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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 Min Jin Lee ⎟ 파친코 ⟨2018 번역, 이미정 옮김⟩, 「 12년 만의 재회 (1944년 12월) 」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 12년 만의 재회 (1944년 12월) 」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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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12년 만의 재회. 1944년 12월.

오사카의 가게들은 대부분 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선자가 일하는 식당도 다른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자주 문을 닫았다.

하지만 식당의 일꾼 세 명은 여전히 일주일에 6일 가게에 나왔다.

식품은 시장에서 사실상 사라져버렸고,

배급이 나와서 상인들이 반나절 동안 길게 줄을 섰을 때도

배급량은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고 성에 차지 않았다.

생선을 얻으려면 여섯 시간은 기다려야 했고,

그래봤자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마른 멸치 약간이었다.

상황이 나쁘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다.

고위 군관계자와 연이 닿아 있다면 필요한 것을 약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돈이 많다면 언제나 암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는 있었다.

도시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시골로 가서 할머니의 기모노를 계란이나 감자와 바꿔 왔다.

식당에서 식자재 구입 업무를 담당하는 김창호는

곡물창고 두 개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식당 부엌을 불시 점검하기 좋아하는 주민연합 지도자들에게 안전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창고였고,

다른 하나는 지하실의 가짜 벽 뒤에 있었다.

그곳에는 암시장에서 사들인 식품들이 있었다.

때때로 손님들이 자기들이 먹을 고기와 술을 가져오기도 했다.

주로 오사카에서 온 부유한 사업가들과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그랬다.

저녁에 요리를 했던 사람들은 이제 떠나버리고 없었다.

그 바람에 저녁 일꾼들이 하던 일을 김창호가 다 해야 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내놓을 고기를 요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모두 김창호의 몫이었다.

한 해의 열두 번째 달, 따뜻한 겨울 아침이었다.

선자와 경희가 일을 하러 오자

김창호는 여자들에게 부엌 바깥쪽 벽에 붙여놓은 네모난 탁자 앞에 앉으라고 했다.

그들이 평소에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쓰는 탁자였다.

김창호는 찻주전자도 미리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다 자리에 앉자 경희가 각자의 컵에 차를 따라주었다.

"내일 식당 문을 닫을 겁니다." 김창호가 말했다.

"얼마나 오래예?" 선자가 물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요.

오늘 아침에 마지막 남은 쇠붙이를 내줬어요.

이제 부엌은 거의 텅 비어버렸죠.

놋쇠로 된 밥그릇과 놋대야, 냄비, 조리도구,

수저까지 모두 징발당했어요.

새 조리도구를 장만해서 다시 식당 문을 열 수 있다 해도

우리가 그런 것들을 갖고 있다는 걸 경찰이 알면 그것도 다 압수해갈 겁니다.

정부는 물건을 가져가고도 돈을 내놓지 않죠.

계속 물건을 사들일 수 없으니 . . . " 김창호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뭐, 다른 방법이 없죠."

선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의 김창호가 안됐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호가 경희를 슬쩍 쳐다봤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경희가 물었다.

이삭보다 어린 김창호는 경희를 누님 이라고 불렀다.

최근 김창호는 시장에 나갔다가 검문을 당할 때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경희에게 함께 가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경찰과 주민연합 지도자들이 군복을 입지 않은 남자들을

군복무 회피자로 의심해서 심문 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검문을 피하기 위해서 김창호는

거리에서는 장님이 쓰는 검은 안경을 썼다.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어요?" 경희가 물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적어도 저는 싸우러 나가지는 않아도 되잖아요."

김창호가 안경을 만지면서 웃었다.

다른 조선인들이 징병을 당했을 때 김창호는 시력이 나빠서 싸우러 나가지 않았고,

광산에도 끌려가지 않았다.

"잘된 거죠. 전 겁쟁이니까요."

경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창호 가 일어섰다.

"오늘 저녁에 홋가이도에서 오는 손님들이 있어요.

프라이 팬 두 개와 그릇 몇 개를 챙겨두었으니까 그걸 쓸 수 있어요.

누님, 저와 함께 시장에 같이 가주실 수 있겠어요?"

김창호가 이렇게 말하고는 선자를 돌아보았다.

"선자 씨는 여기 남아서 술 배달부를 기다려 주시겠어요?

