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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 얽히고설킨 인연 (1957년)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 얽히고설킨 인연 (1957년)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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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2. 조국. 얽히고설킨 인연. 1957년.

"돈을 모을 방법을 찾아야 해요."

경희가 말했다.

"가게를 사려고 모으고 있는 돈에서 남는 돈이 있을 거 아이가."

양진이 말했다.

"거의 다 써버렸어예."

선자가 속삭였다.

약값을 대면서 돈을 모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다.

여자들은 요셉을 깨울까 봐 부엌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요셉은 최근에 피부 감염으로 끔찍한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약을 엄청나게 많이 들이켜고 나서야 간신히 잠들었다.

한의사가 이번에 지어준 아주 강한 약이 효과가 있었다.

그동안 여자들은 약값으로 많은 돈을 써야했다.

요셉에게 필요한 약제는 어마어마하게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기적으로 약을 먹어도 이제는 통증이 가시지 않아서

요셉이 끊임없이 아픔에 시달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매주 봉급을 통째로 엄마에게 드리는 모자수는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요셉 큰아버지를 치료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아도 같은 마음이었다.

온 가족이 절약하고 부지런히 일하는데도

저축한 돈은 약사를 찾아갈 때마다 사라져버리곤 했다.

노아의 와세다대학 입학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노아가 와세다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좋은 날이자 온 가족에게 있어 가장 기쁜 날이어야 했지만

가족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노아의 첫 학기 등록금 전부는 고사하고

일부마저도 마련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교가 도쿄에 있어서

노아는 일본 땅에서 가장 물가가 비싸다는 도시에서 숙박비와 식비를 내며 생활해야 했다.

노아는 학교 수업이 시작되는 첫날 직전까지

호지 씨 밑에서 계속 일하려고 했다.

그리고 대학에 다니면서 도쿄에서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었다.

선자는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선인들은 그렇게 쉽게 일자리를 얻지 못했고,

또 도쿄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다.

노아의 사장 호지 씨는 자신의 최고 직원이 영문학 같은 쓸데없는 것을 배우려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엄청 화를 냈다.

호지 씨는 노아가 도쿄에서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경희는 수레를 하나 더 사서

마을 다른 곳에 자리를 하나 더 잡아 수익을 두 배로 늘리자고 했지만

요셉을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요셉은 두 다리에 힘이 없어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한때는 두툼하고 튼튼했던 종아리가

이제는 딱지로 뒤덮여 앙상한 가시처럼 변했다.

요셉은 잠들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노아의 등록금을 걱정하고 있었다.

노아가 대학 시험공부를 할 때도 걱정하더니

이제는 노아의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든 노아의 봉급 없이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고,

거기에다 노아의 교육비와 요셉의 약값을 마련해야 했다.

요셉이 죽었다면 훨씬 나았으리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젊었을 때 요셉이 원하는 유일한 것은 가족을 돌보는 것이었다.

이제는 너무 무력해져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는 가족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죽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요셉이 가족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조선에서라면 옛날처럼 누군가에게 죽을 수 있게 산으로 데려달라고 해서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요셉은 오사카에 살았고, 이곳에는 야생 동물이 없었다.

요셉이 완쾌되도록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비싼 약값을 받고 고통을 아주 조금 줄여주고는

요셉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더욱 더 혐오하게 만드는 게 의사라는 작자들이었다.

요셉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최후에 닥칠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도 많았다.

요셉은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동생도 오사카로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애초에 나가사키의 일자리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요셉에게는 자식도 없었다. 왜 하나님은 이 먼 곳으로 요셉을 이끌었을까?

요셉은 고통을 겪고 있었고, 그 고통을 그럭저럭 견딜 수는 있었지만

요셉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준다는 것이었다.

요셉은 왜 자신이 지금 살아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었던 선택들을 떠올려보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

화재 이후, 고통 없이 숨 쉴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낄 때는 몇 분 동안이나마 자신의 인생에서 좋은 점을 찾아보려 애썼다.

하지만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요셉은 깨끗하게 빨아놓은 요에 누워서 실수가 분명했던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이제는 조선이나 일본에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리석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요셉은 감사할 줄 모르는 늙은이가 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여보." 요셉이 부드럽게 경희를 불렀다.

