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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무대: 2016 10월 - 11월, 별이 빛나는 밤에 (2016/11/26) (2 - Audio ~19:30)

별이 빛나는 밤에 (2016/11/26) (2 - Audio ~19:30)

얼마나 꼴도 보기 싫었는지 알아?

연숙 (전화)지우야, 엄마는....

지우 걱정 마. 나 아직 살아 있잖아.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엄마는... 제발 동욱이 아저씨랑 데이트나 해! (끊는)....

M 브릿지

E 밤, 멀리서 들리는 새 푸드득 거리는 소리

진행자 저녁들 맛있게 드시고 잘 쉬셨나요?

사람들 네....

진행자 이제 1시간 후면 별을 보러 저 산등성이로 좀 올라갈 겁니다.

사람들 (환호)오...

할아버지 위험하지 않수? 너무 캄캄해서.

할머니 이 영감아, 캄캄해야 별이 보이지.

사람들 하하하...

진행자 저희 진행자들이 길 잃지 않게 잘 안내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리 별은 몇 개 볼 수 있는데요?

진행자 (귀엽고)넌 몇 개 보고 싶은데?

누리 음... 열 개? 아니 스무 개요.

사람들 하하하...

누리부 누리야. 아빠가 오늘은 별이 비처럼 쏟아진다고 했잖아.

누리 별이 어떻게 비처럼 쏟아져?

누리부 (오버)그러게 엄마랑 집에 있지, 왜 쫓아와서는. 아하하하....

태오 (속으로)분명 아까 나한테 엄마가 없다고 했는데. 잘못 들었나?

지우 별은 몇 시간이나 보는 거예요?

진행자 새벽까지요. 혹시 너무 피곤하신 분들은 저희 진행요원을 따라 내려 오셔도 됩니다. 돗자리랑 손전등 잊지 마시고 옷도 단단히 입으시구요.

지우 호랑이는 없겠죠?

사람들 하하하...

테오 (속으로)아이씨... 내가 왜 창피하지.

진행자 (웃으며)없습니다, 여우나 늑대도요. 우리 생태계가 그렇게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들 맞아요...

진행자 그럼 진행자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조원들끼리 자유롭게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가는)....

E 사람들 웅성거리며 흩어지는

태오 (앉고)....

지우 (작게)좀 떨어져 앉지? 좁은데.

태오 (못마땅)참 내... (떨어져 꽝꽝거리고 앉는)....

할머니 (웃고)...거기 둘은 커플이여?

지우,태오 (펄쩍)아니요....

할머니 아니면 아니지, 펄쩍 뛰긴.

할아버지 왜 젊은 사람한테 쓸데없는 건 물어보고 그래. 그러니까 늙은이들 싫어하는 거야.

할머니 쓸데없긴, 아까 영감도 궁금하다고 해 놓고. (울먹)우리 손자도

잘 컸으면...

할아버지 또 쓸데없는 소리....

누리부 (조금 취하고)둘이 아는 사이는 맞지? 처음부터 반말하던데?

태오 동창이에요, 초등학교.

누리부 우와, 그럼 여기서 우연히 만나 거란 말이야? 낭만적이네, 낭만적.

태오 (속으로)애를 데려온 아빠가 왜 술은 마시고 난리야.

지우 근데 생각만큼 반갑지 않아요. 얘가 초등학교 때, 저를 엄청

괴롭혔거든요. (툭 치며)생각나지?

태오 (못 듣고 딴 소리)뭐? 또 뭘 해달라는 거야?

사람들 (웃고)....

할아버지 괴롭힌 게 아니라 좋아한 거 아냐?

태오 네? 아,아니에요...

할머니 맞구먼, 맞아. 얼굴 빨개진 거 보니....

사람들 하하하...

진행자 (조금 멀리서)자, 이제 별 보러 이동하겠습니다.

사람들 네....

E 사람들 걷는, 문자 진동음

지우 (보고)....

연숙 (문자)너 혼자 갔다며? 도대체 왜 엄마 속을 이렇게 썩여?

지우 (깊은 한숨)....

M 브릿지

E 밤, 멀리서 들리는 새 푸드득 소리, 숲 속 걷는 사람들....

진행자 (조금 멀리서)발아래 쪽 조심하시구요...

지우 (무섭고)야... 잠시만. 천천히 좀 가.

태오 니가 뭔 상관이야?

지우 ...무,무서우니까 그렇지.

태오 하하하... 아까 호랑이 있냐구 물어본 거 진짜 겁나서 그런 거야?

지우 잘난 척은. 그때 내 신발주머니 감춘 거, 너지?

태오 아,아냐. 친구들이...

지우 친구들? 너랑 몰려다니던 그 삼총사?

태오 ....응.

지우 지금도 만나냐?

태오 (흐뭇)그럼, 지금도 젤 친해.

지우 얼마나 서로 놀 사람이 없으면 아직도 몰려 다니냐, 지겹게.

