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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7 - 장 그르니에, 폴 발레리 - Part 1

Episode 7 - 장 그르니에, 폴 발레리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팟캐스트 진행하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지난 번에 했던 장 그르니에의 산문을 가지고 조금더 이야기를 해볼 생각인데요. 지난 번에는 알베르 카뮈의 장 그르니에에 대한 일종의 추천사를 가지고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오늘은 본문으로 들어가서 장 그르니에의 “섬” 그리고 또 다른 산문들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눠 볼까 합니다. 이 분은 원래는 철학을 가르치셨죠? 철학을 하면서 산문을 쓰고, 에세이를 쓴다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에세이하고 이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에세이는 약간 다른데요. 우리가 흔히 에세이라고 하면 좀 가벼운 글, 이라고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프랑스에서 에세이라고 하면 좀 더 무거운 글들을 많이 이야기 하죠. 사르트르라던가 이런 분들을 썼던 것도 다 에세이고 우리가 잘 알고있는 파스칼의 팡세라던가 이런 것도 사실은 넓은 의미에서 에세이라고 봐야겠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쪽에서는 철학자들의 에세이들이 상당히 꾸준히 나왔고요.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독일 쪽 철학자들의 아주 엄격한 글 보다는 훨씬 좀 자유로우면서도 여러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이 프랑스쪽 지식인들의 글쓰기의 특징인 것 같고요. 그래서 장 그르니에 역시 그런 길을 밟아 왔습니다. 오늘은 “섬”에서 어떤 한 부분을 읽어보기로 하겠는데요. 일단 그 부분을 읽고 계속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케르켈렌 군도. 혼자서 ,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 씩이나 해 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단순히 살아가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환상에 속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같은 타고난 부족함을 무슨 드높은 영혼의 소치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하찮은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하잖은 행동들을 숨기곤 한다. 비밀스러운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꿈이 실현 가능한 것이라 믿어왔다. 루소는 에르므농빌에 은거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부대꼈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생활이라면 예를 들어 데카르트가 암스테르담에서 영위했던 생활이 바로 그런 것이다. 도무지 변화라곤 없는 데다가 계속적이며 공개적인, 그리고 극단적으로 단순한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데카르트는 그 비밀을 충실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암스텔담에서 그가 살았던 집에다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기념판을 붙여놓았지만 사실 그집은 시내의 한가운데 있는 평범한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억세고 활동적인 데다가 남의 사정에 궁금해 하느니보다는 자기 일에 더 골몰하는 그 대단한 국민들의 무리에 섞인 채, 사람의 왕래가 가장 잦은 대도시가 갖추고 있는 편리함은 골고루 다 누려 가면서 나는 가장 한갓진 사막 한가운데 못지 않은 고적하고 호젓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썼다. 데카르트의 선택은 적절한 것이었다. 그는 생활을 완전히 개방해 놓음으로써 정신은 자기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베니스에서 보낸 시절은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었다고 여겨진다. 오랜 여행 끝에 그곳에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내 수중에는 단 한푼의 돈도 남지 않은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프랑스로 되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형편이었으므로 나는 벌써부터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노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알지 못했던 때라 나는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가 봤으나 물론 거절당한 채 되돌아 나왔다. 벨리츠 중학교에서는 마침비어있던 자리에 사람을 채워넣고 난 참이라는 이야기였다. 뒷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어떤 프랑스 출신의 상인이 자기도 나와 같은 곤경에 빠진 경험이 있다면서, 호텔에서 외국 손님을 맞는 일자리를 구해 보라고 귀띔해 주었다. 밤새도록 일하고 또 반나절을 더 일해야 했으니 좀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젊을 때야...... 