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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김치 아줌마」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김치 아줌마」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파친코. Book 1. 고향. 김치 아줌마.

선자는 아침마다 경찰서에 가서

보리와 수수로 만든 주먹밥 세개를 넣어주었다.

계란 살 돈이 있을 때는 계란을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간장에 졸여서 이삭의 부실한 도시락에 함께 넣었다.

그 음식이 이삭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삭이 도시락을 받지 못한다는 증거도 딱히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감옥에 간 적이 있다고

아는 체하면서 감옥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 사람은 이렇다 하고 저 사람은 저렇다 하여 별 신빙성이 없었다.

그냥 좀 번거로웠을 뿐이라는 이야기에서

무시무시하게 끔찍했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편차가 아주 컸다.

요셉은 이삭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이삭이 체포된 이후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한때 새카맣던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젔고 위경련이 심해졌다.

부모님에게 편지 쓴 일도 그만 두었다.

부모님에게 이삭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희가 대신 편지를 쓰면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이삭 이야기를 피했다

요셉은 또한 식사를 할 때마다 자기 음식의 대부분을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노아에게 밀어주었다.

요셉과 노아는 둘 다 이삭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퍼하고 있었다.

식구들은 다 함께 가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따로 가기도 하면서

경찰서를 찾아가 수없이 간청했지만 아무도 이삭을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경찰이 가타부타 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이삭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류 목사와 교회 관리인도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어서

세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실제로 죄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이삭이 체포된 다음 날,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이삭의 책과 서류 몇 깨를 압수해 갔다.

이삭의 식구들이 들고 나는 것도 감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형사가 몇 주마다 한 번씩 찾아와서 질문을 던졌다.

경찰이 이삭의 교회를 자물쇠로 잠가 패쇄했지만

신도들은 몇몇 나이 많은 사람들의 지휘 아래 소규모로 비밀리에 만났다.

경희와 선자, 요셉은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까 봐 절대 만나지 않았다.

조선과 일본에 있던 외국인 선교사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오사카에서 백인을 보기가 힘들었다.

요셉은 캐나다 선교사들에게 이삭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장로교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엄청난 압력에 못 이겨서

의무적인 신사참배를 천황을 위한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시민의 의무로 받아들였다.

국교의 우두머리인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신실하고 실용적인 류 목사는

신사 참배가 이교도적인 의식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과 후 신도들에게

더 위대한 선을 위해서 신사참배에 참석하라고 했다.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많은 신도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류 목사는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그러한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해주는 구절를 찾았다.

그래서 마을마다 횟수가 다른 신사참배가

가장 가까운 신사에서 거행될 때마다

류 목사와 이삭, 후는 그때 때마침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과 함께 신사참배에 참석하곤 했다.

하지만 류 목사는 시력이 약해진 상태여서 후가 신사참배 의식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절을 하고 물을 뿌리고 박수를 치는 내내 끊임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삭은 물론 후의 그런 행동을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의 그러한 신념과 저항의 몸짓을 존경했다.

이삭이 체포되자 선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이 정말로 닥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셉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때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 경희는 떠나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요셉의 아내일 뿐이지 않은가?

선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고국의 엄마에게 돌아가야 할 때를 대비해서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아야 했다.

그러자면 일을 해야 했다. 행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자의 엄마는 하숙집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젊은 여자가 시장에서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치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요셉은 선자가 일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선자는 그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선자는 이삭도 아이들 학비를 벌 수 있기를 바랄 거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요셉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요셉은 선자가 일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렇지만 경희에게는 바깥에서 일하지 말라고 했고,

경희는 순순히 요셉의 말을 따랐다.

경희는 선자와 함께 장아찌를 준비 해놓을 수는 있었지만

직접 팔 수는 없었다.

요셉은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형편이라서

강하게 반대할 수 없었다.

두 여자는 요셉의 뜻을 거스르는 와중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요셉에게 순종하려고 애썼다.

요셉의 뜻을 거역해서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 혼자서 감당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금전적 부담이 커지고 있었다.

이삭이 투옥된 지 일주일 후

선자는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감옥에 가서 이삭의 식사를 넣어 주고 나서,

커다란 김치 항아리를 나무 수레에 싣고 시장으로 밀고 갔다.

이카이노의 노천시장은 가정용품과 옷, 다다미, 전기용품을 파는 자잘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집에서 만든 파전과 초밥, 된장을

파는 행상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었다.

경희는 집에서 모자수를 돌보았다.

선자는 고추장과 된장을 파는 행상인들 옆에서

튀긴 밀과자를 파는 젊은 조선 여자 둘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그쪽에 자리를 잡아볼까 하고 수레를 밀고 갔다.

"이쪽에 고약한 냄새를 풍길 생각은 하지도 마."

밀과자 장수 두 명 중에서 나이 든 쪽이 말했다.

"저쪽으로 가." 여자가 생선 파는 행상인들 쪽을 가리켰다.

선자가 마른 멸치와 미역을 파는 여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 나이 든 조선 여자들도 선자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그 더러운 수레를 당장 치우지 못해.

안 그러면 우리 아들들 불러 거기다 오줌을 갈기라고 할 거다.

알겠어, 이 촌것아?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른 키 큰 여자가 말했다.

선자는 너무 놀라서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김치를 파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된장도 냄새가 지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자는 그 여자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걷다가

출입구 근처의 생닭을 파는 곳에 다다랐다.

지독한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돼지 도축업자와 생닭을 파는 곳 사이에는

선자의 수레가 들어갈 만큼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일본인 도축업자는 커다란 칼을 휘두르면서

어린아이만 한 돼지 한 마리를 자르고 있었다.

