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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 앨범 속의 글 (요코하마, 1976년 3월)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 앨범 속의 글 (요코하마, 1976년 3월)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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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2. 조국. 앨범 속의 글.

요코하마, 1976년 3월.

은퇴하는 형사가 자살사건에 보고서를 마무리하지 못해서

결국에는 그 사건 서류가 하루키의 책상에 떨어졌다.

조선인 중학생 남자 아이가

주택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었다.

아이 어머니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제때에 진술을 끝낼 수가 없었다.

하루키는 그 아이의 부모를 오늘 밤에 만나기로 했다.

아이의 부모는 차이나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아이 아버지는 배관공 조수였고, 어머니는 장갑 공장에서 일했다.

옥상에서 뛰어내린 아이 기무라 데쓰오는 삼남매 중 장남이었고,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 있었다.

데쓰오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조선인들이 좋아하는 마늘 냄새와 간장 냄새,

그리고 그보다 더 강한 된장 냄새가 습한 복도로 새어나와 하루키를 맞이했다.

건물주가 조선인인 6층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이었다.

아이 어머니가 기운 하나 없이 핼쑥한 얼굴로

하루키를 방 세 개짜리 집 안으로 안내했다.

하루키는 신발을 벗고 아이 어머니가 내어준 슬리퍼를 신었다.

아이 아버지는 깨끗한 작업복 차림으로 안방의 파란색 방석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아이 어머니가 쟁반에 찻잔과 편의점에서 산 듯한 비스킷을 담아 가져왔다.

아이 아버지는 책 한 권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하루키는 아이 아버지에게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네고 나서 방석에 앉았다.

아이 어머니가 하루키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고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걸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아이 아버지가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책을 하루키에게 건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셔야 합니다.

그 아이들을 처벌해야 해요."

상체가 길고 올리브색 얼굴빛에 턱이 각진 아이 아버지는

하루키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 아버지가 건내준 책은 중학교 졸업앨범이었다.

하루키는 빈 편지지 한 장을 끼워서 표시해둔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흑백 사진들이 열과 행을 맞추어 끼워져 있었다.

빙그레 웃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는 아이도 있었다.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천편일률적인 사진들이었다.

하루키는 엄마의 길쭉한 얼굴과

아버지의 작은 입을 닮은 데쓰오를 곧장 찾아냈다.

온화한 표정에 어깨가 가냘픈 소년이었다.

사진 속 아이들 얼굴 위에는 손으로 쓴 글씨들이 몇몇 보였다.

"데쓰오, 고등학교에 가서도 행운을 빌어. 노다 히로시."

"넌 정말 그림을 잘 그려. 미쓰야 가야코."

하루키는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때 아이 아버지가 앨범 앞뒤의 면지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죽어버려, 못생긴 조선인."

"보조비 챙길 생각하지 마. 너희 조선인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어."

"방귀 냄새 나는 가난한 인간들"

"네가 자살하면 내년에는 우리 학교에서 더러운 조선인 한 명이 줄어들 거야."

"아무도 널 좋아하지 않아."

"조선인들은 문제아에 돼지들이야. 지옥으로 꺼져버려. 넌 왜 여기 있니?"

"너한테서 마늘 냄새와 쓰레기 냄새가 나!"

"할 수만 있다면 네 머리를 직접 베어버리고 싶지만 내 칼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글씨체가 다양했고 위조된 것 같았다.

몇몇 글자들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여러 명이 자기 정체를 숨기려고 애쓴 것 같았다.

하루키는 앨범을 덮어서 왼쪽 바닥에 내려놓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드님이 다른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아뇨." 아이 어머니가 재빨리 대답했다.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한 번도요. 자기는 절대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했어요."

하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가 조선인이라서 그런 일을 당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건 오래전 이야기죠.

지금은 훨씬 좋아졌잖아요. 착한 일본인들도 많아요." 아이 어머니가 말했다.

앨범을 덮었는데도 그 안에 적혀 있던 말들이

하루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해보셨나요?" 아이 어머니가 물었다.

은퇴한 형사가 교사들을 만나봤다.

교사들은 데쓰오가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지만 너무 조용했다고 말했다.

"데쓰오는 최고 점수를 받았어요.