뒷방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과 앞문 근처 방에서 잠든

김창호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요셉은 경희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바닥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경희가 문간에 나타나자 요셉은 선자와 양진도 불러달라고 (recording error, missing text)

세 여자가 요셉의 요 옆 바닥에 앉았다.

"먼저 내 공구를 팔 수 있어요.

돈이 좀 될 거요.

그걸 팔면 노아의 책값과 교통비가 나올 겁니다.

가지고 있는 보석도 모두 팔아야 해요.

그것도 도움이 될 거요."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반지가 두 개 남아 있었다.

"모자수는 고로 씨에게 노아의 등록금과 방세,

식대를 가불해달라고 부탁해야 해요.

일단 그렇게 하면 당신들 세 사람이 돈을 벌어서 빚을 갚아나갈 수 있어요.

방학 동안에는 노아가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어 저축할 수 도 있을 겁니다.

노아는 와세다에 가야 합니다.

그럴 자격이 있어요.

여기서는 아무도 조선인을 고용하지 않더라도

노아가 학위를 따서 조선으로 돌아가면 더 나은 봉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어요.

아니면 미국으로 가거나.

노아는 영어를 할 줄 아니까.

노아를 교육시키는 걸 투자라고 생각해야 해요."

요셉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들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자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주실 거에요.

항상 우리가 필요한 걸 마련해주셨죠.

하나님이 당신 생명을 구해주셨을 때

우리들 생명도 함께 구해주신 거예요." 경희가 말했다.

경희가 말했다. "모자수가 집에 오면 나한테 오라고 해요.

고로 씨에게 가불을 해달라고 해야

노아의 등록금을 낼 수 있다고 말할 테니까."

선자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노아는 동생이 자기

등록금을 내게 하지 않을 깁니더.

벌써 저한테도 그래 말했고예."

선자는 요셉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고한수가 노아의 등록금과 식비를 대주겠다고 했어예.

모자수가 가불을 받아도 . . . "

"안 돼.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 생각 좀 하고 말해!

그 개자식의 돈을 받을 수는 없어! 그건 더러운 돈이야."

"쉬." 경희가 부드럽게 말했다.

"화내지 말아요."

경희는 김창호가 모시는 사장에 관한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노아가 도쿄에서 일자리를 구할 거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모자수한테

자기 등록금을 내게 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사실이고요.

노아는 자기가 등록금을 마련하겠다고 했어요.

모자수가 등록금을 내면 노아는 대학에 가지 않을 거예요."

"내가 죽었어야 했어." 요셉이 말했다.

"저런 이야기를 듣느니 죽는 게 나았어. 일을 하면서 어떻게 와세다 같은 대학에 갈 수 있겠어?

그건 불가능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아이는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내가 고로 씨에게 부탁하겠어.

고로 씨한테서 돈을 빌려야 한다고 노아에게 내가 말하겠어."

"하지만 고로 씨가 돈을 빌려줄지 확실히 모르잖습니까?

괜히 돈을 빌려달라 캤다가 모자수만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라예.

저도 고한수한테 돈을 받기는 싫지만 우짜겠습니꺼?

고한수에게 돈을 빌린 셈치고, 그 돈을 갚아나가면 되잖아예.

그러면 노아도 그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게 되고예."

선자가 말했다.

"고로 씨에게 돈을 빌렸다가 파친코에서 일할 수 있는 모자수의 미래를 망친다 해도

그게 고한수의 돈을 받는 것보다 훨씬 나아."

요셉이 단호하게 말했다. "고한수는 나쁜 사람이야.

노아를 위해서 그의 돈을 받는다면 그게 끝이 아닐 거야.

그 사람은 노아를 자기 손에 넣고 싶어 해.

내가 말 안 해도 다들 잘 알잖아.

고로 씨는 돈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고."

"하지만 고로 씨가 파친코로 번 돈이

고한수의 돈보다 더 깨끗한 이유는 뭐죠?

고한수는 건설회사와 식당을 운영해요

그런 일은 전혀 나쁜 게 아니잖아요." 경희가 말했다.

"입 다물어."

경희가 입술을 딱 다물었다.

성경에서 현명한 사람은 혀를 단단히 묶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고 싶은 것을 전부 다 말해서는 안 된다.

선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전에는 한수 한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지만

완전히 낯선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보다는 이미 한 번 돈을 주겠다고 제의했단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더 낮다고 선자는 생각했다.