태오 우씨... 확 먼저 가 버린다?

지우 (잡으며)아, 아냐...

누리부 (조금 멀리서/ 조금 가까워지며/ 계속 취해 있는 상태)저기요... 우리 누리가 안 보여요? 누리야! 누리야....

진행자 (조금 멀리서)네? 거기, 무슨 일이시죠?

누리부 (조금 멀리서, 울먹)우리 누리가 안 보인다구요. 우리 누리 못 봤어 요? 우리 누리요.... 우리 누리...

진행자 (조금 멀리서)술 드셨어요?

사람들 (조금 멀리서/웅성)애를 잃어버린 거야?/ 저 아저씨아까부터 취해있더 니.. 등등...

태오 누리? (빠르게 걷고)...

지우 (쫓아가며)야.. 천천히 좀 가.

태오 저기요, 아이가 없어졌다는 게 진짜가요?

누리부 (태오보고, 큰소리)어... 너.. 아까부터 우리 누리한테 말 시키고

그러더니, 우리 누리 어쨌어?

태오 네?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누리부 (흥분, 멱살 잡고)우리 누리 내 놔, 어디다 감췄어?

지우 이거 왜 이러세요. 얘는 지금까지 저랑 쭉 같이 왔단 말이에요.

누리부 둘이 동창이라고 하더니... 너희, 뭔 일을 꾸민 거야?

지우 뭐라구요? 아저씨... 아저씨가 아이 잃어버린 맘은 알겠는데, 우리는...

태오 (화난/정색)당신이 아버지잖아요. 아버지면 아버지답게 자기 아이를

책임져야지, 왜 남한테 자기 애 행방을 물어요?

지우 (당황)야... 너 왜 그래?

태오 밥도 제대로 안 챙겨주고 부인도 없으면서 있는 척 하고....

사람들 (웅성웅성)...

누리부 이 자식이...(태오 뺨 때리고)....

태오 (억울)왜 때려요? 왜?

누리부 그래... 나 이혼했다. 그게 뭐?

지우 (진행자에게)저기요.. 저 아저씨 그만 가서 주무시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진행자 아휴, 그래야 할 거 같네요.

누리부 야, 니들 나 무시하지 마! 그래, 나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마누라 도 없다... 그런 사람은 별 보러 오면 안 되는 거냐? 안 되는 거냐 구?

누리 (달려오고)...아빠....

누리부 (안고, 울며)누리야. 어디 갔었어. 아빤 너 없이 못 산단 말이야...

M 짧은 브릿지

할머니 아이구 미안하구려. 얘가 우리랑 오다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잠깐 쉰다는 게...

할아버지 그러게 진행자한테 얘기하고 쉬자니까.

할머니 (풀죽어)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지 알았죠...

누리부 (버럭)너, 이 녀석... 아빠가 어디 가면 꼭 얘기하라고 했어, 안 했어?

아이 (큰소리 우는)아앙.....

지우 (달래며)울지 마, 울지 마.....

여자 (궁시랑)왜 애는 데려오는 거야. 데려왔으면 잘 챙기든가.

남자 (궁시랑)노인네들은 또 어떻고. 젊은 사람들 오는데 끼어서는....

할아버지 뭐야? 늙으면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

남자 그런 얘기가 아니라... 야간에 별 보는 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무리잖아요, 솔직히.

할머니 미안하구려. 우린 그만 내려가요, 영감.

할아버지 (버럭)가긴 어딜 가. 여기까지 왔는데 별 봐야지.

사람들 (수근수근) 그냥 내려들 가시지.../ 노인네들 고집이 보통 아냐../

(젊은 남녀 나무라는) 저 젊은 사람들 말이 넘 심하네.../ 왜 저래?

(노인vs젊은남녀 양쪽에 대한 눈총/웅성거림)

진행자 (난처) 아... 저, 아무래도... 두 분 어르신은 저쪽 진행요원을 따라 내려가시는 게 어떠신...

할아버지 우리 손자가 재작년에 수학여행 가다 사고로 죽었수.

사람들 .....!

할머니 (순간 흐느끼는)...

할아버지 누가 그러데, 어려서 죽으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된다고. 그 얘길 우리 할멈이 듣고 와서는... (울먹이는)....

태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서 올라가죠. 시간도 벌써 많이 지났는데....

지우 그래요. 별보고 싶어서 똑같이 회비 내고 온 건데, 누가 무슨

권리로 그걸 차별해요?

사람들 (일동 꿀먹은 벙어리/ 몇 명만) 그럽시다../ 어서 갑시다.....

진행자 그럼 조금 더 이동해서 각자 편하게 자리 잡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M 긴 브릿지

E 돗자리 깔고 눕는, 바람 좀 불고

태오 (혼잣말)우와.. 별 진짜 많다. (가방에서 술병 꺼내 마시고)....

그래, 별이 별인 것처럼 난 나야. 어떤 상황이든.

