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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1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은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오늘 여섯 번 째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하고있는, 이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는 김영하입니다. 제작 김영하, 녹음 김영하 어쨌든 제가 다 하고 있죠?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죠? 여자 피겨 경기를 보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또 ‘책 읽는 시간'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무슨 책을 할 까, 사실은 뭐 제가 매번 대단히 즉흥적으로 그 책을 결정을 합니다. 제 서가 앞에서 어슬렁 거리면서 어떤 책이 제 마음에 들어오는지를 보는거죠.

그냥 그런 어떤,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의 세계 처럼 어떤 그 포스가 저와 함께 하기를, 책의 포스가 어느 날 저의 마음의 주파수와 잘 조응하는지를 보고, 그냥 고르는거죠.

오늘도 제가 지금 동계 올림픽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동계 올림픽 보고 선수들의 눈부신 약동, 질주 (스키를 타고 내려가잖아요), 한 인간이 몇 년동안 응축시켜온 에너지를 확 폭파시키는 장면을 보고나면 뭔가 마음이 어떤면에선 힘들잖아요. 그럴 땐 다시 또 책으로 돌아가는거죠.

저 자신을 생각해보면 늘 두 가지 충동이 함께 있는 것 같아요. 마구 길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일들을 벌이고, 그러고 싶은 욕망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집에 틀어 박혀가지고 책보고, 음악듣고, 또 글쓰고 뭐 이런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있죠. 그런데 어떤사람은 며칠만에 왔다갔다하는데 저는 한 몇 년 주기로 왔다갔다합니다. 제가 좋은, 좋다기 보다는 뭐 활발한 시간기에는 홈페이지도 하고, 독자들도 만나고, 낭송회도 하고 어떤일들을 벌이죠. 그러다가 뭐랄까 내면이 좀 허하다 느끼면 또 달팽이 처럼 자기 집속으로 쏙들어가서 몇 년 씩 나오지 않는데, 요즘은 제가 수면 위로 머리는 내놓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 팟캐스트는 제가 뉴욕에 있을 때 (작년에 뉴욕에 있었는데요) 뉴욕에 있을 때 착상하게 됐습니다. 거기는 팟캐스트 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저도 이것 저것 좀 들었는데 그러면서 이런 저의 어떤 양극단의 성격, 어떤사람은 제가 사회적이고 붙임성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떤사람은들은 자기 집에 틀어박혀서 잘 나오지 않고 친구를 사귀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근데 이 두 개가 저라는 개인에게 다 있는 성격이죠.

이 팟캐스트는 그 중간쯤 되는 성격인 것 같아요. 누구를 만날 필요도 없고 제가 집에서 책을 골라서 혼자 읽으면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두 가지 양극단의 성격을 조화시킬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닌가, 그런 채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서 한번 해보자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그 문제들을 다 해결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마치게 됐죠.