피가 가득한 커다란 양동이가 남자 발치에 놓여 있었다.

돼지 머리 두 개가 앞쪽 좌판 위에 있었다.

도축업자는 나이 든 사내였지만,

튼튼한 근육질인 두 팔에는 혈관이 불룩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선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선자는 그 남자의 좌판 옆에 수레를 놓았다.

기차가 도착할 때마다 기차의 진동을 신발 아래로 느낄 수 있었다.

승객들이 기차에서 내렸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출입구에서 시장으로 들어갔지만 선자의 수레 앞에 멈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자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 참았다.

젖이 불어서 가슴이 묵직하니 아파 왔다.

선자는 경희와 함께 집에 있었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러나 선자는 소매로 얼굴을 훔치고

고향에서 가장 장사를 잘하던 시장 아주머니들이 어떠했는지 떠올려보려고 애썼다.

"김치 사이소! 맛있는 김치 사이소!

이 맛난 김치를 자셔보시고 다시는 집에서 담지 마시라예!" 선자가 소리쳤다.

행인들이 선자를 돌아보았다. 순간, 선자는 수치심에 그들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뭐라도 하나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도축업자가 돼지를 다 자르고 나서

손을 씻더니 선자에게 25센과 김치를 담을 그릇을 건넸다.

선자는 도축업자가 건넨 그릇에 김치를 담아주었다.

도축업자는 선자가 일본어를 하지 못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김치 그릇을 돼지 머리 옆에 내려놓고 좌판 뒤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을 밥 위에 올려놓고 먹었다.

"맛있네요! 정말 맛있어요!" 남자가 일본어로 말하며 웃었다.

선자는 남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점심때가 되자 경희가 젖을 먹이려고 모자수를 데려왔고, 선자는 문득 배추와 무,

양념을 사느라 들어간 돈을 회수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재료를 사느라 쓴 것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선자가 벽 쪽으로 돌아앉아서 모자수에게 젖을 먹일 동안

경희가 수레를 살펴보았다.

"나라면 겁을 먹었을 거야.

내가 김치 아줌마가 되고 싶다고 말 했던 거 기억나지?

실제로 여기 서서 김치를 판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고

그런 소리를 했던 것 같아.

동생은 정말 용감해." 경희가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예." 선자가 아름다운 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여기 있어 줄까? 동생과 같이 있을까?"

"그러면 언니가 곤란해질 겁니더. 노아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언니가 집에 계셔야 저녁을 챙겨주지예.

언니를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더."

"그런 소리 마. 내가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오후 2시가 다 된 시각이었고, 해가 넘어가면서 기온이 훨씬 더 서늘해졌다.

"다 못 팔면 집에 돌아가지 않을 깁니더."

"정말?" 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 모자수는 이삭을 닮았다.

모자수는 구릿빛 피부에 윤이 나는 굵은 머리카락에

노아와는 완전히 달랐다.

노아의 밝은 눈은 놓치는 것이 없었다.

입을 제외하면 노아는 젊은 한수와 완전히 똑같았다.

학교에서 노아는 공부도 잘하고

얌전해 훌륭한 학생이라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노아는 키우기 쉬운 아이였고,

모자수는 낯선 사람에게 안겨도 기뻐하는 행복한 아이였다.

선자는 더없이 사랑하는 두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부모님이 떠올랐다.

엄마와 아버지한테서 아주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지금 선자는 기차역 바깥에 서서 김치를 팔고 있었다.

직업의 귀천은 없다지만 부모님은

선자가 이런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자는 부모님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기를 바랄 거라고 생각했다.

선자가 아이에게 젖을 다 먹이자

경희가 빵 두 개와 분유에 물을 타서 만든 우유 한 병을

수레에 내려놓았다.

"동생도 먹어야지. 아이 젖을 먹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알지?

동생은 물과 우유를 많이 마셔야 해."

경희가 돌아서자 선자가 모자수를 경희 등의 포대기 안에 넣어주었다.

경희는 아이를 바짝 당겨 업었다.

"난 집에가서 노아를 기다렸다가 저녁을 챙겨줄게.

동생도 빨리 들어올 거지? 우리는 멋진 한 팀이야."

모자수의 작은 머리가 경희의 가는 양어깨 사이에 놓였다.

선자는 멀어지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에게 자신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겠다 싶었을 때

선자는 다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김치 있어예! 맛있는 김치 있어예! 김치 사이소!

맛있는 김치 사이소! 오이쉬! 오이쉬 김치 사시라예."

이렇게 외치던 선자는 어딘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자기 목소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시장에 갔던 시절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젊은 아가씨가 되어서는 혼자서,

그 후에는 사랑하는 이의 시선을 받고 싶어 하는 여인이 되어

시장에 갔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선자의 주위에는 언제나 호객 행위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는데

지금은 선자가 그들처럼 그러고 있었다.

"김치 사이소! 김치 있어예! 집에서 만든 김치 사이소!

이카이노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 있어예!

할머니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예! 오이쉬 데스, 오이쉬!"

선자는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려고 애썼다.

고향에서 선자도 언제나 상냥한 아주머니들을 자주 찾았기 때문이다.

행인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에

선자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미소를 지었다.

오이쉬! 오이쉬!

돼지 도축업자가 선자의 그런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그날 저녁, 선자는 김치 항아리 바닥이 보일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선자는 이제 어떤 김치라도 경희와 함께 만들어서 팔 수 있었다.