그러나 이런 식의 현실적인 면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라 잡다한 현실로부터 벗어나서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정말 자연은 그런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리라고 짐작은 했다. 왜냐하면 정말 자연은 투쟁이요 공포이기 때문이다. 자연이라! 그러나 나는 베니스에서 한달 이상은 살지 못했을 것이다. 싸구려라도 좋으니 단 한편의 영화구경만 할 수 있다면 그 모든 모래 언덕들을 다 버리고 떠나고만 싶었으니 말이다. 순전히 물질적인 구속 이외에는 아무런 구속이 없이(그때만 해도 나는 물질적인 구속이 순전히 물질적인 것만은 결코 아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내는 그 이상적인 생활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위적이며 속이 텅빈 생활로 여겨지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은 항상 멋지게 마련이다. 다만 그 다음에는 멋이 덜해진다. 카사노바가 플롬의 감옥을 탈출하여 리바 쉬아보니의 대기를 들이마셨던 아침은 얼마나 아름다운 아침이었겠는가! 그의 도취한 기분은 쉽사리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역시 더 먼 곳으로 도망쳐야 할 처지가 아니었더라면 에스클라본스의 해변도 다음날로 당장 따분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는 그의 숱한 약혼녀들에게 자기는 결혼이 적성에 안 맞도록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보헤미아 지방의 어느 낡은 성과 결혼하여 그의 생애에서 가장 쓸쓸한 최후의 날들을 거기서 보내고 만다. 회춘의 샘을 노래하는 시인들은 우리를 속인다. 인간의 정신과 시간 사이에는 견디기 어려운 관계가 맺어져 있다. 청춘, 자유,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스탕달이 쌩-피에르-인-모토리오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풍경을 앞에 두고 썼다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말이 왜 생각나는지 나는 그 까닭을 모르겠다. "오늘 내 나이 쉰살이 되었다" 이야기를 더 계속하지 말자. 그러다가는 또 파스칼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꿈을 사라져버리게 하는 것은 꿈의 헛됨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같은 비밀의 감정이 마치 끈질기고 숨막히는 어떤 냄새, 심지어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두어도 떠나지 않는 냄새와 같다는 것은 이상하다. 방탕한 생활에 빠져버린 어떤 친구가 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관심이 끌리는 쪽은 댄스홀이나 환락의 거리가 아니라어둠이 내릴 무렵 여인들의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며 나직한 목소리로 유혹의 말을 건네오는 한녘진 골목길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예는 그만두고라도, 강렬한 감정이란 어느 것이나 반드시 깊이 감추어진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중해 연안 민족들과 아랍인들과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을 확연히 구별하여 그들에게 있어서 양자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사생활 속의 조그만 일이라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고 심지어는 원망까지 한다. 사람들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떠드는 하나의 감정이 있으니 그게 바로 질투다. 사람들은 늘 입만 열면 동지애, 자유, 솔직함 등의 이야기만 한다. 이야말로 덕과 쾌락을 도외시하는 발상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오직 가난만이 연약한 가슴들을 서로 가까와지게 하고 튼튼하게 해줄 수 있다. 가난에 따르기 마련인 장애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잠시나마 외면적인 일체의 것들로부터 격리될 수 있다. 노예처럼 노동을 해야 할 필요 때문에 곧 또다시 외부세계와 접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러나 파리야말로 찾아드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도시의 전형이다. 그리스 로마의 고대 도시들은 대개 보다 폐쇄적이다. 바다를 향하여 열려있고 햇빛 속에 전시되어 있는 베니스 곁에는 속을 알 수 없도록 꽉 닫힌 베로나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베니스 아닌 베로나에서 전개되는 데는 숱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다만 다음의 한가지 이유만을 취하고자 한다. 이태리의 어느 오래된 도시 교외에 살고 있었을 적에 나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포석이 고르지 못하며 매우 높은 두개의 벽 사이에 꼭 끼어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곤 했었다. 시골 바닥에그 처럼 높은 벽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때는 사월이나 오월쯤이었다. 내가 그 골목의 직각으로 꺽어지는 지점에 이를 때면 강렬한 재스민과 리라꽃 냄새가 내 위로 밀어닥치곤 했다. 꽃들은 담장 너머에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꽃내음을 맡기 위하여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고 나의 밤은 향기로 물들었다.


