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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3

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3

우리가 어떤 산문이라던가 연설문을 쓰면, 그것은 그냥 그 사람의 목소리가 되지만, 소설을 여러 인물들의 개개의 목소리가 경쟁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우월하지 않죠. 헛소리들의 경연장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돈키호테의 말을 누가 진지하게 듣겠습니까? 그리고 그 돈키호테의 진지하지 못 한 말, 모든것을 말하자면 상대화시키는, 이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움직임, 언행, 이런 것 때문에 저는 소설의 어떤 근대성이 발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소설만이,문학장르 중에서 소설만이, (희곡도 물론 그런 면이 있습니다만) 소설만이 우리로 하여금 여러 심각하고 엄숙한 주장들을 상대화시켜서, 즉 거리를 두고 볼수 있게 만들어주죠. 그래서 사실은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어떤 종교, 광신도들 이런 사람들이 소설을 미워합니다. 왜? 소설은 읽다보면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엄숙한 것을 태생적으로 소설은 싫어합니다. 반드시 엄숙한 것이 더 좋은 소설이냐, 엄숙한 어떤 주장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면에서 볼수 있는, 다른 누군가의 주장이 들어간다거나 이렇게 되므로서 여러주장들이 경연을 벌이게 되죠. 그러므로서 우리로 하여금, 독자로 하여금, 어떤 하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이게 근대소설의 (저는) 매력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음, 그렇습니다.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생각하게 만들고요. 또 생각을하지않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낄낄거리고 웃게만들 수도 있잖아요. 어떤 엄숙한 주장들.. 그런것을 깊숙하게 밀어부쳐서 하나의 주제로 형성한 것이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같은 것이지요. 그 소설에는 (장미의 이름 그 소설에는) 수도원의 어떤 책을 숨기기 위해서, 가상의 책이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3 권', 사실은 웃음에 대한 책이라고 얘기들 하는데, 가상의 책이죠 물론, 그 책을 숨기는데, 또 그 비밀을 숨기기 위해서 도서관을 불사르기 까지하는 이 인물 호르헤. 사실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에스(Jorge Luis Borges) 가 모델이었다고 하죠. 눈 먼 도서관장이었죠 나중에는. 보르헤스를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 호르헤라는 노인이 도서관을 불태우게된 이유는, 이 웃음이라는것이 위험하다는 거예요. 엄숙한 주장들을 희화화시키고 맥빠지게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정치가들이 툭하면 소설을 불태우려고 하는 겁니다. 시답지 않아 보이는 것이 말이죠, 뭘 진지한 것을 자꾸 희롱하려고 그러고, 그렇진 않다 하더라도 뭔가 삐딱하고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게 정치적이고 엄숙한 주장들을 꼭 반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소설이라는 것 존재 자체가, 그 안에넣어 보면 어떤 심각한 인물도 약간 웃겨 보여요.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싫어하고. 뭐 가까운 예로는 호메이니가 파투아를 내렸죠. 살만 루시디를 살해하는자에게 정말 신의 영광이 있을 것이다. 이런 파투아를 내려서 살만 루시디가 죽을 뻔 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번역자, 일본어로 번역했던 번역자 까지 살해당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하여간 이 인물의 주장, “나는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화자의 주장을 제 주장을 보셔셔는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것은) 이 인물이 갖고 있는 어떤 극단적인 세계관이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이 부분을 저는 자주 읽게 되는데, 근데 이번에 그 산동대학에 갈 때는 좀 다른 부분을 읽어봐야 겠다. 그런생각이 들었어요. 맨날 그 부분만 읽고 좀 지겹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번에는 2 장을 읽어야 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 2 장 좋지 그러고 딱 보니까, 2 장도 약간.. 지뢰밭이예요. 위험한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니까 2 장의 바로 앞부분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2 장의 앞부분을 읽어야겠다라고 생각을하고 산동대학에 갔습니다. 가서 뭐 학생들이 똘망똘망한 눈을 하고 앉아 있어요. 국제학부기 때문에, 산동대학은 또 중국에서는 아주 좋은 대학이라고 하더군요. 그 학생들이 똘망똘망해요. 그학생들이 그러는데 거기서 뭐 영어도 잘하고, 중국어도 잘하고 뭐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어는 잘하죠. 뭐 영어도 잘하고 뭐 하튼 그래요. 그 한국말을 하는 학생들도 좀 있었어요. 저는 자리에앉아 있었고, 학생이 먼저 올라가서 제 소설의 영어판을 보고, 제가 읽겠다고 한 부분을 먼저 읽고 나서 제가 다시 올라가서 한국어로 읽게 되는 그런 순서였어요. 저는 차분히 앉아서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여학생이었어요. 젊은, 젊다기보다는 거의 어린. 갓 스물 정도 됐을까. 그런 여학생인데, 연습을 많이 했겠죠. 다른나라 작가가 온다는데 그 학교에선 꽤 큰 행사였습니다. 그 비페이위 같은 작가는 중국에서 유명한 작가기 때문에, 저는 무슨 뭐 아이돌인줄 알았어요. 비페이위 소개할 때 보니까 학생들이 와~이러는데, 제가 비페이위한테 그랬죠. ‘너 홍콩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여기오니까 스타같다! '그러니까 막 쑥스러워 하더라고요. 하여튼 뭐 연습을 많이 했을겁니다. 학생들이 약간 분위기는 학예회 분위기 같았는데 여학생이 올라가서 제 소설을 읽는데 영어를 잘하고 발음도 좋더라고요. 그런데… 듣고있었는데 좀 이상해요. 왜 이렇게 이상한가...근데 들으면 들을 수록 난감한거예요. 왜 그런일이 벌어졌는지 제가 읽으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원래 읽으려고 했던 부분은, 2 장의 바로 앞부분입니다. 일단 이 부분을 한 번 들어보시죠.