고로는 이미 넘치도록 모자수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모자수는 자신의 일에 만족했다.

선자는 막 세상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모자수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모자수는 언젠가 자기 가게를 낼 꿈에 부풀어 있었다.

게다가 노아도 모자수가 돈을 빌리게 두지 않을 것이다.

요셉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지만

노아는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김창호는 어때예? 그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예?"

양진이 물었다.

"그 사람은 고한수 밑에서 일해요.

창호는 그런 큰돈을 갖고 있지 않아요.

설령 있다 해도 고한수한테서 받은 걸 겁니다.

그런 빚은 갚기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고로 씨에게 빌리는 게 제일 좋아요.

고로 씨는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받거나 노아를 해치지 않을 겁니다.

모자수도 괜찮을 거고. 이제 난 좀 쉬어야겠어요."

요셉이 말했다.

여자들은 방을 나가 문을 닫아주었다.

다음 날, 한수가 노아에게 어머니와 함께 오사카에 있는 자기 사무실에 들르라고 했다.

그날 저녁, 노아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엄마와 함께 한수를 만나러 갔다.

고한수의 사무실에는 직원 두 명이 있었는데

둘 다 검은색 정장에 빳빳한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금박을 한 쟁반에 얇은 파란색 찻잔을 얹어 가져왔다.

대기실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한수의 전화 통화가 끝나자마자 직원 두 명 중 나이가 많은 쪽이

한수의 어마어마하게 큰 사무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한수는 영국에서 들여온 마호가니 대면 책상 뒤에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축하해!" 한수가 커다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가 와줘서 정말 기쁘구나.

초밥을 먹으러 가야겠는데! 지금 갈래?"

"고맙지만 집에 돌아가야 합니더." 선자가 대답했다.

노아는 엄마가 왜 식사를 하러 가지 않으려는지 궁금해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오늘 저녁에는 다른 계획이 없었다.

한수와 만나고 나서 집에 돌아가

큰엄마가 만들어놓은 소박한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컸다.

"노아가 아주 큰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서 오늘 오라고 한 거야.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조선인들을 위해서 말이야.

네가 대학에 간다니! 그것도 우수한 일본 대학인 와세다에!

넌 위대한 인물이 한 시대를 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내고 있어.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고 있지.

많은 조선인들이 학교에 갈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넌 계속 공부하고 또 공부 했어.

심지어는 시험에 떨어졌는데도 포기하지 않았지.

넌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 정말 대단해!

네가 너무 자랑스럽구나. 아주 자랑스러워." 한수의 표정이 밝았다.

노아는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로 야단을 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안 식구들도 모두 기뻐했지만 대체로 학비 걱정을 했다.

노아도 학비 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어떻게든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일했으니 와세다에서도 일을 할 생각이었다.

와세다에 들어가고 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할 생각이었다.

"죄송하지만 얼마 전에 노아의 학비를 대줄 수 있다고 하셨지예.

정말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꺼?" 선자가 말했다.

"엄마, 안 돼요." 노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여기 온 게 아니잖아요.

창호 아저씨는 한수 아저씨가 저희를 축하해 주려고 불렀다고 그랬어요.

맞죠?" 노아는 엄마의 요구에 깜짝 놀랐다.

엄마는 무엇이든 부탁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빵집에서 시식을 하라고 주는 것도 받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노아야, 엄마는 돈을 빌리려는 기다.

빌린 돈은 전부 다 갚을 수 있다 아이가. 이자까지 쳐서 말이다."

선자가 말했다.

선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기 싫었지만 이렇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노아도 처음부터 조건을 알게 될 테니까.

이처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선자는 그냥 말해버렸다.

"노아의 등록금을 내야 합니더.

사장님이 도와줄 수 있다 카면 차용증을 써서 제 도장을 찍어주겠심더.

도장은 가져왔어예."

선자가 그 사실을 강조하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 선자는 한수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한수가 웃으면서 오만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노아는 등록금과 식비, 방세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김창호한테서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벌써 냈어.

도쿄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학교 근처에 좋은 방도 구해놨고. 다음주에 데려가서 보여줄게.

그래서 김창호에게 두 사람을 데려올 수 있는지 물어본 거야.

