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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생활기 - 자유조선방송, 제102화 4월15일

제102화 4월15일

사월의 봄 날은 다가오는데

내 마음 한없이 설레이여라

원수님 탄생하신 만경대 그리며

너와 나 10점 꽃 활짝 피우자,

인민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썼던 시 구절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4월 15일, 해마다 이 날은 조선 사람 모두가 환희와 기쁨으로 들끓었다. 유치원 때는 사랑의 선물 사탕 봉지를 안고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 라고 웨치며 초상화 앞에서 인사했고, 중학교 시절엔 한 두 달 전부턴 오후마다 집단체조훈련에 열중했다. 강도 높은 훈련 때문에 다리가 후둘거리고 허리가 아파 서있기도 힘들었지만 원수님께 충성하고자 열심히 참가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충성의 노래모임”준비로 밤을 샜다. 하도 노래를 좋아한 덕에 그 때만큼은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노래선률은 왜 그리도 좋던지, 그 때 부르던 노래는 지금도 들으면 가슴이 뭉쿨할 정도로 강렬하다.

초소에 수령님이 찾아오시여

다정하게 우리들을 품에 안고서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니

너무 기뻐 그이 품에 얼굴 묻었네 ~

이 노랠 부르며 감격과 환희에 넘쳐,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성의 마음 간직하던 그 시절이 감회가 새롭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빠진 짓이 아닐 수 없지만 그 땐 왜 그리 눈물도 많았는지, 94년 7월 8일엔 청천벽력과도 같은 수령님의 서거 소식에 며칠 동안 펑펑 울었고, 그 후 해마다 4월 15이 되면 눈물 범벅이 되어 노래 했었다.

고향 떠나 10여년이 지난 오늘 날 나에게 4월 15일은 과연 어떤 의미로 남았는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거늘, 그 날의 내 눈물은 그저 헛 웃음으로, 분노와 한으로 뒤바뀌었다.

백성의 굶주림은 외면한 채 죽은 시신 하나를 위해 수억 딸라나 들여 치레한 시신궁전! 300만의 시체를 거뜬히 딛고 올라선 기념궁전의 김일성의 미라를 생각할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 땐 김일성의 미라를 만들고 시신궁전을 꾸리기 위해 수억을 들이는 지도 몰랐고, 설사 알았다 해도 수령님을 영원히 모시는 사업이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굶어죽고 길가에 꼬쩨비들이 늘어나도 “철천의 원쑤 미국 놈”만 증오하며 적개심을 키웠으니까,

하지만 금수산 기념궁전을 위해 9억 딸라를 들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그 배신감을 어찌 한 두마디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오직 당과 수령만을 믿고 사는 굶주린 백성의 죽음을 어떻게 그렇게 외면할 수가 있었는지, 산 사람들이 무리로 고통을 겪을 때 죽은 김일성은 수억 딸라를 먹었다는 건 세상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온갖 허구와 기만으로 가득찬 추악한 독재정권은 더 이상 나에게, 우리 조선인민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죽는 순간까지 저주를 받아야 할 것이다.

올해도 그 뻔뻔한 김씨 왕족은 금수산태양궁전법을 내놓았다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궁전이 그 무슨 수령영생의 대기념비이고 조선민족의 존엄의 상징이며, 민족번영의 만년유산이라고 떠벌이고 있다.

억이 막히고 통탄할 노릇이다. 자기의 안락과 권력만을 위해 수백만의 백성이 기아와 굶주림에 혜매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저들이 어떻게 조선민족의 상징이고, 유산이란 말인가, 산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죽은 시신을 위한 법이라니, 죽은300만 인민들의 목숨은, 아니, 전 조선인민의 산 목숨도 김일성, 김정일의 시체 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저 무지한 독재 무리들에게 하늘이여 철추를 내리시라~


제102화 4월15일 Episode 102 April 15

사월의 봄 날은 다가오는데 The spring days of April are approaching.