“눈이 너무 많이 내려. K는 잘 있지?”

벌써 다섯 시간 째, 유디트와 C가 탄 자동차는 한계령 어귀의 국도상에 서있다. 가끔씩 와이퍼를 작동시켜 차창에 쌓이는 눈을 치우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이십 년 만의 폭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방면에서 형성된 기압골이 시베리아 기단과 부딪시면서 내린 눈이라 했다. 도로에 늘어선 차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범퍼까지 차오르는 눈에는 타이어 체인도 소용없다. 근처에는 인가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있다. 낮에도 어둑했던 사위는 오후 다섯시를 넘기자마자캄캄해진다. C가 다시 와이퍼를 작동하려 했을 때, 유디트가 오랜 침물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내버려둬. 밖이 안 보이는 게 더 좋아.”

그녀는 휘파람을 불면서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와이퍼의 작동을 멈추자 눈은 삽시간에 앞유리를 덮어 버린다. 어렴풋하게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느껴질 뿐, 차 안은 암흑에 가깝다. 조주석에 앉은 유디트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윤곽만이 감지될 뿐이다. 마음이 오히려 푸근해진다. 건조란 차 속의 공기 때문에 눈이 뻐근해져온다.

“여긴 북극 같아.”

유디트가 차창에 얼굴을 기대며 말했다.

“북극?”

“허영호라는사람 알아? 어제 TV에서 허영호라는 사람이 북극을 정복하는 걸 보여줬어.”

“그런데?”

“허영호가 썰매를 끌고 북극점을 향해 가는데 말야, 북극은 거대한 얼음덩어리라서 바다 위에서 끊임없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대. 그래서 허영호는 마지막까지 극점 주위를 뱅뱅 돌아야만 했데. 그러다가 가까스로 북극점에 도달해서 깃발을 꽂고 사진을 한 방 찍고는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는 거야. 그 순간에도 북극점은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을 거야.”

“북극점이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그들이 서 있는 얼음 덩어리가 부유하는 거지.”

“그게 그거지. 우리가 떠다니든 북극점이 움직이든 결국은 마찬가지 아냐? 그럴 때 없어?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릴 떄 말야. 여기가 어딜까 하면서.”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은 매우 선명하다. 어머니의 장례 마지막 날이었다. C가 발인을 마치고 돌아왔을 떄, K와 그녀는 거실에서 섹스를 하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벗은 몸에 가 닿을 때까지도 K와 여자는 엉켜있었다. 검은색 리본이 드리워진 어머니의 영정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먼저 그를 발견한 K가 지루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고 주위에 널린 옷자기 중에서 자신의 옷을 꿰어 입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때까지도 눈을 질끈 감은 채 너브러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K가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는 그제야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정염이 채 가시지 않은 눈동자에선 푸른빛이 났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잠든 틈에 목을 잘라 죽였다는 고대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 클림트는 유디트에게서 민족주의와 영웅주의를 거세하고 세기말적 관능만을 남겨두었다.

