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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9 - 안톤 체홉 “공포” - Part 2

Episode 9 - 안톤 체홉 “공포” - Part 2

“친구가 없으니까 지루하신 거군요. 들판에 사람을 보내서 그이를 불러와야겠네요.”

그리고 드미트리 페트로비치가 오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당신 친구가 왔네요. 좋으시겠어요.”

이런 식으로 일 년 반이 흘러갔다.

어느 칠월의 일요일, 나와 드미트리 페트로비치는 소일거리 삼아 클루쉬노라는 큰 마을로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갔다. 우리가 가게들을 둘러보는 사이에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그날 저녁을 아마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비누처럼 생긴 치즈와 돌처럼 딱딱하고 타르 냄새가 나는 소시지를 산 다음, 맥주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선술집으로 향했다. 마부는 말의 편자를 갈기 위해 대장간에 가야 했으므로 우리는 그에게 교회 옆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산 물건들에게 관해 이야기를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걸어가는 동안, 마치 탐정처럼 은밀한 태도로 묵묵히 우리 뒤를 밟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군에서 ‘40명의 순교자'라는 꽤나 이상한 별명으로 통하는 남자였다. ‘40명의 순교자'는 다름 아닌 가브릴라 세베로프, 혹은 줄여서 가브류쉬카로서 한동안 나의 하인으로 있다가 술버릇 때문에 쫓겨난 자였다. 그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집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똑같은 죄로 쫓겨났던 것이다. 그는 지독한 술꾼이었으며 그의 운명 자체가 그 사람 자신처럼 온통 술과 방탕에 절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신부였고 어머니는 귀족이었으므로 그는 출신상으로 보면 특권층에 속했다. 하지만 그의 핼쑥하고 비굴하고 땀에 절은 얼굴과 벌써 세어가는 붉은 수염, 그리고 너덜너덜한 저고리와 바지 밖으로 비어져 나온 셔츠를 보고있노라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특권층의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교육받은 사람임을 자처하면서 자신은 신학교를 다니다가 담배를 피운 일 때문에 퇴학당했노라고 말하곤 했다. 나중에는 주교청 직속 성가대에서 노래를 했으며 수도원에서도 이 년 정도 살다가 쫓겨났는데, 이번에는 흡연이 아니라 ‘나약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두 개의 주를 도보로 편력하면서 교회 감독국이며 이런저런 관청들에 청원서를 제출했고 네 번이나 재판정에 서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우리 군에 눌러앉아 하인, 산지기, 사냥개지기, 교회 수위 노릇을 닥치는 대로 하다가 바람난 과부 요리사와 결혼했으며 마침내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해서 흙탕물과 쓰레기를 벗 삼아 지내고 있었다. 때문에 이제는 그가 자신의 고상한 출신내력을 늘어놓을 때면 무슨 전설을 전하는 것처럼 스스로도 반신반의할 정도였다. 이 이야기를 할 당시에 그는 수의사가 사냥꾼을 사칭하면서 거처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종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선술집을 나온 우리는 교회로 가서 현관에 앉아 마부를 기다렸다. ‘40명의 순교자'는 멀찌감치 서서 입에다 손을 대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침이 날 때는 거기에다 예의 바르게 하겠다는 시늉처럼 보였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다. 저녁 공기의 눅눅한 냄새가 짙게 풍겨왔고 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별이 보이는 청명한 하늘에는 단 두 조각의 구름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하나는 컸고 하나는 그보다 좀 작아서 마치 외로운 모자 처럼 보이는 두 구름은 저녁 노을이 사라져가는 서쪽을 향해 사이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멋진 날씨야.”

드미트리 페트로비치가 말했다.

“정말 대단하죠……." '40명의 순교자‘가 맞장구를 치면서 입을 손으로 가리며 예의 바르게 기침을 했다. “저,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시게 되었는지요?”

그는 우리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듯 간사하게 물었다.