술 한 상자를 가져오기로 했거든요.

아, 손님이 오늘 밤에 도라지 무침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래층 찬장에 말은 도라지 한 통을 넣어뒀어요.

다른 재료들도 가기 있을 거예요."

선자는 김창호가 말은 도라지와 참기름을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경희가 일어서서 스웨터와 일할 때 입는 바지 위에

낡은 파란색 코트를 걸쳤다.

경희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여인이었고

깨끗한 피부에 몸매도 여전히 늘씬했다.

그러나 눈 주위에는 자잘한 잔주름이 생겼고,

미소를 지을 때는 입 주위에 주름이 잡혔다.

힘든 부엌 일로 한때는 부드러웠던 두 손이 상했지만 경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잠잘 때 그 작은 오른손을 잡고 잠드는 요셉은

매일 절임을 담그느라 손바닥에 생겨난 붉은 흉터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삭이 죽은 후, 요셉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시무룩하고 음울한 표정으로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고 일만했다.

요셉이 변하자 집 안 분위기와 결혼 생활도 달라지고 말았다.

경희는 남편의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애썼지만 요셉의 침울한 분위기와

침묵을 떨쳐버릴 방도가 없었다.

집에서는 아이들 빼고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요셉은 경희가 어린 시절에 그토록 사랑했던 그 소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져 버렸다.

그는 이제 완전히 망가져버린 냉소적인 남자가 되었고

이것은 경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경희는 식당에서만 발랄하던 본인의 원래 모습을 내보였다.

식당에서는 김창호를 어린 남동생 대하듯 놀리고,

요리를 하면서 선자와 깔깔거렸다.

그런데 이제 이 장소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김창호와 경희가 시장으로 떠난 후, 선자는 문을 닫았다.

선자가 부엌 쪽으로 돌아서자 노크 소리가 났다.

"잊어버린 거 있어예?" 선자가 문을 열면서 말했다.

문 앞에는 회색 정장에 검정색 코트를 걸친 한수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짙었고 얼굴도 예전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턱선을 따라 약간 살이 붙었을 뿐이었다.

선자는 반사적으로 한수가 오래전에 신곤 했던

하얀 가죽 구두를 신고 있는지 확인했다.

한수는 검정색 가죽 끈 구두를 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한수가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선자는 한수한테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당신이 와 여기 있는 겁니꺼?"

"여기는 내 식당 이야. 김창호는 내 밑에서 일하지."

선자는 정신이 혼미해져 가장 가까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한수는 11년 전, 선자가 자신이 주는 은시계를 전당포에 팔았을 때

선자를 찾아냈다.

그 전당포 주인이 그 시계를 한수에게 팔려고 했던 것이다.

그 전후 사정은 흥신소에 맡겨서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한수는 선자의 일상을 추적해왔다.

이삭이 감옥에 가고 난 이후에는 선자에게 돈이 필요한 것을 알고

선자를 위해 이 일거리를 마련해줬다.

선자는 요셉에게 돈을 빌려줬던 고리대금업자도

한수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한수의 아내는 간사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맏딸이었고,

아들이 없던 한수에 장인 모리모토는

한수를 데릴사위로 들여서 자기 성을 잇게 했다.

사실 한수의 아내는 간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맏딸이었고,

아들이 없던 한수의 장인 모리모토는 한수를 데릴사위로 들여서 자기 성을 잇게 했다.

고한수의 법적 이름은 모리모토 하루였고,

그는 아내와 세 딸과 함께

오사카 외곽의 커다란 집에서 살았다.

한수는 몇 분 전에 선자가 경희와 함께 앉았던 탁자로

선자의 등을 밀어 이끌었다.

"차 한잔하지. 여기 앉아 있어. 내가 컵을 가져올게.

날 만나서 불안해하는 것 같으니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아는 모양인지 한수는 금방 부엌에서 찻잔을 가지고 돌아왔다.

선자는 여전히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한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노아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잘 생긴 데다 달리기도 잘하지."

한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선자는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떻게 그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선자는 김창호와 아이들에 관해서 나누었던 대화를 모두 떠올려보았다.

노아가 학교 수업이 없을 때는 모자수와 함께 식당에 있었던 적이 많았다.

"원하는 게 뭡니꺼?"

