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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2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2

그르니에가 그리고 있는 여행은 상상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속으로의 여행, 섬에서 섬으로 찾아 떠나는 순례이다. 그것은 멜빌이 "화요일" 속에서 다른 방법으로 보여준 순례와 마찬가지이다.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

우리가 끝내 이르게 되는 항구는 어디일까? 바로 이것이 이 책 전편을 꿰뚫고 지나가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사실 책 속에서 오직 하나의 간접적인 해답을 얻을 뿐이다.

과연 그르니에는 멜빌과 마찬가지로 절대와 신성에 대한 명상으로 그의 여행을 끝내고 있다. 힌두교도에 대한 말 끝에 그는 그 이름을 알 수도 없으며 어디에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어떤 항구,영원히 이르지 못하며 그 나름대로 사람의 발자취란 없는 어떤 다른 섬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여기서도 역시, 전통적인 종교들 밖에서 성장한 한 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조심스럽고 암시적인 접근방식이 아마도 보다 더 깊이 있는 반성을 향한 유일한 인도방식이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볼 때 나에게 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양과 밤과 바다...는 나의 신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향락의 신들이었다. 그들은 가득히 채워 준 후에는 다비워내는 신들이었다. 오직 그들과만 더불어 있을 경우에 나는 향락 그 자체에 정신이 팔려 그들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어느 날 그 무례한 마음을 버리고 나의 이 자연신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에게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르니에에게서 얻은 것은 확신들이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확신을 줄 수도 주고자 원하지도 않았다. 그와 반대로 나는 그에게서 의혹을 얻었다. 그 의혹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나로 하여금 오늘날 흔히 쓰는 의미에서의 휴머니스트, 다시 말해서 근시안적 확신들 때문에 눈이 먼 사람이 되지 않도록 보호해 준 힘이 되었다. "섬" 속을 뚫고 지나가는 저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영혼의 의혹은 하여튼 나의 경탄을 자아냈고 나는 그것을 모방하고 싶어했다.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 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알제의 저녁 속을 걸어가면서 되풀이하여읽어 보노라면 나를 마치 취한 사람처럼 만들어 주던 저 일종의 음악 같은 말들이다. 나는 새로운 땅에서 내가 수없이 끼고 돌던 높은 담장들에 둘러싸인 채 그 너머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동꽃 향기만을 건네주던, 가난한 나의 꿈이었던 저 은밀한 정원들 중 하나가 마침내 내게로 열려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과연 비길 데 없이 풍성한 정원이 열리고 있었다. 그 무엇인가가, 그 누군가가 나의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꿈틀거리면서 말을 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탄생은 어떤 단순한 독서, 어떤 짤막한 대화 한마디만으로도 한 젊은이에게서는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펼쳐 놓은 책에서 한 개의 문장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고 한 개의 어휘가 아직도 방안에서 울리고 있다.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되고 무질서가 멈춰 버린다. 그와 동시에 벌써 그 완벽한 언어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수줍고 더욱 어색한 하나의 노래가 존재의 어둠 속에서 날개를 푸득거린다.

내가 "섬"을 발견하던 무렵쯤에는 나도 글을 쓰고 싶어했던것 같다. 그러나 그 막연한 생각이 진정으로 나의 결심이 된 것은 그 책을 읽고 난 뒤였다. 다른 책들도 이 같은 결심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그 역할을 끝낸 다음에는 나는 그 책들을 잊어버렸다. 그와는 달리 이 책은 끊임없이 나의 내부에 살아 있었고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 오늘에 와서도 나는 "섬"속에, 혹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말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이기나 하듯이 쓰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일을 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온 이 같은 행운을 기뻐할 뿐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경도하고 스승을 얻고, 그리하여 여러 해 여러 작품을 통하여 그 스승을 존경할 필요를 느꼈던 나 자신에서는 더 없이 좋은 행운이었다.