유디트를 닮은 여자는 브래지어 등속을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3 Episode 5 - Youngha Kim " I Have the Right to Destroy Me " - Part 3 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3

우리가 어떤 산문이라던가 연설문을 쓰면, 그것은 그냥 그 사람의 목소리가 되지만, 소설을 여러 인물들의 개개의 목소리가 경쟁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우월하지 않죠. If we write a prose or speech, it is just the person's voice, but the novel is competing with the individual voices of the various figures, and something is not absolutely superior. 헛소리들의 경연장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You can say this is a contest of bullshit. 소설이라는 것은. What is a novel. 돈키호테의 말을 누가 진지하게 듣겠습니까? Who would seriously listen to Don Quixote's words? 그리고 그 돈키호테의 진지하지 못 한 말, 모든것을 말하자면 상대화시키는, 이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움직임, 언행, 이런 것 때문에 저는 소설의 어떤 근대성이 발화했다고 생각합니다. And I think that the modernity of the novel has sparked because of the seriousness of Don Quixote, the relativization of everything, the movements of this person named Don Quixote, 쉽게 말해서, 소설만이,문학장르 중에서 소설만이, (희곡도 물론 그런 면이 있습니다만) 소설만이 우리로 하여금 여러 심각하고 엄숙한 주장들을 상대화시켜서, 즉 거리를 두고 볼수 있게 만들어주죠. 그래서 사실은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어떤 종교, 광신도들 이런 사람들이 소설을 미워합니다. 왜? 소설은 읽다보면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엄숙한 것을 태생적으로 소설은 싫어합니다. 반드시 엄숙한 것이 더 좋은 소설이냐, 엄숙한 어떤 주장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면에서 볼수 있는, 다른 누군가의 주장이 들어간다거나 이렇게 되므로서 여러주장들이 경연을 벌이게 되죠. 그러므로서 우리로 하여금, 독자로 하여금, 어떤 하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이게 근대소설의 (저는) 매력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음, 그렇습니다.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생각하게 만들고요. 또 생각을하지않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낄낄거리고 웃게만들 수도 있잖아요. 어떤 엄숙한 주장들.. 그런것을 깊숙하게 밀어부쳐서 하나의 주제로 형성한 것이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같은 것이지요. 그 소설에는 (장미의 이름 그 소설에는) 수도원의 어떤 책을 숨기기 위해서, 가상의 책이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3 권', 사실은 웃음에 대한 책이라고 얘기들 하는데, 가상의 책이죠 물론, 그 책을 숨기는데, 또 그 비밀을 숨기기 위해서 도서관을 불사르기 까지하는 이 인물 호르헤. 사실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에스(Jorge Luis Borges) 가 모델이었다고 하죠. 눈 먼 도서관장이었죠 나중에는. 보르헤스를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 호르헤라는 노인이 도서관을 불태우게된 이유는, 이 웃음이라는것이 위험하다는 거예요. 엄숙한 주장들을 희화화시키고 맥빠지게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정치가들이 툭하면 소설을 불태우려고 하는 겁니다. 시답지 않아 보이는 것이 말이죠, 뭘 진지한 것을 자꾸 희롱하려고 그러고, 그렇진 않다 하더라도 뭔가 삐딱하고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게 정치적이고 엄숙한 주장들을 꼭 반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소설이라는 것 존재 자체가, 그 안에넣어 보면 어떤 심각한 인물도 약간 웃겨 보여요.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싫어하고. 뭐 가까운 예로는 호메이니가 파투아를 내렸죠. 살만 루시디를 살해하는자에게 정말 신의 영광이 있을 것이다. 이런 파투아를 내려서 살만 루시디가 죽을 뻔 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번역자, 일본어로 번역했던 번역자 까지 살해당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하여간 이 인물의 주장, “나는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화자의 주장을 제 주장을 보셔셔는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것은) 이 인물이 갖고 있는 어떤 극단적인 세계관이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이 부분을 저는 자주 읽게 되는데, 근데 이번에 그 산동대학에 갈 때는 좀 다른 부분을 읽어봐야 겠다. 그런생각이 들었어요. 맨날 그 부분만 읽고 좀 지겹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번에는 2 장을 읽어야 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 2 장 좋지 그러고 딱 보니까, 2 장도 약간.. 지뢰밭이예요. 위험한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니까 2 장의 바로 앞부분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2 장의 앞부분을 읽어야겠다라고 생각을하고 산동대학에 갔습니다. 가서 뭐 학생들이 똘망똘망한 눈을 하고 앉아 있어요. 국제학부기 때문에, 산동대학은 또 중국에서는 아주 좋은 대학이라고 하더군요. 그 학생들이 똘망똘망해요. 그학생들이 그러는데 거기서 뭐 영어도 잘하고, 중국어도 잘하고 뭐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어는 잘하죠. 뭐 영어도 잘하고 뭐 하튼 그래요. 그 한국말을 하는 학생들도 좀 있었어요. 저는 자리에앉아 있었고, 학생이 먼저 올라가서 제 소설의 영어판을 보고, 제가 읽겠다고 한 부분을 먼저 읽고 나서 제가 다시 올라가서 한국어로 읽게 되는 그런 순서였어요. 저는 차분히 앉아서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여학생이었어요. 젊은, 젊다기보다는 거의 어린. 갓 스물 정도 됐을까. 그런 여학생인데, 연습을 많이 했겠죠. 다른나라 작가가 온다는데 그 학교에선 꽤 큰 행사였습니다. 그 비페이위 같은 작가는 중국에서 유명한 작가기 때문에, 저는 무슨 뭐 아이돌인줄 알았어요. 비페이위 소개할 때 보니까 학생들이 와~이러는데, 제가 비페이위한테 그랬죠. ‘너 홍콩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여기오니까 스타같다! '그러니까 막 쑥스러워 하더라고요. 하여튼 뭐 연습을 많이 했을겁니다. 학생들이 약간 분위기는 학예회 분위기 같았는데 여학생이 올라가서 제 소설을 읽는데 영어를 잘하고 발음도 좋더라고요. 그런데… 듣고있었는데 좀 이상해요. 왜 이렇게 이상한가...근데 들으면 들을 수록 난감한거예요. 왜 그런일이 벌어졌는지 제가 읽으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원래 읽으려고 했던 부분은, 2 장의 바로 앞부분입니다. 일단 이 부분을 한 번 들어보시죠.