마침내 선자가 속마음보다 훨씬 차분한 척 하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넌 당장 오사카를 떠나야 해.

네 언니와 아주버니도 같이 가도록 설득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야.

하지만 두 사람이 가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겠지.

너와 아이들이 있을 곳을 마련해두었어."

"와예?" / "곧 있으면 여기가 폭격당할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꺼?" / "미국인들이 며칠 내로 오사카에 폭탄을 투하할 거야.

B-29가 중국에 도착했어.

지금 일본열도에는 B-29기지가 많이 발견됐어.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있는 거야.

일본 정부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

일본군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느니

일본인 소년들을 모두 죽이고 말 거야.

다행스럽게도 노아가 징병당하기 전에 전쟁이 끝날 거지만."

"하지만 다들 일본이 잘하고 있다고 하던데예."

"이웃 사람들 이야기나 신문에서 하는 소리를 믿어서는 안 돼.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

"쉬." 선자는 본능적으로 유리창과 출입문 주위를 살폈다.

한수의 반역적인 언사를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한수는 감옥에 끌려갈 수 있었다.

선자는 아이들에게 절대 일본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주의를 주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안됩니더. 큰 일을 당할 수 있으예 . . . "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못 들어."

선자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한수를 응시했다.

한수를 이렇게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12 년이 지났음에도 한수는 여전히 똑같은 얼굴로 나타났다.

선자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선자는 밝은 달빛과 차갑고 푸른 바다를 사랑하듯이 한수의 얼굴을 좋아했다.

한수는 맞은편에 앉아서

선자의 시선에 다정한 눈빛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내뱉으며 차분함을 유지했다.

주저하는 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한수는 선자의 아버지와 이삭, 아주버니,

혹은 김창호와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선자가 아는 그 어떤 사람과도 달랐다.

"선자야, 넌 오사카를 떠나야 해. 생각할 시간이 없어.

폭탄이 떨어져 이 도시가 파괴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널 찾아온 거야."

왜 더 빨리 찾아오지 않았을까?

왜 그림자처럼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자주 나를 지켜봤을까?

한수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올라서 선자는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여기를 떠나지 않을 낍니더.

저도 그럴수 . . . "

"네 아주버니를 말하는 거겠지. 그는 멍청이야.

하지만 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지. 네가 설득한다면 네 언니는 떠날 거야.

이 도시는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져 있어.

성냥불 하나만 떨어져도 다 타버릴 거라고.

그런데 미국 폭탄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어?" 한수가 말을 멈췄다.

"네 아이들이 죽을 거야. 그걸 원하는 거니?

내 딸들은 이미 오래전에 멀리 보냈어.

부모가 결정을 내려야 해. 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니까."

그때 선자는 알아차렸다.

한수는 노아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한수에게는 일본인 아내와 세 딸이 있었지만 아들이 없었다.

"당신이 어떻게 압니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아냐고예?"

"너한테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노아가 어느 학교에 다니고, 노아의 수학 선생님이 일본인인 척하는 조선인이 고,

네 남편이 제때 감옥에서 나오지 못해 죽었고,

네가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내 가족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법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겠느냐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게 내 일이야.

넌 김치를 만들고 길에서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거니?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 방법을 알아냈던 거야.

나도 살고 싶어. 내가 살아남으려면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해.

지금 난 너에게 아주 귀중한 정보를 말해주는 거야.

내가 네 아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정보를 말해 주는 거라고.

이런 정보를 헛되이 쓰지 마.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거야.

하지만 넌 네 아들들을 보호해야 해."

"아주버니는 집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낍니더."

한수가 웃었다. "그 집은 잿더미가 될 거야.

일본은 그 집이 사라져도 그 대가를 한 푼도 치르지 않을 거고."

"전쟁이 곧 끝날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말했어예."

"전쟁은 곧 끝날 거야.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아니지.

부유한 일본인들은 이미 가족들을 시골로 보냈어.

현금도 이미 금으로 바꾸었고. 부자들은 정치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못할 게 없지.

넌 부자가 아니지만 똑똑하잖니.

난 지금 너에게 오늘 떠나라고 말하는 거야."

"우째 떠나라는 말입니꺼?"

"김창호가 너와 네 아주버니, 언니, 아이들을 오사카 외곽의 농장으로 데려갈 거야.