지우 (다가와)야, 왜 이렇게 먼 데 자리를 잡았어?

태오 설마 나 찾아 온 거야?

지우 아니, 내가 가려던 길목이라 잠시 멈춘 거야. 나도 술... (마시고)...

태오 야... 아무튼 뭐든 자기 맘대로라니까.

E 핸드폰 진동음

태오 전화 안 받아?

지우 안 받아도 돼.

태오 그럼 꺼 놓던가. 아니 별 보러 오면서 핸드폰은 왜 켜나?

E 핸드폰 벨소리

태오 (놀라 받고)...여보세요?

지우 하하하.....

친구1 (전화)야, 한지우한테 고백했어? 아니 진도 좀 나갔어?

태오 (작게)미친놈, 넌 잠도 없냐? (끊고).... (딴청)와 별이 많네.

지우 (옆에 앉고)... 정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속 별 같다.. 태오 너 그림 잘 그리더라? 하긴 옛날부터 소질이 있긴 했어.

지우 뭐야. 내 보물 1호 그림노트를 몰래 본 거야?

태오 몰래 보긴, 그게 아니라... 야, 근데 우리 조원들은 다 그렸는데

왜 난 안 그렸어?

지우 그렸는데.

태오 그렸다구? 어디 그 노트 다시 꺼내 봐.

지우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며).. 여기.... 여기 밴댕이 그렸잖아.

태오 야! 너 정말...

지우 하하하.... 나도 너 가끔 생각났어.

태오 뭐?

지우 니가 나, 자전거 가르쳐 줬잖아.

E 공원 일각,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 소리(회상)

10살지우 (혼잣말)이게 왜 자꾸 넘어지지?

10살태오 (자전거 타고 다가와)바보. 페달을 발로 밟아야 안 넘어지지.

10살지우 누가 너보고 물어봤어?

10살태오 암만 해 봐라, 그게 혼자 움직이나. (쌩 가는)...

10살지우 (혼잣말)강태오! 내가 꼭 너보다 잘 타고 만다. (자전거 타려

애를 쓰는데 자꾸 쓰러지려 한다).... 왜 안 되지....

10살태오 (다가와 자전거 잡고 밀며)... 자 출발....

10살지우 (놀라고)어... 야, 그렇게 밀면 어떻게 해?

10살태오 넌 앞만 보고 페달이나 밟아.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자전거는

페달을 밟으면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구.

10살지우 (밟고)어... 야... 손 놓으면 안 돼. 절대 놓지 마, 강태오.

10살태오 걱정 마... (손 놓고, 혼잣말, 미소)뭐야, 나보다 금방 배우잖아.

10살지우 (자전거 타고 점점 멀어지며)야, 놓지 마.. 절대 놓지 마...

E 산 속, 멀리서 들리는 부엉이 소리(현실)

태오 근데 갑자기 왜 이사 간 거야?

지우 .... 그럴 일이 있었어.

태오 이제 자전거는 완전 잘 타겠다?

지우 아니. .. 그날 이후 타 본 적 없어.

태오 왜?

지우 나 그때부터 아팠거든. (툭)백혈병이야.

태오 (못 알아듣고 궁시랑)백혈병은 무슨. 공주병이겠... (하다, 멍하니)뭐?

지우 그래서 병원치료 받느라 이사 간 거야.

태오 정,정말이야?

지우 야! 너까지 그런 눈으로 날 봐야겠니?

태오 아,아니.... 난 그냥....

지우 (밝게)와, 이렇게 밖에 나오니 살 것 같다. (술 마시고)...우리 춤출래?

태오 뭐?

지우 (주며)이 이어폰 꽂아 봐....

태오 (얼결에 받고)... 나, 춤 못 추는데....

E 음악(펄프픽션 중 ‘you never can tell') 지우 (춤추며).... (웃는)....

태오 (놀라보는).... (웃고)... 잘 추네.

지우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너도 춰 봐. 사실 내 버킷리스트에 써 놓은

일이긴 한데 너랑 할 줄은 몰랐다, 나도.

태오 (속으로)버킷리스트? (지우에게 담담)나는 뭐 너랑 춤추는 게

좋은 줄 아냐.... (춤추는)...

두사람 (신나 막춤 추며 웃는)......

E 음악, 잠시 컸다가 작아지고

M 브릿지

사람들 (조금 멀리서)우와 별똥별 떨어진다../ 시작인가 보다... (웅성웅성)...

E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핸드폰으로 찍는 소리

누리 (조금 멀리서)아빠, 하늘에 눈이 내린 것 같아.

누리부 (조금 멀리서, 울먹)넌 어쩜 니네 엄마랑 똑같은 말을 하냐.

누리 (조금 멀리서)아빠. 나 엄마 많이 닮았어?

누리부 (조금 멀리서)응. 아주 많이. 이리 와 봐. (안고)아휴, 우리 이쁜 딸...

누리 (조금 멀리서, 질색)아빠, 수염 따가워...

