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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냉정해지는 것도 온기있던 한 때가 전제된다.

냉정해지는 것도 온기있던 한 때가 전제된다.

냉정해지는 것도 온기있던 한 때가 전제된다. 차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을 음미할 때 처럼.

네, 이 책에 또 흥미로운 점 중에하나는요. 시인들이 언어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는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밌는데요. 아까 제가 백일장 얘기를 하면서 시인들이 어떤 사물을 다르게 본다 이렇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또 하나 시인들의 좋은 시인들의 특징은 언어를 민감하게 바라보죠. 그래서 보통사람들과…. 시인의 가장 특징은.. 보통사람들은 언어를 뭉퉁그려서 대충 비슷하면 차이들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죠. 비슷한 말들을 조금씩 틀리게 씁니다. 조금씩 틀리게 쓰고 그것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죠. 음감이 예민한 사람들과 음감이 둔한 사람들 뭐 이런 사람들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제가 옛날에 대학다닐 때 국악연구회라는 동호회에 있었는데, 동아리에 있었는데, 거기서 제가 음을 연주하고 있으면 음감이 아주 예민한 작곡과 친구들이 듣다가 못 참고 얘길 하는거예요. 합주하는 둘중에 하나가 ¼음 낮게 계속 연주를 하고있다는 거예요. 음이 안 맞는 다는거죠. 하지만 1/4음이나 1/8음 이런 것은 저 같은 사람은 잘 인지를 할 수 없는 음인거죠. 저는 잘 맞다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아주 소음이었던 것이죠. 마찬가지로 시인들은 언어를 미세하게 구분해서 쓰는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들이고 그런 재능이 또 있는 분들이죠. 그런것을 보통은 숨기고 있습니다만, 훔긴다기 보다는 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김소연 시인은 이번에 그것을 산문으로 썼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유쾌, 상쾌, 경쾌, 통쾌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고민스럽고 복잡한 국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경쾌한 사람은 고민을 휘발시킬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 줄 안다.

유쾌함에는 복잡함을 줄인 흔적이, 상쾌함에는 불순물을 줄인 흔적이, 경쾌함에는 무게를 줄인 흔적이, 통쾌함에는 앙금을 없앤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유쾌해지고, 좋은 공간에 놓였을 때 상쾌해지며, 좋은 컨디션일때 경쾌해지고, 지리한 장마처럼 오래묵은 골칫거리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될 때 통쾌해진다.

나쁜 사람의 불행을 구경하며 우리는 유쾌하거나 상쾌하거나 경쾌해질 수는 없지만 통쾌해지기도 하는걸 보면, 통쾌하다는 것의 쾌감이 위험한 수위에서 찰랑대는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네, 어떻습니까? 재밌죠? 네 유쾌, 상쾌, 경쾌, 통쾌…전에 어떤 CF에서는 이중에 세 단어를 가지고 그냥 뭐 차이를 무시하고 써버리죠? 그렇지만 시인은 그런 것을 구분해서 씁니다. 이런 식으로 짝을 지어놓은게 많은 데요. 하나만 더 읽어 볼까요?

동정 ,연민

동정은 행동으로 표출되고 연민은 마음으로 표출된다. 동정보다는 연민 때문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묶인다. 마음이 묶여버려서 연민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정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은 그것을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느낀다면, 연민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핍감을 느낀다.

요컨대 동정은 이질감을 은연중에 과시한다면 연민은 동질감을 사무치게 형상화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동정한다면 우리는 119 구조대를 부를 테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연민한다면 우리는 팔을 뻗어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동정은 오직 사랑 때문에, 사랑의 내용을 망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연민은 사랑의 형식을 망가뜨릴지라도 내용은 채우려는 쪽으로 나아간다.

네, 이 동정과 연민.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감정을 시인이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해 주었는데요. 이 밖에도 여기는 뭐 재밌는게 참 많습니다. 저는 요새 뭐 요가를 좀 배우러 다니는데요. 거기서 명상을 하라고 음악을 틀어주죠? 명상음악, 주로 뉴에이지 음악인데요. 그거를 듣고있으면 저는 사실은 명상이 잘 안 됩니다. 훈련이 안 돼서 그런지 마음의 경영이 안 돼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잡생각만 떠오르고 그렇습니다.

냉정해지는 것도 온기있던 한 때가 전제된다. Being cold is predicated on being warm. 冷静になるのも、暖かかった頃が前提となる。

냉정해지는 것도 온기있던 한 때가  전제된다. It presupposes a time when there was warmth to become cold. 차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을 음미할 때 처럼. Like sipping a cup of tea and a sip of cigarettes.