“눈이 너무 많이 내려. K는 잘 있지?”

벌써 다섯 시간 째, 유디트와 C가 탄 자동차는 한계령 어귀의 국도상에 서있다. 가끔씩 와이퍼를 작동시켜 차창에 쌓이는 눈을 치우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이십 년 만의 폭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방면에서 형성된 기압골이 시베리아 기단과 부딪시면서 내린 눈이라 했다. 도로에 늘어선 차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범퍼까지 차오르는 눈에는 타이어 체인도 소용없다. 근처에는 인가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있다. 낮에도 어둑했던 사위는 오후 다섯시를 넘기자마자캄캄해진다. C가 다시 와이퍼를 작동하려 했을 때, 유디트가 오랜 침물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내버려둬. 밖이 안 보이는 게 더 좋아.”

그녀는 휘파람을 불면서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와이퍼의 작동을 멈추자 눈은 삽시간에 앞유리를 덮어 버린다. 어렴풋하게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느껴질 뿐, 차 안은 암흑에 가깝다. 조주석에 앉은 유디트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윤곽만이 감지될 뿐이다. 마음이 오히려 푸근해진다. 건조란 차 속의 공기 때문에 눈이 뻐근해져온다.

“여긴 북극 같아.”

유디트가 차창에 얼굴을 기대며 말했다.

“북극?”

“허영호라는사람 알아? 어제 TV에서 허영호라는 사람이 북극을 정복하는 걸 보여줬어.”

“그런데?”

“허영호가 썰매를 끌고 북극점을 향해 가는데 말야, 북극은 거대한 얼음덩어리라서 바다 위에서 끊임없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대. 그래서 허영호는 마지막까지 극점 주위를 뱅뱅 돌아야만 했데. 그러다가 가까스로 북극점에 도달해서 깃발을 꽂고 사진을 한 방 찍고는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는 거야. 그 순간에도 북극점은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을 거야.”

“북극점이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그들이 서 있는 얼음 덩어리가 부유하는 거지.”

“그게 그거지. 우리가 떠다니든 북극점이 움직이든 결국은 마찬가지 아냐? 그럴 때 없어?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릴 떄 말야. 여기가 어딜까 하면서.”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은 매우 선명하다. 어머니의 장례 마지막 날이었다. C가 발인을 마치고 돌아왔을 떄, K와 그녀는 거실에서 섹스를 하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벗은 몸에 가 닿을 때까지도 K와 여자는 엉켜있었다. 검은색 리본이 드리워진 어머니의 영정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먼저 그를 발견한 K가 지루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고 주위에 널린 옷자기 중에서 자신의 옷을 꿰어 입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때까지도 눈을 질끈 감은 채 너브러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K가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는 그제야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정염이 채 가시지 않은 눈동자에선 푸른빛이 났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잠든 틈에 목을 잘라 죽였다는 고대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 클림트는 유디트에게서 민족주의와 영웅주의를 거세하고 세기말적 관능만을 남겨두었다.

유디트를 닮은 여자는 브래지어 등속을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갔다.