누리부 (조금 멀리서)하하하....

할아버지 (조금 멀리서)아이구 우리 손자가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친구들과 놀고 있네.

할머니 (조금 멀리서, 울먹)잘 있지? 이 할미 보여? 보이냐구?

할아버지 (조금 멀리서)우리도 곧 갈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할머니 (조금 멀리서)미안하다... 미안해.....

태오 (중얼) 사람들은 정말 저마다 다 사연이 있나봐.

지우 그렇지. 설마 너도 사연이 있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지?

태오 .. 있어, 나도. 사연.

지우 뭔데?

태오 사실은 나...

E 핸드폰 진동음

지우 아, 정말 귀찮게 하네. (조금 걸어가 받는)왜, 자꾸 전화야?

연숙 (운전하며 전화)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거길 혼자 가면 어떻게 해?

지우 괜찮아.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119 불러 줄 사람, 여기도 아주 많아.

연숙 (전화)거기 꼼짝 마, 엄마가 지금 가고 있으니까.

동욱 (전화)나도 같이 간다, 지우야.

지우 아저씨까지 정말 왜 그래요?

동욱 (전화)그렇게 가고 싶었으면 엄마를 걱정시키지 말았어야지.

지우 (한숨)....

연숙 (전화)약은 잘 챙겨 먹었어? 밥은? 그거 산 속에 들어가서

별 보는 거라며? 춥지 않아?

지우 한 가지씩만 질문하지.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나 어린애 아니라구. 제발 나.. 숨 좀 쉬게 해 줘. 엄마가 하는 그 걱정이, 날 얼마나 숨

막히게 하는지 알아?

연숙 (전화)그래,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지우 (화난)엄마가 뭘 잘못 해? 내가 그냥 아픈거라구. 그게 왜 엄마

잘못이야?

연숙 (전화, 흐느끼고)....

동욱 (전화)지우야.. 엄마한테 너무 그러지 마. 엄마도...

지우 (퍼붓는)아저씨도 똑같아요. 날 동정하지 않는 척 하면서 내가

불쌍해서 죽겠죠? 그래서 선뜻 우리 엄마랑 결혼도 못 하고...

연숙 (전화)한지우. 가서 얘기 해...

지우 싫어. (끊고, 혼잣말)정말 지겨워.... (배터리 빼고 오는).....

태오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아? 그리고 왜 배터리까지 빼?

지우 (쌀쌀)상관 마. 너처럼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자란 애가

뭘 안다구 참견이야.

태오 방금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구 얘기 한 거 생각 안 나? 난 사실...

지우 (가소롭고)애써 거짓말 할 필요 없어. 나도 이미 동정 받는 것에

익숙하니까. (가는)....

태오 (놀라)야, 어디가. 어디 가냐구.. (쫓아가는).....

M 브릿지

지우 (올라가는)....

태오 야, 어디 가는 거야?

지우 따라 오지 마. (하다 넘어지고)엄마야...

태오 (따라가 잡고)괜찮아?

지우 상관 마.

태오 어디 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려다 줄게. 너 그러다 길 잃으면

어쩌려고 그래?

E 뭔가 쓱 지나가고, 멀리서 들리는 까마귀 소리

지우 (무섭고)맘,맘대로 해... (가는)....

태오 (혼잣말)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쫓아가며 헉헉, 혼잣말)아프다는 애가 왜 저렇게 빨라.

E 바람 불고, 마른 나뭇잎 흔들리고

지우 (조금 멀리서, 심호흡)....

태오 (혼잣말)뭐야, 쟤가 왜 저?어. (기겁)야, 내려 와. 그 바위엔

왜 올라 간 거야?

지우 (조금 멀리서)여기가 우리나라에서 별하고 가장 가까운 곳이래.

태오 뭐?

지우 (조금 멀리서)난 이제 별로 돌아갈 거야. 내 그림공책과 함께.

태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지우 (조금 멀리서)고흐가 그랬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 거라고.

태오 죽는 다구...? 너 설마...?

지우 (조금 멀리서)지금까지는 내가 운명에 끌려 다녔지만 이제는

내 의지대로 운명을 결정하려고. 그래서 여기 온 거야.

태오 무섭게 왜 그래? 내려 와. 아까는 그렇게 벌벌 떨더니....

지우 (조금 멀리서 담담)그러게, 막상 끝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안 무섭네.

태오 이 바보야. 니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끝내면 너희 엄마가 얼마나

슬퍼하시겠어?

지우 (조금 멀리서)그래서 끝내려는 거야. 엄마가.. 그만 힘들었으면 좋겠거든.

태오 (올라가며)야, 한지우.... 희망을 버리면 안 돼. 그리고...

지우 (조금 멀리서)가까이 오지 마. 확 뛰어 내릴... (하다, 노트 떨어뜨리고)..

E 까마귀 울며 날아가고

지우 (조금 멀리서, 비명)아악... 내 노트...