그렇게 물건을 팔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고 나자 자신감이 생겼다.

경희와 함께 김치를 더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김치를 익히는 데는 시간이 걸렸고,

적합한 재료들을 항상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벌이가 괜찮다 해도 다음 주에 배추 가격이 오를 수도 있었고,

더욱 상황이 심각해지면 배추를 아예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시장의 배추가 없을 때는 무와 오이로 장아찌를 만들었다.

가끔씩 경희는 마늘이나 고추장을 넣지 않고

무와 오이를 절여 장아찌를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그런 장아찌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선자는 항상 밭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에서 어머니의 하숙집에는 부엌 뒤쪽에 작은 텃밭이 있어서

하숙인들이 내는 돈보다 두 배나 더 많이 먹을 때도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신선한 식품의 가격은 계속올랐고,

노동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살 여유 없었다.

최근에는 몇몇 손님들이 김치 한 포기를 통째로 살 수가 없어서

반으로 쪼개서 조금만 살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선자는 김치나 장아찌를 팔 수 없을 데는

군고구마와 군밤, 삶은 옥수수 같은 것들을 팔았다.

이제는 수레가 두 개로 늘어났다.

수레 두 개를 기차 객차처럼 연결해서 수레 하나에는 임시로 만든 석탄 난로를, 다른 하나에는 장아찌를 실었다.

수레는 부엌에서 가장 좋은 곳에 놓아두었다.

집 바깥에 두었다가는 누가 훔쳐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선자는 벌어들인 돈을 경희와 똑같이 나누었고,

아이들 학비와 고향으로 돌아갈 때 허가증을 살 수 있게끔 돈을 모았다.

모자수가 생후 5개월이 됐을 무렵부터 선자는 설탕과자도 팔기 시작했다.

배추를 비롯한 김치 재료를 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을 때

경희가 우연히 사동생이 군대에 있다는 식료품 잡화상한테서

흑설탕 두 봉지를 싼값에 얻은 덕분이었다.

선자는 평상시처럼 돼지 도축업자 옆자리에서

설탕을 녹이기 위해 쇠로 된 국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았다.

난로로 사용하는 강철 상자가 말썽이었다.

선자는 여유가 생기는 대로 수레에 적합한 난로를 살 계획이었다.

소매를 걷어 올린 선자는 공기가 잘 통하게 타고 있는 석탄을 뒤적거려서 불길을 키웠다.

"아가씨, 오늘 김치 있어요?"

왠 남자 목소리에 선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삭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선자의 아주버니처럼 단정하게 차려입었지만

시선을 많이 끄는 사람은 아니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손톱이 단정했다.

안경알이 아주 두껍고 테가 굵어서

잘생긴 이목구비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언지예. 오늘은 김치가 없고 설탕과자만 있어예. 아직 준비가 안 돼서예."

"아. 그럼 언제 김치가 준비되나요?"

"확실히는 모르겠네예. 배추를 많이 살 수가 없어서예.

마지막 담은 김치는 아직 익지 않았고예."

선자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석탄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루나 이틀 걸리나요? 아니면 일주일?"

선자는 남자의 끈질긴 질문에 놀라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김치는 사흘쯤 지나면 다 익을 거라예.

날씨가 점점 더 따뜻해진다카면 한 이틀 걸릴 수도 있고예.

하지만 그래 빨리는 안 될 깁니더."

선자는 설탕 과자를 만드는 데에 방해가 되는 남자가 떠나주기를 바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시간쯤이면 기차에서 내리는 젊은 여자들에게

설탕 과자 몇 봉지를 팔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팔 수 있는 김치는 얼마나 있어요?"

"많이 었어예. 얼마나 사실라 캅니까? 제 손님들은 대부분 김치 담을 그릇을 직접 가져오십니더.

김치가 얼마나 필요하신데예?"

선자의 손님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 여자들이라서 직접 반찬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설탕과자는 어린아이들과 젊은 여자들에게 팔았다.

"사흘 후에 다시 오시소. 그릇을 가져오시면 . . . " 젊은 남자가 웃었다.

"전 아가씨가 갖고 있는 걸 다 사려고 하는데요." 남자가 안경을 고쳐 썻다.

"김치를 그래 마이 먹을 수는 없지예! 그 많은 김치를 우째 보관할라고예?

선자가 남자의 어리석음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대답했다.

"몇 달 있으면 여름이 될 긴데 벌써부터 날이 덥다아입니꺼."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제 이름은 김창호입니다.

전 쓰루하시 역 바로 옆에 있는 숯불구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가씨 김치가 맛있다는 소문이 멀리까지 퍼졌더라고요."

선자는 뜨거운 석탄을 계속 주시하면서 양손을 앞치마로 닦았다.

"집에서 김치를 담는 건 제 언닙니더.

저는 그냥 김치를 팔고 또 언니가 김치 만드는 걸 도울 뿐이지예."

"네, 네. 그 소문도 들었습니다.

음, 전 우리 식당에 김치와 반찬을 모두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배추도 조달해줄 수 있고 . . . "

"어디서예? 어디서 배추를 구하시는데예? 저희도 사방팔방 다 찾아봤어예.

언니가 매일 아침 일찍 시장에 가도 아직 . . . "

"전 구할 수 있어요."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선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설탕과자를 만들 국자가 뜨거워졌다.

이제 설탕과 물을 넣어야 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면 남자의 말을 듣는 게 더 중요했다.

기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첫 손님은 이미 놓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손님 식당이 어디 있다고예?"