다른 아이들은 데쓰오가 자기들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데쓰오를 시기했죠.

제 아들은 세 살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어요."

아이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 아버지는 한숨을 쉬고는 한 손을 아내의 팔에 부드럽게 올렸다.

아이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 아버지가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지난겨울에 데쓰오가 학교를 그만두고

외삼촌이 하고 있는 야채 가게에서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보더군요.

이 거리 아래쪽의 작은 공원 근처의 작은 야채가게가 있어요.

처남이 야채 상자도 접고 카운터도 봐줄 남자애를 구하고 있었거든요.

데쓰오도 외삼촌 밑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가 안 된다고 했죠.

저희 두 사람 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해서

데쓰오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데쓰오 같은 뛰어난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그런 일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처남은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는 처지라

데쓰오에게 봉급을 많이 줄 수도 없었고요.

아내는 데쓰오가 전자회사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기를 바랐죠.

데쓰오가 고등학교 만 맞추면 . . . "

아이 아버지는 크고 거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야채 가게 지하에서 일하고, 재고를 관리한다니.

그건 절대 쉬운 삶이 아니에요.

데쓰오는 재능있는 아이였어요.

한 번 본 얼굴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고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었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어요."

"우리 아들은 열심히 일하는 정직한 아이였어요.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았죠.

동생들의 숙제를 도와 주었고 . . . " 아이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갑자기 아이 아버지가 하루키를 마주보았다.

"그런 글을 쓴 아이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감옥에 보내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글을 쓰게 놔둬서는 안 돼요."

아이 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쓰오가 학교를 그만두게 했어야 했어요.

야채가게 지하실에서 일하거나

숯불구이 식당에서 양파 껍질을 벗기며 사는 게 나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들이 살아 있었을 테니까요.

아내와 저는 여기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아요.

하지만 그건 가난하기 때문이죠. 부자 조선인들은 더 잘 살아요.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태어났나요?" 하루키가 물었다.

두 사람의 억양은 요코하마에서 온 토박이 일본인들 억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네, 물론이죠. 우리 부모님은 울산 출신이었지만요."

울산은 현재 남한의 속하는 도시였지만

하루키는 기무라 데쓰오의 가족이 많은 조선인들처럼 북한 정부와 연을 맺고 있다고 추측했다.

민단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기무라의 가족은 아마도 북한 학교에 보낼 학비가 부족해서

아이들을 지역 일본인 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조총련계 사람인가요?"

"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나요?" 아이 아버지가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죠.

죄송합니다. 하루키는 앨범을 힐끗 쳐다봤다.

"이 일에 대해서 학교에서도 알고 있나요?

보고서에는 다른 아이들에 관한 기록이 없었어요."

"오후에 시간을 내서 교장에게 앨범을 보여줬어요.

교장은 누가 그런 글을 썼는지 알아낼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이 아버지가 말했다.

"그랬군요." 하루키가 대답했다.

"이런 글을 쓴 아이들을 왜 처벌할 수 없죠?

왜요? 아이 어머니가 물었다.

"데쓰오가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걸

봤다는 목격자들이 여럿 있어요.

누가 아드님을 밀지는 않았죠.

이런 고약한 말을 쓰거나 하는 사람들을 모두 체포할 수는 없어서 . . . "

"그럼 왜 그 교장을 . . . "

아이 아버지가 하루키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하루키의 무력한 표정을 알아차리고는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도록 지키기만 할 뿐이죠.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그런 소리만 항상 하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루키는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저녁 8시의 '파라다이스 요코하마'는 복잡했다.

폭발하는 화산처럼 양철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고,

소형 금속 접시를 때리는

작은 망치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색색의 불빛이 삐 소리를 내면서 반짝거렸고,

아부하는 종업원들의 목청 큰 환영 인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 모든 소리 덕분에

하루키는 머릿속의 고통스러운 침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키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세로로 길쭉한 기계들 앞에 앉은 사람들 머리위로

회색 안개처럼 드리워진 담배 연기 소용돌이에도 개의치 않았다.

하루키가 게임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지배인이 달려와 차를 마시고 싶은지 물었다.

사장님은 사무실에서 기계 판매원을 만나고 있다면서

곧 내려오실 거라고 했다.

