가 돈을 벌려고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 돌아갔을 때 예쁜 아내가 저녁을 준비해 놓고

활기차게 자신을 맞이해주기를 바랐고,

그게 바로 남자가 열심히 일하는 이상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경희와 선자는 매일 새 끼를 준비했다.

아침에는 전통적으로 따뜻한 국을 준비했고, 점심엔 도시락을 싸주었으며

저녁엔 가급적 따뜻한 음식을 준비했다.

냉장고도 없고 평양처럼 기온이 서늘하지도 않아서 경희는 음식을 버리지 않으려고 자주 요리를 해야 했다.

아직 초여름인데도 이례적으로 따뜻한

날이 계속되었다.

보통 주부라면 이런 날씨에 집 뒤쪽의 화덕에서 국을 끓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질색할 법한 일인데

경희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장보기와 저녁거리로 뭘 준비할지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이카이노에 사는 대부분의 조선인 여성들과는 달리

경희는 품위 있는 일본어를 사용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인들과 흥정도 할 수 있었다.

경희와 선자가 정육점에 들어서자 키가 크고 젊은 정육점 주인 다나카가

"어서 오세요!"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맞이했다.

정육점 주인과 직원인 고지는

예쁜 조선인과 그녀의 임신한 동서를 보고 반가워했다.

두 사람은 사실 큰 손님은 아니었다.

돈을 많이 쓰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대신 꾸준히 찾아왔다.

8대손인 다나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가게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가끔씩 큰돈을 쓰는 손님보다

매일 꾸준히 조금씩 돈을 쓰는 손님이 더 귀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부들은 이 사업의 주춧돌이얻고,

조선인 여자들은 일본인들처럼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야 가게 주인들이 좋아하는 손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조부가 조선인 이거나 부라쿠민이었다는 소문도 있는

이 젊은 정육점 주인은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라는

부모님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분명히 시대는 바뀌었지만 죽은 짐승을 만져야 하는 도축업은

아직도 수치스러운 직업이었다.

중매쟁이가 그에게 맞선을 잡아주기 어려워하는 주된 이유도 그것이었다.

이런 탓에 다나카는 외국인들에게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들은 경희에게 추파를 던지면서도

선자는 무시하기 일쑤였다. 선자도 이제는 경희와 함께 다닐 때마다

유령이라도 된 것 같은 신세가 되는 것에 익숙해졌다.

경희는 미니스커트에 빳빳한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어서 말쑥해 보였고,

섬세한 이목구비 탓에 학교 선생이나 점잖은 상인의 아내처럼 보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소에서 환영을 받았다.

경희가 말을 하기 전에는 모두가 경희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나중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다들 경희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자는 자신이

못 봐줄 정도로 못생긴 데다 옷차림이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사카에서는 자신이 못생긴 여자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낡아서 해진 한복은 그런 차이를 확연히 보여주는

피할 수 없는 증표나 마찬가지였다.

선자는 서양 옷이나 몸빼 바지를 입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새 옷에 돈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경희는 선자에게 출산하고 나면 세 옷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경희가 남자들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고,

선자는 가게 구석으로 물러났다.

"오늘은 뭘 도와드릴까요, 보쿠 씨?" 다나카가 물었다.

두달이나 지났음에도 선자는 아직도 남편의 성을 일본어 발음으로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식민 정부의 강요로 조선인들은 이름을 적어도 두세 개는 가지고 있었다.

고향에서 선자는 자신의 신분증에 적힌 일본 이름,

그러니까 가네다 준코라는 이름을 쓸 일이 거의 없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공적인 업무를 볼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선자는 김씨 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라 가는 일본에서

선자의 이름은 백선자였고, 보쿠 선자로 번역되었다.

신분증에 적혀 있던 일본 이름도 반도 준코로 바뀌었다.

조선인들이 일본식 성을 골라야 했을 때 이삭의 아버지는 조선어로

반대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반도라는 성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의 창씨개명 정책을 조롱했던 것이다.

경희는 그 모든 이름들이 머지않아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확신했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할 건가요, 보쿠 씨?" 젊은 정육점 주인이 물었다.

"정강이뼈와 고기를 조금 주실래요? 국을 끓이려고요."