적어도 생애에 한 번은 저 열광에 찬 복종의 마음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닌게 아니라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지적 사회가 자랑하여 마지않는 어정쩡한 진리들 중에는 저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원하는 저 흥분의 진리도 섞여 있다. 그 사회에서는 곧 우리들 자신 모두가 스승이요, 노예가 되어 서로 죽이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말은 다른 뜻도 지니고 있다. 그 의미로 인하여 스승과 제자는 오직 존경과 감사의 관계 속에 서로 마주 대하게 된다. 이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의식의 투쟁이 아니라, 일단 시작하면 그 생명의 불이 꺼질 줄 모르며 서로서로의 생애를 가득 채워 줄 수 있는 대화인 것이다. 이 오랫동안에 걸친 교류는 예속이나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장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을 야기시킨다.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고 그의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 실제에 있어서 제자는 언제나 자신이 모든 것을 얻어 가지기만 하였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지니면서 자신은 그 어느 것에도 보답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스승은 흐뭇해 한다. 이와 같이 여러세대에서 정신이 정신을 낳는 것이며, 인간의 역사는 다행스럽게도 증오 못지않게 찬미의 바탕 위에도 건설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르니에라면 이러한 어조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한 마리 고양이의 죽음, 어떤 백정의 병, 꽃의 향기, 지나가는 시간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이 책 속에서 정말로 다 말해 버린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모두가 여기서는 어떤 비길 데 없는 힘과 섬세함으로 암시되어 있다. 정확하면서도 꿈꾸는 듯한 저 가벼운 언어는 음악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그 언어는 빠르게 흐르지만 그 메아리는 긴 여운을 남긴다. 굳이 비교를 하려면 프랑스말로부터 새로운 액센트를 이끌어낸 바 있는 샤토브리앙과 바레스와 비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교해 보아 무엇하랴! 그르니에의 독창성은 그런 비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우리들에게 단순하고 친숙한 경험들을 눈에 드러날 만큼 꾸미는 일이 없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좋은 대로 해석하도록 맡겨 둔다. 단지 이런 조건에서만 예술은 남을 강요하지 않는 천부의 재능이다. 이 책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것을 얻은 나로서는 이 천부의 재능이 지닌 폭을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얼마나 그 혜택을입고 있는지를 인정한다.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 두 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복받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와 비슷한 계시를 제공하리라는것을 알 수 있다.

‘지상의 양식'이 감동시킬 대중을 발견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이제는 새로운 독자들이 이 책을 찾아올 때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열어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아.. 대단하죠? 그, 이 참 추천사라는 건 이렇게 쓰는거구나 하는..것을 보여주는 알베르 카뮈의 명문장인데요. 특히 마지막 부분은 두고두고 인고에 회자되면서 참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2 Episode 6 - Jean Grenier "Island" - Part 2 Episode 6 - ジャン・グルニエ「島」 (Jean Grenier) - Part 2

그르니에가 그리고 있는 여행은 상상의 세계. The journey that Grenier is drawing is an imaginary world.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속으로의 여행, 섬에서 섬으로 찾아 떠나는 순례이다. It is a pilgrimage to the invisible world, a pilgrimage to the island. 그것은 멜빌이 "화요일" 속에서 다른 방법으로 보여준 순례와 마찬가지이다. It's the same as Melville's pilgrimage in a different way in "Tuesday."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 The beast dies after enjoying, and the human dies after overflowing with wonder.

우리가 끝내 이르게 되는 항구는 어디일까? Where is the port where we end up? 바로 이것이 이 책 전편을 꿰뚫고 지나가는 질문이다. This is the question that passes through the entire book. 이 질문은 사실 책 속에서 오직 하나의 간접적인 해답을 얻을 뿐이다. This question actually only has one indirect answer in the book.