"기차역 뒷골목에 있는 큰 식당입니다. 약국에 있는 거리에 있죠.

날씬한 약사인 오카다 씨가 운영하는 약국 아시죠?

저처럼 검은 안경을 쓰고 있잖아요?"

남자가 안경을 다시 코 위로 밀어올리고 소년처럼 웃었다.

"네, 그 약국이라면 어디 있는지 알아예."

그 약국은 모든 조선인들이 진짜로 아파서

좋은 약을 사야 할 때 가는 곳이었다.

오카다는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정직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눈앞의 젊은 남자는 선자를 이용하려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남자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행상인으로 몇 달 일할면서 선자는 몇몇 손님들에게 외상을 주었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사소한 거짓말을 서슴없이 했고,

상대의 입장이나 이익은 신경 쓰지 않았다.

김창호가 선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여기 주소가 적혀 있어요. 준비되는 대로 김치를 가져다줄 수 있나요?

다 가져오세요. 현금으로 김치값을 지급하고 배추도 더 구해줄게요."

선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김치를 한 손님에게 다 팔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을 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배추를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는데,

이 남자가 배추를 구해줄 수 있다면 일이 한층 더 쉬워질 터였다.

경희는 모자수를 등에 업은 채 그 귀한 배추를 구하려고

시장 곳곳을 뒤지고 다녔지만 배추를 얼마 구하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선자는 남자에게 갖고 있는 김치를 모두 다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젊은 남자의 식당은 기차역 맞은편에

나란히 이어진 짧은 골목 쪽에 위치한 큰 가게였다.

근처의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전문 간판 제작자가 만든 멋들어진 간판이 걸려 있었다.

선자와 경희는 널찍한 나무판에 새겨서

칠해놓은 큼직한 검은색 글자들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 글자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조선식 갈비집인 것만은 분명했다.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도 구운 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간판에 적힌 일본어는 선자는 물론이고

경희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글자였다.

선자는 지난 몇 주 동안 담가놓았던 김치를

전부 실은 수레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식당이 김치를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면 정기적인 수입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식구들에게 계란을 좀 더 자주 사서 요리해줄 수 있었고,

요셉과 노아에게 새 외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경희에게

두터운 옷감을 사다줄 수 있었다.

요셉은 부엌에 쌓여 있는 김치 재료를 보기도 싫고 냄새도 맡기 싫다면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김치 공장에서는 살기 싫었던 것이다.

이런 요셉의 불만이 여자들이 설탕과저를 팔기 시작한 주된 이유였지만,

설탕은 배추나 고구마 보다

훨씬 더 구하기 어려웠다.

노아는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지만 김치 냄새 때문에

누구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원래도 다른 조선 학생들처럼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이제는 옷에서 항상 양파와 고추 마늘 새우젓 냄새가 났기 때문에 선생님도 노아를 교실 뒷쪽에 앉혔다.

그것은 집에서 돼지를 키우는 조선 아이들이

앉는 자리였다.

집에서 돼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돼지라고 놀림을 받았다.

일본 이름이 노부오인 노아는 돼지 아이들과 함께 앉았고,

마늘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노아는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싶지 않아서

큰엄마에게 마늘이 들어가지 않은 간식과 음식을 달라고 부탁했다.

큰엄마가 그 이유를 묻자 노아는 사실대로 말했다.

경희는 돈이 더 들어도 노아의 아침으로 빵집에서 커다란 우유빵을 사서 주었고,

학교에 가져갈 점심으로는 감자 고로케와 야끼소바를 만들어주었다.

일본 아이들은 무자비했지만 노아는 그런 아이들과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를 했고, 2학년 학급에서

1등 이나 2등을 하면서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서 노아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노는 조선인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노아가 만나고 싶어 하는 유일한 사람은 큰아버지였지만

요즘 집에 있을 때의 요셉은 예전의 그 요셉이 아니었다.

경희와 선자는 식당앞에 말없이 선 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지만 영업을 하려고 열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경희는 처음에 김치를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제안에 의구심이 생긴다며

선자를 낯선 곳에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모자수를 등에 업은 채 함께 가겠다고 선자를 따라나선 것이었다.

두 사람은 요셉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왔지만

첫 거래가 성사되고 나면 다 말할 계획이었다.

"내가 수레를 가지고 여기 바깥에서 기다릴게."

경희가 오른손으로 모자수를 토닥거려 어르면서 말했다.

아이는 경희의 등에 업혀서 얌전히 쉬고 있었다.

"김치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예?" 선자가 말했다.

"그 사람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 게 어때?"

"둘 다 같이 들어갑시더."

"난 바깥에서 기다릴게. 동생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그때 내가 들어갈게, 알겠지?"

"하지만 수레를 우째 밀라꼬 . . . "

"괜찮아, 할 수 있어. 모자수도 괜찮을 거야."

아이는 이제 경희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 졸고 있었고,

경희는 안정적으로 아이를 계속 흔들었다.

"안에 들어가 봐. 난 밖에서 기다릴게.

그냥 김창호에게 여기로 나오라고 해. 그 남자와 안에서 이야기 하지마, 알겠지.

"하지만 우리 둘이서 같이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할 기라고 생각했는데 . . . "

선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경희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가 문득 경희가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야 요셉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물어봤을 때

자기는 내내 식당 바깥에 있었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도 있었다.

[음악]

「김치 아줌마」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Kimchi-Tantchen" Pachinko Pachinko [Buch 1. Heimatstadt] "Kimchi Auntie" Pachinko [Book 1. Hometown] "Kimchi Auntie" Pachinko Pachinko [Libro 1. Ciudad natal] "Zia Kimchi" Pachinko Pachinko [Libro 1. Città natale]

파친코. Book 1. 고향. 김치 아줌마.