태오 (몹시 놀라고)한지우...


별이 빛나는 밤에 (2016/11/26) (2 - Audio ~19:30) On a Starry Night (2016/11/26) (2 - Audio ~19:30)

얼마나 꼴도 보기 싫었는지 알아?

연숙 (전화)지우야, 엄마는....

지우 걱정 마. 나 아직 살아 있잖아.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엄마는... 제발 동욱이 아저씨랑 데이트나 해! (끊는)....

M 브릿지

E 밤, 멀리서 들리는 새 푸드득 거리는 소리

진행자 저녁들 맛있게 드시고 잘 쉬셨나요?

사람들 네....

진행자 이제 1시간 후면 별을 보러 저 산등성이로 좀 올라갈 겁니다.

사람들 (환호)오...

할아버지 위험하지 않수? 너무 캄캄해서.

할머니 이 영감아, 캄캄해야 별이 보이지.

사람들 하하하...

진행자 저희 진행자들이 길 잃지 않게 잘 안내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리 별은 몇 개 볼 수 있는데요?

진행자 (귀엽고)넌 몇 개 보고 싶은데?

누리 음... 열 개? 아니 스무 개요.

사람들 하하하...

누리부 누리야. 아빠가 오늘은 별이 비처럼 쏟아진다고 했잖아.

누리 별이 어떻게 비처럼 쏟아져?

누리부 (오버)그러게 엄마랑 집에 있지, 왜 쫓아와서는. 아하하하....

태오 (속으로)분명 아까 나한테 엄마가 없다고 했는데. 잘못 들었나?

지우 별은 몇 시간이나 보는 거예요?

진행자 새벽까지요. 혹시 너무 피곤하신 분들은 저희 진행요원을 따라 내려 오셔도 됩니다. 돗자리랑 손전등 잊지 마시고 옷도 단단히 입으시구요.

지우 호랑이는 없겠죠?

사람들 하하하...

테오 (속으로)아이씨... 내가 왜 창피하지.

진행자 (웃으며)없습니다, 여우나 늑대도요. 우리 생태계가 그렇게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들 맞아요...

진행자 그럼 진행자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조원들끼리 자유롭게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가는)....

E 사람들 웅성거리며 흩어지는

태오 (앉고)....

지우 (작게)좀 떨어져 앉지? 좁은데.

태오 (못마땅)참 내... (떨어져 꽝꽝거리고 앉는)....

할머니 (웃고)...거기 둘은 커플이여?

지우,태오 (펄쩍)아니요....

할머니 아니면 아니지, 펄쩍 뛰긴.

할아버지 왜 젊은 사람한테 쓸데없는 건 물어보고 그래. 그러니까 늙은이들 싫어하는 거야.

할머니 쓸데없긴, 아까 영감도 궁금하다고 해 놓고. (울먹)우리 손자도

잘 컸으면...

할아버지 또 쓸데없는 소리....

누리부 (조금 취하고)둘이 아는 사이는 맞지? 처음부터 반말하던데?

태오 동창이에요, 초등학교.

누리부 우와, 그럼 여기서 우연히 만나 거란 말이야? 낭만적이네, 낭만적.

태오 (속으로)애를 데려온 아빠가 왜 술은 마시고 난리야.

지우 근데 생각만큼 반갑지 않아요. 얘가 초등학교 때, 저를 엄청

괴롭혔거든요. (툭 치며)생각나지?

태오 (못 듣고 딴 소리)뭐? 또 뭘 해달라는 거야?

사람들 (웃고)....

할아버지 괴롭힌 게 아니라 좋아한 거 아냐?

태오 네? 아,아니에요...

할머니 맞구먼, 맞아. 얼굴 빨개진 거 보니....

사람들 하하하...

진행자 (조금 멀리서)자, 이제 별 보러 이동하겠습니다.

사람들 네....

E 사람들 걷는, 문자 진동음

지우 (보고)....

연숙 (문자)너 혼자 갔다며? 도대체 왜 엄마 속을 이렇게 썩여?

지우 (깊은 한숨)....

M 브릿지

E 밤, 멀리서 들리는 새 푸드득 소리, 숲 속 걷는 사람들....

진행자 (조금 멀리서)발아래 쪽 조심하시구요...

지우 (무섭고)야... 잠시만. 천천히 좀 가.

태오 니가 뭔 상관이야?

지우 ...무,무서우니까 그렇지.

태오 하하하... 아까 호랑이 있냐구 물어본 거 진짜 겁나서 그런 거야?

지우 잘난 척은. 그때 내 신발주머니 감춘 거, 너지?

태오 아,아냐. 친구들이...

지우 친구들? 너랑 몰려다니던 그 삼총사?

태오 ....응.

지우 지금도 만나냐?

태오 (흐뭇)그럼, 지금도 젤 친해.

지우 얼마나 서로 놀 사람이 없으면 아직도 몰려 다니냐, 지겹게.

태오 우씨... 확 먼저 가 버린다?