저녁 식사에 초대하려고. 자, 이제 초밥을 먹으러 가자고.

이 녀석은 근사한 저녁을 먹을 자격이 있어!"

한수는 간청하는 눈빛으로 선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들의 뛰어난 성취를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돈을 보냈다고예? 도쿄에 방도 구했고예?

저한테 말도 없이예? 그러면 그건 저희가 빌린 돈으로 해야 합니더."

선자가 더욱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장님, 그건 너무 너그러운 처사예요. 엄마 말씀이 옳아요.

그 돈은 저희가 돌려드려야 해요.

제가 도쿄에서 일자리를 구할 거예요.

돈을 주시는 것보다는 제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직접 돈을 벌고 싶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건 안 돼. 넌 공부를 해야 해.

넌 입학시험을 치고 또 쳐야 했어. 네가 똑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지.

넌 아주 똑똑하지만 보통 학생처럼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야.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가족을 부양하려고

정규직원으로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던 거야.

평범한 중산층 일본인 아이가 받는 적절한 과외를 받지 못했어.

전쟁 중에는 수업도 듣지 못하고 농장에 있어야 했지. 안 돼.

너와 네 엄마가 사람의 실력을 키우는 일반적인 법칙이 너한테는 통하지 않는 척하는 걸

더 이상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어.

좀 더 일찍부터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갔어야 했어.

학교를 빨리 졸업할 수 있는데 왜 멀리 돌아가려고 하나?

다 늙은 노인이 돼서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싶나?

넌 할 수 있는 한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 해.

비용은 내가 지불할게."

한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 말대로 해,

노아야. 이건 내가 책임 있는 조선인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야."

노아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사장님은 저희 가족한테 매우 친절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노아는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모자수의 남은 코트 재료로 집에서 만든 가방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아 비틀고 있었다.

노아는 엄마에게 죄송했다.

엄마는 자부심 강한 여자였기 때문에 이 상황이 수치스럽게 느껴질 것이었다.

엄마가 자신의 등록금을 내고 싶어 한다는 걸 노아는 잘 알고 있었다.

"노아야, 나가서 미에코 씨에게 식당에 전화해달라고 말해주겠니?"

한수가 물었다.

노아는 두툼한 천에 감싸인 의자에 앉아 정신을 놓은 것만 같은 엄마를 다시 쳐다보았다.

"엄마?"

선자는 벌써 문 옆에 서 있는 아들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노아가 한수와 저녁을 먹으러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노아는 아주 잘생겨 보였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 일이 노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노아는 한수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미 그 돈을 받아들였다. 와세다대학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것이다.

요셉의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당장 그만두라고, 이런 어리석은 여자 같으니, 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하지만 첫아이인 노아가 행복해했다.

노아는 엄청난 일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고

노아가 시험에 합격하기 전으로 되돌린 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반짝거리며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냉큼 빼앗을 수는 없었다.

선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노아는 그것을 한수와 저녁을 먹을 거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문이 닫히고 한수와 단둘이 남았을 때 선자가 다시 말했다.

"빌린 돈으로 하고 싶습니더 . 차용증을 쓰고 싶어예.

그래야 노아에게 제가 학비를 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예."

"선자야, 그건 안 돼.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그 애는 내 아들이야.

내가 그 애 학비를 내지 못하면 노아에게 말하겠어."

"정신 나갔어예?"

"아니. 노아의 학비를 대는 건 나한테 재정적으로 전혀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지."

"당신은 그 애 아버지가 아닙니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군. 노아는 내 아이야. 나와 같은 야망을 품고 있어.

내가 가진 능력을 갖고 있고

내 피가 섞인 아이가 이카이노의 빈민가 아이들 틈에서 썩게 놔둘 수는 없어."

선자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요셉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선자는 한수의 돈을 돌려줄 수가 없었다.

"이만 가자. 노아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배가 고플 거야." 한수가 말했다.

한수가 문을 열어 선자를 먼저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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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2. 조국. 얽히고설킨 인연. 1957년.

"돈을 모을 방법을 찾아야 해요." "We need to find a way to raise money."

경희가 말했다.

"가게를 사려고 모으고 있는 돈에서 남는 돈이 있을 거 아이가."

양진이 말했다.

"거의 다 써버렸어예."

선자가 속삭였다.