선자는 아침마다 경찰서에 가서

보리와 수수로 만든 주먹밥 세개를 넣어주었다.

계란 살 돈이 있을 때는 계란을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간장에 졸여서 이삭의 부실한 도시락에 함께 넣었다.

그 음식이 이삭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삭이 도시락을 받지 못한다는 증거도 딱히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감옥에 간 적이 있다고

아는 체하면서 감옥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 사람은 이렇다 하고 저 사람은 저렇다 하여 별 신빙성이 없었다.

그냥 좀 번거로웠을 뿐이라는 이야기에서

무시무시하게 끔찍했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편차가 아주 컸다. The divergence was very large, down to the story of how terribly terrifying it was.

요셉은 이삭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이삭이 체포된 이후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한때 새카맣던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젔고 위경련이 심해졌다.

부모님에게 편지 쓴 일도 그만 두었다.

부모님에게 이삭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희가 대신 편지를 쓰면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이삭 이야기를 피했다

요셉은 또한 식사를 할 때마다 자기 음식의 대부분을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노아에게 밀어주었다.

요셉과 노아는 둘 다 이삭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퍼하고 있었다.

식구들은 다 함께 가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따로 가기도 하면서

경찰서를 찾아가 수없이 간청했지만 아무도 이삭을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경찰이 가타부타 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이삭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류 목사와 교회 관리인도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어서

세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실제로 죄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이삭이 체포된 다음 날,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이삭의 책과 서류 몇 깨를 압수해 갔다.

이삭의 식구들이 들고 나는 것도 감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형사가 몇 주마다 한 번씩 찾아와서 질문을 던졌다.

경찰이 이삭의 교회를 자물쇠로 잠가 패쇄했지만

신도들은 몇몇 나이 많은 사람들의 지휘 아래 소규모로 비밀리에 만났다.

경희와 선자, 요셉은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까 봐 절대 만나지 않았다.

조선과 일본에 있던 외국인 선교사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오사카에서 백인을 보기가 힘들었다.

요셉은 캐나다 선교사들에게 이삭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장로교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엄청난 압력에 못 이겨서

의무적인 신사참배를 천황을 위한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시민의 의무로 받아들였다.

국교의 우두머리인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신실하고 실용적인 류 목사는

신사 참배가 이교도적인 의식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과 후 신도들에게

더 위대한 선을 위해서 신사참배에 참석하라고 했다.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많은 신도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류 목사는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그러한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해주는 구절를 찾았다.

그래서 마을마다 횟수가 다른 신사참배가 So the shrine visits are different for each horse.

가장 가까운 신사에서 거행될 때마다

류 목사와 이삭, 후는 그때 때마침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과 함께 신사참배에 참석하곤 했다.

하지만 류 목사는 시력이 약해진 상태여서 후가 신사참배 의식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절을 하고 물을 뿌리고 박수를 치는 내내 끊임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삭은 물론 후의 그런 행동을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의 그러한 신념과 저항의 몸짓을 존경했다.

이삭이 체포되자 선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이 정말로 닥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셉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때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 경희는 떠나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요셉의 아내일 뿐이지 않은가?

선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고국의 엄마에게 돌아가야 할 때를 대비해서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아야 했다.

그러자면 일을 해야 했다. 행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자의 엄마는 하숙집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젊은 여자가 시장에서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치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요셉은 선자가 일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선자는 그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선자는 이삭도 아이들 학비를 벌 수 있기를 바랄 거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요셉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요셉은 선자가 일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렇지만 경희에게는 바깥에서 일하지 말라고 했고,

경희는 순순히 요셉의 말을 따랐다.

경희는 선자와 함께 장아찌를 준비 해놓을 수는 있었지만

직접 팔 수는 없었다.

요셉은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형편이라서

강하게 반대할 수 없었다.

두 여자는 요셉의 뜻을 거스르는 와중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요셉에게 순종하려고 애썼다.

요셉의 뜻을 거역해서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 혼자서 감당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금전적 부담이 커지고 있었다.

이삭이 투옥된 지 일주일 후

선자는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감옥에 가서 이삭의 식사를 넣어 주고 나서,

커다란 김치 항아리를 나무 수레에 싣고 시장으로 밀고 갔다.

이카이노의 노천시장은 가정용품과 옷, 다다미, 전기용품을 파는 자잘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집에서 만든 파전과 초밥, 된장을

파는 행상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었다.

경희는 집에서 모자수를 돌보았다.

선자는 고추장과 된장을 파는 행상인들 옆에서

튀긴 밀과자를 파는 젊은 조선 여자 둘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그쪽에 자리를 잡아볼까 하고 수레를 밀고 갔다.

"이쪽에 고약한 냄새를 풍길 생각은 하지도 마."

밀과자 장수 두 명 중에서 나이 든 쪽이 말했다.

"저쪽으로 가." 여자가 생선 파는 행상인들 쪽을 가리켰다.

선자가 마른 멸치와 미역을 파는 여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 나이 든 조선 여자들도 선자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그 더러운 수레를 당장 치우지 못해.

안 그러면 우리 아들들 불러 거기다 오줌을 갈기라고 할 거다.

알겠어, 이 촌것아?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른 키 큰 여자가 말했다.

선자는 너무 놀라서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김치를 파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된장도 냄새가 지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자는 그 여자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걷다가

출입구 근처의 생닭을 파는 곳에 다다랐다.