하루키와 모자수는 매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저녁을 같이 먹었고,

하루키가 모자수를 데리러 왔다.

(recording error 파)친코 게임장에 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도박으로 가욋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조용한 거리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아내가 남편 대신 아이들과 함께 잠드는 사랑 없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말 한마디 없이 서로 밀어대는

사람들로 가득한 퇴근 시간대의

푹푹 찌는 복잡한 전철을 피해서,

파친코 게임장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키가 더 젊었을 때는 파친코 게임장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요코하마로 오고 나서는 파친코 게임장에서 위안을 얻었다.

하루키는 순식간에 몇 천 엔을 잃고, 구슬이 든 상자를 하나 더 샀다.

유산을 무분별하게 쓰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무척이나 많은 돈을 저축해둔 덕분에 하루키는 해고를 당해도,

큰돈을 잃어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관계를 가질 젊은 남자에게 돈을 줄 때도 후하게 돈을 쓸 수 있었다.

모든 죄악 중에서 파친코에서 하는 도박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 같았다.

작은 금속 구슬들이 직사각형 기계 전면을 가로질러 부드럽게 지그재그로 움직었다.

하루키는 다이얼을 천천히 움직여서

구슬의 움직임을 조작했다.

죄가 되지도 않는 죄를 제가 어떻게 유죄라고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전 그런 죄를 벌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습니다.

사실은 데쓰오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루키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 너무나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하루키는 목을 매달아 죽고 싶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했다.

모든 범죄 가운데서 타살 후 자살이 최고라고 하루키는 생각했다.

할 수만 있었다면 다이스케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이스케를 죽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그런 짓을 아야메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죄가 없었다. 기계가 갑자기 멈춰버렸다.

위를 올려다보니 모자수가 플러그를 뽑아서 들고 있었다.

모자수는 검은색 정장 재킷 깃에

빨간색 파라다이스 요코하마 핀을 꽂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잃은 거야, 멍청아?"

"많이. 내 봉급의 절반 정도?"

모자수가 지갑을 꺼내 지폐 다발을 하루키에게 건넸지만

하루키는 받지 않았다.

"내 잘못이야. 가끔씩은 이기기도 하잖아. 그렇지?"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

모자수는 돈을 하루키의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모자수가 먼저 맥주를 주문했다.

주문한 맥주가 나오자 커다란 맥주병을 들어

하루키의 잔에 거품이 넘치도록 따랐다.

주인이 소금 간을 한 따뜻한 콩 요리를 내놓았다.

두 사람이 언제나 제일 먼저 먹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 꼴이 엉망이야." 모자수가 말했다.

"한 아이가 옥상에서 뛰어내렸어. 오늘 그 아이 부모를 만나야했지."

"아이고야, 몇 살인데?"

"중학생. 조선인."

"뭐?"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이 죽은 아이의 앨범에 써놓은 글을 네가 봤어야 하는데."

"내 앨범에 그런 글을 썼던 놈들이랑 똑같은 놈들이겠구나."

"진짜?" // "응. 매년 그랬어.

조선으로 돌아가라느니, 죽어버리라느니 하는소리를 해댔지. 그냥 비열한 놈들이 지껄이는 소리일 뿐이야."

"누가 그랬어? 내가 아는 애들이야?"

"오래전 일이야. 게다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애들 체포할 거야? 모자수가 웃었다.

"그러니까 그 일 때문에 기분이 꿀꿀한 거야? 그 아이때문에?"

하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조선인들한테 너무 약해." 모자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멍청아."

하루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아, 야, 왜 그래? 뭐야? 어이, 어이 하루키! 모자수가 하루키의 등을 토닥였다.

카운터 뒤에 있던 주인은 시선을 돌려 방금 손님이 떠난 자리를 닦았다.

하루키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눈물에 젖은 두 눈을 감았다.

"그 불쌍한 아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어."

모자수는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툭툭 두드렸다.

"인간은 원래 끔찍한 존재야. 맥주나 마셔."

하루키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다가 사레들려 기침을 했다.

"어렸을 때는 죽고 싶었어." 하루키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엄마한테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었어.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

하지만 유미가 죽고 나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

너도 그때 내가 어땠는지 알지?

그래도 솔로몬에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지.

