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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8 - 김소연 “마음사전” - Part 2

Episode 8 - 김소연 “마음사전” - Part 2

장원급제죠. 장원급제와 되게 비슷합니다. 글을 써서 상을 받는다. 이것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안에서는 분명히 연상시키는 바가 있습니다. 문학… 문학이라기 보다는 과거, 장원급제, 출세, 금의환향 이런 것과 연결돼있는데 당연히 문장력이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요. 제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 중에 하나는 (이 유교적인 전통 중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 중에 하나는) 관료를 뽑는데 왜 시로 시험을 보는지..그게 참 이상해요. 관료에게는 정견이라던가 또는 식견, 예를 들면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쓰게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귀향가서 쓰는게 아니라 관리가 되기전에 써야되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이러이러하게 말하자면 정치를 하겠고 뭘 하겠다.. 이런것들을 밝혀야하는데 시를 계속 공부하다가 관리가 된단 말이죠. 시라든가 경전을 읽다가 되는데 어쨌든 과거시험에 가서는 시를 쓴단 말이죠. 그게 참 이상했어요. 하여간, 이렇게 문학과 정치가 뒤섞여버린 과거제도의 전통이 현재도 문학파 안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백일장도 되게 중시하는 것 같은데 요즘은 심지어 백일장을 잘 하면 대학도 가고 그러죠?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제도입니다. 하여간 그런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있는것은 문학제도를 오해하고 계신 분들에게 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겁니다. 제가 만난 일급의 시인들은 문장은 물론 당연히 잘 쓰죠. 그러나 이 분들을 눈이 좋습니다. 눈이 좋아요.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일반인과는 다르게 봅니다. 사물의 심층을 본다고 할까요? 여러겹으로 되어있죠. 모든 사물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그게 저는 시인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하고.. (물론 소설가에게도 아주 필요한 그런 자질입니다.) 자 그럼 우선 이 김소연 시인의 산문 “마음사전”의 한 부분을 읽어본 후에 그 얘기를 조금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유리와 거울

어느 날 유리창에 달라붙은 매미를 본 일이 있다. 나무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등짝만을 보아왔는데,

유리에 달라붙으니 전혀 볼 수 없었던 매미의 배를 보았다. 징그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유리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마음을 존중하는 종자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매미와 나 사이에서 유리는 매미를 나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나를 매미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굳게 닫힌 유리창이 었더라면 커다란 곤충을 가까이하기 두려운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의 배를 한참 동안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미 또한 나에게 배를 보여주며 그렇게 집념에 차서 울고 있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요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가리면서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유리로 된 용기는 두루 사용된다. 술병도 그러하고 화장품 용기나 약병 같은 것도 그러하다. 안에 있으면서도 밖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은 분명 유리창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허무는 것. 그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유리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단순하게 안과 밖 혹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것들로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유리는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

유리의 뒷면에 수은을 입히면 거울이 된다. 유리는 빛을 투과하고 거울은 빛을 반사한다. 빛이 지나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거울은 피사체를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거울을 보는 눈. 빛이 지나다닐 수 있기 떄문에 다른 그 무엇도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어서 유리가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물체가 되었다면, 거울은 빛조차 지나다닐 수 없기 떄문에 모든 것을 반사하는 물체가 되었다 . 유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투시하게 한다면, 거울은 우리가 무언가를 반영하게 한다. 반사하고 반영한다는 점 때문에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는 이는 거울의 이면까지 들여다 보게 된다. 정확한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가 있다. 유리를 통하여 우리는 빛의 길을 따라 갈 수 있다면, 거울을 통하여 우리는 빛의 길을 따라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거울은 정확한 풍경을 보여주는 댓가로 그것을 반대로 보여준다. 오른쪽은 왼쪽이 되어있고 왼쪽 또한 오른쪽이 되어 있다. 실체를 뒤집어 보여준다. 이데아와 그림자가 역전된다. 그 때문에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인식의 틀을 뒤집어 버린다. 또한, 거울 두 개 마주보게 하면 끝없이 자신을 반영하며 마주본다. 거울이 거울을 끝없이 마주보고 있으면 무한으로 갈 수도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듯이, 사람이 사람과 끝없이, 그리고 골몰이 마주보고 있으면 그와 같을 수 있다. 거울은 배면이 수은으로 닫혀 있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기보다는 풍경 안에 침잠하게 하며, 유리는 아무 것으로도 배면을 닫아놓지 않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게 한다. 마음을 확산하는 것이 유리라면 마음을 수렴하는 것은 거울인 셈이다.