지독한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돼지 도축업자와 생닭을 파는 곳 사이에는

선자의 수레가 들어갈 만큼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일본인 도축업자는 커다란 칼을 휘두르면서

어린아이만 한 돼지 한 마리를 자르고 있었다.

피가 가득한 커다란 양동이가 남자 발치에 놓여 있었다.

돼지 머리 두 개가 앞쪽 좌판 위에 있었다.

도축업자는 나이 든 사내였지만,

튼튼한 근육질인 두 팔에는 혈관이 불룩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선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선자는 그 남자의 좌판 옆에 수레를 놓았다.

기차가 도착할 때마다 기차의 진동을 신발 아래로 느낄 수 있었다.

승객들이 기차에서 내렸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출입구에서 시장으로 들어갔지만 선자의 수레 앞에 멈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자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 참았다.

젖이 불어서 가슴이 묵직하니 아파 왔다.

선자는 경희와 함께 집에 있었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러나 선자는 소매로 얼굴을 훔치고

고향에서 가장 장사를 잘하던 시장 아주머니들이 어떠했는지 떠올려보려고 애썼다.

"김치 사이소! 맛있는 김치 사이소!

이 맛난 김치를 자셔보시고 다시는 집에서 담지 마시라예!" 선자가 소리쳤다.

행인들이 선자를 돌아보았다. 순간, 선자는 수치심에 그들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뭐라도 하나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도축업자가 돼지를 다 자르고 나서

손을 씻더니 선자에게 25센과 김치를 담을 그릇을 건넸다.

선자는 도축업자가 건넨 그릇에 김치를 담아주었다.

도축업자는 선자가 일본어를 하지 못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김치 그릇을 돼지 머리 옆에 내려놓고 좌판 뒤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을 밥 위에 올려놓고 먹었다.

"맛있네요! 정말 맛있어요!" 남자가 일본어로 말하며 웃었다.

선자는 남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점심때가 되자 경희가 젖을 먹이려고 모자수를 데려왔고, 선자는 문득 배추와 무,

양념을 사느라 들어간 돈을 회수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재료를 사느라 쓴 것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선자가 벽 쪽으로 돌아앉아서 모자수에게 젖을 먹일 동안

경희가 수레를 살펴보았다.

"나라면 겁을 먹었을 거야.

내가 김치 아줌마가 되고 싶다고 말 했던 거 기억나지?

실제로 여기 서서 김치를 판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고

그런 소리를 했던 것 같아.

동생은 정말 용감해." 경희가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예." 선자가 아름다운 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여기 있어 줄까? 동생과 같이 있을까?"

"그러면 언니가 곤란해질 겁니더. 노아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언니가 집에 계셔야 저녁을 챙겨주지예.

언니를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더."

"그런 소리 마. 내가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오후 2시가 다 된 시각이었고, 해가 넘어가면서 기온이 훨씬 더 서늘해졌다.

"다 못 팔면 집에 돌아가지 않을 깁니더."

"정말?" 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 모자수는 이삭을 닮았다.

모자수는 구릿빛 피부에 윤이 나는 굵은 머리카락에

노아와는 완전히 달랐다.

노아의 밝은 눈은 놓치는 것이 없었다.

입을 제외하면 노아는 젊은 한수와 완전히 똑같았다. Except for the mouth, Noah was exactly the same as the young Hansoo.

학교에서 노아는 공부도 잘하고

얌전해 훌륭한 학생이라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노아는 키우기 쉬운 아이였고,

모자수는 낯선 사람에게 안겨도 기뻐하는 행복한 아이였다.

선자는 더없이 사랑하는 두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부모님이 떠올랐다.

엄마와 아버지한테서 아주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지금 선자는 기차역 바깥에 서서 김치를 팔고 있었다.

직업의 귀천은 없다지만 부모님은

선자가 이런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자는 부모님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기를 바랄 거라고 생각했다.

선자가 아이에게 젖을 다 먹이자

경희가 빵 두 개와 분유에 물을 타서 만든 우유 한 병을

수레에 내려놓았다.

"동생도 먹어야지. 아이 젖을 먹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알지?

동생은 물과 우유를 많이 마셔야 해."

경희가 돌아서자 선자가 모자수를 경희 등의 포대기 안에 넣어주었다.

경희는 아이를 바짝 당겨 업었다.

"난 집에가서 노아를 기다렸다가 저녁을 챙겨줄게.

동생도 빨리 들어올 거지? 우리는 멋진 한 팀이야."

모자수의 작은 머리가 경희의 가는 양어깨 사이에 놓였다.

선자는 멀어지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에게 자신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겠다 싶었을 때

선자는 다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김치 있어예! 맛있는 김치 있어예! 김치 사이소!

맛있는 김치 사이소! 오이쉬! 오이쉬 김치 사시라예."

이렇게 외치던 선자는 어딘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자기 목소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시장에 갔던 시절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젊은 아가씨가 되어서는 혼자서,

그 후에는 사랑하는 이의 시선을 받고 싶어 하는 여인이 되어

시장에 갔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선자의 주위에는 언제나 호객 행위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는데

지금은 선자가 그들처럼 그러고 있었다.

"김치 사이소! 김치 있어예! 집에서 만든 김치 사이소!

이카이노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 있어예!

할머니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예! 오이쉬 데스, 오이쉬!"

선자는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려고 애썼다.

고향에서 선자도 언제나 상냥한 아주머니들을 자주 찾았기 때문이다.

행인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에

선자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미소를 지었다.

오이쉬! 오이쉬!