약값을 대면서 돈을 모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다. Collecting money while paying for medicine was like pouring water into a poison that fell into the bottom.

여자들은 요셉을 깨울까 봐 부엌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요셉은 최근에 피부 감염으로 끔찍한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약을 엄청나게 많이 들이켜고 나서야 간신히 잠들었다.

한의사가 이번에 지어준 아주 강한 약이 효과가 있었다.

그동안 여자들은 약값으로 많은 돈을 써야했다.

요셉에게 필요한 약제는 어마어마하게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기적으로 약을 먹어도 이제는 통증이 가시지 않아서

요셉이 끊임없이 아픔에 시달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매주 봉급을 통째로 엄마에게 드리는 모자수는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요셉 큰아버지를 치료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아도 같은 마음이었다.

온 가족이 절약하고 부지런히 일하는데도

저축한 돈은 약사를 찾아갈 때마다 사라져버리곤 했다.

노아의 와세다대학 입학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노아가 와세다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좋은 날이자 온 가족에게 있어 가장 기쁜 날이어야 했지만

가족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노아의 첫 학기 등록금 전부는 고사하고

일부마저도 마련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교가 도쿄에 있어서

노아는 일본 땅에서 가장 물가가 비싸다는 도시에서 숙박비와 식비를 내며 생활해야 했다.

노아는 학교 수업이 시작되는 첫날 직전까지

호지 씨 밑에서 계속 일하려고 했다.

그리고 대학에 다니면서 도쿄에서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었다.

선자는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선인들은 그렇게 쉽게 일자리를 얻지 못했고,

또 도쿄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다.

노아의 사장 호지 씨는 자신의 최고 직원이 영문학 같은 쓸데없는 것을 배우려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엄청 화를 냈다.

호지 씨는 노아가 도쿄에서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경희는 수레를 하나 더 사서

마을 다른 곳에 자리를 하나 더 잡아 수익을 두 배로 늘리자고 했지만

요셉을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요셉은 두 다리에 힘이 없어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한때는 두툼하고 튼튼했던 종아리가

이제는 딱지로 뒤덮여 앙상한 가시처럼 변했다.

요셉은 잠들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노아의 등록금을 걱정하고 있었다.

노아가 대학 시험공부를 할 때도 걱정하더니

이제는 노아의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든 노아의 봉급 없이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고,

거기에다 노아의 교육비와 요셉의 약값을 마련해야 했다.

요셉이 죽었다면 훨씬 나았으리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젊었을 때 요셉이 원하는 유일한 것은 가족을 돌보는 것이었다.

이제는 너무 무력해져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는 가족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죽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요셉이 가족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조선에서라면 옛날처럼 누군가에게 죽을 수 있게 산으로 데려달라고 해서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요셉은 오사카에 살았고, 이곳에는 야생 동물이 없었다.

요셉이 완쾌되도록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비싼 약값을 받고 고통을 아주 조금 줄여주고는

요셉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더욱 더 혐오하게 만드는 게 의사라는 작자들이었다.

요셉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최후에 닥칠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도 많았다.

요셉은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동생도 오사카로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애초에 나가사키의 일자리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요셉에게는 자식도 없었다. 왜 하나님은 이 먼 곳으로 요셉을 이끌었을까?

요셉은 고통을 겪고 있었고, 그 고통을 그럭저럭 견딜 수는 있었지만

요셉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준다는 것이었다.

요셉은 왜 자신이 지금 살아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었던 선택들을 떠올려보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

화재 이후, 고통 없이 숨 쉴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낄 때는 몇 분 동안이나마 자신의 인생에서 좋은 점을 찾아보려 애썼다. When I felt grateful, I spent a few minutes trying to find the good in my life.

하지만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요셉은 깨끗하게 빨아놓은 요에 누워서 실수가 분명했던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Joseph lay down on a clean, washed bed and looked back at the things that were evident in his mistake.

이제는 조선이나 일본에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리석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요셉은 감사할 줄 모르는 늙은이가 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여보." 요셉이 부드럽게 경희를 불렀다.

뒷방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과 앞문 근처 방에서 잠든

김창호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요셉은 경희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바닥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경희가 문간에 나타나자 요셉은 선자와 양진도 불러달라고 (recording error, missing text)

세 여자가 요셉의 요 옆 바닥에 앉았다.