게다가 엄마가, 너도 알겠지만,

노아 형이 사라지고 나서 엄마가 변해서.

난 그런 식으로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엄마는 형이 와세다 생활을 견디지 못해 부끄러워서 떠났다고 말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아.

노아 형은 학교생활을 전혀 힘들어 하지 않았거든.

형은 어딘가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자신을 찾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훌륭한 조선인 노릇에 지쳐서 그만둔 건지도 몰라.

난 절대 훌륭한 조선인이 못 되지."

모자수가 담배 불을 붙였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인생은 엿 같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야.

에쓰코는 괜찮은 여자야. 에쓰코 같은 여자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에쓰코가 식당을 열 수 있도록 도와 줄 생각이야."

"좋은 여자지. 어쩌면 또 결혼하겠꾸나."

하루키는 모자수의 새 일본인 여자친구를 좋아했다.

"에쓰코는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아.

안 그래도 자식들한테 미움을 사고 있는데

파친코 사업을 하는 조선인 남자랑 결혼하며 지옥 같을걸."

모자수가 코웃음을 쳤다.

하루키는 여전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이, 삶은 원래 괴로운 거야.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어."

하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떠나지 않았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 하루키가 말했다.

"아버지는 잊어버려. 네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셨어.

유미는 네 어머니가 최고 중의 최고라고 생각했지.

강인하고, 영리하고, 언제나 모두에게 공정한 분이셨다고.

네 어머니 한 명이 아버지 다섯 명보다 훨씬 나았어.

유미는 자신이 모셨던 일본인은 네 어머니뿐이었다고 했지."

"그래, 엄마는 훌륭한 분이셨어."

주인이 튀긴 굴과 꽈리고추 볶음을 내왔다.

하루키는 냅킨으로 눈물을 닦았고,

모자수가 하루키에게 맥주 한 잔을 더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네 앨범의 그런 글을 썼는지 몰랐어.

넌 항상 날 지켜줬잖아. 정말 몰랐어."

"잊어버려. 난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

「 앨범 속의 글 (요코하마, 1976년 3월) 」 Pachinko 파친코 [Book 2. 조국] "Schriften in einem Album (Yokohama, März 1976)" von Pachinko [Buch 2. Mutterland]. "Writings in an Album (Yokohama, March 1976)" Pachinko [Book 2. Motherland] Pachinko [Book 2. "Escritos en un álbum (Yokohama, marzo de 1976)" de Pachinko [Libro 2. Motherland].

🎵

파친코. Book 2. 조국. 앨범 속의 글.

요코하마, 1976년 3월.

은퇴하는 형사가 자살사건에 보고서를 마무리하지 못해서

결국에는 그 사건 서류가 하루키의 책상에 떨어졌다.

조선인 중학생 남자 아이가

주택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었다.

아이 어머니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제때에 진술을 끝낼 수가 없었다. Because the child's mother was hysterical, she couldn't continue with the testimony.

하루키는 그 아이의 부모를 오늘 밤에 만나기로 했다.

아이의 부모는 차이나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아이 아버지는 배관공 조수였고, 어머니는 장갑 공장에서 일했다. His father was a plumber's assistant, and his mother worked in a glove factory.

옥상에서 뛰어내린 아이 기무라 데쓰오는 삼남매 중 장남이었고,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 있었다.

데쓰오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조선인들이 좋아하는 마늘 냄새와 간장 냄새,

그리고 그보다 더 강한 된장 냄새가 습한 복도로 새어나와 하루키를 맞이했다.

건물주가 조선인인 6층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이었다. All the people who rented a six-story building with a Korean owner were Koreans.

아이 어머니가 기운 하나 없이 핼쑥한 얼굴로

하루키를 방 세 개짜리 집 안으로 안내했다.

하루키는 신발을 벗고 아이 어머니가 내어준 슬리퍼를 신었다.

아이 아버지는 깨끗한 작업복 차림으로 안방의 파란색 방석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아이 어머니가 쟁반에 찻잔과 편의점에서 산 듯한 비스킷을 담아 가져왔다.

아이 아버지는 책 한 권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The child's father had a book on his lap.

하루키는 아이 아버지에게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네고 나서 방석에 앉았다.

아이 어머니가 하루키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고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걸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아이 아버지가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책을 하루키에게 건넸다. The child's father handed Haruki the book he had placed on his lap.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셔야 합니다.