돼지 도축업자가 선자의 그런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그날 저녁, 선자는 김치 항아리 바닥이 보일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선자는 이제 어떤 김치라도 경희와 함께 만들어서 팔 수 있었다.

그렇게 물건을 팔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고 나자 자신감이 생겼다.

경희와 함께 김치를 더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김치를 익히는 데는 시간이 걸렸고,

적합한 재료들을 항상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벌이가 괜찮다 해도 다음 주에 배추 가격이 오를 수도 있었고,

더욱 상황이 심각해지면 배추를 아예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시장의 배추가 없을 때는 무와 오이로 장아찌를 만들었다.

가끔씩 경희는 마늘이나 고추장을 넣지 않고

무와 오이를 절여 장아찌를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그런 장아찌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선자는 항상 밭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에서 어머니의 하숙집에는 부엌 뒤쪽에 작은 텃밭이 있어서

하숙인들이 내는 돈보다 두 배나 더 많이 먹을 때도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신선한 식품의 가격은 계속올랐고,

노동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살 여유 없었다.

최근에는 몇몇 손님들이 김치 한 포기를 통째로 살 수가 없어서

반으로 쪼개서 조금만 살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선자는 김치나 장아찌를 팔 수 없을 데는

군고구마와 군밤, 삶은 옥수수 같은 것들을 팔았다.

이제는 수레가 두 개로 늘어났다.

수레 두 개를 기차 객차처럼 연결해서 수레 하나에는 임시로 만든 석탄 난로를, 다른 하나에는 장아찌를 실었다.

수레는 부엌에서 가장 좋은 곳에 놓아두었다.

집 바깥에 두었다가는 누가 훔쳐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선자는 벌어들인 돈을 경희와 똑같이 나누었고,

아이들 학비와 고향으로 돌아갈 때 허가증을 살 수 있게끔 돈을 모았다.

모자수가 생후 5개월이 됐을 무렵부터 선자는 설탕과자도 팔기 시작했다.

배추를 비롯한 김치 재료를 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을 때

경희가 우연히 사동생이 군대에 있다는 식료품 잡화상한테서

흑설탕 두 봉지를 싼값에 얻은 덕분이었다.

선자는 평상시처럼 돼지 도축업자 옆자리에서

설탕을 녹이기 위해 쇠로 된 국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았다.

난로로 사용하는 강철 상자가 말썽이었다.

선자는 여유가 생기는 대로 수레에 적합한 난로를 살 계획이었다.

소매를 걷어 올린 선자는 공기가 잘 통하게 타고 있는 석탄을 뒤적거려서 불길을 키웠다.

"아가씨, 오늘 김치 있어요?"

왠 남자 목소리에 선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삭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선자의 아주버니처럼 단정하게 차려입었지만

시선을 많이 끄는 사람은 아니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손톱이 단정했다.

안경알이 아주 두껍고 테가 굵어서

잘생긴 이목구비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언지예. 오늘은 김치가 없고 설탕과자만 있어예. 아직 준비가 안 돼서예."

"아. 그럼 언제 김치가 준비되나요?"

"확실히는 모르겠네예. 배추를 많이 살 수가 없어서예.

마지막 담은 김치는 아직 익지 않았고예."

선자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석탄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루나 이틀 걸리나요? 아니면 일주일?"

선자는 남자의 끈질긴 질문에 놀라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김치는 사흘쯤 지나면 다 익을 거라예.

날씨가 점점 더 따뜻해진다카면 한 이틀 걸릴 수도 있고예.

하지만 그래 빨리는 안 될 깁니더."

선자는 설탕 과자를 만드는 데에 방해가 되는 남자가 떠나주기를 바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시간쯤이면 기차에서 내리는 젊은 여자들에게

설탕 과자 몇 봉지를 팔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팔 수 있는 김치는 얼마나 있어요?"

"많이 었어예. 얼마나 사실라 캅니까? 제 손님들은 대부분 김치 담을 그릇을 직접 가져오십니더.

김치가 얼마나 필요하신데예?"

선자의 손님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 여자들이라서 직접 반찬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설탕과자는 어린아이들과 젊은 여자들에게 팔았다.

"사흘 후에 다시 오시소. 그릇을 가져오시면 . . . " 젊은 남자가 웃었다.

"전 아가씨가 갖고 있는 걸 다 사려고 하는데요." 남자가 안경을 고쳐 썻다.

"김치를 그래 마이 먹을 수는 없지예! 그 많은 김치를 우째 보관할라고예?

선자가 남자의 어리석음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대답했다.

"몇 달 있으면 여름이 될 긴데 벌써부터 날이 덥다아입니꺼."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제 이름은 김창호입니다.

전 쓰루하시 역 바로 옆에 있는 숯불구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가씨 김치가 맛있다는 소문이 멀리까지 퍼졌더라고요."

선자는 뜨거운 석탄을 계속 주시하면서 양손을 앞치마로 닦았다.

"집에서 김치를 담는 건 제 언닙니더.

저는 그냥 김치를 팔고 또 언니가 김치 만드는 걸 도울 뿐이지예."

"네, 네. 그 소문도 들었습니다.

음, 전 우리 식당에 김치와 반찬을 모두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배추도 조달해줄 수 있고 . . . "

"어디서예? 어디서 배추를 구하시는데예? 저희도 사방팔방 다 찾아봤어예.

언니가 매일 아침 일찍 시장에 가도 아직 . . . "

"전 구할 수 있어요."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선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설탕과자를 만들 국자가 뜨거워졌다.