내 마음 한없이 설레이여라 My heart is fluttering endlessly

원수님 탄생하신 만경대 그리며 Drawing Mangyongdae, the birthplace of the enemy

너와 나 10점 꽃 활짝 피우자, You and me 10 Let the flowers bloom,

인민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썼던 시 구절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I still vividly remember a poem I wrote in Korean class when I was at People's School.

4월 15일, 해마다 이 날은 조선 사람 모두가 환희와 기쁨으로 들끓었다. 유치원 때는 사랑의 선물 사탕 봉지를 안고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 라고 웨치며 초상화 앞에서 인사했고, 중학교 시절엔 한 두 달 전부턴 오후마다 집단체조훈련에 열중했다. 강도 높은 훈련 때문에 다리가 후둘거리고 허리가 아파 서있기도 힘들었지만 원수님께 충성하고자 열심히 참가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충성의 노래모임”준비로 밤을 샜다. 하도 노래를 좋아한 덕에 그 때만큼은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노래선률은 왜 그리도 좋던지, 그 때 부르던 노래는 지금도 들으면 가슴이 뭉쿨할 정도로 강렬하다.

초소에 수령님이 찾아오시여

다정하게 우리들을 품에 안고서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니

너무 기뻐 그이 품에 얼굴 묻었네 ~

이 노랠 부르며 감격과 환희에 넘쳐,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성의 마음 간직하던 그 시절이 감회가 새롭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빠진 짓이 아닐 수 없지만 그 땐 왜 그리 눈물도 많았는지, 94년 7월 8일엔 청천벽력과도 같은 수령님의 서거 소식에 며칠 동안 펑펑 울었고, 그 후 해마다 4월 15이 되면 눈물 범벅이 되어 노래 했었다.

고향 떠나 10여년이 지난 오늘 날 나에게 4월 15일은 과연 어떤 의미로 남았는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거늘, 그 날의 내 눈물은 그저 헛 웃음으로, 분노와 한으로 뒤바뀌었다.

백성의 굶주림은 외면한 채 죽은 시신 하나를 위해 수억 딸라나 들여 치레한 시신궁전! 300만의 시체를 거뜬히 딛고 올라선 기념궁전의 김일성의 미라를 생각할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 땐 김일성의 미라를 만들고 시신궁전을 꾸리기 위해 수억을 들이는 지도 몰랐고, 설사 알았다 해도 수령님을 영원히 모시는 사업이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굶어죽고 길가에 꼬쩨비들이 늘어나도 “철천의 원쑤 미국 놈”만 증오하며 적개심을 키웠으니까,

하지만 금수산 기념궁전을 위해 9억 딸라를 들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그 배신감을 어찌 한 두마디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오직 당과 수령만을 믿고 사는 굶주린 백성의 죽음을 어떻게 그렇게 외면할 수가 있었는지, 산 사람들이 무리로 고통을 겪을 때 죽은 김일성은 수억 딸라를 먹었다는 건 세상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온갖 허구와 기만으로 가득찬 추악한 독재정권은 더 이상 나에게, 우리 조선인민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죽는 순간까지 저주를 받아야 할 것이다.

올해도 그 뻔뻔한 김씨 왕족은 금수산태양궁전법을 내놓았다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궁전이 그 무슨 수령영생의 대기념비이고 조선민족의 존엄의 상징이며, 민족번영의 만년유산이라고 떠벌이고 있다.

억이 막히고 통탄할 노릇이다. 자기의 안락과 권력만을 위해 수백만의 백성이 기아와 굶주림에 혜매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저들이 어떻게 조선민족의 상징이고, 유산이란 말인가, 산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죽은 시신을 위한 법이라니, 죽은300만 인민들의 목숨은, 아니, 전 조선인민의 산 목숨도 김일성, 김정일의 시체 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저 무지한 독재 무리들에게 하늘이여 철추를 내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