그 아이들을 처벌해야 해요."

상체가 길고 올리브색 얼굴빛에 턱이 각진 아이 아버지는 The father of a child with a long upper body, an olive-colored face and an angled chin

하루키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 아버지가 건내준 책은 중학교 졸업앨범이었다.

하루키는 빈 편지지 한 장을 끼워서 표시해둔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Haruki looked at the marked page with a blank piece of stationery inserted.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흑백 사진들이 열과 행을 맞추어 끼워져 있었다. Black and white photos of students in school uniforms sandwiched in rows and columns

빙그레 웃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는 아이도 있었다. There were children who were smiling brightly, and there were children who showed their teeth and laughed out loud.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천편일률적인 사진들이었다.

하루키는 엄마의 길쭉한 얼굴과

아버지의 작은 입을 닮은 데쓰오를 곧장 찾아냈다.

온화한 표정에 어깨가 가냘픈 소년이었다.

사진 속 아이들 얼굴 위에는 손으로 쓴 글씨들이 몇몇 보였다.

"데쓰오, 고등학교에 가서도 행운을 빌어. 노다 히로시." "Tetsuo, I wish you good luck in going to high school. Hiroshi Noda."

"넌 정말 그림을 잘 그려. 미쓰야 가야코."

하루키는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때 아이 아버지가 앨범 앞뒤의 면지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At that time, the father of the child asked me to check the front and back pages of the album.

"죽어버려, 못생긴 조선인."

"보조비 챙길 생각하지 마. 너희 조선인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어." Don't think you need to pay subsidies. You Koreans are ruining this country.

"방귀 냄새 나는 가난한 인간들" "Poor Humans Who Smell Farts"

"네가 자살하면 내년에는 우리 학교에서 더러운 조선인 한 명이 줄어들 거야." "If you commit suicide, next year there will be less than one dirty Korean in our school."

"아무도 널 좋아하지 않아."

"조선인들은 문제아에 돼지들이야. 지옥으로 꺼져버려. 넌 왜 여기 있니?" "Koreans are trouble children and pigs. Go to hell. Why are you here?"

"너한테서 마늘 냄새와 쓰레기 냄새가 나!"

"할 수만 있다면 네 머리를 직접 베어버리고 싶지만 내 칼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If I could, I'd like to cut off your head myself, but I don't want my sword dirty!"

글씨체가 다양했고 위조된 것 같았다. The writing was varied and seemed counterfeit

몇몇 글자들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여러 명이 자기 정체를 숨기려고 애쓴 것 같았다.

하루키는 앨범을 덮어서 왼쪽 바닥에 내려놓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드님이 다른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아뇨." 아이 어머니가 재빨리 대답했다.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한 번도요. 자기는 절대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했어요." Never. He said he would never be discriminated against."

하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가 조선인이라서 그런 일을 당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건 오래전 이야기죠.

지금은 훨씬 좋아졌잖아요. 착한 일본인들도 많아요." 아이 어머니가 말했다.

앨범을 덮었는데도 그 안에 적혀 있던 말들이

하루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It was deeply engraved in Haruki's heart.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해보셨나요?" 아이 어머니가 물었다.

은퇴한 형사가 교사들을 만나봤다.

교사들은 데쓰오가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지만 너무 조용했다고 말했다.

"데쓰오는 최고 점수를 받았어요.

다른 아이들은 데쓰오가 자기들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데쓰오를 시기했죠.

제 아들은 세 살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어요."

아이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 아버지는 한숨을 쉬고는 한 손을 아내의 팔에 부드럽게 올렸다. The child's father sighed and gently placed one hand on his wife's arm.

아이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 아버지가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지난겨울에 데쓰오가 학교를 그만두고

외삼촌이 하고 있는 야채 가게에서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보더군요.

이 거리 아래쪽의 작은 공원 근처의 작은 야채가게가 있어요.

처남이 야채 상자도 접고 카운터도 봐줄 남자애를 구하고 있었거든요.

데쓰오도 외삼촌 밑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가 안 된다고 했죠. Tetsuo also wanted to work for his uncle, but we said no.