경희가 라디오 아나운서 같은 일본어로 말했다.

경희는 억양을 바꾸려고 일본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청취했다.

"바로 대령하죠." 다나카가 조선인들을 위해서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소뼈 더미에서 커다란 정강이뼈 세 조각과 소꼬리를 꺼냈다.

일본인들은 뼈로 요리를 하지 않았다.

다나카는 국거리용 고기 약간도 포장했다.

"이게 다인가요?" 경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36센입니다. 경희가 동전 지갑을 열었다.

요셉의 월급 봉투를 받을 때까지는 아직 8일이 더 남아 있었고,

그때까지는 2엔 60센으로 버텨야 했다.

"죄송하지만 정강이뼈만 계산하면 얼마죠?"

"10센입니다."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했네요. 오늘은 뼈만 사고, 고기는 다음번에 꼭 살께요."

"네, 그러세요. 다나카가 고기를 다시 진열장에 넣었다.

이처럼 손님이 돈을 충분히 가지고 오지 않을 때가 가끔 있지만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조선인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다.

물론 다나카도 외상은 거절했다.

"국을 끓이려고요?" 다나카는 저렇게 우아한 아내가 자기 식사를 걱정해주고

적은 수입으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간다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

장남인 다나카는 간절하게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도축업자인데다 어머니와 함께 살아서 쉽지 않았다. "어떤 국인데요?"

"설렁탕이요." 경희는 그가 설렁탕이 무엇인지 알까 생각하면서

다나카를 쳐다봤다.

"어떻게 만드는데요?" 다나카가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계산대에 기댄 채 경희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다나카는 경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심지어 치아마저 예뻤다.

"먼저 뼈를 차가운 물에 조심스럽게 씻어야 해요.

그러고 나서 끓인 다음 그 물을 버리죠. 그 물에는 국에 넣기 싫은 피와

찌꺼기가 가득하거든요.

다시 한 번 깨끗하고 차가운 물로 뼈를 끓이는데

국물이 두부처럼 하얗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끓여야 해요.

그러고는 무와 파를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죠.

그럼 아주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국이 완성돼요."

"고기를 넣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흰쌀과 국수를 넣으면 더 좋죠!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경희가 웃으면서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드러난 치아를 가렸다.

남자들이 경희의 농담을 알아듣고 웃었다.

쌀은 그들도 사먹기 힘들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다.

"그거랑 김치를 같이 먹나요?" 다나카가 물었다.

경희와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직원인 고지와 경희의 동서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다나카는 경희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다고 느꼈다.

"김치는 좀 맵지만 구운 닭고기나

돼지고기와 같이 먹으면 괜찮은 것 같아요."

"김치는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는 맛있는 반찬이에요.

다음번에는 김치를 좀 가져다줄게요."

다나카는 뼈를 포장한 종이를 다시 펼쳐서

방금 전에 진열장에 다시 넣었던 고기의 반쪽을 넣었다.

"많지 않지만 아기에게는 충분할 거예요."

다나카가 선자에게 미소를 지었고, 선자는 정육점 주인이 자신을 알아봐주자 깜짝 놀랐다.

황국의 건실한 일꾼을 키우려면

엄마가 잘 먹어야 하죠."

"공짜로 받을 수는 없어요." 경희가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경희는 다나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은 정말로 고기를 살 수가 없었다.

선자도 두 사람의 대화에 당혹스러웠다.

두 사람은 김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게 오늘 첫 거래예요. 나눠 가지면 저한테도 복이 올 거예요."

다나카는 매력적인 여자에게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줄 수 있는 남자라도 된 양 우쭐해하며 말했다.

경희는 계산 대 위에 놓인 흠 하나 없이 깨끗한 동전 접시에

10센을 올려놓고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가게 바깥에서 선자가 경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주인이 고기 값을 받지 않았어."

고기를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모르겠네."

"그 사람은 언니가 좋아가지고 선물로 준 거네예."

선자는 고향의 식모 동희가 된 것 처럼 깔깔거렸다.

동희는 틈 날 때마다 남자들에 대한 농담을 하곤 했다.

엄마 생각은 자주 했지만 고향에서 식모로 일하는 언니들을 떠올린 것은 정말 한참 만이었다.