고구마 농장 농부가 나한테 빚을 진 게 있어. 그는 큰 땅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는 먹을 게 많아.

너희들 모두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기서 일해야 할 테지만

잠잘 곳이 생기고, 먹을 것도 풍족할 거니까. 다마구치는 아이가 없어.

널 해치지 않을 거야."

"저를 왜 찾아온 겁니꺼?" 선자가 울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어.

어리석은 여자처럼 굴지마. 넌 그보다 훨씬 똑똑한 여자니까.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야. 네 집과 마찬가지로 이 식당도 파괴되고 말 거야."

한수가 빠르게 말했다. "이 건물은 나무와 벽돌 몇 개로 지은 허술한 거야.

네 아주버니도 그 집을 다른 멍청이에게 빨리 팔고 떠나야 해.

아니면 적어도 집 소유권 서류라도 갖고 가거나. 머지않아 사람들이 생쥐처럼 여기서 도망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늦기 전에 지금 떠나야 한다고.

미국인들이 이 어리석은 전쟁을 끝낼 거야.

어쩌면 오늘 밤, 아니면 몇 주 내로 말이야. 이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아주 오래 끌지는 않을 거야.

독일군도 지고 있어." 선자는 양손을 맞잡았다.

전쟁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고 모두가 전쟁에 질려버렸다.

이 식당이 없었다면

모두가 일해서 돈을 벌었다 한들 가족들은 굶어 죽었을 것이다.

옷은 낡고 구멍이 숭숭 뚫렸찌만, 천과 실, 바늘을 구할 수가 없었다.

구두닦이는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데

한수의 구두는 어떻게 저렇게 반짝거리는 걸까?

선자와 경희는 끝없는 주민연합회의를 혐오했지만

거기에 참석 하지 않으면 배급을 받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받은 군사 훈련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할머니들과 어린아이들이

날카로운 죽창으로 적을 찌르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미국 군인들이 성인 여자들과 소녀들을 강간했다면서

그 야만인들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낫다는 소리도 들었다.

식당 사무실 뒤에는 미국인들이 상륙했을 때를 대비해서 노동자들과 손님들이 사용할 죽창이 보관되어 있었고

김창호는 책상 서랍에 사냥용 칼 두 개를 보관해두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꺼? 부산으로예?"

"그곳에는 먹을 게 없어. 게다가 그곳도 안전하지 않아.

작은 마을에서 여자들이 대거 사라지고 있어." 선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도 말했잖아.

중국이나 다른 식민지에 좋은 공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을 듣지 말라고.

그런 일자리는 없어. 내 말 알겠어?

한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리 엄마는 괜찮을까예?"

"젊은 여자가 아니면 데려가지 않아. 네 엄마는 찾아볼게."

"고맙심더." 선자가 조용히 말했다.

선자는 아이들 걱정을 하느라

엄마가 무사한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귀찮아하는 학교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드문드문 보내는 편지에서 엄마는 괜찮다고만 하면서,

자신보다는 선자와 선자의 아이들 걱정을 더 많이 했다.

선자는 한수를 보지 못했던 세월만큼 엄마도 만나지 못했다.

"오늘 밤 떠날 준비를 할 수 있겠니?"

"아주버님이 제 말을 들을라 하시겠어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 . . "

"김창호가 오늘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

김창호는 지금 네 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야.

넌 김창호가 이 귀중한 정보를 자기보다도 더 높은 사장한테서 들은 거라고 말해.

김창호를 네 집으로 보내줄 수도 있어." 선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셉이 이곳을 떠나도록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망설여서는 안 돼. 아이들을 보호해야지."

"하지만 언니는 . . . "

"그 여자가 뭐? 내 말 들어. 다른 누구보다 네 아이들을 선택해야지.

지금쯤이면 그 정도는 알 때도 되지 않았어?"

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질 녘에 모두들 여기로 데려와. 김창호가 식당 문을 열어 둘 거야.

네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몰라야 해.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따라 나서기 전에 여기를 빠져 나가고 싶다면 말이야."

한수가 일어서서 냉정하게 선자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은 내버려두고 와."