실린은 대꾸하지 않았다. ‘40명의 순교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우리 쪽을 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저는 오로지 한 가지 원인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죠. 그게 뭔지는 하나님께 여쭤봐야 할 일이지만 말입니다. 물론 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인입죠. 하지만 믿어주십오. 저는 빵 한 조각도 없는 그런 처지입니다. 개보다도 못하지요……. 용서해주십시오,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감아쥔 주먹에 머리를 기댄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교회는 큰 길 끝의 높은 강둑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울타리 너머로 강물과 강 건너편의 낮은 목초지가 보였으며 거기에서 모닥불 하나가 진홍색으로 불타고 있었다.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과 말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모닥불 너머로도 불빛이 보였는데 작은 마을인 모양이었다. 거기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강 위로 그리고 목초지 위로 안개가 피어올랐다. 우유처럼 희고 짙은 가느다란 안개 기둥이 물위에 비친 별빛을 덮는가 하면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리기도 하면서 강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안개 기둥들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었다. 어떤 것들은 서로 껴안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인사를 나누었고 어떤 것들은 수도사가 넓은 소맷자락에 감긴 손을 기도하듯 하늘로 치켜드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이 광경이 드미트리 페트로비치로 하여금 유령과 죽은 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가 나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우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말 좀 해보시오, 친구. 무시무시하거나 비밀스럽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어째서 실제의 인생으로부터가 아니라 꼭 유령이나 저승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말해 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 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까?”

드미트리 페트로비치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앉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숨결을 내 볼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 그의 창백하고 깡마른 얼굴은 더욱 파리했고 짙은 턱수염은 숯보다도 더 새까맣게 보였다. 그의 눈은 우울하고 진지했으며 나에게 무언가 무서운 이야기를 할 참인 듯 다소 겁에 질려 있었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예의 기도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우리 인생이나 저승 세계나 매한가지로 불가해하고 무섭습니다. 유령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나도, 저 불빛들도, 그리고 저 하늘도 두려워해야 마땅하지. 왜냐하면 이 모두가 잘 생각해 보면 저승의 망령들만큼이나 불가해하고 환상적이니까. 햄릿 왕자가 자살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혹시라도 죽음 뒤의 꿈속에서 망령들이 나타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오. 그의 유명한 독백을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나를 진정으로 감동시킨 적이 없어요. 당신이 친구라서 고백하지만, 나는 이따금 괴로울 때면 나 자신이 죽는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합니다. 나는 공상 속에서 암울하기 그지없는 수천 개의 장면을 만들어냈고 이것들이 나를 고통스러운 광란으로, 한마디로 말해 지옥으로 이끈 적도 있어요.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이 현실보다 더 무섭지는 않았어요. 유령이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현실도 무섭습니다. 친구, 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두려워해요. 어쩌면 나는 환자이거나 어딘가 잘못된 인간인지도 모르지. 정상적이고 건강한 인간은 자기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여길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어느 정도'라는 느낌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공포에 중독되고 있어요. ‘광장 공포'라는 병이 있지만, 나의 병은 삶에 대한 공포지요. 풀밭에 누워서, 어제 막 태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딱정벌레를 한참 동안 보고 있으면 그 벌레의 삶이 끔찍한 일로 가득 찬 것 같고 그 미물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정확히 뭐가 무서운 겁니까?”

내가 물었다.

“모든 것이 무서워요. 나는 천성이 심오한 인간이 못 되는지라 저승 세계니 인류의 운명이니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뜬구름 잡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얘깁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 행동들 중에서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오늘 나는 뭔가를 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됍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가 나는 겁을 먹고 이리로 왔지요. 그래서 농장 경영에 손을 댔지만 역시 겁이 납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다. 사는 데 방해만 되는 불필요하고 시시한 짓거리들에 우리는 자신의 힘을 소진합니다. 이게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친구,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두렵습니다. 나는 농부들 보기가 두려워요. 무슨 대단하고 고상한 목적이 있기에 저들은 괴로워하는지, 저들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만약에 인생의 목적이 쾌락에 있다면 저들은 불필요한 여분의 인간들입니다. 만약에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가난과 절대적인 무지 속에 있는 거라면 이런 가혹한 심판이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저 인간을 한번 보세요!”

그는 ‘40명의 순교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Episode 9 - 안톤 체홉 “공포” - Part 2 Episode 9 - Anton Chekhov "Fear" - Part 2

“친구가 없으니까 지루하신 거군요. “It's boring because you don't have friends. 들판에 사람을 보내서 그이를 불러와야겠네요.” I have to send someone in the field to call him.”