Episode 7 - 장 그르니에, 폴 발레리 - Part 1 Episode 7 - Jean Grenier, Paul Valéry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팟캐스트 진행하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입니다. I am Kim Young-ha, a novelist who is conducting Kim Young-ha's'Book Reading Time' podcast.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지난 번에 했던 장 그르니에의 산문을 가지고 조금더 이야기를 해볼 생각인데요. 지난 번에는 알베르 카뮈의 장 그르니에에 대한 일종의 추천사를 가지고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Last time we talked about Albert Camus's Jean Grnie with some kind of recommendation. 오늘은 본문으로 들어가서 장 그르니에의 “섬” 그리고 또 다른 산문들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눠 볼까 합니다. 이 분은 원래는 철학을 가르치셨죠? This person originally taught philosophy, right? 철학을 하면서 산문을 쓰고, 에세이를 쓴다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에세이하고 이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에세이는 약간 다른데요. 우리가 흔히 에세이라고 하면 좀 가벼운 글, 이라고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프랑스에서 에세이라고 하면 좀 더 무거운 글들을 많이 이야기 하죠. When we say essays, we often think of lighter writings, but in France, essays often talk about heavier texts. 사르트르라던가 이런 분들을 썼던 것도 다 에세이고 우리가 잘 알고있는 파스칼의 팡세라던가 이런 것도 사실은 넓은 의미에서 에세이라고 봐야겠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쪽에서는 철학자들의 에세이들이 상당히 꾸준히 나왔고요.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독일 쪽 철학자들의 아주 엄격한 글 보다는 훨씬 좀 자유로우면서도 여러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이 프랑스쪽 지식인들의 글쓰기의 특징인 것 같고요. It seems to be the hallmark of French intellectuals' writing that it is much more free and crosses several boundaries than the very strict writings of German philosophers. 그래서 장 그르니에 역시 그런 길을 밟아 왔습니다. That's why Jean Grenier has also taken that path. 오늘은 “섬”에서 어떤 한 부분을 읽어보기로 하겠는데요. 일단 그 부분을 읽고 계속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케르켈렌 군도. Kerkelen Islands. 혼자서 ,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 씩이나 해 보았었다. Alone, without having anything, I've had many times dreaming of arriving in a strange city.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Therefore, I wanted to live modestly or poorly.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 할 수 있을 것이다. Most of all, if that happens, you will be able to keep the'secret'.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것이 있기에? What valuable thing is there?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Perhaps these thoughts are only evidence that the heart is weak. 즉 단순히 살아가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In other words, it is not only simply living, it may also indicate that everyone lacks the necessary power to'establish' their existence. 나는 이제 환상에 속지는 않는다. I am not fooled by fantasy anymore. 그러므로 이 같은 타고난 부족함을 무슨 드높은 영혼의 소치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Therefore, this innate lack is not regarded as an exalted soul.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However, I still have a taste for such secrets.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하찮은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However, I still have a taste for such secrets.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하잖은 행동들을 숨기곤 한다. 비밀스러운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 말이다. Not a secret life, a lonely life, but a secret life. 나는 오랫동안 그 꿈이 실현 가능한 것이라 믿어왔다. I have long believed that the dream is a reality. 루소는 에르므농빌에 은거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부대꼈다. Rousseau retired from Hermenonville, but was still attached to the people. 그러나 비밀스러운 생활이라면 예를 들어 데카르트가 암스테르담에서 영위했던 생활이 바로 그런 것이다. 도무지 변화라곤 없는 데다가 계속적이며 공개적인, 그리고 극단적으로 단순한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데카르트는 그 비밀을 충실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Descartes was able to keep its secret faithfully by living a life that was not changed at all, and was constantly, open, and extremely simple. 후세 사람들은 암스텔담에서 그가 살았던 집에다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기념판을 붙여놓았지만 사실 그집은 시내의 한가운데 있는 평범한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Later generations put a commemorative plate on the house where he lived in Amsterdam as if it should be, but the house is actually just an ordinary building in the middle of the city.