지우 (잡으며)아, 아냐...

누리부 (조금 멀리서/ 조금 가까워지며/ 계속 취해 있는 상태)저기요... 우리 누리가 안 보여요? 누리야! 누리야....

진행자 (조금 멀리서)네? 거기, 무슨 일이시죠?

누리부 (조금 멀리서, 울먹)우리 누리가 안 보인다구요. 우리 누리 못 봤어 요? 우리 누리요.... 우리 누리...

진행자 (조금 멀리서)술 드셨어요?

사람들 (조금 멀리서/웅성)애를 잃어버린 거야?/ 저 아저씨아까부터 취해있더 니.. 등등...

태오 누리? (빠르게 걷고)...

지우 (쫓아가며)야.. 천천히 좀 가.

태오 저기요, 아이가 없어졌다는 게 진짜가요?

누리부 (태오보고, 큰소리)어... 너.. 아까부터 우리 누리한테 말 시키고

그러더니, 우리 누리 어쨌어?

태오 네?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누리부 (흥분, 멱살 잡고)우리 누리 내 놔, 어디다 감췄어?

지우 이거 왜 이러세요. 얘는 지금까지 저랑 쭉 같이 왔단 말이에요.

누리부 둘이 동창이라고 하더니... 너희, 뭔 일을 꾸민 거야?

지우 뭐라구요? 아저씨... 아저씨가 아이 잃어버린 맘은 알겠는데, 우리는...

태오 (화난/정색)당신이 아버지잖아요. 아버지면 아버지답게 자기 아이를

책임져야지, 왜 남한테 자기 애 행방을 물어요?

지우 (당황)야... 너 왜 그래?

태오 밥도 제대로 안 챙겨주고 부인도 없으면서 있는 척 하고....

사람들 (웅성웅성)...

누리부 이 자식이...(태오 뺨 때리고)....

태오 (억울)왜 때려요? 왜?

누리부 그래... 나 이혼했다. 그게 뭐?

지우 (진행자에게)저기요.. 저 아저씨 그만 가서 주무시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진행자 아휴, 그래야 할 거 같네요.

누리부 야, 니들 나 무시하지 마! 그래, 나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마누라 도 없다... 그런 사람은 별 보러 오면 안 되는 거냐? 안 되는 거냐 구?

누리 (달려오고)...아빠....

누리부 (안고, 울며)누리야. 어디 갔었어. 아빤 너 없이 못 산단 말이야...

M 짧은 브릿지

할머니 아이구 미안하구려. 얘가 우리랑 오다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잠깐 쉰다는 게...

할아버지 그러게 진행자한테 얘기하고 쉬자니까.

할머니 (풀죽어)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지 알았죠...

누리부 (버럭)너, 이 녀석... 아빠가 어디 가면 꼭 얘기하라고 했어, 안 했어?

아이 (큰소리 우는)아앙.....

지우 (달래며)울지 마, 울지 마.....

여자 (궁시랑)왜 애는 데려오는 거야. 데려왔으면 잘 챙기든가.

남자 (궁시랑)노인네들은 또 어떻고. 젊은 사람들 오는데 끼어서는....

할아버지 뭐야? 늙으면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

남자 그런 얘기가 아니라... 야간에 별 보는 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무리잖아요, 솔직히.

할머니 미안하구려. 우린 그만 내려가요, 영감.

할아버지 (버럭)가긴 어딜 가. 여기까지 왔는데 별 봐야지.

사람들 (수근수근) 그냥 내려들 가시지.../ 노인네들 고집이 보통 아냐../

(젊은 남녀 나무라는) 저 젊은 사람들 말이 넘 심하네.../ 왜 저래?

(노인vs젊은남녀 양쪽에 대한 눈총/웅성거림)

진행자 (난처) 아... 저, 아무래도... 두 분 어르신은 저쪽 진행요원을 따라 내려가시는 게 어떠신...

할아버지 우리 손자가 재작년에 수학여행 가다 사고로 죽었수.

사람들 .....!

할머니 (순간 흐느끼는)...

할아버지 누가 그러데, 어려서 죽으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된다고. 그 얘길 우리 할멈이 듣고 와서는... (울먹이는)....

태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서 올라가죠. 시간도 벌써 많이 지났는데....

지우 그래요. 별보고 싶어서 똑같이 회비 내고 온 건데, 누가 무슨

권리로 그걸 차별해요?

사람들 (일동 꿀먹은 벙어리/ 몇 명만) 그럽시다../ 어서 갑시다.....

진행자 그럼 조금 더 이동해서 각자 편하게 자리 잡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M 긴 브릿지

E 돗자리 깔고 눕는, 바람 좀 불고

태오 (혼잣말)우와.. 별 진짜 많다. (가방에서 술병 꺼내 마시고)....

그래, 별이 별인 것처럼 난 나야. 어떤 상황이든.

지우 (다가와)야, 왜 이렇게 먼 데 자리를 잡았어?