네, 이 글은 “마음사전”의 첫 번 째 항목입니다. 유리에 대한 얘긴데 아마 시인이 유리와 이 거울, 매미를 보면서 착상했을 수도 있고요. 유리나 거울을 보면서 착상했을 수도 있는데, 이걸 보면 시인들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조금 엿볼 수가 있습니다. 가만히 매미를 보다가 매미와 자기 사이에 있는 유리를 보다가 유리와 비슷한 거울을 생각하다가 그러면서 마음까지 이르게 되는것이죠. 이것을 다 볼 수 있을 때 한편의 시가 떠오를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그 미술을 하는 어떤 선생님하고 얘기를 나누게 된 일이 있는데요. 네 미술을 가르치는 분이죠. 아주 좋은 훌륭한 화가이신데요, 학생들도 가르칩니다. 이분이 학생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요. 청계천이나 뭐 을지로에 있는 시장에 가서 시장의 아케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과 함께 통과합니다. 학생들이 지나다니죠. 열심히 시장을 통과한 다음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는거예요. 뭘 봤냐 ? 학생들이 얘기를 하는데 의외로 (얼마나 물건이 많습니까 시장에 물건이 많은데) 거기를 통과하고 나서도 학생들이 본게 별로 없어요. 눈은 좋죠. 교정시력이든 그냥 시력이든 눈은 좋은데 본게 없다는 겁니다. 물건들이 좀 많은데 무슨 물건이 있디? 물어보면 잘 기억을 못 하는거예요. 그 선생님 말씀이 훈련이 되지않은 눈은 보지를 못한다는 거예요. 그건 정말 맞는 얘깁니다. 저도 예전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런 연습을 해본 적이 있어요. 교실마다 텔레비전이 있지 않습니까? 까만색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있는데요.학생이 예를 들어 30명이 앉아 있다 그러면 텔레비전의 어떤 특성에 대해서 얘기해보라고 합니다. 가장 앞에 앉아 있는 학생부터 시켜요. 텔레비전의 특성에 대해 얘기해 봐라 이러면…네모나요. 또는 뭐 앞에 화면이 볼록해요. 검은색이예요. 뒤에 줄이 달려있어요. 그럼 이제 뒤에 있는 학생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어 앞에있는 애들이 얘기 다 하네! 그래서 머리를 쥐어 짜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0명의 학생이 한 바퀴를 돌고 다시 한 바퀴를 돌고 즉 60 개의 특성이 나올때 까지도 계속 됩니다. 다시 말해서 텔레비전이라는 것 하나를 가지고도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예를 들면 계속 이제 쪼기 때문에 (선생인 제가 쪼기 때문에 )뒤에 있는 학생들은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요. 생각을 하다 나중에 이렇죠, 텔레비전을 바라보면 (텔레비전이 껴져있을 때) 제 얼굴이 보여요. 어떻게 보이냐. 볼록하게보여요. 볼록 거울처럼 보여요. 그렇죠. 텔레비전에는 볼록거울이란 특성도 있어요. 그렇죠? 코드를 뽑으면 소리가 안 나요. 이런 것도 좋은 특성입니다. 우리는 이거 하나만 가지고도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Episode 8 - 김소연 “마음사전” - Part 2 Episode 8 - Soyeon Kim "Dictionary of the Mind" - Part 2 Episode 8 - キム・ソヨン「心の辞書」 - Part 2