오늘 같은 날 읽으면 좋은 책은 뭘까… 제가 서가에서 생각을 해봤는데 문득 (참 오래된 책인데요) 제가 갖고있는 판본으로는 2001년 도에 번역된 것으로 나와있는데, 장 그르니에 “섬”이라는, 그 산문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죠. 특히 알베르 카뮈와 연결돼서 알베를 카뮈의 멘토랄까요? 그 어떤 정신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로서 유명했습니다. 이 분의 “섬”이라는 책이 특히 유명하지만 다른 산문들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제가 지금 갖고있는 책으로는 “일상적인 삶”이라는 산문집이 있는데요. 2001년 에 번역, 출간된 책입니다. 이 책에도 상당히 좋은 산문들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특히 “일상적이 삶”에 들어있는 이 ‘침묵'이라던가 ‘독서' 이런 소제목 밑에 있는 섹션들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데요. 역시 오늘은 장 그르니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섬”을 좀 읽고 싶은데요. 이 책은 (책도 좋지만) 장 그르니에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알베르 카뮈의 서문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이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데 태어나기는 파리에서 태어났는데 에나레프지에 기고하면서 집필활동을 시작했고요. (프랑스의 식민지였죠) 알제에서 알제 대학교 철학교수를 지냈고, 이때 카뮈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서 이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알베르 카뮈가 스무살에 원래는 이 글을 처음 접했다고 하죠? 나중에 이 책에 대해서 ‘섬에 부쳐서'라는 일종의 서문을 쓰게 되는 데요. 나중에는 스승보다 훨씬 더 유명한 작가가 됐죠. 노벨 문학상도 탔고요. 이 서문이 상당히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 서문 때문에 장 그르니에를 알게되고 읽에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서문 자체가 명문이기 때문에 일단 이 서문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제에서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나는 스무 살 이었다. 내가 이책에서 받은 충격, 이 책이 내게, 그리고 나의 많은 친구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오직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 이외에는 비견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섬"이 우리들에게 가져다 준 계시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지드적인 감동은 우리들에게 찬양의 감정과 동시에 어리둥절한 느낌을 남긴 것인 반면에 이 책이 보여 준 바는 우리들에게 알맞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모랄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고, 지상의 풍성한 열매들을 노래할 필요를 새삼스럽게 느낄 형편은 아니었다. 지상의 열매들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빛 속에 열려 있었다. 입으로 깨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우리들중의 몇몇 사람들에게 가난과 고통은 물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었다. 다만 우리들은 우리들의 피끓는 젊음의 온 힘을 다하여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세계의 진실이란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이 나누어 주는 즐거움 속에 있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감각 속에 서, 세계의 표면에서, 빛과 파도와 대지의 좋은 향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지상의 양식'이 그 행복에의 초대와 함께 찾아온 것이 우리들에게는 너무 뒤늦은 일이었다는 점은 바로 이런 까닭이었다. 행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오만한 직업으로 삼고 있는 터였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탐욕으로부터 좀 딴 곳으로 정신을 돌릴 필요가 있었고, 우리들의 저 야성적인 행복으로 부터 깨어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음울한 설교자들이 이 세상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들 위에 저주의 말을 던지면서 우리들의 바닷가에 서성거리기라도 했더라면 우리들의 반응은 격렬하거나 혹은 지극히 냉소적이 것이었으리라. 우리들에게는 보다 섬세한 스승이 필요하였다. 예컨대 다른 바닷가에서 태어나, 그 또한 빛과 육체의 찬란함에 매혹당한 한 인간이 우리들에게 찾아와서 이 겉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니 그 아름다움을 절망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모방 불가능한 언어로 말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 곧 그 어느 시대에나 한결같은 이 거대한 테마는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새로움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다, 햇빛, 얼굴들은 어떤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려지고 여전히 그 매혹은 살아 남았으되 우리들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것이었다. 요컨대 "섬"은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발 딛고 있는 땅으로부터 뿌리를 뽑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온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문화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과연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왕국으로 여기고 있었던 감각적인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와 병행하여 우리들의 젊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 주었다. 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체험한 감격과 긍정의 순간들은 그르니에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들의 원칙이거니와 그는 그것의 영원한 흥취와 동시에, 그 덧없음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자 곧 우리들은 우리가 돌연하게 느끼고 했던 우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불모의 땅과 어두운 하늘 사이에서 힘들게 일하며 사는 사람은 하늘과 빵이 가볍게 느껴지는 다른 땅을 꿈꾸게 된다. 그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빛과 둥근 구릉들로 진종일 마음이 흡족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 그들이 꿈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상상 속의 타고장 뿐이다.

이리하여 북쪽 사람들은 지중해 기슭으로, 혹은 빛의 사막 속으로 도망쳐오지만, 빛의 고장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 밖에 또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는가?