「 12년 만의 재회 (1944년 12월) 」 Pachinko 파친코 [Book 1. 고향] "Wiedersehen nach 12 Jahren (Dezember 1944)" Pachinko [Buch 1. Heimatstadt] Pachinko [Buch 1. 「Reunion after 12 years (December 1944)」 Pachinko Pachinko [Book 1. Hometown] "Воссоединение через 12 лет (декабрь 1944 г.)" Пачинко [Книга 1. Родной город] Пачинко [Книг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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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ook 1. 고향. 12년 만의 재회. 1944년 12월.

오사카의 가게들은 대부분 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선자가 일하는 식당도 다른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자주 문을 닫았다.

하지만 식당의 일꾼 세 명은 여전히 일주일에 6일 가게에 나왔다.

식품은 시장에서 사실상 사라져버렸고,

배급이 나와서 상인들이 반나절 동안 길게 줄을 섰을 때도

배급량은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고 성에 차지 않았다.

생선을 얻으려면 여섯 시간은 기다려야 했고,

그래봤자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마른 멸치 약간이었다.

상황이 나쁘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다.

고위 군관계자와 연이 닿아 있다면 필요한 것을 약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돈이 많다면 언제나 암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는 있었다.

도시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시골로 가서 할머니의 기모노를 계란이나 감자와 바꿔 왔다.

식당에서 식자재 구입 업무를 담당하는 김창호는

곡물창고 두 개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식당 부엌을 불시 점검하기 좋아하는 주민연합 지도자들에게 안전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창고였고,

다른 하나는 지하실의 가짜 벽 뒤에 있었다.

그곳에는 암시장에서 사들인 식품들이 있었다. Behind it, there was food from the black market.

때때로 손님들이 자기들이 먹을 고기와 술을 가져오기도 했다.

주로 오사카에서 온 부유한 사업가들과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그랬다.

저녁에 요리를 했던 사람들은 이제 떠나버리고 없었다.

그 바람에 저녁 일꾼들이 하던 일을 김창호가 다 해야 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내놓을 고기를 요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모두 김창호의 몫이었다.

한 해의 열두 번째 달, 따뜻한 겨울 아침이었다.

선자와 경희가 일을 하러 오자

김창호는 여자들에게 부엌 바깥쪽 벽에 붙여놓은 네모난 탁자 앞에 앉으라고 했다.

그들이 평소에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쓰는 탁자였다.

김창호는 찻주전자도 미리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다 자리에 앉자 경희가 각자의 컵에 차를 따라주었다.

"내일 식당 문을 닫을 겁니다." 김창호가 말했다.

"얼마나 오래예?" 선자가 물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요.

오늘 아침에 마지막 남은 쇠붙이를 내줬어요.

이제 부엌은 거의 텅 비어버렸죠.

놋쇠로 된 밥그릇과 놋대야, 냄비, 조리도구,

수저까지 모두 징발당했어요.

새 조리도구를 장만해서 다시 식당 문을 열 수 있다 해도

우리가 그런 것들을 갖고 있다는 걸 경찰이 알면 그것도 다 압수해갈 겁니다.

정부는 물건을 가져가고도 돈을 내놓지 않죠.

계속 물건을 사들일 수 없으니 . . . " 김창호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뭐, 다른 방법이 없죠."

선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의 김창호가 안됐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호가 경희를 슬쩍 쳐다봤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경희가 물었다.

이삭보다 어린 김창호는 경희를 누님 이라고 불렀다.

최근 김창호는 시장에 나갔다가 검문을 당할 때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경희에게 함께 가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경찰과 주민연합 지도자들이 군복을 입지 않은 남자들을

군복무 회피자로 의심해서 심문 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검문을 피하기 위해서 김창호는

거리에서는 장님이 쓰는 검은 안경을 썼다.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어요?" 경희가 물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적어도 저는 싸우러 나가지는 않아도 되잖아요."

김창호가 안경을 만지면서 웃었다.

다른 조선인들이 징병을 당했을 때 김창호는 시력이 나빠서 싸우러 나가지 않았고,

광산에도 끌려가지 않았다.

"잘된 거죠. 전 겁쟁이니까요."

경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창호 가 일어섰다.

"오늘 저녁에 홋가이도에서 오는 손님들이 있어요.

프라이 팬 두 개와 그릇 몇 개를 챙겨두었으니까 그걸 쓸 수 있어요.

누님, 저와 함께 시장에 같이 가주실 수 있겠어요?"