"이제부터 다나카 씨를 언니 남자친구라고 불러야겠네예."

경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장난스럽게 선자를 찰싹 때렸다.

"네 아이에게 주는 거랬어. 네 아이가 커서

이 나라의 훌륭한 일꾼이 될 거니까." 경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게다가 다나카 씨는 내가 조선인이란 걸 알아."

"남자들이 언제 그런 거에 신경이나 쓰는가예?

옆집 김씨 아지매 한테 들었는데 길 끝에 사는 참한 일본 여자가 집에서

술을 만드는 조선 남자하고 결혼했다 카데예. 그 사람들 아이들은 혼혈이고예!"

선자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돼지를 키우는 김 씨 아주머니의 이야기 중에

충격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요셉은 경희와 선자가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김 씨 아주머니와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양조업을 하는 일본 여자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고 했다.

그여자의 남편이 밀수로 감옥에 갇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언니가 저 근사한 정육점 주인하고 도망치면 많이 보고 싶을 낍니더."

선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미혼이래도 저런 남자는 고르지 않을 거야.

웃음이 너무 많거든." 경희가 선자에게 윙크를 했다.

"나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주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걱정해 주는 내 괴짜 남편이 좋아.

이만하고 서두르자. 이제 채소를 사야해.

그래서 고기를 사지 않은 거야. 구워 먹을 감자를 좀 찾아봐야겠어.

점심으로 감자를 싸주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언니 . . ." "왜?"

"저희가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어예.

채소 값에 연료값, 목욕탕 요금까지 . . . .

제 평생 먹고사는 데에 이래 돈이 많이 드는 건 처음 봤어예.

고향에서는 텃밭이 있어서 채소를 돈주고 사먹은 적이 없었거든요.

생선은 또 어떻고예! 엄마가 생선 값이 이래 비싼 줄 알았으며

다시는 안먹었을 겁니더.

고향에서도 절약하면서 살기는 했지만 우리가 그런 물건들을 얼마나 쉽게 얻었는지 몰랐어예.

손님들을 갖다주는 생선을 공짜로 먹었는데

여기서는 사과 값이 부산의 소갈비보다 더 비싸잖아예.

저희 엄마도 언니처럼 돈을 신중하게 쓰는 사람이었지만

언니처럼 절약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는 없었어예.

이삭 씨하고 저는 먹는 것만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돈을 들이고 싶어예."

사실 요셉 부분은 동생 부부에게 한 푼도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삭과 선자는 그 뜻을 따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로 나가서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이사를 나가면

경희의 기분이 크게 상할 게 분명했다.

"동생은 고향에서 훨씬 배부르게 잘 먹었을 거야." 경희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언지예, 그런 말이 아니라예. 그 엄청난 생활비에 보탬이 못 되는 것 때문에

그냥 저희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예."

"요셉과 나는 두 사람한테서 돈을 받을 수 없어.

동생은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돈을 모아야 해. 아이 옷과 기저귀도 사야하고,

언젠가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서 신사로 만들어야지.

그러면 멋질 것 같지 않아? 아이가 도련님처럼 학교를 좋아하고,

큰아버지처럼 책을 멀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와 함께 살 거라고 생각하자 경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는 그동안 드렸던 기도의 응답인 것만 같았다.

"엄마가 지난번 편지에 3엔을 넣어 보내줘어예. 그거 말고도 저희가 가져온 돈도 좀 있고예.

저희 식구 둘, 아니 쪼매 있으면 셋이 될 텐데

그러면 언니가 그래 많이 드는 생활비 때문에 걱정하거나 김치를 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예?

저희 식구 둘, 아니 쪼매 있으면 셋이 될 텐데

저희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언니가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예."

"선자야, 너 지금 나한테 너무 무례한 거 같은데.

난 너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야.

우리가 잘 꾸려나갈 수 있어.

게다가 네가 있어야 돈을 벌어 보탬이 되고 싶다는 내 소망도 이야기할 수 있어.

네가 없으면 쓰루하시 역에서 김치 파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경희가 웃었다. "넌 착한 동생으로 있어주면 돼.

내가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성도 사고

네 아들을 도쿄의 의대에 보내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줘."

"아지매들이 다른 여자가 만든 김치를 사려고 할까예?"