태오 설마 나 찾아 온 거야?

지우 아니, 내가 가려던 길목이라 잠시 멈춘 거야. 나도 술... (마시고)...

태오 야... 아무튼 뭐든 자기 맘대로라니까.

E 핸드폰 진동음

태오 전화 안 받아?

지우 안 받아도 돼.

태오 그럼 꺼 놓던가. 아니 별 보러 오면서 핸드폰은 왜 켜나?

E 핸드폰 벨소리

태오 (놀라 받고)...여보세요?

지우 하하하.....

친구1 (전화)야, 한지우한테 고백했어? 아니 진도 좀 나갔어?

태오 (작게)미친놈, 넌 잠도 없냐? (끊고).... (딴청)와 별이 많네.

지우 (옆에 앉고)... 정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속 별 같다.. 태오 너 그림 잘 그리더라? 하긴 옛날부터 소질이 있긴 했어.

지우 뭐야. 내 보물 1호 그림노트를 몰래 본 거야?

태오 몰래 보긴, 그게 아니라... 야, 근데 우리 조원들은 다 그렸는데

왜 난 안 그렸어?

지우 그렸는데.

태오 그렸다구? 어디 그 노트 다시 꺼내 봐.

지우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며).. 여기.... 여기 밴댕이 그렸잖아.

태오 야! 너 정말...

지우 하하하.... 나도 너 가끔 생각났어.

태오 뭐?

지우 니가 나, 자전거 가르쳐 줬잖아.

E 공원 일각,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 소리(회상)

10살지우 (혼잣말)이게 왜 자꾸 넘어지지?

10살태오 (자전거 타고 다가와)바보. 페달을 발로 밟아야 안 넘어지지.

10살지우 누가 너보고 물어봤어?

10살태오 암만 해 봐라, 그게 혼자 움직이나. (쌩 가는)...

10살지우 (혼잣말)강태오! 내가 꼭 너보다 잘 타고 만다. (자전거 타려

애를 쓰는데 자꾸 쓰러지려 한다).... 왜 안 되지....

10살태오 (다가와 자전거 잡고 밀며)... 자 출발....

10살지우 (놀라고)어... 야, 그렇게 밀면 어떻게 해?

10살태오 넌 앞만 보고 페달이나 밟아.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자전거는

페달을 밟으면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구.

10살지우 (밟고)어... 야... 손 놓으면 안 돼. 절대 놓지 마, 강태오.

10살태오 걱정 마... (손 놓고, 혼잣말, 미소)뭐야, 나보다 금방 배우잖아.

10살지우 (자전거 타고 점점 멀어지며)야, 놓지 마.. 절대 놓지 마...

E 산 속, 멀리서 들리는 부엉이 소리(현실)

태오 근데 갑자기 왜 이사 간 거야?

지우 .... 그럴 일이 있었어.

태오 이제 자전거는 완전 잘 타겠다?

지우 아니. .. 그날 이후 타 본 적 없어.

태오 왜?

지우 나 그때부터 아팠거든. (툭)백혈병이야.

태오 (못 알아듣고 궁시랑)백혈병은 무슨. 공주병이겠... (하다, 멍하니)뭐?

지우 그래서 병원치료 받느라 이사 간 거야.

태오 정,정말이야?

지우 야! 너까지 그런 눈으로 날 봐야겠니?

태오 아,아니.... 난 그냥....

지우 (밝게)와, 이렇게 밖에 나오니 살 것 같다. (술 마시고)...우리 춤출래?

태오 뭐?

지우 (주며)이 이어폰 꽂아 봐....

태오 (얼결에 받고)... 나, 춤 못 추는데....

E 음악(펄프픽션 중 ‘you never can tell') 지우 (춤추며).... (웃는)....

태오 (놀라보는).... (웃고)... 잘 추네.

지우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너도 춰 봐. 사실 내 버킷리스트에 써 놓은

일이긴 한데 너랑 할 줄은 몰랐다, 나도.

태오 (속으로)버킷리스트? (지우에게 담담)나는 뭐 너랑 춤추는 게

좋은 줄 아냐.... (춤추는)...

두사람 (신나 막춤 추며 웃는)......

E 음악, 잠시 컸다가 작아지고

M 브릿지

사람들 (조금 멀리서)우와 별똥별 떨어진다../ 시작인가 보다... (웅성웅성)...

E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핸드폰으로 찍는 소리

누리 (조금 멀리서)아빠, 하늘에 눈이 내린 것 같아.

누리부 (조금 멀리서, 울먹)넌 어쩜 니네 엄마랑 똑같은 말을 하냐.

누리 (조금 멀리서)아빠. 나 엄마 많이 닮았어?

누리부 (조금 멀리서)응. 아주 많이. 이리 와 봐. (안고)아휴, 우리 이쁜 딸...

누리 (조금 멀리서, 질색)아빠, 수염 따가워...