그리고 드미트리 페트로비치가 오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And when Dmitry Petrovic came, she said:

“자, 이제 당신 친구가 왔네요. “Now, your friend is here. 좋으시겠어요.”

이런 식으로 일 년 반이 흘러갔다. In this way, a year and a half passed.

어느 칠월의 일요일, 나와 드미트리 페트로비치는 소일거리 삼아 클루쉬노라는 큰 마을로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갔다. On a Sunday in July, I and Dmitry Petrovic went to a big town called Crushno to buy a snack for dinner. 우리가 가게들을 둘러보는 사이에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The sun went down and evening came while we were looking around the shops. 그날 저녁을 아마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That evening, perhaps I will never forget. 우리는 비누처럼 생긴 치즈와 돌처럼 딱딱하고 타르 냄새가 나는 소시지를 산 다음, 맥주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선술집으로 향했다. We bought a cheese that looked like soap and a sausage that was as hard as a stone and smelled of tar, and then headed to the tavern to see if there was a beer. 마부는 말의 편자를 갈기 위해 대장간에 가야 했으므로 우리는 그에게 교회 옆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The coachman had to go to the smithy to grind the horseshoe, so we told him that we would wait by the church. 그런데 우리가 산 물건들에게 관해 이야기를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걸어가는 동안, 마치 탐정처럼 은밀한 태도로 묵묵히 우리 뒤를 밟는 사람이 있었다. But while we talked about the things we bought and walked with laughter, there was a man who stepped behind us silently, like a detective, in a secret manner. 그것은 우리 군에서 ‘40명의 순교자'라는 꽤나 이상한 별명으로 통하는 남자였다. It was a man who was known by our military by a pretty strange nickname of '40 martyrs'. ‘40명의 순교자'는 다름 아닌 가브릴라 세베로프, 혹은 줄여서 가브류쉬카로서 한동안 나의 하인으로 있다가 술버릇 때문에 쫓겨난 자였다. The '40 Martyrs' was none other than Gavrilla Severov, or Gabryushka for short, who had been my servant for a while and was expelled from alcohol habits. 그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집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똑같은 죄로 쫓겨났던 것이다. He once worked at Dmitry Petrovic's house, where he was also cast out for the same sin. 그는 지독한 술꾼이었으며 그의 운명 자체가 그 사람 자신처럼 온통 술과 방탕에 절어 있었다. He was a terrible drinker, and his fate, like the man himself, was all over liquor and liquor. 그의 아버지는 신부였고 어머니는 귀족이었으므로 그는 출신상으로 보면 특권층에 속했다. His father was a bride and his mother was aristocrat, so he belonged to a privileged class by origin. 하지만 그의 핼쑥하고 비굴하고 땀에 절은 얼굴과 벌써 세어가는 붉은 수염, 그리고 너덜너덜한 저고리와 바지 밖으로 비어져 나온 셔츠를 보고있노라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특권층의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However, seeing his shaky, grimy, sweaty face, counting red beard, and a tattered jacket and shirt protruding from his pants, he couldn't find any traces of the privileged class commonly referred to in the world. 그는 교육받은 사람임을 자처하면서 자신은 신학교를 다니다가 담배를 피운 일 때문에 퇴학당했노라고 말하곤 했다. He would claim to be an educated man and say that he had been expelled from school for smoking cigarettes while attending seminary. 나중에는 주교청 직속 성가대에서 노래를 했으며 수도원에서도 이 년 정도 살다가 쫓겨났는데, 이번에는 흡연이 아니라 ‘나약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Later, he sang in the choir directly under the bishop's office and was expelled from the monastery after living for about two years, this time not because of smoking, but because of'weakness'. 그는 두 개의 주를 도보로 편력하면서 교회 감독국이며 이런저런 관청들에 청원서를 제출했고 네 번이나 재판정에 서기도 했다고 한다. He is said to be the Church Supervisory Board, filing petitions to various government offices, and has been in court four times. 그러다 결국 우리 군에 눌러앉아 하인, 산지기, 사냥개지기, 교회 수위 노릇을 닥치는 대로 하다가 바람난 과부 요리사와 결혼했으며 마침내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해서 흙탕물과 쓰레기를 벗 삼아 지내고 있었다. 때문에 이제는 그가 자신의 고상한 출신내력을 늘어놓을 때면 무슨 전설을 전하는 것처럼 스스로도 반신반의할 정도였다. Because of this, now he was so dubious about himself as if he was telling a legend when he displayed his noble background. 이 이야기를 할 당시에 그는 수의사가 사냥꾼을 사칭하면서 거처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종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선술집을 나온 우리는 교회로 가서 현관에 앉아 마부를 기다렸다. After leaving the tavern, we went to the church and sat on the front porch, waiting for the coachman. ‘40명의 순교자'는 멀찌감치 서서 입에다 손을 대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침이 날 때는 거기에다 예의 바르게 하겠다는 시늉처럼 보였다. The '40 Martyrs' stood far away and put their hands on their mouths, which seemed to pretend to be polite to them when they coughed. 날은 벌써 어두워졌다. The day is already dark. 저녁 공기의 눅눅한 냄새가 짙게 풍겨왔고 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There was a thick scent of the evening air, and the moon was just rising. 별이 보이는 청명한 하늘에는 단 두 조각의 구름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In the clear starry sky, there were only two pieces of clouds right above our heads. 하나는 컸고 하나는 그보다 좀 작아서 마치 외로운 모자 처럼 보이는 두 구름은 저녁 노을이 사라져가는 서쪽을 향해 사이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멋진 날씨야.”