"안 될 게 뭐 있니!" 내가 만든 김치가 맛이 없을 거 같아?

우리 가족은 평양에서 제일 맛있는 장아찌를 만들었어."

경희가 턱을 들어 올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난 진짜 뛰어난 김치 아줌마가 될 거야. 내가 절인 배추는 깔끔하고 맛있을 거라고."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지금은 와 못 하는 데예?

배추와 무를 살 돈은 충분히 있잖아예.

언니 꿈을 이룰 수 있게 저도 도울 수 있고예.

우리가 많이 팔면 제가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라예.

얼라가 태어나도 집에서 돌볼 수 있잖아예."

"그래, 우리 둘이라면 진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요셉이 날 죽이려고 들걸.

요셉은 가정 주부가 밖에서 일하는 걸 싫어해. 절대 안 된다고 할 거야.

내가 일하러 나가는 것도 싫어할걸."

"그치만 저는 부모님하고 같이 일을 하면서 자랐는데예.

아주버님도 그걸 아시잖아예.

저희 엄마는 손님들 시중을 들고 요리를 하셨지예. 저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 . . ."

"요셉은 구세대 남자야." 경희가 한숨을 쉬었다.

"난 아주 좋은 남자와 결혼 했어.

내 잘못이긴 하지만, 아이가 있었다면 이렇게 따분해 하지 않았을 거야.

난 그냥 빈둥거리기 싫어. 이건 요셉의 잘못이 아니야.

요셉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어.

옛날이라면 아이를 못 낳는 나 같은 여자는 버림받았을걸."

경희는 어릴 때 들었던 애 못 낳는 여자들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그런 여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난 남편 말을 따라야 해. 남편은 항상 날 잘 돌봐주니까."

선자는 그 말에 수긍할 수도,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어서

그냥 그 말이 허공에 맴돌도록 내버려뒀다.

사실 요셉은 경희 같은 양반가 출신의 여자는

집 밖에서 일을 해서는 안 되지만 선자는 평범한 서민의 딸이니

시장에서 일을 해도 상관없다 고 말했다

그런 차별에도 선자는 마음 상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경희가 여러모로 보아 신분이 높은 사람이 분명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자는 경희와 함께 지내며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 경희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김치 파는 아주머니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훨씬 더 행복해하리라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선자가 그 문제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봤자 아주버님은

그 이야기를 '어리석은 여자들의 잡담'으로 치부하고 말 테니까.

선자는 다소 우울해하는 경희의 기분을 바꿔주려고

밝은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배추와 무를 사러 걸음을 옮겼다.


「경희의 꿈」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Kyung Hees Traum" Pachinko [Buch 1. Heimatstadt] "Kyung Hee's Dream" Pachinko Pachinko [Book 1. Hometown] "El sueño de Kyung Hee" Pachinko [Libro 1. Ciudad natal] "Мечта Кён Хи" Пачинко [Книга 1. Родной горо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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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경희의 꿈

여름이 빨리 찾아왔다.

오사카의 태양은 고향에서보다 훨씬 더 뜨거웠고, 습도는 지독하게 높았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둔해진 선자의

움직임이 날씨로 인해 더욱 느려졌다.

하지만 선자의 일상은 편안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선자와 경희는

그들 자신과 밤늦게야 들어오는 가장들을 돌보기만 하면 되었다.

이삭은 점점 늘어나는 신도들을 보살피느라 교회에서

밤낮으로 오랜 시간을 일했다.

요셉은 낮에는 비스킷 공장을 관리하고,

밤에는 이카이노의 공장에서 기계를 수리해 돈을 더 벌었다.

네 사람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는 것은

하숙집을 관리하는 일보다 훨씬 덜 힘들었다.

선자는 부산에서 살던 때보다 훨씬 사치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느꼈다.

선자는 경희를 언니라고 부르며 그녀와 하루를 보내는 게 좋았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두 사람은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런 관계는 그토록 과한 행복을 기대하지 않았던

두 사람에게는 얘기치 못한 선물이었다.

경희는 더 이상 집에서 하루 종일 외롭게 지내지 않아도 되었고, 요셉은

이삭이 하숙직 딸을 아내로 데려와서 고마워했다.