김창호가 이렇게 말하고는 선자를 돌아보았다.

"선자 씨는 여기 남아서 술 배달부를 기다려 주시겠어요?

술 한 상자를 가져오기로 했거든요.

아, 손님이 오늘 밤에 도라지 무침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래층 찬장에 말은 도라지 한 통을 넣어뒀어요.

다른 재료들도 가기 있을 거예요."

선자는 김창호가 말은 도라지와 참기름을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경희가 일어서서 스웨터와 일할 때 입는 바지 위에

낡은 파란색 코트를 걸쳤다.

경희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여인이었고

깨끗한 피부에 몸매도 여전히 늘씬했다.

그러나 눈 주위에는 자잘한 잔주름이 생겼고,

미소를 지을 때는 입 주위에 주름이 잡혔다.

힘든 부엌 일로 한때는 부드러웠던 두 손이 상했지만 경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잠잘 때 그 작은 오른손을 잡고 잠드는 요셉은

매일 절임을 담그느라 손바닥에 생겨난 붉은 흉터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삭이 죽은 후, 요셉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시무룩하고 음울한 표정으로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고 일만했다.

요셉이 변하자 집 안 분위기와 결혼 생활도 달라지고 말았다.

경희는 남편의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애썼지만 요셉의 침울한 분위기와

침묵을 떨쳐버릴 방도가 없었다.

집에서는 아이들 빼고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요셉은 경희가 어린 시절에 그토록 사랑했던 그 소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져 버렸다.

그는 이제 완전히 망가져버린 냉소적인 남자가 되었고

이것은 경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경희는 식당에서만 발랄하던 본인의 원래 모습을 내보였다.

식당에서는 김창호를 어린 남동생 대하듯 놀리고,

요리를 하면서 선자와 깔깔거렸다.

그런데 이제 이 장소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김창호와 경희가 시장으로 떠난 후, 선자는 문을 닫았다.

선자가 부엌 쪽으로 돌아서자 노크 소리가 났다.

"잊어버린 거 있어예?" 선자가 문을 열면서 말했다.

문 앞에는 회색 정장에 검정색 코트를 걸친 한수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짙었고 얼굴도 예전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턱선을 따라 약간 살이 붙었을 뿐이었다.

선자는 반사적으로 한수가 오래전에 신곤 했던

하얀 가죽 구두를 신고 있는지 확인했다.

한수는 검정색 가죽 끈 구두를 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한수가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선자는 한수한테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당신이 와 여기 있는 겁니꺼?"

"여기는 내 식당 이야. 김창호는 내 밑에서 일하지."

선자는 정신이 혼미해져 가장 가까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한수는 11년 전, 선자가 자신이 주는 은시계를 전당포에 팔았을 때

선자를 찾아냈다.

그 전당포 주인이 그 시계를 한수에게 팔려고 했던 것이다.

그 전후 사정은 흥신소에 맡겨서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한수는 선자의 일상을 추적해왔다.

이삭이 감옥에 가고 난 이후에는 선자에게 돈이 필요한 것을 알고

선자를 위해 이 일거리를 마련해줬다.

선자는 요셉에게 돈을 빌려줬던 고리대금업자도

한수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한수의 아내는 간사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맏딸이었고,

아들이 없던 한수에 장인 모리모토는

한수를 데릴사위로 들여서 자기 성을 잇게 했다.

사실 한수의 아내는 간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맏딸이었고,

아들이 없던 한수의 장인 모리모토는 한수를 데릴사위로 들여서 자기 성을 잇게 했다.

고한수의 법적 이름은 모리모토 하루였고,

그는 아내와 세 딸과 함께

오사카 외곽의 커다란 집에서 살았다.

한수는 몇 분 전에 선자가 경희와 함께 앉았던 탁자로

선자의 등을 밀어 이끌었다.

"차 한잔하지. 여기 앉아 있어. 내가 컵을 가져올게.

날 만나서 불안해하는 것 같으니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아는 모양인지 한수는 금방 부엌에서 찻잔을 가지고 돌아왔다.

선자는 여전히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한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노아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잘 생긴 데다 달리기도 잘하지."

한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선자는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떻게 그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선자는 김창호와 아이들에 관해서 나누었던 대화를 모두 떠올려보았다.