드미트리 페트로비치가 말했다. Said Dmitry Petrovic.

“정말 대단하죠……." “It's amazing… … ." '40명의 순교자‘가 맞장구를 치면서 입을 손으로 가리며 예의 바르게 기침을 했다. '40 Martyrs' coughed politely, covering their mouths with hands as they clashed. “저,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시게 되었는지요?” “Well, Dmitry Petrovic, what made you come here?”

그는 우리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듯 간사하게 물었다. He asked politely, as if he wanted to intervene in our conversation.

실린은 대꾸하지 않았다. Chillin didn't respond. ‘40명의 순교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우리 쪽을 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저는 오로지 한 가지 원인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죠. “I am suffering for only one cause. 그게 뭔지는 하나님께 여쭤봐야 할 일이지만 말입니다. You have to ask God what it is. 물론 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인입죠. Of course, I am useless for no one. 하지만 믿어주십오. 저는 빵 한 조각도 없는 그런 처지입니다. I'm in a situation where I don't even have a slice of bread. 개보다도 못하지요……. 용서해주십시오,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Please forgive me, Dmitry Petrovic!”

실린은 듣고 있지 않았다. Chillin wasn't listening. 그는 감아쥔 주먹에 머리를 기댄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He was thinking about something, leaning his head against his clenched fist. 교회는 큰 길 끝의 높은 강둑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울타리 너머로 강물과 강 건너편의 낮은 목초지가 보였으며 거기에서 모닥불 하나가 진홍색으로 불타고 있었다.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과 말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Black shadows of people and horses fluttered around the campfire. 모닥불 너머로도 불빛이 보였는데 작은 마을인 모양이었다. I could see the lights through the bonfire, and it looked like a small town. 거기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강 위로 그리고 목초지 위로 안개가 피어올랐다. Fog rose over the river and over the pastures. 우유처럼 희고 짙은 가느다란 안개 기둥이 물위에 비친 별빛을 덮는가 하면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리기도 하면서 강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안개 기둥들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었다. The pillars of fog changed shape every minute. 어떤 것들은 서로 껴안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인사를 나누었고 어떤 것들은 수도사가 넓은 소맷자락에 감긴 손을 기도하듯 하늘로 치켜드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이 광경이 드미트리 페트로비치로 하여금 유령과 죽은 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았다. Perhaps this sight made Dmitry Petrovic think about ghosts and the dead. 왜냐하면 그가 나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우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Because he turned his head at me and asked with a gloomy smile.

“말 좀 해보시오, 친구. 무시무시하거나 비밀스럽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어째서 실제의 인생으로부터가 아니라 꼭 유령이나 저승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일까?” When telling a terrifying, secret or fantastic story, why do we take the subject matter not from real life, but from a ghost or underworld?”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It’s scary because I can’t understand it.”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말해 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 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까?”