요셉과 경희는 선자가 임신한 이유를 자기들 나름대로 합리화해서 Joseph and Kyung-hee rationalized the reason why the Seon-ja was pregnant in their own way.

오래전에 결론을 내렸다.

선자는 아무 잘못도 없이 해코지를 당했고, 이삭은 천성적으로 희생을

자처하는 성격이라 그런 선자를 구해 주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선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선자도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경희와 요셉은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경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성경 속 아브라함의 아내 살아도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경희는 하나님이 자신을 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독실한 경희는 교회에서 가난한 어머니들을 도우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꾸려 남편이 주는 돈을 아껴 저축도 했다.

요셉의 아버지가 준 돈을 가지고 이카이노에 집을 사자고 한 사람도 경희였다.

요셉은 그게 좋은 생각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왜 집주인에게 방세를 지불해야 하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때 경희는 요셉을 설득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희가 예산을 신중하게 짜서 관리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경지를 모두 잃어가던 양가 부모님에게 돈을 보낼 수 있었다.

경희는 쓰루하시 역 근처의 시장에 김치와 장아찌를 파는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었다.

선자가 오면서 경희에게 자기 계획을 들어줄 사람이 생긴 것이었다.

요셉은 경희가 돈을 벌려고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 돌아갔을 때 예쁜 아내가 저녁을 준비해 놓고

활기차게 자신을 맞이해주기를 바랐고,

그게 바로 남자가 열심히 일하는 이상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경희와 선자는 매일 새 끼를 준비했다.

아침에는 전통적으로 따뜻한 국을 준비했고, 점심엔 도시락을 싸주었으며

저녁엔 가급적 따뜻한 음식을 준비했다.

냉장고도 없고 평양처럼 기온이 서늘하지도 않아서 경희는 음식을 버리지 않으려고 자주 요리를 해야 했다.

아직 초여름인데도 이례적으로 따뜻한

날이 계속되었다.

보통 주부라면 이런 날씨에 집 뒤쪽의 화덕에서 국을 끓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질색할 법한 일인데

경희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장보기와 저녁거리로 뭘 준비할지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이카이노에 사는 대부분의 조선인 여성들과는 달리

경희는 품위 있는 일본어를 사용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인들과 흥정도 할 수 있었다.

경희와 선자가 정육점에 들어서자 키가 크고 젊은 정육점 주인 다나카가

"어서 오세요!"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맞이했다.

정육점 주인과 직원인 고지는

예쁜 조선인과 그녀의 임신한 동서를 보고 반가워했다. It was nice to see a pretty Korean and her pregnant sister-in-law.

두 사람은 사실 큰 손님은 아니었다.

돈을 많이 쓰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대신 꾸준히 찾아왔다.

8대손인 다나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가게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가끔씩 큰돈을 쓰는 손님보다

매일 꾸준히 조금씩 돈을 쓰는 손님이 더 귀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부들은 이 사업의 주춧돌이얻고,

조선인 여자들은 일본인들처럼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야 가게 주인들이 좋아하는 손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조부가 조선인 이거나 부라쿠민이었다는 소문도 있는

이 젊은 정육점 주인은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라는

부모님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분명히 시대는 바뀌었지만 죽은 짐승을 만져야 하는 도축업은

아직도 수치스러운 직업이었다.

중매쟁이가 그에게 맞선을 잡아주기 어려워하는 주된 이유도 그것이었다.

이런 탓에 다나카는 외국인들에게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들은 경희에게 추파를 던지면서도

선자는 무시하기 일쑤였다. 선자도 이제는 경희와 함께 다닐 때마다

유령이라도 된 것 같은 신세가 되는 것에 익숙해졌다. I got used to being in a state of being like a ghost.

경희는 미니스커트에 빳빳한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어서 말쑥해 보였고,

섬세한 이목구비 탓에 학교 선생이나 점잖은 상인의 아내처럼 보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소에서 환영을 받았다.

경희가 말을 하기 전에는 모두가 경희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나중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다들 경희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자는 자신이

못 봐줄 정도로 못생긴 데다 옷차림이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사카에서는 자신이 못생긴 여자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낡아서 해진 한복은 그런 차이를 확연히 보여주는

피할 수 없는 증표나 마찬가지였다.