Episode 6 - 장 그르니에 “섬” (Jean Grenier) - Part 1 الحلقة 6 - جان جرينير "الجزيرة" (جان جرينير) - الجزء الأول Episode 6 - Jean Grenier "The Island"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은 시간' 팟캐스트 البودكاست "وقت قراءة الكتاب" للمؤلف كيم يونغ ها Writer Kim Young-ha's'Time Reading a Book' Podcast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오늘 여섯 번 째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하고있는, 이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는 김영하입니다. اسمي يونغها كيم، وأنا المضيف ومنشئ هذا البودكاست. My name is Youngha Kim, who is making this podcast, who is working on it. 제작 김영하, 녹음 김영하 어쨌든 제가 다 하고 있죠? Production Kim Young-ha, recording Kim Young-ha Anyway, am I doing everything?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죠? Today was the day of Kim Yuna's game? 여자 피겨 경기를 보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또 ‘책 읽는 시간'으로 돌아왔습니다. Watching a women's figure skating match calmed my excitement and returned to'book reading time'.

오늘은 무슨 책을 할 까, 사실은 뭐 제가 매번 대단히 즉흥적으로 그 책을 결정을 합니다. What book to do today, actually, I decide on that book very spontaneously every time. 제 서가 앞에서 어슬렁 거리면서 어떤 책이 제 마음에 들어오는지를 보는거죠. I wander in front of my bookshelf and see which books come into my mind.

그냥 그런 어떤,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의 세계 처럼 어떤 그 포스가 저와 함께 하기를, 책의 포스가 어느 날 저의 마음의 주파수와 잘 조응하는지를 보고, 그냥 고르는거죠. It's just some kind of, like the Jedi world in Star Wars, what kind of force I want to be with me, seeing if the force in the book one day matches the frequency of my mind, and I just choose.

오늘도 제가 지금 동계 올림픽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동계 올림픽 보고 선수들의 눈부신 약동, 질주 (스키를 타고 내려가잖아요), 한 인간이 몇 년동안 응축시켜온 에너지를 확 폭파시키는 장면을 보고나면 뭔가 마음이 어떤면에선 힘들잖아요. Even today, I'm watching the Winter Olympics intently. After seeing the Winter Olympics, the dazzling movement of the athletes, running (it's going down on a ski), and a scene where a human explodes the energy that has been condensed for several years, the mind is in some way It's hard. 그럴 땐 다시 또 책으로 돌아가는거죠. In that case, I go back to the book again.

저 자신을 생각해보면 늘 두 가지 충동이 함께 있는 것 같아요. When I think of myself, I always seem to have two impulses together. 마구 길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일들을 벌이고, 그러고 싶은 욕망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집에 틀어 박혀가지고 책보고, 음악듣고, 또 글쓰고 뭐 이런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있죠. There is a desire to meet people, do fun things, and want to do so while walking around the streets, and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desire to live a life like this, reading books, listening to music, writing, etc. 그런데 어떤사람은 며칠만에 왔다갔다하는데 저는 한 몇 년 주기로 왔다갔다합니다. But some people go back and forth in a few days, but I go back and forth every few years. 제가 좋은, 좋다기 보다는 뭐 활발한 시간기에는 홈페이지도 하고, 독자들도 만나고, 낭송회도 하고 어떤일들을 벌이죠. Rather than good or good, I do homepages, meet readers, read recitals and do some things during active times. 그러다가 뭐랄까 내면이 좀 허하다 느끼면 또 달팽이 처럼 자기 집속으로 쏙들어가서 몇 년 씩 나오지 않는데, 요즘은 제가 수면 위로 머리는 내놓고 있는 시기입니다. Then, if you feel a little weak inside, it goes into your own focal point like a snail and doesn't come out for several years.