드미트리 페트로비치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앉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숨결을 내 볼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Dmitry Petrovic sat close to me, so I could feel his breath on my cheek. 저녁 어스름 속에서 그의 창백하고 깡마른 얼굴은 더욱 파리했고 짙은 턱수염은 숯보다도 더 새까맣게 보였다. In the evening twilight, his pale, skinny face was even more flimsy, and his dark beard looked blacker than charcoal. 그의 눈은 우울하고 진지했으며 나에게 무언가 무서운 이야기를 할 참인 듯 다소 겁에 질려 있었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예의 기도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He looked into my eyes and continued speaking in a polite, prayerful voice.

“우리 인생이나 저승 세계나 매한가지로 불가해하고 무섭습니다. “Everything in our life or in the underworld is incomprehensible and terrifying. 유령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나도, 저 불빛들도, 그리고 저 하늘도 두려워해야 마땅하지. Anyone who is afraid of ghosts should be afraid of me, the lights, and the sky. 왜냐하면 이 모두가 잘 생각해 보면 저승의 망령들만큼이나 불가해하고 환상적이니까. 햄릿 왕자가 자살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혹시라도 죽음 뒤의 꿈속에서 망령들이 나타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오. 그의 유명한 독백을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나를 진정으로 감동시킨 적이 없어요. 당신이 친구라서 고백하지만, 나는 이따금 괴로울 때면 나 자신이 죽는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합니다. 나는 공상 속에서 암울하기 그지없는 수천 개의 장면을 만들어냈고 이것들이 나를 고통스러운 광란으로, 한마디로 말해 지옥으로 이끈 적도 있어요.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이 현실보다 더 무섭지는 않았어요. But I'm sure it wasn't scarier than reality. 유령이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현실도 무섭습니다. It is true that ghosts are scary, but reality is also scary. 친구, 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두려워해요. My friend, I am afraid as well as I do not understand life. 어쩌면 나는 환자이거나 어딘가 잘못된 인간인지도 모르지. 정상적이고 건강한 인간은 자기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여길 테니까. Normal, healthy human beings will think they understand to some extent everything they see and hear. 하지만 나는 이 ‘어느 정도'라는 느낌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공포에 중독되고 있어요. ‘광장 공포'라는 병이 있지만, 나의 병은 삶에 대한 공포지요. There is a disease called'square fear', but my disease is a fear of life. 풀밭에 누워서, 어제 막 태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딱정벌레를 한참 동안 보고 있으면 그 벌레의 삶이 끔찍한 일로 가득 찬 것 같고 그 미물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정확히 뭐가 무서운 겁니까?” “What exactly is scary?”

내가 물었다.

“모든 것이 무서워요. 나는 천성이 심오한 인간이 못 되는지라 저승 세계니 인류의 운명이니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I am not very interested in the matter of being a human being with a profound nature, such as the underworld or the fate of mankind. 뜬구름 잡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얘깁니다. He says he is not good at catching floating clouds.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Because none of us can get out of there. 내 행동들 중에서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The fact that I am incapable of determining which of my actions are true and which are false makes me thrilled.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I know that living conditions and education have locked me in a solid lie.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오늘 나는 뭔가를 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됍니다. Today I do something, but tomorrow I already can't understand why I did it. 페테르부르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가 나는 겁을 먹고 이리로 왔지요. 그래서 농장 경영에 손을 댔지만 역시 겁이 납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다. 사는 데 방해만 되는 불필요하고 시시한 짓거리들에 우리는 자신의 힘을 소진합니다. 이게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친구,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두렵습니다. Friends, I don't understand people and I'm afraid. 나는 농부들 보기가 두려워요. 무슨 대단하고 고상한 목적이 있기에 저들은 괴로워하는지, 저들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I don't know what great and noble purpose they are suffering from, or what they live for. 만약에 인생의 목적이 쾌락에 있다면 저들은 불필요한 여분의 인간들입니다. If the purpose of life is in pleasure, then they are unnecessary extra humans. 만약에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가난과 절대적인 무지 속에 있는 거라면 이런 가혹한 심판이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If the purpose and meaning of life is in poverty and absolute ignorance, I don't know for whom this harsh judgment is necessary.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저 인간을 한번 보세요!”

그는 ‘40명의 순교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He said, pointing to '40 marty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