선자는 서양 옷이나 몸빼 바지를 입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새 옷에 돈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경희는 선자에게 출산하고 나면 세 옷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경희가 남자들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고,

선자는 가게 구석으로 물러났다.

"오늘은 뭘 도와드릴까요, 보쿠 씨?" 다나카가 물었다.

두달이나 지났음에도 선자는 아직도 남편의 성을 일본어 발음으로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식민 정부의 강요로 조선인들은 이름을 적어도 두세 개는 가지고 있었다.

고향에서 선자는 자신의 신분증에 적힌 일본 이름, In his hometown, the Seonja is the Japanese name written on his ID,

그러니까 가네다 준코라는 이름을 쓸 일이 거의 없었다. So, I hardly ever used the name Junko Kaneda.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공적인 업무를 볼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선자는 김씨 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라 가는 일본에서

선자의 이름은 백선자였고, 보쿠 선자로 번역되었다.

신분증에 적혀 있던 일본 이름도 반도 준코로 바뀌었다.

조선인들이 일본식 성을 골라야 했을 때 이삭의 아버지는 조선어로

반대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반도라는 성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의 창씨개명 정책을 조롱했던 것이다.

경희는 그 모든 이름들이 머지않아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확신했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할 건가요, 보쿠 씨?" 젊은 정육점 주인이 물었다.

"정강이뼈와 고기를 조금 주실래요? 국을 끓이려고요."

경희가 라디오 아나운서 같은 일본어로 말했다.

경희는 억양을 바꾸려고 일본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청취했다.

"바로 대령하죠." 다나카가 조선인들을 위해서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That's right, Colonel Jo Word Ga, Beef bones in an icebox for Koreans

소뼈 더미에서 커다란 정강이뼈 세 조각과 소꼬리를 꺼냈다.

일본인들은 뼈로 요리를 하지 않았다.

다나카는 국거리용 고기 약간도 포장했다.

"이게 다인가요?" 경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36센입니다. 경희가 동전 지갑을 열었다.

요셉의 월급 봉투를 받을 때까지는 아직 8일이 더 남아 있었고,

그때까지는 2엔 60센으로 버텨야 했다.

"죄송하지만 정강이뼈만 계산하면 얼마죠?"

"10센입니다."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했네요. 오늘은 뼈만 사고, 고기는 다음번에 꼭 살께요."

"네, 그러세요. 다나카가 고기를 다시 진열장에 넣었다.

이처럼 손님이 돈을 충분히 가지고 오지 않을 때가 가끔 있지만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조선인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다.

물론 다나카도 외상은 거절했다.

"국을 끓이려고요?" 다나카는 저렇게 우아한 아내가 자기 식사를 걱정해주고

적은 수입으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간다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

장남인 다나카는 간절하게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도축업자인데다 어머니와 함께 살아서 쉽지 않았다. "어떤 국인데요?"

"설렁탕이요." 경희는 그가 설렁탕이 무엇인지 알까 생각하면서

다나카를 쳐다봤다.

"어떻게 만드는데요?" 다나카가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계산대에 기댄 채 경희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다나카는 경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심지어 치아마저 예뻤다. She even had pretty teeth.

"먼저 뼈를 차가운 물에 조심스럽게 씻어야 해요.

그러고 나서 끓인 다음 그 물을 버리죠. 그 물에는 국에 넣기 싫은 피와

찌꺼기가 가득하거든요.

다시 한 번 깨끗하고 차가운 물로 뼈를 끓이는데

국물이 두부처럼 하얗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끓여야 해요.

그러고는 무와 파를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죠.

그럼 아주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국이 완성돼요."

"고기를 넣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흰쌀과 국수를 넣으면 더 좋죠!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경희가 웃으면서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드러난 치아를 가렸다.

남자들이 경희의 농담을 알아듣고 웃었다.

쌀은 그들도 사먹기 힘들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다.

"그거랑 김치를 같이 먹나요?" 다나카가 물었다.

경희와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직원인 고지와 경희의 동서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다나카는 경희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다고 느꼈다.

"김치는 좀 맵지만 구운 닭고기나

돼지고기와 같이 먹으면 괜찮은 것 같아요."