저희 두 사람 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해서

데쓰오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데쓰오 같은 뛰어난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그런 일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처남은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는 처지라

데쓰오에게 봉급을 많이 줄 수도 없었고요.

아내는 데쓰오가 전자회사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기를 바랐죠.

데쓰오가 고등학교 만 맞추면 . . . "

아이 아버지는 크고 거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야채 가게 지하에서 일하고, 재고를 관리한다니.

그건 절대 쉬운 삶이 아니에요.

데쓰오는 재능있는 아이였어요.

한 번 본 얼굴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고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었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어요."

"우리 아들은 열심히 일하는 정직한 아이였어요.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았죠. I didn't harm anyone.

동생들의 숙제를 도와 주었고 . . . " 아이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갑자기 아이 아버지가 하루키를 마주보았다.

"그런 글을 쓴 아이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감옥에 보내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글을 쓰게 놔둬서는 안 돼요."

아이 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쓰오가 학교를 그만두게 했어야 했어요. The child's father shook his head. “I should have made Tetsuo drop out of school.

야채가게 지하실에서 일하거나

숯불구이 식당에서 양파 껍질을 벗기며 사는 게 나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들이 살아 있었을 테니까요.

아내와 저는 여기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아요.

하지만 그건 가난하기 때문이죠. 부자 조선인들은 더 잘 살아요.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I thought our children could live differently from us."

"여기서 태어났나요?" 하루키가 물었다.

두 사람의 억양은 요코하마에서 온 토박이 일본인들 억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네, 물론이죠. 우리 부모님은 울산 출신이었지만요."

울산은 현재 남한의 속하는 도시였지만

하루키는 기무라 데쓰오의 가족이 많은 조선인들처럼 북한 정부와 연을 맺고 있다고 추측했다. Haruki speculated that Tetsuo Kimura's family, like many Koreans, had ties to the North Korean government.

민단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기무라의 가족은 아마도 북한 학교에 보낼 학비가 부족해서

아이들을 지역 일본인 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조총련계 사람인가요?" "Are you Chochongryun?"

"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나요?" 아이 아버지가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죠.

죄송합니다. 하루키는 앨범을 힐끗 쳐다봤다.

"이 일에 대해서 학교에서도 알고 있나요?

보고서에는 다른 아이들에 관한 기록이 없었어요."

"오후에 시간을 내서 교장에게 앨범을 보여줬어요.

교장은 누가 그런 글을 썼는지 알아낼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이 아버지가 말했다.

"그랬군요." 하루키가 대답했다.

"이런 글을 쓴 아이들을 왜 처벌할 수 없죠?

왜요? 아이 어머니가 물었다.

"데쓰오가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걸

봤다는 목격자들이 여럿 있어요.

누가 아드님을 밀지는 않았죠.

이런 고약한 말을 쓰거나 하는 사람들을 모두 체포할 수는 없어서 . . . " Because we can't arrest everyone who uses or uses these nasty words. . . "

"그럼 왜 그 교장을 . . . "

아이 아버지가 하루키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하루키의 무력한 표정을 알아차리고는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The child's father looked straight at Haruki, noticed Haruki's helpless expression, and turned to the door.

"당신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도록 지키기만 할 뿐이죠. "You're just making sure nothing changes.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그런 소리만 항상 하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루키는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저녁 8시의 '파라다이스 요코하마'는 복잡했다.

폭발하는 화산처럼 양철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고,

소형 금속 접시를 때리는 Beating Small Metal Plates

작은 망치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색색의 불빛이 삐 소리를 내면서 반짝거렸고, Colorful lights flashed with beeps,

아부하는 종업원들의 목청 큰 환영 인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Loud welcome greetings from the staff members bursting out from here and there.

그 모든 소리 덕분에

하루키는 머릿속의 고통스러운 침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Haruki seemed to be able to break free from the painful silence in his head.

하루키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세로로 길쭉한 기계들 앞에 앉은 사람들 머리위로 Over the heads of people sitting in front of elongated machines

회색 안개처럼 드리워진 담배 연기 소용돌이에도 개의치 않았다.

하루키가 게임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지배인이 달려와 차를 마시고 싶은지 물었다. The manager ran up to me and asked if I would like some tea.

사장님은 사무실에서 기계 판매원을 만나고 있다면서

곧 내려오실 거라고 했다.