"먼저 내 공구를 팔 수 있어요.

돈이 좀 될 거요.

그걸 팔면 노아의 책값과 교통비가 나올 겁니다.

가지고 있는 보석도 모두 팔아야 해요.

그것도 도움이 될 거요."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반지가 두 개 남아 있었다.

"모자수는 고로 씨에게 노아의 등록금과 방세,

식대를 가불해달라고 부탁해야 해요.

일단 그렇게 하면 당신들 세 사람이 돈을 벌어서 빚을 갚아나갈 수 있어요.

방학 동안에는 노아가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어 저축할 수 도 있을 겁니다.

노아는 와세다에 가야 합니다.

그럴 자격이 있어요.

여기서는 아무도 조선인을 고용하지 않더라도

노아가 학위를 따서 조선으로 돌아가면 더 나은 봉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어요.

아니면 미국으로 가거나.

노아는 영어를 할 줄 아니까.

노아를 교육시키는 걸 투자라고 생각해야 해요."

요셉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들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자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주실 거에요.

항상 우리가 필요한 걸 마련해주셨죠.

하나님이 당신 생명을 구해주셨을 때

우리들 생명도 함께 구해주신 거예요." 경희가 말했다.

경희가 말했다. "모자수가 집에 오면 나한테 오라고 해요.

고로 씨에게 가불을 해달라고 해야

노아의 등록금을 낼 수 있다고 말할 테니까."

선자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노아는 동생이 자기

등록금을 내게 하지 않을 깁니더.

벌써 저한테도 그래 말했고예."

선자는 요셉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고한수가 노아의 등록금과 식비를 대주겠다고 했어예.

모자수가 가불을 받아도 . . . "

"안 돼.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 생각 좀 하고 말해!

그 개자식의 돈을 받을 수는 없어! 그건 더러운 돈이야."

"쉬." 경희가 부드럽게 말했다.

"화내지 말아요."

경희는 김창호가 모시는 사장에 관한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노아가 도쿄에서 일자리를 구할 거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모자수한테

자기 등록금을 내게 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사실이고요.

노아는 자기가 등록금을 마련하겠다고 했어요.

모자수가 등록금을 내면 노아는 대학에 가지 않을 거예요."

"내가 죽었어야 했어." 요셉이 말했다.

"저런 이야기를 듣느니 죽는 게 나았어. 일을 하면서 어떻게 와세다 같은 대학에 갈 수 있겠어? "I'd rather die than hear stories like that. How can I go to a university like Waseda while working?

그건 불가능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아이는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내가 고로 씨에게 부탁하겠어.

고로 씨한테서 돈을 빌려야 한다고 노아에게 내가 말하겠어."

"하지만 고로 씨가 돈을 빌려줄지 확실히 모르잖습니까?

괜히 돈을 빌려달라 캤다가 모자수만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라예.

저도 고한수한테 돈을 받기는 싫지만 우짜겠습니꺼?

고한수에게 돈을 빌린 셈치고, 그 돈을 갚아나가면 되잖아예.

그러면 노아도 그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게 되고예." Then Noah will no longer owe him a debt."

선자가 말했다.

"고로 씨에게 돈을 빌렸다가 파친코에서 일할 수 있는 모자수의 미래를 망친다 해도

그게 고한수의 돈을 받는 것보다 훨씬 나아."

요셉이 단호하게 말했다. "고한수는 나쁜 사람이야.

노아를 위해서 그의 돈을 받는다면 그게 끝이 아닐 거야.

그 사람은 노아를 자기 손에 넣고 싶어 해.

내가 말 안 해도 다들 잘 알잖아.

고로 씨는 돈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고."

"하지만 고로 씨가 파친코로 번 돈이

고한수의 돈보다 더 깨끗한 이유는 뭐죠?

고한수는 건설회사와 식당을 운영해요

그런 일은 전혀 나쁜 게 아니잖아요." 경희가 말했다.

"입 다물어."

경희가 입술을 딱 다물었다.

성경에서 현명한 사람은 혀를 단단히 묶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고 싶은 것을 전부 다 말해서는 안 된다.

선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전에는 한수 한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지만

완전히 낯선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보다는 이미 한 번 돈을 주겠다고 제의했단 사람에게 To someone who has already offered to pay you once rather than bothering a complete stranger

부탁하는 게 더 낮다고 선자는 생각했다.