"김치는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는 맛있는 반찬이에요.

다음번에는 김치를 좀 가져다줄게요."

다나카는 뼈를 포장한 종이를 다시 펼쳐서

방금 전에 진열장에 다시 넣었던 고기의 반쪽을 넣었다.

"많지 않지만 아기에게는 충분할 거예요."

다나카가 선자에게 미소를 지었고, 선자는 정육점 주인이 자신을 알아봐주자 깜짝 놀랐다.

황국의 건실한 일꾼을 키우려면

엄마가 잘 먹어야 하죠."

"공짜로 받을 수는 없어요." 경희가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경희는 다나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은 정말로 고기를 살 수가 없었다.

선자도 두 사람의 대화에 당혹스러웠다.

두 사람은 김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게 오늘 첫 거래예요. 나눠 가지면 저한테도 복이 올 거예요."

다나카는 매력적인 여자에게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줄 수 있는 남자라도 된 양 우쭐해하며 말했다. Is it okay? I said proudly

경희는 계산 대 위에 놓인 흠 하나 없이 깨끗한 동전 접시에

10센을 올려놓고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가게 바깥에서 선자가 경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주인이 고기 값을 받지 않았어."

고기를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모르겠네."

"그 사람은 언니가 좋아가지고 선물로 준 거네예."

선자는 고향의 식모 동희가 된 것 처럼 깔깔거렸다.

동희는 틈 날 때마다 남자들에 대한 농담을 하곤 했다.

엄마 생각은 자주 했지만 고향에서 식모로 일하는 언니들을 떠올린 것은 정말 한참 만이었다.

"이제부터 다나카 씨를 언니 남자친구라고 불러야겠네예."

경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장난스럽게 선자를 찰싹 때렸다.

"네 아이에게 주는 거랬어. 네 아이가 커서

이 나라의 훌륭한 일꾼이 될 거니까." 경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게다가 다나카 씨는 내가 조선인이란 걸 알아."

"남자들이 언제 그런 거에 신경이나 쓰는가예?

옆집 김씨 아지매 한테 들었는데 길 끝에 사는 참한 일본 여자가 집에서

술을 만드는 조선 남자하고 결혼했다 카데예. 그 사람들 아이들은 혼혈이고예!"

선자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돼지를 키우는 김 씨 아주머니의 이야기 중에

충격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요셉은 경희와 선자가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김 씨 아주머니와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양조업을 하는 일본 여자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고 했다.

그여자의 남편이 밀수로 감옥에 갇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언니가 저 근사한 정육점 주인하고 도망치면 많이 보고 싶을 낍니더."

선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미혼이래도 저런 남자는 고르지 않을 거야.

웃음이 너무 많거든." 경희가 선자에게 윙크를 했다.

"나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주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걱정해 주는 내 괴짜 남편이 좋아.

이만하고 서두르자. 이제 채소를 사야해.

그래서 고기를 사지 않은 거야. 구워 먹을 감자를 좀 찾아봐야겠어.

점심으로 감자를 싸주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언니 . . ." "왜?"

"저희가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어예.

채소 값에 연료값, 목욕탕 요금까지 . . . .

제 평생 먹고사는 데에 이래 돈이 많이 드는 건 처음 봤어예.

고향에서는 텃밭이 있어서 채소를 돈주고 사먹은 적이 없었거든요.

생선은 또 어떻고예! 엄마가 생선 값이 이래 비싼 줄 알았으며

다시는 안먹었을 겁니더.

고향에서도 절약하면서 살기는 했지만 우리가 그런 물건들을 얼마나 쉽게 얻었는지 몰랐어예.

손님들을 갖다주는 생선을 공짜로 먹었는데

여기서는 사과 값이 부산의 소갈비보다 더 비싸잖아예.

저희 엄마도 언니처럼 돈을 신중하게 쓰는 사람이었지만

언니처럼 절약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는 없었어예.

이삭 씨하고 저는 먹는 것만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돈을 들이고 싶어예."

사실 요셉 부분은 동생 부부에게 한 푼도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삭과 선자는 그 뜻을 따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로 나가서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이사를 나가면

경희의 기분이 크게 상할 게 분명했다.