하루키와 모자수는 매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저녁을 같이 먹었고, Haruki and Mozasu had dinner together on a regular basis every Thursday.

하루키가 모자수를 데리러 왔다. Haruki came to pick up Mozasu

(recording error 파)친코 게임장에 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recording error Pa) Almost everyone who comes to the ⟨Pa⟩chinko game center

도박으로 가욋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It was clear that they wanted to make a little money by gambling.

하지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조용한 거리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But they wanted to run away from the quiet streets where few people greet them,

아내가 남편 대신 아이들과 함께 잠드는 사랑 없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말 한마디 없이 서로 밀어대는

사람들로 가득한 퇴근 시간대의

푹푹 찌는 복잡한 전철을 피해서, Avoid the steamy and complicated trains,

파친코 게임장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키가 더 젊었을 때는 파친코 게임장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When Haruki was younger, he wasn't very interested in the pachinko games.

하지만 요코하마로 오고 나서는 파친코 게임장에서 위안을 얻었다. But after coming to Yokohama, I found solace at the pachinko game room.

하루키는 순식간에 몇 천 엔을 잃고, 구슬이 든 상자를 하나 더 샀다. Haruki lost a few thousand yen in an instant and bought another box of marbles.

유산을 무분별하게 쓰지는 않았지만 he did not use his inheritance indiscriminately

어머니가 무척이나 많은 돈을 저축해둔 덕분에 하루키는 해고를 당해도, Even if Haruki gets fired, thanks to her mother's savings of a lot of money,

큰돈을 잃어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관계를 가질 젊은 남자에게 돈을 줄 때도 후하게 돈을 쓸 수 있었다.

모든 죄악 중에서 파친코에서 하는 도박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 같았다. It seemed like a very minor thing.

작은 금속 구슬들이 직사각형 기계 전면을 가로질러 부드럽게 지그재그로 움직었다. Tiny metal marbles moved gently in a zigzag across the front of the rectangular machine.

하루키는 다이얼을 천천히 움직여서 Haruki moves the dial slowly

구슬의 움직임을 조작했다. Manipulated the movement of marbles.

죄가 되지도 않는 죄를 제가 어떻게 유죄라고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전 그런 죄를 벌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습니다.

사실은 데쓰오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But I couldn't say that. It was something no one could say.

하루키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 너무나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하루키는 목을 매달아 죽고 싶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했다. From a young age, Haruki wanted to die by hanging, and he still thinks about it.

모든 범죄 가운데서 타살 후 자살이 최고라고 하루키는 생각했다. Of all crimes, Haruki thought that suicide after homicide was the best.

할 수만 있었다면 다이스케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을 것이다. Had he been able to, he would have killed Daisuke and committed suicide himself.

하지만 다이스케를 죽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그런 짓을 아야메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He couldn't do to Ayame what he couldn't even say anymore.

그들은 모두 죄가 없었다. 기계가 갑자기 멈춰버렸다.

위를 올려다보니 모자수가 플러그를 뽑아서 들고 있었다.

모자수는 검은색 정장 재킷 깃에

빨간색 파라다이스 요코하마 핀을 꽂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잃은 거야, 멍청아?"

"많이. 내 봉급의 절반 정도?"

모자수가 지갑을 꺼내 지폐 다발을 하루키에게 건넸지만 Mozasu took out his wallet and handed a bundle of bills to Haruki.

하루키는 받지 않았다.

"내 잘못이야. 가끔씩은 이기기도 하잖아. 그렇지?"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

모자수는 돈을 하루키의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모자수가 먼저 맥주를 주문했다.

주문한 맥주가 나오자 커다란 맥주병을 들어

하루키의 잔에 거품이 넘치도록 따랐다. I poured it into Haruki's glass until it overflowed with bubbles.

주인이 소금 간을 한 따뜻한 콩 요리를 내놓았다. The owner served hot soybean dishes seasoned with salt.

두 사람이 언제나 제일 먼저 먹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Because it was always the first dish the two of them ate.

"무슨 일이 있어? 꼴이 엉망이야." 모자수가 말했다.

"한 아이가 옥상에서 뛰어내렸어. 오늘 그 아이 부모를 만나야했지."

"아이고야, 몇 살인데?"