이 팟캐스트는 제가 뉴욕에 있을 때 (작년에 뉴욕에 있었는데요) 뉴욕에 있을 때 착상하게 됐습니다. This podcast came about when I was in New York (I was in New York last year) when I was in New York. 거기는 팟캐스트 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저도 이것 저것 좀 들었는데 그러면서 이런 저의 어떤 양극단의 성격, 어떤사람은 제가 사회적이고 붙임성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떤사람은들은 자기 집에 틀어박혀서 잘 나오지 않고 친구를 사귀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근데 이 두 개가 저라는 개인에게 다 있는 성격이죠.

이 팟캐스트는 그 중간쯤 되는 성격인 것 같아요. 누구를 만날 필요도 없고 제가 집에서 책을 골라서 혼자 읽으면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두 가지 양극단의 성격을 조화시킬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닌가, 그런 채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서 한번 해보자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그 문제들을 다 해결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마치게 됐죠.

오늘 같은 날 읽으면 좋은 책은 뭘까… 제가 서가에서 생각을 해봤는데  문득 (참 오래된 책인데요) 제가 갖고있는 판본으로는 2001년 도에 번역된 것으로 나와있는데, 장 그르니에 “섬”이라는, 그 산문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죠. What would be a good book to read on a day like today... I thought about it in the bookshelf, and suddenly (it's a very old book), the version I have was translated in 2001, and Jean Grenier “Island”, a French author famous for its prose collection. 특히 알베르 카뮈와 연결돼서 알베를 카뮈의 멘토랄까요? In particular, you are connected with Albert Camus, so would Albe be Camus' mentor? 그 어떤 정신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로서 유명했습니다. 이 분의 “섬”이라는 책이 특히 유명하지만 다른 산문들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제가 지금 갖고있는 책으로는 “일상적인 삶”이라는 산문집이 있는데요. 2001년 에 번역, 출간된 책입니다. 이 책에도 상당히 좋은 산문들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특히 “일상적이 삶”에 들어있는 이 ‘침묵'이라던가 ‘독서' 이런 소제목 밑에 있는 섹션들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데요. 역시 오늘은 장 그르니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섬”을 좀 읽고 싶은데요. 이 책은 (책도 좋지만) 장 그르니에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알베르 카뮈의 서문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이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데 태어나기는 파리에서 태어났는데 에나레프지에 기고하면서 집필활동을 시작했고요. (프랑스의 식민지였죠) 알제에서 알제 대학교 철학교수를 지냈고, 이때 카뮈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It was a French colony) I was a professor of philosophy at the University of Algiers in Algiers. 그러므로서 이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알베르 카뮈가 스무살에 원래는 이 글을 처음 접했다고 하죠? Therefore, it is said that Albert Camus was first introduced to this article when he was 20 years old. 나중에 이 책에 대해서 ‘섬에 부쳐서'라는 일종의 서문을 쓰게 되는 데요. 나중에는 스승보다 훨씬 더 유명한 작가가 됐죠. 노벨 문학상도 탔고요. I also won the Nobel Prize for Literature. 이 서문이 상당히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 서문 때문에 장 그르니에를 알게되고 읽에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서문 자체가 명문이기 때문에 일단 이 서문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제에서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나는 스무 살 이었다. 내가 이책에서 받은 충격, 이 책이 내게, 그리고 나의 많은 친구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오직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 이외에는 비견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섬"이 우리들에게 가져다 준 계시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지드적인 감동은 우리들에게 찬양의 감정과 동시에 어리둥절한 느낌을 남긴 것인 반면에 이 책이 보여 준 바는 우리들에게 알맞는 것이었다. While the giddy impression left us feelings of praise and confusion at the same time, what this book showed was appropriate for us. 사실 우리는 모랄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고, 지상의 풍성한 열매들을 노래할 필요를 새삼스럽게 느낄 형편은 아니었다. 지상의 열매들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빛 속에 열려 있었다. The fruits of the earth were open to the light, where they could reach them by reaching out. 입으로 깨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우리들중의 몇몇 사람들에게 가난과 고통은 물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었다. 