이제 설탕과 물을 넣어야 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면 남자의 말을 듣는 게 더 중요했다.

기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첫 손님은 이미 놓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손님 식당이 어디 있다고예?"

"기차역 뒷골목에 있는 큰 식당입니다. 약국에 있는 거리에 있죠.

날씬한 약사인 오카다 씨가 운영하는 약국 아시죠?

저처럼 검은 안경을 쓰고 있잖아요?"

남자가 안경을 다시 코 위로 밀어올리고 소년처럼 웃었다.

"네, 그 약국이라면 어디 있는지 알아예."

그 약국은 모든 조선인들이 진짜로 아파서

좋은 약을 사야 할 때 가는 곳이었다.

오카다는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정직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눈앞의 젊은 남자는 선자를 이용하려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남자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However, I couldn't completely trust the man.

행상인으로 몇 달 일할면서 선자는 몇몇 손님들에게 외상을 주었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사소한 거짓말을 서슴없이 했고,

상대의 입장이나 이익은 신경 쓰지 않았다.

김창호가 선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여기 주소가 적혀 있어요. 준비되는 대로 김치를 가져다줄 수 있나요?

다 가져오세요. 현금으로 김치값을 지급하고 배추도 더 구해줄게요."

선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김치를 한 손님에게 다 팔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을 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배추를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는데,

이 남자가 배추를 구해줄 수 있다면 일이 한층 더 쉬워질 터였다.

경희는 모자수를 등에 업은 채 그 귀한 배추를 구하려고

시장 곳곳을 뒤지고 다녔지만 배추를 얼마 구하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선자는 남자에게 갖고 있는 김치를 모두 다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젊은 남자의 식당은 기차역 맞은편에

나란히 이어진 짧은 골목 쪽에 위치한 큰 가게였다.

근처의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전문 간판 제작자가 만든 멋들어진 간판이 걸려 있었다.

선자와 경희는 널찍한 나무판에 새겨서

칠해놓은 큼직한 검은색 글자들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 글자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조선식 갈비집인 것만은 분명했다.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도 구운 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간판에 적힌 일본어는 선자는 물론이고

경희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글자였다.

선자는 지난 몇 주 동안 담가놓았던 김치를

전부 실은 수레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식당이 김치를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면 정기적인 수입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식구들에게 계란을 좀 더 자주 사서 요리해줄 수 있었고,

요셉과 노아에게 새 외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경희에게

두터운 옷감을 사다줄 수 있었다.

요셉은 부엌에 쌓여 있는 김치 재료를 보기도 싫고 냄새도 맡기 싫다면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김치 공장에서는 살기 싫었던 것이다.

이런 요셉의 불만이 여자들이 설탕과저를 팔기 시작한 주된 이유였지만,

설탕은 배추나 고구마 보다

훨씬 더 구하기 어려웠다.

노아는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지만 김치 냄새 때문에

누구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원래도 다른 조선 학생들처럼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이제는 옷에서 항상 양파와 고추 마늘 새우젓 냄새가 났기 때문에 선생님도 노아를 교실 뒷쪽에 앉혔다.

그것은 집에서 돼지를 키우는 조선 아이들이

앉는 자리였다.

집에서 돼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돼지라고 놀림을 받았다.

일본 이름이 노부오인 노아는 돼지 아이들과 함께 앉았고,

마늘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노아는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싶지 않아서

큰엄마에게 마늘이 들어가지 않은 간식과 음식을 달라고 부탁했다.

큰엄마가 그 이유를 묻자 노아는 사실대로 말했다.

경희는 돈이 더 들어도 노아의 아침으로 빵집에서 커다란 우유빵을 사서 주었고,

학교에 가져갈 점심으로는 감자 고로케와 야끼소바를 만들어주었다.

일본 아이들은 무자비했지만 노아는 그런 아이들과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를 했고, 2학년 학급에서

1등 이나 2등을 하면서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서 노아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노는 조선인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노아가 만나고 싶어 하는 유일한 사람은 큰아버지였지만

요즘 집에 있을 때의 요셉은 예전의 그 요셉이 아니었다.

경희와 선자는 식당앞에 말없이 선 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지만 영업을 하려고 열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경희는 처음에 김치를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제안에 의구심이 생긴다며

선자를 낯선 곳에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모자수를 등에 업은 채 함께 가겠다고 선자를 따라나선 것이었다.

두 사람은 요셉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왔지만

첫 거래가 성사되고 나면 다 말할 계획이었다.

"내가 수레를 가지고 여기 바깥에서 기다릴게."

경희가 오른손으로 모자수를 토닥거려 어르면서 말했다.

아이는 경희의 등에 업혀서 얌전히 쉬고 있었다.

"김치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예?" 선자가 말했다.

"그 사람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 게 어때?"

"둘 다 같이 들어갑시더."

"난 바깥에서 기다릴게. 동생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그때 내가 들어갈게, 알겠지?"

"하지만 수레를 우째 밀라꼬 . . . "

"괜찮아, 할 수 있어. 모자수도 괜찮을 거야."

아이는 이제 경희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 졸고 있었고,

경희는 안정적으로 아이를 계속 흔들었다.

"안에 들어가 봐. 난 밖에서 기다릴게.

그냥 김창호에게 여기로 나오라고 해. 그 남자와 안에서 이야기 하지마, 알겠지.

"하지만 우리 둘이서 같이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할 기라고 생각했는데 . . . "

선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경희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가 문득 경희가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야 요셉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물어봤을 때

자기는 내내 식당 바깥에 있었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도 있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