장원급제죠. It is a long-term system. 장원급제와 되게 비슷합니다. It is very similar to the Jangwon grade system. 글을 써서 상을 받는다. Write and get an award. 이것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안에서는 분명히 연상시키는 바가 있습니다. This is clearly reminiscent of the Korean cultural grammar. 문학… 문학이라기 보다는 과거, 장원급제, 출세, 금의환향 이런 것과 연결돼있는데 당연히 문장력이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요. 제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 중에 하나는 (이 유교적인 전통 중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 중에 하나는) 관료를 뽑는데 왜 시로 시험을 보는지..그게 참 이상해요. One of the things that I think is so weird (one of the things that I think is weird about this Confucian tradition) is that I pick a bureaucrat, and why take the poetry test... that's so weird. 관료에게는 정견이라던가 또는 식견, 예를 들면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쓰게되지 않습니까? For bureaucrats, aren't political opinions or insights, for example, Jeong Yak-yong write “Mokminsimseo”? 그런 것은 귀향가서 쓰는게 아니라 관리가 되기전에 써야되는 것이죠. That's not something you should use when you go home, but before you become an official. 그래서 나는 이러이러하게 말하자면 정치를 하겠고 뭘 하겠다.. 이런것들을 밝혀야하는데 시를 계속 공부하다가 관리가 된단 말이죠. So I'm going to do politics and what to do... I have to reveal these things, but I keep studying poetry and then I become an official. 시라든가 경전을 읽다가 되는데 어쨌든 과거시험에 가서는 시를 쓴단 말이죠. 그게 참 이상했어요. 하여간, 이렇게 문학과 정치가 뒤섞여버린 과거제도의 전통이 현재도 문학파 안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백일장도 되게 중시하는 것 같은데 요즘은 심지어 백일장을 잘 하면 대학도 가고 그러죠?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제도입니다. 하여간 그런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있는것은 문학제도를 오해하고 계신 분들에게 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겁니다. 제가 만난 일급의 시인들은 문장은 물론 당연히 잘 쓰죠. 그러나 이 분들을 눈이 좋습니다. 눈이 좋아요.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일반인과는 다르게 봅니다. 사물의 심층을 본다고 할까요? 여러겹으로 되어있죠. 모든 사물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그게 저는 시인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하고.. (물론 소설가에게도 아주 필요한 그런 자질입니다.) 자 그럼 우선 이 김소연 시인의 산문 “마음사전”의 한 부분을 읽어본 후에 그 얘기를 조금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유리와 거울

어느 날 유리창에 달라붙은 매미를 본 일이 있다. 나무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등짝만을 보아왔는데,

유리에 달라붙으니 전혀 볼 수 없었던 매미의 배를 보았다. 징그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유리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마음을 존중하는 종자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매미와 나 사이에서 유리는  매미를 나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나를 매미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굳게 닫힌 유리창이 었더라면 커다란 곤충을 가까이하기 두려운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의 배를 한참 동안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미 또한 나에게 배를 보여주며 그렇게 집념에 차서 울고 있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요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가리면서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유리로 된 용기는 두루 사용된다. 술병도 그러하고 화장품 용기나 약병 같은 것도 그러하다. 안에 있으면서도 밖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은 분명 유리창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허무는 것. 그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유리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단순하게 안과 밖 혹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것들로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유리는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