과연 그르니에는 멜빌과 마찬가지로 절대와 신성에 대한 명상으로 그의 여행을 끝내고 있다. Indeed, like Melville, Grenier ends his journey with a meditation on the absolute and the divine. 힌두교도에 대한 말 끝에 그는 그 이름을 알 수도 없으며 어디에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어떤 항구,영원히 이르지 못하며 그 나름대로 사람의 발자취란 없는 어떤 다른 섬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After talking about the Hindus, he tells us the story of some other island that doesn't know its name or knows where it is, any port that never lasts, and has its own footsteps. 여기서도 역시, 전통적인 종교들 밖에서 성장한 한 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조심스럽고 암시적인 접근방식이 아마도 보다 더 깊이 있는 반성을 향한 유일한 인도방식이 되었던 것 같다. Here too, for a young man who grew up outside of traditional religions, this cautious and implicit approach probably seemed to be the only way of guiding to a deeper reflection. 개인적으로 볼 때 나에게 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Personally, I wasn't without God. 태양과 밤과 바다...는 나의 신들이었다. The sun, night, and sea ... were my gods. 그러나 그것은 향락의 신들이었다. But it was the gods of pleasure. 그들은 가득히 채워 준 후에는 다비워내는 신들이었다. They were gods who, having filled themselves to the brim, would empty themselves. 오직 그들과만 더불어 있을 경우에 나는 향락 그 자체에 정신이 팔려 그들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If I were to be with them alone, I would become absorbed in the pleasure itself and forget them. 내가 어느 날 그 무례한 마음을 버리고 나의 이 자연신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에게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Someone needed to remind me of mystery, sanctity, human finiteness, and impossible love in order for me to be able to abandon that rude heart one day and return to my bosom of this natural god. 그러므로 내가 그르니에에게서 얻은 것은 확신들이 아니었다. Therefore, it wasn't the convictions I got from Grenier. 그는 나에게 확신을 줄 수도 주고자 원하지도 않았다. He didn't want to give or convince me. 그와 반대로 나는 그에게서 의혹을 얻었다. On the contrary, I got suspicion from him. 그 의혹은 끝이 없을 것이다. The suspicion will never end. 그것은 예를 들어, 나로 하여금 오늘날 흔히 쓰는 의미에서의 휴머니스트, 다시 말해서 근시안적 확신들 때문에 눈이 먼 사람이 되지 않도록 보호해 준 힘이 되었다. It has, for example, helped me to avoid being a blind man because of the humanist in the sense that I use today, that is, myopic convictions. "섬" 속을 뚫고 지나가는 저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영혼의 의혹은 하여튼 나의 경탄을 자아냈고 나는 그것을 모방하고 싶어했다. Anyway, the suspicion of the soul swaying from side to side passing through the "island" aroused my admiration, and I wanted to imitate it.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었다. "I've had a lot of fantasies about arriving in an unfamiliar city alone, with nothing.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 보았으면 싶었다. So I wanted to live humbly, or not, roughly. 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But most of all, if I do that, I will be able to keep secrets. "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알제의 저녁 속을 걸어가면서 되풀이하여읽어 보노라면 나를 마치 취한 사람처럼 만들어 주던 저 일종의 음악 같은 말들이다. These are the kinds of music that made me like a drunk person if I read it over and over again in the evening of Algiers. 나는 새로운 땅에서 내가 수없이 끼고 돌던 높은 담장들에 둘러싸인 채 그 너머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동꽃 향기만을 건네주던, 가난한 나의 꿈이었던 저 은밀한 정원들 중 하나가 마침내 내게로 열려오는 것만 같았다. I seemed like one of those secret gardens, my poor dreams, finally opened up to me, surrounded by the tall fences that I wore in my new land and handed only the invisible fairy scent of flowers beyond.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I wasn't wrong. 과연 비길 데 없이 풍성한 정원이 열리고 있었다. 그 무엇인가가, 그 누군가가 나의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꿈틀거리면서 말을 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Something, someone was eagerly wriggling in me, wanting to speak. 이 새로운 탄생은 어떤 단순한 독서, 어떤 짤막한 대화 한마디만으로도 한 젊은이에게서는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This new birth can be triggered by a young man with just a simple reading or a brief conversation. 펼쳐 놓은 책에서 한 개의 문장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고 한 개의 어휘가 아직도 방안에서 울리고 있다. In the open book, one sentence stands out and one vocabulary still rings in the room.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되고 무질서가 멈춰 버린다. 그와 동시에 벌써 그 완벽한 언어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수줍고 더욱 어색한 하나의 노래가 존재의 어둠 속에서 날개를 푸득거린다.

내가 "섬"을 발견하던 무렵쯤에는 나도 글을 쓰고 싶어했던것 같다. By the time I discovered "Island", I think I also wanted to write. 그러나 그 막연한 생각이 진정으로 나의 결심이 된 것은 그 책을 읽고 난 뒤였다. However, it was only after reading the book that the vague idea truly became my decision. 다른 책들도 이 같은 결심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그 역할을 끝낸 다음에는 나는 그 책들을 잊어버렸다. It is true that other books helped make this decision, but once I finished the role, I forgot them. 그와는 달리 이 책은 끊임없이 나의 내부에 살아 있었고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 In contrast, this book was constantly alive inside me and for over twenty years I have been reading it. 오늘에 와서도 나는 "섬"속에, 혹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말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이기나 하듯이 쓰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Even today, I often write and speak words in "islands" or in other books of the same author, as if they were my own. 나는 그런 일을 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I don't think it's perfect.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온 이 같은 행운을  기뻐할 뿐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경도하고 스승을 얻고, 그리하여 여러 해 여러 작품을 통하여 그 스승을 존경할 필요를 느꼈던 나 자신에서는 더 없이 좋은 행운이었다. It was a very good luck to myself that I felt the need to admire my mind at the right time and get a teacher at the right time than anyone else, and thus to respect the teacher through many works for many years.