노아가 학교 수업이 없을 때는 모자수와 함께 식당에 있었던 적이 많았다.

"원하는 게 뭡니꺼?"

마침내 선자가 속마음보다 훨씬 차분한 척 하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넌 당장 오사카를 떠나야 해.

네 언니와 아주버니도 같이 가도록 설득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야.

하지만 두 사람이 가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겠지.

너와 아이들이 있을 곳을 마련해두었어."

"와예?" / "곧 있으면 여기가 폭격당할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꺼?" / "미국인들이 며칠 내로 오사카에 폭탄을 투하할 거야.

B-29가 중국에 도착했어.

지금 일본열도에는 B-29기지가 많이 발견됐어.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있는 거야.

일본 정부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

일본군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느니

일본인 소년들을 모두 죽이고 말 거야.

다행스럽게도 노아가 징병당하기 전에 전쟁이 끝날 거지만."

"하지만 다들 일본이 잘하고 있다고 하던데예."

"이웃 사람들 이야기나 신문에서 하는 소리를 믿어서는 안 돼.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

"쉬." 선자는 본능적으로 유리창과 출입문 주위를 살폈다.

한수의 반역적인 언사를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한수는 감옥에 끌려갈 수 있었다.

선자는 아이들에게 절대 일본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주의를 주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안됩니더. 큰 일을 당할 수 있으예 . . . "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못 들어."

선자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한수를 응시했다.

한수를 이렇게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12 년이 지났음에도 한수는 여전히 똑같은 얼굴로 나타났다.

선자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선자는 밝은 달빛과 차갑고 푸른 바다를 사랑하듯이 한수의 얼굴을 좋아했다.

한수는 맞은편에 앉아서

선자의 시선에 다정한 눈빛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내뱉으며 차분함을 유지했다.

주저하는 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한수는 선자의 아버지와 이삭, 아주버니,

혹은 김창호와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선자가 아는 그 어떤 사람과도 달랐다.

"선자야, 넌 오사카를 떠나야 해. 생각할 시간이 없어.

폭탄이 떨어져 이 도시가 파괴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널 찾아온 거야."

왜 더 빨리 찾아오지 않았을까?

왜 그림자처럼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자주 나를 지켜봤을까?

한수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올라서 선자는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여기를 떠나지 않을 낍니더.

저도 그럴수 . . . "

"네 아주버니를 말하는 거겠지. 그는 멍청이야.

하지만 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지. 네가 설득한다면 네 언니는 떠날 거야.

이 도시는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져 있어.

성냥불 하나만 떨어져도 다 타버릴 거라고.

그런데 미국 폭탄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어?" 한수가 말을 멈췄다.

"네 아이들이 죽을 거야. 그걸 원하는 거니?

내 딸들은 이미 오래전에 멀리 보냈어.

부모가 결정을 내려야 해. 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니까."

그때 선자는 알아차렸다.

한수는 노아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한수에게는 일본인 아내와 세 딸이 있었지만 아들이 없었다.

"당신이 어떻게 압니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아냐고예?"

"너한테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노아가 어느 학교에 다니고, 노아의 수학 선생님이 일본인인 척하는 조선인이 고,

네 남편이 제때 감옥에서 나오지 못해 죽었고,

네가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내 가족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법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겠느냐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게 내 일이야.

넌 김치를 만들고 길에서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거니?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 방법을 알아냈던 거야.

나도 살고 싶어. 내가 살아남으려면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해.

지금 난 너에게 아주 귀중한 정보를 말해주는 거야.

내가 네 아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정보를 말해 주는 거라고.

이런 정보를 헛되이 쓰지 마.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거야.

하지만 넌 네 아들들을 보호해야 해."

"아주버니는 집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낍니더."

한수가 웃었다. "그 집은 잿더미가 될 거야.

일본은 그 집이 사라져도 그 대가를 한 푼도 치르지 않을 거고."

"전쟁이 곧 끝날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말했어예."

"전쟁은 곧 끝날 거야.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아니지.

부유한 일본인들은 이미 가족들을 시골로 보냈어.

현금도 이미 금으로 바꾸었고. 부자들은 정치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못할 게 없지.

넌 부자가 아니지만 똑똑하잖니.

난 지금 너에게 오늘 떠나라고 말하는 거야."