고로는 이미 넘치도록 모자수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모자수는 자신의 일에 만족했다.

선자는 막 세상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모자수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모자수는 언젠가 자기 가게를 낼 꿈에 부풀어 있었다. The number of hats was buoyant in his dream of opening his own shop someday.

게다가 노아도 모자수가 돈을 빌리게 두지 않을 것이다.

요셉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지만

노아는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김창호는 어때예? 그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예?"

양진이 물었다.

"그 사람은 고한수 밑에서 일해요.

창호는 그런 큰돈을 갖고 있지 않아요.

설령 있다 해도 고한수한테서 받은 걸 겁니다.

그런 빚은 갚기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고로 씨에게 빌리는 게 제일 좋아요.

고로 씨는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받거나 노아를 해치지 않을 겁니다.

모자수도 괜찮을 거고. 이제 난 좀 쉬어야겠어요."

요셉이 말했다.

여자들은 방을 나가 문을 닫아주었다.

다음 날, 한수가 노아에게 어머니와 함께 오사카에 있는 자기 사무실에 들르라고 했다.

그날 저녁, 노아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엄마와 함께 한수를 만나러 갔다.

고한수의 사무실에는 직원 두 명이 있었는데

둘 다 검은색 정장에 빳빳한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금박을 한 쟁반에 얇은 파란색 찻잔을 얹어 가져왔다.

대기실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한수의 전화 통화가 끝나자마자 직원 두 명 중 나이가 많은 쪽이

한수의 어마어마하게 큰 사무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한수는 영국에서 들여온 마호가니 대면 책상 뒤에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Hansoo was sitting on a leather chair behind a mahogany-facing desk imported from England.

"축하해!" 한수가 커다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가 와줘서 정말 기쁘구나.

초밥을 먹으러 가야겠는데! 지금 갈래?"

"고맙지만 집에 돌아가야 합니더." 선자가 대답했다.

노아는 엄마가 왜 식사를 하러 가지 않으려는지 궁금해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오늘 저녁에는 다른 계획이 없었다.

한수와 만나고 나서 집에 돌아가

큰엄마가 만들어놓은 소박한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컸다. There was a high probability of eating the simple food that my eldest mother made.

"노아가 아주 큰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서 오늘 오라고 한 거야.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조선인들을 위해서 말이야.

네가 대학에 간다니! 그것도 우수한 일본 대학인 와세다에!

넌 위대한 인물이 한 시대를 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내고 있어. You're doing everything a great man could do in an era.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고 있지.

많은 조선인들이 학교에 갈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넌 계속 공부하고 또 공부 했어.

심지어는 시험에 떨어졌는데도 포기하지 않았지.

넌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 정말 대단해!

네가 너무 자랑스럽구나. 아주 자랑스러워." 한수의 표정이 밝았다. I'm so proud of you. Very proud." Hansoo's expression brightened.

노아는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로 야단을 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안 식구들도 모두 기뻐했지만 대체로 학비 걱정을 했다. Everyone in the family was happy, but mostly worried about tuition.

노아도 학비 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어떻게든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일했으니 와세다에서도 일을 할 생각이었다.

와세다에 들어가고 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할 생각이었다.

"죄송하지만 얼마 전에 노아의 학비를 대줄 수 있다고 하셨지예.

정말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꺼?" 선자가 말했다.

"엄마, 안 돼요." 노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여기 온 게 아니잖아요.

창호 아저씨는 한수 아저씨가 저희를 축하해 주려고 불렀다고 그랬어요.

맞죠?" 노아는 엄마의 요구에 깜짝 놀랐다.

엄마는 무엇이든 부탁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빵집에서 시식을 하라고 주는 것도 받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노아야, 엄마는 돈을 빌리려는 기다.

빌린 돈은 전부 다 갚을 수 있다 아이가. 이자까지 쳐서 말이다."

선자가 말했다.

선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기 싫었지만 이렇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노아도 처음부터 조건을 알게 될 테니까.

이처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선자는 그냥 말해버렸다.

"노아의 등록금을 내야 합니더.

사장님이 도와줄 수 있다 카면 차용증을 써서 제 도장을 찍어주겠심더.

도장은 가져왔어예."