유리의 뒷면에 수은을 입히면 거울이 된다. 유리는 빛을 투과하고 거울은 빛을 반사한다. 빛이 지나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거울은 피사체를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거울을 보는 눈. 빛이 지나다닐 수 있기 떄문에 다른 그 무엇도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어서 유리가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물체가 되었다면, 거울은 빛조차 지나다닐 수 없기 떄문에 모든 것을 반사하는 물체가 되었다 . 유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투시하게 한다면, 거울은 우리가 무언가를 반영하게 한다. 반사하고 반영한다는 점 때문에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는 이는 거울의 이면까지 들여다 보게 된다. 정확한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가 있다. 유리를 통하여 우리는 빛의 길을 따라 갈 수 있다면, 거울을 통하여 우리는 빛의 길을 따라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거울은 정확한 풍경을 보여주는 댓가로 그것을 반대로 보여준다. 오른쪽은 왼쪽이 되어있고 왼쪽 또한 오른쪽이 되어 있다. 실체를 뒤집어 보여준다. 이데아와 그림자가 역전된다. 그 때문에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인식의 틀을 뒤집어 버린다. 또한, 거울 두 개 마주보게 하면 끝없이 자신을 반영하며 마주본다. 거울이 거울을 끝없이 마주보고 있으면 무한으로 갈 수도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듯이, 사람이 사람과 끝없이, 그리고 골몰이 마주보고 있으면 그와 같을 수 있다. 거울은 배면이 수은으로 닫혀 있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기보다는 풍경 안에 침잠하게 하며, 유리는 아무 것으로도 배면을 닫아놓지 않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게 한다. 마음을 확산하는 것이 유리라면 마음을 수렴하는 것은 거울인 셈이다.

네, 이 글은 “마음사전”의 첫 번 째 항목입니다. 유리에 대한 얘긴데 아마 시인이 유리와 이 거울, 매미를 보면서 착상했을 수도 있고요. 유리나 거울을 보면서 착상했을 수도 있는데, 이걸 보면 시인들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조금 엿볼 수가 있습니다. 가만히 매미를 보다가 매미와 자기 사이에 있는 유리를 보다가 유리와 비슷한 거울을 생각하다가 그러면서 마음까지 이르게 되는것이죠. 이것을 다 볼 수 있을 때 한편의 시가 떠오를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그 미술을 하는 어떤 선생님하고 얘기를 나누게 된 일이 있는데요. 네 미술을 가르치는 분이죠. 아주 좋은 훌륭한 화가이신데요, 학생들도 가르칩니다. 이분이 학생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요. 청계천이나 뭐 을지로에 있는 시장에 가서 시장의 아케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과 함께 통과합니다. 학생들이 지나다니죠. 열심히 시장을 통과한 다음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는거예요. 뭘 봤냐 ? 학생들이 얘기를 하는데 의외로 (얼마나 물건이 많습니까 시장에 물건이 많은데) 거기를 통과하고 나서도 학생들이 본게 별로 없어요. 눈은 좋죠. 교정시력이든 그냥 시력이든 눈은 좋은데 본게 없다는 겁니다. 물건들이 좀 많은데 무슨 물건이 있디? 물어보면 잘 기억을 못 하는거예요. 그 선생님 말씀이 훈련이 되지않은 눈은 보지를 못한다는 거예요. 그건 정말 맞는 얘깁니다. 저도 예전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런 연습을 해본 적이 있어요. 교실마다 텔레비전이 있지 않습니까? 까만색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있는데요.학생이 예를 들어 30명이 앉아 있다 그러면 텔레비전의 어떤 특성에 대해서 얘기해보라고 합니다. 가장 앞에 앉아 있는 학생부터 시켜요. 텔레비전의 특성에 대해 얘기해 봐라 이러면…네모나요. 또는 뭐 앞에 화면이 볼록해요. 검은색이예요. 뒤에 줄이 달려있어요. 그럼 이제 뒤에 있는 학생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어 앞에있는 애들이 얘기 다 하네! 그래서 머리를 쥐어 짜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0명의 학생이 한 바퀴를 돌고 다시 한 바퀴를 돌고 즉 60 개의 특성이 나올때 까지도 계속 됩니다. 다시 말해서 텔레비전이라는 것 하나를 가지고도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예를 들면 계속 이제 쪼기 때문에 (선생인 제가 쪼기 때문에 )뒤에 있는 학생들은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요. 생각을 하다 나중에 이렇죠, 텔레비전을 바라보면 (텔레비전이 껴져있을 때) 제 얼굴이 보여요. 어떻게 보이냐. 볼록하게보여요. 볼록 거울처럼 보여요. 그렇죠. 텔레비전에는 볼록거울이란 특성도 있어요. 그렇죠? 코드를 뽑으면 소리가 안 나요. 이런 것도 좋은 특성입니다. 우리는 이거 하나만 가지고도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