"우째 떠나라는 말입니꺼?"

"김창호가 너와 네 아주버니, 언니, 아이들을 오사카 외곽의 농장으로 데려갈 거야.

고구마 농장 농부가 나한테 빚을 진 게 있어. 그는 큰 땅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는 먹을 게 많아.

너희들 모두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기서 일해야 할 테지만

잠잘 곳이 생기고, 먹을 것도 풍족할 거니까. 다마구치는 아이가 없어.

널 해치지 않을 거야."

"저를 왜 찾아온 겁니꺼?" 선자가 울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어.

어리석은 여자처럼 굴지마. 넌 그보다 훨씬 똑똑한 여자니까.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야. 네 집과 마찬가지로 이 식당도 파괴되고 말 거야."

한수가 빠르게 말했다. "이 건물은 나무와 벽돌 몇 개로 지은 허술한 거야.

네 아주버니도 그 집을 다른 멍청이에게 빨리 팔고 떠나야 해.

아니면 적어도 집 소유권 서류라도 갖고 가거나. 머지않아 사람들이 생쥐처럼 여기서 도망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늦기 전에 지금 떠나야 한다고.

미국인들이 이 어리석은 전쟁을 끝낼 거야.

어쩌면 오늘 밤, 아니면 몇 주 내로 말이야. 이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아주 오래 끌지는 않을 거야.

독일군도 지고 있어." 선자는 양손을 맞잡았다.

전쟁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고 모두가 전쟁에 질려버렸다.

이 식당이 없었다면

모두가 일해서 돈을 벌었다 한들 가족들은 굶어 죽었을 것이다.

옷은 낡고 구멍이 숭숭 뚫렸찌만, 천과 실, 바늘을 구할 수가 없었다.

구두닦이는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데

한수의 구두는 어떻게 저렇게 반짝거리는 걸까?

선자와 경희는 끝없는 주민연합회의를 혐오했지만

거기에 참석 하지 않으면 배급을 받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받은 군사 훈련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할머니들과 어린아이들이

날카로운 죽창으로 적을 찌르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미국 군인들이 성인 여자들과 소녀들을 강간했다면서

그 야만인들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낫다는 소리도 들었다.

식당 사무실 뒤에는 미국인들이 상륙했을 때를 대비해서 노동자들과 손님들이 사용할 죽창이 보관되어 있었고

김창호는 책상 서랍에 사냥용 칼 두 개를 보관해두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꺼? 부산으로예?"

"그곳에는 먹을 게 없어. 게다가 그곳도 안전하지 않아.

작은 마을에서 여자들이 대거 사라지고 있어." 선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도 말했잖아.

중국이나 다른 식민지에 좋은 공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을 듣지 말라고.

그런 일자리는 없어. 내 말 알겠어?

한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리 엄마는 괜찮을까예?"

"젊은 여자가 아니면 데려가지 않아. 네 엄마는 찾아볼게."

"고맙심더." 선자가 조용히 말했다.

선자는 아이들 걱정을 하느라

엄마가 무사한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귀찮아하는 학교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드문드문 보내는 편지에서 엄마는 괜찮다고만 하면서,

자신보다는 선자와 선자의 아이들 걱정을 더 많이 했다.

선자는 한수를 보지 못했던 세월만큼 엄마도 만나지 못했다.

"오늘 밤 떠날 준비를 할 수 있겠니?"

"아주버님이 제 말을 들을라 하시겠어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 . . "

"김창호가 오늘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

김창호는 지금 네 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야.

넌 김창호가 이 귀중한 정보를 자기보다도 더 높은 사장한테서 들은 거라고 말해.

김창호를 네 집으로 보내줄 수도 있어." 선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셉이 이곳을 떠나도록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망설여서는 안 돼. 아이들을 보호해야지."

"하지만 언니는 . . . "

"그 여자가 뭐? 내 말 들어. 다른 누구보다 네 아이들을 선택해야지.

지금쯤이면 그 정도는 알 때도 되지 않았어?"

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질 녘에 모두들 여기로 데려와. 김창호가 식당 문을 열어 둘 거야.

네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몰라야 해.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따라 나서기 전에 여기를 빠져 나가고 싶다면 말이야."

한수가 일어서서 냉정하게 선자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은 내버려두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