누리부 (조금 멀리서)하하하....

할아버지 (조금 멀리서)아이구 우리 손자가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친구들과 놀고 있네.

할머니 (조금 멀리서, 울먹)잘 있지? 이 할미 보여? 보이냐구?

할아버지 (조금 멀리서)우리도 곧 갈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할머니 (조금 멀리서)미안하다... 미안해.....

태오 (중얼) 사람들은 정말 저마다 다 사연이 있나봐.

지우 그렇지. 설마 너도 사연이 있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지?

태오 .. 있어, 나도. 사연.

지우 뭔데?

태오 사실은 나...

E 핸드폰 진동음

지우 아, 정말 귀찮게 하네. (조금 걸어가 받는)왜, 자꾸 전화야?

연숙 (운전하며 전화)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거길 혼자 가면 어떻게 해?

지우 괜찮아.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119 불러 줄 사람, 여기도 아주 많아.

연숙 (전화)거기 꼼짝 마, 엄마가 지금 가고 있으니까.

동욱 (전화)나도 같이 간다, 지우야.

지우 아저씨까지 정말 왜 그래요?

동욱 (전화)그렇게 가고 싶었으면 엄마를 걱정시키지 말았어야지.

지우 (한숨)....

연숙 (전화)약은 잘 챙겨 먹었어? 밥은? 그거 산 속에 들어가서

별 보는 거라며? 춥지 않아?

지우 한 가지씩만 질문하지.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나 어린애 아니라구. 제발 나.. 숨 좀 쉬게 해 줘. 엄마가 하는 그 걱정이, 날 얼마나 숨

막히게 하는지 알아?

연숙 (전화)그래,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지우 (화난)엄마가 뭘 잘못 해? 내가 그냥 아픈거라구. 그게 왜 엄마

잘못이야?

연숙 (전화, 흐느끼고)....

동욱 (전화)지우야.. 엄마한테 너무 그러지 마. 엄마도...

지우 (퍼붓는)아저씨도 똑같아요. 날 동정하지 않는 척 하면서 내가

불쌍해서 죽겠죠? 그래서 선뜻 우리 엄마랑 결혼도 못 하고...

연숙 (전화)한지우. 가서 얘기 해...

지우 싫어. (끊고, 혼잣말)정말 지겨워.... (배터리 빼고 오는).....

태오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아? 그리고 왜 배터리까지 빼?

지우 (쌀쌀)상관 마. 너처럼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자란 애가

뭘 안다구 참견이야.

태오 방금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구 얘기 한 거 생각 안 나? 난 사실...

지우 (가소롭고)애써 거짓말 할 필요 없어. 나도 이미 동정 받는 것에

익숙하니까. (가는)....

태오 (놀라)야, 어디가. 어디 가냐구.. (쫓아가는).....

M 브릿지

지우 (올라가는)....

태오 야, 어디 가는 거야?

지우 따라 오지 마. (하다 넘어지고)엄마야...

태오 (따라가 잡고)괜찮아?

지우 상관 마.

태오 어디 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려다 줄게. 너 그러다 길 잃으면

어쩌려고 그래?

E 뭔가 쓱 지나가고, 멀리서 들리는 까마귀 소리

지우 (무섭고)맘,맘대로 해... (가는)....

태오 (혼잣말)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쫓아가며 헉헉, 혼잣말)아프다는 애가 왜 저렇게 빨라.

E 바람 불고, 마른 나뭇잎 흔들리고

지우 (조금 멀리서, 심호흡)....

태오 (혼잣말)뭐야, 쟤가 왜 저?어. (기겁)야, 내려 와. 그 바위엔

왜 올라 간 거야?

지우 (조금 멀리서)여기가 우리나라에서 별하고 가장 가까운 곳이래.

태오 뭐?

지우 (조금 멀리서)난 이제 별로 돌아갈 거야. 내 그림공책과 함께.

태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지우 (조금 멀리서)고흐가 그랬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 거라고.

태오 죽는 다구...? 너 설마...?

지우 (조금 멀리서)지금까지는 내가 운명에 끌려 다녔지만 이제는

내 의지대로 운명을 결정하려고. 그래서 여기 온 거야.

태오 무섭게 왜 그래? 내려 와. 아까는 그렇게 벌벌 떨더니....

지우 (조금 멀리서 담담)그러게, 막상 끝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안 무섭네.

태오 이 바보야. 니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끝내면 너희 엄마가 얼마나

슬퍼하시겠어?

지우 (조금 멀리서)그래서 끝내려는 거야. 엄마가.. 그만 힘들었으면 좋겠거든.

태오 (올라가며)야, 한지우.... 희망을 버리면 안 돼. 그리고...

지우 (조금 멀리서)가까이 오지 마. 확 뛰어 내릴... (하다, 노트 떨어뜨리고)..

E 까마귀 울며 날아가고

지우 (조금 멀리서, 비명)아악... 내 노트...

태오 (몹시 놀라고)한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