"억세고 활동적인 데다가 남의 사정에 궁금해 하느니보다는 자기 일에 더 골몰하는 그 대단한 국민들의 무리에 섞인 채, 사람의 왕래가 가장 잦은 대도시가 갖추고 있는 편리함은 골고루 다 누려 가면서 나는 가장 한갓진 사막 한가운데 못지 않은 고적하고 호젓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With the crowd of people who are stubborn and active and who are more devoted to their work than wondering about other people's circumstances, while enjoying the convenience of a large city with the most frequent traffic, I'm a ruin that is no less than in the middle of the desert And I was able to live a quiet life." 데카르트는 이렇게 썼다. 데카르트의 선택은 적절한 것이었다. 그는 생활을 완전히 개방해 놓음으로써 정신은 자기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By keeping his life completely open, he was able to keep his mind alone. 그런 의미에서, 내가 베니스에서 보낸 시절은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었다고 여겨진다. 오랜 여행 끝에 그곳에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내 수중에는 단 한푼의 돈도 남지 않은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프랑스로 되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형편이었으므로 나는 벌써부터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노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알지 못했던 때라 나는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가 봤으나 물론 거절당한 채 되돌아 나왔다. I went to the French consulate but, of course, came back rejected. 벨리츠 중학교에서는 마침비어있던 자리에 사람을 채워넣고 난 참이라는 이야기였다. At Belitz Middle School, it was a story that I was just filling in a place that was empty. 뒷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어떤 프랑스 출신의 상인이 자기도 나와 같은 곤경에 빠진 경험이 있다면서, 호텔에서 외국 손님을 맞는 일자리를 구해 보라고 귀띔해 주었다. A French merchant sitting in a back alley told me that he had the same troubles as me, and told me to find a job at a hotel to meet foreign guests. 밤새도록 일하고 또 반나절을 더 일해야 했으니 좀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젊을 때야...... 그러나 이런 식의 현실적인 면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라 잡다한 현실로부터 벗어나서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정말 자연은 그런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리라고 짐작은 했다. 왜냐하면 정말 자연은 투쟁이요 공포이기 때문이다. Because really nature is a struggle and a fear. 자연이라! 그러나 나는 베니스에서 한달 이상은 살지 못했을 것이다. 싸구려라도 좋으니 단 한편의 영화구경만 할 수 있다면 그 모든 모래 언덕들을 다 버리고 떠나고만 싶었으니 말이다. It's okay if it's cheap, so if I could only watch a single movie, I just wanted to leave all the dunes and leave. 순전히 물질적인 구속 이외에는 아무런 구속이 없이(그때만 해도 나는 물질적인 구속이 순전히 물질적인 것만은 결코 아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내는 그 이상적인 생활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위적이며 속이 텅빈 생활로 여겨지고 말았을 것이다. The ideal life of living without any restraint other than purely material restraint (at that time I was unaware that material restraint was by no means purely material) would soon have been regarded as an artificial, hollow life. 처음은 항상 멋지게 마련이다. The first is always nice. 다만 그 다음에는 멋이 덜해진다. But after that, it becomes less fashionable. 카사노바가 플롬의 감옥을 탈출하여 리바 쉬아보니의 대기를 들이마셨던 아침은 얼마나 아름다운 아침이었겠는가! What a beautiful morning it must have been the morning that Casanova escaped Phrom's prison and breathed the atmosphere of Riva Shiavoni! 그의 도취한 기분은 쉽사리 짐작이 간다. His feeling of intoxication is easy to guess. 그러나 그 역시 더 먼 곳으로 도망쳐야 할 처지가 아니었더라면 에스클라본스의 해변도 다음날로 당장 따분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But if he hadn't been in a position to flee further away, the beaches of Esclavons would have been considered boring the next day. 그는 그의 숱한 약혼녀들에게 자기는 결혼이 적성에 안 맞도록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He tells many of his fiancées that he was born out of aptitude for marriage. 그러나 결국 그는 보헤미아 지방의 어느 낡은 성과 결혼하여 그의 생애에서 가장 쓸쓸한 최후의 날들을 거기서 보내고 만다. But in the end, he marries an old castle in the Bohemia region and spends the most lonely days of his life there. 회춘의 샘을 노래하는 시인들은 우리를 속인다. Poets who sing the fountain of rejuvenation deceive us. 인간의 정신과 시간 사이에는 견디기 어려운 관계가 맺어져 있다. 청춘, 자유,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스탕달이 쌩-피에르-인-모토리오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풍경을 앞에 두고 썼다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말이 왜 생각나는지 나는 그 까닭을 모르겠다. When I hear the words youth, freedom, love...I don't know why I remember the following short words that Stendhal wrote in Saint-Pierre-in-Motorio with the landscape he loved in front of him. "오늘 내 나이 쉰살이 되었다" 이야기를 더 계속하지 말자. Let's not continue the story of "I turned 50 today." 그러다가는 또 파스칼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Then I have to talk about Pascal again.