적어도 생애에 한 번은 저 열광에 찬 복종의 마음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닌게 아니라 행운이라 할 수 있다. At least once in a lifetime, being able to experience the enthusiasm of that enthusiasm for enthusiasm is not good luck, but not good luck. 우리들의 지적 사회가 자랑하여 마지않는 어정쩡한 진리들 중에는 저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원하는 저 흥분의 진리도 섞여 있다. Among the insane truths that our intellectual society is proud of and endlessly mixed with, the truth of that excitement that wants the death of others. 그 사회에서는 곧 우리들 자신 모두가 스승이요, 노예가 되어 서로 죽이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말은 다른 뜻도 지니고 있다. However, the word teacher has a different meaning. 그 의미로 인하여 스승과 제자는 오직 존경과 감사의 관계 속에 서로 마주 대하게 된다. Because of that meaning, the Master and the Disciple face each other only in a relationship of respect and gratitude. 이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의식의 투쟁이 아니라, 일단 시작하면 그 생명의 불이 꺼질 줄 모르며 서로서로의 생애를 가득 채워 줄 수 있는 대화인 것이다. 이 오랫동안에 걸친 교류는 예속이나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장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을 야기시킨다. This long-standing exchange does not require subjugation or obedience, but it causes imitation in the most spiritual sense.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고 그의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 실제에 있어서 제자는 언제나 자신이 모든 것을 얻어 가지기만 하였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지니면서 자신은 그 어느 것에도 보답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스승은 흐뭇해 한다. At the end, when the disciple leaves the Master and completes his own world, in practice, the disciple always knows that he could never repay anything, having the nostalgia for the time when he had only got everything. Even though the teacher is happy. 이와 같이 여러세대에서 정신이 정신을 낳는 것이며, 인간의 역사는 다행스럽게도 증오 못지않게 찬미의 바탕 위에도 건설되는 것이다. In this way, in many generations, the mind gives birth to the mind, and fortunately, human history is built on the basis of praise as much as hate.

그러나 그르니에라면 이러한 어조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한 마리 고양이의 죽음, 어떤 백정의 병, 꽃의 향기, 지나가는 시간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Rather, he prefers the story of the death of a cat, the bottle of a butcher, the scent of flowers, and the passing time.

이 책 속에서 정말로 다 말해 버린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모두가 여기서는 어떤 비길 데 없는 힘과 섬세함으로 암시되어 있다. 정확하면서도 꿈꾸는 듯한 저 가벼운 언어는 음악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The precise yet dreamy light language has the flexibility of music. 그 언어는 빠르게 흐르지만 그 메아리는 긴 여운을 남긴다. The language flows quickly, but the echo leaves a long afterglow. 굳이 비교를 하려면 프랑스말로부터 새로운 액센트를 이끌어낸 바 있는 샤토브리앙과 바레스와 비교해야 할 것이다. If you want to make a comparison, you should compare it with Chateaubriand and Barres, who have drawn new accents from French. 하지만 비교해 보아 무엇하랴! 그르니에의 독창성은 그런 비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Grenier's originality does not require such a comparison. 그는 다만 우리들에게 단순하고 친숙한 경험들을 눈에 드러날 만큼 꾸미는 일이 없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He just speaks simple and familiar experiences to us in a language that is not as decorative. 그리고 나서 그는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좋은 대로 해석하도록 맡겨 둔다. 단지 이런 조건에서만 예술은 남을 강요하지 않는 천부의 재능이다. Only under these conditions, art is a natural talent that does not force others. 이 책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것을 얻은 나로서는 이 천부의 재능이 지닌 폭을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얼마나 그 혜택을입고 있는지를 인정한다. As a person who has gained so much from this book, I am well aware of the breadth of this natural talent and I admit how much I am benefiting from it.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 두 번일 수 있다. The great revelation a person gets while living his life is so rare that it can be at most once or twice.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But that revelation, like luck, changes the way you live.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복받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와 비슷한 계시를 제공하리라는것을 알 수 있다. For those who are blessed with a passion to live and a passion to know, it can be seen that this book will provide a similar revelation for every page you turn.

‘지상의 양식'이 감동시킬 대중을 발견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It took twenty years for the 'food on the ground' to discover the masses to impress. 이제는 새로운 독자들이 이 책을 찾아올 때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I still want to be one of those readers.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After opening this little book on the street, I would like to go back to the evening when I ended up going back to my room to read without hesitation, finally going to a place where no one was there, after folding it back and holding it on my chest after reading the first few lines.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I envy without any repentance.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열어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I envy that unfamiliar young man who will open this "island" for the first time today. 아.. 대단하죠? Ah ... is it great? 그, 이 참 추천사라는 건 이렇게 쓰는거구나 하는..것을 보여주는 알베르 카뮈의 명문장인데요. Well, this really recommender is the name of Albert Katya, who shows that it's written like this. 특히 마지막 부분은 두고두고 인고에 회자되면서 참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In particular, the last part was left, and as I was talked to ingo, I heard so many people's he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