"중학생. 조선인."

"뭐?"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이 죽은 아이의 앨범에 써놓은 글을 네가 봤어야 하는데."

"내 앨범에 그런 글을 썼던 놈들이랑 똑같은 놈들이겠구나."

"진짜?" // "응. 매년 그랬어.

조선으로 돌아가라느니, 죽어버리라느니 하는소리를 해댔지. 그냥 비열한 놈들이 지껄이는 소리일 뿐이야."

"누가 그랬어? 내가 아는 애들이야?"

"오래전 일이야. 게다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애들 체포할 거야? 모자수가 웃었다.

"그러니까 그 일 때문에 기분이 꿀꿀한 거야? 그 아이때문에?"

하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조선인들한테 너무 약해." 모자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멍청아."

하루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아, 야, 왜 그래? 뭐야? 어이, 어이 하루키! 모자수가 하루키의 등을 토닥였다.

카운터 뒤에 있던 주인은 시선을 돌려 방금 손님이 떠난 자리를 닦았다.

하루키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눈물에 젖은 두 눈을 감았다.

"그 불쌍한 아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In Seoul, people like me are called Japanese bastards.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What the hell are we supposed to do?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어."

모자수는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툭툭 두드렸다. Mozasu found a cigarette and tapped his pocket.

"인간은 원래 끔찍한 존재야. 맥주나 마셔."

하루키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다가 사레들려 기침을 했다.

"어렸을 때는 죽고 싶었어." 하루키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엄마한테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었어.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

하지만 유미가 죽고 나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

너도 그때 내가 어땠는지 알지?

그래도 솔로몬에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지.

게다가 엄마가, 너도 알겠지만,

노아 형이 사라지고 나서 엄마가 변해서.

난 그런 식으로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엄마는 형이 와세다 생활을 견디지 못해 부끄러워서 떠났다고 말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아.

노아 형은 학교생활을 전혀 힘들어 하지 않았거든.

형은 어딘가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자신을 찾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훌륭한 조선인 노릇에 지쳐서 그만둔 건지도 몰라. Maybe he quit because he was tired of being a good Korean.

난 절대 훌륭한 조선인이 못 되지."

모자수가 담배 불을 붙였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인생은 엿 같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야. Life sucks, but it's not always like that.

에쓰코는 괜찮은 여자야. 에쓰코 같은 여자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Etsuko is a good girl. I never thought I'd meet a woman like Etsuko.

에쓰코가 식당을 열 수 있도록 도와 줄 생각이야."

"좋은 여자지. 어쩌면 또 결혼하겠꾸나." She's a good woman. Maybe you'll get married again."

하루키는 모자수의 새 일본인 여자친구를 좋아했다. Haruki liked Mozasu's new Japanese girlfriend.

"에쓰코는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아.

안 그래도 자식들한테 미움을 사고 있는데 she's still getting hate from her children.

파친코 사업을 하는 조선인 남자랑 결혼하며 지옥 같을걸." Marrying a Korean man who runs a pachinko business is hell.

모자수가 코웃음을 쳤다.

하루키는 여전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이, 삶은 원래 괴로운 거야.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어."

하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떠나지 않았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 하루키가 말했다.

"아버지는 잊어버려. 네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셨어.

유미는 네 어머니가 최고 중의 최고라고 생각했지. Yumi thought your mother was the best of the best.

강인하고, 영리하고, 언제나 모두에게 공정한 분이셨다고. she was strong, smart, and always fair to everyone.

네 어머니 한 명이 아버지 다섯 명보다 훨씬 나았어. One mother of yours is much better than five fathers.

유미는 자신이 모셨던 일본인은 네 어머니뿐이었다고 했지." Yumi said that your mother was the only Japanese she had served."

"그래, 엄마는 훌륭한 분이셨어."

주인이 튀긴 굴과 꽈리고추 볶음을 내왔다. The owner served fried oysters and stir-fried red pepper.

하루키는 냅킨으로 눈물을 닦았고, Haruki wiped the tears with a napkin,

모자수가 하루키에게 맥주 한 잔을 더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네 앨범의 그런 글을 썼는지 몰랐어.

넌 항상 날 지켜줬잖아. 정말 몰랐어."

"잊어버려. 난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