다만 우리들은 우리들의 피끓는 젊음의 온 힘을 다하여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세계의 진실이란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이 나누어 주는 즐거움 속에 있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감각 속에 서, 세계의 표면에서, 빛과 파도와 대지의 좋은 향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지상의 양식'이 그 행복에의 초대와 함께 찾아온 것이 우리들에게는 너무 뒤늦은 일이었다는 점은 바로 이런 까닭이었다. 행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오만한 직업으로 삼고 있는 터였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탐욕으로부터 좀 딴 곳으로 정신을 돌릴 필요가 있었고, 우리들의 저 야성적인 행복으로 부터 깨어날 필요가 있었다. On the contrary, we needed to shift our minds away from our greed, and we needed to awaken from that wild happiness of us. 물론 음울한 설교자들이 이 세상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들 위에 저주의 말을 던지면서 우리들의 바닷가에 서성거리기라도 했더라면 우리들의 반응은 격렬하거나 혹은 지극히 냉소적이 것이었으리라. Of course, our reaction would have been violent or extremely cynical if the gloomy preachers had even wandered on our shores, throwing words of curse upon this world and the lives that surround us. 우리들에게는 보다 섬세한 스승이 필요하였다. 예컨대 다른 바닷가에서 태어나, 그 또한 빛과 육체의 찬란함에 매혹당한 한 인간이 우리들에게 찾아와서 이 겉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니 그 아름다움을 절망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모방 불가능한 언어로 말해 줄 필요가 있었다. For example, a human being born on a different seashore and enchanted by the splendor of light and flesh came to us and learned that the appearance of the world on the outside is beautiful, but it is going to break down, so we must desperately love the beauty. It was necessary to speak in a language that cannot be imitated. 그러자 곧 그 어느 시대에나 한결같은 이 거대한 테마는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새로움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다, 햇빛, 얼굴들은 어떤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려지고 여전히 그 매혹은 살아 남았으되 우리들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것이었다. 요컨대 "섬"은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발 딛고 있는 땅으로부터 뿌리를 뽑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온 것이었다. En bref, l'"île" est venue nous apprendre à nous déraciner du sol sur lequel nous marchons naturellement. 이리하여 우리는 문화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과연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왕국으로 여기고 있었던 감각적인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와 병행하여 우리들의 젊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 주었다. En effet, le livre ne nie pas la réalité sensorielle que nous avons prise pour notre royaume, mais il nous montre une autre réalité qui lui est parallèle et qui explique l'origine de notre anxiété juvénile. 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체험한 감격과 긍정의 순간들은 그르니에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들의 원칙이거니와 그는 그것의 영원한 흥취와 동시에, 그 덧없음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Ces moments d'exaltation et d'affirmation que l'on éprouve vaguement sans en avoir la certitude sont au principe des plus belles pages de Grenier, qui nous rappelle leur pérennité et, en même temps, leur fugacité. 그러자 곧 우리들은 우리가 돌연하게 느끼고 했던 우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Très vite, nous nous sommes rendu compte de l'excellence que nous avions soudainement ressentie. 불모의 땅과 어두운 하늘 사이에서 힘들게 일하며 사는 사람은 하늘과 빵이 가볍게 느껴지는 다른 땅을 꿈꾸게 된다. Ceux qui peinent et vivent dans des terres arides et des cieux sombres rêvent d'un autre pays où le ciel et le pain sont légers. 그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Il essaie d'être plein d'espoir. 그러나 빛과 둥근 구릉들로 진종일 마음이 흡족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 Mais ceux dont le cœur a été séduit par la lumière et les collines arrondies n'ont plus d'espoir. 그들이 꿈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상상 속의 타고장 뿐이다. Tout ce dont ils peuvent rêver, c'est d'une chevauchée de leur imagination.

이리하여 북쪽 사람들은 지중해 기슭으로, 혹은 빛의 사막 속으로 도망쳐오지만, 빛의 고장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 밖에 또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