선자가 그 사실을 강조하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 선자는 한수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한수가 웃으면서 오만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노아는 등록금과 식비, 방세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김창호한테서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벌써 냈어.

도쿄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학교 근처에 좋은 방도 구해놨고. 다음주에 데려가서 보여줄게.

그래서 김창호에게 두 사람을 데려올 수 있는지 물어본 거야.

저녁 식사에 초대하려고. 자, 이제 초밥을 먹으러 가자고.

이 녀석은 근사한 저녁을 먹을 자격이 있어!"

한수는 간청하는 눈빛으로 선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들의 뛰어난 성취를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돈을 보냈다고예? 도쿄에 방도 구했고예?

저한테 말도 없이예? 그러면 그건 저희가 빌린 돈으로 해야 합니더."

선자가 더욱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장님, 그건 너무 너그러운 처사예요. 엄마 말씀이 옳아요.

그 돈은 저희가 돌려드려야 해요.

제가 도쿄에서 일자리를 구할 거예요.

돈을 주시는 것보다는 제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직접 돈을 벌고 싶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건 안 돼. 넌 공부를 해야 해.

넌 입학시험을 치고 또 쳐야 했어. 네가 똑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지.

넌 아주 똑똑하지만 보통 학생처럼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야.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가족을 부양하려고

정규직원으로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던 거야.

평범한 중산층 일본인 아이가 받는 적절한 과외를 받지 못했어.

전쟁 중에는 수업도 듣지 못하고 농장에 있어야 했지. 안 돼.

너와 네 엄마가 사람의 실력을 키우는 일반적인 법칙이 너한테는 통하지 않는 척하는 걸

더 이상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어.

좀 더 일찍부터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갔어야 했어.

학교를 빨리 졸업할 수 있는데 왜 멀리 돌아가려고 하나?

다 늙은 노인이 돼서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싶나?

넌 할 수 있는 한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 해.

비용은 내가 지불할게."

한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 말대로 해,

노아야. 이건 내가 책임 있는 조선인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야."

노아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사장님은 저희 가족한테 매우 친절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노아는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모자수의 남은 코트 재료로 집에서 만든 가방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아 비틀고 있었다.

노아는 엄마에게 죄송했다.

엄마는 자부심 강한 여자였기 때문에 이 상황이 수치스럽게 느껴질 것이었다.

엄마가 자신의 등록금을 내고 싶어 한다는 걸 노아는 잘 알고 있었다.

"노아야, 나가서 미에코 씨에게 식당에 전화해달라고 말해주겠니?"

한수가 물었다.

노아는 두툼한 천에 감싸인 의자에 앉아 정신을 놓은 것만 같은 엄마를 다시 쳐다보았다.

"엄마?"

선자는 벌써 문 옆에 서 있는 아들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노아가 한수와 저녁을 먹으러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노아는 아주 잘생겨 보였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 일이 노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노아는 한수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미 그 돈을 받아들였다. 와세다대학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것이다.

요셉의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당장 그만두라고, 이런 어리석은 여자 같으니, 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하지만 첫아이인 노아가 행복해했다.

노아는 엄청난 일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고

노아가 시험에 합격하기 전으로 되돌린 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반짝거리며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냉큼 빼앗을 수는 없었다.

선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노아는 그것을 한수와 저녁을 먹을 거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문이 닫히고 한수와 단둘이 남았을 때 선자가 다시 말했다.

"빌린 돈으로 하고 싶습니더 . 차용증을 쓰고 싶어예.

그래야 노아에게 제가 학비를 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예."

"선자야, 그건 안 돼.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그 애는 내 아들이야.

내가 그 애 학비를 내지 못하면 노아에게 말하겠어."

"정신 나갔어예?"

"아니. 노아의 학비를 대는 건 나한테 재정적으로 전혀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지."

"당신은 그 애 아버지가 아닙니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군. 노아는 내 아이야. 나와 같은 야망을 품고 있어.

내가 가진 능력을 갖고 있고

내 피가 섞인 아이가 이카이노의 빈민가 아이들 틈에서 썩게 놔둘 수는 없어."

선자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요셉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선자는 한수의 돈을 돌려줄 수가 없었다.

"이만 가자. 노아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배가 고플 거야." 한수가 말했다.

한수가 문을 열어 선자를 먼저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