"동생은 고향에서 훨씬 배부르게 잘 먹었을 거야." 경희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언지예, 그런 말이 아니라예. 그 엄청난 생활비에 보탬이 못 되는 것 때문에

그냥 저희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예."

"요셉과 나는 두 사람한테서 돈을 받을 수 없어.

동생은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돈을 모아야 해. 아이 옷과 기저귀도 사야하고,

언젠가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서 신사로 만들어야지.

그러면 멋질 것 같지 않아? 아이가 도련님처럼 학교를 좋아하고,

큰아버지처럼 책을 멀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와 함께 살 거라고 생각하자 경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는 그동안 드렸던 기도의 응답인 것만 같았다.

"엄마가 지난번 편지에 3엔을 넣어 보내줘어예. 그거 말고도 저희가 가져온 돈도 좀 있고예. Send me a pardon. Besides Psy's, we have some money.

저희 식구 둘, 아니 쪼매 있으면 셋이 될 텐데

그러면 언니가 그래 많이 드는 생활비 때문에 걱정하거나 김치를 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예?

저희 식구 둘, 아니 쪼매 있으면 셋이 될 텐데

저희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언니가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예."

"선자야, 너 지금 나한테 너무 무례한 거 같은데.

난 너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야.

우리가 잘 꾸려나갈 수 있어. Oh we can manage it well

게다가 네가 있어야 돈을 벌어 보탬이 되고 싶다는 내 소망도 이야기할 수 있어.

네가 없으면 쓰루하시 역에서 김치 파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경희가 웃었다. "넌 착한 동생으로 있어주면 돼.

내가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성도 사고

네 아들을 도쿄의 의대에 보내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줘."

"아지매들이 다른 여자가 만든 김치를 사려고 할까예?"

"안 될 게 뭐 있니!" 내가 만든 김치가 맛이 없을 거 같아?

우리 가족은 평양에서 제일 맛있는 장아찌를 만들었어."

경희가 턱을 들어 올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난 진짜 뛰어난 김치 아줌마가 될 거야. 내가 절인 배추는 깔끔하고 맛있을 거라고."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지금은 와 못 하는 데예?

배추와 무를 살 돈은 충분히 있잖아예.

언니 꿈을 이룰 수 있게 저도 도울 수 있고예.

우리가 많이 팔면 제가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라예.

얼라가 태어나도 집에서 돌볼 수 있잖아예."

"그래, 우리 둘이라면 진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요셉이 날 죽이려고 들걸.

요셉은 가정 주부가 밖에서 일하는 걸 싫어해. 절대 안 된다고 할 거야.

내가 일하러 나가는 것도 싫어할걸."

"그치만 저는 부모님하고 같이 일을 하면서 자랐는데예.

아주버님도 그걸 아시잖아예.

저희 엄마는 손님들 시중을 들고 요리를 하셨지예. 저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 . . ."

"요셉은 구세대 남자야." 경희가 한숨을 쉬었다.

"난 아주 좋은 남자와 결혼 했어.

내 잘못이긴 하지만, 아이가 있었다면 이렇게 따분해 하지 않았을 거야.

난 그냥 빈둥거리기 싫어. 이건 요셉의 잘못이 아니야.

요셉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어.

옛날이라면 아이를 못 낳는 나 같은 여자는 버림받았을걸."

경희는 어릴 때 들었던 애 못 낳는 여자들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그런 여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난 남편 말을 따라야 해. 남편은 항상 날 잘 돌봐주니까."

선자는 그 말에 수긍할 수도,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어서

그냥 그 말이 허공에 맴돌도록 내버려뒀다.

사실 요셉은 경희 같은 양반가 출신의 여자는

집 밖에서 일을 해서는 안 되지만 선자는 평범한 서민의 딸이니

시장에서 일을 해도 상관없다 고 말했다

그런 차별에도 선자는 마음 상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경희가 여러모로 보아 신분이 높은 사람이 분명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자는 경희와 함께 지내며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 경희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김치 파는 아주머니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훨씬 더 행복해하리라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선자가 그 문제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봤자 아주버님은

그 이야기를 '어리석은 여자들의 잡담'으로 치부하고 말 테니까.

선자는 다소 우울해하는 경희의 기분을 바꿔주려고

밝은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배추와 무를 사러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