꿈을 사라져버리게 하는 것은 꿈의 헛됨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다. It is not the realization of the vainness of dreams that make dreams disappear. 그같은 비밀의 감정이 마치 끈질기고 숨막히는 어떤 냄새, 심지어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두어도 떠나지 않는 냄새와 같다는 것은 이상하다. It is strange that the feeling of such a secret is like a persistent, breathtaking scent, even a scent that does not leave even when the window is wide open. 방탕한 생활에 빠져버린 어떤 친구가 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A friend who has fallen into prodigal life has said this to me before. 그의 관심이 끌리는 쪽은 댄스홀이나 환락의 거리가 아니라어둠이 내릴 무렵 여인들의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며 나직한 목소리로 유혹의 말을 건네오는 한녘진 골목길들이라는 것이었다. His interest was that it wasn't a dance hall or a street of joy, but the alleyways in the midst of the dark, passing by women's collars and speaking words of temptation in a quiet voice. 이런 극단적인 예는 그만두고라도, 강렬한 감정이란 어느 것이나 반드시 깊이 감추어진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Even if we quit this extreme example, we can say that any intense emotion is always a deeply hidden emotion. 지중해 연안 민족들과 아랍인들과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을 확연히 구별하여 그들에게 있어서 양자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The Mediterranean peoples, the Arabs, and the Greeks and Romans made a distinct distinction between private and public life, and to them both had nothing to do with each other. 프랑스에서는 사생활 속의 조그만 일이라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고 심지어는 원망까지 한다. In France, even the smallest things in private life are strange and even resentful by people around them if they are not visible. 사람들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떠드는 하나의 감정이 있으니 그게 바로 질투다. There is one feeling that people say that they can never understand, and that is jealousy. 사람들은 늘 입만 열면 동지애, 자유, 솔직함 등의 이야기만 한다. People always talk about camaraderie, freedom, and honesty when they open their mouths. 이야말로 덕과 쾌락을 도외시하는 발상이다. This is the idea of neglecting virtue and pleasure. 이런 풍토에서는 오직 가난만이 연약한 가슴들을 서로 가까와지게 하고 튼튼하게 해줄 수 있다. In this climate, only poverty can bring weak hearts closer to each other and strengthen them. 가난에 따르기 마련인 장애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잠시나마 외면적인 일체의 것들로부터 격리될 수 있다. The greater the impediment that comes with poverty, the more we can be isolated from everything that is outward for a moment. 노예처럼 노동을 해야 할 필요 때문에 곧 또다시 외부세계와 접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It is true that because of the need to work like a slave, you will soon be forced to contact the outside world again.

그러나 파리야말로 찾아드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도시의 전형이다. However, Paris is the epitome of a city that is wide open to anyone visiting. 그리스 로마의 고대 도시들은 대개 보다 폐쇄적이다. 바다를 향하여 열려있고 햇빛 속에 전시되어 있는 베니스 곁에는 속을 알 수 없도록 꽉 닫힌 베로나가 있다. Verona, which is open to the sea and is displayed in the sunlight, is close to the side of Venice.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베니스 아닌 베로나에서 전개되는 데는 숱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There are a number of reasons why the story of Romeo and Juliet unfolds in Verona rather than in Venice. 나는 다만 다음의 한가지 이유만을 취하고자 한다. I will only take one reason: 이태리의 어느 오래된 도시 교외에 살고 있었을 적에 나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포석이 고르지 못하며 매우 높은 두개의 벽 사이에 꼭 끼어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곤 했었다. When I was living in the suburbs of an old city in Italy, every time I came home, I would walk through a narrow alley that was pinched between two very high walls with uneven paving stones. 시골 바닥에그 처럼 높은 벽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때는 사월이나 오월쯤이었다. It was about April or May. 내가 그 골목의 직각으로 꺽어지는 지점에 이를 때면 강렬한 재스민과 리라꽃 냄새가 내 위로 밀어닥치곤 했다. When I reached the point where the alley was bent at a right angle, a strong scent of jasmine and lira flowers would rush over me. 꽃들은 담장 너머에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The flowers were hidden beyond the fence and could not be seen. 그러나 나는 꽃내음을 맡기 위하여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고 나의 밤은 향기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