네, 이 책에 또 흥미로운 점 중에하나는요. 시인들이 언어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는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밌는데요. It's fun to see how poets approach language. 아까 제가 백일장 얘기를 하면서 시인들이 어떤 사물을 다르게 본다 이렇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또 하나 시인들의 좋은 시인들의 특징은 언어를 민감하게 바라보죠. 그래서 보통사람들과…. So with ordinary people... . 시인의 가장 특징은.. 보통사람들은 언어를 뭉퉁그려서 대충 비슷하면 차이들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죠. 비슷한 말들을 조금씩 틀리게 씁니다. We use similar words little by little incorrectly. 조금씩 틀리게 쓰고 그것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죠. 음감이 예민한 사람들과 음감이 둔한 사람들 뭐 이런 사람들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It is similar to the difference between those with a sensitive pitch and those with a dull pitch. 제가 옛날에 대학다닐 때 국악연구회라는 동호회에 있었는데, 동아리에 있었는데, 거기서 제가 음을 연주하고 있으면 음감이 아주 예민한 작곡과 친구들이 듣다가 못 참고 얘길 하는거예요. Back in the day, when I was in college, I was in a club called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Research Association, and I was in a club, and when I play notes there, I compose a song with a very sensitive pitch and my friends listen and talk about it. 합주하는 둘중에 하나가 ¼음 낮게 계속 연주를 하고있다는 거예요. One of the two ensembles is that they keep playing down to a quarter note. 음이 안 맞는 다는거죠. It doesn't sound right. 하지만 1/4음이나 1/8음 이런 것은 저 같은 사람은 잘 인지를 할 수 없는 음인거죠. However, 1/4 note or 1/8 note is a note that people like me cannot recognize well. 저는 잘 맞다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아주 소음이었던 것이죠. I was playing with great joy that it fits well, but it was very noise to him. 마찬가지로 시인들은 언어를 미세하게 구분해서 쓰는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들이고 그런 재능이 또 있는 분들이죠. Likewise, poets are people who are trained to write finely divided languages, and they have such talent. 그런것을 보통은 숨기고 있습니다만, 훔긴다기 보다는 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김소연 시인은 이번에 그것을 산문으로 썼어요. I usually hide that, but rather than steal it, I express it as a poem, but poet Soyeon Kim wrote it in prose this time.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For example, something like this.

유쾌, 상쾌, 경쾌, 통쾌 Pleasant, refreshing, cheerful, exhilarating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A cheerful person uses jokes appropriately, a refreshing person knows how to laugh at a joke, a cheerful person knows how to take a joke nicely, and a cheerful person knows how to raise the level of jokes.

고민스럽고 복잡한 국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경쾌한 사람은 고민을 휘발시킬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 줄 안다. In a distressing and complex phase, a pleasant person knows how to briefly summarize a situation, a refreshing person knows the core of their worries, a cheerful person knows how to volatilize their worries, and a cheerful person knows how to reverse their worries.

유쾌함에는 복잡함을 줄인 흔적이, 상쾌함에는 불순물을 줄인 흔적이, 경쾌함에는 무게를 줄인 흔적이, 통쾌함에는 앙금을 없앤 흔적이 남아있다. There are traces of reduced complexity for pleasantness, traces of reduced impurities for freshness, traces of weight reduction for lightness, and traces of removing sediment for exhilaration.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유쾌해지고, 좋은 공간에 놓였을 때 상쾌해지며, 좋은 컨디션일때 경쾌해지고, 지리한 장마처럼 오래묵은 골칫거리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될 때 통쾌해진다.

나쁜 사람의 불행을 구경하며 우리는 유쾌하거나 상쾌하거나 경쾌해질 수는 없지만 통쾌해지기도 하는걸 보면, 통쾌하다는 것의 쾌감이 위험한 수위에서 찰랑대는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Looking at the misfortune of a bad person, we can't be pleasant, refreshing, or cheerful, but seeing that it also gets cheerful, it is certain that the pleasure of being cheerful is a feeling of fluttering at a dangerous level.

네, 어떻습니까? 재밌죠? 네 유쾌, 상쾌, 경쾌, 통쾌…전에 어떤 CF에서는 이중에 세 단어를 가지고 그냥 뭐 차이를 무시하고 써버리죠? Yes cheerful, refreshing, cheerful, cheerful… In some CFs before, you have three words in the double and just ignore the difference and use it? 그렇지만 시인은 그런 것을 구분해서 씁니다. However, the poet writes them separately. 이런 식으로 짝을 지어놓은게 많은 데요. There are many pairs like this. 하나만 더 읽어 볼까요?

동정 ,연민 Sympathy, compassion

동정은 행동으로 표출되고 연민은 마음으로 표출된다. Compassion is expressed through actions, and compassion is expressed through the heart. 동정보다는 연민 때문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묶인다. Compassion rather than sympathy hurts and binds us more. 마음이 묶여버려서 연민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Compassion is often not helpful because the mind is tied up.

동정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은 그것을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느낀다면, 연민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핍감을 느낀다.

요컨대 동정은 이질감을 은연중에 과시한다면 연민은 동질감을 사무치게 형상화한다. In short, if sympathy shows off a sense of disparity, compassion embodies a sense of homogeneity. 물에 빠진 사람을 동정한다면 우리는 119 구조대를 부를 테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연민한다면 우리는 팔을 뻗어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If we sympathize with the drowning person, we will call the 119 rescue team, but if we sympathize with the drowning person, we will have no choice but to reach out and reach out.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동정은 오직 사랑 때문에, 사랑의 내용을 망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연민은 사랑의 형식을 망가뜨릴지라도 내용은 채우려는 쪽으로 나아간다. If sorrowful compassion for loved ones only because of love, it goes toward ruining the contents of love, while intense compassion for loved ones goes toward filling the contents even though it breaks the form of love.

네, 이 동정과 연민. Yes, this sympathy and compassion.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감정을 시인이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해 주었는데요. The poet clearly expressed the feelings we know vaguely in language. 이 밖에도 여기는 뭐 재밌는게 참 많습니다. 저는 요새 뭐 요가를 좀 배우러 다니는데요. 거기서 명상을 하라고 음악을 틀어주죠? 명상음악, 주로 뉴에이지 음악인데요. 그거를 듣고있으면 저는 사실은 명상이 잘 안 됩니다. Listening to that, I can't actually meditate well. 훈련이 안 돼서 그런지 마음의 경영이 안 돼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잡생각만 떠오르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